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녀는 확실히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녀 같은 사람은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장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집에 살 것인지, 심지어 결혼을 할 것인지는 그녀에게는 다른 세계의 일인 것 같았다.강서연은 잠시 생각했다.“네가 여기 있으면 신분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야. 내가 아이를 낳으면 우리는 오성으로 돌아갈 거야. 네가 원한다면 나랑 같이 가도 돼. 연준 씨가 너의 신분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아니에요...”서지현이 급하게 손을 흔들었다.“더 이상 저 때문에 귀찮게 할 수는 없어요! 저는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언니는 저에게 너무 잘해주었어요...”강서연은 코끝이 약간 시큼했다.이 소녀는 밤새 자수를 놓아 지쳐서 쓰러졌고 또 런칭쇼를 구해주었다.더군다나 그녀는 유찬혁의 목숨을 구했고 유찬혁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신이 모아둔 전 재산으로 병원비를 내줄 생각까지 했다.그게 아무 짓도 안 했다는 건가!강서연이 웃으며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오성에 가지 않으면 남양에 갈 수도 있어!”“남양요?”“맞아. 석진 오빠의 고향이기도 해. 남양의 황실과 군세력 앞에서는 그나마 작은 체면이 있는 사람이야!”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네가 가서 남양에서 신분이 없더라도 거기에서 살고 황실의 특사령이 있으면 신분을 얻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서지현은 마음이 흔들렸다.유럽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황실을 유지하고 있어 황실의 특사를 받으면 전국의 모든 불법체류자는 떳떳하게 다닐 수 있게 된다.그러나 이런 상황은 정말 보기 드물다.방금 강서연은 나석진이 남양 황실 앞에서 작은 체면이 있다고 하는데 서지현은 이 작다는 것이 어떻게 저울질 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석진은 그녀를 위해 이런 체면을 쓰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나석진과 그녀는 하늘과 땅 차이여서 같은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그녀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서연 언니.
강서연은 들을수록 걱정이 되었다.“지현아, 아무래도 보디가드가 같이 가는 게 좋을 텐데...”“정말 괜찮아요!”서지현은 웃으며 말했다.“제가 거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게다가 혼자 다니는 게 더 편해요. 물건을 챙기는 것 외에 집시 할머니와 작별하고 싶은데 보디가드가 따라다니면 오히려 불편해요!”“그래...”“서연 언니, 저 갈게요!”강서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지현은 달아났고 뒤돌아보면서 그녀를 보며 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오늘 밤에는 안 돌아올 거예요. 내일 봐요!”강서연은 거동이 불편해 보디가드를 부르지 못했고 서지현은 그사이 종적을 감췄다.밤에 최연준이 돌아와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웠다.한 명은 노트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한 명은 뒤척이며 전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여보, 무슨 일이야?”최연준이 이불을 조심스럽게 잘 덮어줬다.“배가 많이 나와서 불편한 거 아니야? 항상 왼쪽으로 누워 있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지!”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왼쪽으로 누워야 아기에게 좋다고 했어요.”“의사가 말한 것이 꼭 다 옳은 것은 아니야!”최연준은 진지하게 그녀와 논쟁을 벌였다.“오늘 밤은 이 남편 말을 듣고 오른쪽으로 누워! 왼쪽으로 몇 달 동안 잠을 잤는데 누가 참을 수 있겠어!”강서연이 쓴웃음을 지었다.“다 아들을 위해서잖아요.”“여보, 우리 아들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당신을 잠도 제대로 못 자게 하면 내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서연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하자 최연준은 서둘러 뒷말을 참았다.“여보, 절대 그 자식을 때리지 않을게!”그가 설명하자 강서연은 이 말에 빵 터져 오른쪽으로 누웠고 작은 얼굴을 최연준 가슴에 딱 붙였다.그러자 최연준은 노트북을 옆에 버리고 만족스럽게 자기 와이프를 껴안았다.“여보.”강서연이 부드럽게 말했다.“나는 지현이가 조금 걱정돼요.”“물건을 가지러 돌아갔는데 무슨 걱정이야? 게다가 내일 돌아온다고 했잖아!”“그런데 오늘 지현이가 그곳에 불량배가 있다고
강서연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배고플 줄 알았어요!”“...”“여보, 뭐 먹고 싶어요?”최연준의 머릿속에 다답형 문제가 떠올랐는데 관건은 정답을 고르지 못하는 것이었다.강서연이 맨체스터에 온 이후 줄곧 집사인 베티가 그녀의 생활을 보살펴줬는데 베티의 음식 솜씨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여보, 스테이크 빵 먹을까?”강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아니, 내가 스테이크 빵을 먹고 싶어!”최연준이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하지만 강서연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면 나는 파스타, 마카로니, 치킨, 감자튀김 먹고 싶어?”맞은편에 있는 그 진주알 같은 큰 눈이 두 번 반짝였지만 여전히 무표정이었다.남자는 문득 깨달았다.“아, 알겠다! 한식 먹고 싶어!”그제야 강서연이 살짝 웃었다.“무슨 한식 먹고 싶어요?”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다!최연준은 흥분해서 생각나는 한식을 다 말했다.찌개? 구이? 국수? 튀김? 무침?