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에 있는 사람들도 이 광경을 지켜봤다.그는 전에 도아영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오늘은 이토록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를 부축하다니.도아영은 진작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손을 빼냈다.“고마워요.”그제야 이수호는 방금 그녀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전에 이경 그룹에서 도원 그룹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다들 이 두 집안이 사이가 안 좋은 거로 여기며 선뜻 도원 그룹과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이수호와 도아영의 사이가 조금은 나아졌으니 도원 그룹에 손 내밀 협력사도 슬슬 많아질 것이다.“감히 날 이용해?”예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계략이 많은 줄은 몰랐다.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부잣집 딸로만 여겼는데 알고 보니 본인만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서로 이용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거라면서요?”도아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전에 이수호가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를 이용했고 이제 와서 전세가 역전됐을 뿐이다.“오늘 파티에 왜 날 초대했는지 모를까 봐요? 도원 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수작이잖아요. 썩 쉽지만은 않을걸요.”도아영이 완전히 오해하자 이수호의 안색이 확 돌변했다.“뭐라고? 집어삼켜?”생각도 참 야무진 그녀였다.할머니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지녔지만 이수호는 절대 아니다.옆에 있던 안지원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그건 정말 오해예요, 아영 씨. 대표님은...”“대표님은 뭐요? 도원 그룹을 넘본 게 아니라고요? 말도 안 돼!”오늘 이경 그룹에서 초대한 사람들은 죄다 강주의 유명 인사들이다. 게다가 언론사까지 불러왔는데 도아영과 이수호의 관계를 널리 떠벌릴 목적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믿을까?도아영은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이수호까지 남현숙과 같은 생각일 줄이야.“잘 들어! 난 절대 너희 집안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 따위 없어!”이수호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요즘 그는 줄곧 도아영을 향한 솔직한 감정을 마주했다. 그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자 도아영이 뒤로
강주에 도아영이 이수호를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존엄도 전부 내려놓을 만큼 사랑하고 있다.도아영과 이수호의 결혼식 날, 강이나의 한마디에 이수호는 그녀를 매정하게 버리고는 홀로 웨딩카를 운전하여 그의 첫사랑을 마중하러 공항으로 갔다.도아영이 3년이나 손꼽아 기다린 결혼식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결혼식 날 그녀는 이수호의 원수에게 납치당했다. 납치범은 이수호를 모욕하려고 그녀를 3일이나 괴롭혔다.그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옷을 홀딱 벗긴 채 갑판 위에 묶은 다음 라이브 방송까지 진행했다. 이 기회에 이수호에게 통쾌한 복수를 날릴 생각인 게 분명했다.짜고 비릿한 바닷바람에 도아영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납치범에게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자존심은 이미 다 짓밟혀 가루가 돼버렸다. 하지만 그날 이수호는 도아영을 신경 쓰기는커녕 강이나와 혼인신고 했다.“이수호, 우리한테 10억만 주면 약혼녀를 풀어줄게. 안 주면 바다에 확 던져버릴 거야.”납치범은 거의 모욕에 가까운 말투로 이수호를 협박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이수호의 코웃음뿐이었다.“몸이 더러워진 여자가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이수호의 말에 도아영은 충격에 빠졌다.‘몸이 더러워졌다고?’도아영은 이수호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이수호를 위하여 오랫동안 순결을 지킨 그녀였다. 단지 이수호의 결벽증 때문에. 이는 다른 사람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3년 동안 도아영은 이수호의 말이라면 뭐든지 고분고분 따랐다. 이수호가 죽으라고 한다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이렇게 하면 이수호가 적어도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수호가 그런 생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수호가 전화를 끊어버리자 납치범은 화를 내면서 도아영을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했다.도아영은 문득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주에 도아영이 강이나의 대체품이라는 걸 모르는
