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올라탄 후, 임구택이 소희를 다정하게 쳐다보며 물었다.“상처는? 아직도 아파?”“아니.”“마씨네 가족들이 아직도 강성에 있어. 직접 당신을 만나 감사를 표하고 싶어하는데, 만날 거야?”“아니,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알았어. 그럼 내가 그렇게 전해줄 게.”임구택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마민영 씨 납치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가 다 끝났어. 마민영 씨의 아버지가 해성의 모 고위직에 출마하게 되었는데, 상대 선수가 마민영 씨를 잡아 그의 가족들을 위협하여 스스로 경선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이었나 봐. 그리고 그 사람이 파견한 킬러들이 이미 마민영 씨를 일주일 동안 미행했고, 마침 케이슬에서 당신과 만나기로 한 날에 그들이 기회를 틈타 납치했던 거지. 당신이 제때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마민영 씨는 정말 큰 일이 났을 거야. 그래서 지금 마씨 가문의 가족들이 당신한테 엄청 고마워하고 있어.”말을 마친 후, 임구택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마씨 가문에 자식이라고는 마민영 씨 한 명뿐이야.”소희가 조용히 다 듣고난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나도 마민영 씨가 오래전부터 미행당하고 있었을 거라는 걸 예상했어. 그래서? 도망친 킬러들은 다 잡았어?”“응, 다 잡았어.”“그럼 됐어.”소희가 수업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거실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던 임구택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소파에 놔둔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이에 소희는 아무 말없이 임구택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러다 문뜩 임유민의 과외를 다시 책임지고 나서부터 데이비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눈치챈 소희는 차에 올라탄 후 임구택을 향해 물었다.“데이비드는?”“보고 싶어?”“그냥 뭐, 궁금해서.”“그럼 같이 데이비드 보러 갈래?”임구택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응시하며 물었다.데이비드를 무서워하는 소희는 당연히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임구택의 눈빛 속에 섞인 기대가 너무나도 뚜렷하여 소희는 결국
중산 별장에 도착한 후, 임구택이 먼저 차에서 내려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고는 소희의 손을 잡고 같이 별장으로 들어갔다.예전에 소희는 임구택이 언제가는 갑자기 청원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임구택도 언젠가는 다시 소희를 데리고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그래서 두 사람이 비록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청원에 돌아오는 거지만,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왠지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장면인 것 같았다.초인종 소리에 문 열러 달려온 오씨 아주머니와 임씨 아저씨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소희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두 사람이 같이 돌아왔다는 것이다.꼭 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을 보며 오씨 아주머니는 왠지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놀라서 멍해진 오씨 아주머니의 표정에 소희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줌마, 날 몰라보겠어요?”“작은 사모님, 드디어 돌아오셨네요.”오씨 아주머니는 격동된 나머지 횡설수설하여 소희를 향해 인사하고는 또 웃으며 임구택을 쳐다보았다.“둘째 도련님도 같이 돌아오셨네요.”옆에 있던 임씨 아저씨도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이때, 소희는 갑자기 멀리서 전해오는 바람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잔디밭을 바라보니, 동시에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데이비드와 설희가 눈에 들어왔다.설희보다 속도가 더 빠른 데이비드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의 앞에 도착했고, 임구택은 바로 손을 내밀어 소희를 뒤로 막았다.하지만 소희는 오히려 그의 손을 밀어버리고 설희를 향해 달려갔다.분명 2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는데 설희는 소희에 대해 서먹서먹해지는커녕 필사적으로 소희에게 달려들었다.하마터면 설희의 무게를 못 이기고 뒤로 넘어질 뻔한 소희는 가까스로 설희의 목덜미를 잡고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설희를 어루만졌다.그리고 한 번도 그렇게 해맑게 웃는 소희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던 임구택은 순
