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배고플 줄 알았어요!”“...”“여보, 뭐 먹고 싶어요?”최연준의 머릿속에 다답형 문제가 떠올랐는데 관건은 정답을 고르지 못하는 것이었다.강서연이 맨체스터에 온 이후 줄곧 집사인 베티가 그녀의 생활을 보살펴줬는데 베티의 음식 솜씨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여보, 스테이크 빵 먹을까?”강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아니, 내가 스테이크 빵을 먹고 싶어!”최연준이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하지만 강서연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면 나는 파스타, 마카로니, 치킨, 감자튀김 먹고 싶어?”맞은편에 있는 그 진주알 같은 큰 눈이 두 번 반짝였지만 여전히 무표정이었다.남자는 문득 깨달았다.“아, 알겠다! 한식 먹고 싶어!”그제야 강서연이 살짝 웃었다.“무슨 한식 먹고 싶어요?”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다!최연준은 흥분해서 생각나는 한식을 다 말했다.찌개? 구이? 국수? 튀김? 무침?그런데 음식을 말하면 말할수록 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최연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간청하는 눈빛으로 자기 아내를 바라보았다.강서연이 탄식하며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여보, 도시락 먹고 싶지 않아요?”“도...”최연준은 말문이 막혔지만 바로 응석받이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한식 먹고 싶은지 어떻게 알았어? 지금 너무 먹고 싶어 환장하겠어!”여자가 흥분해서 말했다.“비행기에 있는 도시락을 먹고 싶지 않아요?”“...”기내식?그래서 20분 후, 기내식을 전담하는 회사의 사장이 쏜살같이 도착했다.“도련님.”최연준의 비서가 그들을 소개했다.“이분은 오 대표입니다. 이 회사는 오성행 비행기의 기내식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모두 요리사고 기내식은 바로 이분들의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최연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비서가 손짓을 하자 오 대표는 즉시 모든 주방장들을 데리고 곧장 주방으로 갔다.그들은 왜 갑자기 한밤중에 불러
강서연이 잠시 멈칫하더니 소리를 내어 웃었다.“여보 미안해요.”그녀는 미안해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내가 들어가서 설명할게요. 갑자기 기내식이 당기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인데...”“괜찮아.”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바보면 뭐 어때서. 당신 남편은 그리 나약하지 않아.”“나는...”어쩐 일인지 요즘 입맛이 점점 이상해져서 자꾸 이상한 것을 먹고 싶어 한다.기내식을 전부터 생각했지만 참다가 지나갈 줄 알았는데 이 생각이 눌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옛날에 그녀는 기내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임산부는 입맛이 자주 바뀌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야.”최연준은 눈빛이 부드럽고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당신 입맛을 만족시키는 거야!”“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줘요...”“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슈퍼맨이니까!”“연준 씨...”강서연은 눈물을 글썽거렸다.이 세상에는 항상 그녀를 무조건 사랑하고 감싸주며 온갖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이 세상에 다시는 최연준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강서연은 그의 품에 기대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듯 몸을 두 번 비볐다.“나도 사실 외삼촌과 많이 닮은 것 같아.”최연준이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외삼촌이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아내를 사랑하잖아.”그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나도 마찬가지야!”...서지현이 다시 그 거리로 돌아온 것은 오후 무렵이었다.해가 저물어가자 이 거리의 어두운 세력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는 늘 수많은 눈이 행인들을 주시하고, 이곳을 잘 모르는 외지 관광객들과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을 주시했다.서지현은 두건으로 대충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앞으로 나아갔다.거리의 불량배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휘파람을 불며 차마 입에 오르지 못하는 말을 했다.서지현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두건을 벗고 그들과 욕설을 주고받았다. 한국어로 욕하는 것은 못 하지만 영어
