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고 소희는 출근하는 길에 청아를 먼저 장씨 그룹으로 데려다 주었다.가는 길에 청아가 소희를 한번 쳐다보고는 조용히 입을 열어 물었다.“어젯밤에 언제 돌아왔어?”“11시 다 되어서.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좀 늦게 끝났거든.”어제 저녁 그 모습으로 청아 앞에 나타났다간 청아가 걱정할 게 분명했기에, 소희는 청아 집으로 들르지 않고 바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었다.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왔는데 밥도 못 먹고 잠들었을 소희가 마음에 걸렸는지 청아는 자책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나 어제 분명 야식까지 만들어 놨는데, 너무 졸려서 먼저 잠들어 버렸어.”“앞으로 내가 늦게 돌아오게 되면 날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응, 알았어.”소희의 당부에 청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폰의 뉴스를 뒤져보기 시작했다.오늘의 실검 뉴스는 ‘케이슬 흉기 난동 사건’으로 어제 밤 케이슬 대문 앞에서 마음씨 착한 한 여인이 여러 명에게 납치당한 무고한 사람을 구했다는 내용이 게재되어 있었고, 그 밑에는 사진도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은 길가던 모 행인이 급히 휴대폰으로 찍은 것인지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았고, 또 일이 터진 게 마침 어두워진 후의 저녁때라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태도는 여느 때보다 더 들끓어 있었다. 그리고 어제 그 현장에 있었다는 한 네티즌의 진술에 의하면 착한 여 시민은 싸움 실력은 한발로 사람을 걷어차 날려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심지어 7~8명에 달하는 강도들이 분명 다 손에 칼을 들고 있었지만 결국 착한 여 시민한테 죽도록 얻어맞아 콧물을 질질 짜며 도망쳤다고.그래서 지금 댓글은 전부 사진 속 착한 여 시민에 대한 칭찬으로 자자했고, 착한 여 시민의 사진을 찾는 네티즌들도 엄청 많았다.뉴스 속 사진을 한창 들여다보던 청아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소희에게 물었다.“너 어제 어디에 있었어?”“케이슬.”“그럼 이거 봤어?”청아가 뉴스
청아는 침을 한번 삼키고 고개를 숙여 장시원이 풍기고 있는 압박감을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들었어요. 저 오늘 저녁에 일이 있어 안 될 것 같아요. 미안해요.”[그럼 내일은요? 내일은 쉬는 날이죠?]“내일에도 일이 있어요.”청아가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하온은 멋쩍게 한번 웃고는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그럼 청아 씨 이제 시간이 될 때 만나요.]“하 선생님, 저 하 선생님에게 적합한 짝이 아니에요, 연애할 생각도 없고요. 그러니까 더 이상 저한테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하온의 포기할 줄 모르는 태도에 청아가 눈썹을 한번 찌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했다.이에 하온이 잠시 멍해져 있다가 한참 후에야 다시 웃으며 말했다.[너무 일찍 그렇게 단정 짓지 마요. 만약 어느 날 청아 씨가 갑자기 연애하고 싶어지고, 마침 내가 또 청아 씨를 쫓고 있으면, 그건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가요?]정수리를 찌르고 있는 장시원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청아는 난감한 표정을 드러내며 다시 하온을 거절하려는데 휴대폰 맞은편의 하온이 청아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어서 출근해요, 다른 건 이제 만나서 다시 얘기하고. 끊을 게요.]그렇게 청아가 거절하기도 전에 하온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고, 꺼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청아는 순간 마음속이 착잡해졌다.그런데 이때, 장시원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청아의 턱을 잡았다.조금전까지만 해도 농락의 뜻이 섞여 있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얼음판 마냥 차가워져 있었다.“전에 그렇게 그 사람이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맹세하더니, 지금 뭐하는 거지?”허홍연이 퇴원하던 날 장시원은 이미 둘 사이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눈치챘었다.‘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그쪽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상관이 없다?”청아의 고집스러운 눈빛에 장시원은 갑자기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은 사람 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차갑게 청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내가 여
