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때 우리는 이미 아래로 떨어지고 있어서 난 우리가 죽을 줄 알았어. 그러니 이런 일들은 당연히 너한테 말할 필요가 없게 된 거야.”“그렇지만 지금은요? 우리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그런데 방금 당신 상황을 물었을 때도 그저 머리가 어지럽다고만 하고 팔이 부러진 건 말해주지 않았잖아요. 만약 제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어요?”윤슬은 눈이 벌개서 단단히 화가 난 듯 그를 노려봤다.부시혁은 켕기는 게 있는 듯 시선을 피했다.그 모습을 본 윤슬은 화가 나서 허리에 손을 올리
그 모습을 본 윤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허둥지둥 그를 잡았다.부시혁이 너무 무거운 탓에 그녀는 두 걸음 뒤로 비틀거리다 겨우 몸을 바로잡았다.“부시혁 씨, 왜 그래요?”윤슬은 그를 부축한 뒤 급히 물었다.부시혁은 아무 반응도 없었고,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하지만 윤슬은 그가 기절했다는 것을 알아챘다.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데다 어지럽다고 했기 때문에 기절하는 건 시간문제였다.하지만 이렇게 되니 부시혁은 혼자 갈 수 없었고, 그녀에게 의지해 갈 수밖에 없었다.윤슬은 숨을 깊게 들이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밖에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윤슬은 몸 뒤의 빗소리를 듣곤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의 운이 정말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폭우가 처음부터 내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동굴에 들어간 후에야 내렸기 때문에 하늘이 보살펴 준 셈이었다.그런 생각에 윤슬은 참지 못하고 살짝 웃었고,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저건...... 장작과 옷 그리고 주방 도구들?게다가 마른 볏짚과 낡은 이불 두 채도 있었다.여기에 어떻게 이런 것들이 있지?설마 부랑자가 사는 동굴인가?아니다. 그럴 리 없다. 어떤
그 순간 윤슬은 남녀의 경계를 신경 쓰지 않고 부끄럽거나 두려움 없이 부시혁의 옷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그의 몸 위의 정장 외투는 벗기기 쉬웠지만, 외투를 벗겼을 때 윤슬은 눈앞의 광경에 놀라 참지 못하고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부시혁의 등 뒤의 흰 셔츠는 이미 새빨간 피에 완전히 물들었다.하지만 오랫동안 물에 젖은 상태라 새빨간 핏자국은 번져 핑크색으로 변했다.“세상에!”윤슬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눈동자마저 흔들리고 있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릴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계속 그의 등 뒤의 상처가 단지
십여 분 뒤, 드디어 윤슬은 약을 다 발라주고 붕대로 감은 뒤 위장복으로 갈아입히기 시작했다.윤슬은 조심스럽게 그의 양팔을 소매 속에 집어넣었고, 그의 몸을 뒤집어서 앞의 단추를 채우려고 할 때 문득 그의 왼쪽 가슴에 흉터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그 상처는 10cm 정도 되는데 너무 옅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실로 꿰맨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수술 흉터 같았다.그러니까 부시혁이 가슴을 열고 수술을 한 적이 있단 말인가?언제 일일까? 그녀는 왜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걸까?그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상황을 발견했다. 이 동굴, 그리고 동굴 속의 이 물자들은 또 어떻게 된 상황일까?“이것들은...... 어디에서 난 거야?”부시혁은 몸 위의 이불을 들며 물었다.윤슬은 앉아서 설명했다.“동굴에 있었어요.”“동굴에 있었다고?”부시혁은 눈썹을 치켜올렸고, 이 대답에 의문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당신을 엎고 이 숲을 빠져나가 근처에 사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어요. 사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가기도 전에 날씨가 바뀌었지만 다
“그래?”부시혁은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윤슬은 웃음기가 짙은 그의 눈빛과 마주하자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고, 그와 동시에 켕기는 게 있는 듯 시선을 피했다.“무...... 물론이죠.”그녀는 분명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다만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봐버렸을 뿐이다.“그래. 너 믿을게.”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진 것을 본 부시혁은 낮게 두 번 웃더니 더는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더 놀리다가 화를 내면 어쩌란 말인가?“참.”윤슬은 고개를 돌렸다.“가슴
“그 여자는 분명 아버지의 내연녀가 맞아.”부시혁은 미간을 만지며 말했다.그의 말에 윤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정말 내연녀라고요?”“응.”“그런데 왜 그 여자한테......”“그 여자는 결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내연녀가 아니고, 우리 부모님의 감정을 파괴시킨 적도 없어.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은 원래부터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셨어. 둘이 함께 하게 된 건 혼인 때문이었고, 날 낳으신 것도 책임 때문이었어. 내가 태어난 후, 두 분은 각방을 쓰셨고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밖에서 왕수란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 거야.”부시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