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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기향난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10 14:28:22
옆 방, 주민서는 맥주 세 병을 마시고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휴대전화로 실검을 보던 도아영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주민서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물었다.

“내가 언제 이수호한테 성 기능 장애가 있다고 했어?”

“내가 그렇게 썼어. 기사는 충격적인 내용이 있어야 사람들이 본다고.”

도아영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주민서가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결과? 무슨 결과가 있겠어? 이수호가 내 목에 칼을 대고 협박이라도 하겠어?”

쾅.

그때 누군가가 룸 문을 발로 걷어찼다. 룸 안의 노랫소리가 삽시간에 멈췄다.

도아영은 문 앞에 서 있는 이수호를 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수호가 찾아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기사 내보낸 사람이 너야?”

이수호의 목소리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주민서는 겁에 질려 도아영의 뒤에 숨어버렸고 도아영은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

“그래요.”

“진짜 너라고?”

이수호는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다가오더니 주민서를 확 밀어버렸다. 그 바람에 주민서는 심정우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다 꺼져!”

그를 본 순간 주민서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원래는 도아영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심정우가 그녀를 끌고 룸 밖으로 나갔다.

“알았어. 당장 꺼질게.”

문이 닫혔고 룸 안에 도아영과 이수호만 남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차갑게 말했다.

“파혼한 이튿날에 클럽에 와? 도아영, 내가 예전에 널 너무 만만하게 봤어.”

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자니 도아영은 전생에 납치범이 그녀를 괴롭힐 때의 역겹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순간 헛구역질이 나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대표님, 약혼식 날에 날 버리고 강이나 씨한테 간 건 대표님이에요. 우리 집안은 그리 대단한 집안도 아니고 이씨 일가에 한참 못 미쳐요. 그러니까 여기서 깔끔하게 끝내요, 우리.”

‘깔끔하게 끝내자고?’

이수호가 코웃음을 쳤다.

“깔끔하게 끝낸다는 게 인터넷에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올려서 내 얼굴에 먹칠하는 거야?”

“나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도아영, 내 관심을 끌려는 방식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전에도 말했었지? 내 앞에서 수작 부리지 말라고.”

이수호는 갑자기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두 눈이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도아영은 이수호가 꽉 잡고 있는 손목을 힐끗거리다가 그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전생에서 약혼식 다음 날에 남현숙은 이수호와 그녀를 본가로 불렀다. 그런데 이수호는 그녀를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밖에 버렸다.

“너랑 약혼한 건 도씨 일가가 나한테 이용 가치가 있어서야. 그러니까 내가 널 좋아할 거라는 헛된 기대 따위는 하지 마.”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도아영은 손을 힘껏 빼버리고 그의 왼쪽 뺨을 내리쳤다.

짝.

찰진 소리가 마이크에 전해져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문밖에 있던 심정우와 주민서가 문을 벌컥 열었다.

“아영아, 괜찮아?”

“이수호, 이건 아니지.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때리면 어떡해?”

심정우와 주민서가 앞으로 뛰어왔다. 그런데 맞아서 말문이 막힌 사람이 도아영이 아니라 이수호였다.

도아영이 냉랭하게 말했다.

“이수호 씨, 사람 말귀 못 알아들어요? 이씨 일가만 파혼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나도 파혼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요.”

“너...”

이수호의 두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런데 도아영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 순간 그는 흠칫 놀랐다. 예전에 도아영은 그를 이런 눈빛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작 하룻밤이 지났을 뿐인데 비위를 맞추던 도아영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민서야, 가자.”

도아영은 더는 이수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슬쩍 쳐다만 봐도 헛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술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주민서는 조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건 심정우도 마찬가지였다.

‘난 술도 안 마셨는데 왜 환각이 보이지? 수호한테 큰소리 한번 치지 않고 강이나 씨처럼 다정하고 온화하던 도아영 씨가 수호를 때렸다고? 그것도 뺨을?’

“수... 수호야...”

심정우가 이수호의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맞아서 바보가 된 건 아니지?”

이수호도 아직 따귀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했다. 그가 얼굴을 찌푸리고 문밖을 가리켰다.

“쟤 지금 날 때렸어?”