그런데 음식을 말하면 말할수록 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최연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간청하는 눈빛으로 자기 아내를 바라보았다.강서연이 탄식하며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여보, 도시락 먹고 싶지 않아요?”“도...”최연준은 말문이 막혔지만 바로 응석받이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한식 먹고 싶은지 어떻게 알았어? 지금 너무 먹고 싶어 환장하겠어!”여자가 흥분해서 말했다.“비행기에 있는 도시락을 먹고 싶지 않아요?”“...”기내식?그래서 20분 후, 기내식을 전담하는 회사의 사장이 쏜살같이 도착했다.“도련님.”최연준의 비서가 그들을 소개했다.“이분은 오 대표입니다. 이 회사는 오성행 비행기의 기내식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모두 요리사고 기내식은 바로 이분들의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최연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비서가 손짓을 하자 오 대표는 즉시 모든 주방장들을 데리고 곧장 주방으로 갔다.그들은 왜 갑자기 한밤중에 불러
강서연이 잠시 멈칫하더니 소리를 내어 웃었다.“여보 미안해요.”그녀는 미안해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내가 들어가서 설명할게요. 갑자기 기내식이 당기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인데...”“괜찮아.”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바보면 뭐 어때서. 당신 남편은 그리 나약하지 않아.”“나는...”어쩐 일인지 요즘 입맛이 점점 이상해져서 자꾸 이상한 것을 먹고 싶어 한다.기내식을 전부터 생각했지만 참다가 지나갈 줄 알았는데 이 생각이 눌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옛날에 그녀는 기내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임산부는 입맛이 자주 바뀌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야.”최연준은 눈빛이 부드럽고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당신 입맛을 만족시키는 거야!”“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줘요...”“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슈퍼맨이니까!”“연준 씨...”강서연은 눈물을 글썽거렸다.이 세상에는 항상 그녀를 무조건 사랑하고 감싸주며 온갖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이 세상에 다시는 최연준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강서연은 그의 품에 기대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듯 몸을 두 번 비볐다.“나도 사실 외삼촌과 많이 닮은 것 같아.”최연준이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외삼촌이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아내를 사랑하잖아.”그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나도 마찬가지야!”...서지현이 다시 그 거리로 돌아온 것은 오후 무렵이었다.해가 저물어가자 이 거리의 어두운 세력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는 늘 수많은 눈이 행인들을 주시하고, 이곳을 잘 모르는 외지 관광객들과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을 주시했다.서지현은 두건으로 대충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앞으로 나아갔다.거리의 불량배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휘파람을 불며 차마 입에 오르지 못하는 말을 했다.서지현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두건을 벗고 그들과 욕설을 주고받았다. 한국어로 욕하는 것은 못 하지만 영어
서지현은 동공이 커졌고 귀신을 본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하지만 그녀는 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미소를 지었다.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줄곧 이렇게 해왔다.“오랜만이에요, 제임스! 오늘 어쩐 일로 왔어요?”제임스는 그녀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철제 상자를 주시했다.상황을 보아하니 이 계집애는 최근에 수확이 아주 좋은 것 같다!제임스는 이 거리의 세력 멤버 중 한 명으로 능력이 없고 백인의 금발과 푸른 눈동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해 시청자들에게 너무 미안하게 생겼기 때문에 막 세력에 들어왔을 때 다른 불량배들에게 처참하게 괴롭힘을 당했다.사람은 이런 환경에서 심리적으로 서서히 비정상적으로 변한다.그래서 몇 년을 버티다가 마침내 조금은 지위가 있는 졸개가 되었을 때 그는 주변의 약자들을 보복성으로 괴롭히기 시작했고 보호비를 받을 때는 사람을 피를 토할 정도로 때리기 일쑤였다.서지현은 그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고 심지어 한 번은 그녀의 옆 지하실에 사는 언니가 제때 보호비를 내지 않아 그의 부하들에게 세 번이나 칼에 찔려 과다 출혈로 죽은 적도 있었다.그래서 서지현은 보호비를 제때 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냈다.제임스의 눈에 그녀는 이 거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그런데 겉으로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작은 철제 상자를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제임스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고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로 서지현을 향해 사악하게 웃었다.“요즘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던데? 며칠째 안 돌아온 건 부잣집 사모님 모시러 간 거야?”“아니에요.”