이 감독의 표정에 소희는 죄책감이 들어 바삐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감독님. 이현 씨의 일도 그렇고, 마민영 씨의 일도 그렇고, 전부 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아니야, 소희 씨. 그런 말 하지 마. 나 오히려 소희 씨한테 감사해야 해.”소희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던 이 감독은 오히려 웃으며 소희를 위로했다.“소희 씨 어제 제때에 나타나 민영 씨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민영 씨는 정말 큰일이 났을 거야. 그런 상황에서 운이 좋으면 그동안 우리의 노력은 헛수고로 되고, 나는 다시 여주인공을 뽑아야 할 거고, 재수 없으면 이번 작품 그대로 중단해야 했을 거야.”“마민영 씨 아무 일도 없어요, 요 이틀 사이에 다시 돌아와 촬영을 계속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감독님께서는 될수록 일이 더 커지지 않게 바깥의 기자들과 잘 말해서 돌려보내세요.”“그래, 더 이상 말썽을 일으켜서는 안 돼.”젊은 나이에 맞지 않게 남들이 쉽게 생각지 못하는 점들까지 단번에 콕 집어 내는 소희의 능력에 이 감독이 탄복하는 눈빛을 드러내며 말했다.“마민영 씨가 성질도 더럽고 눈에 뵈는 것도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 소희 씨 그동안 많이 수고했어.”“아닙니다. 소동 씨가 온 후로 저 마민영 씨랑 별로 만나지도 못했는 걸요.”“소동 씨는…….”소동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 감독이 갑자기 착잡한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업무에 대해 소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소희를 돌려보냈다.그렇게 이 감독의 사무실에서 나와 소희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는데 조수 미나가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와서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소희 씨! 마, 마민영이 왔어요!”“마민영 씨가 왔다고?”소희가 듣더니 살짝 놀라서 물었다.매일 밥 먹듯이 지각하던 마민영이 그렇게 큰 일을 겪은 후 오히려 아침 일찍 출근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하지만 소희는 바로 또 놀란 표정을 거두고 담담하게 물었다.“마민영 씨가 출근한 게 뭐가 대단한 일이라
솔직히 소희는 이렇게 갑자기 돌변하여 애교까지 부리는 마민영보다는 예전의 그 가탈스럽고 성질이 더러운 마민영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섬뜩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으니까.‘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여인이야.’“소희야, 내가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할까?”마민영은 전혀 소희를 놓아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애교를 부리며 물었다.이에 소희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기, 마민영 씨, 이 손부터 먼저 놔줄래요?"마민영은 그제야 쑥스럽게 웃으며 소희를 놔주었다. 그러고는 진심이 담긴 두 눈으로 초롱초롱하게 소희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말해봐, 소희야. 돈? 아니면 집? 네가 말하기만 하면 내가 다 들어줄게.”“아니요,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어제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어도 난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구했을 거니까 이러지 않아도 돼요.”소희의 덤덤한 대답에는 사양의 뜻이 묻어 있었지만 마민영의 눈빛이 거절당한 사람 치고는 엄청 밝았다.“너에게 있어서는 다 똑같겠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나를 구한 사람이 바로 너야. 네가 아니었다면 난 정말 큰일이 났을 거야.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던 스태프들은 마민영과 소희의 대화에 낮은 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논 소리를 들은 소희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마민영을 향해 말했다.“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요.”“그래!”마민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소희만 보면 물고 늘어지려 했던 그녀의 눈에는 지금 온통 소희뿐이었다. 심지어 소희의 한마디에 바로 고분고분 뒤를 따라 소희의 사무실로 들어가기까지 하고.그렇게 두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간 후,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스태프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쳐다보았다.마민영이 또 소희를 괴롭히려고 아침 일찍 달려와 이정남과 싸운 줄 알았는데, 소희가 오자마자 소희를 껴안고 감사의 인사를 표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히 소동도 포함되어
