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망설이던 송혁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나가 정말 나석진 씨를 좋아한다면 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볼게.”멍한 표정을 짓던 송지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약한 남동생은 몇 마디 좋은 말만 하면 분명 남매 사이의 정을 생각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가 칼을 송혁준의 심장에 꽂아도 송혁준은 그 사람이 송지아라고 절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고마워. 하지만 난 황실의 규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의 결혼은 원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거야. 만약 나씨 가문에서 그럴 생각이 없다면 나 혼자 좋아해도 소용없는 거잖아.”“됐어, 그만해. 오래 얘기했더니 피곤하다. 당분간은 그런 생각 하지 않을 거야.”송혁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어져가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송지아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송지아라면 절대 이대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강서연은 지금 이미 그녀의 미움을 샀다. 그러나 강서연은 윤제 그룹의 딸일 뿐만 아니라 최연준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안색이 어두워진 손혁준의 맑은 눈빛에 단호함이 스쳐 지나갔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절대 당신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까.”...한편, 강서연은 아침 일찍 요양원에 가서 저녁때까지 윤문희와 함께 있었다. “여긴 내가 돌보고 있을 테니 넌 네 볼일 보거라.”윤정재는 계속해서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봐봐, 네 엄마 지금은 아주 많이 좋아진 상태야. 매일 약도 제때 챙겨 먹어서 회복이 아주 좋아.”“네가 이렇게 하루 종일 나와 있으면 군형이가 널 찾지 않아?”“괜찮아요.”강서연은 웃으며 대답했다.“집에 가정부도 있고 산후 도우미분도 계시고 냉장고에 이미 준비해 둔 모유도 있어서 군형이가 굶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래도 안 되지.”윤정재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서연아, 넌 이제 엄마야. 무슨 일을 생각하든 네가 엄마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흠칫하던 강서연은
“앗!”그 사람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강서연은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요람 앞으로 달려가 아들을 몸으로 감싸며 필사적인 포스를 내뿜으며 그 사람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구 때렸지만 그 사람은 공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요람 속 최군형은 소리에 놀라 깨어나 울음을 터트렸다.“그만 때려! 아들이 울고 있는데 때리면 어떡해? 서연아, 나야!”“누구에요?”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고 가방을 든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눈앞에는 그녀보다 훨씬 키 큰 남자가 몸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고 그녀에게 맞아 몹시 초라해 보였다.공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남자는 두 팔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겁에 질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석진... 오빠?”강서연은 깜짝 놀랐고 나석진은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그를 관여할 새도 없이 급히 뒤돌아 아들을 품에 안고 달랬다.이때 몇몇 경비원들이 전기봉을 들고 빠르게 달려오자 강서연은 오해라고 해명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정말 너무하네...”나석진은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는데 다행히도 그가 조치를 취해서 얼굴을 맞지 않았다. 얼굴에 흉이라도 생기면 앞으로의 연예계 생활도 끝이 보인다.“오빠인 줄 몰랐어요!”강서연은 아들을 안고 그의 뒤에 서서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아기방은 항상 부드러운 조명이어서 그녀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게다가 그녀가 돌아왔을 때 도우미가 한 명도 없어서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그런데 우리 집에는 왜 왔어요? 연준 씨는요?”나석진은 어이없는 얼굴로 그녀를 한 번 보았다.“바로 너의 남편이 나보고 오라고 했어. 너는 오늘 요양원에 가서 이모 보러 갔고 너의 남편은 찬이 서류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어서 둘 다 바쁘다고 해서 나를 불러왔어!”“그럼 도우미들은요?”“그러게!”나석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집에 도우미가 한가득한데 왜 나를 불렀지? 내가 오자마자 아기방에 많은 사람들이 군형이를 보살피는 것을 보고 순
