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방금 그 장면이 있었고 최지한이 모든 서류를 들고 와서 강서연이 왜 함부로 규정을 바꿨냐고 따지러 왔다.“아주버님, 규정은 제가 바꾸고 싶어서 바꾼 게 아니에요.”강서연은 비굴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도 동의하셨어요. 최씨 가문은 큰 가문이라 큰 가문일수록 돈 쓰는 데 조심하는 법이에요. 제가 규정을 바꾼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네까짓 게 뭔데!”최지한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할아버지가 너에게 권한을 줬다고 해서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착각하나 본데. 연준이가 전부 사인했으니 오늘 이 돈을 꼭 받고 말 거야!”“연준 씨는 서명하지 않았어요.”강서연은 고개를 들어 차갑게 그를 바라보고 싸늘하게 웃었다.“눈뜨고 거짓말을 하네!”최지한이 서류를 내던졌다.“똑바로 봐. 매 페이지 뒤에는 모두 최연준이라고 사인했잖아!”“하지만 연준 씨는 실종됐잖아요.”강서연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아주버님께서 모르고 계셨어요?”“너...”최지한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 여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말하면 틀림없이 들통날 것이다.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내비치지 못하고 최연준 사인이라고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제수씨, 농담하는 거죠?”최지한이 득의양양하게 걸어왔다.“내가 며칠 전에도 연준이를 봤는데.”“아주버님께서 본 게 가짜는 아니겠죠?”최지한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강서연은 고의로 한참 침묵하다가 천천히 그를 보며 말했다.“연준 씨가 정말로 실종됐어요.”“흥!”“바로 2주 전 일이에요. 연준 씨가 전용기를 타고 남양으로 윤씨 가문을 만나러 갔는데 타고 있던 비행기가 도중에 연락이 끊겼어요. 연준 씨가 지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어요...”최지한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 여자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파악이 안 됐다.“아주버님.”강서연이 또박또박 말했다.“만약 이번에 연준 씨가 항공 사고를 당했다면 아주버님과 둘째 삼촌은 이 일과 상관없겠
“아... 아니에요, 할아버지...”원래 혈색이 없던 최지한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그는 강서연을 향해 음흉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냉소하며 말했다.“아주버님께서 방금 직접 말했잖아요. 할아버지께서 다 들었는데 지금 발뺌하면 할아버지께서 귀가 잘못돼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거예요?”강서연이 눈썹을 치켜들고 똑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아니면... 아주버님께서 하는 말은 사람 말이 아니라서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건가요?”“너 이 망할 년!”최지한이 흉악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주먹을 휘두르며 강서연에게 달려들었다.최재원이 심하게 기침을 한 번 하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바로 앞으로 다가와서 최지한을 막았다.“내 앞에서 아직도 행패를 부리려고 하는 거야?”최재원은 비록 고희지년의 나이지만 강력한 포스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게 하였다.최지한은 감히 한마디도 더 하지 못했다. 그의 두 손은 경호원에 의해 뒤로 젖혀져 있어 너무 아픈 나머지 얼굴이 일그러져서 말도 안 나왔다.“빌라에 끌고 가!”최재원이 차갑게 명령했다.“둘째도 불러와. 내가 직접 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을 심사할 거야!”경비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고 최지한을 끌고 어진 엔터테인먼트 건물을 떠났다.강서연이 뒤를 따라가면서 조용히 최연준에게 문자를 보냈다.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핸드폰을 잡고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최재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최씨 가문의 체면인데 최진혁과 최지한이 그의 눈 밑에서 일을 저질렀다. 그것도 그가 중시하는 후계자를 겨냥하다니, 이것은 그에게나 최씨 가문에게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그래서 최재원은 이번에는 절대로 이 부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곧 경호원들이 최지한을 빌라 서재로 데리고 갔다.최진혁은 일찍 소식을 듣고 전전긍긍하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최재원이 빠르게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이자 그는 필사적으로 아첨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맞섰다. 최재원의 매서운