소희가 갑자기 농담이 섞인 말투로 덤덤하게 웃으며 물었다.“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사람 찾아 날 혼낼 거예요?”소희의 실력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을 보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으니 마민영은 당연히 그렇게 할 리가 없었다.그래서 고개를 한번 젓고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찾은 사람들은 너와 비하면 잽도 안 돼.”그렇게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민영의 조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민영 씨, 이 감독님께서 민영 씨가 출근한 걸 알고 오늘부터 촬영 시작할 수 있는지 묻는데요?”“내가 지금 소희와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거 안 보여? 가서 이 감독한테 말해, 내가 지금 몸에 상처가 다 낫지 않았으니까 이틀 동안은 푹 쉬어야 한다고.”마민영의 화가 잔뜩 묻은 어투에 겁을 먹은 조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때 소희가 덤덤하게 마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많이 불편한 거 아니시면 이 감독님의 요구에 협조해 줘요, 그래야만 우리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거든요.”“그래, 네 말 대로 할 게!”방금 전까지만 해도 언짢아하고 있던 마민영이 소희의 말에 바로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그러는 마민영의 모습을 처음 보는 조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제자리에 서서 두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이에 마민영이 또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조수를 무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소희가 한 말 못 들었어? 이 감독에게 어서 알리러 가지 않고 거기에 서서 뭐하는 거야?”“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조수가 놀라 바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그러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뒤에 있던 마민영이 다시 조수를 불렀다.“잠깐! 나 할 말이 있으니까 가서 다른 조수들을 전부 불러와.”“네!”조수가 바삐 밖으로 나가 마민영의 기타 조수와 소동을 전부 방으로 불러들였다.그리고 마민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다
“무슨 요구? 얼마든지 말해!”“이번 작품의 진도가 이미 충분히 지체되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이 감독님과 다른 스태프들이 매일 하염없이 민영 씨만 기다리게 하지 말고 앞으로 조금만 더 일찍 출근해주시면 안 될까요?”그녀 자신만을 위한 요구가 아니라 전체 제작진을 위한 요구이다.그리고 분명 매일 출근하는 걸 제일 거부했던 마민영이었는데, 소희의 말에 의외로 통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것도 요구라고 제기한 거야? 그래, 내일부터는 매일 일찍 올게.”그러면서 마민영이 또 고개를 돌려 조수에게 분부했다.“내일부터 아침 6시로 알람을 맞춰 둬, 7시에 바로 촬영장에 도착할 수 있게.”“그렇게 일찍 도착할 필요는 없고요, 8시에 도착해도 충분해요.”“그래! 네 말대로 할 게!”소희가 뭘 말하든 마민영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이상하게 돌변한 마민영을 감당할 수가 없는 소희는 바로 손을 흔들었다.“어서 가봐요, 이 감독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오키!”여전히 고분고분한 태도.마민영은 바로 조수들을 데리고 소희의 사무실을 떠났다.하지만 맨 뒤에 있던 소동은 일부러 마민영이 멀리 가기를 기다렸다가 고개를 돌려 소희를 아래위로 훑으며 냉소했다.“언니는 참 재주도 좋아.”“더 이상 날 언니라고 부르지 마, 우리 사이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걸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잖아. 어서 일하러나 가봐, 또 마민영 씨한테 욕 먹지 말고,”“너!”소희의 차갑고 인정사정없는 대답에 소동의 얼굴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소동은 바로 또 웃음을 드러냈다.“비웃고 싶으면 실컷 비웃어 봐. 어차피 난 이 직무를 잃고 작업실의 문을 닫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돌아가 아빠와 엄마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엄마가 지금 너를 엄청 증오하고 있어 한 푼도 너에게 남겨주지 않을 거야.”먹은 나이에 맞지 않게 철이 들기는커녕 여전히 유치하기만 한 소동에 대해 소희는 더 이상 줄 인내심도 없었다.그래서 한숨을 깊게
점심 시간이 되어 마민영의 조수가 점심을 주문하려고 앱을 뒤지는데 마민영이 갑자기 조수를 향해 말했다.“소희에게도 연락해 물어봐, 점심 먹을 건지.”그러다 곧 또 무엇이 생각났는지 마민영이 바로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아니다. 내가 물어볼게.”그리고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마민영이 애교를 부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소희.”휴대폰 맞은편의 소희는 순간 소름이 돋아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러지 마세요, 마민영 씨.]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또 심한 말을 할 수가 없어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차갑게 경고하고 있는 소희의 표정이 상상되었는지 마민영은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야 다정하게 물었다.“소희야, 나 지금 라이트 푸드 주문할 건데, 너도 먹을래?”[라이트 푸드가 뭐죠?]“그냥 뭐 과일이나 채소 샐러드, 통밀, 그리고 고기 같은 것들을 조합하여 파는 도시락인데 기름과 소금이 거의 안 되어 있어. 