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사이에 임유민의 키가 엄청 많이 자랐다. 소희보다 좀 더 큰 걸로 봐서는 170센치미터는 쉽게 초과한 것 같았다. 게다가 임씨 가문의 우수한 유전자까지 합쳐져 금방 12살 밖에 안 되는 임유민은 이미 눈부신 소년으로 변해 있었다.임유민이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이래도 나를 때릴 거야?""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도련님!"소희가 말하면서 두 손을 내밀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그 모습에 임유민이 눈부신 웃음을 드러내며 소희를 한 번 훑어보았다."소희 쌤은 여전히 그대로네,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고마워,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소희가 눈썹을 올린 채 웃으며 대답했다."쳇! 내가 경솔했어. 분명 뻔뻔스러워졌는데 변하지 않았다고 했으니."소희가 듣더니 옆에 있는 테니스 라켓을 들고 그의 머리를 때렸다."선생님을 그렇게 말해도 돼?""네네. 선생님이든, 둘째 숙모든 어른인건 마찬가지인데 내가 잘못했네요. 됐지?"임유민이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소희의 미소가 순간 입가에 굳어졌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희가 다시 말했다."그만 장난 치고, 수업해야 지. 테스트한 걸 꺼내 봐, 어떻게 풀었기에 합격하지 못했는지 한 번 구경하게.""그럼 놀라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임유민이 말하면서 답안지를 찾아냈다.소희가 답안지를 대충 훑어보고 난 후 임유민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인재네."임유민이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과찬입니다.""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으로 여겨?"소희가 눈썹을 올리고 말했다. 그러고는 임유민이 말하기도 전에 손에 든 답안지로 그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너 일부러 그런 거지? 이 시구만해도 2년 전에 이미 외울 수 있었잖아."그러자 임유민이 머리를 만지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누가 기억력이 그렇게 좋아서 2년 전에 외웠던 걸 기억해? 소희 쌤은 이틀 전의 일이 기억나?"소희가 그를 보며 냉소했다.그 모습에 임유민은 그녀를 잡아당겨 의자에 앉혔다."내가 멍청할수록 소희 쌤의
소희가 숨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임구택을 향해 말했다."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임구택이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소희도 신발을 갈아 신고 얼른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그러다 집에서 나오니 임구택의 차가 이미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장면은 소희의 마음속을 심란하게 했다.차에 오른 후,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앞쪽에 와 앉아."이에 소희가 눈썹을 찌푸리고 똑같이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이 자리가 편합니다.""지금 날 운전기사 취급하는 거야?"임구택이 내던진 말투에서는 아무런 정서도 느껴지지 않았다.소희가 입술을 오므린 채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차 문을 열고 내려 조수석에 앉았다.그리고 그녀가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야 임구택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희는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임구택은 열심히 운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시간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제일 낯선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차가 길목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 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허니야,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맞혀봐.]휴대폰을 귓가에 대니 심명의 격동된 목소리가 바로 휴대폰을 뚫고 들려왔다. 비록 스피커폰을 켜지 않았지만 고요한 차 안에서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뚜렷했다.소희가 앞에 깜박이는 빨간 신호등을 보며 싱긋 웃었다."돌아왔어?"[뭐야, 목소리가 왜 이렇게 평온한 거야? 전혀 흥분하지 않았지? 나 지금 기분이 나빠지려고 그래! 난 밤낮으로 네 생각만 하고, 일이 끝나자마자 널 보려고 달려왔는데.]심명의 투정 부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소희가 웃으며 물었다."일이 다 해결되었어?"[누가 너더러 그런 쓸모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어? 난 네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를 원한다고!]심명이 포악하게 말했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차가 앞으로 쏠려 나가는 바람에 소희가 의자 등에 세게 맞혔다. 빨간불이
