임유민이 듣더니 먼저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묻고 싶은 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훈계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요? 아까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소희 쌤을 욕하던데.”이에 임구택이 차가운 눈빛으로 진연을 쳐다보았다.“사모님이 바로 소희의 어머니가 되시는 분인가요? 그렇게 흉악한 말투로 딸한테 욕설을 퍼붓는 어머니는 저도 처음 보는데, 사모님 덕분에 한 수 배우고 갑니다.”임구택의 조롱에 진연은 순간 난감해져 반박하고 싶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입만 여러 번 뻥긋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소정인이 바삐 웃으며 진연을 대신해 대답했다.“방금은 제 아내가 마음이 급한 나머지 말이 헛나갔을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제가 그 한마디를 했다고 바로 나서서 부인을 옹호하시네요? 소희가 없는 일로 비방을 당했을 땐 아버지로서 소희를 옹호해줬는지 궁금하네요.”임구택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고, 그걸 듣고 있는 소정인의 얼굴색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 기타 가족들의 안색도 각기 다르게 변했다.‘임구택이 지금 소희를 옹호하고 있는 게 분명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 거지?’소설아가 소희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소동은 더욱 질투심이 생겨 소희를 노려보았다.‘전에는 진석이 그러더니, 지금은 임구택까지 달려와서 소희의 편을 들다니. 얼굴 하나 예쁘게 생겼다고 참 많이도 꼬셨네.’이때 소해덕이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오해예요, 임 대표. 내가 우리 소희를 너무 오래 보지 못해 그리워서 집으로 부른 거예요, 겸사겸사 물어보고 싶었던 것도 물어볼 겸.”임구택이 듣더니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덤덤하게 말했다.“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으세요, 저도 어디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소희의 편에 서겠다는 뜻이 너무 뚜렷해 누구도 감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그리고 임구택이 자신을 대신해 용건을 제기했으니 소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유민의 옆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기다렸다.이에 소해덕이 진연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임유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소희 쌤이 왜 그쪽 따님을 밀어내겠어요?”“그거야 당연히 소동이 마민영의 개인 디자이너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소동이가 더 잘 나갈까 봐 두려워서, 질투심이 나서 밀어낸 게 아닐까?”너무나도 확신에 찬 진연의 대답.임유민이 듣더니 눈썹을 한번 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소희를 바라보았다.“쌤, 난 쌤을 믿어.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이에 소희가 임유민을 바라보며 한번 웃고는 덤덤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동은 마민영의 개인 디자이너로 제작팀에 합류하게 된 거지만 마민영이 준 자원에 만족하지 않고 마민영 몰래 구은서에게 빌붙었죠. 그러다 마민영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소동을 불러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어요. 물론, 소동이 사직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죠. 바로 제작팀 중의 한 명이 추…….”“언니!”그런데 이때, 소희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소동이 갑자기 소희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러고는 당황함이 묻은 눈빛으로 목이 메어서는 말을 이어갔다.“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애초에 마민영의 개인 디자이너로 제작팀에 합류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이 일은 이쯤에서 그만두죠, 전 언니를 원망하지 않아요.”“왜 소희가 오니까 또 소희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거야? 너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억울하다며 모든 잘못을 소희에게 떠넘겼잖아? 지금 소희도 왔겠다, 제작팀을 떠난 게 대체 소희 때문인지 아닌지 제대로 말해 봐.”