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휘둥그레진 까만 눈동자로 남기준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명령이야! 이번에 나 혼자서 동남아로 갈 거야. 이제 준회 씨의 사람들과 만날 거야. 너는 여기에 남아서 할아버지와 나나를 잘 보살펴줘.”남기준은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네!”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까지 둘의 대화를 양나나가 전부 들었다는 것을. 물론 양나나가 문밖에서 몰래 들은 것은 아닐 것이다. 양나나가 문 앞에서 들었다면 청각이 예민한 남기준과 남서훈이 모를 수가 없을 테니.이 서재에서 양나나가 모든 대화를 엿듣게 된 것은 양준회와 양나나가 전에 숨바꼭질을 할 때에 숨겨놓은 장난감 도청 장치 덕분이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어서 양준회와 양나나도 남서훈에게 얘기하지 못했었다. 비록 장난감 도청 장치지만 기능은 나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장착했지만 아직도 멀쩡히 작동하고 있었던 덕분에 모든 대화 내용이 양나나에게 전달되었다.순간, 양준회가 중독되었다는 소식에 양나나는 눈시울이 붉어 지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자, 까만 눈동자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남서훈이 서재에서 나와 양나나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방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그녀는 양나나에게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상냥하고도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나나야, 아빠 쪽에서 조금 일이 생겼어. 그래서 엄마가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나나가 기준 삼촌이랑 잠깐 할아버지 집에 가 있으면 안 될까?”양나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그리고 양나나와 남기준은 남서훈을 배웅해 주면서 비행기에 타고 날아가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아가씨, 이제 가시죠.”“네.”양나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떠났고 남기준과 차에 앉고 나서야 그에게 물었다.“기준 삼촌, 할아버지 집 말고 먼저 우리집에 가요. 챙겨올 물건이 있어요.”남기준은 별다른 의심 없이 차를 몰고 양나나를 별장까지 데려다주었다.이윽
양나나는 고개를 들고 남기준을 쳐다보며 물었다. “기준 삼촌, 어린 시절 엄마랑 비교하면 저도 그럴듯하니 멋있어 보이지 않아요?”“네!”남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양나나의 오관은 양준회를 많이 닮아 있었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도 훨씬 컸기에 지금 남자아이와 같은 모습을 한 양나나는 어린 시절 남서훈과 훨씬 닮아 있었다.“갑시다.”양나나와 남기준은 함께 출발했다. 그들은 남서훈이 떠난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X국으로 떠났다.X 국.남서훈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빠르게 내린 그녀는 자신을 마중 나온 남자 림평을 만났다. 서른 살쯤 되는 그 남자는 양준회의 부하이자 X 국의 책임자였다. 이전의 그는 양준회와 마찬가지로 한 명의 우수한 용병이었다. 용병으로 있을 때 그는 양준회의 오른팔이고 왼팔이었으며 능력 또한 뛰어났다.양준회가 용병조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림평 역시 부상을 입어 조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는 여기 X 국에 남아 태운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남 선생님.”림평의 태도는 무척 공손했다.그와 남서훈은 공항 밖으로 나가 차에 앉았다.림평이 차를 운전했고 그는 액셀을 밟았다. 평범해 보이던 까만색 자가용차는 마치 어둠 속을 달리는 치타마냥 눈 깜짝할 사이에 공항을 빠져나갔다. 남서훈은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림평은 한편으로 운전하면서, 한편으로 이곳에 있었던 모든 상황을 상사하게 설명했다. 또한 방금 조사해 낸 모든 것들까지 전부 남서훈에게 보고했다. 그뿐만 아니라 X 국에 있는 태운 그룹 지사가 초기에 위험에 처했을 때, 양준회가 급히 달려와 처리하는 와중에 X 국의 아라벨라 가문의 마샤 아가씨는 그에게 집착하면서 미친 듯이 사랑을 표현했다는 얘기도 전했다. 양준회는 마샤 아라벨라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녀의 집착과 사랑에도 양준회는 매번 냉정하게 거절했다. 심지어 한번은, 그녀의 체면 따위를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마샤를 밖으로 내치기까지