“내가 예전에 너를 너무 믿어서 큰 실수를 할 뻔했어!”최재원은 지팡이로 땅을 세게 쳤다.예전에 그는 최진혁이 비록 능력이 제한적이고 총명하지도 않고 때로는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냥 엉뚱한 짓만 안 하면 최재원은 만족했다.게다가 이 몇 명의 자식 중에서도 최진혁만 말재주가 타고나서 자주 그를 즐겁게 해 주었기 때문에 최재원도 최진혁이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었다.심지어 최연준이 계속해서 최진혁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손자가 철이 없다고 생각하며 둘째 삼촌과는 한 가족이니 사이가 틀어져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지금 그는 정말 후회하고 있다!최재원은 화가 나서 최진혁과 최지한을 노려보았다.“너희들은 이미 처음이 아니야! 저번에 강명원이 연준이 집에 잠입해서 윤 회장님의 레시피를 훔치려 하는 것도 아직 너희들과 정확히 따지지 않았어!”“아버지, 제 말 좀 들어보세요!”최진혁은 거의 무릎을 꿇을 지경이었고 횡설수설했다.“그거는 지한이가 실수한 거고 이용당한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5년 전 항공 사고는...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강서연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곧 최지한이 한 말이 한마디도 빠짐없이 전해져 나왔다.최진혁의 안색이 일순간 변하더니 최지한을 노려보며 이를 갈고 그를 호되게 꾸짖었다.“죽고 싶어 환장했어? 무슨 헛소리야?”“삼촌,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강서연이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읊조렸다.“아주버님께서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너...”“삼촌이 연준 씨를 모함한 일은 우리 아버지도 증언할 수 있어요!”최진혁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었다.“윤정재는 너희와 한집안 사람이니,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어? 당연히 딸이 말하는 대로 듣겠지!”“삼촌.”강서연이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삼촌께서 계속 이렇게 발뺌하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애초에 삼촌이 찾은 그 수리공은 공교롭게도 윤제 그룹의
최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냉랭하게 최진혁과 최지한을 바라보며 십여 초 동안 침묵하였는데 서재 전체가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최진혁 부자의 머리에는 압박감이 맴돌고 있었고 두 사람은 입술을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최재원이 탁자 위에 있는 수정 재떨이를 집어 들고 그들에게 던졌다.“이 망할 놈아!”“앗!”최지한은 반응이 빨라 고개를 숙이고 땅에 웅크렸고 최진혁은 맞지는 않았지만 피하지도 못했고 재떨이가 그의 발치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최재원이 크게 노하며 말했다.“너희들... 참으로 내 착한 아들, 착한 손자야! 우리 최씨 가문에서 어찌 이 두 쓰레기를 낳았는가!”쓰레기뿐만 아니라 아이큐가 낮아 자기가 되레 자백했다.강서연은 이 모든 것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아들 데리고 당장 내 눈앞에서 썩 꺼져!”최재원은 지팡이를 들어 올려 최진혁의 종아리를 세게 내리쳤고 최진혁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바로 이 한 번의 내리침이 마치 저주를 걸고 있는 것처럼 그의 마음속에 있던 마지막 부자지간의 정을 모두 깨뜨렸다.최진혁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주먹을 꼭 움켜쥐었고 눈에는 음흉한 독기가 점점 드러났다.“나와 지한이를 쓰레기라고 했어요?”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아버지는 나를 훈계할 자격이 없어요!”“너...”최재원은 눈을 부릅떴다.최연준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감히 그에게 이렇게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최연준이 대드는 것과 최진혁이 대드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다!사랑하는 손자에게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쓰레기 아들한테는 1초도 참아줄 수가 없었다!“최진혁, 내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할게.”최재원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네 못난 아들을 데리고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아버지께서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말해요?”최진혁은 냉소했다.“제가 오늘 이 모양이 된 것도 다 아버지 덕분이에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 마음속에는 오직 형님뿐이었어요! 저와 동생들은 모두