서지현은 동공이 커졌고 귀신을 본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하지만 그녀는 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미소를 지었다.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줄곧 이렇게 해왔다.“오랜만이에요, 제임스! 오늘 어쩐 일로 왔어요?”제임스는 그녀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철제 상자를 주시했다.상황을 보아하니 이 계집애는 최근에 수확이 아주 좋은 것 같다!제임스는 이 거리의 세력 멤버 중 한 명으로 능력이 없고 백인의 금발과 푸른 눈동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해 시청자들에게 너무 미안하게 생겼기 때문에 막 세력에 들어왔을 때 다른 불량배들에게 처참하게 괴롭힘을 당했다.사람은 이런 환경에서 심리적으로 서서히 비정상적으로 변한다.그래서 몇 년을 버티다가 마침내 조금은 지위가 있는 졸개가 되었을 때 그는 주변의 약자들을 보복성으로 괴롭히기 시작했고 보호비를 받을 때는 사람을 피를 토할 정도로 때리기 일쑤였다.서지현은 그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고 심지어 한 번은 그녀의 옆 지하실에 사는 언니가 제때 보호비를 내지 않아 그의 부하들에게 세 번이나 칼에 찔려 과다 출혈로 죽은 적도 있었다.그래서 서지현은 보호비를 제때 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냈다.제임스의 눈에 그녀는 이 거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그런데 겉으로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작은 철제 상자를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제임스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고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로 서지현을 향해 사악하게 웃었다.“요즘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던데? 며칠째 안 돌아온 건 부잣집 사모님 모시러 간 거야?”“아니에요.”서지현은 눈을 굴리며 얼버무렸다.“도우미 일을 구했을 뿐이에요. 일당을 주겠다고 했는데 지금 제 월급을 체납해서 당장 찾아가서 월급을 달라고 해야겠어요!”“돌아와!”제임스가 명령하자 문 앞에는 또 몇 명의 불량배들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씩 손에 쇠몽둥이를 들고 서지현을 향해 악의적인 웃음을 보였다.서지현은 당황했고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지현은 긴장하여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앗, 이건... 누구야?”여자가 영어로 말하는데 방금 들어올 때 자기야는 한국어로 말한 것이다.서지현은 이렇게 생각했다.‘문 앞에 있는 제임스에게 영어로 말했거나 아니면... 이 여자도 나처럼 혼혈인가?’“어머, 사모님 오셨군요!”제임스의 아부의 뉘앙스가 들렸다.‘사모님?’서지현은 이 여자는 나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했다.그녀의 놀란 말투로 들었을 때 분명 그녀는 여기에 서지현이 누워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여자는 화가 나서 영어로 욕을 했다.“이 기생 밑에서 자란 개자식아! 네 형님과 짜고 기생을 끌어들이다니! 누군지 내가 직접 봐야겠어!”“사모님... 진정하세요!”서지현은 한바탕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여자가 몇 번이나 자기를 때릴 것 같았지만 제임스가 막아줬다. 그리고 제임스가 더 비굴하게 굴자 여자는 점점 더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고 서지현은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남자 목소리인데 너무 듣기 거북했다.서지현은 이 남자가 제임스가 말한 형님일 것으로 판단했다.그가 나타나자 방이 조용해졌다.여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하고 기세등등했는데 지금은 가슴이 찢어지듯 울고 있었다.“여진국! 내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당신의 곁을 지키면서 시중들었어...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나한테...”남자는 약간 짜증이 나서 손을 흔들어 제임스더러 밖으로 나가라고 했고 침대에 누워 있는 서지현을 보자 눈빛에 음흉함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옆에 있는 여자는 울고불고하며 몇 년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셌고, 그에게 거꾸로 붙인 돈, 그리고 남자는 어떻게 양심이 없고, 어떻게 그녀에게 미안한 짓을 했는지 하소연했다...그녀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자 여진국은 흥취가 사라졌다.“진국 씨.”여자가 훌쩍거렸다.“당
