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말주변이 뛰어나고 안주인의 기질이 있다.그러나 성설연은 일부러 구현수의 목에 팔을 두르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사모님, 여기는 해원 별장 큰 도련님의 댁 아니에요? 최씨 가문은 예절을 중요시하는 가문일 텐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아주버님을 묶어놓고 남편을 교훈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세요?”강서연은 잠시 멈칫하고 바로 웃음이 나왔다.이전에는 성설연의 마음 씀씀이가 바르지 않다는 것만 알았을 뿐, 그녀가 이렇게 어리석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성설연 씨, 당신이 안고 있는 사람이 내 남편인 게 확실해요?”성설연은 어안이 벙벙했고 구현수를 바라보았지만 구현수는 일부러 그녀의 눈을 피했다.그녀는 그저 이게 남자들의 정상적인 반응일 거로 생각했다. 간통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히면 당황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면 강서연이 한 말의 의미가... 설마 이혼하자는 건가 싶었다.성설연은 그러기를 바라서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이 드러났다.그녀는 강서연의 앞에 거만하게 서 있었다.“사모님, 왜 이렇게 쩔쩔매고 있어요? 도련님의 마음은 당신에게 있지도 않아요! 요 며칠 집에도 안 가고 나랑만 같이 있었어요! 도련님께서 이번에 다친 것도 내가 옆에서 보살폈어요! 나는 도련님에 대해 이 정도까지 해줬는데 사모님께서는 해준 게 뭐가 있어요?”구현수는 얼굴빛이 변했고 곧장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힘껏 눌렀다.“잡지 마세요!”성설연이 그의 팔짱을 꼈다.“도련님, 오늘 사모님 앞에서 똑똑히 말해보세요! 도련님은 나를 사랑하는 거죠?”“너 정신 나갔어?”구현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도련님...”“성설연, 너 당장 꺼져!”구현수는 그녀를 힘껏 밀어냈다. 그는 그녀를 쫓아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구현수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해원 별장 안팎에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강서연의 사람들이고 최지한마저 그녀에게 묶여 있다.지금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별 따기보다 어
경찰관은 구현수에게 다가가서 신분증을 제시했다.“구현수 씨!”경찰관이 냉소했다.“당신이 최연준 씨의 필적을 위조해 3억 달러에 달하는 최상 그룹의 중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경찰 측은 당신을 사기죄로 기소할 것입니다! 당신이 서명한 그 문서들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구현수는 심장이 멎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고, 두 경찰관이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저 아니에요!”구현수가 소리쳤다.“저 아니라고요! 최지한이 저보고 서명하라고 시켰어요. 저는...”그의 목소리는 사람과 함께 점점 멀어졌다.강서연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최연준의 부드럽고 깊은 눈빛과 마주쳤고 그의 눈에서 그녀에 대한 칭찬을 느꼈다.“우리는 집에 가자.”최연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뒤돌아서 최지한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연준 씨. 아주버님...”최연준도 최지한을 바라보는데 바로 이때, 최지한이 갑자기 쓰러지며 경련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창백했던 얼굴이 더욱 귀신처럼 변해 사람을 놀라게 해서 강서연이 낮은 소리를 내며 연거푸 물러났다.최지한은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푸드덕거리며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쳤고 키 큰 경호원들조차 그를 통제하지 못했다.그의 손이 선반에 걸리자 꽃병 하나가 소리를 내며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강서연은 잠시 멈칫하고 머릿속에서 강유빈의 얼굴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그때 마장에 갇혀 있는 강유빈을 보았을 때도 그녀는 이렇게 창백하고 온몸을 떨며 쓰러져서 경련을 일으켰는데, 지금의 최지한과 똑같았다.“연준 씨...”강서연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최지한도... 무슨 아이스를 먹었을까요?”최연준은 아무런 표정 없이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최지한이 순간 깨진 유리 조각을 들고 강서연에게 달려들어 결사적으로 싸울 기세였다.“서연아, 비켜!”최연준이 큰소리치며 강서연을 뒤로 보호하는 바람에 최지한이 손에 들고 있던 유리 조각은 그의 팔에 깊숙이 찔