“개 한 마리를 염려할 겨를이 있으면서 왜 나는 염려하지 않는 거야?”임구택이 불만스러워하며 투정을 부렸고, 그 모습에 소희가 눈썹을 한번 올리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설희는 내가 키웠지만, 당신은 내가 키운 게 아니잖아.”“…….”맞는 말이라 임구택은 순간 할말을 잃게 되었다.이때 오씨 아주머니가 주스 두 잔과 디저트를 담은 접시를 들고 와서는 잔디밭에 있는 나무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도련님과 작은 사모님이 갑자기 돌아오실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준비 못했어요. 죄송스러운 대로 일단 이거라도 드세요.”소희가 듣더니 바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예요, 우리가 너무 갑작스레 찾아왔는 걸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고 있는 대로 주시면 돼요.”“네!”여전히 마음씨가 착한 소희의 배려에 오씨 아주머니가 다정하게 한번 웃고는 다시 몸을 돌려 별장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옆에 있던 임구택이 갑자기 손을 들어 소희의 눈썹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어쩐지 오씨 아주머니가 늘 당신의 이름을 언급한다 했네. 당신처럼 착하고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주인이 있으니, 하인들로서는 당연히 당신을 좋아하겠지.”“이곳에 있는 3년 동안, 난 한 번도 오씨 아주머니와 임씨 아저씨를 하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어. 우리 셋이 이 별장에 그렇게 오래 같이 살면서 진작 한가족이 되었거든.”소희가 주스 한 잔을 들고 바로 바닥에 앉아서는 주위의 익숙한 경치를 둘러보았다.그 순간, 소희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러다 한참 후, 소희가 다시 임구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당신이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청원에서 살았던 그 3년동안 난 종래로 당신을 원망한적이 없었어. 심지어 이 청원을 지어준 당신에게 고맙기도 했거든.”‘청원이 바로 내가 어려서부터 동경했던 성이었으니까.’소희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을 읽어낸 임구택은 소희의 옆에 앉아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 3년
소희는 손을 데이비드의 머리에 얹었다.그리고 소희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데이비드는 얌전히 땅에 엎드려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이에 설희가 질투났는지 땅에 엎드린 채로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는 소희의 손바닥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그러자 옆에 있던 데이비드가 머리로 설희를 밀어냈고, 설희는 바로 발을 들어 데이비드의 머리에 짓눌렀다. 그렇게 두 마리의 개는 다시 한데 뒤엉켜 잔디밭에서 굴러다녔다.임구택이 소희를 꼭 껴안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소희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어때, 당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지? 난 데이비드보다는 덜 무서워, 그러니까 천천히 나를 받아주는 데에 노력해 봐,”임구택의 칠흑 같은 눈빛은 소희를 집어삼키려는 블랙홀 마냥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그는 손으로 부드럽게 소희의 얼굴을 한번 어루만지고는 고개를 숙여 소희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보배야.”너무 오랜만에 불러보는 호칭.심지어 임구택은 소희가 이 호칭을 거부할까 봐 평소에 함부로 부르지도 않았다.그리고 소희가 거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임구택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소희에게 키스를 했다.산속의 바람이 너무 상쾌하여 소희의 마음을 기분 좋게 어루만졌는지 소희는 의외로 임구택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아 임구택의 키스에 반응을 해주었다.그렇게 임구택의 키스는 점점 뜨거워졌고, 칠흑 같은 두 눈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을 담고 소희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한참 후, 임구택이 동작을 멈추고 소희에게 물었다.“당신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거 맞지?”임구택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는 바람에 아직 뜨거운 키스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소희는 초롱초롱해진 두 눈으로 멍하니 임구택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러는 소희의 모습에 마음이 간질간질해난 임구택은 소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소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 키스했다.비록 두 사람이 갑작스레 찾아온 거라지만 점심은 여전히 엄청 푸짐했다. 심지어 임씨 아저씨는 특별히 산 아래 디저