강서연은 박경수에게 즉시 가정의를 오게 하여 할아버지에게 전면 검사를 하도록 했다.그리고 그녀는 최지한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주버님께서 안내 좀 해주세요!”최지한은 못 알아들은 척했다.“뭐 하는 거야?”강서연이 웃으며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가서 간통하는 것을 잡아야죠!”...최지한과 최진혁은 지금 최씨 가문의 두 잡초로, 모두가 짓밟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서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경호원이 그를 잡고 있는 상태에서 강서연을 데리고 해원 별장으로 갔다.객실에서는 성설연이 구현수를 도와 약을 발라주고 있었는데 능청스럽게 눈물 몇 방울을 흘리며 그에게 덤벼들려고 하자 구현수가 목청껏 외쳤다.“오지 마!”음 이탈까지 하여 성설연이 매우 놀랐다.구현수의 몸에 난 상처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아파서 앓는 소리를 계속 냈다.“도련님...”성설연이 그를 부드럽게 불렀다.“도련님께서 다친 이후로 제가 이미 여기서 며칠 동안 간호해 줬잖아요!”“어? 그래...”구현수는 그녀가 돈을 원한다고 생각해서 귀찮게 손사래를 쳤다.“돈이 필요하면 큰 도련님을 찾아가. 내가 이미 많이 서명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을 거야!”“그게 무슨 뜻이에요?”성설연이 어안이 벙벙해하자 구현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도련님.”성설연이 눈을 굴리고 말했다.“나는 도련님 사람인데 도련님께서는 내가 연예계에서 이렇게 바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럽지도 않으세요?”구현수가 눈을 비스듬히 떴다.“지금 생활에 만족 안 하고 있어?”“당연하죠! 그 사람들은 나를 무시해요...”“너는 대스타가 아니라서 그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는 것도 정상이야!”“지금...”성설연은 심호흡하고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구현수는 이미 지금 생활에 지쳐갔다. 온몸이 상처로 가득한 데다가 성설연이 하루 종일 귓가에서 돈을 써서 그녀에게 투자하라고 중얼거리는데 그로 하여금 인생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다.“도련님, 도와주지 않으면 안 돼요!”성
강서연은 말주변이 뛰어나고 안주인의 기질이 있다.그러나 성설연은 일부러 구현수의 목에 팔을 두르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사모님, 여기는 해원 별장 큰 도련님의 댁 아니에요? 최씨 가문은 예절을 중요시하는 가문일 텐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아주버님을 묶어놓고 남편을 교훈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세요?”강서연은 잠시 멈칫하고 바로 웃음이 나왔다.이전에는 성설연의 마음 씀씀이가 바르지 않다는 것만 알았을 뿐, 그녀가 이렇게 어리석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성설연 씨, 당신이 안고 있는 사람이 내 남편인 게 확실해요?”성설연은 어안이 벙벙했고 구현수를 바라보았지만 구현수는 일부러 그녀의 눈을 피했다.그녀는 그저 이게 남자들의 정상적인 반응일 거로 생각했다. 간통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히면 당황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면 강서연이 한 말의 의미가... 설마 이혼하자는 건가 싶었다.성설연은 그러기를 바라서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이 드러났다.그녀는 강서연의 앞에 거만하게 서 있었다.“사모님, 왜 이렇게 쩔쩔매고 있어요? 도련님의 마음은 당신에게 있지도 않아요! 요 며칠 집에도 안 가고 나랑만 같이 있었어요! 도련님께서 이번에 다친 것도 내가 옆에서 보살폈어요! 나는 도련님에 대해 이 정도까지 해줬는데 사모님께서는 해준 게 뭐가 있어요?”구현수는 얼굴빛이 변했고 곧장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힘껏 눌렀다.“잡지 마세요!”성설연이 그의 팔짱을 꼈다.“도련님, 오늘 사모님 앞에서 똑똑히 말해보세요! 도련님은 나를 사랑하는 거죠?”“너 정신 나갔어?”구현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도련님...”“성설연, 너 당장 꺼져!”구현수는 그녀를 힘껏 밀어냈다. 그는 그녀를 쫓아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구현수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해원 별장 안팎에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강서연의 사람들이고 최지한마저 그녀에게 묶여 있다.지금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별 따기보다 어
