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원래는 스스로 짊어지려고 했었지만 예전에 입을 꾹 다물었다가 하마터면 그녀를 잃을 뻔했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나지막하게 말했다.“강명원이 지금 오성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품에 안겨 있던 강서연이 움찔하자 최연준은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강씨 가문의 회사는 완전히 부도났고 강유빈은 최지한의 노리개가 되었어...”최연준은 그녀에게 차근차근 얘기했다.“강명원 지금 돈이 많이 필요할 거야. 그러니까 딸 찾으러 오성에 온 것도 이상할 건 없지.”“딸 찾으러 온 것만은 아니겠죠.”강서연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마 나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최연준은 그녀의 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고집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예전에 강서연을 처음 만났을 땐 그녀가 자기주장도 내세울 줄 모르는 연약한 여자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여자였다. 하여 그녀에게 무슨 얘기든 거리낌 없이 했다.“당신을 찾으러 올뿐만 아니라 장모님도 찾으러 갈 거야. 그때 강주에 있을 때도 강명원이 당신네 집에 찾아가서 한바탕 난리를 피웠었잖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강명원이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하게 장모님 쪽에 이미 사람을 붙여뒀어.”강서연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달콤하게 웃었다. 최연준은 무슨 일이든 항상 미리 완벽하게 처리했다.“왜 그렇게 봐?”최연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강서연은 그런 그를 보며 솔직하게 얘기했다.“고마워요, 여보...”“당신과 나 사이에 고맙다는 말이 필요해?”강서연은 가볍게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따뜻함이 사르르 퍼져나갔다.“정말로 고마우면...”최연준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앞으로 용돈이나 더 줘.”강서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최연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소파 위에서 꼼
‘예전에 그렇게 오만하고 자부심도 강했던 할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구차해지셨지?’“할아버지.”강서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테이블 밑으로 남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사실 저도 초밥을 먹고 싶었어요. 그리고 장어덮밥도요.”“그래...”최재원이 잠깐 생각하다가 박경수에게 눈빛을 보내자 박경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요리사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자세를 고쳐잡더니 90도 인사를 하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네.”그러고는 곧장 준비하러 주방으로 향했다.최연준은 체념한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본가의 분위기가 점점 답답해지고 있어. 다음에는 차라리 단식할까? 할아버지도 직접 키운 후계자가 배를 곯는 걸 보고만 있진 않겠지. 그리고 서연이도 마음 아파할 거야.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더 다정해지고 용돈도 올려줄 뿐만 아니라 블랙 카드도 다시 줄지 몰라... 그래, 그렇게 하자!’최연준은 씩 웃고는 눈앞의 연어회를 허겁지겁 먹었다.“도련님.”박경수가 서류 하나를 들고 왔다.“이건 내년에 오성대에 후원할 리스트입니다. 한번 보세요...”최연준이 받으려는데 최재원이 한마디 툭 던졌다.“서연이에게 줘. 이제부터 이런 일은 다 서연이가 결정할 거야.”“할아버지, 뭐라고요?”최연준이 화들짝 놀랐다.“아 참, 깜빡하고 얘기 안 했네.”최재원은 휴지로 입을 닦았다.“서연이가 재무관리도 아주 전문가처럼 잘하더라고. 너보다 훨씬 잘해. 그래서 말인데 집안일뿐만 아니라 회사 재정도 앞으로 서연이에게 천천히 맡길 생각이야.”최연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럼 저는...”“넌 돈을 잘 벌잖아.”최재원의 계획은 아주 용의주도했다.“네가 돈을 벌고 서연이가 돈을 관리하면 얼마나 좋아.”“네... 좋긴 하죠.”어젯밤 힘들게 받은 ‘인센티브’ 생각에 최연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강서연은 반짝이는 두 눈으로 그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 최연준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최연준은 강서연의 가느다란 허리를 몰래 감싸
최연준은 이런 얘기는 윤정재나 윤문희가 직접 강서연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강서연이 다른 사람에게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 달라진다.최재원은 마른기침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도우미가 복숭아꽃으로 데코한 생선찜을 그들의 앞에 한 접시씩 내려놓았다.“서연아.”최재원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얼른 먹어봐.”강서연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 최연준의 신분을 몰랐을 적에 그와 함께 온천 리조트로 신혼여행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따뜻한 봄이라 꽃이 활짝 피어있었고 온천 근처의 산에 복숭아꽃이 만개하여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그리고 온전 리조트의 간판 요리도 마침 이 생선찜이었다. 그때 강서연은 생선 눈알을 최연준에게 집어줬었다.오늘도 마찬가지로 가장 귀한 걸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다.그 모습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최재원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한 부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한참 후, 최재원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예전에 네 할머니도... 나에게 그랬었는데.”최연준과 강서연은 동시에 젓가락질을 멈췄다.최연준은 지금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할아버지의 이런 슬픈 표정을 처음 봤다.할머니는 최연준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기에 할머니에 대한 인상은 최재원의 서재에 있는 유채화와 테이블 위의 낡은 사진뿐이었다.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최재원은 차갑고 진지하며 인정이 없는 야속한 사람이었고 사업을 할 때는 또 백절불굴의 성격으로 유명했다.하여 최연준은 최재원에게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예민함과 나약함, 그리고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품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할아버지...”“하하, 괜찮아, 괜찮아.”최재원은 재빨리 마음을 다잡았다.“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식사해. 어휴,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꾸 옛날 생각을 한다니까...”“할아버지.”강서연이 가볍게 웃었다.“혹시 내일 연준 씨와 함께 할머니 뵈러 가도 될까요?”최연준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를 쳐다보는 최재원의 눈빛에도
