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찾아왔으니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강서연은 최연준의 팔짱을 끼고 송혁준의 뒤를 따라갔다.윤씨 가문의 별장은 황실 귀족들을 자주 접대했었지만 이 시간에 손님이 방문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다행히 서글서글한 송혁준이었기 때문에 집사 한 명만 남겨놓았고 그렇게 큰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집사가 다과를 올린 후, 최연준은 집사한테 나가라고 했고 이내 거실에는 그들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강서연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최연준의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녀는 조용히 남편의 손을 잡고 그에게 단호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눈빛을 마주한 최연준은 이내 안색이 변하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서로를 쳐다보았다.“콜록콜록.”송혁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두 사람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강서연은 서둘러 손을 놓으려 했으나 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그녀가 손을 떼려는 순간 그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자신의 손바닥 안으로 감쌌다. “윤 회장님과 사모님의 금실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에 최연준 씨와 강서연 씨의 사이도 참 부러울 정도로 다정해 보이네요.”얼굴이 살짝 붉어진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한편, 최연준은 주인의 태도로 송혁준에게 차를 권했다.“이 차는 오성에서 가져온 겁니다. 전하의 입맛에 맞는다면 앞으로 매년 전하께 보내드리지요.”송혁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 입 맛보았다. ㅊ차 맛이 가슴에 스며들고 농도가 적당한 것이 정말 보기 드문 좋은 물건이었다.“오성 4대 가문 중 최고의 가문인 최씨 가문의 취향이 남다르다는 건 이 차 한 가지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이 차는 녹차의 일종입니다.”최연준은 차가운 얼굴로 옅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갔다.“사실 차를 마시는 건 여자들이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자신에게 어울리는 차를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참신한 관점이네요. 어
다음 순간, 그는 송혁준의 온화한 눈빛을 마주하게 되었다. “최연준 씨, 이렇게 오래 얘기했는데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까?”“뭐라고요?”최연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송혁준은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서서 거실을 나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의심으로 가득 찼다. 기억을 이리저리 되짚어봤지만 이 사람에 관한 그 어떠한 정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부러 속임수를 쓴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정말 강서연에게 반했다면 분명 최연준을 교란하고 기회를 노릴 것이니까. 최연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직접 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오니 강서연은 이미 아래층에 내려와 있었다. “군형이는 어때?”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젖 먹였더니 잠들었어요.”“응.”그는 담담히 대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갔다.강서연은 그의 뒤를 바짝 따라왔고 그는 아기의 방문 앞에 멈추어 섰다가 두 사람의 침실 문 앞에 멈추어 섰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너... 군형이를 우리 침대에 눕힌 거야?”“쉿, 목소리 낮춰요.”강서연은 이내 그를 게스트룸으로 밀어 넣었다.“애 깨우지 말고.”최연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이 꼬맹이한테 침대를 양보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집에서 말도 못 하는 거야?’입을 삐죽거리던 그의 얼굴에 또 먹구름이 몰려왔다. 강서연은 피식 웃더니 그의 팔짱을 끼고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녀는 오늘 밤 그가 매우 불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남자가 자신을 집 앞까지 바래다준 것도 모자라 거리낌 없이 집으로 들어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보통 남자라도 마음이 불편했을 건데 하물며 이 질투쟁이는... 게다가 아들은 자기 침대에서 자지 않고 떡하니 그의 큰 침대를 차지하고 있다. 곧 그의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다. “연준 씨, 화났어요?”강서연은 달콤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깊은숨을 들이마
그녀는 이번에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보.” 그는 그녀의 목 사이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은 여기서 자...”“하지만 군형이가 침실에 혼자 있어요.”“그게 뭐 어때서? 남자아이는 어릴 때부터 독립하는 법을 배워야 해.”“잠에서 깨면 무서워할 거예요.”“그러니까 오늘도 군형이랑 자겠다는 거야?”최연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이 될 때, 최연준은 손수 아기방을 꾸미고 남자아이는 일찍 독립해야 한다며 신이 나서 아들을 자기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나 강서연은 자꾸만 아들을 두 사람의 침실로 데려왔다. 밤에 젖을 먹이는 것이 편하다고 하면서 아들을 자신의 옆에서 재웠다. 처음에 침대에는 최연준의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강서연이 무슨 뉴스를 보고 이러는 건지 최연준이 잘 때 뒤척이다가 아들을 다치게 할 것 같다고 하면서 결국은 침대에서 쫓겨나게 되었다.하여 그 후부터 아들이 안방에서 자면 남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게스트룸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최연준의 모든 불쾌감은 오늘 밤 송혁준에 의해 자극받은 후 집중적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연준 씨, 밤에 군형이한테 젖 먹여야 해요.”강서연은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편, 최연준은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나도 먹을 거야.”“연준 씨...”그의 말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 순간, 최연준 바로 벨을 누르고 가정부와 산후 도우미한테 오늘 밤은 모두 안방으로 가서 도련님을 돌보라고 명했다. 최군형은 잠을 잘 자는 편이었다. 한밤중에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냉동실에 미리 보관해 둔 모유가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품에 안긴 여자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그녀를 끌어안고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내 침대에 올라왔으면서 내려갈 생각을 해?”“연준 씨!”“군형이가 전생에는 내 연적인 것 같아. 여보... 아니면 전생의 애인을