도아영이 자리를 비운 후에야 몇몇이 다시 비웃기 시작했다.“어디서 성질을 부려? 이따가 대표님이 약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또 들어가서 주울 거면서.”“그러게 말이야. 대표님이 사랑하는 여자가 강이나 씨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쟤랑 결혼해서 득이 될 게 뭐가 있어? 하도 남현숙 어르신이 예뻐해서 저 정도지, 안 그러면 쳐다보지도 않을걸?”...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평가했다.도아영은 홀딱 젖은 채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도아영의 새어머니 유정연이 그녀를 보고는 다급하게 따라갔다.“도아영, 어디 갔었어? 꼴이 왜 이래? 오늘 네 약혼식인 거 몰라? 당장 가서 옷 말리고 와. 그리고 이렇게 보수적인 스타일로 입으면 어떡해? 섹시하게 입어야 남자가 좋아한단 말이야.”새어머니 유정연이 그녀의 옷깃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가슴골이 보여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도아영은 유정연을 신경 쓸 새도 없이 연회장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하객들로 붐볐고 연회장의 조명이 어두웠으며 사람들이 한 남자에게 아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이수호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차가운 얼굴은 마치 얼음 조각처럼 완벽했다. 깊은 두 눈에는 웃음기라곤 전혀 없었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오뚝한 코와 얇은 입술은 완벽한 걸작 같았다.“남자는 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야. 오늘이 지나면 넌 이 대표님의 약혼녀고 앞으로 네가 할 일은 이 대표님을 기쁘게 해서 하루빨리 아이를 갖는 거야. 그래야 결혼하지. 이씨 일가의 사모님이 되면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어.”유정연이 점점 흥분하며 말했다. 누가 보면 오늘 이수호와 약혼하는 사람이 그녀인 줄 알겠다.그녀의 말에 도아영이 싸늘하게 웃었다.‘엄청난 부귀영화?’전생에 도아영은 이수호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3년이나 헌신했다. 그런데 결국 결혼식 날에 납치당했고 3일 동안 갖은 괴롭힘을 당했다.납치된 첫날 도아영은 이수호에게 제발 구하러 와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런데 이수호는 그녀와 결혼할
도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밖에 있던 이수호의 비서가 다급하게 달려왔다.이수호는 하늘이 무너지기 전에는 절대 얼굴색 한 번 변할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전 도아영이 파혼 얘기를 꺼냈을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지금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도아영은 강이나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수호가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비우려 하자 도아영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대표님, 우리 얘기 아직 안 끝났는데요.”“비켜.”이수호의 말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눈앞의 도아영은 그에게 있어서 단지 이경 그룹과 할머니를 상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기에 그녀에게 감정이라곤 전혀 없었다.도아영과 약혼할 수는 있어도 만약 오늘 강이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도아영은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조급해하는 걸 보니 강이나 씨한테 가려나 봐요?”이수호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그럼 내가 어디 갈 것 같아? 이나 너 때문에 손목까지 그었어. 경고하는데 이경 그룹 사모님 자리를 너한테 줄 수는 있지만 딱 그것뿐이야. 다른 건 바라지도 마.”이수호의 말투에 도아영은 가소롭기만 했다.그녀는 강이나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무슨 짓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수호는 강이나와 함께 그녀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심지어 그들 사랑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도아영이 언성을 높였다.“대표님, 오늘은 대표님과 나의 약혼식 날이에요. 만약 강이나 씨한테 간다면 우리 약혼은 없던 일로 할 겁니다.”도아영의 목소리가 그리 높진 않았지만 주변의 하객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카메라 플래시가 두 사람을 향해 계속 반짝였다.이수호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파혼으로 날 협박하려고? 도아영,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그러고는 도아영의 옆을 스쳐 자리를 떠났다. 도아영에게 이씨 일가와 파혼할 용기가 절대 없다고 확신했다.도아영은 이수호가 자리를 비우자 거만하지도 비굴하지
