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씨...”강서연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다정하게 말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마치 귀여운 토끼처럼 얌전했고 입을 삐죽 내밀고 그의 가슴팍에 기댄 채 또박또박 말했다.“지난번에는 아무 준비가 없었잖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이번에는 계획이 있고 대책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몰래 사람을 붙여서 날 지켜줄 거잖아요.”최연준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여보, 우리 꼭 구현수를 잡아서 감옥에 보내야 해요. 그래야만 밖에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죠.”강서연의 확고한 눈빛에 최연준은 마음이 움찔했다. 강서연은 늘 외유내강인 여자였다.“어쩌면... 구현수를 통하여 인지석의 행방까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게다가 최지한까지 엮어서 한꺼번에 처리하면 더 좋고요. 그러니까 사라져야 할 때 알아서 사라져요. 최지한의 계획대로 움직여서 우리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하게. 그렇게 된다면 나중에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게 될 거예요.”‘그렇네.’최연준이 피식 웃었다. 사냥꾼은 늘 사냥감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법이니까.그는 강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과 사랑이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알았어.”강서연은 마치 반짝이는 별빛처럼 환하게 웃으며 그의 가슴팍에 살포시 기댔다.“욕되지 않게 사명을 완수할 테니까 여보는 걱정하지 말아요. 최지한이 다음에 어떤 카드를 꺼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것에 맞게 대응하면 돼요. 절대 반격할 여지를 줘서는 안 돼요.”“감히 반격이나 하겠어?”최연준은 커다란 손으로 강서연의 어깨를 어루만졌다.“당신이 개인 경호원까지 전부 다 철수했는데.”강서연이 활짝 웃었다.“여보...”앞으로 며칠 동안 최연준이 사라지고 구현수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란 생각에 최연준은 나름 흥미진진했다.“네. 왜 그래요?”“나와 구현수가 당신 앞에 서 있으면 구분할 수 있겠어?”강서연은 살짝 흠칫했다. 그의 차갑고 심각한 표정을 보자마자 또 유치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다. 하여 장난치기로 마음먹었다.“지금
구현수는 방금 한 말을 다시 내뱉을 용기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서 찍소리도 하지 못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먹만 불끈 쥐었다.최지한이 큰 소리로 호통쳤다.“쓸모없는 놈! 이 와중에 너까지 짜증 나게 할 거야? 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알았어?”“하지만 도련님.”구현수는 참다못해 한마디 던졌다.“전 죽고 싶지 않아요!”“한 번 더 말해봐.”최지한이 언성을 높이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움푹 팬 두 눈 사이로 괴이한 빛이 보였다.“허. 네가 최연준 흉내를 내지 않으면 편하게 살게 내버려둘 것 같아?”“도련님...”구현수는 잠깐 멈칫하다가 분노에 찬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이마의 핏줄까지 선명해졌다.최지한은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알아듣게 말했다.“나와 최연준은 사촌 형제인데도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너처럼 비슷하지 않아. 구현수 네 얼굴이 얼마나 가치 있는 줄 알아?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되지.”구현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지한과 차분하게 얘기했다.“도련님, 저는 망나니예요. 쌈박질을 자주 해서 감옥에도 여러 번 다녀왔었고요... 하지만 그래도 죽지 않았어요. 아직 제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요.”최지한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네가 최연준의 자리를 대신하면 걔 인생이 곧 네 인생이 돼.”“X발.”구현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울상이 될 지경이었다.‘약을 하더니 잘못된 거 아니야? 인지석이 마약을 준 게 아니라 지력을 저하하는 약을 줬나?”“구현수.”최지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어깨를 다독이더니 또 이내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잘 생각해 봐. 최연준을 대신한다면 걔 인생뿐만 아니라 걔 마누라도 네 것이 돼.”‘X발, X발.’구현수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최지한을 보고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를 긁적였다.“도련님, 전 그년을 두 번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아요. 지난번 강주의 커피숍에서 그년이 글쎄 손을 묶어달라고 하더니 재떨이로