소희는 순간 알 수 없는 초조함이 밀려와 더 이상 임구택을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두운 얼굴색으로 바로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세게 닫았다.여인이 화난 뒷모습을 보며 임구택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하지만 눈빛은 점점 깊어졌다.그렇게 줄곧 집 아래까지 걸어가서야 소희가 평정심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난 임구택에게 우리 집 주소를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경원 주택단지에 거주하고 있다는걸 알게 된 거지?’임구택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알 수가 없었다.2년 전에 질렸다며 헤어지자고 한 것도 임구택이었고, 2년 후 새 여자친구가 생겼으면서 이도 저도 아닌 태도로 그녀를 접근하면서 관심하는 척하는 것도 임구택이었다.‘내가 바로 서희라는 걸 알고 헤어지자고 한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걸까?’소희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건물로 들어갔다.그리고 30분 후, 심명이 도착했다.흰색 정장 차림인 심명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가 소희를 껴안았다.반항할 겨를도 없이 안긴 소희는 심명의 품에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가만히 있어!"심명이 얼굴을 소희의 어깨에 묻힌 채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잠깐만 안고 있게해 줘, 잠깐만이면 돼.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소희의 눈빛에 순간 황홀함이 스쳤다.어느 추석 늦은 밤에도 누군가가 이렇게 그녀를 품에 꼭 껴안고 보고 싶었다고, 한시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소희를 품에 안고 있으니 심명은 그간의 그리움과 비행기에서 느꼈던 초조함이 깨끗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는 팔에 힘을 주고는 자기도 모르게 소녀의 목덜미에 뽀뽀했다.따뜻한 촉감에 소희는 순간 온몸이 팽팽해졌다. 그러다 손을 들어 심명을 밀어내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제대로 닫지 않은 집 문을 힘껏 걷어찼다. 그곳엔 웅장한 남자가 서 있었고, 남자의 차가운 눈빛은 날카로운 칼로 변해 소희의 몸을 긁고 있었다.그리고 그 소리에 심명이 소희를
심명이 소희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저 자식이 방금 말한 혼인 신고 서류가 뭔데?"소희가 긴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몸을 돌려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나 임구택과 결혼한적이 있어.""언제???"심명이 듣더니 순간 눈을 크게 떴다.그러자 소희가 소씨 가문과 임씨 가문 간의 통혼에 대해 대충 말해 주었다.심명은 소희가 소씨 가문이 나중에야 찾아낸 딸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뿐, 임구택과 그런 일까지 있었을 줄은 몰랐다.그래서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래서 임구택이 무슨 뜻인데? 그는 이현과 함께 여러 장소를 드나들면서 넌 그를 위해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거야?" 소희가 쿠션을 들어 품에 안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덤덤하게 말했다."2년 전에 내가 혼인 신고 서류를 그에게 보내 주면서 이혼하자고 했었어. 난 그가 진작에 이혼 절차를 다 끝냈다고 생각했는데."그러다 고개를 돌려 심명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너 우리 사이의 일에 끼어들지 마, 일이 이미 충분히 꼬일 대로 꼬였으니까.""꼬였으니까 재미있는 거지."그런데 심명이 오히려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난 끝까지 너의 곁에 붙어있을 거야. 임구택 그 나쁜 자식이 화병 나는 걸 지켜보겠다고."소희는 손에 들고 있는 USB를 만지작거릴 뿐 그를 대꾸하지 않았다.이에 심명이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임구택이 지금 너와 이현을 다 차지하려고 하는데, 설마 너 계속 그의 비위에 맞춰줄 거야?" "아니. 난 절대 그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대답하고 있는 소희의 말투는 점점 확고해졌다.그러자 심명이 소희의 곁에 앉아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었다. 눈빛은 왼쪽 귀의 검은 귀걸이처럼 그윽한 광택을 띠고 있었다."네가 오늘에 한 말들을 기억해. 그리고 앞으로 그와 함께 있지도 말고, 그를 만나지도 말고, 말도 섞지 마."소희가 듣더니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참, 너한테 말하고 싶은 일이 있어.""뭔데?""나
"심명."소희가 다시 일어나 앉았다. 맑은 눈동자에는 무력감이 묻어나 있었다."임구택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거리를 유지해야 해. 난......""잠깐!"그런데 이때 심명이 급히 손을 들어 소희의 말허리를 끊었다."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하지도 말고. 나를 친구로 여기고 싶으면 친구로 여겨."그러다 잠시 멈추더니 눈빛이 어두워져서는 자조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알아, 방금 내가 너에게 뽀뽀한 것 때문에 화가 나서 또 그런 말들을 꺼낸 거라는 걸."심명의 말에 소희가 잠깐 멍해지더니 이내 두 눈을 아래로 늘어뜨렸다.심명의 예쁜 눈동자에는 맑고 부드러운 빛이 뜻 모를 감정과 섞여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달래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내가 잘못했어. 아까는 나도 너무 반가운 마음에 주체 못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어.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이에 소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너 정말 나한테 이럴 필요 없어."소희는 지금까지도 심명이 왜 그녀를 이토록 좋아하는지 몰랐다.예전에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교점도 없었다. 그러니 그가 밀수에서 목숨을 내바치며 그녀를 구했던 일은 충분히 그녀를 놀라게 했고, 지난 2년 동안 그녀를 따라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행동은 더욱 그녀를 당황케 했다.그래서 그 빚진 신세를 갚기 위해 그를 자신의 곁에서 쫓아내지 않았던 것인데, 왠지 신세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았다.소희는 여태껏 한 번도 심명처럼 온갖 방법을 다 써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어쩔 수가 없었다."얼굴 찌푸리지 마, 넌 쿨한 표정이 어울려."심명이 갑자기 웃으며 소희를 끌어당겼다."나 배고파. 우리 요요 데리고 밥 먹으러 가자. 나 요요 너무 보고 싶어.""잠깐!"그런데 이때 소희가 갑자기 소리쳤다."서인이 오늘 나더러 그의 가게로 오라고 했는데.""무슨
