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임구택을 한번 흘겨보고는 딜을 하기 시작했다.“그럼 작은 걸로 두 개, 어때?”“그래.”“…….”딜이 분명 성사되었지만 소희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앞으로 아이스크림도 마음대로 못 먹겠네.’마지못해 쇼핑 카트의 큰 아이스크림을 돌려놓고 작은 걸로 바꾸는 소희는 속으로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다시 임구택을 향해 물었다.“그래서 장시원이 대체 뭐라고 했는데?”“걔가 뭐라고 더 하겠어? 당연히 엄청 기뻐하며 승낙했지.”소희가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청아가 장시원과 잘 되는 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 새로운 국면이 이루어질지도 몰라.’장을 다 보고 청아네 집으로 돌아온 후, 임구택은 식재료를 주방으로 옮겼고, 소희가 과자를 요요에게 건네주며 청아를 향해 말했다.“이따가 장시원도 온대.”청아가 듣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희를 쳐다보았다.“뭐?”“미안, 내가 네 의견도 묻지 않고 혼자서 결정했어. 난 그냥 네가 매일 장시원의 밑에서 일하는데, 상사와의 관계를 잘 처리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하지만 그 사람만 보면 나 너무 긴장돼.”“그럼 몇 번 더 만나면서 그 긴장감을 이겨내.”소희의 말에 청아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말이 맞아. 하루 종일 그 사람과 같은 건물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계속 이럴 수는 없지. 반드시 평정심을 되찾고, 예전처럼 그 사람을 다시 친구로 여겨야 해.”‘설령 그 사람이 살가운 표정을 드러낸 적이 없고, 또 자주 나를 꾸짖는다 하더라도 난 반드시 습관해야 해.’“잘 생각했어.”소희의 진심 어린 눈빛에 청아가 웃으며 되물었다.“너와 임 대표님의 일이나 말해 봐,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사실 우리 이미 여러 번 만났었어.”“그럼 임 대표님이 정말로 너의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된 거야?”“응, 나도 어제 알았어.”“임 대표님이 확실히 너한테 마음을 많이 쓰는 것 같아. 저
“열어보면 알잖아.”소희가 다가가 문을 열었다.밖에는 선물과 술을 양손 가득 들고 온 장시원이었다.“빨리 왔네요?”“마침 근처에서 일을 보고 있어서. 구택이는?”“안에요.”소희의 대답에 장시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요요야.”“아저씨!”진작 장시원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요요가 아장아장 달려와서는 웃으며 장시원을 향해 팔을 벌렸다.이에 옆에 있던 청아가 눈치껏 장시원이 가지고 온 물건을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장시원을 향해 말했다.“이렇게 많은 걸 사올 필요까지는 없는데.”“다른 사람이 선물로 준 거야, 어차피 나한테는 쓸모없는 거니까 가지고 온 거고.”“아. 편하게 앉아 임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세요. 제가 가서 음식을 만들게요.”청아가 어색하게 한번 웃고는 주방 칸으로 들어가려 하자 임구택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청아를 향해 말했다.“오늘은 나와 시원이가 저녁을 책임질 테니까, 청아 씨는 소희와 요요랑 같이 쉬고 있어요.”“아닙니다! 제가 할게요, 금방이면 돼요!”“난 구택 씨의 제의가 좋다고 생각하는데?”청아가 연거푸 손을 흔드는 모습에 소희가 바로 청아를 끌고 거실로 향했다. 그러다 장시원의 곁을 지나칠 무렵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수고해줘요, 시원 오빠.”“수고는 무슨.”“그럼 저 아저씨 도와 채소 뜯어 줄게요!”장시원의 품에서 내려오기 싫었던 요요는 자신을 향해 뻗은 청아의 두 손을 무시하고 장시원을 바라보며 깜찍한 말투로 말했다. 이에 장시원이 웃으며 요요를 안고 주방 칸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종래로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임구택과 장시원이 주방 칸에 멍하니 서서 식재료들을 보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했다.그러던 중 장시원이 갑자기 ‘픽’ 하고 웃었다.“소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정말 무엇이든 다 도전하는구나?”“날 믿어, 난 분명 나 자신만을 위해 이러는 거 아니라는 걸.”“난 너처럼 그렇게 못나지는 않았어. 설령 내가 우청아를 좋아한다고