‘역시 변태는 변태야. 죽는 건 무서워해도 여색과 돈은 못 참는단 말이지. 성설연이 아주 좋은 미끼였네.’최지한은 천천히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 두어 번 피우고는 웃으며 구현수 옆으로 다가가 툭 쳤다.“동생아.”구현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시선이 성설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동생아!”최지한은 마른기침을 하고는 언성을 높였다.“최연준!”그제야 정신을 차린 구현수의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최지한이 눈치를 주자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고 최연준 캐릭터에 몰두했다.“연준아, 서연 씨와는 구면이지?”“아닌... 아, 맞아. 구면이야.”“지난번에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잖아.”최지한이 성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그럼 오늘 제대로 소개해 줄게. 성설연 씨는 해외에서 돌아온 음악 천재야. 연준아, 너 한가할 때 맨날 집에서 와이프 옆에만 붙어있지 말고 설연 씨와 함께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그래.”구현수는 안절부절못한 나머지 코끝에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성설연은 놀라면서도 기뻤다. 외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최지한을 찾아갈지 말지 망설였었다. 왜냐하면 괜히 최지한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다시 재기할 기회도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무래도 제대로 온 것 같다.“도... 도련님.”성설연이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지난번에 사모님께 큰 실례를 범해서 정말 죄송해요... 이젠 화 풀리셨겠죠?”“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와이프 그렇게 쪼잔한 사람이 아니에요.”최지한은 성설연을 구현수의 품으로 슬쩍 밀었다. 그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린 성설연은 비틀거리며 구현수의 품에 와락 안겼다.오랜만에 여자를 터치한 구현수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에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고 머릿속도 새하얘졌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세상에는 오직 그를 흥분하게 하는 성설연의 향수 냄새만 남았다.“도련님...”구현수는 온몸이 짜릿해졌고 손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춤에 향했다. 최지한은 씩 웃으며 더욱 부추겼다.“아직 늦지
댓글 창이 점점 더 떠들썩해졌다.페이스북에 올린 지 2분도 채 안 되어 실시간 검색에 올랐고 5분도 안 되어 ‘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과 연예인의 불륜’이라는 검색어가 핫이슈로 떠올랐다.성설연은 다시 한번 인기를 맛보게 되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연예계에서 거의 퇴출 당할 뻔한 가수가 한순간에 주목을 받았고 인터넷에서는 흥미진진하게 그녀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었다.물론 이 모든 건 다 옆에 있는 이 남자 덕분이다.그녀는 다시 구현수의 옆에 누워 조용히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 아주 꿀이 뚝뚝 떨어졌고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성설연은 그의 이마에 살며시 입맞춤하고는 강서연에게 사진을 보내려고 그의 휴대 전화를 몰래 가져왔다.그런데 휴대 전화를 열어본 순간 놀랍게도 강서연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성설연은 가슴이 움찔했고 머릿속에 의문점이 피어올랐다.‘이게 대체... 자기 와이프 전화번호도 저장하지 않은 거야?’...그 시각 최상 빌라.강서연은 아직 서재에서 빌라의 몇 달간 수입과 지출 상황, 그리고 집안일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입가에 대자마자 방한서가 노크하고 들어왔다.“사모님, 이건 어떻게...”강서연은 방한서가 들고 있는 아이패드를 힐끗 보았다. 인터넷에서 최연준의 불륜 스캔들을 다루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가볍게 웃었다.“네. 나도 봤어요.”“어떡하면 좋죠?”방한서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도련님이 저에게 전화해 주셨어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았어요.”“그러게요. 나도 성설연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강서연이 싸늘하게 웃었다.“정말 참을성이라곤 전혀 없단 말이죠.”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한서 씨, 지금 당장 모든 관계를 동원해서 기사를 막고 실시간 검색에서 없애줘요. 그리고 성설연을 어디에도 출연 못 하게 금지시켜요.”“네, 알겠습니다.”“이 이슈가 퍼진 지 몇 분 됐으니까 그걸로도 충분해요.”강서연은 그녀만의
“그게... 나...”구현수는 휴대 전화를 들고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렸다.‘최지한이 이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연준 씨, 왜 그래요?”휴대 전화 너머의 강서연은 일부러 그를 몰아붙였다.“옆에 혹시 다른 사람이 있어요?”소리를 들은 성설연이 휴대 전화를 빼앗으려 하자 구현수가 무섭게 째려보았다.“아니야, 아니야.”구현수가 대충 둘러댔다.“저기... 별일 없으면 먼저 끊을게. 요 며칠 집에 안 들어갈 테니까 알아서 잘 챙겨.”강서연은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어휴.”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두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면 질릴 수 있어요. 당신과 성설연 씨 일을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하지만 연준 씨, 적어도 내 체면은 세워줘야 하지 않나요? 어쨌거나 우린 부부이고 최씨 가문의 체면을 대표하는데. 지금 밖에서 얼마나 나쁜 소문이 떠도는지 알아요?”구현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그는 성설연이 두 사람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성설연을 처음 만났을 때 그저 데리고 놀 생각뿐이었지,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성설연은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원을 요구했다. 아주 귀찮게 그에게 달라붙고 있었다.‘나에게 무슨 자원이 있다고. 젠장.’구현수는 성설연에게 점점 더 반감이 생겼다.“그래, 그래...”그는 성설연을 피하며 강서연의 말에 대꾸했다.“나 다 알아. 그 뭐야... 당신은 내 와이프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알아서 잘 처리해. 알았어?”강서연의 얼굴에 구현수에 대한 혐오가 더욱 짙어졌다. 그녀가 싸늘하게 대답했다.“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당연히 깔끔하게 처리하죠.”“응, 그럼 됐어.”“집에 들어오라고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경기는 꼭 참석해야 해요.”“뭐?”구현수는 시름을 놓는 듯했다가 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자선 복싱 경기예요.”강서연이 느긋하게 말했다.“경기에 월드 클레스급 복싱 선수들이 다 참석해요. 그