서지현은 눈을 굴리며 얼버무렸다.“도우미 일을 구했을 뿐이에요. 일당을 주겠다고 했는데 지금 제 월급을 체납해서 당장 찾아가서 월급을 달라고 해야겠어요!”“돌아와!”제임스가 명령하자 문 앞에는 또 몇 명의 불량배들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씩 손에 쇠몽둥이를 들고 서지현을 향해 악의적인 웃음을 보였다.서지현은 당황했고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지현은 긴장하여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앗, 이건... 누구야?”여자가 영어로 말하는데 방금 들어올 때 자기야는 한국어로 말한 것이다.서지현은 이렇게 생각했다.‘문 앞에 있는 제임스에게 영어로 말했거나 아니면... 이 여자도 나처럼 혼혈인가?’“어머, 사모님 오셨군요!”제임스의 아부의 뉘앙스가 들렸다.‘사모님?’서지현은 이 여자는 나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했다.그녀의 놀란 말투로 들었을 때 분명 그녀는 여기에 서지현이 누워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여자는 화가 나서 영어로 욕을 했다.“이 기생 밑에서 자란 개자식아! 네 형님과 짜고 기생을 끌어들이다니! 누군지 내가 직접 봐야겠어!”“사모님... 진정하세요!”서지현은 한바탕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여자가 몇 번이나 자기를 때릴 것 같았지만 제임스가 막아줬다. 그리고 제임스가 더 비굴하게 굴자 여자는 점점 더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고 서지현은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남자 목소리인데 너무 듣기 거북했다.서지현은 이 남자가 제임스가 말한 형님일 것으로 판단했다.그가 나타나자 방이 조용해졌다.여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하고 기세등등했는데 지금은 가슴이 찢어지듯 울고 있었다.“여진국! 내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당신의 곁을 지키면서 시중들었어...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나한테...”남자는 약간 짜증이 나서 손을 흔들어 제임스더러 밖으로 나가라고 했고 침대에 누워 있는 서지현을 보자 눈빛에 음흉함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옆에 있는 여자는 울고불고하며 몇 년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셌고, 그에게 거꾸로 붙인 돈, 그리고 남자는 어떻게 양심이 없고, 어떻게 그녀에게 미안한 짓을 했는지 하소연했다...그녀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자 여진국은 흥취가 사라졌다.“진국 씨.”여자가 훌쩍거렸다.“당
“자기야, 자기만큼 좋은 여자는 없을 거야...”“그럼 은혜를 어떻게 갚을 건데? 하하하...”서지현은 침대에 누워 토할 뻔했다.그녀는 그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되어 문밖으로 나가는 듯한 소리를 똑똑히 들었고 이어서 옆방에서 차마 말 못 할 소리가 들려왔다.서지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뒤로 한 채 조심스럽게 안대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았다.2층에 있는 방이었는데 그녀는 이 건물의 구조를 몰라 아래층에 경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차라리 여기서 뛰어내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몇 초를 망설이다가 그녀는 바로 눈을 감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발목을 한 번 삐었는데 아픈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필사적으로 앞으로 달려갔다.맨체스터에서 18년을 살았기 때문에 서지현은 이미 이곳의 거리와 골목을 훤히 알고 있었고 어떤 이름 모를 작은 골목도 모두 알고 있었다.좌회전하고 우회전하면서 뒤도 돌아보지도 못하고 멈추지도 못하고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른 채 마침내 큰길로 나왔다.비록 한밤중이지만 이 번화한 시내 중심가는 여전히 북적거린다.서지현은 인파 속에 거닐면서 마침내 천천히 숨을 쉬었다.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녀의 어깨 위에 커다란 손이 얹혔다.서지현은 비명을 지르며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고 바로 돌아서서 그 손을 세게 물었다.“앗!”서지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입의 힘을 풀었다.‘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지?’그녀는 소심하게 눈을 들어봤는데 주위에는 보디가드들이 있었고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리고 그녀에게 물린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등을 움켜쥐고 그녀를 째려봤다.“아... 아저씨!”서지현은 한참 지나서야 울먹이며 말했다.순간 팽팽했던 신경이 무너지면서 그녀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나석진의 품으로 들어가 울기 시작했다.“아저씨, 도와줘요! 그 사람들이 날 잡아갔고 또 돈세탁을...”나석진은 그녀에게 한입 물린 것이 매우 불쾌했지만 그는 얼굴이 어두운 채 손은 자기도 모르게 위로 올