남자는 안목이 없는 것인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몇 번이고 거절하면서 자기 여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여기까지 생각한 마샤는 화가 치밀어 미칠 것만 같았다! “허!”마샤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남서훈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질투심을 제외하고도 이 바보 같은 여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멍청한 여자가 지금 양준회를 위해 일부러 나를 찾아온 건가?역시! 남서훈이 걸어왔다. 그녀는 까맣고도 여우 같은 눈빛으로 마샤를 쳐다보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듣자 하니 내 남편이 X 국에 온 이후로, 당신이 무척이나 따라다녔다고 하던데요. 거기다 마샤 아가씨가 사랑 때문에 원한을 품었다고! 내 남편의 마음을 얻지 못하게 되자, 음모를 꾸며 비겁하게 해치기까지! 풍운파와 손을 잡고 우리 남편을 잡아갔다지요. 그러니 내가 묻고 싶은 건, 우리 남편 지금 어디 있어요?”남서훈은 목적이 명확했기 때문에 그녀는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녀의 말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 아라벨라 가문은 X 국에서는 명망 높은 가문이자 권세 있는 집안으로 올바른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X 국에서 가장 큰 검은 세력과 연결고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적인 일이니 대대적으로 떠벌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이렇듯 담대하게 감히 면전에서 이런 얘기들을 꺼낼 줄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마샤는 남서훈이 멍청한 짓을 골라 한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당신 남편이 어디 있는지는 아내라는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여기까지 와서 나에게 묻는 거죠?”남서훈은 놀랄 만큼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고는 까만 눈동자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듣자 하니 오늘 용준 씨도 마샤 아가씨의 생일파티에 참석한다고 하던데요! 혹시 지금 여
“당분간 목숨은 붙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길어서 3일 정도는 살아 있을 거니까!”“3일 동안은 몸의 고름들이 점점 커지고 몸에는 지독한 악취가 서서히 퍼질 거예요! 두 눈은 실명이 되어가면서 점차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겠죠!”“거기다 온몸의 모든 뼈들이 부러지는 고통에 실제로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체감하게 될걸요? 물론 그대로 죽지는 않을 테지만요!”남서훈은 마샤가 자살하지 않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음보다 몇백 배, 몇천 배의 고통을 주겠노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마샤가 절대로 자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남서훈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요! 해독제를 먹지 않는다면 3일 후면 아무리 살고 싶어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예요!”마샤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감에 놀란 눈으로 남서훈을 바라보았다.“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거죠?”“제 남편에게 독을 쓰고 해치기까지 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제는 제가 직접 당신을 위해 만든 독을 느껴보세요. 당신에게 시간을 드릴게요.”“3일, 제 남편을 제 곁으로 데려오면 해독제를 드리죠.”“그게 아니면...”남서훈은 그 뒤의 말들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알고 있었다.이때, 마샤의 부모님도 그녀의 상황을 접하게 되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길이었다.남자 몇 명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남서훈이 주위를 둘러보니, 금속 가면을 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식이 잘못된 걸까? 오늘 마샤 아가씨의 생일연회에 용준이 나타나지 않은 걸까?“마샤...”마샤의 아버지가 그녀를 불렀다.딸의 얼굴과 몸의 곳곳에 고름이 생긴 모습을 보고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심지어 마샤의 몸에서 나는 악취로 인해 억지로 움직이려던 발마저 떨어지지 않았다.“아빠, 엄마.”마샤는 그들을 부르면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그러고는 벌어진 모든 상황과 남서훈이 독으로 그녀를 위협한 것까지 말했다.
