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현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자갈밭의 탱크 소리보다 더 컸다.김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엄마, 다 알고 있어요!”그러자 김유정은 핸드폰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채팅방에는 김유정이 강서연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가득했고 매일의 안부 인사 외에도 많은 일상 공유내용이 담겨 있었다.다만 통상적으로 그녀가 20여 개를 보내야만 강서연의 미지근한 회답을 얻을 수 있었다.손미현은 보고 있다가 또 미간을 찌푸렸고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유정아, 너는 하루 종일 얘와 이런 쓸데없는 것을 보내서 뭐 하니?”김유정은 눈을 크게 떴다.“엄마가 강서연과 친해져서 이 집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라고 했잖아요...”“바보야!”손미현은 답답함에 언성이 높아졌다.“비위 맞춰주라고 했지 쓸데없는 소리하라는 건 아니야.”“쓸데없는 소리예요?”“여자가 임신했을 때 남자는 가장 공허할 때야.”손미현이 당당하게 말했다.“둘이 대화할 때 네 오빠가 어디 있는지 뭘 하는지를 물어봐야지! 바보야, 내가 다 가르쳐 줘야 해?”김유정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빨개진 얼굴로 웃었다.그녀는 최연준을 좋아하는데 혈연관계가 없으므로 김유정은 좋아하는 감정을 애초부터 숨기지 않았다.다만 사촌 동생이라는 명분 때문에 그 좋아함은 정당화될 수는 없다.그러나 손미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녀의 관념 속에는 빼앗지 못하는 남자도 없고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도 없다. 예전에 손미현이 아이를 데리고 김씨 가문에 시집갈 때 수많은 구설에 올랐고 김성주가 바보가 아니었더라면 그녀가 평생 발버둥 쳐도 김씨 가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김성주가 바보였기 때문에 그녀의 야망은 더욱 억누를 수 없고 지금까지 계속 참아왔다.손미현은 자기 딸을 명문에 시집보내고 연기대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맹세했다! 그녀는 그녀를 경멸하고 모욕했던 김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성공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겠다.만일
“주문량이 얼마나 돼?”“이번 국제 패션 위크는 규모가 크고 여러 대형 브랜드가 포함되어 있어 상당히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따낸다면 패션 업계에서의 입지를 선언하는 셈입니다.”“응.”최연준은 담담하게 응했지만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있었다.맨체스터는 방직업이 발달한 도시이고 김중 그룹의 사업 중 하나로 의류와 관련된 것이다.다만 의류업은 박리다매형 사업으로 많이 벌지만 상대적으로 일감이 많아 돈을 힘들게 번다.최연준은 강서연이 일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볼 수 없다.더군다나 김자옥도 이번 입찰에 관심이 많아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결국 손미현에게 가로채졌다.김자옥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김성주 때문에 참았다.최연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자기 어머니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아내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아내의 배 속에 있는 그 작은 살덩어리를 위해서도 그는 즐겁게 결정을 내렸다... 미리 아이에게 가문 내에서 벌어지는 내분을 느껴보게 하면 나와서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알겠어.” 최연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기서 잘 지켜봐. 무슨 일 있으면 알려주고.”“네, 도련님!”“그리고...”최연준이 잠시 말을 멈추고 전화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곽보미 보고 눈치껏 행동하라고 전해줘! 서연이와 함께 있도록 했지만 그렇게 가까이하라고 하지는 않았어!”방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자신이 정리해서 최연준에게 보낸 CCTV 영상 중 한 대목이 지하 주차장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강서연은 곽보미의 팔짱을 끼고 수다를 떨며 걸어갔고 곽보미가 입가를 닦아주고 강서연이 곽보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영상이 담겨있었다.최연준은 이 동영상을 여러 번 봤는데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스러워했다.“아야!”갑자기 방에서 소리가 들렸다.최연준은 놀라서 황급히 달려갔고 강서연은 요가 매트 위에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혼자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배가 커서 거동이 불편했고 통통한 곰 같았다.그는 잽싸게 달려가서 그녀를 안
