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얼굴을 붉혔지만 또 안색이 창백해졌다.태경은 항상 그녀를 쉬운 여자로 취급했다. 아마도 사랑의 역할은 그의 욕망을 해소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술자국에 얼룩진 사랑의 손가락을 보며, 태경은 그녀의 손을 잡더니 고개를 숙여 진지하게 손수건으로 사랑의 손을 닦아줬다.사랑은 갑자기 부드러움을 베푸는 태경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태경의 마음에서 새어 나오는 그 사소한 사랑을 갈망했다.‘많이 안 줘도 돼, 조금이면 충분해.’사랑은 저도 모르게 어느 해 여름방학 전의 마지막 체육수업을 떠올렸다. 그녀는 교실 창밖을 지나고 있었고, 바람은 강의동 밖의 꽃나무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이때, 찬란한 햇빛은 마침 태경의 옆모습을 비추고 있었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소년은, 장난스럽고 유치하게 자신의 손목과 세영의 손목을 리본으로 묶었다. 세영은 책상에 엎드려 깊이 잠들어 있었다.태경은 머리를 받치고,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예쁜 눈에 환한 미소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렇게 애정이 넘치는 눈빛으로 자고 있는 소녀를 지켜보았다.교실이 시끄러워지자, 그는 다른 사람에게 조용하라는 손짓을 했다. 세영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사랑은 마음이 쓰라리면서 씁쓸했다. 태경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뿐이었다.‘그치만 분명히 내가 먼저 태경과 만났는데. 이 남자도 날 직접 찾아와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전부 잊어버렸다니... 아니야... 단지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 뿐이야.’사랑은 정신을 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선 연회가 끝났을 때, 사랑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배고파서 무척 괴로웠다.‘뱃속의 아이는 입맛이 아주 좋은 것 같아.’지금 사랑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냉장고에 케이크가 있었기에, 그걸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차에 타자, 사랑은 태경에게서 나는 술기운을 맡았다. 그리 짙은 냄새는 아니었다.태경은 술을 마셔도 항상 자제했다. 그는 접대할 필요가 없었고, 모두
사랑이 자신을 세 번이나 거절해서 흥이 깨졌는지, 태경은 기사에게 그녀를 별장으로 데려다 주라고 한 다음, 다시 이곳을 떠났다.샤워를 마치자, 사랑은 거실에서 케이크를 먹었다. 달짝지근한 케이크였지만, 지금 그녀는 맛이 없다고 느꼈다.순간, 눈물이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 임신해서 그런지, 사랑은 엄청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사랑은 눈물을 닦고 거실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마음을 점차 가라앉힌 다음,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눈이 자꾸 감겼지만, 사랑은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사랑은 옆에 놓은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을 클릭했다. [태경 씨, 나 임신했어요.]삭제하고 또 편집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됐어. 말하면 뭐가 달라진다고.’사랑은 주말에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우기로 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잤다.꿈에서 사랑은 열 몇 살의 태경을 보았다. 그의 손발은 철사에 묶여 있었고, 눈은 검은 천으로 뒤덮였다. 호흡 소리가 어찌나 작은지, 거의 죽은 것만 같았다.밧줄을 풀어헤친 사랑은 힘이 없어서, 손가락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서야 철사를 풀어줄 수 있었다.그들을 납치한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남자는 사랑의 뺨을 때렸는데, 귓가가 윙윙 때렸다.그때의 태경은 숨을 거두기 직전이었고, 경찰들도 줄곧 남자를 쫓고 있었기에, 그는 태경을 때리며 분풀이 했다.사랑은 태경이 죽을까 봐 매일 그와 얘기를 나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심지어 동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꼭 살아야 해.”이것은 사랑이 태경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었다.잠에서 깨어날 때, 마침 날이 밝았다. 사랑은 사실 납치 사건과 관련된 꿈을 꾼 지 오래였다. 어릴 적에 받은 상처는 심지어 그녀에게 후유증을 남겨 주었다.왼쪽 귀는 자극을 받았을 때, 윙윙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손가락은 철사에 베여 아물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사랑은 간단히 세수를 하고 병원에 갔다. 남청연은 아직
