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이 여분의 옷가지가 있다고 해도 이 온몸에 밴 술 냄새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어서 반드시 왕후 앞에서 결례를 범할 것이다.송지아는 홍유라를 걱정했지만 강서연의 낭패스러운 모습에 또 한 번 의기양양해하며 냉소를 지었다.“서연 씨.”홍유라가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화장실에 가서 처리하세요! 오늘...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한 번 더 가도 상관없겠죠!”강서연은 제자리에 굳어 있다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이때 아랫사람이 와서 왕후에게 인사할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옆에서 또다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윤서연 씨, 오늘은 황실 연회인데 앞으로 이런 자리는 적게 오는 것이 좋겠어요. 예의를 잃으면 윤씨 가문에 망신을 줄 수도 있어요.”“그러니깐요. 밖에서 자란 것과 우리 남양에서 자란 것은 다르죠.”“전에 남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강주 지하실에서 살았다고 들었어요.”몇 명의 사람이 속삭이자 홍유라의 표정은 더욱 광기에 차 있었다.홍유라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강서연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강서연은 마음을 다잡고 자신만의 당당한 기세로 한바퀴 시선을 휩쓸고 마지막으로 홍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홍유라 씨, 괜찮아요. 드레스일 뿐인데요.”그녀는 웃었다.“홍유라 씨 말대로 화장실에 가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그럼 빨리 가세요! 뭘 꾸물거려요?”“홍유라 씨를 기다리고 있는데요.”강서연의 미소는 의미심장했다.홍유라는 어안이 벙벙하고 이 여자가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모르겠다.“홍유라 씨께서 저에게 술을 쏟아서 제 드레스가 더러워졌는데 옷을 갈아입으러 같이 가줘야 하지 않을까요?”“그게...”홍유라는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단지 옷을 갈아입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는 하인을 부를 준비를 했다.“홍유라 씨께서 저랑 같이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강서연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래야 홍유라 씨께서 방금 말씀하신 정중한 사과가 더 진정성 있어 보여요. 전하, 제 말이 맞죠?”강서
홍유라는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참 동안 어리둥절했다.그녀는 강서연을 괴물 보듯 바라보았다.“무슨... 소리에요?”강서연은 피식 웃었다.“제가 보기엔 세상에 공평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같은 집안의 사촌인데 왜 한 명은 친왕으로 뽑혀 나라를 물려받을 수 있고 다른 한 명은... 화장실에 서서 제 치마를 빨아줘야 할까요?”“뭐라고 하는 거예요?”홍유라는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강서연이 이간질을 하더라도 정곡을 찔렀다.홍유라는 송지아를 질투했다. 두 자매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고 공부도 같이했고 심지어 송지아의 성적은 그녀보다도 못했다.그런데 왜 송지아는 남양왕의 총애를 받아 황실의 유일한 여친왕이 될 수 있었을까.한때 자매였던 그녀는 이제 만나면 먼저 규칙을 준수하여 인사를 해야 하고, 게다가 그녀는 예전처럼 그녀의 이름을 곧이곧대로 부를 수도 없고 또 존칭을 붙여 전하라고 해야 한다.그리고 송지아는 친왕으로 책봉된 이후로 허세도 커졌고 이 친척들과 연락을 거의 하지 않으며 그녀에게도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했다.매번 그녀가 왕궁에 와서 송지아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콧대 높은 홍유라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한이 서리지만 지금 그녀는 조금도 티를 내면 안 되는데 특히 강서연 앞에서는 말이다.가식적인 말은 그래도 해야 한다.“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게 뭐가 불공평하다고요! 언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남양왕은 언니의 삼촌이어서 저와의 관계보다 훨씬 가까워요! 언니가 친왕으로 뽑히는 것도 모두의 바람이에요!”“그래요.”강서연이 끝음을 길게 늘렸다.“그러면 홍유라 씨는 이 세상에 공평한 것이 있다고 믿는 거예요.”홍유라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공평함은 어디에나 존재해요.”강서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공평하다는 거죠?”홍유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서연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했는데 소름이 끼쳤다.“서연 씨, 당신... 도대