소동의 돌변한 태도에 옆에 있던 하순희가 갑자기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고, 소희가 듣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머금고 덤덤하게 소동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러는 소희의 눈빛을 보노라니 소동은 마음속의 불안함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소희가 추소용에 대해 말해버릴까 봐.그래서 더는 소희를 탓할 엄두도 못 내고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언니와 상관없는 일이예요. 제가 잘못을 저질러 제작팀에서 나온 거예요.”하지만 소동이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소희의 휴대폰을 주시하고 있었다.이에 임구택이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열어 물었다.“누구시죠?”[나 마민영이잖아! 잠깐…….]맞은편에서 대답하고 있던 마민영이 뜬금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그러는 그쪽은 누구시죠? 왜 소희의 휴대폰을 그쪽이 가지고 있어요?]“소동이 그쪽 개인 디자이너 맞죠? 지금 소동이 해고되었다고 소씨네 가족들이 소희를 탓하고 있어요.”[뭐라고요?]자신이 제일 중히 여기는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소리에 마민영이 화가 나 펄쩍 뛰었다.[그 사람들이 왜 소희를 탓해요? 분명 소동이 실력도 안 되고 인성도 쓰레기라서 해고된 건데! 드레스를 개똥처럼 만들어 나한테 욕 좀 먹었다고 바로 구은서한테 아첨 떨러나 가고, 결국 구은서도 그 여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받아주지 않았다고 제작팀에 더는 있지 못할 것 같으니까 알아서 꺼진 건데, 왜 소희를 탓하냐고요!]임구택이 듣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씨네 가족들을 훑으며 냉소를 드러냈다.“그런 거군요.”[당연하죠! 안 되겠다, 소희 지금 어디에 있어요? 내가 당장 가서 그 나쁜 여인에게 본때를 보여줄 거예요! 감히 소희에게 누명을 씌우다니! 오늘 다 뒤졌어!]마민영이 한다면 무조건 하는 불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소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임구택의 손에서 휴대폰을 앗아갔다.“올 필요 없어요. 오늘은 혼자 쇼핑하러 가요, 나 일이 있어 못 가요.”[소희야, 너 소동 그 나쁜 여인한테 모함을 당한 거 아니야? 겁내지 마, 내가 대신 복수해 줄게!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 여인을 제작팀으로 들이는 거 아니었는데.]“괜찮아요, 어서 가 놀아요.”[알았어, 그럼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언제든지 달려갈 테니까.]“네.”“…….”두 사람의 통화가 끝난 후 거실은 삽시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다들 각기 다른 표정으로 소희를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다 소희가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자 소해덕이 순간 얼굴색이 차가워
임구택의 눈동자는 여전히 차가웠고, 그러는 임구택의 얼굴에서 소해덕 그들은 아무런 정서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다음에요. 오늘은 유민이의 성적이 많이 진보되어 제가 두 사람한테 점심을 사주기로 했거든요.”“하하, 우리 소희가 임씨네 가문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임 대표가 많이 보살펴준 덕이죠. 다음에 꼭 와서 밥 한번 먹어요, 나도 소희의 할아버지로서 제대로 한번 임 대표한테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요.”자애로운 할아버지의 역을 하고 있는 소해덕의 모습에 임구택이 여전히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밥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소희가 이 가문에 들어서자마자 욕부터 듣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그럼요! 절대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오늘은 오해였잖아요.”임구택이 변명하고 있는 소해덕을 한번 덤덤하게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소희에게 물었다.“갈래?”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유민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이에 소씨네 가족들이 일제히 일어나 세 사람을 대문까지 바래다주었다.그러던 중 소찬호가 임유민의 곁으로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너희 둘째 삼촌 짱 멋있어!”“당연하지. 심지어 네가 오늘에 본 건 아무것도 아니야.”“진짜 너와 네 둘째 삼촌이 와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가족 어른들이 소희 누나를 엄청 꾸짖었을 텐데.”소찬호의 말에 임유민이 눈썹을 찌푸린 채 물었다.“너 입을 뒀다 뭐하는데? 네가 나서서 소희 쌤 편을 들면 되잖아.”“내가 당연히 편을 들었지!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소찬호가 좌절감이 섞인 표정으로 대답했고, 이에 임유민이 다시 한번 그를 향해 흰자를 드러냈다.