강서연이 바로 끊어 버리면 김유정은 분명히 끈질기게 계속 전화할 거다.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핸드폰에 대고 눈을 흘기고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받았다.받자마자 핸드폰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강서연은 약간 소름이 돋았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웃으며 대답했다.“유정 씨, 무슨 일 있어요?”“일이 없으면 언니에게 전화하면 안 돼요?”김유정은 싱그럽게 웃었다.“요 이틀 동안 언니를 만나지 못해서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조카 생각도 나는데 시간이 되면 우리 둘이 내일 식사할까요?”“미안해요. 저는 시간이 없어요.”“언니... 나랑 밥 먹기 싫어요?”‘맞아, 싫어!’강서연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기분 좋게 자기 남자를 탐내하는 여우랑 밥 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밥이 넘어가려나?“싫긴요!”강서연은 자기가 봐도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유정 씨, 오해하지 마세요. 내가 이 집에 온 이후로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정 씨 뿐이에요. 저는 진심으로 유정 씨를 좋아해요!”김유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지? 걸려들었나?’그녀가 요 며칠 동안 첩이 사모님에게 안부하는 것과 같이 한 보람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무슨 첩 같은 소리? 최연준까지 넘어오면 앞으로 강서연은 그녀를 볼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유정 씨, 왜 말이 없어요?”“아무것도 아니에요!”김유정이 두 번 울먹이며 말했다.“언니, 너무 감동이에요.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다니, 정말...”“가족끼리 이런 말 하지 마세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김씨 가문에서 유정 씨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저만 믿으세요!”김유정은 잠시 흥분하여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언니, 연준 오빠는 프랑스에서 돌아왔어요? 지금 집에 있어요?”강서연은 입술을 깨물고 핸드폰을 꽉 쥔 손 뼈마디가 하얗게 보였다.“집에 있어요.”“그래요...”김유정은 약간 실망했다.“왜요? 할 얘기 있어요?”이 몇 마디는 거의 강서연이 이를 악물며 말한
김유정은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일의 자초지종을 손미향에게 들려주었다.손미향은 이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고 화를 내며 그녀에게 일을 성사하지 못했다고 훈계를 했다.“바보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네 연준 오빠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니 단번에 네가 최연준을 맘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잖아. 어떤 아내가 원한다고? 그리고 두 사람이 집에서 무슨 운동을 하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손미향이 왔다 갔다 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아휴, 강서연이 그동안 너한테 아무리 호감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너의 이 몇 마디 말에 다 없어졌겠다!”김유정은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글썽이며 손미향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이제 어떡해요?”손미향은 그녀를 흘겨봤다.“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누구한테 물어볼까?”“엄마, 언니가 눈치 못 채지 않았을까요? 방금 전화했을 때 태도가 꽤 좋았어요. 그리고 나를 이 집의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부탁한다고까지 말했어요.”김유정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좋은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말이 그렇지 속으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 장담할 수 있어?”“나는...”손미향은 근심 어린 얼굴로 고개를 숙인 김유정을 보았다.“딸, 이번 판은 우리가 만회해야 해... 강서연은 지금 네 사촌 오빠의 아이를 임신해서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보배야! 너는 절대로 이때 그 사람에게 대들어서는 안 돼, 알겠어? 만일 강서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고 너는 끝장이야!”김유정은 입을 삐죽 내밀며 겉으로는 승낙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쾌했다.그녀는 어머니의 이런 소심한 모습이 못마땅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울며불며 김성주를 찾아가 그 바보 같은 남편더러 나서게 한다.바보가 무슨 힘이 있겠어?김씨 가문은 김자옥이 독대하고 있고 이 몇 년 동안 김유정과 손미현은 줄곧 김자옥의 기에 눌려 있었는데 지금 또 강서연이 하나 더 생겼다!