그런데 남자 목소리다!강서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귀에 익다고 생각했고 홍유라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오빠, 혁준 오빠 맞아요? 오빠, 도와주세요!”강서연은 순간 멈칫했다.‘문 앞에 송혁준이라고?’이때 문손잡이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강한 노크 소리가 동반됐다.“안에서 뭐 하는 거야? 안 나오면 경비를 부를 거야!”강서연은 피식 웃더니 홍유라를 풀어주었다.‘참 재미없네!’홍유라는 비틀거리며 도망쳤고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의문 가득한 얼굴의 송혁준이 서 있었다.“혁진 오빠!”홍유라는 울부짖으며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지만, 송혁준은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고 팔짱을 낀 채 태연한 태연한 강서연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서연의 몸에 묻은 와인 얼룩을 보더니 홍유라를 밀치고 그녀에게 직진했다.“괜찮아요?”그의 걱정하는 모습과 긴장한 기색은 정말 연기 같지 않아, 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다. 송혁준은 생각할 겨를이 없이 강서연의 어깨를 좌우로 한 바퀴 돌려보더니 그녀가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외상은 없는 것 같은데... 다친 곳 없어요?”강서연이 웃음을 터뜨리자 송혁준이 심각하게 말했다. “아니. 웃지 말고 제 말에 대답해 주세요!”강서연은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입이 떡 벌어진 홍유라를 바라봤다.“전하.”그리고 그녀는 두 발짝 뒤로 물러서서 송혁준과 거리를 유지했다.“사촌 동생을 더 관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홍유라 씨가 저때문에 크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방금은 제가 좀 흥분해서...”“혁준 오빠!”홍유라가 얼굴을 붉혔다.“오빠는 어떻게 나보다 이 계집애를 더 걱정할 수 있어요? 이년이 방금 내 머리를...”“입 다물어!”송혁준이 노발대발하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홍유라는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했고 강서연도 당황했다.역시 친왕은 분위기부터 보통 사람과 다르다.“홍유라, 네가 평소에 어떻게 사람들을 괴롭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송혁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연
강서연은 깜짝 놀라 연거푸 뒷걸음질 쳤다.“안 됩니다! 제 옷은 더러워졌고 술 냄새가 나서 이대로 왕후 앞에 나타나면 너무 실례입니다! 저는...”“진정하세요.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송혁준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손을 그녀의 한 쪽 어깨에 올렸다..강서연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 그와 거리를 두려 했고 송혁준은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그녀가 뒤로 물러서기도 전에 재빨리 손을 치웠다.그리고 예의 바르게 그녀더러 앞에서 걸으라고 했고 강서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송혁준이 자신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그의 눈빛이 맑고 순수했기 때문이다.그녀는 다른 속셈이 있는 남자들을 많이 봐왔다. 예전에 강주에 있을 때 그녀를 자주 괴롭혔던 상사, 그리고 오성에서 그녀를 이용하려고 했던 그 감독... 그들은 모두 더러운 욕망을 가감 없이 얼굴에 내비췄다.송혁준은 그들과는 달랐고 강서연은 그 순수한 눈동자에서 다정다감한 성격과 사람을 대하는 선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그녀는 장차 그가 정말 이 나라의 군주가 된다면 나라를 잘 이끌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서연 씨, 왜 그래요?”강서연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송혁준을 따라 황궁 안으로 들어왔다.“여기는 황실 전용 탈의실이에요.”송혁준은 어디선가 옷 한 벌을 꺼내 건넸다.“이것으로 갈아입으세요.”강서연은 약간 놀랐다.그가 손에 들고 있는 화려한 드레스는 남양의 전통 복장으로 솜씨가 정교하고 금실과 진주로 장식하여 있었다.연분홍색 비단에 수 놓인 두 나비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이건...”송혁준은 신비롭게 웃었다.“먼저 갈아입으세요.”강서연은 탈의실로 들어가 잠시 후 밖으로 나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 옷은 그야말로 그녀를 위해 맞춤 제작한 것이다!목둘레와 소매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으며 허리와 치마의 길이까지도 적당하다.강서연은 송혁준을 바라보며 그녀가 묻기도