“응... 때렸어. 손바닥 자국도 아직 남아있어.”

이수호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조금 전 도아영이 큰소리를 치던 것만 생각하면 화가 나 되레 웃음이 나왔다.

“도씨 일가에 일러. 절대 파혼할 생각 하지 말라고.”

이튿날, 도씨 저택.

“네? 파혼하지 않겠다고 했다고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도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전생에 이수호는 그녀를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미워했다. 만약 남현숙이 손주며느리로 들이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젯밤 도아영은 먼저 파혼하겠다고 했고 이수호의 따귀까지 때렸다. 이수호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아버렸는데도 파혼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너무 잘됐어, 너무.”

유정연은 한시름 놓은 듯 가슴을 툭툭 쳤다.

“이 대표님이 화난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야. 따져 묻지 않아서. 아영아, 지금 당장 이씨 일가에 가서 이 대표님한테 사과해. 그럼 이 일도 그냥 이대로 끝나는 거야.”

“사과하고 싶으면 아줌마나 가서 하세요. 아무튼 난 절대 약혼하지 않아요.”

도아영의 차가운 태도에 유정연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넌 왜 이렇게 철이 없어? 네 아버지도 없는데 이씨 일가 도움 없이 도원 그룹이 어떻게 살아남아?”

그녀의 말에 도아영의 안색이 더욱 싸늘해졌다.

전생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도아영의 마음이 가장 여릴 때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수호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여 유정연은 계속 이수호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었다.

그렇게 도아영은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수호가 도씨 일가를 도와준 건 단지 도아영이 강이나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이수호에 대한 마음이 깊이 자리 잡아 헤어나올 수 없었다. 심지어 유정연의 말을 믿고 기꺼이 강이나의 대체품이 되어 이수호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었다.

도아영은 언젠가는 이수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가소롭기만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줌마. 도원 그룹은 아빠가 남겨준 거니까 절대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이씨 일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아줌마가 직접 시도해보는 건 어때요?”

그녀는 이 말만을 남기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우리 집안을 위해서 이러는 거잖아. 여자애가 회사 경영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차라리 좋은 남편 만나서 집에서 내조나 잘하는 게 훨씬 낫지.”

도아영은 유정연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유정연이 그녀를 이수호에게 시집보내려는 건 자기 아들이 도원 그룹을 물려받은 다음 미래 이씨 일가 사모님인 그녀가 두 모자를 도와주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도원 그룹은 도아영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려준 회사다. 절대 전생에서처럼 도원 그룹을 양심도 없는 모자에게 바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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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12-10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12화

    “아영 씨, 이건 딱히 관련 없는 서류들이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얼른 가서 커피 한잔하세요.”안용준이 아양을 떨면서 말했다.말인즉슨 회사의 그 어떤 업무도 간섭하지 말라고 도아영에게 으름장을 놓는 식이었다.이에 도아영이 손을 쭉 뻗었다.“이리 줘요.”“아니 그건...”“안 상무, 이제 슬슬 우리 집안 세대주 행세를 하려고 드네요?”강압적인 그녀의 태도에 안용준이 재빨리 대답했다.“제가 어찌 감히요. 아영 씨가 보시겠다면 당연히 드려야죠. 저는 단지 아영 씨가 제대로 보실 줄 모를까 봐 그런 겁니다...”“이렇게 하죠. 라운지에 갈 필요도 없고 우리 그냥 대표이사실로 가요. 이참에 최근 회사에서 서명이 필요한 문서들도 싹 다 가져오세요.”“아영 씨...”도아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안용준의 말을 자르고 주연우에게 시선을 옮겼다.“주연우 씨? 주 비서가 대신 서류들 챙겨오고 안 상무는 번거롭겠지만 저랑 함께 사무실로 가시죠.”“네... 네.”안용준은 대답만 척척 할 뿐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이 여자가 회사엔 대체 뭐 하려고 나온 거야?’만에 하나 회사 장부의 문제점이라도 발각된다면 안용준은 끝장날 것이다.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도아영과 함께 대표이사실로 들어왔다. 이곳은 그녀의 아빠 도석진이 생전에 쓰시던 사무실이다. 도아영은 아빠가 생전에 절제되고 심플한 인테리어를 선호하셨던 걸 아직 기억하고 있다.하지만 지금 사무실은 유정연의 손을 거쳐 엉망진창이 돼버렸다.몇백만 원대의 게임 컴퓨터, 담배와 시가, 사치스러운 와인 캐비닛까지...심지어 전시용 신발장까지 만들어서 그 안에 죄다 한정판 축구화를 넣어두고 있었다.유정연과 도지호에게 회사를 맡긴 이후로 사무실마저 이토록 황당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아영 씨, 사모님과 지호 도련님이 아직이시니 두 분 오시거든...”“안 상무, 도원 그룹 상속권은 내 손에 있어요. 전에 아줌마가 회사 운영에 관심이 있다고 하셔서 잠깐 맡겼을 뿐이에요. 당분간 믿고 맡겼는데 운