서지현은 손에 쥔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며 기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나석진을 아련하게 바라보는데 그 눈빛에는 생전 18년 동안 보지 못했던 행복이 담겨 있었다.“이건...”그녀는 흥분해서 목이 메었다.“정말로 별을 딴 거 같아요.”나석진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그녀가 기뻐하는 것을 보니 그는 그녀보다 더 기뻐했다.그는 오늘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 그녀를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이제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속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지현아, 나는...”그런데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지현이 흥분해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아저씨, 여긴 도대체 어디에요? 너무 몽환적이에요! 저도 맨체스터에서 많은 곳을 가봤지만 여기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어요!”“여기는 윤씨 가문 뒷마당이자 사바 열대우림이야. 이 반딧불을 자세히 보면 날개가 두 쌍이야!”서지현이 날개를 보고는 더욱 놀라고 기뻐하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이를 본 나석진의 눈빛은 자기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그는 최연준이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강서연의 웃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이번 생이 값지다고 생각한다.그때 나석진은 최연준의 이 말을 비아냥거렸는데 지금은...나석진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는데 서지현이 그를 쳐다볼 때 다시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모습으로 변했다.“지현아.”그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옆에 서있는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나석진은 몸을 돌려 먼 곳의 밤과 산을 바라보다.“너도 남양에 온 지 꽤 됐으니 여기에 적응했겠지? 나는 네가 그 양복점에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너의 나이에는 대학에 가서 능력을 키워야 장래가 창창할 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나석진은 코를 만지작거리고 목소리가 낮아졌다.“저 양복점 사장님이 아들이 세 명 있는데 감히 너를 며느리로 둘 생각을 하고 있다니. 도대체 그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있는 건지!
“아저씨!”그 달콤한 소리가 숲속에서 갑자기 들려왔다.달콤한 목소리와 청량한 웃음소리와 함께 나석진 앞에 나타난 것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그 한 마리... 개구리가 있었다!서지현이 개구리를 그의 앞에 내밀었을 때 나석진은 깜짝 놀랐다.그는 촉감이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냉혈동물들을 싫어한다. 개구리는 커다란 검은 눈으로 나석진을 한동안 응시하더니 울음소리를 냈다.“개굴.”나석진은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곧이어 그는 온몸에 닭살이 돋고 성대가 걷잡을 수 없이 쩌렁쩌렁 소리를 냈다.“앗!”서지현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개구리를 꼭 움켜쥐고는 눈을 크게 뜨고 나석진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나석진의 얼굴은 삶은 새우처럼 변했고 입술은 일직선으로 오므라들었다.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결국에는 폭발했다.“서지현!”소녀는 즉시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나석진은 자기가 진심을 다해 애틋하게 고백할 때 그녀는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는 거에 화가 났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그녀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잠시 후 그의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져 연민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놀란 눈동자도 활기 있게 돌아왔다.방금 전에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던 작은 개구리가 구사일생해서 때를 놓치지 않고 울음소리를 냈다.“개굴.”나석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냈다.“아저씨.”서지현은 곧바로 사과했다.“미안해요. 개구리를 무서워하는 줄 몰랐어요...”“누가 무서워한대!”나석진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소문이 나면 어떻게 그의 이미지를 지킬 수 있겠는가?“그럼 아까 그 반응은...”“그건 너한테 화난 거야!”“네?”서지현은 그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연기하는 것처럼 한나절 동안 감정을 바로 잡고 있었는데 개구리 울음소리 하나로 전부 물거품이 됐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그녀는 그의 고백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사람은 다 똑같다.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말할 용기가 없다.“아, 됐어..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한참 후 서지현은 코를 훌쩍이고 환하게 웃었다.“이렇게 몽환적인 곳에 데려와 줘서 너무 고마워요!”그녀는 조금 전 나석진의 모습을 따라 해 반딧불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행복한 미소가 얼굴을 가득 채웠다.그리고 그녀는 반딧불을 놓아주었고 반딧불은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연결되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서지현은 앞으로 뛰어가 반딧불을 쫓아갔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반딧불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아름다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그녀는 뒤돌아 나석진을 한 번 힐끗 보았는데 눈빛에는 탐욕스러움이 담겨있었다.