임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새우를 손질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확고했다.“이번 생에 그녀가 아니면 안 돼. 그런데 왜 자신을 괴롭히겠어?”장시원은 시선을 돌리며 갑자기 웃었다.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마. 그냥 그녀가 그리워서 못 견딜 뿐이잖아!”구택이 시원을 흘긋 보며 말했다. “내가 좋으니까!”장시원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네가 좋다면 이 세상에 네가 못 할 일이 어디 있겠어?”“내가 너라면 남의 일에 신경 쓸 여유 따위 없을 거야!”구택이가 비웃었다.그 말을 들은 시원이가 구택에게 물었다.“내가 뭐?”“청아 집에서 맞선보라고 부추긴다고 하더라?”구택이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그런 일이 있어?”시원은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토마토를 계속 씻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구택이가 미간을 좁히며 진지하게 말했다. “청아가 2년 동안 혼자서 꽤 힘들어했어. 적당한 사람이 있다면, 나도 소희한테 청아 좀 설득해 보라고 했을 거야. 결혼할 나이잖아.”장시원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너 너무 심하게 기뻐하는 거 아니야?”임구택이 조롱했다. “상관없다며?”“어쨌든 청아가 내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관계는 있어!”“그건 사생활이야, 네가 상사라고 해도 관여할 수는 없어!”시원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구택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기운을 빼고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네. 앞으로 너하고 소희에 관한 일도 입 닫고 있을게.”구택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청아를 그렇게 신경 쓰면서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거야?”시원은 이 말을 듣고 무덤덤하게 말했다.“너무 멀리 갔네. 청아는 나를 배신하고 나를 속인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지금 나랑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을 받으려 하는 게 말이 돼? 내가 그렇게 쉽게 넘어갈 것 같아?”이 말을 들은 구택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면 왜 요 2년 동안 다른 여자를 안 만났는데? 청아 때문이
해물탕은 좀 더 끓여야 했다. 따라서 몇몇 사람들은 먼저 식사를 하기로 했다.장시원은 요요를 자신의 곁에 두고 소고기와 토마토 계란 볶음을 젓가락으로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임 아저씨가 만든 요리인데 한번 먹어볼까?”요요는 입을 내밀고 호호 불며 조심스럽게 한 입 먹었다. 꼭꼭 씹은 후,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맛있어요!”그리고 요요는 장시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삼촌도 요리할 줄 알아요?”시원은 당황했지만, 요요 마음속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웃으며 거짓말했다.“물론이지, 내가 만들어 줄게. 이것보다 훨씬 맛있을 거야!”소희가 웃으며 말했다.“아이를 속이지 마세요. 기왕 하기로 한 이상 해 보여야죠!”시원이 말했다.“뭐 그까짓 거 구택한테서 배우면 되죠. 그게 뭐라고!”청아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요요가 그냥 물어본 거니까, 장 사장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그리고는 임구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럼 임 사장님은 여기 계속 사시는 거예요? 임 사장님은 줄곧 여기서 사는 거예요? 그런 거면 앞으로 소희처럼 우리 집에 오셔서 식사하셔도 돼요.”“그래요, 고마워요!”구택이 엷게 웃었다.“잠깐만요!” 장시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구택에게 물었다.“너 어디서 사는데?”청아가 웃으며 말했다.“구택 씨는 소희의 이웃이죠. 소희 집 맞은편에서 거주하고 있어요.”장시원이 놀란 표정으로 구택을 바라보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언제?”“이틀 전, 이사했어.”구택이 침착하게 대답했다.“대단해!” 시원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소희에게 농담을 건넸다.“제가 소희씨라면 그 자리에서 구택에게 청혼할 텐데요.”그 말에 구택이 소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웃었다.“애초에 나와 결혼할 사람이야!”장시원은 놀란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놀라운 날이네!”그러고는 술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이 화해했으니 이제 저놈 얼굴을 볼 일이 없겠네요. 건배합시다!”모두들 잔