맛은 별로 없지만 다이어트도 되고 건강에도 좋아!”자신이 매일 먹고 있는 음식들을 소희에게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민영은 흥분에 겨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하지만 마민영의 그런 마음을 알 리가 없었던 소희는 바로 눈썹을 찌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그거, 정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 맞아요?]“…….”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라이트 푸드만 견지해왔던 마민영은 순간 삶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전 그런 걸 안 먹습니다.]정말 그런 음식이 싫었는지 소희는 마민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바로 한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마민영도 순간 울컥하여 조수를 향해 말했다.“나도 안 먹어!”같은 시각, 소희는 이정남과 함께 도시락 받으러 갔고, 도시락을 나눠주는 직원이 여전히 소희에게 따로 준비한 도시락을 건네주었다.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희는 바로 도시락 뚜겅을 열었고, 기대찬 눈빛으로 입맛을 미리 다시고 있던 이정남이 오늘의 반찬을 본 순간 경악한 표정
소동은 순간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고는 무엇이 그렇게 달갑지 않은지 다시 마민영을 향해 물었다.“민영 씨, 민영 씨와 소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네가 알 바가 아니잖아. 아무튼 기억해 둬, 앞으로 네가 또 소희를 괴롭혔다간, 그건 나를 괴롭히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마민영의 경고를 소동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엄청 힘들게 찾은 아군이었으니. 그래서 소동이 또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여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소동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들어와!”마민영의 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온 소희는 매서운 눈빛으로 소동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내가 한 말은 전혀 믿지 않은 것 같네?”소동은 순간 아침에 소희가 했던 말들이 생각나 동공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눈빛에 섞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소동은 바로 시선을 아래로 드리운 채 마민영을 향해 말했다.“그럼 저 먼저 일하러 가볼게요. 일이 있으면 저를 호출하세요.”하지만 마민영은 소동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소희를 향해 웃음을 드러내며 물었다."소희야, 날 찾았어?”이에 소동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몸을 돌려 휴게실을 나갔고, 소희는 그제야 손에 든 메이크업 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이거 돌려주려고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저 진짜 이런 거 필요 없어요.”상 위에 놓인 메이크업 함을 보며 마민영이 눈알을 한번 굴렸다. 그러고는 떠보듯이 조심스레 소희를 향해 물었다.“아까 나와 소동이 한 말들, 다 들었어? 예전에는 소동이 계속 옆에서 나를 부추겨서, 그래서 너를 그렇게 괴롭혔던 거야.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야. 그러니 이 립스틱들은 그냥 받아줘. 이 몇 개의 립스틱으로 네 은혜에 보답하려는 거 아니야, 단지 너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은 거니까.”“민영 씨가 정말로 나랑 친구하고 싶은 거라면 앞으로의 시간이 더 긴데, 지금 이렇게 급하게 선물을 줄 필요가 없잖아요.”마민영의 진심을 모를
조하루가 즉시 과일 주스를 시언에게 내밀며 말했다.“삼촌, 이거 드세요. 저를 그렇게 오랫동안 업어 주셨잖아요. 고마워요!”시언은 얇게 입가를 올리며 주스를 다시 돌려주었다.“난 누나와 장난친 거야.”“아...”시언은 최대한 표정을 부드럽게 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효과는 없었다. 조하루는 멍하게 대답하며 다시는 시언을 쳐다보지 못했다.아심은 입술을 꽉 다물며 웃음을 참았고, 차마 대놓고 웃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빵을 베어 물었다.숲속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창가에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쭈쭈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직 인간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없는 새는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아심은 빵 부스러기를 조금 떼어 창가에 놓았다. 새는 신나게 부리로 쪼아먹었지만 다 먹기도 전에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시언은 창 아래에 서 있는 아심을 보며 반쪽 남은 빵을 들어 올렸다.“천천히 먹어, 난 밖에 좀 보고 올게.”아심은 시언이 문을 나가는 걸 보고 하루에게 속삭였다.“볼일 보러 가야 해? 삼촌이랑 같이 가면 돼!”