방금 그는 이 우림 속의 쌍날개 반딧불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했는데 나석진도 서지현의 마음속에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강서연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책상 위에 놓인 청첩장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종이에 그려진 익숙한 금박 무늬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최연준은 그녀 옆에 앉아 살며시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여보, 무슨 일이야?”강서연은 청첩장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황실에서 꽃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유명 인사들을 황궁으로 초청해 꽃을 감상하는 동시에 관계를 쌓는 자리이기도 하다.그리고 윤제 그룹은 남양에서 납세를 많이 하므로 당연히 초대받았다.“꽃 축제 행사는 여자들만 초대하는데 황실에서 참석하는 사람들도 황후나 공주 같은 신분이에요.”강서연이 설명했다.“그런데 남양왕은 자식이 없어서 이번 행사의 전권을 송지아에게 맡겼어요.”최연준은 그녀가 송지아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다.“그 사람이 당신을 보면 또 석진 씨에 대해 묻게 될 거야.”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하지만 남양 사람들이 꽃 축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들었어. 만약 당신이 지금 이 신청을 거절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나중에 당신을 더 괴롭힐 거야.”이 생각은
이때 송지아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홍유라는 그녀가 강서연을 상대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사람인데 그녀가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몇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많은 부잣집 딸들 앞에서 이렇게 망신을 당하다니!전부 다 말재주가 좋은 강서연을 탓해야 한다!송지아는 입술을 깨물고 얼굴색을 유지하고 일부러 엄숙하게 홍유라를 보았다.“너 취했어? 사람들 앞에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전하, 저는...”“어서 서연 씨에게 사과해!”홍유라는 매우 불복했지만 송지아의 눈치를 보고는 바로 이해가 갔다.그녀는 웃으며 잔을 들어 강서연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말했다.“서연 씨, 미안해요. 내가 원래 직설적이어서 실은 악의는 없어요!”강서연은 여전히 안색이 변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았다.“서연 씨. 내가 잘못했으니 정중히 사과하는 차원에서 벌주 한 잔을 마실게요.”강서연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는데 홍유라는 이미 술잔을 들었다.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쳐다보았다.이럴 때 강서연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마치 철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강서연은 살짝 웃으며 이 세상의 불공평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껏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정중하게 사과한다고요?”그녀는 이 글자들을 일부러 강조했다.“남양에서 정중하게 사과한다는 것에 대해 규칙이 있습니다... 홍유라 씨께서 술 한 잔으로 얼버무리려고 하는 겁니까?”홍유라는 잠시 멈칫했다. 이 여자가 남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남양의 규칙을 다 꿰뚫고 있다.맞는 말이다. 이쪽의 규칙에 따르면 사과와 정중한 사과는 차이가 있다.정중히 사과하는 것은 선물을 들고 방문하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절을 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강서연은 그녀를 보며 웃을 듯 말 듯 했다. 홍유라는 아까 한 말해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생각 없이 한 말이어서... 사과하면 사과지 정중하다고 왜 지껄이는 건지?남에게 말꼬리를 잡히고 웃음거리가 돼버렸다.홍유라는 그녀를
강서연이 여분의 옷가지가 있다고 해도 이 온몸에 밴 술 냄새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어서 반드시 왕후 앞에서 결례를 범할 것이다.송지아는 홍유라를 걱정했지만 강서연의 낭패스러운 모습에 또 한 번 의기양양해하며 냉소를 지었다.“서연 씨.”홍유라가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화장실에 가서 처리하세요! 오늘...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한 번 더 가도 상관없겠죠!”강서연은 제자리에 굳어 있다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이때 아랫사람이 와서 왕후에게 인사할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옆에서 또다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윤서연 씨, 오늘은 황실 연회인데 앞으로 이런 자리는 적게 오는 것이 좋겠어요. 예의를 잃으면 윤씨 가문에 망신을 줄 수도 있어요.”“그러니깐요. 밖에서 자란 것과 우리 남양에서 자란 것은 다르죠.”“전에 남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강주 지하실에서 살았다고 들었어요.”몇 명의 사람이 속삭이자 홍유라의 표정은 더욱 광기에 차 있었다.홍유라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강서연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강서연은 마음을 다잡고 자신만의 당당한 기세로 한바퀴 시선을 휩쓸고 마지막으로 홍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홍유라 씨, 괜찮아요. 드레스일 뿐인데요.”그녀는 웃었다.“홍유라 씨 말대로 화장실에 가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그럼 빨리 가세요! 뭘 꾸물거려요?”“홍유라 씨를 기다리고 있는데요.”강서연의 미소는 의미심장했다.홍유라는 어안이 벙벙하고 이 여자가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모르겠다.“홍유라 씨께서 저에게 술을 쏟아서 제 드레스가 더러워졌는데 옷을 갈아입으러 같이 가줘야 하지 않을까요?”“그게...”홍유라는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단지 옷을 갈아입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는 하인을 부를 준비를 했다.“홍유라 씨께서 저랑 같이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강서연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래야 홍유라 씨께서 방금 말씀하신 정중한 사과가 더 진정성 있어 보여요. 전하, 제 말이 맞죠?”강서