최연준은 냉소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방한서가 이미 그에게 말해 주었고 그는 마침 어떤 방법으로 김유정을 다스릴지 생각 중이었는데 이 사람이 저절로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여보, 신경 쓰지 마. 내가...”“이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하게 해줘요!”강서연은 눈빛이 견고했다.최연준은 몸을 돌려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임신이 아니었다면 당신에게 맡겼을 텐데 당신이 임신 중이어서 나는 무서워...”“내가 화낼까 봐 무서워요?”강서연이 웃었다.“내가 그렇게 쉽게 화내는 사람이에요? 여보, 걱정하지 마요. 내가 이미 대응 방법을 다 생각해 놨으니까 나 혼자 하게 해줘요, 네?”최연준은 그녀를 보며 거절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아무리 마음이 안 놓여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고 사람을 붙여 사모님의 안전을 잘 지켜주라고 당부했다.최연준의 아내는 무조건 사랑받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그래. 이 일이 끝나면 내가 또 다른 깜짝선물을 줄게.”...잠시 후 강서연은 김중 그룹에 도착했고 김유정이 직접 마중 나와 그녀를 최상층의 한 회의실로 안내했다.거기서 그녀는 그날에 본 사라, 제니, 그리고 이효연을 만났다.그녀들은 그날의 건방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나둘 고개를 숙인 채 맥 빠진 가죽 공처럼 서 있다가 강서연을 보자 눈에는 공포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강서연은 그날 그녀들이 모두 한국어를 할 줄 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들의 한국어는 누구보다도 유창하다.“사모님!”이효연이 먼저 앞으로 와서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그날은 사모님께서 오신 줄 모르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번만은 사모님께서 저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강서연은 입술을 다물고 가볍게 웃었다.‘한국어를 할 줄 알뿐만 아니라 유창하게 할 수 있네!’“사모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남은 두 사람도 불쌍하게 구걸했다.“다신 이런 일 없도록 약속하겠습니다...”“사모님, 이것
“별 뜻 없는데요!”강서연의 표정은 단순했지만 눈 밑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직원들이 일을 잘하는데 당연히 칭찬해야죠. 이 세분은 입사 기간은 다르지만 일을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런 인재는 어느 회사에서나 인기가 많아요.”김유정은 어안이 벙벙하여 강서연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언니...”그녀는 억지로 웃었다.“이 사람들은 전에 언니에게 무례하게 굴었잖아요!”“그때 이분들은 내가 누군지도 몰랐고, 게다가 정말 인턴이라면 이런 심부름은 당연히 인턴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아니...”김유정은 잠시 말을 멈추고 강서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 세 명도 그녀만큼 놀랐다. 그들은 원래 징계를 벗어날 수 없을 거로 생각했고 심지어 정말로 징계받더라도 반드시 김유정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해 두었다.그러나 이 새로 오신 사모님께서 선량하고 마음씨가 곱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도량이 넓어서 그들과 따지지도 않았다.“당신들의 문제점을 굳이 말하자면...”강서연이 웃으면서 바라보았다.“태도가 좀 그렇다는 거예요. 인턴들이 그런 업무를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말투를 조심해야 해요. 예의 바르게 부탁하는 것도 직장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에요. 앞으로 주의하세요!”“네, 네!”세 사람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께서 저희를 원망하지 않는 거예요?”강서연은 웃으면서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먼저 돌아가 안심하게 업무 보라고 해서 세 사람은 매우 감격했다.계획이 무산되려는 찰나 김유정이 다급해져서 앞으로 나와 이효연을 붙잡고는 사라와 제니가 가지 못하게 소리를 질렀다.“언니, 그냥 이대로 보낼 거예요?”“안 그러면요?”강서연은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화가 난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유정 씨,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 사람들이 언니에게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중벌을 받아야죠!”말이 나오자 김유정은 서둘러 입을 막았고 속으로 후회했다.‘내 입으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강서
몇 마디 말은 가볍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핵심을 찔렀다.자신을 깨끗하게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큰 문제도 다시 그녀의 손에 돌아가서 김유정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누가 임신하면 지능이 낮아진다고 했는가? 강서연은 임신하고도 머리가 잘 돌아간다.김유정이 고개를 들자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강서연의 눈과 마주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다.“언니... 지금 농담하는 거죠?”“농담요?”강서연이 싱긋 웃었다.“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요.”“언니가 마음씨가 착해 이번만은 용서하고 넘어가 준 거예요!”김유정은 급히 앞으로 다가가 다정하게 강서연의 팔짱을 끼고 뒤돌아 그 세 사람을 향해 눈짓을 했다.“이번 일은 그냥 넘어갔으니 당신들을 먼저 자리에 돌아가세요.”“잠깐만요.”강서연은 목소리가 차갑고 미소를 지으며 김유정을 보고는 슬쩍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유정 씨에게 미처 알리지 못한 일이 있는데 오늘 여기서 발표할게요.”김유정은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켰다.“무슨 일이에요?”강서연이 정색했다.“어진엔터테인먼트에서 제 직무는 수석비서였는데 지금 여기로 왔으니 그에 상응하는 직무는 비서실장이에요. 대표님께서 제가 임신한 것을 전반적으로 배려해 주기 위해 특별히 3개월의 휴가를 허락해 주었지만 오늘부터 나는 휴가를 취소할 생각입니다!”김유정이 깜짝 놀랐다.“무슨 말이에요?”강서연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제가 지금 비서실장 자격으로 인사팀과 회의를 열어 이분들의 인사이동 문제를 논의하려고 합니다.”“네?”강서연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여러분들은 모두 우수한 인재들입니다. 의견이 없으시다면 제 사무실에서 여러분을 뵙고 싶습니다!”...이 일은 즉시 김중 그룹 전체에 퍼졌다.강서연은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서로 앞다투어 그녀를 위해 일하려고 했다.