옆 방, 주민서는 맥주 세 병을 마시고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휴대전화로 실검을 보던 도아영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주민서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물었다.“내가 언제 이수호한테 성 기능 장애가 있다고 했어?”“내가 그렇게 썼어. 기사는 충격적인 내용이 있어야 사람들이 본다고.”도아영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주민서가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결과? 무슨 결과가 있겠어? 이수호가 내 목에 칼을 대고 협박이라도 하겠어?”쾅.그때 누군가가 룸 문을 발로 걷어찼다. 룸 안의 노랫소리가 삽시간에 멈췄다.도아영은 문 앞에 서 있는 이수호를 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이수호가 찾아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기사 내보낸 사람이 너야?”이수호의 목소리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주민서는 겁에 질려 도아영의 뒤에 숨어버렸고 도아영은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그래요.”“진짜 너라고?”이수호는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다가오더니 주민서를 확 밀어버렸다. 그 바람에 주민서는 심정우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다 꺼져!”그를 본 순간 주민서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원래는 도아영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심정우가 그녀를 끌고 룸 밖으로 나갔다.“알았어. 당장 꺼질게.”문이 닫혔고 룸 안에 도아영과 이수호만 남게 되었다.그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차갑게 말했다.“파혼한 이튿날에 클럽에 와? 도아영, 내가 예전에 널 너무 만만하게 봤어.”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자니 도아영은 전생에 납치범이 그녀를 괴롭힐 때의 역겹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순간 헛구역질이 나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대표님, 약혼식 날에 날 버리고 강이나 씨한테 간 건 대표님이에요. 우리 집안은 그리 대단한 집안도 아니고 이씨 일가에 한참 못 미쳐요. 그러니까 여기서 깔끔하게 끝내요, 우리.”‘깔끔하게 끝내자고?’이수호가 코웃음을 쳤다.“깔끔하게 끝낸다는
이튿날 아침 이수호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도우미가 짐을 챙기는 걸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지?”“대표님, 전부 도아영 씨 물건들이에요. 어제 도아영 씨가 전화 와서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면서 물건들을 정리해서 보내 달라고 하더라고요.”눈앞의 캐리어를 보던 이수호의 머릿속에 도아영의 모습이 스쳤다.평소 이 시간이면 도아영은 아침상을 차려놓고 기대에 찬 얼굴로 그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었다. 그러고는 의자까지 빼주었고 재미도 없는 화제를 꺼내곤 했다.그런데 오늘 그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어딘가 허전한 것 같았다.자신이 도아영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문득 알아차린 이수호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얼른 정리해서 치워. 눈에 거슬리니까.”“네... 대표님.”이수호는 거실 의자에 앉았다. 텅 빈 테이블을 보고는 불만을 드러냈다.“아침 아직 안 됐어?”“죄송합니다, 대표님. 평소에는 도아영 씨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새로운 도우미가 아직 시간을 잘 몰라요...”“빨리 준비해. 출근해야 하는데.”손목시계를 확인하던 이수호는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빵과 계란 후라이, 그리고 소시지를 가져왔다.이수호는 빈약한 아침상을 보고는 도우미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이게 뭐지?”“아... 아침 식사입니다.”겁에 질린 도우미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이수호가 차갑게 말했다.“난 한쪽만 익힌 계란 후라이는 안 먹어. 그리고 아침에 고기도 안 먹어. 내가 이런 아침이나 차리라고 한 달에 그 많은 월급을 주는 줄 알아?”“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몰랐습니다...”“대표님, 새로 온 도우미라서 잘 몰라서 그랬어요. 다시 준비하라고 할게요.”“됐어.”이수호가 어두운 얼굴로 일어났다.그때 남현숙이 안방에서 나왔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보자마자 손자가 왜 화가 났는지 바로 알아챘다.남현숙이 말했다.“평소에는 항상 아영이가 아침을 차렸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디저트에