남기준은 양나나의 부탁으로 마샤 아가씨의 생일파티 장소를 알아냈다. 그렇게 둘은 연회장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이제 가요.”양나나는 남기준과 함께 자리를 떴다.두 사람은 연호장을 빠져나와 택시를 불러 탔다. 양나나는 차에 앉자마자 자랑스럽게 말했다.“기준 삼촌, 방금 엄마가 너무 멋있지 않았어요? 놀라운 실력이죠?”남기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네.”그러자 양나나는 어깨가 으쓱해서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마샤 아가씨는 생긴 것도 추한데 성격까지 악독하던데요! 감히 아빠에게 접근해서 다치게 하다니, 엄마가 그녀에게 벌을 내린 것도 마땅한 것 같아요.”“아무튼 순순히 아빠를 내놓는 게 좋을 거예요.”“아니라면...” 양나나는 서서히 눈을 가다듬다가 어느새 날카롭게 서늘한 분위기로 변했다.꼭 남서훈을 닮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여서 기세가 그녀만큼은 못되었다. 그저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흥! 저도 엄마도 절대로 그 여자를 순순히 놔주지 않을 거예요!”“작은 아가씨, 지금 어디로 갈까요?”남기준은 묻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주인님이 계획이 있으시고 마샤 아가씨도 벌을 받고 있으니 아라발라 가문도 남기준 씨를 주인님에게 모셔 오실 겁니다. 아가씨, 아니면 저희도 바로 주인님을 찾아가죠?”주인님의 명령은 그가 운성에 남아 증조할아버지와 작은 아가씨를 돌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현재, 남기준은 작은 아가씨의 명령대로 아가씨를 X 국에 데려왔다. 이미 주인님의 명령을 어긴 셈이다. 하지만 주인님의 처벌을 받더라도 지금은 주인님과 작은 아가씨를 만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그가 주인님과 작은 아가씨를 함께 보호할 수 있었다.아무래도 혼자서 아가씨를 돌보는 방법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었다. 만약 예기치 못한 사고라도 당하면 주인님 앞에서 목숨을 부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하지만 양나나의 의지는 너무도 확고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엄마 찾으러 가지 않을 거예요.”남기준의 미간은 순간 찌푸려졌고 양나
다른 거지 아이들도 따라 불렀다.“대장님.”“대장님.”양나나는 손에 있던 떡과 만두를 전부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싸우던 거지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대장이 되었다. 그들은 떡과 만두를 먹으면서 양나나를 둘러싸고 앉아 각종 아첨을 떨기 시작했다. 그 뒤 양나나는 그들을 데리고 몇몇 가게 주인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오는 데 성공했다. 양나나는 얻어 온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고 전부 거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밤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거지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양나나와 함께 그들의 근거지로 돌아갔다. 그곳은 황폐된 가택이며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여 여기에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단지 굶어 죽는 것이 제일 두려운 거지 아이들만 모여서 살고 있었다. 배부르게 먹은 뒤 다들 누워 쉬고 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폐가의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쉬고 있던 거지 아이들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가 금방 다시 드러누웠다. 이 정도로 놀랄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무리의 어른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였고 양나나만 콕 집어 잡아갔다.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고 양나나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거지 아이들은 전부 아이들이었고 어른들과 대적하여 싸울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양나나는 그저 그들에게 음식을 나눠줬기에 거지 아이들의 대장이 된 것이지 거지 아이들과 친분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양나나의 목적이 바로 잡혀가는 것이었다. 양나나가 잡혀간 뒤 양나나를 대장으로 인정했던 거지 아이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중 한 아이가 눈매가 무서운 남자아이에게 물었다. “대장, 우리 새 대장을 상관 안 해도 되는 건가요?”남자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방금 자신에게 물음을 던진 거지 아이에게 되물었다.“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이 사람들이 딱 보기에도 재주가 있고 영특해 보이는 거