장시원이 웃으며 대답했다."원래 오전에 술자리가 있었는데 구택이 갑자기 일이 있어 가지 않은 바람에 나도 일찍 나왔거든. 그러다 이쪽을 지나면서 올라와 본 거고."‘임구택이 오전에 볼일이 있었던 거야? 분명 오전 내내 집에 있었는데?’장시원의 대답에 소희가 잠시 멍을 때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방안을 살펴보았다."이씨 아주머니는요?""마트에.""저와 심명이 요요를 데리고 밥 먹으러 갈 생각인데, 함께 갈래요?"장시원이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아니, 나 회사에 가야 해.""그래요."소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요요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우리 심 아빠랑 놀러 갈까?"요요가 듣더니 기뻐하며 장시원을 바라보았다."아저씨도 가요?"장시원은 순간 마음이 나른해졌다. 왠지 요요와 헤어지기 아쉬웠다.이에 소희가 웃으며 말했다."아저씨는 일이 있어서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어.""그래요."요요가 작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다시 장시원에게 말했다."요요 소희 이모랑 놀러 갔다가 곧 돌아올 테니 요요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장시원은 당장이라도 말을 바꾸고 소희와 함께 가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는 이성을 유지하고 부드럽게 요요를 바라보았다."그래, 오늘은 소희 이모와 놀아. 내일 아저씨가 다시 올게.""네!"소희가 이씨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린 후 다 같이 집을 나섰다.심명의 차는 바로 아래에 있었다. 장시원은 소희가 요요를 안고 차에 오르는 걸 보고 나서야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그러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먼저 시동을 건 게 아니라 임구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믿겨져? 나 지금 네 기분을 체험한 것 같아.]요요가 심명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그는 마치 제일 아끼는 물건이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비록 이런 느낌은 그를 많이 황당하게 했지만.곧 임구택이 답장을 보내왔다.[그 사람 만났어?][응, 심명과 함께 있던데.]이번엔 임구택이 바로 답장을 하지 않았고, 장시원은 탄식 한 번 하고는 차
그는 서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만 소희와 성연희가 몇 번 언급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뿐. 하지만 서인의 경력에 대해서는 엄청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응."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심명이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구씨 가문의 후계자가 왜 이런 곳에서 샤브샤브 가게를 차려?" "말하자면 길어."소희가 컵을 들어 요요에게 물을 먹이며 말했다.2년 전, 서인은 구은서에게 보복하기 위해 스스로 신분을 폭로하고 구씨 가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그러다 반년 좌우가 지난 후 구성봉의 건강은 점차 회복되었고 서인은 다시 샤브샤브 가게로 돌아왔다.구성봉이 몇 차례나 찾아와 서인더러 회사를 인수하라고 부탁을 했지만 서인은 그의 형제들이 마음에 걸렸다. 이문 이들은 학력이 낮고 지식도 없는 데다 전과도 있었으니 서인이 그들을 데리고 구씨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경비원직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오히려 샤브샤브 가게에서 일손을 돕게 하는 게 그들에게도 더 좋은 선택일 것 같아 마지막에 구성봉과 협의를 했다.구성봉이 그룹을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만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그러다 이제 구성봉이 정말 늙어서 회사를 관리할 수 없게 된다면 그때 돌아가서 가업을 계승하겠다고.구성봉은 서인의 집요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자칫하면 서인이 다시 소리 없이 사라질 것 같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서인이 나타난 이후로 회사의 원로급 직원들은 전부 시름 놓게 되었고, 외척인 서씨네 쪽 사람들도 전보다 많이 얌전해졌다.특히 구은서 모녀, 예전에는 구성봉이 빨리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야만 구은서가 구씨 가문의 그룹과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구성봉이 죽으면 서인이 그들 모녀를 가문에서 쫓아낼까 봐 두려워 구성봉이 몇 년이라도 더 살게 하고 싶어 조심스럽게 그를 돌보고 있었다.그러니 아직 구씨 가문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댈 일이 없는 서인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 자신의
서인이 이문에게 분부했다."밖에 두 살 난 아이가 있으니 네가 알아서 먹을 거 만들어 줘.""네, 저한테 맡기시죠."이문은 예전보다 살이 더 쪄있었다. 하지만 얼굴에 포악한 기운이 줄어들어 상냥하고 친절한 뚱보로 되었다.그러다 서인이 소희를 보며 말했다."저쪽으로 가서 이야기 하자."주방 뒤에 작은 마당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소희가 서인을 따라 뒷마당으로 갔다.뒷마당은 예전의 뒷마당 그대로였지만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주위의 철제 난간에는 장미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마침 꽃들이 피는 시기라 벽 전체에 장미꽃이 빼곡히 자라나 있어 꽃향기가 담벽 밖까지 넘쳐흘렀다.왼쪽 벽에 심어진 계수나무 한 그루는 팔뚝만큼 가늘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났다.소희가 좌우를 훑어보고는 웃으며 물었다."전부 유림이 심은 거지?"