사랑은 태연하게 돈을 받은 다음, 주방에 가서 저녁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담담한 척하며 태경에게 문자를 보냈다.[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올 거예요?]결혼한 후에도 사랑은 태경과 동거를 하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솥 안의 국은 이미 끓기 시작했다.오랜 기다림 끝에, 사랑은 냉담한 답장을 받았다.[아마도.]사랑은 식탁에 앉아 한 상 가득 차린 음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임산부는 감정이 예민해서, 설령 이미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오늘 밤 여전히 외로움을 느꼈다.그녀는 시계를 바라보았는데, 이미 밤이 되었다. 식탁 위의 음식도 다 식기 직전이었다.사랑은 다시 음식을 데웠고, 또 30분이 지났지만 시종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신중하게 문자를 여러 번 편집했다.[저녁을 준비했는데, 돌아올 거예요?]사랑은 눈을 드리우며 이 몇 글자를 쳐다보더니 또 무뚝뚝하게 편집한 문자를 삭제했다.집안의 가정부도 곧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사랑이 그녀에게 말했다.“이모님, 이 음식들 다 버려요.”윤미숙은 이 여주인을 무척 동정했다. 집안의 가정부까지 사랑의 남편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네, 아가씨.”가정부의 월급도 태경이 지불했다.처음에 그들은 사랑을 사모님이라고 불렀는데, 한 번은 태경이 이를 듣고, 불쾌해하지 않았지만, 그저 앞으로 그녀를 아가씨라 부르라고 했다.깍듯한 호칭인 동시에 거리감이 있었다....밤 10시가 되자, 사랑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안에 나오는 게스트를 잘 알고 있었다.얼마 전 이 여자 연예인과 태경이 함께 찍힌 사진이 기사로 떴다. 텔레비전에서 시크한 여신은 태경 앞에서 활짝 웃으며, 다정하게 그의 팔을 안고 한밤중에 호텔을 드나들었다.사랑은 태경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태경에게 고백할 수 있었지만, 유독 사랑은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태경이
사랑은 간신히 계약을 체결했지만, 유정일은 이미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했고,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강 비서, 난 네가 정말 마음에 드니까,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 있으면 다 너에게 소개할 수 있는데.”유정일은 비틀거리며 등불 아래의 미인을 바라보았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는 참지 못하고 사랑을 껴안고 키스하려고 했다.“강 비서, 너무 예쁘네.”술 냄새에 담배 냄새가 섞이자, 사랑은 구역질이 나서 토하고 싶었고, 그를 힘껏 밀쳤다.그러나 유정일은 사랑이 밀당하는 줄 알고, 음탕하게 웃으며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놓으려 하지 않았다.“강 비서, 혼자 C시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은데, 내가 많이 도울 수 있어.”말을 마치자, 그는 또 사랑의 얼굴에 뽀뽀를 하려 했다.사랑은 차갑게 얼굴을 돌리더니 유정일의 발을 세게 밟았다. 그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고, 버럭 화를 냈다.“감히 날 밟아!”사랑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유 사장님, 저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남자가 입을 열자, 술냄새가 풍겨 왔고, 조금도 개의치 않은 모양이었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유정일은 또 달려들더니 강제로 사랑을 안으려 했다.복도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다툼은 많은 눈길을 끌었다. 술에 취한 남자는 힘이 셌고 또 무척 무거웠다. 사랑은 또 그의 발을 세게 밟았는데, 총총히 달려온 직원은 남자를 떼어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유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사랑은 옆에 서서 옷을 정리했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익숙한 두 눈을 부딪쳤다.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양복 차림에 안색은 냉담했고, 입가에 은근히 미소가 어려 있었지만 마치 그녀를 비웃는 것 같았다.사랑은 태경의 눈빛에 가슴이 떨렸다.‘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지?’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떼었다.탁 하는 소리와 함께, 태경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연기가 흩날리기 시작했다.“이리 와.”사랑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태경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는