“그게...”송혁준은 어깨를 으쓱했다.“저는 본 적이 없지만 석진 씨의 말을 들어보니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선녀 같은데요!”강서연은 그의 말에 웃었다.나석진은 송지아를 좋아하지 않지만 온순한 송혁준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유치원 때부터 함께 놀다가 중학교에 가면서 떨어졌다.하지만 지리적 거리가 두 사람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지는 않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상을 공유해왔다.이번에도 나석진이 그에게 서지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고 그녀의 임시거주증명서도 송혁준의 도움을 받았다.“제가 보니 석진 씨는 이번에 제대로 빠졌어요!”송혁준이 웃으며 말했다.“서지현 씨가 그 양복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석진 씨가 하루에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서 주인아주머니는 정말 집을 허물러 온 줄 알아요!”“지현이는 요즘 잘 지내고 있나요?”강서연은 오랫동안 그녀를 보지 못해서 몹시 그리워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석진 씨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강서연은 치마에 놓인 자수와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저는 이 치마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송혁준이 시간을 보니 왕후에게 갈 간이어서 두 사람은 함께 궁전으로 걸어갔다.의례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 곳곳에서 내전으로 가는 황실 귀족들이 보인다.그런데 홍유라만 보이지 않는다.강서연은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홍유라는 그녀에게 물벼락을 맞았을 때 솔직히 말해서 좀 불쌍하기도 했지만, 먼저 괘씸하게 행동한 그녀였기에 막 차오르는 동정심을 뿌리쳤다. 강서연은 은근히 성격이 있어 쉽게 동정을 남발하지 않는다.그러던 중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그녀는 송혁준을 이상하게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오늘 초대받은 사람들은 다 여자 아니에요? 전하께서 왜 여기에 있어요?”송혁준은 눈빛이 변하고 걸음을 멈췄다.이 문제를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그는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렸을 때는 여자아이처럼 생겼는데 때로는 지아 누나와 함께 외출하면 다른 사람들이
강서연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말을 하지 않았다.송혁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에는 한 가닥 의혹을 드러냈다.“누나가 어떻게...”“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 마!”송지아는 잔을 들어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냉소하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이렇게 재주와 미모가 뛰어난 사람을 너희들이 감춰두다니, 너무 치사하잖아!”강서연은 심호흡을 했다. 송지아가 서지현을 은밀히 조사한 것이 분명하다.여친왕의 세력으로 한 사람을 조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송지아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틀림없이 모두 나석진 때문일 것이다.질투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한다.강서연이 서지현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송지아가 먼저 말했다.“숙모께서도 서연 씨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마음에 들죠? 아까 처음 봤을 때 저는 어느 디자이너가 만든 줄 알았어요!”“그래?”왕후가 웃음을 자아냈다.“그렇다면 드레스를 만든 사람이 더 궁금해지는구나! 서연아, 윤씨 가문의 수녀니? 윤씨 가문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었어?”“당연히 아니죠!”송지아는 왕후 옆에 앉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설명했다.“서지현이라고 겨우 열여덟 살 된 손재주가 뛰어난 처자에요. 보는 눈도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몰라요. 마음씨도 곱도 얼굴도 너무 예쁜데...”“왜?”송지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양복점에서 잡일을 하고 있대요. 정말 재능이 아까워 죽겠어요.”왕후는 선량하고 재능 있는 인재를 아끼는 사람이어서 송지아의 말을 듣고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괜찮은 처자가 어찌 양복점에서 일하고 있어!”“그러니까요! 숙모, 아니면...그녀를 궁전으로 불러와서 숙모를 위해 옷을 만들게 하는 건 어때요?”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테이블 아래서 작은 주먹을 불끈 쥐어졌다.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서지현을 황궁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서지현은 지금은 임시거류증명서만 있을 뿐, 그녀가 정식 신분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이 황궁에 갇혀 있을 수는 없