그렇게 다 같이 별장을 나선 후, 임구택이 직접 소희를 위해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소설아의 얼굴색이 순간 차가워졌다.‘임씨 가문에 있어 소희는 외부인에 불과한 건데, 대표님이 소희를 조수석에 앉히고 임유민을 뒷자리에 앉힌다고?’임구택의 행동을 눈치챈 건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소희가 임구택을 향해 미소를 한번 짓고는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그런데 이때, 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소시연이 보내온 메시지였다.[소희 언니! 아까 소동이 뺨 맞을 때 나 속이 엄청 후련했어!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도 쌤통이야! 조만간 배은망덕하고 마음씨 고약한 소동을 키운 거에 엄청 후회하실 거야!]진연 부부가 소동을 엄청 좋아하고 있다는 건 소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설사 소동이 아무리 마음씨가 고약하더라 해도 두 부부는 여전히 소동을 자신의 친딸로 여길 거라는 것도.[참!]소희가 한참 멍을 때리고 있는데 소시연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헤헤, 언니, 임 대표님이랑 무슨 사이인 거야? 임 대표님이 왜 그렇게 언니를 감싸고 도는 건데?]이에 소희가 천천히 타자를 하며 답장을 했다.[고용주와 고용인 사이. 내가 임유민에게 수업을 가르쳐 주고, 그 사람이 나한테 임금을 주는 사이.][거짓말. 고용주가 고용인한테 그렇게 잘해 줄 수 있다고?][당연하지. 나의 고용주는 직원을 엄청 감싸고 도는 분이야.]소희가 답장을 다 입력하고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마침 소정인의 전화가 걸려왔다.이에 소희는 소시연에게 답장을 마저 보내고 나서야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소정인의 죄책감이 섞인 목소리가 바로 휴대폰 맞은편에서 들려왔다.[소희야, 오늘 일은 아빠랑 엄마가 잘못했어. 우리가 진심으로 사과할 게.]“괜찮아요, 저도 이미 익숙해져서.”너무 덤덤하여 아무런 정서도 읽어낼 수 없는 소희의 어투에 소정인은 더욱 난처해졌다.[앞으로 두 번 다시 소동의 말만 듣고 너를 탓하는 일이 없을 거야. 사실 너와 우리 간의 사이가 이렇게 틀어진 것도 어떻게 보면 다 소동이 탓이야. 네 할아버지의 말이 맞아. 우리가 확실히 너에게 너무 소홀했어. 그러니 소희야, 집으로 돌아와, 우리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소희야, 엄마와 아빠가 너한테 많이 미안해.]“미안함은 됐고, 저를 미워하지만 않으시면 돼요.”
“당연하죠!”소설아가 경멸의 웃음을 드러내며 대답했다.“소희가 어떻게 임구택 씨의 안중에 들겠어요.”“하긴. 소희가 예쁘게 생긴 건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예쁜 여인이 많고도 많잖아, 임구택이 소희보다 더 예쁘게 생긴 여인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닐 거고.”장연경이 덩달아 냉소를 한번 짓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방금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소희의 비위를 맞추는 걸 봤어? 마치 소희가 정말 임씨네 사모님이라도 된 것 마냥! 가소로워 죽겠네.”“걱정 마세요. 소희는 절대 임구택 씨의 아내가 되지 못할 거예요.”소설아가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한마디 내뱉고는 몸을 돌려 거실로 들어갔다.같은 시각, 소정인이 소희와 통화를 끝나고 마침 휴대폰을 거두고 있는데 소해덕이 그를 서재로 불렀다.그리고 소정인이 서재로 들어서자마자 소해덕이 바로 차가워진 얼굴로 화를 내며 말했다.“당장 소희를 집으로 데려가!”“저도 그러고 싶은데 소희가 돌아가려 하지 않아요.”“소희가 왜 돌아가려 하지 않는 건데? 너와 진연이 소희한테 잘해 주지 못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오늘의 상황은 너도 봤겠지만, 임구택이 소희를 매우 중시하고 있어. 설령 둘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희가 임구택의 마음속에서 분량이 있는 건 확실해.”소해덕이 한참 말하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또 다시 화를 내며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소동이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전에는 분명 출세하나 싶었는데, 어떻게 점점 나를 실망시킬 수 있어? 어휴! 너희 두 부부가 이래 봬도 소동을 20년 넘게 키웠고, 또 그 아이한테 깊은 정이 있다는 걸 나도 알아, 그래서 그 아이와 관계를 끊으라고는 강요하지 않을 게. 대신 서둘러 그 아이에게 괜찮은 시댁을 찾아주고 시집을 보내. 적어도 우리 소씨 가문을 위해 힘을 보태야지.”“그건…….”소정인이 순간 망설였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진연이랑 한번 상의해보겠습니다.”“진연이는 집에만 붙어있어 견해가 짧아. 그러니 매사에 진연의 말을 들어서는