하루는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갔다. 아심은 천천히 빵을 다 먹고 물병을 집어 들고 막 마시려던 순간, 밖에서 탕! 하고 커다란 총성이 들려왔다.아심의 얼굴이 굳어졌고,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시언이 떨고 있는 하루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는, 곧바로 따라오던 한 남자를 발로 차서 밖으로 날려 보냈다.그는 고개를 돌려 매우 빠르게 말했다.“지켜, 절대 나오지 마. 창문도 다 잠가!”문이 열리는 그 순간, 아심은 이미 상황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미 포위당한 상태였다. 나무집 주위는 전부 위장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용병들로 가득했고, 적어도 스무 명이 넘었다.문이 닫히고 난 뒤, 바깥에서는 치열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아심은 조하루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두 개의 창문을 빠르게 닫은 뒤, 창을 야생 동물로부터
강시언이 앞서 걸었고, 중간에는 조하루, 뒤에는 강아심이 따라갔다.비에 젖어 미끄러운 산길을 걸으며, 아심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조하루에게 지팡이 삼아 주었다. 세 사람은 고요하고 습한 산림 속을 조용히 지나갔다.겨우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뿐인데, 하루는 이미 지쳐 헉헉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아이라 무리가 있는 듯했다.아심은 걸음을 멈추고 하루의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자, 내가 업어줄게!”시언이 돌아서더니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을 아심에게 넘기며 말했다.“내가 업을게!”하루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겁먹은 듯 시언을 올려다보았다.“저, 저 아직 괜찮아요.”“아직 한참 남았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어? 올라와!” 이번에는 시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냉정하고 단호해서 거부할 수 없었다.하루는 아심을 바라보았다. 아심의 격려하는 눈빛을 본 후에야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며시 시언의 등에 올라탔다.시언이 일어서자 조하루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시언의 넓고 든든한 등에 안겨, 하루는 안전감을 느꼈다. 시언은 고개를 돌려 아심에게 환히 웃어 보였다.아심도 미소를 지으며 뒤따랐다. 열몇 개의 계단을 더 오르던 중, 하루는 손에 쥐고 있던 비타민 젤리를 시언의 입가에 내밀었다.“아저씨, 이거 드세요!”시언은 원래 거절하려 했으나, 아심이 늘 이 아이들이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한 손을 뻗어 젤리를 받아 입에 넣었다.하루의 검게 빛나는 눈이 환하게 반짝였고, 시언이 자기가 준 젤리를 먹자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시언이 젤리를 씹으며 물었다.“더 있어?”하루는 허둥지둥 젤리 통을 꺼내 다시 시언에게 주려 했지만, 그가 말했다.“뒤에 있는 누나한테 두 알 줘.”하루는 그제야 깨닫고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에 다섯 여섯 개의 젤리를 쥐고 아심에게 내밀었다.“누나!”아심이 두 걸음 앞으로 다가와 하나를 집었다.“고마워!”하루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지만, 아
“네!” 하루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눈빛을 보였다. “정말 맛있어요, 우리 다들 엄청나게 좋아해요.”“하루에 두 알만 먹어야 해,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아심은 자연스럽게 하루와 대화를 이어갔다.“알아요, 선생님이 우리한테 말씀해 주셨어요.” 하루의 미소는 순수하고 귀여웠다.시언은 그들이 뒤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룸미러로 아심을 흘깃 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번졌다.아심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 아니었으면 이 작은 아이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어둡고 흐린 날씨에,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차창이 물안개로 덮여 바깥 풍경이 희미하게 변해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지만, 아심과 하루의 대화와 빗소리, 그리고 쉼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차가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시언은 뒷좌석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심은 이마를 차창에 대고 잠이 들어 있었다.하루는 창문에 성에 낀 자국을 손가락으로 그리다가, 시언이 뒤를 돌아보는 것을 보자 얼른 손을 내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똑바로 세웠다. 시언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자기 외투를 벗어 소년에게 건넸다.“이거 좀 도와줘. 누나에게 덮어줘.”아심은 얇은 회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가 운성에 왔을 때 날씨가 더워서 두꺼운 옷은 가져오지 않았다. 하루는 외투를 받아 조심스럽게 아심의 몸에 덮어주었다.시언은 아심을 한 번 더 보자,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에 시언은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돌렸다.차는 산길을 따라 다시 30분가량을 달렸고, 드디어 앞쪽에 무너진 도로가 보였다. 더는 차로 갈 수 없었다.“네 물건 잘 챙기고, 여기서 내려야 해.” 시언이 하루에게 말했다. “산을 돌아서 넘어가야 하거든.”“네!” 하루는 대답하며 자신의 가방을 메고, 안에 들어 있는 옷과 책을 잘 챙겼다.“삼촌, 누나를 깨울까요?” 하루가 묻자, 시언은 표정을 굳히며 뒤돌아보았다.“