홍유라는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참 동안 어리둥절했다.그녀는 강서연을 괴물 보듯 바라보았다.“무슨... 소리에요?”강서연은 피식 웃었다.“제가 보기엔 세상에 공평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같은 집안의 사촌인데 왜 한 명은 친왕으로 뽑혀 나라를 물려받을 수 있고 다른 한 명은... 화장실에 서서 제 치마를 빨아줘야 할까요?”“뭐라고 하는 거예요?”홍유라는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강서연이 이간질을 하더라도 정곡을 찔렀다.홍유라는 송지아를 질투했다. 두 자매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고 공부도 같이했고 심지어 송지아의 성적은 그녀보다도 못했다.그런데 왜 송지아는 남양왕의 총애를 받아 황실의 유일한 여친왕이 될 수 있었을까.한때 자매였던 그녀는 이제 만나면 먼저 규칙을 준수하여 인사를 해야 하고, 게다가 그녀는 예전처럼 그녀의 이름을 곧이곧대로 부를 수도 없고 또 존칭을 붙여 전하라고 해야 한다.그리고 송지아는 친왕으로 책봉된 이후로 허세도 커졌고 이 친척들과 연락을 거의 하지 않으며 그녀에게도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했다.매번 그녀가 왕궁에 와서 송지아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콧대 높은 홍유라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한이 서리지만 지금 그녀는 조금도 티를 내면 안 되는데 특히 강서연 앞에서는 말이다.가식적인 말은 그래도 해야 한다.“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게 뭐가 불공평하다고요! 언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남양왕은 언니의 삼촌이어서 저와의 관계보다 훨씬 가까워요! 언니가 친왕으로 뽑히는 것도 모두의 바람이에요!”“그래요.”강서연이 끝음을 길게 늘렸다.“그러면 홍유라 씨는 이 세상에 공평한 것이 있다고 믿는 거예요.”홍유라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공평함은 어디에나 존재해요.”강서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공평하다는 거죠?”홍유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서연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했는데 소름이 끼쳤다.“서연 씨, 당신... 도대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
“아내라고?”강서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현진이와 정식으로 결혼한 적 있니?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에서 끼어든 건 너잖아. 명분도 없는 관계에 ‘아내’라는 말을 쓰다니,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야.”“최 사모님...”“갑자기 생각난 건데.”강서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수정 씨가 쓰러졌을 때 네가 침대 옆에 있었던 거 맞지?”“아, 네.”소피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현진 씨를 대신해 효도하러 갔던 거예요. 하지만 어머님 건강이 그렇게 나쁘실 줄은 몰랐습니다.”“수정 씨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보렴.”소피아는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말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니?”강서연은 한 발짝 다가가며 소피아를 몰아붙였다.“수정 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쉽게 쓰러질 리 없지. 분명 큰 충격이 있었을 거야. 쓰러지기 직전 병실에 너 혼자 있었다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서연 이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배현진은 소피아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소피아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소피아가 사라지자, 배현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연 이모, 소피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배현진!”강서연은 배경원이 아들을 두 번이나 때린 이유를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듯,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니? 네 엄마는 지금 저 안에 누워 있어.”“정말로 소피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배현진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핥으며 설명했다.“서연 이모, 사실 소피아도 자책하고 있어요. 그날 소피아도 윤아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엄마 앞에서 그만 실수로 말을 흘리고 만 거예요. 그래서...”“뭐라고?”최연준이 눈을 부릅뜨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배현진, 네 엄마 쓰러졌을 때 넌 방에 없었잖아.”“소피아가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너...”최연준은 순간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