장시원은 처음 해 보는 것이었지만, 사실 간단한 일이었다. 그저 깔끔하게 씻기만 하면 되었다. 우청아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옆으로 가서 도마를 치우며 시원이가 씻은 접시를 닦아 찬장에 넣었다. 청아는 접시를 정리하며 슬쩍 시원의 건장한 옆모습을 눈짓으로 훑었다. 그는 열심히 설거지하고 있었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굵은 팔뚝을 드러냈다. 청아는 그의 곁에서 분주히 움직였지만 요동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청아는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이 회사에서 관계를 생각하며 이상한 생각을 멈추려고 했다.한편, 거실에서 소희는 요요와 함께 블록을 쌓고 있었고, 임구택은 옆에서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소희와 요요의 모습을 보며 구택은 갑자기 약간의 불만이 생겼다. ‘장시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놈한테 이렇게 예쁜 딸이 그냥 생긴다니.’구택과 소희는 함께한 시간이 길었지만 아직 자녀가 없었다.‘세상 참 불공평하다!’“무슨 일 있어?” 소희는 마치 마음이 통하는 듯 구택을 올려다보았다.구택의 눈빛에는 약간의 원망이 서려 있었다.“아기 좋아해?”그러나 소희는 임구택이 자주 건네는 그 백색 알약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요요만 좋아, 다른 사람의 아이는 싫어.”“우리 아이라면?”임구택의 눈빛이 더욱 타오르고 있었다.소희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본 적 없어.”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구택은 계속해서 자녀에 관한 질문을 할 것 같았지만 이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이때 청아가 과일 접시를 들고 나왔다. “과일 먹을 시간이에요!”장시원도 손을 닦고 주방에서 나와 구택에게 술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그래, 이사 간 기념으로 파티를 하는게 어때?”임구택은 시원이 농담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러워? 차라리 너도 청아 씨 맞은편 집을 사서 다 같이 지내는 것이 좋겠어!”청아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우청아는 가볍게 화를 내며 말했다.“엄마 말 좀 듣자. 엄마랑 같이 잘까? 엄마가 동화책도 읽어줄게.”“싫어요, 삼촌이 재워주세요!”임구택과 소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이 반짝였다.‘요요가 시원 씨를 이렇게 좋아하다니!’“제가 재워드릴게요.”장시원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요요를 포근히 안아 침실로 향했다.“삼촌과 같이 자자.”“네.”요요는 시원의 목을 꼭 안고 따라갔다.청아는 무력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따라갔다.침실에 들어서자, 시원은 잠시 멈칫했다. 평소와 다른, 여성의 침실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우청아가 잠을 자는 그곳이었다.침실에 들어서자 연한 우유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고 그 향기는 청아의 향기였다.안방은 소박했다. 침대 하나, 옅은 노란색에 작은 데이지가 수 놓인 시트, 같은 색상의 커튼, 옷장, 작은 서랍장, 그 위에는 연 청색 꽃병에도 작은 데이지가 담겨 있었다.침대 머리맡에 따뜻한 노란색 스탠드가 켜져 있어, 소박하지만 아늑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시원은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구름을 밟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마음도 가벼워졌다.요요를 침대에 눕힌 후에도 요요는 그의 팔을 꼭 붙잡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나랑 같이 누워요. 더 이야기 듣고 싶어요.”“요요, 말썽 부리면 안 돼!”청아가 엄하게 꾸짖었다.‘남자를 침실에 들이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시원 씨를 침대에 눕힐 수 있을까?’“삼촌이 동화책 읽어줘야 해요!”요요는 졸린 눈을 비비며 청아의 꾸지람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리고는 삐죽 튀어나온 입술로 목이 메인 듯 말했다.시원은 요요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가슴이 아려 청아에게 물었다.“내가 누워도 됩니까?”청아는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어떻게 설득할까?’“내일 새 침대 시트를 사줄게요.”장시원은 그녀를 그윽이 바라보며 말했다. 어스름한 빛 사이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청아는 거절했다.“게 아니에요.