쉬운 여자란 말에, 사랑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그녀는 손톱으로 힘껏 손바닥을 꼬집으며 통증으로 정신을 차리려 했다.‘아마 태경에게 있어, 난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로 보이겠지.’사랑은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결코 변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최근에 좀 한가해서 마침 디자인 주문을 받았을 뿐이에요.”사랑은 태경과 어색한 관계로 되고 싶지 않아 먼저 한 걸음 물러났다.태경은 그녀가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유정일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어?”사랑은 침묵했다.태경은 그녀의 고개를 치켜들며 매서운 기세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알아본 적 없구나.”사랑은 너무 지쳤다. 지금 아무리 설명해도 태경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도 이해가 안 갔다.‘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다니, 정말 심태경 답지가 않아.’그래서 그녀는 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남자의 타고난 소유욕 때문인가? 자신의 아내가 밖에서 얼굴을 내밀고, 다른 남자와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사랑은 얼굴을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드러운 불빛이 여자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자, 촉촉한 입술은 마치 빨간 사과처럼 탐스러웠고,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태경은 저도 모르게 키스를 하고 싶었다.태경은 앞으로 다가가서 사랑의 얼굴을 들어올렸다.“그 사람 오늘 밤 네 어딜 건드렸지?”사랑은 이 질문에 좀 난처했다. 그녀는 얼굴을 돌려 말을 하지 않았다.태경의 안색은 여전히 담담했고, 목소리도 매우 평온했다.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을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말해.”사랑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하얗고 가는 엄지손가락으로 장난치듯 사랑의 입술을 어루만졌다.태경의 목소리는 약간 잠겼다.“여기 만졌어?”사랑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는지, 남자의 엄숙한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태
태경은 사랑의 말을 무시하고, 집사에게 차 대시시키라고 지시했다.사랑은 그의 소매를 움켜쥐며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정말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그냥 생리 온 것 같아요.”태경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요 며칠이 아닌 것 같은데.”계약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부부로서 해야 할 일을 빼먹지 않았다.태경은 정상적인 남자였기에, 생리적 욕구가 있었다. 그를 만족하기엔 쉽지 않았는데, 어떨 때는 몇 번이나 사랑의 생리기간과 충돌되었다.사랑은 태경의 기억력이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돌리며 감히 태경의 눈을 보고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요즘 날짜가 그리 정확하지 않거든요.”태경은 응답한 다음, 사랑의 이마를 만졌는데 체온은 정상이었다.사랑은 그에게 안긴 채로 침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고, 배의 통증이 점차 사라지자, 사랑도 많이 편안해졌다.태경은 약 상자에서 진통제를 꺼내 건넸다.“약 먹고 자.”사랑은 멍하니 진통제를 받았는데, 알약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사실 지금의 태경은 확실히 친절하고 다정했다. 평소의 그는 냉정하고, 자제하고 또 까칠했으니까.잠시 후, 남자는 다시 사랑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사랑은 물컵을 받으며 나지막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함부로 약을 먹지 못했다.‘아이를 가졌으니 조심해야 되는데...’태경은 셔츠의 단추를 풀며 물었다.“왜 안 먹어?”사랑은 아무 핑계를 댔다.“이제 좀 나아졌어요. 의사가 진통제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의존성이 생기니까요.”태경은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고 욕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그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사랑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손바닥으로 배를 어루만졌다.‘아직 두 달도 채 안 되어서,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르겠네.’사랑은 주말에 예약한 수술을 생각하니, 가슴이 벌벌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이를 지우는 것보다 더 좋은