그러자 서인이 의자에 앉아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임유림 외에 또 누가 이런 짓을 하겠어. 전부 소녀들이 좋아하는 것들이잖아.""지난 2년 동안 유림이 계속 가게에 와서 일을 도왔어? 임구택이 반대하지 않아?"서인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천천히 뱉고는 대답했다."작년부터 오기 시작한 거야, 그것도 주말에만. 임구택은 대충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은 거 같은데?""그래?"소희가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고게를 돌려 계속 마당을 훑었다. 그러다 얼굴색이 급변해서는 본능적으로 물러났다.담 모퉁이에서 사람 키 절반 높이가 되는 개가 나와 경계하는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야옹아! 물러가!"서인이 바로 소리쳤다.그러자 야옹이가 서인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담 모퉁이로 물러났다.이에 소희가 경악하여 고개를 돌렸다."이게 그 2년 전의 강아지야?""응. 이제 큰 개로 자랐어. 밖에 놔두면 손님을 놀라게 할 것 같아서 평소에는 마당에 가둬두고 있어.""얘 이름이 야옹이야?"서인이 담뱃재를 한번 튕기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임유림이 지은 이름이야."야
식사 중에 강시언이 물었다.“저녁에 또 약속 있어?”아심은 반쯤 내려간 눈길로 잠시 깜빡이며, 약간 죄책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요즘 정말 바빠요.”“응.” 시언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지만 각자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떠났다. 아심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정말 바빴다.정아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왔을 때, 아현은 무심코 아심에게 말했다.“내일 토요일인데, 권수영 여사님께서 댁에서 생일 파티를 연대요. 성대한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꽤 많은 사람을 초대한 것 같아요.”“지승현 사장님도 아마 어머니 생일을 위해 집에 남아 있을 거고요. 어쩌면 권 여사님께서 그 자리에서 며느리를 정하려고 할지도 몰라요.”아현은 슬쩍 아심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일 생일 파티에 누가 참석하는지 제가 알아볼까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약간 피곤한 듯 말했다.“아현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지승현은 이미 끝났어요. 앞으로도 절대 다시 이어질 일은 없으니까, 지씨 집안 일은 신경 쓰지 마요.”“그리고 지승현 앞에서 내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도 마세요.”아현은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장님, 그런데 미스터 강이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신 건 맞죠?”아심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아현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그날 저녁, 그분이 회사로 오시는 걸 봤거든요.”아심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사장님, 그분과 다시 만나신 건가요?”아현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담담히 말했다.“아니야.”이에 아현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안 만나는 게 맞아요. 사장님,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그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선 찾아오고, 또 떠나서는 연락도 없는 게 말이 돼요?”“사장님을 뭐로 보고 그러는 건지, 정말 어이가 없네요.”아심의 얼굴은 갑자기
“잠이 안 온다면, 다른 걸 해도 괜찮아.”강시언이 말하자, 강아심은 잠시 침묵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대단한 진언님께서 굳이 소파에서 자는 걸 선택하시다니, 대체 왜요?”시언은 차가운 눈을 반쯤 내리며 담담히 대답했다.“비가 와서 못 가.”아심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시언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넌 뭐라고 생각했는데?”“저는...”아심은 손을 들어 시언의 셔츠 앞자락을 잡으며, 긴 속눈썹을 떨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남으신 이유가, 내일 아침 제가 만든 샌드위치를 드시고 싶어서인 줄 알았어요.”“그 샌드위치, 꽤 맛있더라고.”“그러면 내일도 만들어 드릴게요.”“좋아.”아심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저 이제 피곤해요. 잘게요. 방해하지 마세요.”“자.”시언은 아심을 품 안으로 더 끌어당겼다.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퍼붓고 있었다. 마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했고, 천둥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꼭 껴안고 평온한 잠에 들었다.아심은 곧 잠들었지만, 시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잠들기 전부터 그녀에게 자극받은 상태였고, 지금 아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으니 더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얇은 실크 슬립 드레스 하나만 입은 아심은 곡선이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피부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그랬기에 시언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제야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막 잠들려는 순간, 아심이 시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리고 아심의 손이 시언의 풀어진 셔츠 단추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언은 즉시 정신이 번쩍 들며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아심!”하지만 아심은 깊이 잠든 상태라 대답이 없었다.시언은 깊은숨을 내쉬며 아심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심은 무의식적으로 몸부