임구택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저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우청아는 놀란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곧 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고, 우청아는 혼자 남겨졌다.청아는 분노를 억누르며 내일부터 소희를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그 시각 소희는 위층으로 올라가며 걱정이 되었다.“둘이서만 있어도 괜찮을까?”“안심해, 장시원도 예의가 있는 사람이니까.”임구택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그들 관계에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소희는 시선을 아래로 고정하고 말했다.“나는 단지 장시원이 미덥지 않을 뿐이야. 적어도 지금까지 나는 시원 씨가 청아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 설령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일편단심일 수 있을까?”필경 시원은 과거가 복잡한 사람이었다.“그에게 기회를 줘, 이번엔 다를 거야.”구택은 소희의 손을 꼭 잡고 따듯하게 웃어 보였다.“그래!”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위층에 도착하자, 소희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난 이제 자러 갈게, 너도 일찍 자!”구택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다정하게 물었다. “어디 가서 자려고?”소희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은 맑고 진지했다.“임구택, 우리는 각자 살기로 했잖아. 서로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주기로. 그래서 이웃으로 사는 거 아니야? 난 이런 관계가 좋아.”이 말을 들은 임구택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자기야, 우리는 부부야, 연인이 아니야.”“우리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어!”소희가 말했다.“결혼식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그래도 네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리고 부모님을 만난 후에야 결정할 수 있잖아? 따라서 그동안 우리는 연인이야.”“어정에 있을 때 우리는 연인이었고 함께 살았어!”소희가 말했다.“하지만 지금 함께 살고 싶지 않아.”임구택은 이를 악물었다.“이틀 만에 원래대로 돌려놓다니,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소희는 한 걸음 다가가
임구택의 따뜻한 기운이 얼굴에 스쳤다. 짜리하면서도 뜨거운 느낌이었다. 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주말.”“이틀 뒤.”소희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말했다.“좋아!”임구택은 그제야 웃으며 만족스럽게 말했다.“그래, 기다릴 수 있어!”소희는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그럼 나는 돌아가서 잘래!”“응.”임구택은 아쉬운 듯 소희에게 한참 동안 키스한 후에야 그녀를 보내주었다.건너편 문이 닫히고 임구택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원래 닫혀 있던 스크린이 갑자기 열리며 지니가 나타났다.“주인님 안녕하세요!”임구택은 손잡이를 잡고 경고했다.“몰래 보지 마!”지니는 곧장 눈을 가리며 웃었다.“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주인님의 모든 프라이버시와 관련해서 지니는 자동으로 정보를 차단한답니다.”임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았어, 너를 확장 원급 레벨로 레벨 업 시켜 줄게.”“주인님 감사합니다!” 지니는 감동에 젖어 제자리에서 퐁퐁 뛰었다.이윽고 구택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지니가 물었다.“주인님, 왜 소희 씨한테 여행 갔다고 하라고 하셨어요?”임구택은 걸음을 옮기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희가 힘들어하잖아. 며칠 동안 좀 쉬게 해야지.”지니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네가 필요할 때 너를 부를게!”구택이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한편 아래층에서 청아는 거실에서 10분 동안 안절부절 못했다. 하지만 장시원이 나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들어가 보았다.문을 살짝 연 청아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두 사람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따뜻하고 어두운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요요는 달콤한 꿈나라에 있었다. 여전히 시원의 소매를 붙잡은 채. 장시원도 옆에 누워 곤히 잠들었다.청아는 차마 그들을 방해할 수 없었다.무려 3분 동안 서 있다가 그제야 작은 소리로 외쳤다.“장 사장님?”“장 사장님!”“시원 씨!”시원이가 깊이 잠든 모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
“잠이 안 온다면, 다른 걸 해도 괜찮아.”강시언이 말하자, 강아심은 잠시 침묵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대단한 진언님께서 굳이 소파에서 자는 걸 선택하시다니, 대체 왜요?”시언은 차가운 눈을 반쯤 내리며 담담히 대답했다.“비가 와서 못 가.”아심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시언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넌 뭐라고 생각했는데?”“저는...”아심은 손을 들어 시언의 셔츠 앞자락을 잡으며, 긴 속눈썹을 떨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남으신 이유가, 내일 아침 제가 만든 샌드위치를 드시고 싶어서인 줄 알았어요.”“그 샌드위치, 꽤 맛있더라고.”“그러면 내일도 만들어 드릴게요.”“좋아.”아심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저 이제 피곤해요. 잘게요. 방해하지 마세요.”“자.”시언은 아심을 품 안으로 더 끌어당겼다.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퍼붓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고, 천둥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꼭 껴안고 평온한 잠에 들었다.