양도 계약서를 보자마자 유정연의 눈빛이 바로 바뀌더니 말투도 다정해졌다.“아영아, 뭐라 해도 지호는 네 동생이야. 회사를 물려받는 것도 앞으로 도씨 일가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고 누나인 너의 든든한 백이 되기 위해서야. 그럼 너도 마음 편히 이수호랑 결혼할 수 있고.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어?”유정연은 도지호를 옆으로 잡아당겼다.“빨리 누나한테 사과하지 않고 뭐 해? 누가 아침 댓바람부터 허락도 없이 누나 방에 들어가라고 했어?”도지호가 싫은 티를 팍팍 냈다.“어차피 도원 그룹이 언젠가는 내 손에 들어오잖아요. 파혼해서 내 앞길을 방해했으니 당연히 따져 물어야죠.”도아영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도지호가 이때부터 도씨 일가의 재산을 욕심내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어린 나이인데도 벌써 자신이 도씨 일가의 미래 주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이게 다 유정연의 치밀한 계획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아영아,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 계약서는 나한테 맡겨. 내가 대신 보관해줄게.”유정연의 신경은 온통 계약서에 있었다. 계약서에 도지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회사를 물려받는다는 내용이 정확하게 적혀있었다. 두 모자가 오랜 시간 참고 기다렸는데 절대 계약서가 망가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도아영은 유정연을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이 계약서를 가지고 싶어요?”“응...”그런데 유정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아영은 들고 있던 계약서를 가차 없이 찢어버렸다.유정연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도지호가 노발대발했다.“도아영, 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찢으라고 했어?”도지호가 빼앗으려 했지만 도아영은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 두 사람 앞에 던졌다. 도아영이 덤덤하게 말했다.“도원 그룹을 절대 지호한테 넘길 일은 없으니까 두 사람 괜한 욕심 부리지 말아요.”“뭐라고? 회사를 지호한테 안 주면 누구한테 줄 건데? 도씨 일가에 아들이라곤 지호밖에 없잖아. 너...”도아영이 말했다.“지호는 아빠 친아들도 아니잖아요. 이 회사 내가 직접 맡
그날 오후, 남현숙이 도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도아영은 남현숙이 강이나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강이나는 강씨 일가의 외동딸이라서 성격이 매우 오만했다. 그녀가 강씨 일가의 재산을 손에 쥐고 있지만 남현숙은 두 가문의 원한 때문에 강이나를 무척이나 싫어했다.남현숙은 그녀가 고상한 척한다면서 이수호와 만나는 걸 계속 반대했다.그런 그녀와 반대로 도아영은 철이 들었고 집안 배경도 깨끗했다. 분위기, 용모, 학벌 모두 이경 그룹의 사모님이 되기에 아주 적합했다.그리고 남현숙이 도아영에게 잘해주는 것도 이익 때문에 연기하는 것뿐이었다.그 시각 도아영은 이씨 일가의 차를 타고 이씨 저택의 마당에 도착했다.도아영이 거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남현숙이 웃으면서 말했다.“어서 와, 아영아.”남현숙이 소파 옆자리를 툭툭 쳤다. 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현숙의 옆에 앉았다. 그런데 남현숙의 맞은편에 강이나가 앉아 있었다.강이나는 전생에서처럼 예뻤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듯한 청순한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늘 도도했고 얼굴에 오만함이 가득했다.그녀는 뜨거운 차 한잔을 들고 있었는데 손이 벌겋게 됐는데도 내려놓지 않았다.도아영은 강이나의 손목에 감은 붕대를 발견했다. 그녀가 손목을 그은 일을 남현숙이 알고 있다는 걸 뜻했다.이 일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도아영은 유정연이 일러바쳤을 거라 짐작했다.이수호는 남현숙이 강이나를 귀찮게 굴까 봐 소문이 퍼지지 않게 막았다. 그런데 유정연은 남현숙에게 그대로 일러바쳤다. 사는 게 지겨워서 제 명을 재촉하는 건가?“아영아, 약혼식 날에는 수호가 잘못했어. 내가 따끔하게 혼냈으니까 그만 화 풀어.”남현숙은 자애롭게 쳐다보면서 도아영의 손을 잡았다.“네가 이경 그룹의 미래 안주인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수호더러 내가 보는 앞에서 사과하라고 할게.”“할머니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요.”“약혼식 날에 있었던 일을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거야? 그건
장내에 있는 사람들도 이 광경을 지켜봤다.그는 전에 도아영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오늘은 이토록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를 부축하다니.도아영은 진작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손을 빼냈다.“고마워요.”그제야 이수호는 방금 그녀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전에 이경 그룹에서 도원 그룹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다들 이 두 집안이 사이가 안 좋은 거로 여기며 선뜻 도원 그룹과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이수호와 도아영의 사이가 조금은 나아졌으니 도원 그룹에 손 내밀 협력사도 슬슬 많아질 것이다.