방한서가 최연준을 여주 별장으로 호송하자 의사가 급히 와서 소염하고 약을 발라 주었고 강서연은 한쪽에 서서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었다.온라인은 최씨 가문 때문에 시끌벅적했고 오후부터 저녁까지 실시간 검색을 점령하고 내려오지 않았다.「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 타인에게 사칭 당하여 문서에 서명.」「최씨 가문 큰 도련님 친형제 살해 미수.」여론이 점점 더 거세지고 기사를 클릭하는 사람 수가 너무 많아 인터넷이 한동안 마비될 지경이었다.하지만 강서연은 이런 것들을 볼 마음이 없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최연준의 상처와 의사가 몇 시간에 한 번씩 어떤 약을 먹으라고 당부했던 것만 마음속에 새겼다.두 사람이 저녁에 에덴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더욱 조심스럽게 자기 남편을 부축하고 있었다.최연준의 왼발이 문에서 들어오자 그녀는 몸을 구부려 슬리퍼를 가져다주었다.그는 오른발을 허공에 대고 한참 동안 굳어 있었다.“여보, 그렇게 할 필요 없어! 내가 다친 건 손이지 발이 아니야!”강서연은 그를 향해 달콤한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그를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최연준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마음속은 흐뭇했다. 상처를 입으면 이런 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는 자진해서 팔을 뻗어 최지한에게 찌르라고 말했을 것이다.강서연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를 침대에 부축해 이불을 꼼꼼히 덮어줬고 또 야식을 준비해서 먹여 줬다.최연준은 그녀가 이렇게 분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서연은 바쁘게 움직이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돌아서서 핸드폰을 잡았다.영상통화가 연결되고 저쪽에 있는 엄마 아빠 뒤로는 우림이 펼쳐져 있었고 한 명은 카디건을 입고 한 명은 사롱을 입고 있는데 모두 남양 전통 의상이다.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산책하고 있었는데 강서연의 전화를 받고는 반가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서연아, 잘 지내고 있어?”윤문희가 걱정했다.“좀 마른 것 같은데...”“그래?”윤정재가 갑자기 다가와서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자세히 보았다.강서연은
“아빠?”강서연은 윤정재가 카메라 앞에서 눈을 뒤집고 입을 삐죽거리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연신 몇 번이나 불렀다.“아빠, 무슨 생각을 하세요?”“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윤정재는 정신을 차리고 헤헤 웃었다.“서연아, 그 상처는 빨리 나으려면 네가 자주 씻겨줘야 해!”“네?”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했다.“상처는 물에 닿으면 안 되잖아요?”최연준은 침상에 기대어 안색이 어두웠고 윤정재의 말에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당연하지.”윤정재는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당연히 일반 물로 씻으면 안 되지.”“그래요...”“과산화수소를 써야 해!”강서연은 열심히 듣고는 과산화수소를 종이에 적었다.“서연아...”윤정재가 계속하여 말했다.“과산화수소는 염증을 없애고 살균하는 거라서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는 데 특히 효과가 있어. 꼭 100퍼센트 농도를 사용해야 해, 들었어? 잘 소독하고 상처를 잘 씻어야 빨리 낫지! 농도는 반드시 100퍼센트, 기억하지? 아이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문희에게 머리를 한 대 맞았다.최연준은 화면으로 다가가 봤다.윤정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억울한 듯 볼을 부풀린 채 옆에 있는 윤문희를 보며 속삭였다.“지금 통화하고 있잖아... 영상통화여서 딸이 다 보고 있어!”윤문희는 기가 막히며 웃었다.“서연아, 아빠 말 듣지 마! 과산화수소는 살균은 되지만 농도는 그렇게 높으면 안 돼! 너 정말 시키는 대로 하면 최 서방이 아파 죽을 거야. 그건 알코올보다 더 독한 거야!”“쉿...”윤정재는 조급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저리 가요!”윤문희는 그를 밀어냈다.“서연아, 윤제 그룹에 치료하는 약이 있어서 내일 내가 보내줄게... 음, 윤제 그룹 전용기로 보내면 내일 도착할 수 있어!”“네!”강서연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최연준도 웃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역시 장모님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아빠는 말이에요.”강서