“무슨 생각 하길래 그렇게 웃어요?”강서연이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아무 데도 안 가고 강주에서만 살았으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별로 안 좋았을 거예요.”“왜?”“알아요, 연준 씨는 강주에서의 단순한 삶을 그리워하고 있다는걸.”그녀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항상 단순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은 삶의 어려움도 겪어야 하고 사람 사이의 갈등도 겪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언제 어디서든 겪어야 할 일이라면 오성이나 이곳에서 사는 게 좋죠. 적어도 이곳에서 살면 우리 뒤에는 가족들이 있으니까.”그녀가 점점 성숙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난 예전의 단순한 날들이 좋았어. 근데 지금 이렇게 복잡한 날도 좋아. 아무튼 너와 함께하는 날이면 난 다 좋아.”강서연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니까 여보.”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또박또박 말했다. “앞으로 그 송혁준과는 단둘이 만나지 마!”그녀는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정말 송혁준 씨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애 엄마인 내가 무슨 볼 게 있다고?”“애 엄마라고 해도 당신은 매력이 있어.”최연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와 더 이상 논쟁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눈에는 그녀의 모든 것이 다 좋으니까. 이내 그녀는 방긋 웃더니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는 그의 품에 안겼다. 황실 사람인 송혁준한테 남의 아내를 강점하는 특별한 취미가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그 사람을 멀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황실의 초청이 오면 최대한 거절할게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석진 오빠는 좀 안 됐어요. 송지아 씨가 당분간은 오빠를 가만둘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최연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의 머리에 키스했다. 잠시 후, 그녀는 이내 단잠에 빠졌지만 그는 잠에 들지 못했다. 송혁준이
찔리는 것이 있던 송지아는 눈길을 돌렸다.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송혁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 웃기는 일이네. 친왕인 내가 뭐가 찔리는 것이 있다고? 내가 가진 권력은 최고의 권력이야. 강서연 같은 평민을 상대하는데 뭐 잘못됐어?’송혁준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군.’그들 남매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누나는 떠벌리는 성격이었고 동생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매번 누나에게 일이 생길 때마다 동생도 그 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한 가족이었고 사람들은 정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그저 황실 전체에 그 죄를 뒤집어씌웠었다. “누나. 정말 맹세할 수 있어?”송혁준은 그녀를 쳐다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의 물음에 송지아는 화를 벌컥 냈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나한테 맹세하라는 거야?”“그러니까 맹세할 엄두가 안 난다는 거네?”송지아는 입술을 오므린 채 몸이 굳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양은 종교 국가이고 신에게 맹세하는 것은 신성하고 정중한 일이었다. 현지인들은 맹세를 어기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황실이라고 해도 이 방면에서는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송지아는 맹세하지 않았다. 송혁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가 바닥에 있는 유리 파편을 치웠다.이게 그가 황실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었다. 그는 하인을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평등하고 사랑이 넘치는 이상적인 나라를 품고 있었다. 반면, 송지아는 이에 대해 매우 경멸하였고 짜증 나는 표정을 지었다. “누나.”그는 정리를 하면서 온화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강서연 씨한테 손을 쓰려고 한 건 잘못된 일이었어. 나석진의 근황에 대해 알리지 않는 건 그녀의 자유야. 누나한테는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너...”송지아는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지금 이 순간, 그녀
잠깐 망설이던 송혁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나가 정말 나석진 씨를 좋아한다면 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볼게.”멍한 표정을 짓던 송지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약한 남동생은 몇 마디 좋은 말만 하면 분명 남매 사이의 정을 생각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가 칼을 송혁준의 심장에 꽂아도 송혁준은 그 사람이 송지아라고 절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고마워. 하지만 난 황실의 규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의 결혼은 원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거야. 만약 나씨 가문에서 그럴 생각이 없다면 나 혼자 좋아해도 소용없는 거잖아.”“됐어, 그만해. 오래 얘기했더니 피곤하다. 당분간은 그런 생각 하지 않을 거야.”