이 세 글자를 말하자 그는 김빠진 공처럼 온몸이 침대 위에 푹 쓰러져 버렸다.강서연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그러나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그녀는 커다란 손이 뒤에서 그녀를 안는 것을 느꼈다.강서연이 몸을 돌리기도 전에 남자는 앞으로 몸을 내밀어 뜨거운 두 입술이 먼저 달라붙었다...강서연은 상징적으로 두 번 발버둥을 치다가 포기했고 아예 적극적으로 다가가 작은 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 주도권을 장악했다.최연준은 조금 당황했지만 바로 이런 느낌에 매혹되어 순식간에 빠져버렸다.그녀는 예전에는 매우 소극적이었지만 아내가 되고 나서는 조금 변한 것 같다...이런 변화는 최연준이 좋아했고 그는 짓궂게 웃으며 오랫동안 키스를 한 후 그녀를 놓아주고는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그가 직접 길들인 이 여자는 예쁘고 사랑스러워 늘 통제력을 잃게 한다.“왜 그렇게 힘을 줬어요?”강서연은 약간 부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너무 아파요!”최연준은 그녀의 턱을 가볍게 잡고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입술 라인을 따라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아프지 않으면 벌칙이 아니잖아!”“벌칙요?”“응!”최연준은 화를 내는 척했다.“지금 인터넷에 전부 다 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연예인과 바람을 피운다는 찌라시잖아!”강서연은 그의 원망한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해 소리를 내서 웃었다.그녀는 최연준이 마음속으로 그 기사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고 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잠시 인내하는 것 외에는 더 좋은 방법이 없다.“여보...”강서연이 그의 몸에 살포시 붙어 다정하게 위로했다.“사실 성설연이 이렇게 하는 것도 내 예상 밖이었어요. 구현수와 어울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심지어 구현수를 당신으로 착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강서연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적어도 성설연의 인품이 정말 안 된다는 것을 증명했고 유 변호사님이 성설연을 포기하는 것도 정확한 결정이에요.”최연준은 그녀를 한 번 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반쯤 머뭇거리다
최연준은 그녀를 큰 침실로 데리고 가서 그녀를 누르고 잘 보상해 주었다.마지막 순간 강서연은 참지 못하고 용서를 빌자 최연준은 그제야 미련이 남은 듯 입술에 키스를 한 번 하고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여보.”최연준은 그녀를 품에 안고 앵두 같은 작은 귓불을 주물렀다. “당신 요즘 별로 열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해.”“그래요?”강서연은 몸이 나른하여 졸리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다.“요즘 좀 피곤한가 봐요. 자꾸 졸리고 자고 싶고 또 배고프고...”최연준은 마음이 안쓰러웠다.강서연이 집안일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팽이처럼 바쁘게 돌았다.그는 오히려 한가하여 회사에서 회의하고 거래처를 만나고 서류 몇 장에 사인하면 하루가 끝이 난다.한때는 독불장군이었던 그가 이제는 정말 아내 뒤에 숨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최연준은 웃으며 생각했다. 구현수 일이 일단락되면 그는 반드시 강서연을 데리고 휴가를 갈 것이다. 목적지는 일단 남양으로...거기는 원래 그녀의 고향이어야 했는데, 게다가 최연준이 이번에 윤정재와 한 번 갔다 왔는데 정말 좋았다.환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순박하며 특히 그 윤제 그룹의 사가원림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열대우림에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쌍날개 반딧불이가 있었다...최연준은 이를 강서연에게 들려주었는데 말하다 보니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살며시 일어나 방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내일모레 권투 경기 있는 거 알지?”“네, 알고 있습니다.”“응.”최연준이 콧방귀를 뀌었다.“현장에는 의사 한 명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시 내려! 설령 사람이 죽는다 해도 응급처치를 해주면 안 돼!”...며칠 뒤 최지한은 서류 한 뭉치를 들고 어진 엔터테인먼트 빌딩으로 직행했고 그 안에서 소란을 피웠다.김자옥이 없어서 그는 감히 행패를 부릴 수 있었다.강서연은 소란을 피우는 것을 그냥 놔두게 했고 CCTV에 그의 추태가 모두 찍힌 후에야 그녀는 천천히 경비원에게