아심은 곧 잠들었지만, 시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잠들기 전부터 그녀에게 자극받은 상태였고, 지금 아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으니 더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얇은 실크 슬립 드레스 하나만 입은 아심은 곡선이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피부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그랬기에 시언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제야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막 잠들려는 순간, 아심이 시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리고 아심의 손이 시언의 풀어진 셔츠 단추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언은 즉시 정신이 번쩍 들며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아심!”하지만 아심은 깊이 잠든 상태라 대답이 없었다.시언은 깊은숨을 내쉬며 아심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심은 무의식적으로 몸부
몇 번째인지 모를 천둥소리가 울리고 난 후,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시언의 눈동자는 어둠보다 더 깊고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심의 옆얼굴에 뜨거운 입맞춤을 남겼다.아심은 허리띠를 푸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빡였고, 그러더니 시언의 품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며 나른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심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며 문을 닫고 잠갔다.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 후, 아심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문에 기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셔츠를 정리하며 욕실로 향했다.거실.시언은 굳게 닫힌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와 무력감이 떠올랐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시언은 화면을 확인한 뒤, 희미한 조명 속에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아심이 또다시 시언에게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그러자 시언은 화가 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며 물었다.[그게 그렇게 만족스러웠어?]잠시 후, 아심이 답장을 보냈다.[부디 돈을 받아줘요. 거래가 끝났으니, 다음번에도 잘 협력할 수 있겠죠?]아심은 막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시언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아심은 그가 화가 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아심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동안 기획서를 읽고, 도도희와 통화를 한 뒤, 피곤함에 이끌려 잠이 들었다.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아심은 매우 깊이 잠들었다.한밤중.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아심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이불을 챙겨 침대에서 내
[그럼 내가 방해하지 않을게. 일이 끝나면 꼭 집에 오렴.]도경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하자 아심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아심은 도경수의 번호를 저장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경수가 했던 한 글자가 맴돌았다.집, 아심에게도 이제 집이 생겼다.잠시 후, 도씨 집안에서 보낸 점심이 도착했다. 5단으로 된 보온 도시락에는 네 가지 반찬과 한 가지 국이 담겨 있었다.모두 어제 아심이 식사 중에 유독 많이 먹었던 요리들이었다. 도경수는 아심의 입맛을 기억한 것이다. 아심은 마음속 깊이 따뜻함이 밀려들었고, 가족이라는 존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다.오후에는 도도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저녁에 비가 올 테니 우산을 준비하고, 약속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전화를 끊고 난 뒤, 아심은 휴대전화를 쥐고 갑자기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 8시쯤, 아심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의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강시언이 소파에 앉아 책을 들고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이에 아심은 그에게 다가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남의 집에 들어오실 때는 원래 이렇게 허락도 안 구하시나요?”“남의 집?”시언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차갑게 내리는 비가 어우러진 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맑은 옥처럼 울렸다. 아심은 시언의 맞은편 테이블 위에 앉았다.따뜻한 조명 아래, 아심의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는 약간의 나른함과 여유가 섞여 있었다.“저는 이제 당신의 넘버 세븐이 아니예요.”시언은 손을 들어 아심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살짝 당기며 자기 무릎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내 넘버 세븐이 아니더라도, 넌 내 재희야.”이에 아심은 매혹적인 눈빛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왜 재희가 당신의 것이죠?”시언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도도희가 말했다.“집으로 가져올 짐이 있으면 내가 같이 가서 챙길게.”강심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제가 혼자 해도 돼요. 