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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0화

한참 동안 멍해 있던 나석진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바짓가랑이 사이즈 잰다고? 그렇지. 예전에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와서 맞춤 제작을 할 때도 몸 전체의 사이즈를 꼼꼼히 측정했었어. 하지만 그 디자이너들은 모두 남자였다고. 지금 서지현이 사이즈를 재고 있으니...’

마음이 덜컥 내려앉은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녀를 노려보며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른 손님들한테도 이렇게 해줘?”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른 남자한테도 바짓가랑이 사이즈를 재어줬었냐고?”

나석진의 고함은 지붕을 뚫고 나갈 기세였다.

눈을 감고 있던 서지현은 천천히 눈을 뜨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나석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아니에요. 전... 전 지금 그냥 조수일 뿐이에요. 자수와 바느질만 할 뿐 손님에게 사이즈를 재주는 일은 하지 않아요.”

“아저씨...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그녀의 말에 그의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내가 처음이었군.’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트에 적힌 일련의 숫자를 보고 갑자기 마음이 설렜다.

“다 쟀어?”

“네, 다 쟀어요.”

서지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럼...사이즈는 어때?”

그가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좋네요.”

그녀는 노트를 들여다보며 대답했고 사이즈로 봐서 그의 몸은 황금비율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그래?”

그가 몸을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넌 사이즈가 만족스럽다는 거네?”

“네, 만족해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말이 야하게 들려 그는 귀까지 빨개졌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순수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은 한국어의 정수를 배우지 못했나 보다.

그녀의 대답에 나석직은 피식 웃었다. 방금 그녀가 치수를 재었을 때 그는 무의식중에 선반 위에 옷 두 벌이 있는 것을 언뜻 보았다.

그것은 남양의 가장 전통적인 옷이었고 그 위에는 자수와 꽃장식이 있었다. 붉은 계열의 옷인 걸 보면 혼례식 때 입은 혼례복인 것 같았다.

“저건 손님 거야?”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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