경찰관은 구현수에게 다가가서 신분증을 제시했다.“구현수 씨!”경찰관이 냉소했다.“당신이 최연준 씨의 필적을 위조해 3억 달러에 달하는 최상 그룹의 중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경찰 측은 당신을 사기죄로 기소할 것입니다! 당신이 서명한 그 문서들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구현수는 심장이 멎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고, 두 경찰관이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저 아니에요!”구현수가 소리쳤다.“저 아니라고요! 최지한이 저보고 서명하라고 시켰어요. 저는...”그의 목소리는 사람과 함께 점점 멀어졌다.강서연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최연준의 부드럽고 깊은 눈빛과 마주쳤고 그의 눈에서 그녀에 대한 칭찬을 느꼈다.“우리는 집에 가자.”최연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뒤돌아서 최지한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연준 씨. 아주버님...”최연준도 최지한을 바라보는데 바로 이때, 최지한이 갑자기 쓰러지며 경련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창백했던 얼굴이 더욱 귀신처럼 변해 사람을 놀라게 해서 강서연이 낮은 소리를 내며 연거푸 물러났다.최지한은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푸드덕거리며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쳤고 키 큰 경호원들조차 그를 통제하지 못했다.그의 손이 선반에 걸리자 꽃병 하나가 소리를 내며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강서연은 잠시 멈칫하고 머릿속에서 강유빈의 얼굴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그때 마장에 갇혀 있는 강유빈을 보았을 때도 그녀는 이렇게 창백하고 온몸을 떨며 쓰러져서 경련을 일으켰는데, 지금의 최지한과 똑같았다.“연준 씨...”강서연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최지한도... 무슨 아이스를 먹었을까요?”최연준은 아무런 표정 없이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최지한이 순간 깨진 유리 조각을 들고 강서연에게 달려들어 결사적으로 싸울 기세였다.“서연아, 비켜!”최연준이 큰소리치며 강서연을 뒤로 보호하는 바람에 최지한이 손에 들고 있던 유리 조각은 그의 팔에 깊숙이 찔
방한서가 최연준을 여주 별장으로 호송하자 의사가 급히 와서 소염하고 약을 발라 주었고 강서연은 한쪽에 서서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었다.온라인은 최씨 가문 때문에 시끌벅적했고 오후부터 저녁까지 실시간 검색을 점령하고 내려오지 않았다.「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 타인에게 사칭 당하여 문서에 서명.」「최씨 가문 큰 도련님 친형제 살해 미수.」여론이 점점 더 거세지고 기사를 클릭하는 사람 수가 너무 많아 인터넷이 한동안 마비될 지경이었다.하지만 강서연은 이런 것들을 볼 마음이 없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최연준의 상처와 의사가 몇 시간에 한 번씩 어떤 약을 먹으라고 당부했던 것만 마음속에 새겼다.두 사람이 저녁에 에덴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더욱 조심스럽게 자기 남편을 부축하고 있었다.최연준의 왼발이 문에서 들어오자 그녀는 몸을 구부려 슬리퍼를 가져다주었다.그는 오른발을 허공에 대고 한참 동안 굳어 있었다.“여보, 그렇게 할 필요 없어! 내가 다친 건 손이지 발이 아니야!”강서연은 그를 향해 달콤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그를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최연준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마음속은 흐뭇했다. 상처를 입으면 이런 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는 자진해서 팔을 뻗어 최지한에게 찌르라고 말했을 것이다.강서연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를 침대에 부축해 이불을 꼼꼼히 덮어줬고 또 야식을 준비해서 먹여 줬다.최연준은 그녀가 이렇게 분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서연은 바쁘게 움직이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돌아서서 핸드폰을 잡았다.영상통화가 연결되고 저쪽에 있는 엄마 아빠 뒤로는 우림이 펼쳐져 있었고 한 명은 카디건을 입고 한 명은 사롱을 입고 있는데 모두 남양 전통 의상이다.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산책하고 있었는데 강서연의 전화를 받고는 반가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서연아, 잘 지내고 있어?”윤문희가 걱정했다.“좀 마른 것 같은데...”“그래?”윤정재가 갑자기 다가와서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자세히 보았다.강서연은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