    Last Updated :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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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30화

    “약혼식에서 일부러 파혼 선언을 하고 주씨 일가에 시켜서 재미도 없는 신문 기사를 내더니 이제 와서 구연준 꼬시면서 경매에서 그렇게 도발을 해? 너 이거 다 내 주의를 끌려고 그런 거잖아. 좋아, 이제 드디어 소원성취했어.”이수호는 그녀의 턱을 잡고 당장이라도 몸을 기울일 것만 같았다.그때 도아영이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렸다.“대표님 이러는 거 강이나 씨한테는 떳떳해요?”강이나라는 이름 석 자에 이수호는 순간 온몸이 경직되었다.이때다 싶어 도아영이 재빨리 손을 빼내고 그의 목을 껴안더니 한결 매혹적인 눈길로 넌지시 말을 이었다.“대표님 말이 맞았어요. 내가 이렇게 한 거 대표님께 관심받고 싶어서예요. 그래도 소파는 영 비좁을 것 같은데 우리 이참에... 내 방으로 갈까요?”그녀가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자 이수호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가차 없이 밀쳐내고 차갑게 쏘아붙였다.“이런 저질스러운 수작은 나한테 안 통해. 그러니까 적당히 해, 도아영!”“에이 왜요? 대표님 아주 좋아하시잖아요. 나의 이런 저질스러운 수작...”도아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소파에 등을 기댔다.“내빼는 척하지 말아요. 남자들은 진짜 사랑하는 여자랑 하룻밤 즐기는 여자가 따로 있잖아요. 충분히 이해하고 전혀 충돌될 것 없다고요.”그녀가 몸을 배배 꼬면서 이수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걱정 마세요. 오늘 밤 일은 강이나 씨한테 무조건 비밀로 할게요.”“꺼져!”이수호는 드디어 그녀를 밀쳐내고 혐오에 찬 눈길로 째려보며 경고장을 날렸다.“내 앞에서 이런 수작 그만 부려! 너 같은 여자 수없이 봐왔어. 할머니만 아니었다면 난 절대 너랑 결혼할 일 없다고!”한편 도아영은 증오에 찬 그의 눈빛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일부러 홀가분한 척하며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대표님, 이만 가보시죠.”위층에서 줄곧 엿듣던 유정연은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이수호가 그들의 돈줄인데, 이경 그룹의 뒷받침이 없다면 도원 그룹은 이제 어떡하란 말인가?유정연은 부랴부랴 아래층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9화