“감히 날 이용해?”예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계략이 많은 줄은 몰랐다.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부잣집 딸로만 여겼는데 알고 보니 본인만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서로 이용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거라면서요?”도아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전에 이수호가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를 이용했고 이제 와서 전세가 역전됐을 뿐이다.“오늘 파티에 왜 날 초대했는지 모를까 봐요? 도원 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수작이잖아요. 썩 쉽지만은 않을걸요.”도아영이 완전히 오해하자 이수호의 안색이 확 돌변했다.“뭐라고? 집어삼켜?”생각도 참 야무진 그녀였다.할머니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지녔지만 이수호는 절대 아니다.옆에 있던 안지원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그건 정말 오해예요, 아영 씨. 대표님은...”“대표님은 뭐요? 도원 그룹을 넘본 게 아니라고요? 말도 안 돼!”오늘 이경 그룹에서 초대한 사람들은 죄다 강주의 유명 인사들이다. 게다가 언론사까지 불러왔는데 도아영과 이수호의 관계를 널리 떠벌릴 목적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믿을까?도아영은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이수호까지 남현숙과 같은 생각일 줄이야.“잘 들어! 난 절대 너희 집안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 따위 없어!”이수호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요즘 그는 줄곧 도아영을 향한 솔직한 감정을 마주했다. 그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자 도아영이 뒤로
도아영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다니는 모습을 외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도원 그룹에 유리한 일이니까.“의외네요, 대표님. 할머니 말 한마디에 선뜻 저를 만나주시네요?”도아영이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그녀는 이수호가 마냥 귀찮을 따름이었다.꼭 마치 이전에 이수호가 그녀를 대했던 것처럼 말이다.이제 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할머니가 널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다들 눈치챈 상황을 도아영이 모를 리가 있을까?그는 도아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오늘 그녀는 금빛 롱드레스를 입고 풀메이크업을 장착하여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옆모습을 본 순간 이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그녀의 모습과 전에 봤던 제니의 모습이 완전히 똑같으니까.그의 따가운 시선에 도아영이 미간을 구겼다.“다들 지켜보는데 뭐 하는 거예요?”“조용히 해.”이수호는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한시라도 빨리 본인의 추측을 인증받고 싶은 모양이다.제니는 차갑고 도도한 미인상이라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매력을 내뿜는다.외모도 강주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어여쁜 도화안은 강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비쥬얼이었다.제니를 처음 볼 때부터 도아영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제니의 모든 제스처가 도아영과 달랐으니까.이수호도 딱히 의심하지 않았지만 한성대 졸업시험에서 도아영의 성적 때문에 또다시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반년 가까이 휴학한 학생이 기말고사에서 이토록 높은 성적을 따낼 수 있을까?그녀가 적은 답안은 명확한 사고와 충분한 이론을 지녔다. 이건 비즈니스 베테랑만이 작성할 수 있는 답안이었다.제니의 학력까지 떠올리자 이수호는 눈앞의 도아영을 더더욱 의심하게 됐다. 그녀가 바로 명성이 자자한 위너 그룹 CEO 제니가 아닐까?“다 봤어요?”도아영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반짝이는 눈동자는 차갑고 도도한 제니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이수호는 미간을 구겼다.“왜 그렇게 봐요
