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아는 조롱하는 눈으로 안효주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렇게 됐는데 당신은 왜 내가 돌아오는 것을 겁내고, 강주환 앞에 나타날까 봐 두려워하죠?”“그리고 4년 전, 강주환은 당신을 보기만 해도 혐오스럽고 구역질이 난다고 했어요. 그가 당신을 아내로 맞아 결혼할 리가 없어요!”윤성아의 입술은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안효주에게 물었다. “그래서, 강주환이 당신과 결혼했어요? 술에 취해 당신과 잠자리를 했다는 이유로 당신과 결혼했느냐고요?”안효주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고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았다.그녀는 다시 한번 욕설을 퍼부었다. “이 빌어먹을, 뻔뻔스러운 년아! 너만 아니었다면 나와 주환 씨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윤성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안효주는 번마다 입만 놀리며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 안효주를 그녀가 계속 참아준다면 너무나도 무르다 못해 바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그렇게 생각한 윤성아는 차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짝!' 하고 안효주의 뺨을 때렸다.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된 일에 안효주는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 앞에 있던 윤정월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그리고 윤성아의 손아귀 힘은 너무 강력했다.윤성아가 뺨을 때리자마자 안효주의 입가에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하마터면 이 두 개가 날아갈 뻔했다.안효주는 화가 나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빌어먹을 년!”안효주는 분노에 차서 욕을 퍼부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짝!' 또 한 번 뺨을 맞았다.이번에 윤성아는 있는 힘을 주어 세게 쳤다.비록 빗맞았지만 통증은 너무 심했고, 심지어 핏물과 함께 앞니 두 개가 그녀의 입안에서 떨어져나왔다.“윤성아!”안효주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고 말할 때마다 발음도 새는 것 같았다.윤정월도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윤정월은 안효주가 맞은 것에 분노하며 손을 들어 윤성아의 따귀를 때리려 했지만 윤성아에게 손목을 잡혔다.“너!”윤정월은 씩씩댔고 가슴은 심하게 들썩댔다. “야 이년아
그의 눈은 새끼 늑대처럼 사납고 거칠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내뱉은 말은 전부 진심이었다.안효주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그녀는 양신우에게 말했다. “똑똑히 알아둬, 네 누나는 나야!”양신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요?”그는 윤정월을 향해 말했다. “이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거에요?”생각을 해보니 윤정월은 윤성아에게 잘해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안효주에게 엄청 잘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 그가 들은 대화를 조합해보면...양신우는 실로 믿을 수 없었다.그는 윤정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엄마가 정확히 얘기를 해보세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저 여자가 진짜 엄마 친딸이에요?”윤정월이 대답도 하기 전에 양신우는 윤정월에게 말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전 인정 할 수 없어요. 제 누나는 윤성아 단 한 명뿐이에요!”“그 누구도 제 누나가 될 수 없어요!”“아니야.”윤정월은 몇 걸음 다가와 양신우에게 설명했다. “아가씨는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엄마로 삼고 싶어 하는 거야.”“하지만 나는 아가씨에게 누가 될까 걱정이 돼서 아직 동의하지 않았고.”“그런데 아가씨는 우리에게 정말 잘해주잖니. 신우야, 우리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고 네가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건 모두 아가씨 덕분이야.”윤정월은 양신우에게 효주 누나라고 부르라 했다.양신우는 거절했다.영주시.안효연이 호진 그룹에 와서 계약 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었다.바로 그때, 강주환이 왔다.남자는 검은 옷을 입었고, 기세는 당당하고 차가웠다.그가 나타나자, 안효연과의 계약을 담당하는 계열사 사장이 허허 웃으며 맞이했다. “강 대표님, 오셨습니까?”“네.”강주환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안효연을 본 그는 바로 시선을 옮겨 같이 온 나엽을 보았고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나엽과 안효연은 상관없다는 듯 태연하게 행동했고, 강주환은 그들을 바라보았다.특히 나엽은 도발적인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그는 강주환