“자기야, 자기만큼 좋은 여자는 없을 거야...”“그럼 은혜를 어떻게 갚을 건데? 하하하...”서지현은 침대에 누워 토할 뻔했다.그녀는 그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되어 문밖으로 나가는 듯한 소리를 똑똑히 들었고 이어서 옆방에서 차마 말 못 할 소리가 들려왔다.서지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뒤로 한 채 조심스럽게 안대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았다.2층에 있는 방이었는데 그녀는 이 건물의 구조를 몰라 아래층에 경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차라리 여기서 뛰어내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몇 초를 망설이다가 그녀는 바로 눈을 감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발목을 한 번 삐었는데 아픈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필사적으로 앞으로 달려갔다.맨체스터에서 18년을 살았기 때문에 서지현은 이미 이곳의 거리와 골목을 훤히 알고 있었고 어떤 이름 모를 작은 골목도 모두 알고 있었다.좌회전하고 우회전하면서 뒤도 돌아보지도 못하고 멈추지도 못하고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른 채 마침내 큰길로 나왔다.비록 한밤중이지만 이 번화한 시내 중심가는 여전히 북적거린다.서지현은 인파 속에 거닐면서 마침내 천천히 숨을 쉬었다.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녀의 어깨 위에 커다란 손이 얹혔다.서지현은 비명을 지르며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고 바로 돌아서서 그 손을 세게 물었다.“앗!”서지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입의 힘을 풀었다.‘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지?’그녀는 소심하게 눈을 들어봤는데 주위에는 보디가드들이 있었고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리고 그녀에게 물린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등을 움켜쥐고 그녀를 째려봤다.“아... 아저씨!”서지현은 한참 지나서야 울먹이며 말했다.순간 팽팽했던 신경이 무너지면서 그녀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나석진의 품으로 들어가 울기 시작했다.“아저씨, 도와줘요! 그 사람들이 날 잡아갔고 또 돈세탁을...”나석진은 그녀에게 한입 물린 것이 매우 불쾌했지만 그는 얼굴이 어두운 채 손은 자기도 모르게 위로 올
침묵이 길게 이어졌고 나석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왜 나중에 다시 말해요?”최연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연이가 하라면 바로 해야죠! 꾸물거리지 말고 남자답게 행동하세요!”“...”‘너만 잘났고 남자답다! 한밤중에 아내가 기내식을 먹고 싶어 하니까 배식 회사 사람들까지 다 불러들이고!’나석진은 그에게 눈알을 굴리며 콧방귀를 뀌었다.“연극 학원에 공부하러 가야 해서 먼저 가볼게!”“아니...”최연준의 말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이미 긴 다리를 벌리고 달아났다.강서연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걱정하지 마. 형님의 비자는 이미 연기했어.”최연준은 속삭였다.“왜요? 어떻게 알았어요?”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고 그는 매우 의기양양했다.“당연히 내가 사람을 시켰지!”“그러면 지현이를 도와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졌네요!”최연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강서연은 그가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고 칭찬할 겨를도 없이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서연아, 어떻게 된 거야? 매니저가 영국에 두 달 더 있으라고 하던데?”“그렇게 돼버렸네요...”나석진은 너무 흥분되어 목소리까지 변했다.“내 비자는 분명 한 달이었는데 지금은 석 달이 되었어! 석 달 동안 오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작품도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어?”강서연이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자 최연준이 핸드폰을 뺏어왔다.“제가 연기해 드렸는데 무슨 문제 있어요?”“...”“형님. 형님의 사장으로서 당연히 형님의 연기가 한층 더 향상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제가 연극 학원에서 두 과목을 더 신청했는데 딱 두 달이 더 필요하더라고요. 이참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을 다듬으세요!”“...”“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은 화제성이 높은 배우지만 기타 연예인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대중 앞에 노출되지 않으면 인기가 떨어지지만 형님은 신비로울수록 팬들은 더 조급해져요. 3개월은 팬들의 심리적인 면에서 참을 수 있는