태경은 베란다에 가서 전화를 했다.사랑은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보다 냉정한 것을 발견했다.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사랑은 그가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태경이 전화할 때의 표정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냉엄한 미간이 점차 펴지며, 입술에 담담한 미소가 어려 있었고, 모처럼 부드러움을 드러냈다.말없이 시선을 돌린 사랑은 침대 시트를 힘껏 쥐며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만 같았다.몇 분 후, 태경은 전화를 끊었다. 사랑은 분명히 인내심이 많았지만, 오늘 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작은 얼굴을 들어 태경을 바라보며 앵두 같은 입술을 오므렸다.“강세영 씨 귀국했어요?”사랑은 이미 남에게서 세영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영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떠받드는 공주로 살았는데,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세영이 공항에 도착하자, 동창들은 이미 SNS에 사진을 올리며 그녀를 환영했다.태경은 가슴을 드러내는 짙은 색의 가운을 입고 있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의 눈빛에 은근히 숨이 막혔다.“응.”사랑은 침묵했다.‘나도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태경은 화가 나든 안 나든 다를 바 없었고, 영원히 냉담한 표정을 하며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는 불을 끈 다음, 침대 머리맡의 작은 등만 남겼다.사랑은 자신을 이불 속에 숨기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삼켰다.침대에 눕자, 태경은 사랑의 허리를 안았고, 뜨겁고 단단한 몸으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 서로 닿은 몸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했다.남자는 코끝으로 사랑의 어깨를 가볍게 문지르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태경은 손으로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고, 뜨거운 온도가 끊임없이 전해왔다.그는 목소리가 잠겼다. “좀 괜찮아졌어?”사랑은 태경이 자신을 부드럽게 대할 때가 가장 미웠다. 마치 그녀를 유혹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심연으로 빠지게 하는 것 같았다.두 사람 사이에 결과가 없단 것을 뻔
사랑은 묵묵히 자신에게 말했다.‘커피 한잔 타는 것뿐이니 별일 없을 거야.’사랑은 아메리카노 두 잔을 탄 다음, 대표님 사무실로 가져갔다.태경은 냉정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셔츠의 소매는 위로 말아 올렸는데, 하얀 손목마저 무척 예뻤다. 그리고 심심했는지,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고 있었다.사랑은 소파에 앉은 세영을 보았다. 그녀는 오늘 눈에 띄는 빨간색 벨벳 탱크톱 치마를 입고 있었고, 곱슬머리를 더하니 엄청난 매력을 발산했다.세영의 미모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선보였고, 이목구비가 정교하면서도 눈매가 요염했다.지금 세영은 나른하게 태경의 사무실 소파에 엎드려 있었고, 다리를 꼬며 그의 책과 서류를 이리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심심해서 그런지 힐끗 쳐다보고는 바로 던져버렸다. “태경아, 네 사무실은 검은색 아니면 하얀색이던데. 엄청 밋밋하고 지루하지 않아?”사랑은 세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당당하게 태경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사랑은 뜻밖에도 좀 부러웠다.태경은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었다.사무실 안의 서류는 덕훈조차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지만, 세영은 오히려 마음대로 던져버릴 수 있었다.또 다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세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썹을 들더니 붉은 입술을 구부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사랑을 훑어보는 세영의 눈빛은 매우 차가웠다. 그녀는 자신의 불만을 숨기며 일부러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태경에게 물었다.“이 사람이 네 비서야?”대답을 듣기도 전에, 세영은 천천히 일어서서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태경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왜 이렇게 예쁜 비서를 쓰는 건데?”세영의 비아냥에 익숙해진 태경은 사랑을 보더니 먼저 나가라고 했다.태경은 자신의 사생활이 들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설령 그 사람이 세영일지라도‘나와 강 비서는 지금 이 상태가 딱 좋아.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동시에 또 각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으니까. 강 비서도 계약서 대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