최연준은 그 두 사람을 몇 번 보더니 답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요.”보아하니 그는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두 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때 강서연의 맑고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 의사님과 유 변호사님이세요? 빨리 들어와서 앉으세요!”최연준은 그제야 어두운 얼굴로 비켜섰다.강서연은 두 사람과 고개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가 과일을 썰었다.신석훈과 유찬혁은 모두 눈치가 빠른 사람이어서 얼굴이 빨개진 그녀의 모습을 한 번 보고, 또 기분이 언짢은 최연준의 표정을 보니 바로 알아차려 웃음을 참지 못했다.예전에 나쁜 사람 몫은 항상 배경원과 방한서였는데 그들 두 사람에게도 이런 날이 있을 줄은 몰랐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최연준은 신석훈을 바라보며 물었고 그 검은 얼굴에는 글자가 쓰였다.‘중요한 발견이 없다면 내가 너희들을 가볍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신석훈은 입술을 핥고 검사 결과 보고서를 한 부 꺼냈고 위에는 각종 수치가 적혀 있어 오래 보면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하지만 최연준은 각종 데이터에 강한 면역력과 강력한 논리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어 잠시 본 뒤 문제점을 발견했다.“이 수치는 정상 범위를 벗어난 거죠?”“네, 맞아요.”신석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최지한이 요즘 해원 별장에 갇혀 있는데 내가 슬그머니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요. 최지한의 표정이 매우 이상했고 정신을 잃으면 미친 듯이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원흥이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을 때 몰래 무엇인가 주사를 놓아주는 것을 발견했어요.”최연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표정은 차가웠다.“최씨 가문 의료진들은 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최지한이 장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힘이 없어도 선뜻 건드리지 못하고 이 일에 대해 눈감아 주고 있어요.”최연준이 그에게 물었다.“이 보고서는 어떻게 얻은 거예요?”“기회를 봐서 의료진으로 분장하고 해원 별장에 잠입해서 최지
“원흥의 모든 배경 자료를 상세하게 조사해주세요. 그리고 원흥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감시하세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서자 세 남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특히 최연준이 너무 쳐다봐서 강서연은 조금 의아해하며 걸어가서 그의 얼굴을 좌우로 바라보았다. “여보, 왜 그래요?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예요?”최연준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당신이 내 대사를 모두 뺏어갔어!”강서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신석훈도 웃었다.“두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정말 부부상이 되는 것 같아요!”“맞아요.”강서연도 농담했다.“연희 씨도 석훈 씨와 오래 있더니 공부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에이, 저와 연희는 달라요!”신석훈이 웃으며 진지하게 해명했다.“연희는 동생이어서 우리 둘은 기껏해야 남매상이에요!”“그게...”강서연만 말문이 막힌 것이 아니라 최연준도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 안색이 너무 안 좋았다.“석훈 씨!”강서연이 급하게 그에게 눈짓을 했다.“어떻게 아직도 연희 씨를 여동생으로 생각해요?”하지만 눈치 없는 신석훈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여전히 진지하게 대답했다.“나와 연준 씨는 형제잖아요! 연준 씨의 동생은 당연히 내 동생이죠! 연준 씨, 서연 씨, 걱정하지 마세요! 연희가 그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오성 의대에 합격하는 것은 절대 문제가 안 됩니다! 오늘 내가 여기 오기 전에도 연희에게 시험지 두 장을 더 풀어야 한다고 특별히 당부했어요...”“석훈 씨.”최연준의 얼굴은 어두웠다.“그만 돌아가세요.”“네?”“집에 가도 된다니까요!”“왜... 왜요?”신석훈은 어안이 벙벙했다.‘태도가 너무 빨리 변하잖아!’강서연은 몰래 웃으며 조금 전에 중얼거리는 신석훈의 모습은 정말 당승을 닮았다고 생각했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당승과 비슷하다고 느꼈다.일편단심으로 사업에 열중하여 여자에게 접근하지 않고 완고하고 보수적인 사람이다.하지만 그는