오씨 아주머니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소희에게 저녁에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다.이에 소희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저녁은 됐습니다, 저희 곧 돌아가야 되거든요.”“내일 아침 일찍 여기서 떠나도 시간에 맞춰 유민에게 수업을 해줄 수 있어.”임구택도 소희에게 남기를 권했지만 소희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지금 돌아가자.”임구택은 소희와 함께 청원에 남고 싶었지만 강요하지 않고 소희의 뜻에 따랐다.오씨 아주머니는 소희가 가겠다는 말에 바로 직접 만든 디저트를 전부 종이봉투에 포장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작은 사모님, 이 디저트들은 길에서 드세요.”“고마워요.”오씨 아주머니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드러내며 임구택을 향해 말했다.“도련님, 시간이 되면 자주 작은 사모님을 데리고 돌아오세요. 다음에는 미리 전화하시고요, 제가 좀 더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게.”“그럴 게요.”임구택이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소희 손에 들린 디저트 봉투를 받아 들고 소희와 함께 청원을 떠났다.그렇게 차가 청원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와중에 소희는 사이드 미러를 통해 오씨 아주머니와 임씨 아저씨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별장 문 앞에 서서 그들이 떠나가는 차를 쳐다보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그러다 차가 산에서 내려온 후, 임구택이 고개를 돌려 소희를 향해 물었다.“저녁에 뭘 먹고 싶어?”“당신 안 바빠?”저녁 시원한 산바람을 쐬고 있던 소희가 웃으며 대답했다.“아까 통화하는 걸 들으니까 술자리가 있는 것 같던데, 가서 일 봐. 난 집으로 돌아가 요요랑 이 디저트들을 먹을 거야.”“당신을 위해서라면 난 모든 술자리를 취소할 수 있어.”“아니야, 나도 오늘 일찍 돌아가 쉬고 싶어. 완성해야 할 디자인 원고도 두 장이나 남았고.”“알았어.”없는 시간을 짜내서라도 소희와 붙어있고 싶은 임구택이었지만 결국 소희에게 강요하지도 못하고 그녀의 뜻에 따랐다.운해 거리에서 경원주택단지로 돌아가는 길은 그런대로 순조로워서 한 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소희가 차에서
그렇게 한참 소희를 품에 안고 나서 심명이 한숨을 내쉬었다.“이제야 진정되네.”소희가 손을 뻗어 심명을 밀었다.“언제 돌아왔어? 왜 전화는 안 하고?”“방금 돌아온 지 한 시간도 안 돼. 너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전화 안 한 거고.”심명이 여전히 요염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소희의 턱을 잡았다.“어디 보자, 살이 빠졌나.”“안 빠졌어.”소희가 자신의 턱을 잡고 있는 심명의 손을 밀어버리고는 눈썹을 찌푸린 채 말했다.“그렇게 건들건들한 태도로 말하지 마.”“어떻게 금방 돌아온 사람한테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어? 내가 외국에서 잘 지냈는지는 묻지도 않고. 난 너와 이현의 일을 알게 된 후 바로 비행기를 타고 서둘러 돌아왔단 말이야.”심명이 불만이 많은 사람 마냥 콧방귀를 한번 뀌고는 투정을 부렸고, 그 모습에 소희가 덤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다 지나갔어.”“그래? 난 어제야 국내 뉴스를 접하게 되어서 몰랐네. 그래서 이현이라는 여인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데?”묻고 있는 심명의 얼굴은 얼음장 마냥 차가웠다.“몰라, 요즘 이현에 대한 소식이 없어.”“이현이 널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는데, 임구택이 설마 그냥 그렇게 그 여인을 살려뒀어?”“아니, 이현이 나보다 더 비참해.”소희가 덤덤하게 대답하면서 디저트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려 심명을 향해 말했다.“일은 이미 지나갔으니 너 절대 소란을 피우지 마.”“걱정마, 아무것도 안 해. 내가 왜 임구택을 대신해 난장판을 치워야 하는데?”심명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정말 임구택에 관한 일이라면 전혀 끼어들고 싶어하지 않는 표정이었다.그러고는 소희를 따라 식탁 쪽으로 다가가서는 소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어서 옷 갈아입어, 우리 나가서 밥 먹자.”“안 가, 너도 오랫동안 청아를 보지 못했잖아. 그냥 아래층으로 내려가 청아랑 같이 밥 먹자.”“싫어, 나 너랑 같이 먹을 거란 말이야. 나 내일 아침이면 또 일찍 오주로 돌아가야 해. 네