세돌이는 태어나서부터 이름이 없었다. 집에 오래된 하인이 아이를 가엽게 여겨 할머니한테로 보내줬고 할머니가 남들 모르게 키웠다. 할머니는 자애로우셨으나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빠가 이제 생각이 바뀌면 아빠에게 부탁하여 이름을 지어 받으라고 했다. 평소 할머니는 형제 순위에 따라 아이를 세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할머니가 갑자기 중독되면서 아이의 존재가 발각되었다. 아빠는 다시 아이를 내쫓아버렸고 그 아이를 돌봐주던 집의 오래된 하인도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비록 남자아이의 이름이 세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양나나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세돌아, 우리가 먼저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어때? 힘을 합쳐 여기에 있는 마스티프부터 먼저 죽여버리자.”이 네 마리의 마스티프는 보기만 해도 엄청 사나워 보였다. 그리고 양나나는 이미 규율을 알아냈다. 이 네 마리의 마스티프가 죽으면 오늘의 격투는 끝난다.“쟤들은 협력을 안 할 거야.”세돌이는 냉담하게 말했다.“이 중에 많은 사람들은 진짜로 풍운파의 후계자가 되어 싶어 해. 그렇게라도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려고. 이것을 위해서라면 저 애들은 그 어떤 대가도 안 두려워해. 그리고 오늘 우리가 진짜로 힘을 합쳐 이 마스티프들을 죽여버린다 쳐도 내일이면 두 배가 넘는 마스티프가 들어올 거야.”하여 그들은 단독 작전을 벌이든가 아니면 두세 사람씩 힘을 합쳐 한편으로는 격투를 벌이면서 한편으로는 수시로 덮쳐들어 뜯어 죽일 것만 같은 마스티프를 대처할 방법을 강구했다. 세돌이의 싸움 실력이 상당하여 격투장의 적지 않은 아이들이 무서워하고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제일 먼저 세돌이를 목표로 정하여 먼저 세돌이를 제거하고 나중에 차례대로 공격하기로 했다. 어떤 아이가 세돌이와 양나나를 향하여 돌진해 왔다. 하지만 의외로 보기에는 연약한 양나나가 싸움에서는 엄청 이악스러워 어느새 세돌이의 조력자가 되어있었다. 그러다 보니 양나나도 격투장에서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세돌이의 표정은 냉담했다. 잘생긴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양나나의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도 알 수 없었다.세돌이는 그저 놀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까만 두 눈으로 양나나를 보면서 물었다.“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왜 나한테 주는 거야?”양나나가 히죽 웃었다.‘이것은 아주 귀중한 물건이야. 돈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야.’하지만 양나나에게는 그렇게 귀중한 물건이 아니었다. 엄마가 양나나에게 많이 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일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주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세돌이는 달랐다. 양나나는 세돌이에게 꼭 주고 싶었다. 양나나가 웃을 때는 살구같이 동그란 눈이 반달이 되면서 아주 예뻤다. 아이의 새까만 두 눈은 밤하늘보다 더 진하고 유달리 빛났다. 양나나는 세돌이에게 말했다.“이 알약들은 아주 귀중한 것이니 잘 간수해두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해. 여기에 딱 한 번 왔는데 너랑 나랑 아주 잘 맞는 것 같아. 어쨌든 우리는 앉아서 같이 하룻밤 잔 사이이고 훈련할 때 넌 날 도와줬어. 그리고 나와 함께 목숨 걸고 싸운 동지잖아. 또...”양나나는 눈을 깜박였다. 두 눈에는 진심이 담겨있었고 그리고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난 널 좋아해. 그래서 이걸 주고 싶어.”양나나는 그저 일곱 살짜리 아이일 뿐이다.비록 아주 지혜롭고 착하고 아이큐도 높은 아이지만, 현재의 양나나로 놓고 말하면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좋아하면 그저 좋아하는 것이다. 양나나가 엄마를 좋아하고 아빠를 좋아하고 강하성과 윤지안을 좋아하고 쌍둥이들 등등...하지만 양나나가 이 말을 하자 세돌이는 흠칫하면서 놀랐다. 세돌이의 반짝이는 두 눈은 양나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마음속으로 이 말만 계속 반복했다. ‘난 널 좋아해, 그래서 이걸 주고 싶어.’‘좋아한다고?’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세돌이가 기억이 있어서부터 그 누구도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상했던 할머니도 좋아한다는 말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