몇 번째인지 모를 천둥소리가 울리고 난 후, 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시언의 눈동자는 어둠보다 더 깊고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심의 옆얼굴에 뜨거운 입맞춤을 남겼다.아심은 허리띠를 푸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빡였고, 그러더니 시언의 품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며 나른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심은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며 문을 닫고 잠갔다.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 후, 아심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문에 기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셔츠를 정리하며 욕실로 향했다.거실.시언은 굳게 닫힌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와 무력감이 떠올랐다.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시언은 화면을 확인한 뒤, 희미한 조명 속에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아심이 또다시 시언에게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그러자 시언은 화가 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며 물었다.[그게 그렇게 만족스러웠어?]잠시 후, 아심이 답장을 보냈다.[부디 돈을 받아줘요. 거래가 끝났으니, 다음번에도 잘 협력할 수 있겠죠?]아심은 막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러나 시언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아심은 그가 화가 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 아심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동안 기획서를 읽고, 도도희와 통화를 한 뒤, 피곤함에 이끌려 잠이 들었다.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아심은 매우 깊이 잠들었다.한밤중.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천둥소리에 잠이 깬 아심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이불을 챙겨 침대에서 내
[그럼 내가 방해하지 않을게. 일이 끝나면 꼭 집에 오렴.]도경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하자 아심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아심은 도경수의 번호를 저장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경수가 했던 한 글자가 맴돌았다.집, 아심에게도 이제 집이 생겼다.잠시 후, 도씨 집안에서 보낸 점심이 도착했다. 5단으로 된 보온 도시락에는 네 가지 반찬과 한 가지 국이 담겨 있었다.모두 어제 아심이 식사 중에 유독 많이 먹었던 요리들이었다. 도경수는 아심의 입맛을 기억한 것이다. 아심은 마음속 깊이 따뜻함이 밀려들었고, 가족이라는 존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다.오후에는 도도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저녁에 비가 올 테니 우산을 준비하고, 약속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전화를 끊고 난 뒤, 아심은 휴대전화를 쥐고 갑자기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 8시쯤, 아심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의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강시언이 소파에 앉아 책을 들고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이에 아심은 그에게 다가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남의 집에 들어오실 때는 원래 이렇게 허락도 안 구하시나요?”“남의 집?”시언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차갑게 내리는 비가 어우러진 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맑은 옥처럼 울렸다. 아심은 시언의 맞은편 테이블 위에 앉았다.따뜻한 조명 아래, 아심의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는 약간의 나른함과 여유가 섞여 있었다.“저는 이제 당신의 넘버 세븐이 아니예요.”시언은 손을 들어 아심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살짝 당기며 자기 무릎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내 넘버 세븐이 아니더라도, 넌 내 재희야.”이에 아심은 매혹적인 눈빛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왜 재희가 당신의 것이죠?”시언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도도희가 말했다.“집으로 가져올 짐이 있으면 내가 같이 가서 챙길게.”강심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제가 혼자 해도 돼요. 짐이 많지 않거든요.”도경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일이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일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러자 양재아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아심이 집에 오면 내 옆방에서 지내면 어때? 우리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도도희는 잔잔히 웃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이미 내 옆방을 정리해 두었어요. 