이 시간에 시언은 이미 아침을 먹었을 거라 생각한 아심은 따로 묻지 않고 혼자 아침을 먹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아심은 평소처럼 전화를 걸어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오늘은 아이들이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라 아심은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가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러 갔다.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 그녀는 도도희와 시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은 무언가 심각하게 상의하고 있었고, 그 대화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산길이 비에 무너져서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어. 차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산길을 올라가야 해서 너무 위험해.”도도희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시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비가 많이 오진 않으니까 시도해 볼 만해요.” 이때, 아심은 다가가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생겼나요?”시언은 아심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분명히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한 것 같은데.”오늘 아심은 얇은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시언의 지적에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도도희 앞이라 반박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곧 가서 갈아입을게요.”도도희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아심에게 설명했다.“한 학생의 할아버지가 병이 너무 위중해서 의식이 흐려졌대.”“그런데 할아버지가 계속 손자를 찾고 계셔서 가족들이 전화로 아이를 데려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도도희는 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시언은 아이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산길이 위험할까 봐 걱정돼.”“위험할 게 뭐 있어요?” 시언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그렇게 해요. 아이한테 준비하라고 전해주고, 곧 출발할게요.”시언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갔고, 아심도 뒤따라가며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요.”시언은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안 돼.”“왜 안 돼요?” 아심은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시언을 따라붙었다.“그 애들이 얼마나 당신을 무서워하는지 모르죠? 혼자 데려가
차에 올라탄 지아윤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큰어머니, 이제야 제가 한 말 믿으시겠죠?”권수영은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눈빛이 반짝였다.“저 아가씨, 혹시 남자친구 없나?”“물론 없죠!”“그럼 기다릴 필요 없겠네. 빨리 승현이와 만나게 해야겠어.” 권수영은 이미 마음이 급해져 있었다.“제가 재아에게 말만 하면 분명히 승낙할 거예요.” 아윤은 눈을 굴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할머니의 혼수품도 되찾고, 오빠에게 좋은 여자친구까지 소개해 드렸으니, 큰어머니께서 저를 어떻게 보상해 주실 건가요?”권수영은 속으로 이익을 따져 보며 생각했다. 만약 도씨 집안과 결혼까지 성사된다면, 그야말로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이득이었다.“네가 승현이와 저 아가씨를 이어준다면, 내가 할머니의 혼수품을 되찾아도 그중 절반은 네 몫으로 줄게.”“정말 약속하신 거죠?” 아윤의 눈이 반짝였다.“그럼, 내가 직접 약속했는데 속이겠니?”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반드시 최선을 다할게요!”...집에 돌아온 아윤은 바로 재아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권수영과의 만남 이유를 은근히 흘리며 설명했다. 그리고는 지승현을 칭찬하며 그와 한번 만나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재아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속으로 기분이 상했다. 첫째는 자신이 누군가의 결혼 상대자로 몰래 계획된 것 같아서였고, 둘째는 현재 중간급인 지씨 집안과 연결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재아는 시큰둥한 태도로 말했다.“야, 그런 얘기를 진작해주지 그랬어? 미안하지만 난 지금 연애할 생각 없어. 아마 큰어머니께서 실망하실 거야.”아윤은 재아의 기분이 상한 것을 눈치채고 급히 사과했다.[미안해, 재아야. 정말로 큰어머니께서 그냥 너를 보고 싶어 하셔서 그런 거야. 괜한 부담은 갖지 마.]아윤이 이렇게 간곡히 사과하자, 재아는 약간 기분이 풀리며 말했다.“괜찮아. 나 화난 건 아니야. 그냥 난 당분간 일에 집중하고 싶어. 외할아버지도 내가 빨리 결혼하길 원치 않으셔.”아윤은 다시