침묵이 길게 이어졌고 나석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왜 나중에 다시 말해요?”최연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연이가 하라면 바로 해야죠! 꾸물거리지 말고 남자답게 행동하세요!”“...”‘너만 잘났고 남자답다! 한밤중에 아내가 기내식을 먹고 싶어 하니까 배식 회사 사람들까지 다 불러들이고!’나석진은 그에게 눈알을 굴리며 콧방귀를 뀌었다.“연극 학원에 공부하러 가야 해서 먼저 가볼게!”“아니...”최연준의 말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이미 긴 다리를 벌리고 달아났다.강서연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걱정하지 마. 형님의 비자는 이미 연기했어.”최연준은 속삭였다.“왜요? 어떻게 알았어요?”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고 그는 매우 의기양양했다.“당연히 내가 사람을 시켰지!”“그러면 지현이를 도와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졌네요!”최연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강서연은 그가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고 칭찬할 겨를도 없이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서연아, 어떻게 된 거야? 매니저가 영국에 두 달 더 있으라고 하던데?”“그렇게 돼버렸네요...”나석진은 너무 흥분되어 목소리까지 변했다.“내 비자는 분명 한 달이었는데 지금은 석 달이 되었어! 석 달 동안 오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작품도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어?”강서연이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자 최연준이 핸드폰을 뺏어왔다.“제가 연기해 드렸는데 무슨 문제 있어요?”“...”“형님. 형님의 사장으로서 당연히 형님의 연기가 한층 더 향상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제가 연극 학원에서 두 과목을 더 신청했는데 딱 두 달이 더 필요하더라고요. 이참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을 다듬으세요!”“...”“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은 화제성이 높은 배우지만 기타 연예인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대중 앞에 노출되지 않으면 인기가 떨어지지만 형님은 신비로울수록 팬들은 더 조급해져요. 3개월은 팬들의 심리적인 면에서 참을 수 있는
강소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표아정을 살폈다.“숙모, 괜찮으세요?”“괜찮아.”표아정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창백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숄을 단정히 여몄다.“그런데 아까 그 아이는...”표아정의 눈빛이 번쩍였다. 표아정의 말에 모두가 머리를 돌려 정승우를 바라보았다. 정승우의 이마에서는 아직도 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때 권온유가 안에서 급히 뛰쳐나오더니, 정승우의 피 흐르는 모습을 보고는 와아 소리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정승우를 꼭 끌어안았다.“안 아파, 정말 안 아파!”정승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품 안에 보들보들하고 사랑스러운 작은 공주님이 있으니 괜히 어색하고 쑥스러워졌다하지만 속으로는 누나 걱정이 떠나지 않았고 머리가 지끈거려 불편하기도 했다. 아까 맞은 충격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 같았다.“우선 정승우를 병원으로 데려갑시다!”조순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내 차로 가요!”“최씨 연합 병원으로 가면 됩니다.”최군형이 덧붙였다.“제가 이미 의사에게 연락했으니, 도착하면 상처를 치료하고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저도 갈래요!”권온유는 얼굴이 엉망이 되어 울면서 정승우를 붙잡고 흔들었다.“오빠, 오빠! 제가 병원까지 같이 갈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요!”정승우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온유의 땋은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중간에서 망설이며 멈췄다.지금은 그때의 낡은 공장도 교외의 길가도 아니었다. 온유는 다시 공주님으로 돌아왔고 자기 손은 늘 더럽고 거칠었다. 그런 손으로 온유의 머리를 만질 순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승우는 연합 병원으로 이송되었다.시장님의 차로 병원에 도착한 데다 최군형이 미리 부탁해 둔 덕분에 간단한 상처지만 최고의 의사가 직접 치료에 나섰다.붕대를 감은 뒤, 정승우는 병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VIP 병실은 정승우에게 마치
정승우는 몸을 피하지 못했고 머리에 무거운 충격이 가해졌다.정대명이 다시 손을 올리려는 순간, 경찰이 제때 그를 제압하며 상황은 순식간에 진정되었다.그러나 정승우의 이마에는 수갑이 남긴 상처가 선명히 드러났고 그 틈에서 피가 서서히 흘러내렸다. 정승우는 손으로 상처를 감쌌지만, 붉은 피는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흘러내렸다.“정승우!”백인서는 놀란 목소리로 외치며 황급히 달려가 정승우의 상처를 살폈다.“이 나쁜 자식! 네가 아버지를 감히 저주해?”정대명은 경찰에 의해 제압당해 몸부림칠 수 없자 대신 고래고래 소리쳤다.“백인서! 이 빌어먹을 년... 네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 놨어!”“감히 아버지를 저주하다니! 지옥 가서 천벌 받을 거야?”“이 나쁜 놈아! 네 몸엔 내 피가 흐르고 있어! 결국 넌 나처럼 될 거다, 쓰레기 같은 놈아!”“정대명 씨! 헛소리 그만하세요!”정호가 엄격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아니요! 아니요!”정대명은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발로 차고 몸부림쳤다.“경찰이 아무리 강해도 내가 내 아들을 훈계하는 걸 막을 순 없지! 내가 아들만 훈계하겠냐? 저 계집애도 훈계해야지!”백인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정대명을 응시했다.정대명의 잔혹한 언행은 백인서를 순식간에 어두운 과거로 끌어당겼다.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날 밤, 백인서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깊은 공포가 되살아나는 듯했다.온몸이 떨리며 심장은 쿵쿵거렸고 귓가에는 정대명의 독설이 메아리쳤다.“젠장, 이 빌어먹을 년이. 집에 있을 때도 착하게 굴지 않았어... 그때도 내가 올라타면 얼마나 반항했는지!”그 한마디는 깊은 바닷속에서 폭발한 수류탄처럼 연회장의 공기를 산산이 갈라놓았다. 그 소리는 연회장의 모든 혼란을 멈추게 했다.모두가 알고 있었다. 백인서는 최씨 가문의 미래 며느리라는 사실을.그런데 정대명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최지용은 순간 멍하니 굳어졌다. 최지용은 본능적으로 백인서를 바라보았다. 백인서의 청초한 얼굴은 깊은 먹구름