그래서 방금 그 장면이 있었고 최지한이 모든 서류를 들고 와서 강서연이 왜 함부로 규정을 바꿨냐고 따지러 왔다.“아주버님, 규정은 제가 바꾸고 싶어서 바꾼 게 아니에요.”강서연은 비굴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도 동의하셨어요. 최씨 가문은 큰 가문이라 큰 가문일수록 돈 쓰는 데 조심하는 법이에요. 제가 규정을 바꾼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네까짓 게 뭔데!”최지한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할아버지가 너에게 권한을 줬다고 해서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착각하나 본데. 연준이가 전부 사인했으니 오늘 이 돈을 꼭 받고 말 거야!”“연준 씨는 서명하지 않았어요.”강서연은 고개를 들어 차갑게 그를 바라보고 싸늘하게 웃었다.“눈뜨고 거짓말을 하네!”최지한이 서류를 내던졌다.“똑바로 봐. 매 페이지 뒤에는 모두 최연준이라고 사인했잖아!”“하지만 연준 씨는 실종됐잖아요.”강서연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아주버님께서 모르고 계셨어요?”“너...”최지한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 여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말하면 틀림없이 들통날 것이다.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내비치지 못하고 최연준 사인이라고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제수씨, 농담하는 거죠?”최지한이 득의양양하게 걸어왔다.“내가 며칠 전에도 연준이를 봤는데.”“아주버님께서 본 게 가짜는 아니겠죠?”최지한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강서연은 고의로 한참 침묵하다가 천천히 그를 보며 말했다.“연준 씨가 정말로 실종됐어요.”“흥!”“바로 2주 전 일이에요. 연준 씨가 전용기를 타고 남양으로 윤씨 가문을 만나러 갔는데 타고 있던 비행기가 도중에 연락이 끊겼어요. 연준 씨가 지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어요...”최지한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 여자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파악이 안 됐다.“아주버님.”강서연이 또박또박 말했다.“만약 이번에 연준 씨가 항공 사고를 당했다면 아주버님과 둘째 삼촌은 이 일과 상관없겠
그 순간, 조순철의 묵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오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온유가 돌아왔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이유만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드디어 백인서 씨의 결백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뭐라고요?”영미의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알고 있습니다. 요 며칠,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온유의 실종이 백인서 씨와 연관되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죠.”조순철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공간을 메웠다.“심지어 경쟁자들이 저를 음해하기 위해 이런 추문을 이용하려 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조순철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시선을 돌려 영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렇죠, 영미 아가씨?”영미는 얼어붙었다.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영미에게 쏠렸다. 그 시선은 바늘처럼 날카로워 영미의 온몸을 꿰뚫는 듯했다. 영미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조... 조 시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영미 아가씨, 제 말을 정말 이해 못 하시겠습니까?”조순철의 미소 속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그리고 권욱의 시선은 더욱 살기를 띠고 있었다.부모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은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에게 손을 댄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강소아와 최군형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부하들이 정대명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영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영미는 본능적으로 정대명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정대명은 그녀를 보자마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찾은 듯 온몸을 흔들며 다급히 외쳤다.“아니, 영... 영미 씨! 영미 아가씨! 제발 나 좀 도와줘!”“뭐 하는 짓이에요?”영미는 분노에 차 외쳤다.“제가 왜 당신을 도와줍니까?”“영미 아가씨가 나한테...”“그래요, 제가 당신에게 돈을 줬죠.”영
연회는 여전히 그 4성급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손님들 사이에서 소곤소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시장님이 정말 청렴하셔서 연회도 대단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간소하게 한다는 대화였다.“무슨 소리야? 새로 취임했으니 당연히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거겠지!”“하지만 권씨 가문이나 조씨 가문 정도라면 연회를 더 화려하게 할 수도 있잖아? 아무리 시장이라고 해도, 사위는 사업가 아닌가?”“맞아. 게다가 사대 가문과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좀 더 사치스럽게 해도 문제 될 건 없지.”“혹시... 이 호텔을 선택한 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영미는 한쪽에서 조용히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특별한 이유라... 글쎄, 그런 건 없을 것 같았다. 영미는 그저 자신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조순철은 무대 위에 서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음악이 멈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조순철에게 집중됐다.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조순철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우렁찼다.