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신장 하나로도 살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윤슬이 고개를 갸웃했다.임이한이 주머니에서 메스를 꺼내 또다시 돌리기 시작했다.“건강한 사람이라면 가능하죠. 하지만 신부전이라는 병은 신장에만 무리가 가는 게 아니에요. 목숨은 붙어있겠지만 아마... 말 그대로 겨우 살아있는 수준이겠죠. 게다가 고도식 경우는 또 달라요. 고도식은 신장 하나로 절대 생존할 수 없어요.”“왜요?”윤슬이 의아한 듯 눈을 깜박였다.“일단 나이도 꽤 많은 편이고 여러 가지 지병도 많아요. 심장도 안 좋고요. 설령 새 신장을 하나 이식받는다
수화기 저편의 있는 누군가가 알겠다고 했는지 그제야 임이한은 만족스럽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고도식... 지금 무슨 수를 써서든 신장 두 개를 동시에 이식받으려고 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걸 어쩌나? 당신한테는 두 개가 아니라 한 개도 아깝거든. 기증자도 좋은 사람에게 장기가 이식되길 바랄 거야. 당신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한편, 처방약을 받은 고도식 부부가 차에 탑승했다.하지만 문이 닫히고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에 왠지 숨까지 가빠지는 분위기였다.고개를 푹 숙인 고도식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장 비서의 질문에 부시혁이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왜 도와야 하죠?”“고도식 대표는 윤슬 대표님의 생부라면서요?”“아니요. 슬이가 직접적으로 고도식의 생명에 위협이 가는 짓을 한다면 당연히 돕겠지만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고도식이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죠.”고도식이 죽는다면 윤슬이 그의 친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더 줄어들 테고 고도식의 죽음과 함께 윤슬의 원한도 사라질 테니 앞으로 두 집안의 악연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그러네요.”부시혁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장 비서가 고개를
요즘 고유정의 일로 바쁘게 보내다보니 정말 까맣게 잊고 있던 윤슬이었다.부시혁이 말해 주지 않았으면 인사도 못 드렸겠네.“알겠어요. 갈게요.”윤슬이 흔쾌히 승낙하니 부시혁의 눈동자에 기쁨이 서렸다.“그래. 오늘 밤 바로 초대장 보내줄게.”“그래요. 그럼 끊을게요.”말을 마친 윤슬이 바로 장정숙에게 휴대폰을 건넸다.휴대폰을 든 아주머니가 물었다.“더 하실 말씀 없으세요?”“딱히 할 말도 없는데요 뭐.”윤슬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단호한 윤슬의 말투에 장정숙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휴대폰 액정을 힐끗 바라보
“믿을 만한 사람인 건 맞아?”“오지랖이 좀 넓긴 한데 좋으신 분이야. 그리고 어차피 시력 회복하기 전에 잠깐 쓰는 건데 뭐.”“그럼 다행이고.”“그 얘기는 그만하자.”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윤슬이 고개를 돌렸다.“네 얘기 부터 하자. 임 교수님한테서 들었는데 치료에 잘 협조 안 한다면서. 어떻게 된 거야?”“협조 잘 하고 있어.”분명 윤슬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유신우는 왠지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정말?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한다면서? 그게 협조 안 하는
“아니요.”남자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저 여자 확실히 맞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시력을 잃었는지는 모르겠네요.”남자의 설명에 최성문의 표정은 많이 풀어졌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매서웠다.“얼굴 확인했으니 됐어. 애들 풀어서 제대로 감시해. 매일 어디로 움직이는지 뭐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납치해. 최태준 그 자식... 저 여자를 정말 좋아한다면 결국 걸려들 거니까.”최성문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네, 도련님.”그제야 고개를 돌린 최성문이 눈을 감고 차량이 천천히 거리를 떠났다.한편, 아파트로 들어가려던 윤슬이
부시혁?윤슬은 인상을 찌푸렸다.그가 왜 온 거지?“들어오라고 하세요.” 윤슬은 입술을 움직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장정숙이 문 앞에서 윤슬의 뜻을 전하기도 전에 부시혁은 이미 집안으로 들어와 거실로 향하고 있었다.“윤슬아.” 부시혁은 소파에 앉은 윤슬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윤슬은 고개를 살짝 돌린 뒤 그에게 물었다. “부 대표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물건 좀 주려고.” 부시혁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윤슬은 의심스럽게 물었다. “저한테요? 죄송하지만 저는 그쪽이 직접 와서 건네줘야 할 물건은 없는 거 같은데
장정숙은 이 상황을 보고 얼른 휴지 두 장을 뽑아서 건넸다. “도련님, 여기요.”“감사해요.” 부시혁은 감사 인사를 건넨 뒤 휴지를 받고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윤슬은 휴지 뽑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그에게 물을 뿜은 걸 확신했다.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아주머니, 대표님한테 새 수건으로 가져다주세요.”“네.” 윤슬이 부시혁에게 수건을 가져다 주려는 걸 보고 장정숙은 기뻐서 얼른 대답을 한 뒤 욕실로 향했다.부시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윤슬을 보았다. “너…”“왜요?” 윤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