그리고 뜻밖에도 나엽과...머릿속에 다시 한번 사무실에서의 광경이 떠올랐다. 눈 속에 나엽 한 남자만을 담고 그에게만 다정히 웃어주던 한 여자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이.강주환의 마음이 아프게 쓰라려 왔다.“쿨럭쿨럭”갑작스러운 기침에 강주환이 고통스러워하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연거푸 기침하던 그가 손에 뱉어낸 건 새빨간 피였다...같은 시각.나엽이 안효연을 데리고 운성 안씨 가문에 도착했다.안씨 가문 별장 앞에 선 안효연은 익숙한 듯 낯선 눈앞의 광경에 가슴이 저릿해짐을 느꼈다. 숨이 턱 막혀오는, 깊은 물 속에 가라앉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나엽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다정하게 바라보았다.“효연아, 앞으로 이곳이 너의 집이야. 비록 너의 부모님께선 우리의 연애를 찬성하지 않았지만, 너를 사랑해서 반대하는 것이니 난 괜찮아.”“하지만 여동생과는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아.”이전에 안효연에게 사고가 났을 당시 둘은 함께 현장에 있었다.나엽은 여전히 안효주를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 안효연에게 사고가 난다면 그건 높은 확률로 안효주가 한 것이라고.안효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금방 입을 열고 무어라 말하려고 할 때, 별장 안에 있던 도우미가 그녀를 발견하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 눈을 떼지 못했다.머뭇거리던 도우미가 문을 열고 나왔다.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은 채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안효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가씨! 아가씨 맞죠?”안효연이 어렸을 때부터 돌봐주었던 장 씨 아주머니였다. 이제 50대가 된 얼굴의 주름은 흘러간 세월을 고스란히 알려주고 있었다.자매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돌보아 주신 분이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안효주가 안효연을 본떠 성형했어도 장 씨 아주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안효연을 알아봐 주었다.그러나 안효연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을 딸처럼 돌봐온 장 씨 아주머니까지.그러나 알 수 없는 친근감이 그녀의 경계심을 허물었다. “네. 저예요.”“아가씨!
서연우의 손이 움찔 반응했다. 그녀의 눈꺼풀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깨어나려고 노력하는 듯이.부녀가 동시에 어머니와 아내의 움직임을 발견했다.안진강이 침대를 더듬거리며 달려와 울먹였다. “연우야, 이제 깨는 거야?”“빨리 눈 떠서 봐봐. 우리 딸이 돌아왔어!”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서연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그녀는 눈앞의 딸을 알아보곤 단번에 눈시울을 붉혔다. 가냘픈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감격과 떨림이 느껴졌다. “효연아, 내 딸...”“내 딸이 돌아왔구나! 효연이가...! 이거 꿈 아니지?”안효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꿈 아니에요, 엄마. 저 효연이 맞아요...”서연우가 울음을 터뜨렸다.그동안의 불안과 설움을 쏟아내듯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효연아. 엄마는 네가 살아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딸의 실종사건 이후 서연우는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크게 울 수가 없었다. 울어버리면 자기 딸이 죽었다고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울더라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흐느껴야 했다. 한밤중에 꿈을 꾸며 소리 없이 베개를 눈물로 적신 게 몇 번이던가.“내 딸...”그녀가 일어나 앉으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몇 년 만에 만난 자기 딸을 한번 안아보고파서.안효연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제지했다. 그리곤 허리를 숙여 자신의 어머니를 품에 꼭 껴안았다. “엄마, 저 돌아왔으니까 이제 울지 마요. 네?”안효연이 어머니 얼굴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어머니더러 울지 말라면서 자신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안효연이었다.“응. 안 울어.”서연우가 환히 웃으며 대답한다. “딸이 돌아왔는데.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다고!”두 모녀가 도란도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병실 안의 다른 사람들은 흐뭇하게 둘을 보고 있다.이때, 안효주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빠, 엄마가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지금 어떠...”말을 마치기도 전에 병상 앞에 앉아 있는 안효연을 보고 놀란 채로 멈춰 섰다.놀람도 잠시, 그녀는 곧바로 매서운