“장시원은 요요가 그의 아이라는 걸 아직 몰라.”“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알게 되면 일은 더 귀찮아질 뿐이야.”“남 걱정은 그만하고, 네 일이나 신경 써.”눈썹을 찌푸린 채 청아와 요요를 걱정하고 있는 소희의 모습에 심명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에 소희가 순간 뜨끔해져서는 물었다.“내가 무슨 신경 쓸 일이 있다고 그래?”하지만 심명은 고개를 돌려 소희를 한번 쳐다보고는 소리 없이 웃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렇게 파티 현장에 도착한 후, 심명은 어디서 청첩장을 구해왔는지 직원에게 건네주고는 소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파티 주체인이 심명을 알고 있었는지 바로 다가와서는 열정적으로 심명과 인사를 나누었다.그러다 이야기를 다 나눈 후 심명은 소희의 손을 잡고 사방을 돌아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심명이 또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물론 그가 사귀었던 여자 친구 중에 예쁘지 않았던 여인은 없었다.한참 후, 소희가 창문틀에 기대어 눈썹을 올린 채 심명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바로 네 목적이었어?”심명이 소희에게 술 한 잔을 건네주며 의아해서 되물었다.“무슨 목적?”“시치미 떼지 마.”방금 심명을 따라다니며 이미 적지 않은 술을 마셨지만, 소희는 여전히 심명이 건네준 칵테일을 받아 한입에 원샷했다. 그러고는 의외로 통쾌하게 심명을 향해 말했다.“괜찮아, 오늘은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해, 내가 허락해줄 게.”술이 들어간 후의 소희는 더 이상 평소처럼 무뚝뚝하지 않았다. 오히려 술 기운이 살짝 올라 초롱초롱해진 두 눈은 왠지 모르게 깜찍한 게 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했다.그리고 그러는 소희의 모습에 심명이 앞으로 다가가서는 고개를 숙여 소희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갑자기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건데?”심명의 물음에 순간 눈동자에 난해한 빛이 스쳐 지난 소희는 결국 심명의 시선을 피해 두 눈을 아래로 드리웠다.그리고 이때, 연회장 안의 불빛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은은한
등불은 사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고, 연회장 중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오가고 있었지만 임구택은 여전히 단번에 인파 속에서 소희를 알아보았다.그리고 화려한 옷차림을 한 소희가 눈동자에 웃음을 머금고 심명의 품에 기대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에 임구택의 눈빛은 순간 얼음장 마냥 차가워졌다.그녀를 위해 뜨겁게 뛰고 있던 심장도 점점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돌아가 디자인 원고를 마저 그려야 한다던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모습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춤을 추고 있었으니.‘나와 함께 있을 땐 종래로 저렇게 꾸민 적이 없었으면서, 심명과 파티에 참가한다고 정성껏 치장하고 심지어 화장까지 한 거야? 그래서 심명이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가?’‘아직 마음 속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서 계속 나를 받아주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원인이 있었네. 역시 내가 너무 순진했어.’마음 속의 화가 먼저인지 아픔이 먼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임구택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을 멈춘 채 얼음장 마냥 차가워진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심명과 웃으며 춤을 추고 있는 소희는 눈썹마저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임구택은 차가운 심연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한 곡이 끝나고 심명은 소희를 데리고 물러났다.“배고프지? 뭐 좀 먹으러 가자.”술을 많이 마신 데다 춤까지 추었더니 어느새 술기운이 솟구쳐올라와 소희는 위가 쓰리기 시작했다.“가자.”소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심명이 소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연회장에서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시고 나니 소희는 순간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웃으며 심명을 향해 말했다.“우리 여기에 좀 앉아있자.”“어디 불편해?”“아니, 그냥 좀 앉아있고 싶어서.”“그래.”심명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소희와 함께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맞은편에는 분수가 물을 뿜고 있었고, 밤바람이 분수의 수증기를 감싸고 소희의 얼굴을 기분 좋게 쓰다듬었다.“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