송혁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어져가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송지아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송지아라면 절대 이대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강서연은 지금 이미 그녀의 미움을 샀다. 그러나 강서연은 윤제 그룹의 딸일 뿐만 아니라 최연준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안색이 어두워진 손혁준의 맑은 눈빛에 단호함이 스쳐 지나갔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절대 당신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까.”...한편, 강서연은 아침 일찍 요양원에 가서 저녁때까지 윤문희와 함께 있었다. “여긴 내가 돌보고 있을 테니 넌 네 볼일 보거라.”윤정재는 계속해서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봐봐, 네 엄마 지금은 아주 많이 좋아진 상태야. 매일 약도 제때 챙겨 먹어서 회복이 아주 좋아.”“네가 이렇게 하루 종일 나와 있으면 군형이가 널 찾지 않아?”“괜찮아요.”강서연은 웃으며 대답했다.“집에 가정부도 있고 산후 도우미분도 계시고 냉장고에 이미 준비해 둔 모유도 있어서 군형이가 굶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래도 안 되지.”윤정재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서연아, 넌 이제 엄마야. 무슨 일을 생각하든 네가 엄마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흠칫하던 강서연은
“앗!”그 사람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강서연은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요람 앞으로 달려가 아들을 몸으로 감싸며 필사적인 포스를 내뿜으며 그 사람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구 때렸지만 그 사람은 공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요람 속 최군형은 소리에 놀라 깨어나 울음을 터트렸다.“그만 때려! 아들이 울고 있는데 때리면 어떡해? 서연아, 나야!”“누구에요?”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고 가방을 든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눈앞에는 그녀보다 훨씬 키 큰 남자가 몸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고 그녀에게 맞아 몹시 초라해 보였다.공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남자는 두 팔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겁에 질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석진... 오빠?”강서연은 깜짝 놀랐고 나석진은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그를 관여할 새도 없이 급히 뒤돌아 아들을 품에 안고 달랬다.이때 몇몇 경비원들이 전기봉을 들고 빠르게 달려오자 강서연은 오해라고 해명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정말 너무하네...”나석진은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는데 다행히도 그가 조치를 취해서 얼굴을 맞지 않았다. 얼굴에 흉이라도 생기면 앞으로의 연예계 생활도 끝이 보인다.“오빠인 줄 몰랐어요!”강서연은 아들을 안고 그의 뒤에 서서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아기방은 항상 부드러운 조명이어서 그녀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게다가 그녀가 돌아왔을 때 도우미가 한 명도 없어서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그런데 우리 집에는 왜 왔어요? 연준 씨는요?”나석진은 어이없는 얼굴로 그녀를 한 번 보았다.“바로 너의 남편이 나보고 오라고 했어. 너는 오늘 요양원에 가서 이모 보러 갔고 너의 남편은 찬이 서류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어서 둘 다 바쁘다고 해서 나를 불러왔어!”“그럼 도우미들은요?”“그러게!”나석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집에 도우미가 한가득한데 왜 나를 불렀지? 내가 오자마자 아기방에 많은 사람들이 군형이를 보살피는 것을 보고 순
서지현은 손에 쥔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며 기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나석진을 아련하게 바라보는데 그 눈빛에는 생전 18년 동안 보지 못했던 행복이 담겨 있었다.“이건...”그녀는 흥분해서 목이 메었다.“정말로 별을 딴 거 같아요.”나석진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그녀가 기뻐하는 것을 보니 그는 그녀보다 더 기뻐했다.그는 오늘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 그녀를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이제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속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지현아, 나는...”그런데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지현이 흥분해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아저씨, 여긴 도대체 어디에요? 너무 몽환적이에요! 저도 맨체스터에서 많은 곳을 가봤지만 여기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어요!”“여기는 윤씨 가문 뒷마당이자 사바 열대우림이야. 이 반딧불을 자세히 보면 날개가 두 쌍이야!”서지현이 날개를 보고는 더욱 놀라고 기뻐하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이를 본 나석진의 눈빛은 자기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그는 최연준이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강서연의 웃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이번 생이 값지다고 생각한다.그때 나석진은 최연준의 이 말을 비아냥거렸는데 지금은...나석진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는데 서지현이 그를 쳐다볼 때 다시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모습으로 변했다.“지현아.”그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옆에 서있는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나석진은 몸을 돌려 먼 곳의 밤과 산을 바라보다.“너도 남양에 온 지 꽤 됐으니 여기에 적응했겠지? 나는 네가 그 양복점에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너의 나이에는 대학에 가서 능력을 키워야 장래가 창창할 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나석진은 코를 만지작거리고 목소리가 낮아졌다.“저 양복점 사장님이 아들이 세 명 있는데 감히 너를 며느리로 둘 생각을 하고 있다니. 도대체 그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