    “아니요, 틀리셨어요. 이 돈은 도원 그룹 자금이 아니에요.”구연준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아니라고?”“아빠가 남겨주신 혼수거든요.”전생에 유정연은 그녀의 혼수에 눈독을 들이고 어떻게든 이 집안의 주인 행세를 하려고 했다. 일단 도아영을 이씨 일가에 시집 보내면 천억의 혼수까지 본인이 챙기게 될 테니까.남현숙은 도아영을 며느릿감으로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유정연은 몰래 남현숙을 찾아가 혼수를 없애기로 논의하고 심지어 그 돈으로 회사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사정했다.하지만 정작 회사 위기는 해결하지 못한 채 유정연만 돈을 챙겨서 도망쳤다.이번 생에 유정연이 또다시 이런 반란을 일으킨다면 혼수가 아니라 도씨 일가의 재산을 일 전 한 푼 못 챙길 것이다.“대표님, 요즘은 당분간 투자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도원 그룹이 거의 몰락 상태인데 내가 투자까지 안 하면 진짜 부도낼 생각이야?”도아영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유정연이 줄곧 제 아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싶어 했으니 요 며칠 난장판이 된 회사 장부도 전부 도지호 그 멍청이에게 맡기면 그만이다.주주들이 과연 회사가 부도나는 걸 지켜보면서까지 유정연 모자를 용납해줄 수 있을까? 도아영은 문득 궁금해졌다.저녁 무렵, 구연준이 그녀를 도씨 저택으로 데려다줬다.도씨 저택 안.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실 불이 환히 비치고 누군가가 불쑥 그녀를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도아영은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상대가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벽에 밀어붙였다.“아영아, 너 한 번 만나기 참 어렵네?”이수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아찔한 기운이 스쳤다.도아영은 질식할 것만 같아 힘껏 몸부림쳤다.“이거, 놔!”이수호도 방금 너무 세게 밀어붙인 걸 알아챘는지 손을 놓아주었다. 도아영은 벽을 짚고 격하게 기침을 해댔다. 이에 이수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솜씨 좋아 도아영! 한편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되길 넘보고 또 한 편으론 구연준을 유혹하고 있어? 어느 쪽 이익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8화

    “축하해요, 수호 씨. 골든하임을 얻게 됐으니 이경 그룹도 이번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거예요.”옆에 있는 강이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음침하게 변해버린 이수호의 안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맞은 편에서 도아영은 그 누구도 눈치 볼 것 없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 구연준과 나란히 샴페인을 들었다.이 광경이 이수호에겐 왜 이토록 눈꼴사납게 느껴지는 걸까?“대표님, 이제 어떡합니까?”안지원은 구연준이 여기서 멈출 줄은 몰랐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땅을 무조건 손에 넣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인데 왜 갑자기 양보한 걸까?“어떡하긴 뭘 어떡해?”이경 그룹에서 하는 수 없이 손해를 당하는 수밖에.이수호는 웃음기를 거두고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번 일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분명 도아영 저 여자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수호 씨!”강이나가 그를 따라가려고 성급한 마음에 손목을 잡았는데 이수호가 망설임 없이 손을 홱 뿌리치는 것이었다.“먼저 돌아가 있어.”강이나는 멍하니 넋을 놓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이수호는 이미 멀리 떠나가 버린 상태였다.그는 단 한 번도 강이나를 내버려 둔 적이 없는데...경매장 밖에서 이수호가 음침한 얼굴로 차갑게 쏘아붙였다.“유정연 이 인간 당장 내 앞에 데려와!”“네, 알겠습니다.”1시간 후, 이경 그룹 사무실 안.유정연이 두 명의 경호원에게 끌려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수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사색이 되었다.“수... 수호야,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아영이가 또 네 심기를 건드렸니?”“연기 그만 해요!”이수호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아영이랑 구연준 대체 무슨 사이에요?”“뭐?”도아영과 구연준이 무슨 사이라니?그 두 사람이 왜 한데 엮인 걸까?유정연은 황급히 대답했다.“수호야, 우리 아영이가 또 사고를 친 모양이네. 내가 돌아가서 따끔하게 혼낼게. 그러니까 얼른 화 풀어. 우리랑 너희 집안에서 협력하기로 한 건 변함없잖아!”“시끄럽고! 골든하임이 함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7화