“먼저, 오늘 연회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의 지지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성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오성을 더 밝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청중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하며 잔을 들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또한, 여러분께서 제 외손녀 권온유를 많이 걱정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조순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온유가 무대로 달려 나와 외할아버지에게 안겼다. 조순철은 권온유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무대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이 권온유가 납치당한 일을 알고 있었고 권온유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이 모든 행운이 가능했던 건 정승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그 순간, 정승우는 한쪽 구석에서 권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부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
차 안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영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정대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 아래로 어두운 핏자국이 퍼져 있었고 그 흔적은 이미 굳어 있었다. 영미는 정대명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영미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명을 내려다보다가 거칠게 발길을 휘둘렀다.“일어나요!”강소아와 최군형도 다가와 공장 안을 살폈지만 안은 고요히 비어 있었다.“아이들은요?”“아이고...”정대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살려줘, 살려줘... 저 괘씸한 녀석이!”“정대명 씨!”영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어쨌든 이번 일은 영미가 자신 있게 권온유의 행방을 안다고 장담한 일이었다.영미는 정대명과 정승우가 백인서와 함께 권온유를 납치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그런데 지금... 정대명은 다쳐 쓰러져 있고 두 아이는 사라졌었다.백인서를 함정에 빠뜨리려던 영미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정대명은 도움을 청하려다 영미가 눈짓을 주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영미의 눈길을 따라 보니 최군형과 강소아도 함께 와있었다.정대명은 예전에 영미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대명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정대명인가요?”최군형이 다가가 물었다.정대명은 말끝을 흐리며 최군형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백인서의 양아버지시고?”최군형은 다시 물었다.“당신이 당신 아들과 함께 권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게 맞나요?”“아니야, 나 아니야!”정대명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이봐, 동생, 난 억울해! 내 아들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했어! 내 머리를 봐, 그 자식이 벽돌로 내리쳤다니까!”“그만해요!”영미는 정대명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정대명을 노려보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강소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서툰 수법이 한심하기만
경찰서 밖에서 최지용은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경찰관이 안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최지용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정호야!”정호라는 젊은 경찰관은 최지용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녀석!”최지용은 정호에게 다가가 가볍게 주먹을 툭 날리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거야?”정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방금 최씨 집안에서 백인서를 데려간 사람 중에 정호도 있었다. 최지용도 놀라웠지만, 영미 역시 경찰이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떠나기 전, 정호가 살짝 눈짓을 보냈고 최지용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지용이 형.”정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계시니 문제없을 겁니다!”“도대체 누구 지시로 백인서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소아 아가씨예요!”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소아 아가씨가 갑자기 지시한 거라 사전에 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최지용은 살짝 놀랐다. 강소아의 지시라니.“형수님께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실종되기 전에 형수님께서 만난 적이 있거든요. 경찰이 형수님을 데려가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절차입니다.”최지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소아가 이런 ‘당연한 절차’를 이용해 백인서를 경찰서로 보낸 이유는 경찰서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백인서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해도 경찰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경찰서 안에는 일을 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백인서가 여기서 며칠 지내는 동안 힘든 일 없이 외부의 소란도 피할 수 있는 셈이었다.