재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거든요.”그 말에 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시언은 아심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고, 도경수는 끝까지 마당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재아는 도씨 집안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도경수가 시언의 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기운이 들었다.‘역시 친자식은 다르구나.’ 재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몇 달 동안 도씨 집안에서 도경수를 모셨는데도, 강아심이 하루 있는 것만 못하네.’“가요, 늦겠어요.”재아는 시선을 거두며 운전사에게 말했다....시언은 앞을 응시한 채 운전하며 물었다.“저녁에 정말 약속이 있는 거야?”아심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떨어져 따뜻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이예요.”그러자 시언은 그녀를 힐끔 보며 말없이 운전했고, 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녁에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그래.” 시언은 담담히 대답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심은 가벼운 질문을 하였다.“강재석 할아버지랑 언제 강성으로 돌아가세요?”시언이 물었다.“왜 그러는데?”“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아심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재석 할아버지가 제 일
“‘강’ 씨 성이면 어때? 아심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야.”강재석이 논리적으로 반박했다.“그건 아심이 예전에 도씨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제 돌아왔으니 성은 반드시 바꿔야 해요.”도경수는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재희로?”도경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재희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도도희는 계속 다퉜어. 얼마 후 도도희는 재희를 데리고 강성을 떠났고, 그저 재희라는 예비 이름만 붙여줬어.”“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재희로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지만, 나와 도도희의 의견이 매번 엇갈려 결국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강재석은 기뻐하며 말했다.“그 말은 재희의 운명적인 이름이 이미 강아심이라는 뜻이니 바꿀 필요가 없다는 거야!”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절대 불가능해. 내일 바로 도도희와 상의해서 재희를 우리 도씨 가문의 호적에 올릴 거야.”“그 문제는 아심의 의견을 물어봐야지.”강재석이 말했다.“네 멋대로 결정하면 아심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어.”그 말을 듣고 도경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말했다.“물론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지.”그는 위층을 올려다보며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은 도도희와 아심이가 한방에서 지내고 있어.”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모녀가 이미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거리감도 줄었겠지.”“맞아!” 도경수가 감탄하며 말했다.“볼수록 아심은 우리 도씨 가문의 사람처럼 보여.”강재석이 비웃으며 말했다.“예전에 사람 깎아내릴 때는 아니었나 봐?”도경수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그때는...”“그때는 뭐? 양재아의 한마디에 휘둘려, 본 적도 없는 아가씨를 편견으로 대했잖아.”강재석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니 아심이가 당신을 무시하는 게 당연하지.”도경수는 주름이 가득 한 얼굴로 당황하며 말했다.“그건 내 잘못이야!”“잘못을 인정한다니 다행이네!”그 말에 도경수는 찡그리며 말했다.“지금까지 재희가 날 외할
소희는 손을 뒤로 돌려 임구택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이제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볼 수 있겠네.”구택의 긴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가고 싶은 곳 있어?”그 말에 소희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사실, 아직 양재아가 조금 걱정돼.”“걱정하지 마. 형님이 있으니까.” 구택이 웃으며 말했다.“형님은 절대 아무도 아심을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그건 그렇지!” 소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돌아왔을 때, 오빠랑 아심이 사귀고 있었으면 좋겠어.”“그럴 거야.”...그날 밤, 도도희는 아심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오늘 밤은 한방에서 지내자. 아직 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도우미들이 아심을 위해 새 세면도구와 잠옷을 준비해 놓았다. 아심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도도희는 침대에 앉아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손짓했다.“침대로 와.”아심은 신발을 벗고 도희 옆에 앉았다. 방 안은 냉방이 세게 틀어져 있었고, 도도희는 이불을 들어 그녀의 다리에 덮어주며 말했다.“젊은 사람들이 너무 차게 하면 안 돼. 특히 너는 위가 안 좋잖아.”아심은 스스로 이불을 위로 끌어올리며 웃었다.“이제 알았어요. 제가 위가 안 좋은 건, 알고 보니 유전 때문이었네요.”이에 도도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원인을 찾았구나!”아심은 사진첩을 넘기다가 자신이 세 살이 되기 직전의 사진을 보고 중얼거렸다.“양부모님 댁에서도 제 어릴 적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사진 속 모습과 거의 비슷했어요.”도도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사람들이 널 자주 때렸니?”“친자식이 아니니까, 당연히 정이 없었죠.” 아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도 다행히 할머니가 아주 착해서 저를 보호해 주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아들이 병에 걸리자 저를 팔아버렸어요.”도도희는 가슴이 아파 그녀를