안효연이 피식 웃었다. 누가 봐도 안효주의 행동은 의심스러웠다.“내가 네 언니가 아니라 생각하면서 왜 친자 검사는 못 하게 막는건데?”“...”“그...”얼굴이 붉어진 채로 할 말을 찾지 못한 안효주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왜냐면 그딴거 필요 없이 난 네가 언니가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안효주가 무언가 또 말하려 할 때, 침대 위에 누워있던 서연우가 눈썹을 찌푸리며 안효주를 나무랐다. “효주야, 너 도대체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소란이야?”“네 언니가 확실해. 내가 내 딸도 못 알아보겠어?”서연우가 첫째 딸의 편을 들어주며 말했다.“네 언니는 아직 살아있고,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거야.”“동생으로서 기뻐하진 못할망정 이게 무슨 짓이야.”안효주의 등장으로 갑작스레 차가워진 분위기에 안진강도 화가 났다. 그는 노발대발하며 호통을 쳤다. “안효주. 또다시 소란 피울 거면 나가.”집안 첫째 딸의 귀환으로 서연우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지금은 창백했던 얼굴도 혈색이 돌아오고 있는 차였다.서연우는 사랑스러운 첫째 딸을 데리고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으므로 안진강을 시켜 급히 퇴원 수속을 밟았다.이날.안효연이 부모님을 따라 안씨 가문의 집으로 돌아왔다.집안의 모든 것은 낯설었지만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서연우가 안효연을 데리고 8년간 비워두었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효연아. 네가 실종된 8년간 단 한 번도 이곳을 건드리지 않았어. 8년 전 모습 그대로야.”“지금은 딸 취향이 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 바로 사람을 시켜 바꿔줄 테니.”“괜찮아요.” 안효연이 손사래를 치며 고마워했다.방안의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동년의 정겨움이 묻어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방 안을 둘러본 그녀는 8년간 주인 없던 이 방은 먼지 한 톨 없이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두 모녀가 방안에서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안진강은 셰프를 시켜 풍성한 저녁을 준비하도
안효주가 냉소를 지었다.“미친 거 아니예요? 애초에 걔를 목 졸라 죽였어야지, 왜 키우셨어요?”“저한테 원한이 있어서, 제 앞길 막으려고 그러신 거예요?”윤정월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야, 효주야. 엄마를 믿어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반드시 목 졸라 죽였을거야.”안효주는 자신의 분노를 윤정월에게 전부 표출했다. “결국엔 당신 때문이잖아요! 그때 그 아이를 데려와 키웠냐고요! 3년 전에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해서 지금 윤성아와 나엽, 두 사람이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윤정월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한편, 강주환이 운성으로 따라왔다. 그는 진하상을 시켜 박정윤이 안씨 가문에 갔다는 것을 알아냈다. 강주환이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이야? 박정윤이 왜 안씨 가문에 갔어? 박정윤이랑 안씨 가문이 무슨 관계야?”진하상도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강주환에게 말했다.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박정윤이 바로 8년 전 실종된 안씨 가문 큰아가씨예요. 기억상실증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이번에 운성으로 온 것도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해요.”강주환은 깜짝 놀랐다. 예전에 사람을 시켜 안효주와 윤정월의 친자 검사를 했는데, 모녀 관계로 나온 일이 생각났다. 지금 박정윤이 안씨 가문에 가서 8년 전 실종된 안효연이라고 한다고?그가 알기론 안효연과 안효주는 쌍둥이였다. 도대체 이 쌍둥이 자매와 윤성아는 무슨 관계일까?설마 윤성아가 진짜 8년 전 실종된 안씨 가문 큰딸일까?강주환과 윤성아는 7년 전 처음 만났다. 강주환이 예전에 윤성아가 영주시에서 살았던 과거를 조사했었는데, 그 과거가 다른 사람의 것이었거나, 또 아니면... 강주환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박정윤과 윤성아가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강주환은 다시 안진강과 약속을 잡았다. “안 대표님, 큰 따님이 최근 돌아왔다고 들었어요.”“맞습니다.”큰딸이 돌아와 안진강의 기분은 아주 좋았다. 강주환은 안