“혁준아.”송지아가 그를 비꼬며 이상하게 말했다.“설마... 너에게 이런 취미가 있니?”송혁준이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고 그의 눈빛에 송지아는 깜짝 놀랐다. 누나인 그녀는 한 번도 온화하고 순진한 남동생에게 이런 흉악한 눈빛이 있었는지 몰랐다.송지아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친왕으로서의 위엄을 유지했다.“너... 뭘 하려고?”“누나, 왜 그렇게 긴장해?”송혁준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방금 누나가 나를 협박했지. 나는 아무말도 안 했잖아!”송지아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송혁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누나에게 할말에 있는데... 누나가 홍유라를 시켜서 강서연을 괴롭힌 거지?”“무슨 헛소리야!”“됐어, 송지아가 인정하기 만무하지.”송혁준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누나 명심해. 세상에 바보는 없어. 홍유라가 누나한테 이용당하는 게 친해서가 아니라 누나한테서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야. 그리고 강서연도...”그는 한숨을 쉬었다.“강서연이 만만하다고 생각하지 마. 그 사람 앞서 20년은 강주에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최씨 가문의 사모님이자 윤씨 가문의 아가씨야. 장차 윤씨의 뒤를 이을지도 몰라. 누나가 아직도 왕위를 물려받고 싶으면 강서연한테 함부로 하지 말고 윤씨 가문을 끌어들여야지! 누나가 계속 이렇게 행동할 거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송지아는 순간 얼굴빛이 변하더니 화가 나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송혁준은 고개를 저으며 한심한 듯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하지만 자신의 속내가 그렇게 빨리 간파된 탓인지 이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사실 어릴 때 송지아는 이런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는 남자아이들과 놀지 않고 늘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주변에는 나석진 말고는 친구도 별로 없다.송지아는 처음에는 그가 바람둥이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송혁준은 몸을 뒤척이며 두 눈으로 천장을 멍하니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는 고개를 저었다.“얼른 들어가세요.”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그녀의 집 쪽을 바라보는 송혁준의 눈빛이 포착됐다.뭔가를 찾는 것 같은데...강서연의 마음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송혁준이 그녀에게 잘해주고 사사건건 감싸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의 직감으로는 그게 남녀의 정이 아닌 것 같았다.예전에 임우정도 그녀에게 이렇게 대했고, 곽보미도 그녀에게 이렇게 대했고, 최연희도 그녀에게 이렇게 대했고, 서지현도 그녀에게 이렇게 대했다...하지만 송혁준은 남자잖아!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송혁준을 슬쩍 쳐다보고는 억지로 웃으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 최연준이 부엌에서 저녁 밥을 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앞치마를 두르고서는 그녀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웃음을 지었다.“아내가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빨리 손 씻고 밥 먹어.”강서연은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전부 당신이 만든 거예요?”고기찜, 두부말이, 새우튀김, 찹쌀떡...최연준은 또 밥 두 그릇을 가져와 직접 토마토 스크램블을 흰 쌀밥 위에 얹었는데 냄새가 고소하고 매우 먹음직스러웠다.강서연은 오후 내내 왕후 곁을 지켜 숙녀 행세를 하고 있어 예의범절을 지키느라 다과 한 입도 먹지 않았다.지금 이 식탁의 음식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당신 정말 대단해요.”그녀는 마치 주꾸미처럼 최연준의 몸에 붙어 그의 볼에 뽀뽀했다.이를 즐기던 최연준은 웃으면서 뒤에 있던 집사에게 집을 나설 때 부엌문 뒤에 숨겨둔 호텔 포장지를 버리는 것을 잊지 말라고 슬쩍 손짓을 했다.집사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들었다.사실 그는 오후 내내 집사에게서 요리를 배웠는데 토마토 스크램블만 배우고 주방을 전쟁터로 만들었다.그는 그녀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아들은 잠들었어. 편하게 밥 먹으면 돼.”강서연이 애교를 부렸다.“당신도 같이 있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