“몇 년 전에 강성에 왔어요. 오자마자 회사를 차렸죠. 꽤 돈이 많아 보이긴 했지만, 특별한 가정 배경은 없어 보였어요.” 지아윤은 권수영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예쁘장한 여자아이인데, 가정 배경도 없이 돈이 많고, 다른 지역으로 와서 그런 일을 하는 회사를 차렸다라.”“대체 전에 무슨 일을 했을까요? 큰어머니처럼 세상을 많이 살아본 분이야 더 잘 아시겠죠.”권수영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말이니?]“보세요. 얼마되지도 않아 오빠를 완전히 홀렸잖아요. 그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죠. 저는 돈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돼요.” 아윤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고, 권수영은 심각하게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네 할머니가 유언장을 다 작성해 놓았잖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니?]“오빠가 강아심과 빨리 헤어지게 하면 돼요. 그들이 헤어지면 강아심은 더 이상 형님의 여자친구도, 우리 집안 사람도 아니에요.”“할머니의 혼수품을 왜 남이 가져가야 하죠?” 아윤이 단호히 말하자 권수영도 망설였다.[네가 너무 심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니? 난 네 할머니의 혼수품을 바라진 않아. 하지만 우리 집안의 재산이 외부로 나가는 건 나도 막고 싶어.][그런데 네 말이 사실이라도, 아심이 오빠랑 결혼하면 괜찮지 않을까?]“그 여자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는 게 영광이겠죠. 그런데 만약 도망치기라도 하면요?” 아윤이 비웃자, 권수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내가 뭘 어떻게 하란 말이니?]“큰어머니!” 아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새 여자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새 여자친구?]“제 절친이에요. 누군지 맞춰보세요.” 아윤은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다.“대화가 도경수 어르신의 손녀, 도재아요. 정말 명문가의 아가씨고, 아주 예뻐요.”권수영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진짜 도경수 어르신의 손녀라고? 네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알아?]“진짜예요! 제가 도씨 저택에도 자주 갔어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아윤은 자신만
“할머니!” 지아윤은 할머니를 한 번 부르더니 아무 반응이 없자, 노인을 옆으로 살짝 밀고 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갈색 종이봉투가 드러났다. 이에 아윤의 눈이 반짝이며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종이봉투를 꺼내 안의 서류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대충 훑어보는 사이,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침대에 누운 할머니를 노려보았다.양세민이 들어올까 봐, 아윤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서류를 사진으로 찍었다. 찍고 나서 봉투를 원래대로 넣고 방을 빠져나왔다.차로 돌아가면서 아윤은 점점 화가 치밀었다. 원래는 부모님께 전화하려다 생각을 바꿔 큰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권수영은 마침 카드놀이를 하던 중이라, 아윤의 다급한 전화에 나와서 조금 짜증이 났다.[무슨 일이야, 그렇게 급하게?]아윤은 찍어둔 사진을 권수영에게 보여주며 물었다.“큰어머니, 혹시 강아심이라는 사람 아세요?”권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사진을 확대해 보다가,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강아심이 누구야?]아윤이 찍은 사진은 할머니의 유언장이었다. 유언장에는 할머니가 자신의 혼수품 대부분을 아심에게 남긴다고 적혀 있었다.아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할머니 친정은 예전부터 배를 만드는 집안이었고, 부유한 가문이었잖아요.”“혼수품은 모두 고가의 골동품, 금은보화들인데, 그 가치는 큰어머니가 더 잘 아시겠죠!”“할머니가 그때 집을 나가시면서 혼수품을 다 가져가셨잖아요.”“큰 트럭으로 한 차나 실어 나르셨다던데, 이 집에서 몇 년을 혼자 사시면서 큰돈을 쓸 일이 없었으니 그 혼수품들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예요.”“그런데 이제 돌아가실 날이 가까워졌는데, 그 재산을 아들, 손자, 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어떤 낯선 사람에게 준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권수영도 짜증이 나서 말했다.[네가 나한테 그런 얘기해 봤자야.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나도 강아심이 누군지 몰라!]“큰어머니가 모르셔도 저는 알아요.” 아윤은 휴대폰을 뒤적이며 몇 장의 사진을 더 보여주었다.권
