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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어젯밤 수고했어

사랑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시간 나는 대로 갈게요.”

덕훈은 멋쩍게 웃었다.

“건강검진은 내일로 예약했으니 꼭 병원에 가보세요.”

사랑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알았어요.”

그녀는 태경이 이렇게 예리할 줄 몰랐다.

“제시간에 도착할게요.”

...

오후 내내 사무실에서 진한 커피 냄새가 퍼졌고, 사랑은 토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서야 좀 나아졌다.

퇴근하기 전 사랑은 화장실에 가서 한번 더 토했다. 그녀는 자신의 입덧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

찬물로 세수를 하자, 가방 안의 핸드폰이 울렸다. 사랑이 전화를 받는 순간,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야?]

“화장실이에요.”

[지하 차고에서 기다릴게. 오늘 저녁 본가에 가서 밥 먹어야 하니까.]

“네, 대표님.”

다행히 두 사람이 매달 본가에 가서 식사를 하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박나은은 사랑이 하루 빨리 손자를 낳아주기를 기대했다.

차에 타자, 태경의 곁에 앉은 사랑은 조금 긴장했다. 태경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사람에게 압박감을 가져다주었다.

차 안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한 거야?”

사랑은 방금 토했으니 지금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요? 괜찮은 것 같은데.”

태경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입술은 오히려 빨갛군.”

이 말에 사랑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태경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강 비서, 나 몰래 바람피운 거 아니지?”

무심코 한 농담이었지만, 사랑은 가슴이 떨리며 잔뜩 긴장이 됐다

“그럴 리가요.”

태경은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요즘 고생했으니, 며칠 휴가 내서 푹 쉬어.”

사랑은 생각해 보았다.

‘이참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되겠다.’

그녀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잘 알고 있었기에, 태경이 예약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두려운 동시에 태경에게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차는 본가의 정원에 세워졌다.

사랑이 차에서 내리자, 태경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손에 힘을 주던 그 순간, 그는 문득 입을 열었다.

“살이 좀 찐 것 같은데.”

사랑은 뜨금했다.

“요즘 좀 많이 먹어서요.”

태경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따 우리 엄마가 세영의 일을 언급하셔도 대답하지 마.”

“네, 대표님.”

‘세영, 강세영.’

이 이름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랑을 괴롭혔다.

강세영은 그녀의 이복 언니였다.

아버지 강남복은 무정하고 의리조차 없는 남자였다. 사랑 어머니 남청연의 재산을 전부 독차지한 다음, 몰래 남씨 가문의 기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강남복은 자신의 첫사랑과 딸 강세영을 데리고 집안에 들어왔다.

태경과 세영은 오래 전부터 서로를 좋아해 왔다. 그러나 그는 사랑과 세영이 이복 자매라는 것을 몰랐다.

귀한 재벌 집안 도련님 태경은 자신의 모든 사랑과 감정을 전부 세영에게 주었다. 그리고 오직 세영을 대할 때만 태도가 부드러웠다.

태경은 항상 세영을 다정하게 불렀지만, 사랑에겐 ‘강 비서’라고 차갑게 부를 뿐이었다.

사랑은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태경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으며 눈썹을 치켜들었다.

“계속 날 대표님이라 부를 거야?”

사랑은 감정을 가다듬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

“태경 씨.”

화려한 별장에 들어서자, 박나은은 아주 다정하게 사랑의 손을 잡았다.

“이 주 동안이나 못 봤네. 사랑아 너 좀 야윈 것 같아.”

사랑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태경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웃었다.

“어머니, 사랑이 살이 빠진게 아니라 살이 좀 쪘어요.”

매번 연기를 할 때에만 태경은 그녀를 사랑이라고 불렀다.

친밀하고 다정하며 은근히 닭살이 돋았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부인 것처럼. 태경의 연기는 언제나 대단했다.

박나은은 눈썹을 찌푸렸다.

“살이 찐 것 같진 않은데.”

“안심하세요. 저는 절대로 어머니 며느리 괴롭히지 않았어요.”

박나은은 태경을 노려보았다.

“입만 살아서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손자를 보는 거야.”

태경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노력할게요.”

사랑은 말없이 들으며 끼어들지 않았다.

박나은은 자신의 아들이 마침내 마음이 바뀐 줄 알고,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반년 동안 두 사람이 임신을 피하기 위해 조심히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을 때, 사랑은 불편함을 애써 참아야 했다. 요리는 모두 담백했지만, 고기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녀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지자, 박나은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아픈 거야?”

사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좀 졸려서 그래요.”

박나은은 또 태경을 탓하기 시작했다.

“넌 회사에서 우리 사랑이 그만 좀 괴롭혀.”

태경은 손을 들며 항복했다.

“요즘 사랑이가 확실히 고생이 많았죠. 안심하세요. 이미 사랑이한테 휴가를 주었으니까요.”

“그래야지.”

저녁을 얼마 먹지 못한 사랑은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한 병을 꺼내 단숨에 마셨다. 뜻밖에도 속이 편안해져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

사랑과 태경은 결혼 후부터 같이 잤다. 그녀는 태경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도구와 같았다.

태경은 샤워를 하고 나와 바로 사랑에게 키스했다. 그녀는 이미 어젯밤에 거절했기에, 오늘 밤 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절하면 태경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뱃속의 아이가 다칠까 봐 사랑은 얼굴을 돌리며 은근히 거부감을 드러냈다.

“대표님, 오늘 밤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경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입가에는 종잡을 수 없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강 비서, 난 밀당을 좋아하지 않아.”

사랑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는 또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쩌다 옷을 다 벗었고, 두 사람의 엇갈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사랑의 배는 아프지 않았다.

끝난 후,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워 일어나서 샤워하러 갈 힘조차 없었다.

사랑은 남자의 품에 안겨 깊이 잠들었다. 잠들기 전, 사랑은 이런 생각을 했다.

‘태경씨가 나 때문에 화를 낼 뻔한 것 같은데.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는 사람이야. 불쾌하더라도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사랑은 다음 날 점심까지 잠을 잤다. 눈을 뜨니 창밖의 햇빛에 눈이 부셨다.

그녀는 침대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점차 정신을 되찾았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사랑은 무심코 침대 머리맡에 놓인 메모를 보았고, 옆에는 수표 한 장이 있었다.

액수가 적지 않은 수표였다.

수표를 자세히 보지 않고 옆에 내려놓은 다음, 사랑은 머리맡에 있는 메모를 확인했다. 아주 익숙한 글씨였다.

태경의 글씨는 날카롭고 아름다웠다.

두 문장이 간결히 적혀 있었다.

[어젯밤 수고했어. 이건 수고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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