최연준은 대충 알아차렸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다.“내가 있으니까 괜찮아.”그는 위로를 건넨 후 강서연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그날 저녁 에덴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강서연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강유빈의 처참한 비명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여보, 걱정하지 마.”최연준은 박경실이 미리 끓인 국을 한 그릇 떠서 그녀에게 건넸다.“사실 난 차라리 더 잘 된 거라고 생각해.”“네?”“강유빈의 지금 상태를 보면 약을 한 게 틀림없어.”최연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참에 실마리를 좇아 추적하면 최지한이 뒤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강서연은 순간 멈칫했다.‘하긴. 강유빈은 지금 완전히 최지한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어. 정말로 약을 한 거라면 그 약도 최지한이 준 거겠지.’예전에 최지한이 강서연을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강유빈이 초대장을 빼앗았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고 생각할수록 무서웠다.어찌 보면 강유빈이 그녀를 도와준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유빈 같은 사람은 결국 자업자득이니 동정할 필요가 없다.강서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국의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긴장한 마음을 녹여주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배를 좀 채운 다음 서재로 가서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최연준은 웃으며 서재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박경실에게 가끔 옷도 가져다주고 디저트도 가져다주라고 분부했다.“도련님, 어디 가시게요?”“네, 일이 좀 있어서요.”최연준이 나지막이 말했다.“너무 늦진 않을 거예요. 서연이가 장부를 다 정리하기 전에 돌아올 겁니다.”그러고는 겉옷을 챙겨 나갔다. 나가기 전 방한서에게 에덴의 경계를 더 강화하라고 분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배경원과 자주 모이는 술집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수다나 떨려고 모인 게 아니라 중요한 소식을 얻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그 소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최연준은 따
배경원이 진지하게 말했다.“결혼해도 우리 수정 씨는 나에게 저러지 않을 거야.”그러더니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냈는데 스위스 모 은행이라고 적혀있었다. 유찬혁은 수많은 세계적 부자들이 돈을 이 은행에 넣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성에는 이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이건 수정 씨가 준 거야.”배경원은 입이 귀에 걸렸다.“이 안에 우리 둘의 적금이 들어있어. 매달 이 카드 안에 돈을 저축하는데 나더러 보관하라고 했어. 나중에...”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경섭이 고함을 질렀다.“연준 씨, 경원 씨에게 돈이 있어요!”배경원은 화들짝 놀란 나머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손목을 푸는 육경섭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빼앗을 기세였다.최연준은 지금 자신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가장 질투했다. 설령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형제라도 말이다. 하여 육경섭을 더욱 부추겼다.“돈이 있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거예요? 조직 보스였던 그 위엄이 다 어딜 갔죠?”그러자 육경섭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요?”“갑시다!”“으악!”룸 전체에 순식간에 배경원의 처참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유찬혁은 그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 이마를 짚었다...나약한 배경원은 그렇게 두 맹수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찬혁아, 너 변호사잖아. 두 사람이 지금 대놓고 빼앗는데도 가만히 있을 거야?”“그게...”유찬혁은 그저 웃기만 했다.“누가 너더러 돈 자랑을 하랬어?”배경원은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런데 그때 유찬혁의 휴대 전화가 진동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룸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최연준은 배경원을 옆으로 밀어내고 유찬혁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유찬혁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도련님... 제대로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어떻게 됐어?”최연준