짐이 많지 않거든요.”도경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일이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일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러자 양재아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아심이 집에 오면 내 옆방에서 지내면 어때? 우리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도도희는 잔잔히 웃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이미 내 옆방을 정리해 두었어요. 재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거든요.”그 말에 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시언은 아심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고, 도경수는 끝까지 마당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재아는 도씨 집안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도경수가 시언의 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기운이 들었다.‘역시 친자식은 다르구나.’ 재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몇 달 동안 도씨 집안에서 도경수를 모셨는데도, 강아심이 하루 있는 것만 못하네.’“가요, 늦겠어요.”재아는 시선을 거두며 운전사에게 말했다....시언은 앞을 응시한 채 운전하며 물었다.“저녁에 정말 약속이 있는 거야?”아심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떨어져 따뜻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이예요.”그러자 시언은 그녀를 힐끔 보며 말없이 운전했고, 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녁에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그래.” 시언은 담담히 대답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심은 가벼운 질문을 하였다.“강재석 할아버지랑 언제 강성으로 돌아가세요?”시언이 물었다.“왜 그러는데?”“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아심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재석 할아버지가 제 일
“‘강’ 씨 성이면 어때? 아심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야.”강재석이 논리적으로 반박했다.“그건 아심이 예전에 도씨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제 돌아왔으니 성은 반드시 바꿔야 해요.”도경수는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재희로?”도경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재희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도도희는 계속 다퉜어. 얼마 후 도도희는 재희를 데리고 강성을 떠났고, 그저 재희라는 예비 이름만 붙여줬어.”“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재희로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지만, 나와 도도희의 의견이 매번 엇갈려 결국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강재석은 기뻐하며 말했다.“그 말은 재희의 운명적인 이름이 이미 강아심이라는 뜻이니 바꿀 필요가 없다는 거야!”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절대 불가능해. 내일 바로 도도희와 상의해서 재희를 우리 도씨 가문의 호적에 올릴 거야.”“그 문제는 아심의 의견을 물어봐야지.”강재석이 말했다.“네 멋대로 결정하면 아심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어.”그 말을 듣고 도경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말했다.“물론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지.”그는 위층을 올려다보며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은 도도희와 아심이가 한방에서 지내고 있어.”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모녀가 이미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거리감도 줄었겠지.”“맞아!” 도경수가 감탄하며 말했다.“볼수록 아심은 우리 도씨 가문의 사람처럼 보여.”강재석이 비웃으며 말했다.“예전에 사람 깎아내릴 때는 아니었나 봐?”도경수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그때는...”“그때는 뭐? 양재아의 한마디에 휘둘려, 본 적도 없는 아가씨를 편견으로 대했잖아.”강재석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니 아심이가 당신을 무시하는 게 당연하지.”도경수는 주름이 가득 한 얼굴로 당황하며 말했다.“그건 내 잘못이야!”“잘못을 인정한다니 다행이네!”그 말에 도경수는 찡그리며 말했다.“지금까지 재희가 날 외할
소희는 손을 뒤로 돌려 임구택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이제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볼 수 있겠네.”구택의 긴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가고 싶은 곳 있어?”그 말에 소희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사실, 아직 양재아가 조금 걱정돼.”“걱정하지 마. 형님이 있으니까.” 구택이 웃으며 말했다.“형님은 절대 아무도 아심을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그건 그렇지!” 소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돌아왔을 때, 오빠랑 아심이 사귀고 있었으면 좋겠어.”“그럴 거야.”...그날 밤, 도도희는 아심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오늘 밤은 한방에서 지내자. 아직 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도우미들이 아심을 위해 새 세면도구와 잠옷을 준비해 놓았다. 아심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도도희는 침대에 앉아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손짓했다.“침대로 와.”아심은 신발을 벗고 도희 옆에 앉았다. 방 안은 냉방이 세게 틀어져 있었고, 도도희는 이불을 들어 그녀의 다리에 덮어주며 말했다.