요즘 그녀는 매일 직원들이 자진 추천하는 메일을 받는데 모두 그녀의 비서실장 사무실에 가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손미현은 화가 난 상태였는데 김성주의 어리숙한 모습을 보고 더욱 심란해했다.김유정은 말할 것도 없다. 새아빠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고 김성주가 그녀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바보를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괜찮아요!”손미현은 한숨을 쉬며 짜증스럽게 손을 흔들었다.“당신이 하던 일을 하세요. 여기서 빈둥거리지 말고요!”김성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멍하니 뒤돌아 가버렸고 가면서 걱정스럽게 그들을 돌아보았다.“또 최연준 그 녀석이야? 최연준 때문이라면 말해. 내가 누나를 찾아갈게.”“됐어요. 왜 이렇게 쓸데없는 말이 많아요!”손미현이 그를 노려보자 김성주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기 아내를 억울하게 바라보았다.손미현은 진정하고 다시 생각하니 갑자기 김성주가 방금 한 말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김자옥을 찾아가면 되잖아!’혼자 여기서 뾰로통하게 있느니 일을 크게 벌이는 편이 낫다.이를 생각한 손미현은 표정 관리를 하고 히죽히죽 다가가 김성주의 팔짱을 끼고 그를 소파에 앉혔다.“여보...”손미현이 다정하게 어깨를 주물러줬다.“유정이도 다 컸는데 지금 제대로 된 직장이 없잖아요. 전에 영화 두 편을 찍었는데도 주목을 못 받았어요...”“영화를 계속 찍고 싶은 거야?”김성주는 목소리가 굵고 컸다.“문제없어. 유정이가 영화를 찍고 싶으면 아빠가 돈을 줄게!”손미현은 얼굴에 희색이 돌더니 이내 입꼬리를 누르며 말했다.“영화를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딸이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중 그룹 소속 엔터테인먼트 규모가 그렇게 큰데 유정이에게 적합한 자리가 있지 않을까요? 여보,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 딸은 어쨌든 김씨 가문 출신이니까 연기대상은 물론 회사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필수예요, 그렇지 않아요? 유정이가 그룹에서 일할 수 있으면 당신에게도 좋은 일이잖아요!”김성주가 잠시 생각에 잠기고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하지만... 전에 누나가 유정이는 회사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했어!”“
“여기는 시장님의 연회 자리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죠.”정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건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곳에 인신매매범이 있다면, 반드시 체포해야겠지요!”“아니에요, 저는 인신매매범이 아니에요!”영미가 격렬히 몸부림치며 외쳤다.“아이를 납치한 건 제가 아니에요! 그건 정대명이 했어요, 모든 게 그의 짓이라고요! 제발 믿어주세요!”하지만 영미의 몸부림은 허공에 흩어졌고 그녀의 비명은 점점 희미해지다 이내 호텔 밖으로 사라졌다.정대명은 이 광경을 보며 무릎이 풀리고 말았다.지금 정대명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곧 자신도 영미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정대명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며 간절히 애원했다.“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정말 몰랐어요, 그 여자가 이런 사람이었는지! 저는 그냥 돈 받고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이런 일인지 몰랐다고요!”“그 말은 경찰서에 가서 하시죠.”정호가 손짓하자, 사람들이 정대명을 데리고 가려 했다.그 순간, 정대명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있던 정승우를 향했다.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승우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 눈빛에는 끝없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고 아버지가 아닌 원수를 바라보는 듯했다.그러나 정승우는 정대명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이었다.정대명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초조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정승우의 그 적대적인 눈빛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을 찔러버렸다. 정대명은 자신이 정승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분통이 터졌다.몇 대 때리긴 했지만, 아버지한테 감히 원한을 품다니?정대명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자격지심이 뒤엉키며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 잡았다. 죽더라도 누군가를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친아들이었다.정대명은 눈빛을 돌리며 표정을 바꾸더니 큰 소리로 울며 말했다.“좋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호텔 후문에서 촬영된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선명히 비쳤다. 화면 속에는 영미와 정대명이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뚜렷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음향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왔다.“제가 이미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매수했어요. 당신은 그저 그 아이를 훔쳐내기만 하면 됩니다.”“영미 아가씨, 여자애를 훔쳐서 뭘 하려는 건데? 여자애는 값도 안 나가잖아!”“제가 하라는 대로 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영미의 얼굴은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온몸의 기운이 빠진 영미는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아니, 저 여자가 최씨 가문의 딸을 훔치려고 했다고?”“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매년 이상한 일이 생긴다지만, 올해는 더하네. 최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보배 같은 아이를 훔쳐려했다고?”“말도 안 돼...”영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급히 변명했다.“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최 도련님, 제 말을 들어봐 주세요!”“음성이 이렇게 뚜렷한데, 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강소아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영미를 꿰뚫어 보며 입을 열었다.“설마 저 영상 속의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영미 씨, 정말 어리석군요.”