    “약혼자에 대해 꽤 아는 게 많네?”어디 그뿐일까?전생의 처참했던 3년을 돌이켜보면 그녀는 거의 이수호의 노예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수호가 힐끔 째려보면 혹여나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고, 그의 말 한마디에 드디어 자신이 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착각할 지경이었다.외조라면 이수호의 회사를 위해 대폭으로 후원해주고 내조라면 남현숙을 보살펴주는 것, 이수호를 위해 직접 도시락까지 싸주는 것 등등 헤아릴 수가 없다.그의 취미를 장악하고 있는 건 제쳐두고 그가 샤워를 몇 분에 하는지, 하루에 화장실은 몇 번 다녀오는지, 화장실에서 매번 휴지를 몇 칸 쓰는지... 마음 같아선 그의 모든 걸 장악하고 싶었다.“대표님, 두고 보세요. 오늘은 곧 대표님이 완승하는 날일 겁니다.”도아영은 테이블 위의 샴페인을 한 잔 쭉 들이켰다.경매가 곧 시작되었고 마침내 골든하임 순서가 왔다.“이번엔 도시 외곽의 골든하임입니다. 경매가 600억에 시작하겠습니다!”600억이란 경매가에 구연준은 미간을 구겼다.전에 도아영이 했던 말과 똑같았으니까.여기 경매는 전부 현장에서 가격이 공개되는 거라 사전에 비밀이 유출될 일은 없다.하여 도아영은 이 땅의 경매가가 얼마인지 절대 미리 알 수가 없다.그렇다면 골든하임이 진짜 이수호의 트릭이었단 말인가?“천억이요!”“1600억이요.”“2천억 합니다.”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장내에 뜨거운 열기가 차올랐다. 다들 앞다투어 골든하임을 경쟁하고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이 땅은 앞서 상승 가능성이 커서 미래에 분명 1조 원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도아영은 줄곧 지켜만 보는 구연준을 흘기더니 곧장 그의 팻말을 들었다.“4천억이요!”구연준은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구시렁댔다.“제 돈이 아니라고 진짜 겁 없이 부르네.”“그럼요.”아니나 다를까 맞은편의 이수호가 팻말을 들었다.“6천억 할게요.”갑자기 2천억이나 뛰어오르자 다른 사람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이때 이수호가 가까운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6화

    “도아영, 당장 거기 서!”잠깐 휴식 시간을 가질 때 도아영이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뜻밖에도 뒤에서 이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무슨 일이시죠?”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낯선 이를 대하듯 이수호에게 말했다.“너 진짜 대단해. 우리 이경 그룹에서 봐둔 땅을 두 배로 손해 보더라도 기어코 낙찰받은 거야? 왜? 일부러 날 겨냥하려는 거야 아니면 내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래?”“오해하셨어요, 대표님. 저는 단지 그 땅이 마음에 들어서 낙찰한 거예요. 대표님이랑 전혀 상관없어요.”도아영이 진지하게 말했지만 이수호는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그 시각 강이나가 이수호를 쫓아왔다.“아영 씨, 오늘 경매에서 너무 충동적으로 나오신 거 아니에요? 그 땅은 아영 씨가 엄청 손해 볼 거예요.”강이나는 말하면서 옆에 서 있는 이수호를 힐긋 살펴봤다.“수호 씨가 오늘 나랑 함께 와서 입장이 난감해진 거 알아요. 아무리 수호 씨랑 맞서 싸우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오면 안 되죠. 나중에 손해 보면 또 수호 씨한테 도와달라고 손 벌릴 거잖아요. 내 말 틀렸어요?”이에 이수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가 낙찰한 땅이야. 너 스스로 알아서 해.”“대표님은 농담도 참. 당연히 나 스스로 알아서 하죠. 우린 이미 파혼한 거 아닌가요? 내가 왜 대표님께 손 벌리겠어요? 이제 우리 남남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너...”이수호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때 구연준이 경매장에서 나왔고 이를 본 도아영이 일부러 목청을 높이며 다정하게 그를 불렀다.“연준 씨!”‘연준 씨’라는 호칭이 입밖에 떨어진 순간 이수호의 표정이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도아영은 구연준의 옆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이제 곧 2부가 시작할 테니 나랑 연준 씨는 얼른 들어가 봐야겠어요. 골든하임을 오랫동안 눈여겨봐 왔거든요. 그럼 우린 이만.”도아영은 이수호와 강이나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수호는 온몸에 음침한 기운을 내뿜었고 옆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5화