“아버지도 나와 같은 뜻이야. 소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감정을 키우고, 소동은 괜찮은 시댁을 찾아 시집 보내라셔.”“소희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은 급하지 않아, 하지만 소동의 혼사는 먼저 생각해 봐도 될 것 같아. 우리가 소동의 작업실에 퍼붓은 돈만 해도 얼마야? 그 아이의 작업실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이 없어. 그러니 계속 그렇게 돈을 낭비할 바엔 돈 많은 집에 시집을 보내 부잣집 사모님을 시키는 것도 나쁠 게 없지.”“괜찮은 사람 있어?”소정인의 물음에 진연이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나와 자주 카드놀이를 하던 유 부인의 아들이 금방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거든. 애가 키는 작아도 잘 생기긴 했어. 게다가 유씨 가문의 장사가 근 2년 들어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방안에서는 소정인과 진연이 계속해서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동은 채 듣지도 않고 표정이 어두워져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그리고 침대에 몸을 던진 소동의 마음속에서는 원한의 씨앗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두 사람이 지금 나를 팔아버릴 생각을 하고 있어.’‘나를 팔아버리고, 소희를 집으로 데려와 세 식구끼리 행복하게 남은 생을 보낼 계획인 거야.’‘이렇게 되면 나중에 소씨 가문의 재산과 그룹도 전부 소희의 것으로 될 거야!’‘결국 그들이야말로 한 가족이고, 난 아무리 노력하고 잘해도 영원히 남인 거야!’‘안 돼!’‘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걸 허락해서는 안 돼.’‘난 죽어도 시집가지 않아! 소희도 절대 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고! 이곳의 모든 것은 반드시 나의 것이여야 해.’‘그렇게 하려면 진연과 소정인이 나에 대해 다시 신심을 가지도록 방법을 찾아야 해, 그들 눈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소동은 갑자기 오늘 작업실의 직원이 연락이 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최근 방송국에서 새로 개설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연예인과 복장 디자이너를 초청해, 연예인을 모델로 디자이너들이 복장을 디자인하는 프로그램이라 했었나?’‘게다가 요
[누가 누나를 따돌렸는데?]“…….”추소용의 물음에 소동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추소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전에 누나가 마민영한테 가서 돈을 빌리겠다고 한 후 몰래 도망갔다고 이 일이 이렇게 쉽게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내가 직접 한 번 소씨 가문에 찾아가 줘?]“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너 소씨 가문의 사람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그들이 나까지 함께 가문에서 쫓아낼 수 있어. 그러면 그때 가서 넌 아무것도 얻지 못해.”소동의 경고에 추소용이 잠깐 멍해 있더니 바로 냉소를 드러냈다.[거짓말하지 마. 그 사람들이 누나를 그렇게 아끼는데 어떻게 누나를 쫓아낼 수 있겠어?]“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결국 난 소씨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잖아. 그러니 그들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사정없이 나를 쫓아낼 거야. 너희 부모님이 소희가 친딸이 아니라고 소희를 엄청 학대했던 것처럼.”[그것 봐! 누나는 소씨네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이야, 우리 둘이야 말로 진정한 가족이라고. 그러니까 소씨 가문의 돈을 전부 나한테 맡겨, 그러면 우리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을 거야.]“너한테 맡기라고? 그들이 나까지 경계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맡겨?”[난 누나한테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어. 누나, 소씨 가문의 돈은 반드시 누나가 손에 쥐고 있어야 해. 내가 도와줄 게, 필경 우리 둘이야 말로 한 가족이니까.]추소용의 말에 소동은 정말로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나한테 방법이 있긴 해, 대신 너 절대 소씨 가문에 찾아와서는 안 돼, 안 그러면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거야.”[그래, 안 가도 돼. 하지만 나 지금 쓸 돈이 없어, 그러니까 600만원만 입금해 줘, 그러면 다시는 누나한테 연락 안 할 게.]“허, 나한테 뭔 600만원이 있다고 너한테 입금해 줘?”[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지금 당장 돈을 입금해 주지 않으면 나 매일 누나한테 전화할 거야.]“…….”소동은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얼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