...주위에 온통 쉬쉬거리는 소리뿐이었다.도아영이 오늘 왜 이 파티에 참석했는지 다들 너무 궁금했다.로열 호텔 안, 안지원이 2층 휴식실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손님들 다 도착하셨습니다. 이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알았어.”이수호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눈만 감으면 어제 도아영이 했던 말만 떠올랐으니까.할머니가 이 파티를 열지만 않았어도 두 번 다시 도아영을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아래층.도아영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화려한 드레스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이제 도원 그룹의 유일한 상속자가 됐기 때문이다. 도아영과 결혼할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원 그룹도 차지하게 된다.그녀에게 불의의 사고라도 생기면 도씨 일가의 전 재산이 남편에게 돌아갈 것이다.장내에 있는 남성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아영아, 얼른 할미 곁으로 와.”남현숙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혐오에 찬 표정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도아영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현숙에게 다가갔다.남현숙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우리 아영이 점점 이뻐지네. 수호랑 오랜만이지? 금방 내려올 테니 함께 얘기도 나누고 오붓한 시간 보내. 젊은 사람들끼리 춤도 추고 와인도 마시고 얼마나 좋아?”남현숙은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연기하고 있었다.도아영은 이씨 일가 사람이란 걸 이 자리에서 선포하는 거나 다름없다.아무도 감히 도아영을 넘보지 말라는 의도였다.이에 도아영이 가볍게 웃었다.“아니요, 대표님을 어제도 만난 걸요. 왠지 나랑 함께하기 싫은 눈치였어요.”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던 이수호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어제 일을 되새기자 그는 또다시 사색이 되었다.“허튼소리! 수호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전에 파혼하려던 건 홧김에 그랬어. 젊은 애들이 그렇지 뭐. 누가 뭐래도 수호는 널 아주 많이 좋아해. 오늘도 너한테 사과하려고 하던데?”남현숙은 웃으면서 이수호를 불러왔다.뭇사람들은 이 광경을 빤히 지켜봤
이수호는 할머니의 말뜻을 너무 잘 이해한다.전에는 단지 도아영의 신분이 적합해서 그녀와 약혼하려던 거라면 지금은 도씨 일가 전체를 거머쥘 기회가 생겼다.그는 또다시 오늘 낮에 도아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다.“할머니는 이번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이미 파혼했으니 절대 결혼할 리 없어요.”말을 마친 이수호가 위층으로 올라갔다.남현숙은 손주 녀석의 성격을 잘 알기에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래, 네가 굽히지 못하겠다면 이 할미가 직접 나서야지 어쩌겠어.’다음날, 유정연이 감방에 갇히고 도지호가 집에서 쫓겨난 소식이 이 바닥에 쫙 퍼졌다.도아영은 도씨 일가의 유일한 상속자로서 이번에 매우 순조롭게 도원 그룹을 이어받았다.학교에 관한 일도 일단락되었으니 그녀는 한창 도원 그룹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아영 씨, 아침에 이씨 일가에서 찾아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아영 씨더러 로열 호텔 파티에 참석하라고 하시네요.”“이씨 일가에서요?”‘이수호가 또 찾아온 거야?’도아영은 잠시 의심했지만 곧이어 남현숙임을 알아챘다.그 어르신은 능구렁이와도 같은 분이니까.도아영이 도원 그룹을 상속받자마자 파티에 초대하다니, 이건 절대 호의일 리가 없다.“아영 씨는 이제 도원 그룹 오너가 됐으니 이번 파티에 당연히 참석하셔야 해요. 게다가 앞서 이씨 일가와 도씨 일가가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떠돌다 보니 많은 협력사에서 감히 우리와 협력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경 그룹 눈 밖에 날까 봐 두려운 거죠. 이번에 이씨 일가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 테고 도원 그룹 상황도 훨씬 나아질 겁니다.”주연우가 하는 말을 도아영도 물론 잘 알고 있다.다만 이경 그룹의 파티에 참석하기에 앞서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남현숙에게 득이 돼선 안 되고, 이씨 일가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게 아니라고 외부에 알려야 하니까.하지만...오늘 밤에 이수호를 만날 걸 생각하면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드레스 한 벌
“가시죠, 규리 씨.”“아니요! 대표님 좋은 사람인 거 알아요. 예전에 쌓아온 정을 봐서 우리 이모 한 번만 구해주세요!”“더는 우리 집에 나타나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이수호가 싸늘한 눈길로 쳐다보자 임규리는 등골이 오싹했다.며칠 전에 강이나가 찾아와서 그와 임규리에 관한 스캔들을 일러바쳤는데 고작 여자들의 수작인지라 이수호는 딱히 간섭하지 않았다.어차피 임규리와 아무 사이도 아니니 똑똑한 사람이라면 둘이 불가능하단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호와 임규리는 신분 격차가 너무 크니까.그 소문들은 임규리가 지어낸 거로밖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이수호는 이렇게 꼼수가 많은 여자가 딱 질색이다.한편 임규리는 아직 본인이 한 일을 이수호에게 들킨 줄 모르고 계속 유정연을 위해 사정했다.“이모도 도씨 일가 사람인데 대표님 정말 안 도와주실 거예요?”“안 비서! 내 말 안 들려?”“알겠습니다, 대표님.”안지원이 또다시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임규리 씨, 계속 이러시면 끌어내는 수밖에 없어요.”그녀는 사색이 되었다.