최군형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공간을 가득 메웠고 그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우리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그렇게 쉽게 매수될 거라고 믿었습니까?”“뭐라고요?”영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문밖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영미가 매수했다고 믿었던 바로 그 경호원들이었다.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영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차가운 눈빛에 영미는 몸이 떨렸다.“당신들... 날 배신한 거예요?”영미는 멍한 얼굴로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영미야,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강소아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분들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이야. 이분들이 한 행동은 단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뿐이야
그 순간, 조순철의 묵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오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온유가 돌아왔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이유만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드디어 백인서 씨의 결백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뭐라고요?”영미의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알고 있습니다. 요 며칠,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온유의 실종이 백인서 씨와 연관되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죠.”조순철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공간을 메웠다.“심지어 경쟁자들이 저를 음해하기 위해 이런 추문을 이용하려 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조순철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시선을 돌려 영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렇죠, 영미 아가씨?”영미는 얼어붙었다.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영미에게 쏠렸다. 그 시선은 바늘처럼 날카로워 영미의 온몸을 꿰뚫는 듯했다. 영미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조... 조 시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영미 아가씨, 제 말을 정말 이해 못 하시겠습니까?”조순철의 미소 속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그리고 권욱의 시선은 더욱 살기를 띠고 있었다.부모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은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에게 손을 댄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강소아와 최군형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부하들이 정대명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영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영미는 본능적으로 정대명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정대명은 그녀를 보자마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찾은 듯 온몸을 흔들며 다급히 외쳤다.“아니, 영... 영미 씨! 영미 아가씨! 제발 나 좀 도와줘!”“뭐 하는 짓이에요?”영미는 분노에 차 외쳤다.“제가 왜 당신을 도와줍니까?”“영미 아가씨가 나한테...”“그래요, 제가 당신에게 돈을 줬죠.”영
연회는 여전히 그 4성급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손님들 사이에서 소곤소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시장님이 정말 청렴하셔서 연회도 대단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간소하게 한다는 대화였다.“무슨 소리야? 새로 취임했으니 당연히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거겠지!”“하지만 권씨 가문이나 조씨 가문 정도라면 연회를 더 화려하게 할 수도 있잖아? 아무리 시장이라고 해도, 사위는 사업가 아닌가?”“맞아. 게다가 사대 가문과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좀 더 사치스럽게 해도 문제 될 건 없지.”“혹시... 이 호텔을 선택한 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영미는 한쪽에서 조용히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특별한 이유라... 글쎄, 그런 건 없을 것 같았다. 영미는 그저 자신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조순철은 무대 위에 서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음악이 멈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조순철에게 집중됐다.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조순철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우렁찼다.“먼저, 오늘 연회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의 지지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성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오성을 더 밝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청중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하며 잔을 들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또한, 여러분께서 제 외손녀 권온유를 많이 걱정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조순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온유가 무대로 달려 나와 외할아버지에게 안겼다. 조순철은 권온유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무대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이 권온유가 납치당한 일을 알고 있었고 권온유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이 모든 행운이 가능했던 건 정승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그 순간, 정승우는 한쪽 구석에서 권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부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