“젊은 사람들이 너무 차게 하면 안 돼. 특히 너는 위가 안 좋잖아.”아심은 스스로 이불을 위로 끌어올리며 웃었다.“이제 알았어요. 제가 위가 안 좋은 건, 알고 보니 유전 때문이었네요.”이에 도도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원인을 찾았구나!”아심은 사진첩을 넘기다가 자신이 세 살이 되기 직전의 사진을 보고 중얼거렸다.“양부모님 댁에서도 제 어릴 적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사진 속 모습과 거의 비슷했어요.”도도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사람들이 널 자주 때렸니?”“친자식이 아니니까, 당연히 정이 없었죠.” 아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도 다행히 할머니가 아주 착해서 저를 보호해 주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아들이 병에 걸리자 저를 팔아버렸어요.”도도희는 가슴이 아파 그녀를
강재석이 말했다.“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면 다 지난 일이 된다. 재희가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야. 너까지 이러면 재희 마음도 편하지 않을 거다.”“그렇지!” 도경수가 눈물을 닦으며 강아심을 향해 말했다.“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지난 20년의 세월을 되찾아야지!”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식사가 끝난 후, 모두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강재석이 소희에게 말했다.“너희 부부도 신혼여행을 가야 하지 않느냐? 이제 재희도 찾았으니 내일부터 떠나도록 해.”소희는 만화에서나 볼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무 기뻐서 신혼여행이고 뭐고 갈 마음이 없어요.”그 말에 강시언이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이 그룹 일을 전부 내려놓고 널 위해 시간을 냈는데,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많으니 신혼여행을 미루지 마.”구택이 소희를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걱정하지 마.” 시언이 잔잔히 미소 지었고, 도경수도 진석과 강솔을 향해 말했다.“너희도 나를 계속 돌보려 하지 말고 할 일 있으면 하러 가라. 여기 강재석도 있고, 나와 이야기하면 충분하다.”진석이 말했다.“그러면 강재석 할아버지께서 강성에 며칠 더 머물러 주세요.”강재석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떠날 수 없구나!”도도희가 말했다.“아저씨, 어떤 일이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그 말에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너희 아빠에게 물어봐라!”도경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 일은 신경 쓰지 마라. 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돌아가려면 얼른 돌아가!”도도희가 호기심에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언과 아심의 혼사 얘기다!”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네 아버지가 전에 재희를 찾으면 두 집안이 결혼을 통해 인연을 더 깊게 맺자고 했는데, 이제 와서 약속을 취소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어.”모두가
양재아는 그 자리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정원을 응시했다. 저녁노을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자, 묘한 냉랭함이 깃들었다.‘이제 겨우 첫날인데, 강아심이 나에게 벌써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분명 나를 내쫓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재아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목이 메어,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차가운 얼굴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아는 두 도우미가 아심을 둘러싸고 환대하는 모습을 보았다.“아가씨, 주방에서 진귀한 홍삼 특급 탕을 준비했는데 괜찮으신가요?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탕으로 바꿔 드릴게요.”“아가씨, 요리는 찜으로 드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것으로 조리해 드릴까요? 도경수 어르신께서 아가씨의 의견을 꼭 여쭙고 준비하라고 하셨어요.”“아가씨, 평소에 단맛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매운맛을 좋아하시나요?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아가씨 입맛에 맞게 요리해 드릴게요.”...그들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재아의 가슴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동시에 도우미들의 태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저녁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도경수는 특별히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고,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도경수는 가장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오늘 첫 잔은 시언 그리고 모두를 위해 건배하네. 너희가 없었다면 나와 도도희는 우리 아심이를 찾지 못했을 거야.”도도희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저도 여러분께 감사의 잔을 드려요. 20년간 간절히 바라온 소원이 오늘에서야 이루어졌어요.”“지난 20년 동안, 저는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고, 하루도 제 딸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는데...”도도희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졌다.“이제야 제 마음이 놓이네요.”도도희의 감동적인 말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도도희 이모, 축하드려요!”“스승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