강재석이 말했다.“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면 다 지난 일이 된다. 재희가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야. 너까지 이러면 재희 마음도 편하지 않을 거다.”“그렇지!” 도경수가 눈물을 닦으며 강아심을 향해 말했다.“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지난 20년의 세월을 되찾아야지!”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식사가 끝난 후, 모두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강재석이 소희에게 말했다.“너희 부부도 신혼여행을 가야 하지 않느냐? 이제 재희도 찾았으니 내일부터 떠나도록 해.”소희는 만화에서나 볼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무 기뻐서 신혼여행이고 뭐고 갈 마음이 없어요.”그 말에 강시언이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이 그룹 일을 전부 내려놓고 널 위해 시간을 냈는데,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많으니 신혼여행을 미루지 마.”구택이 소희를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걱정하지 마.” 시언이 잔잔히 미소 지었고, 도경수도 진석과 강솔을 향해 말했다.“너희도 나를 계속 돌보려 하지 말고 할 일 있으면 하러 가라. 여기 강재석도 있고, 나와 이야기하면 충분하다.”진석이 말했다.“그러면 강재석 할아버지께서 강성에 며칠 더 머물러 주세요.”강재석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떠날 수 없구나!”도도희가 말했다.“아저씨, 어떤 일이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그 말에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너희 아빠에게 물어봐라!”도경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 일은 신경 쓰지 마라. 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돌아가려면 얼른 돌아가!”도도희가 호기심에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언과 아심의 혼사 얘기다!”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네 아버지가 전에 재희를 찾으면 두 집안이 결혼을 통해 인연을 더 깊게 맺자고 했는데, 이제 와서 약속을 취소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어.”모두가
양재아는 그 자리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정원을 응시했다. 저녁노을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자, 묘한 냉랭함이 깃들었다.‘이제 겨우 첫날인데, 강아심이 나에게 벌써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분명 나를 내쫓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재아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목이 메어,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차가운 얼굴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아는 두 도우미가 아심을 둘러싸고 환대하는 모습을 보았다.“아가씨, 주방에서 진귀한 홍삼 특급 탕을 준비했는데 괜찮으신가요?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탕으로 바꿔 드릴게요.”“아가씨, 요리는 찜으로 드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것으로 조리해 드릴까요? 도경수 어르신께서 아가씨의 의견을 꼭 여쭙고 준비하라고 하셨어요.”“아가씨, 평소에 단맛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매운맛을 좋아하시나요?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아가씨 입맛에 맞게 요리해 드릴게요.”...그들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재아의 가슴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동시에 도우미들의 태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저녁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도경수는 특별히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고,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도경수는 가장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오늘 첫 잔은 시언 그리고 모두를 위해 건배하네. 너희가 없었다면 나와 도도희는 우리 아심이를 찾지 못했을 거야.”도도희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저도 여러분께 감사의 잔을 드려요. 20년간 간절히 바라온 소원이 오늘에서야 이루어졌어요.”“지난 20년 동안, 저는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고, 하루도 제 딸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는데...”도도희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졌다.“이제야 제 마음이 놓이네요.”도도희의 감동적인 말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도도희 이모, 축하드려요!”“스승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