“여기는 시장님의 연회 자리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죠.”정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건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곳에 인신매매범이 있다면, 반드시 체포해야겠지요!”“아니에요, 저는 인신매매범이 아니에요!”영미가 격렬히 몸부림치며 외쳤다.“아이를 납치한 건 제가 아니에요! 그건 정대명이 했어요, 모든 게 그의 짓이라고요! 제발 믿어주세요!”하지만 영미의 몸부림은 허공에 흩어졌고 그녀의 비명은 점점 희미해지다 이내 호텔 밖으로 사라졌다.정대명은 이 광경을 보며 무릎이 풀리고 말았다.지금 정대명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곧 자신도 영미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정대명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며 간절히 애원했다.“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정말 몰랐어요, 그 여자가 이런 사람이었는지! 저는 그냥 돈 받고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이런 일인지 몰랐다고요!”“그 말은 경찰서에 가서 하시죠.”정호가 손짓하자, 사람들이 정대명을 데리고 가려 했다.그 순간, 정대명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있던 정승우를 향했다.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승우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 눈빛에는 끝없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고 아버지가 아닌 원수를 바라보는 듯했다.그러나 정승우는 정대명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이었다.정대명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초조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정승우의 그 적대적인 눈빛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을 찔러버렸다. 정대명은 자신이 정승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분통이 터졌다.몇 대 때리긴 했지만, 아버지한테 감히 원한을 품다니?정대명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자격지심이 뒤엉키며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 잡았다. 죽더라도 누군가를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친아들이었다.정대명은 눈빛을 돌리며 표정을 바꾸더니 큰 소리로 울며 말했다.“좋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호텔 후문에서 촬영된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선명히 비쳤다. 화면 속에는 영미와 정대명이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뚜렷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음향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왔다.“제가 이미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매수했어요. 당신은 그저 그 아이를 훔쳐내기만 하면 됩니다.”“영미 아가씨, 여자애를 훔쳐서 뭘 하려는 건데? 여자애는 값도 안 나가잖아!”“제가 하라는 대로 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영미의 얼굴은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온몸의 기운이 빠진 영미는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아니, 저 여자가 최씨 가문의 딸을 훔치려고 했다고?”“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매년 이상한 일이 생긴다지만, 올해는 더하네. 최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보배 같은 아이를 훔쳐려했다고?”“말도 안 돼...”영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급히 변명했다.“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최 도련님, 제 말을 들어봐 주세요!”“음성이 이렇게 뚜렷한데, 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강소아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영미를 꿰뚫어 보며 입을 열었다.“설마 저 영상 속의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영미 씨, 정말 어리석군요.”최군형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공간을 가득 메웠고 그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우리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그렇게 쉽게 매수될 거라고 믿었습니까?”“뭐라고요?”영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문밖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영미가 매수했다고 믿었던 바로 그 경호원들이었다.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영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차가운 눈빛에 영미는 몸이 떨렸다.“당신들... 날 배신한 거예요?”영미는 멍한 얼굴로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영미야,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강소아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분들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이야. 이분들이 한 행동은 단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뿐이야