    그중에서도 이수호가 가장 한심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이런 방식으로 그의 관심을 받으려는 건 너무 저속한 표현이니까.“400억 할게요.”이수호가 천천히 가격을 외쳤다.‘도아영, 내가 널 다스리지 못할까 봐?’“500억이요.”“600억 할게요!”점점 치솟는 가격에 강이나가 미간을 찌푸렸다.“수호 씨, 저 땅은 그 정도 가치가 안 돼요.”이수호도 표정이 일그러지긴 마찬가지였다.옆에 있던 안 비서가 나지막이 말했다.“대표님, 이미 우리의 예산을 초과했습니다.”이수호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도아영이 돈도 없으면서 이렇게 가격을 부르는 건 그와 맞서려는 게 분명했다.‘좋아, 오늘은 손해 보더라도 반드시 널 따끔하게 혼내줄 거야.”결국 이수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640억 할게요!”그 시각 구연준은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고만장한 이수호의 태도가 제법 마음에 드나 보다.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현재 이수호는 벌써 100억을 손해 본 상태이다.도아영에게 이런 실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수호를 자극해서 손해를 보게 하다니.예전에는 그녀를 너무 만만하게 본 듯싶었다.구연준이 이쯤에서 멈추라고 말하려 할 때 옆에 있던 도아영이 또다시 팻말을 들었다.“천억이요!”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천억이나 부른 걸까?어떻게 천억까지 치솟은 걸까?그녀의 행동에 경매사까지 어안이 벙벙해졌다.경매사는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제 귀를 의심했다. 남원 외곽의 천 평짜리 땅은 시가가 고작 200억이다.아까 분명 640억까지 올라갔는데 어떻게 천억으로 뛰어오를 수 있단 말인가?“도아영 미친 거 아니야?”이수호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도시 외곽의 부질없는 땅을 무려 천억까지 부르다니...그녀가 뭘 믿고 이토록 담대해진 걸까?“대표님, 더는 안 되십니다. 더 부르면 손해가 너무 커요!”안지원도 바짝 긴장했다.도아영은 지금 눈에 뵈는 것 없이 미쳐 날뛰는 중이다.그동안 도시 외곽의 천 평짜리 땅은 단 한 번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4화

    강이나는 애써 도아영을 위해 변명하는 것 같지만 정작 듣고 있는 이수호에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나를 좋아한다고? 걔는 그저 더 높은 자리로 기어오르는 게 목적이야!’이전에는 이수호를 넘봤고 지금은 또 구연준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어쩐지 요즘 그를 향한 태도가 조금 식었더라니...여기까지 생각한 이수호는 두 눈에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도아영, 너 진짜 대단한 여자구나!’“가자 이만.”이수호는 두 사람한테서 시선을 떼고 강이나와 함께 경매장으로 들어섰다.한편 구연준도 자연스럽게 도아영에게 팔짱을 거는 제스처를 취하고 차분하게 말했다.“오늘 밤엔 네가 내 파트너야. 지금부턴 쭉 내 말만 들어야 해. 알겠지?”“대표님, 우리 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파트너 해주면 오늘 밤 나한테 실컷 돈을 써주시는 거죠?”“넌 내 파트너야, 여자친구가 아니라.”도아영은 일부러 난감한 척했다.“하지만 수호 씨는 전에 선뜻 내게 돈을 써줬어요. 인간적인 매력으로 따져도 대표님 설마 수호 씨한테 밀리고 싶은 건 아니겠죠?”“지금 날 자극해?”“제가 어찌 감히요...”“네가 이겼어.”“...”경매장 안에서 뭇사람들은 이미 자리에 착석했다.오늘 경매는 대부분 비서가 대신 나와 줬고 오직 이수호와 구연준 두 명의 빅 보스만 직접 참석했다. 다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고 있을 때 장내가 전과 달리 싸늘한 정적에 잠겼다.아무도 감히 이 두 명의 빅 보스와 가격을 경쟁할 엄두가 안 났다.“수호 씨, 아영 씨랑 구 대표님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여요...”강이나는 이수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주최 측에서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구연준과 도아영이 마침 그들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양측은 머리만 들면 눈이 마주칠 지경이었다.이수호는 웃고 떠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도아영, 아주 좋아...”처음엔 강이나를 따라 하며 그에게 접근했고 뒤이어서 할머니 앞에서 얌전한 이미지를 보여준 그녀였다. 말끝마다 파혼을 언급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3화