유정연이 감방에 간 일이 한성대에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녀의 인생도 끝장이다.한성대에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모든 거짓말이 들통나고 더 이상 뒷배가 없다는 게 알려지면 남은 3년은 어떻게 버텨내란 말인가?아마 학자금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대표님, 제발요! 저희 이모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할머니, 제가 요 며칠 시중만 잘 들어줬잖아요. 그러니까 제발요! 우리 이모 구해주세요.”임규리는 눈물범벅이 되었다.한편 남현숙은 이수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그녀가 한심할 따름이었다.“네 이모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우리도 할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도씨 일가의 일이니 정 도움을 구하고 싶다면 아영이 찾아가 보거라.”도아영을 언급한 순간 이수호의 두 눈이 반짝였다.그녀가 도와줄 리 있을까?왠지 유정연이 감방에 들어간 것도 도아영과 연관이 있을 듯싶었다.다만 아직도 그녀 생각 중인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수호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넌 도씨 일가의 상속자도 아니고 우리 아빠 아들도 아니야. 법적으로 볼 때 오늘부로 너희 두 모자는 우리 집안과 아무 관련이 없어. 정신 좀 차려, 지호야!”도아영은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전생에 아빠가 그녀에게 회사를 물려주셨는데 마음 약한 도아영이 유정연 모자에게 고스란히 건넸다. 결국 아빠의 회사는 3년도 안 돼서 부도났고 유정연은 도지호를 데리고 안용준과 함께 도망치려 했다.그러니 이번 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정연 모자와 도원 그룹을 떼어놓아야 한다.“이 자식 끌어내.”도아영이 차갑게 분부하자 도씨 일가의 경호원들이 곧장 도지호를 이 집에서 끌어냈다.그는 슬리퍼를 신은 채 반항할 여지도 없이 처참하게 집에서 쫓겨났다.“도지호랑 유정연 물건들 싹 다 정리해서 밖에 내다 버려요!”“네, 아영 씨.”주연우는 곧바로 위층에 사람을 보내서 도지호와 유정연의 물건을 싹 다 처리했다.도아영은 다 정리한 물건들을 도지호에게 내던졌다.옷과 신발, 책까지 버려진 걸 보더니 도지호는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다.“다들 여기서 잘 지켜. 도지호는 이제 우리 집안과 아무 관련이 없어. 만약 얘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소란 피우면 그 즉시 경찰에 신고해.”“네, 알겠습니다.”도아영은 그가 소란을 피울 걸 염두에 두고 일부러 경비소를 차렸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도지호는 미친 듯이 철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도아영! 난 네 동생이야!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당장 문 열어! 나야말로 도씨 집안 아들이잖아!”도아영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게 집으로 들어갔다.유정연 모자의 흔적이 없는 이 집안은 그제야 온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했다.“아영 씨, 다음 계획은?”“유정연 전 재산을 회사 계좌로 입금했어요. 그동안 모자랐던 금액을 채운 셈이죠. 이제 드디어 도원 그룹 협력 프로젝트를 운행하게 됐으니 당분간은 위기를 벗어났다고 보면 돼요.”‘이수호만 잠자코 있다면...’도아영은 이렇게 생각했다.그녀는 오늘 이수호를 가
저녁 무렵, 도지호는 집에서 줄곧 도아영의 연락만 기다렸다.도원 그룹의 차가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부리나케 달려나갔다.차에서 내리는 도아영을 보더니 도지호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너 뭐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집에 무슨 일 생긴 줄 알아? 당장 나랑 경찰서 가서 엄마 모셔와야지!”도지호가 명령 조로 쏘아붙이며 도아영의 손목을 붙잡고 경찰서로 갈 기세였다.이에 도아영이 그를 힘껏 내팽개쳤다.도지호는 못 믿겠다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너 미쳤어? 감히 날 밀쳐?”이 집에서 줄곧 거만을 떨던 도지호였기에 그녀가 매정하게 밀쳐버릴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이제 막 그녀에게 손을 대려고 할 때 주연우가 덥석 막아서더니 가볍게 도지호를 제압했다.“너도 미친 거야? 우리 집안 따까리 주제에! 확 잘리고 싶어?”도지호는 힘으로 안 되니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이에 도아영이 차분하게 말했다.“잘 들어. 넌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회사에서도 아무런 직급이 없으니 주 비서는 제쳐두고 이 집안 가정부도 네 멋대로 자를 순 없어.”“이년이 지금 뭐라는 거야? 나 도지호야! 왜 이 집안 사람이 아닌 건데? 엄마가 잡혀간 틈에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꿈 깨! 미친X아!”그는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도아영을 째려봤다.하지만 도아영은 시큰둥하게 쓴웃음만 지었다.“네가 우리 아빠 아들이야? 쥐뿔도 아닌 게 무슨 자리까지 빼앗는다고 그래? 너희 엄마 안용준이랑 바람피운 건 알지? 안용준은 내가 직접 처리했고 너희 엄만 너그럽게 용서했어. 그런데 여태껏 회사 공금을 횡령하고 끊임없이 회사 자산에 손댔더라? 대체 언제까지 우리 집안 재산을 노릴 건데? 너희 두 모자 좀 너무하단 생각은 안 들어?”“개소리 치지 마! 우리 엄마가 어떻게 딴 남자랑 바람을 피워?”도지호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네가 아직 어리니 그동안 나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건 그냥 눈감아줄게. 하지만 너희 엄마는 우리 아빠랑 도원 그룹에 미안한 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어. 그건