그 순간, 조순철의 묵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오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온유가 돌아왔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이유만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드디어 백인서 씨의 결백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뭐라고요?”영미의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알고 있습니다. 요 며칠,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온유의 실종이 백인서 씨와 연관되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죠.”조순철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공간을 메웠다.“심지어 경쟁자들이 저를 음해하기 위해 이런 추문을 이용하려 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조순철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시선을 돌려 영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렇죠, 영미 아가씨?”영미는 얼어붙었다.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영미에게 쏠렸다. 그 시선은 바늘처럼 날카로워 영미의 온몸을 꿰뚫는 듯했다. 영미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조... 조 시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영미 아가씨, 제 말을 정말 이해 못 하시겠습니까?”조순철의 미소 속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그리고 권욱의 시선은 더욱 살기를 띠고 있었다.부모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은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에게 손을 댄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강소아와 최군형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부하들이 정대명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영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영미는 본능적으로 정대명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정대명은 그녀를 보자마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찾은 듯 온몸을 흔들며 다급히 외쳤다.“아니, 영... 영미 씨! 영미 아가씨! 제발 나 좀 도와줘!”“뭐 하는 짓이에요?”영미는 분노에 차 외쳤다.“제가 왜 당신을 도와줍니까?”“영미 아가씨가 나한테...”“그래요, 제가 당신에게 돈을 줬죠.”영
연회는 여전히 그 4성급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손님들 사이에서 소곤소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시장님이 정말 청렴하셔서 연회도 대단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간소하게 한다는 대화였다.“무슨 소리야? 새로 취임했으니 당연히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거겠지!”“하지만 권씨 가문이나 조씨 가문 정도라면 연회를 더 화려하게 할 수도 있잖아? 아무리 시장이라고 해도, 사위는 사업가 아닌가?”“맞아. 게다가 사대 가문과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좀 더 사치스럽게 해도 문제 될 건 없지.”“혹시... 이 호텔을 선택한 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영미는 한쪽에서 조용히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특별한 이유라... 글쎄, 그런 건 없을 것 같았다. 영미는 그저 자신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조순철은 무대 위에 서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음악이 멈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조순철에게 집중됐다.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조순철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우렁찼다.“먼저, 오늘 연회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의 지지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성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오성을 더 밝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청중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하며 잔을 들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또한, 여러분께서 제 외손녀 권온유를 많이 걱정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조순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온유가 무대로 달려 나와 외할아버지에게 안겼다. 조순철은 권온유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무대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이 권온유가 납치당한 일을 알고 있었고 권온유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이 모든 행운이 가능했던 건 정승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그 순간, 정승우는 한쪽 구석에서 권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부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