    “그러게. 강주 사람들이라면 다 알다시피 도씨 일가랑 이씨 일가의 혼약은 도아영이 애타게 쟁취한 거잖아. 진짜 본인이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수호는 파혼해도 곧장 새 여자를 찾을 수 있는데 도아영은 뭐야? 강주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걸?”...경매장 밖에서 몇몇 부잣집 사모님들이 대놓고 도아영의 흉을 봤다.그 시각 그녀는 이미 경매장에 도착한 지 7, 8분이 넘었다. 이수호와 강이나보다도 좀 더 빨리 온 듯싶었다.지금쯤 경매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빌어먹을 구연준이 한사코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니 사모님들의 험담까지 들어야만 했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사서 고생이냐고?’‘구연준도 이수호보다 더 나을 건 없네. 두 인간 피차일반이야.’‘이러니까 전생이나 현생이나 너 죽고 나 죽고 티격태격하는 거지.’“아영 씨, 이 대표님은 이제 그만 미련 접으셔야겠네요. 대표님 곁에 강이나 씨가 있잖아요. 이렇게 쫓아온다고 무슨 소용이겠어요?”“그러게 말이에요. 엊그제까지만 해도 대표님과 파혼하겠다고 호통치더니 왜 또 여기까지 쫓아오는 거예요? 아쉽지만 대체품은 어디까지나 대체품이에요. 대표님은 이제 진짜 운명의 반쪽을 만났으니 아영 씨한테 돌아올 일은 없어요.”“자업자득이죠 뭐. 어떻게 기어오른 대표 사모님 자리인데 막상 내주려 하니까 달갑지 않겠죠. 근데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해요. 설마 본인이 강이나 씨랑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줄곧 이수호 와이프 자리를 탐내던 여자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도아영을 헐뜯었다.그도 그럴 것이 도아영이 이수호를 위해서 얼마나 비굴해지고 자존심을 다 내려놨는지 모르는 이가 없으니까. 남자들 눈에만 하찮게 보이는 게 아니라 여자들까지 그녀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수준이었다.이때 나서기 좋아하는 한 여자가 도아영에게 다가와 이상야릇하게 말했다.“아영 씨는 예쁘장하게 생겼으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남자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나 배우세요. 안 그러면 강주에서 누가 감히 아영 씨를 만나주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2화

    똑똑.문밖에서 강이나가 두 번 노크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그녀는 화이트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는데 우아하고 고고한 기품이 차 넘쳤다. 허리까지 드리운 긴 생머리는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선사해주었다.“수호 씨, 경매 곧 시작해요. 얼른 가죠 우리.”강이나를 본 유정연은 표정이 살짝 부자연스러워졌다.그녀만 해코지하지 않았다면 도아영이 진작 이수호의 와이프가 됐을 테니까. 이제 와서 경매까지 함께 가다니? 이수호는 도씨 일가의 체면을 아예 무시한 채 강이나와 함께 참석하기로 한 걸까?이건 대놓고 도씨 일가에게 창피함을 안겨주는 일이다.“도 회장님댁 사모님 되시죠? 수호 씨한테 얘기 들었어요. 이분은...”강이나는 자신과 스타일이 너무 비슷한 임규리를 보더니 가볍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도아영만으로 모자라서 또 한 명 더 내세우는 걸까?몇 명이 와도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결국 다 대체품일 테니까.강이나가 임규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 유정연은 마음이 찔렸는지 얼른 조카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그럼 우린 용건 끝났으니 이만 가볼게!”그녀는 결국 임규리를 이끌고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이수호는 가까이 다가오는 강이나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상처도 다 낫지 않았을 텐데 뭣 하러 나왔어?”“수호 씨랑 경매장 가려고 나왔죠. 오늘 경매가 수호 씨한테 엄청 중요한 자리란 걸 아는데 내가 어떻게 자리를 비우겠어요?”강이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설마... 다른 사람이라도 초대한 거예요?”이수호는 아무 말이 없었다.그는 오늘 확실히 도아영에게 이브닝드레스를 보냈다.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할머니의 뜻일 뿐 절대 그가 원해서 한 일은 아니다.옆에 있던 안지원이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대표님, 아영 씨는 오늘 안 오신답니다...”‘안 오다니? 이 여자 점점 더하네?’평상시에 이런 기회가 생기면 그녀는 참석하지 못해서 안달인데 오늘은 되레 안 온다고 고집을 피우는 걸까?그의 표정을 살펴보던 강이나가 언짢은 듯 되물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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