그리고 엠파이어 가든에도 갔다. 여기는 윤성아와 강주환이 5년 동안 엮여있던, 강주환이 5년 동안 윤성아를 책임지고 먹여 살렸던 곳이다. 강주환은 절대로 여기에서 아이를 키우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윤성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로 왔다. 그리고 귀신에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지문 잠금장치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때,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뜻밖이였다,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윤성아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다니. 윤성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파트는 3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배치가 그대로였고 깨끗했다. 심지어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에는 물이 절반 담겨 있었다. 주방 옆에 놓인 냉장고에는 신선한 식자재도 들어있었다. 윤성아는 자기도 모르게 설마 3년 동안 강주환이 가끔 여기에 온 게 아닌지 생각했다.윤성아가 침실에 가서 문을 여니 방 안의 커튼, 진열, 그리고 침대 위의 이불까지 모두 3년 전 그녀가 해놓은 그대로였고 다른 여자의 흔적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옷장 안에는 그녀와 그 남자가 3년 전 남긴 옷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윤성아는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세련된 그녀의 얼굴엔 비꼬는 듯한 미소가 드리웠다. 윤성아는 아파트에 오래 머무르지도, 물건을 건드리지 않고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떠났다. 그녀는 해변의 별장으로 갈 생각이었다.그곳은 강주환이 그녀를 감금했던 감옥 같은 존재였고, 나엽과 도망치기 전 다리가 부러지면서까지 탈출하고 싶었던 곳이다.마찬가지로, 윤성아가 알고 있는 강주환의 부동산 중 마지막 한 곳이었다. 만약 거기에서도 안효주가 말한 아이를 찾지 못하면 윤성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앞길이 막막했다. 윤성아는 차를 타고 해변 별장 근처로 왔다. 3년 전, 해변의 땅을 강주환이 전부 샀는데 윤성아를 가둔 별장은 그중에서 바다 경치가 제일 예쁘고, 산을 등지고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별장의 2층에 서면 가장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그곳은 바다를 바라보고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단호했다. 강하성의 말을 들은 윤성아는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아빠가 찾아주는걸 보면 아빠가 널 많이 사랑하나 보네.”“그러니 꼬마야, 아빠 걱정하게 하시면 안돼.”윤성아는 다시 한번 물었다. “이모에게 부모님 연락처 알려줄 수 있어?”꼬마가 표지에 나온 사람을 찾고 싶어 혼자 몰래 나와서 부모님 연락처를 안 알려주는 것 같아서 윤성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집이 어디인지 알려줄래? 집에 데려다줄게, 어때?”강하성은 조금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강하성은 차에 타고 알려준 별장 주소로 윤성아가 데려다주도록 했다. 영주시는 땅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싼데 그중에서도 여기는 사생활 보호가 가장 잘 되어있고 학교와 병원 등을 겸비했다. 윤성아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4년 전에는 황량한 황무지였었는데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많은 별장이 생겼다니! 그러나 그녀는 여기도 강주환 소유라는 것을 몰랐다. 3년 전, 강하성을 숨기기 위해 그가 직접 지은 별장이다. 강하성이 차 앞에 우두커니 서서 윤성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모, 혹시 전화번호 줄 수 있어요?”윤성아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강하성에게 전화번호를 줬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강하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줄곧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윤성아는 점점 멀어져가는 강하성을 보며 왜인지 가슴이 답답해지다 못해 아프기까지 했다. 심지어 눈앞의 꼬마를 불러세우고 싶었다. 윤성아는 자기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갑자기 3년 전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면 이 아이처럼 사랑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아이가 왜인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강하성이 별장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다. 그를 찾고 있던 집사와 한 무리의 경호원이 우르르 몰려왔다. 집사는 다급함에 하마터면 울뻔했다.“아이고, 작은 도련님! 하성 도련님, 어디 가셨어요! 계속 찾지 못하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