배경원은 눈살을 찌푸리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최지한이 그 정도로 널 믿는다고? 왜? 네가 연준 형 옆에 오래 있은 것도 분명 알 텐데...”“최지한은 자기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 있어요.”육경섭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나도 예전에 최지한을 만난 적이 있잖아요. 그 사람은 안하무인이라서 세상 사람들은 전부 바보고 자기만 똑똑한 줄 알아요. 지금 성설연을 이용하여 유찬혁을 협박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주 좋아 죽을걸요? 이런 사람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죠.”최연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걔가 작은삼촌의 절반만이라도 눈치가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텐데.”“연준 형.”유찬혁이 눈살을 찌푸렸다.“강명원이 그 레시피를 훔치러 온 거라면 미리 가짜 레시피로 바꿔놓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럴 필요 없어.”최연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넌 강명원과 계속 내통해. 그때가 되면 강명원을 상대할 사람이 나타날 거야.”...그날 강서연은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전날 밤에 늦게까지 장부를 본 바람에 허리도 아프고 삭신이 쑤셨다. 최연준이 억지로 끌고 가서 재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밤을 꼬박 새웠을 것이다.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최연준은 없었고 그가 남긴 쪽지가 있었다.「나 먼저 회사 나가. 어진 엔터테인먼트에는 내가 당신 대신 휴가 냈어. 오늘 하루 집에서 푹 쉬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강서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카디건을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박경실이 이미 아침을 차려놓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쪽지를 남기셨어요.”“네, 봤어요.”“아 참, 도련님이 나가시기 전에 오늘 본가에 들리겠다고 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갔다가 금방 온다고 했어요.”강서연은 순간 멈칫했다. 본가 얘기만 꺼내면 그곳에 갇혀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강유빈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강서연, 아빠가 오면 넌 전부 다 잃게 될 거야.”‘전부 다
그녀는 사진을 한장 한장 찍고 상자를 다시 잠근 후 오성대로 부리나케 달려갔다.강서연이 오성대에 도착했을 때 마침 수업 시간이었다. 교내에서 지나가는 학생 몇 명에게 물어 겨우 의학원을 찾았다. 학생은 윤찬이 수업이 없을 때면 보통 실험실에 있으니 실험실로 한번 가보라고 알려주었다.그녀는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곧장 실험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찬은 실험실에 있었다. 그녀가 윤찬을 부르려던 그때 누군가의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바로 윤정재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강서연은 화들짝 놀랐다.두 사람은 벽에 걸린 커다란 경맥도 앞에 서 있었고 윤정재가 한창 윤찬에게 설명하고 있었다.한 사람은 열심히 강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둘의 표정이 어찌나 비슷한지 멀리서 보면 그야말로 판박이였다.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숨도 쉴 수가 없었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런데 그때 윤찬이 그녀를 발견했다.“누나? 누나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강서연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 윤정재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누나.”윤찬은 폴짝폴짝 뛰며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정말 미안해요. 누나가 혼인 신고한 날에 엄청 중요한 실험이 있어서 교수님이 놓아주질 않았어요. 그래서...”“괜찮아. 나 다 이해해.”강서연은 그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당연히 학업이 더 중요하지.”“내가 보낸 선물은 받았어요?”“응.”윤찬은 연구 성과를 얻은 후 특허를 신청하여 꽤 많은 특허 비용을 벌었다. 적어도 의학원에서 돈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다.결혼 선물로 돈을 주긴 했지만 그의 마음을 가득 담아 봉투에 두둑하게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그 돈은 매형에게 주는 것이라고 특별히 강조하기도 했다.하지만 매형이 그 돈을 써보기도 전에 강서연에게 전부 상납했다는 사실을 윤찬은 모르고 있었다.강서연은 동
강서연은 멈칫하다가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에요.”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윤정재는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감히 물어볼 수 없어 그저 딸의 눈치만 자꾸 살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진짜 아무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윤정재는 입술을 적시고 가볍게 웃었다.“그럼 다행이고요... 점심도 거의 되는데 밥 먹으러 갈까요? 내가 사줄게요. 찬이와도 얘기 좀 더 나눴으면 좋겠고. 하하... 뭐 먹고 싶어요?”그는 강서연을 보며 물었다.“서연 씨가 메뉴 정해요.”“괜찮아요.”강서연은 고개를 들고 그를 보며 말했다.“전 연준 씨에게 가보려고요. 연준 씨가 아침부터 집에 없어서 지금까지 얼굴도 못 봐서요.”“뭐라고요?”윤정재의 낯빛이 급변했다.“설마 외박한 건 아니죠?”“아니에요.”강서연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침 일찍 나갔어요.”“그렇군요. 외박은 절대 안 돼요.”윤정재가 카리스마 있게 말했다.“서연 씨, 만약 앞으로 최연준이 외박한다면 나에게 말해요. 내가...”“윤 회장님.”강서연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녀의 한마디는 마치 차가운 돌덩이처럼 윤정재의 가슴팍을 짓눌렀다.“너무 간섭하시는 거 아닌가요?”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윤정재는 그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그래. 내가 무슨 자격으로, 또 무슨 신분으로 간섭해?’지금 강서연 앞에 서 있는 그는 그저 남양에서 온 의학협회 회장이자 연합 병원 프로젝트의 파트너일 뿐이다. 그리고 더 가까이하면 어머니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남자이다. 정말 단지 그저 눈에 거슬리지 않고 괜찮은 아저씨일 뿐이다.윤정재의 낯빛이 어두워졌고 마음이 아팠지만 강서연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윤찬은 강서연을 잡아당기며 눈치를 주었다.“누나, 왜 그래요? 왜 아저씨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해요?”“만약 회장님이 우리 아빠라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연히 얘기해서 복수라도 해달라고 투정을 부렸겠지만...”강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이 우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