사채업자들은 꽤 모아진 자산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드디어 도씨 저택을 떠났다.유정연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채에 딱 한 번 손을 댔더니 아들과 함께 전 재산을 털릴 줄이야.한편 도아영은 도원 그룹에서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았다.“아영 씨, 분부하신 일은 다 해결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현금화해서 이체해드리겠습니다.”“알겠어요.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별말씀을요. 서 대표님 분부대로 했을 뿐입니다.”도아영은 가볍게 웃었다. 이 모든 건 서현우의 공로이니까.그의 조언대로 유정연 모자의 전 재산을 손쉽게 챙겼고 이 또한 아빠 도석진이 받아야 할 몫이다.전화를 끊은 후 도아영은 주연우에게 분부했다.“이제 다 됐어요. 시작해볼까요?”“네, 알겠습니다.”주연우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도씨 저택에서 유정연 모자가 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 문밖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유정연은 화들짝 놀랐고 도지호도 어안이 벙벙했다.‘오늘 무슨 날이야? 경찰차는 또 뭔데?’유정연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다짜고짜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다.“신고받고 왔습니다. 유정연 씨, 당신은 금융범죄 혐의로 체포되었으니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네? 뭐라고요? 금융범죄라니? 그게 대체 뭔 말인데요?”유정연은 몹시 당황했지만 경찰은 그녀의 변명 따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서로 가서 조사받으시죠! 당장 끌고 가!”“당신들 뭐야? 왜 우리 엄마를 잡아가는 건데?”도지호가 쫓아가려 했지만 경찰은 아예 무시한 채 유정연을 차에 태우고 떠나가 버렸다.오늘 발생한 모든 일이 괴이할 따름이었다.도지호는 곧바로 도아영에게 연락했다.평상시에는 그렇게 연락이 잘 되던 도아영인데 오늘은 도통 받지를 않았다.“전화 좀 받아!”그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유정연이 경찰에 잡혀가니 그는 가장 먼저 도아영이 떠올랐다.그녀 말곤 엄마를 구해줄 사람이 없으니까.도원 그룹에서 도아영은 쉴 새 없이
“왜 그래요 갑자기? 무슨 일 있어요?”유정연은 사채에 손을 댄 일을 죽어도 도아영에게 고백할 순 없었다.도씨 일가의 가훈이 바로 사채에 손을 대지 않는 거니까.소문이라도 나면 체면이 바닥나고 도아영에게 쫓겨날지도 모른다.한편 도아영은 그녀가 사채를 빌린 걸 진작 알고 있어 입꼬리를 씩 올렸다.“지금 바로 연락해 계약서 보낼 테니까 거기 사인만 하면 효력이 발생할 거예요. 아줌마랑 지호가 우리 아빠 재산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계좌이체 해드릴게요. 사인만 하면 재무팀에 바로 연락해서 돈 보낼게요.”기세등등한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유정연은 더 이상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알았어! 사인할게. 바로 할게!”도아영이 곧장 휴대폰으로 계약서를 보내왔다.유정연은 꼼꼼히 읽어볼 새도 없이 바로 사인했고 계좌에 거액이 들어왔지만 모든 걸 사채업자에게 털렸다. 2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다만 겁에 질린 유정연은 이 과정의 수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봐! 아직도 돈 있잖아! 바로 내놓으면 될 것이지 왜 이렇게 질질 끌었어? 돈 될만한 액세서리들 당장 내놔!”유정연은 허겁지겁 위층에 올라가 보물처럼 아끼던 액세서리를 모조리 꺼냈다.이것들은 전부 도석진이 생전에 그녀에게 선물한 값비싼 액세서리들이다.수년간 아까워서 제대로 착용하지도 못했고 그저 도지호의 생일날 딱 한 번 치장하고 나갔었다.“여기 있어요. 이거면 되나요?”그녀는 액세서리를 사채업자에게 건넸다.“이년이 감히 내 앞에서 꼼수를 부려? 분명 더 있을 거야! 다 내놔! 이까짓 거로 누구 입에 풀칠하겠어?”앞장선 남자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유정연은 화들짝 놀라서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숨긴 건 맞지만 이 사람들이 대체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낸 건지 더는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마지못해 여태껏 보관한 모든 액세서리와 명품 가방, 옷들까지 꺼냈다.“이 새끼도 있잖아! 얘 것도 싹 다 꺼내!”도지호는 평상시에 손이 커서 가격도 안 보고 물건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