김자옥이 그를 힐끗 보았다.‘손미현 부하들은 참 충실하구나. 설마 자기 주인이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예전에 손미현이 이사회에 있을 때도 김자옥은 이 파를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손미현이 교만해진 것은 모두 김성주 덕분이다.이제 그녀가 이사회에도 없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어떻게 뛰어다닐 수 있는가?“흥.”김자옥이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당신은 또 무슨 근거로 관중이 무조건 싫어한다고 생각합니까?”그 사람이 대답하지 못하자 김자옥은 또 다른 데이터를 제시하였는데 여러 차례 시장 조사를 거쳐 만든 보고서다.데이터 평가를 보면 이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지만 효과가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고 적어도 국제상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더군다나 우리 회사에는 연기대상을 받은 스타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고 천재 감독 곽보미도 있습니다. 곽보미 씨 이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에 컨디션이 워낙 좋아 이 영화를 찍는 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김 대표님. 배우가 많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다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나석진과 주아는 오성에서만 영향력이 있지, 영국 그리고 유럽 시장을 지키려면 현지 스타를 뽑아야 합니다.”“두 가지 버전을 만들라고요?”그 사람은 목을 움츠리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이사회 사람들은 귓속말하면서 두 버전의 비용이 두 배 이상 늘어난다고 생각했다.“김 대표님.”그 사람은 또 웃으면서 말했다.“지난번 주아가 유럽 시장에 진출했을 때 인생의 워털루에 의해 참패하지 않았나요?”김자옥의 안색이 변했다.이사회에는 생각이 바뀐 사람이 점차 늘어나면서 일부는 이에 동의했다.“맞아요. 주아는 안 됩니다. 게다가 이번에 곽 감독님이 찍는 것은 장르가 예술영화인데 그걸로는 돈을 벌 수 없어요. 왜 돈버는 상업영화를 찍지 않습니까?”“곽 감독님이 전에 흥행작을 몇 편 찍어서 돈을 많이 벌지 않았나요?”“맞아요. 상업영화를 찍어야 합니다.”이 사람들은 말 한마디마다 김자옥의 인내심 한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은데 비용은 최씨 가문에서 지원할 것입니까?”최연준이 눈을 가늘게 떴고 눈 밑에서 한기가 솟아올랐다.이사회에서는 파계가 복잡하여 일부분은 최연준은 성이 김씨가 아니라 최씨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불만이 있다.“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주식 절반 가까이가 최씨 건데 당신이 이 돈을 내고 싶은가요?”“그게...”최연준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그때 회의실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곧이어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이 돈은 우리가 투자할게요.”김자옥과 최연준은 동시에 어안이 벙벙했다.김성주가 서 있었고 그 옆에 손미현이 있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고 김자옥을 바라볼 때 약간의 도발적인 눈빛을 띠고 있었다.이사회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네가 여기에 왜 왔어?”김자옥이 일어나서 경비원을 불러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손미현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소리 질렀다.“뭐 하는 거예요? 우리는 영화에 투자하러 왔는데 대표님께서 이 돈을 포기할 것입니까?”김자옥은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고 또 김성주를 노려보았다.“제가 이사회에서 쫓겨났지만 제 남편은 여기에 설 자격이 있어요!”손미현은 일부러 김성주의 슈트를 정리해 주고 냉소했다.“안 그래요, 형님?”김자옥은 심호흡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상대가 날뛰고 오만할수록 그녀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왜냐하면 사람이 부풀어 오르면 결점도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때는 반드시 한 방에 맞을 수 있다.“맞아.”김자옥은 조용히 최연준에게 눈치를 주고 또 손미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성주는 이사회에 올 자격이 있지. 그럼 너희들은 이 영화에 어떻게 투자할 생각인데?”손미현은 드디어 자신이 기세등등해질 때가 왔다고 느꼈다.“1억 유로를 투자할게요!”...최연준은 서재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강서연이 컵을 들고 들어갔는데 그는 받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이 시간에 커피 마시면 안 돼요!”강서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이미 늦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