최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강소아는 정말 자매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다. 이렇게까지 배려심 깊은 방안을 생각해 내다니!“지용이 형.”정호가 계속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영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소아 언니, 저를 믿지 않으세요?”“난 오직 사실만을 믿어.”“권씨 가문의 딸이 실종된 사건에 백인서 씨의 양아버지와 남동생이 관련되었어요, 그게 바로 사실이에요!”강소아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 했다.세상에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호텔 뒷뜰에 있는 그 CCTV가 정말 완전히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육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힘을 합쳐 그 고장 난 CCTV 하나도 못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최군형은 강소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안심시키며 슬며시 휴대전화를 건넸다.강소아는 화면을 확인했다. 최군형의 부하가 보낸 메시지였다.“도련님, CCTV 데이터를 복구 중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강소아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영미가 이렇게까지 백인서를 몰아세우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꺼림칙한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어차피 꼬리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그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집사의 뒤에는 몇 명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방 안을 둘러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백인서 씨가 계십니까?”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펴고 대답했다.“경찰관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당신이 백인서 씨인가요?”“저는...”“백인서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신고를 접수했습니다!”“뭐라고요?”백인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백인서 씨,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권온유가 납치된 지 하루가 지났다.그동안 정대명은 단 한 번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차갑게 식은 죽 한 그릇과 딱딱한 빵 한 조각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란 권온유에게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참으며 빵을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정승우는 그런 온유의 모습을 보고
“아줌마,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럼, 제가 알아낸 사실을 전부 말씀드릴게요!”영미는 입가에 교만한 미소를 띠며 백인서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백인서 씨의 친어머니인 백홍은 인신매매범이었다는 사실, 모두 아셨나요? 백인서 씨의 어머니는 백인서를 정대명의 집에 맡겼고... 흥! 정대명의 아내도 백홍이 납치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잖아요. 제 생각엔... 인신매매범의 딸이라면 그런 일쯤은 익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권온유의 실종이 정말로 백인서 씨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나요?”“영미!”강소아가 나서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허위 사실을 퍼뜨리지 마!”“소유 아가씨, 억울하네요!”영미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이렇게까지 조사한 건 다 아가씨를 위한 거예요! 딸도 있는 사람이 백인서를 곁에 두고도 마음이 놓이세요?”“그만해!”최지용이 크게 소리쳤다.백인서는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최지용을 쳐다보았다.그러나 최지용의 얼굴에는 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최지용은 굳건한 눈빛으로 뒤에 있는 백인서를 지키고 있었다.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백인서를 아끼고 있었다.백인서는 코끝이 찡해지며 본능적으로 최지용의 손을 꼭 붙잡았다. 최지용의 따스한 손은 백인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그 온기가 어둠의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다.최지용은 백인서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고 다시 영미를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영미야.”최지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집안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저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선을 넘지 마.”최군형도 나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백인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겠어요? 영미 아가씨,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미는 순간 긴장했다. 최군형의 말 속엔 어딘가 숨은 뜻이 있는 듯했다.최군형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파악하기 어려웠다.표아정은 천천히 일어나 어깨에 걸친 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