최연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풀어주고 다시 강서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서연아, 또 다른 반응은 없어?”“글쎄...”강서연이 다시 기억을 돌이켜보며 고개를 저었다.“없는 것 같아요.”“휴!”최연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긴장한 얼굴에는 마침내 한 가닥 미소가 드러났다.“없으니 다행이야!”“네?”“내 말은...”최연준은 눈썹을 움직였다.“반응이 없으면 임신이 아니잖아!”“그렇게 단정 지을 수도 없어요.”신석훈은 금테 안경을 밀면서 전문가의 모습으로 설명했다.“사람마다 체질이 달라서 임신 반응도 똑같지는 않아요. 어떤 사람은 많이 먹고 많이 자고 구토 반응이 없어요.”“석훈 씨.”최연준은 그를 째려보았다.“오늘 말이 너무 많네요.”신석훈은 어이가 없어 제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사실 최연준의 마음은 극도로 모순적이었다. 어른들의 입을 틀어막을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강서연과의 둘만의 시간을 아이가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특히 꿈에서 나온 아기를 생각하면... 그는 더욱 마음이 답답해졌다.유찬혁은 그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기 시작했다.“연준 씨, 이렇게 합시다.”신석훈이 제안했다.“이따가 주변 약국에 가서 서연 씨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사다 주고 내일 아침에 내 진료소에 오세요. 내가 자세히 검사해 볼게요.”“맞아요.”유찬혁도 찬성했다.“우리가 여기서 함부로 추측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니 그래도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어요.”“나는... 아닌 것 같아.”최연준은 두 번의 기침을 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미 당황하고 있었다.한 명이 더 나타나 아내를 두고 싸우고 싶지 않았다!유찬혁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고 신석훈과 함께 에덴을 떠났고 그들 둘은 상가의 길목에서 헤어졌다.신석훈은 진료소에서 야간 근무를 해야 해서 인사를 하고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유찬혁이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고 상가가 한창 떠들썩할 때였다.사
그녀의 몸에서는 약간의 술 냄새가 났고 청아한 향수 냄새와 뒤섞여 색다른 운치가 있었다. 그녀는 아주 즐겁게 마신 것 같았고 예쁜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나며 마치 보석 같았다.유찬혁은 할 말이 없어 돌아서려는데 주아가 목청을 높여 말했다.“얘들아, 빨리 와. 유 변호사님이 오셨어.”유찬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는데 한순간에 10여 명의 여배우들이 술집 사방에서 몰려들었고 모두 평소 TV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하지만 지금은...유찬혁은 당황하여 잘 서 있지도 못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여배우들에게 둘러싸였다. 다들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정신을 놓았고 유찬혁을 보자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유 변호사님!”“어머, 정말 유 변호사님이시군요!”“비 연예계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너희들 모두 나와 다투면 안 돼. 유 변호사님은 내 것이야!”유찬혁의 이마는 땀 범벅이 되었다.“이보세요, 아가씨.”“오빠, 이렇게 오빠를 만지는 게 불법인가요?”“찬혁 씨, 나도 만질 테니 찬혁 씨도 나에게 정당방위를 하는 게 어때요?”“하하하...”유찬혁은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랐다. 아까 분명히 문 앞까지 갔는데 다시 여배우들에게 끌려왔다.다들 너무 열정적이다!그는 양손으로 가슴 앞을 막으면서 웃으며 항복했다.이때 매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여배우들은 순간 얌전해졌고 유찬혁의 가슴 근육을 만지던 손도 내렸다.곽보미도 술을 많이 마셔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몸이 휘청거리다가 겨우 일어섰다.하지만 그녀의 카리스마는 사라지지 않았고 눈빛에는 견고함과 싸늘함을 띠고 있었으며 입꼬리를 밑으로 내렸다.“무엇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여배우이고 연기 대상도 받은 사람입니다! 특수직업 종사자가 아닙니다. 알겠죠? 다들 이렇게 쩔쩔매면 되겠어요?”여배우들은 하하호호 모두 그녀의 말솜씨에 반했다.곽보미가 손을 흔들자 다들 각자의 룸으로 돌아갔다.유찬혁은 벽에 기대어 여배우들이 멀리 떠나가는 것을 지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