아심은 별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창문 밖을 보며 시언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별장 안으로 들어가 거실을 지나며 외투를 벗어 소파에 걸어두고, 약 상자를 들고 시언의 방으로 갔다.“들어와.” 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심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시언이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아심은 외투를 소파 등받이에 놓으며 말했다.“외투 여기 두었어요.”“응.” 시언은 고개도 들지 않고 의자에 등을 기댔고, 아심은 약 상자를 들고 다가가며 준비를 시작했다.“옷 벗어요. 약 다시 바를게요.”그제야 시언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아심은 시선을 피한 채, 소매를 걷어내자 시언의 상처에 감아둔 붕대를 풀었다. 겉옷은 비에 젖었지만, 다행히 안쪽의 붕대는 겉 부분만 약간 축축했을 뿐, 상처 부위는 무사했다.시언이 앉아 있고 아심이 서 있었기에, 아심은 약간 허리를 숙여야 했다. 긴 드레스가 아래로 늘어져 아심의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아심은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며 상처를 살폈지만, 시언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시언의 눈은 약간의 속쌍꺼풀이 있고, 길게 뻗은 눈매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시언의 차가운 성격과 강한 기운이 그 눈을 더 깊고 날카롭게 만들었으며, 그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누구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간신히 약을 다 바르고, 강아심은 약 상자를 정리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언은 몸을 돌려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아심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문을 나와 문을 닫았다. 어둡고 조용한 복도에 서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땀이 살짝 밴 등을 느끼며 문을 돌아보았다가 천천히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강성비가 내리는 날, 지아윤은 마지못해 골목 밖에 차를 세우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당 앞에 도착하자 아윤은 문을 밀고 들어가며 외쳤다.“
도도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사람을 잘못 본 거였네.”이반스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금방 알아봤어.”도도희의 눈매는 부드러워졌고, 담담히 말했다.“피곤하지? 우선 쉬어. 내가 숙소를 마련해 줄 테니까.”“같이 지낼 수 있어?” 이반스는 말을 하자마자 얼른 정정했다.“아니, 내 말은 가까운 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야.”도도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이반스를 자신의 별장에 머물게 하기로 했다....아심과 시언은 약을 보건실에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도희를 만났다. 시언의 휴대폰이 울리자, 그는 도도희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전화를 받으며 먼저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비가 이제 그칠 것 같네. 공기도 상쾌하니, 같이 산책할까?” 도도희가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아심은 우산을 접고 도도희와 함께 잔디밭 한가운데 돌길을 따라 걸었다.“야간 당직을 맡을 사람을 이미 정해놨어. 약도 충분하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별장에 의사가 있어서 다행이야.”도도희의 말에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내일이면 아이들 열도 내릴 거예요.”도도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관리자한테 들었어. 아이들을 위해 비타민 젤리를 많이 샀다던데, 비용은 나한테 청구해.”“괜찮아요!” 아심은 가볍게 웃었다.“비싼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에요. 저랑 같이 수업도 들었던 친구들이니까요.”도도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넌 원래 쉬러 온 건데, 오히려 돈을 쓰게 했네.”“덕분에 돈으로 행복을 산 거예요. 고맙다고 해야죠.” 아심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시겠지만, 저는 돈밖에 없는 사람이잖아요!”도도희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아, 맞다.” 아심이 말했다.“허락도 안 받고 이반스를 데리고 왔는데, 혹시 불편하신 건 아니죠?”“괜찮아. 걔가 갑자기 C국에 온 건 나도 몰랐어. 다행히 너희를 만나지 않았으면, 아마 마을에서 하루 종일 헤맸을 거야.” 도도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내가 올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