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은 이런 얘기는 윤정재나 윤문희가 직접 강서연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강서연이 다른 사람에게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 달라진다.최재원은 마른기침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도우미가 복숭아꽃으로 데코한 생선찜을 그들의 앞에 한 접시씩 내려놓았다.“서연아.”최재원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얼른 먹어봐.”강서연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 최연준의 신분을 몰랐을 적에 그와 함께 온천 리조트로 신혼여행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따뜻한 봄이라 꽃이 활짝 피어있었고 온천 근처의 산에 복숭아꽃이 만개하여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그리고 온전 리조트의 간판 요리도 마침 이 생선찜이었다. 그때 강서연은 생선 눈알을 최연준에게 집어줬었다.오늘도 마찬가지로 가장 귀한 걸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다.그 모습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최재원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한 부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한참 후, 최재원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예전에 네 할머니도... 나에게 그랬었는데.”최연준과 강서연은 동시에 젓가락질을 멈췄다.최연준은 지금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할아버지의 이런 슬픈 표정을 처음 봤다.할머니는 최연준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기에 할머니에 대한 인상은 최재원의 서재에 있는 유채화와 테이블 위의 낡은 사진뿐이었다.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최재원은 차갑고 진지하며 인정이 없는 야속한 사람이었고 사업을 할 때는 또 백절불굴의 성격으로 유명했다.하여 최연준은 최재원에게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예민함과 나약함, 그리고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품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할아버지...”“하하, 괜찮아, 괜찮아.”최재원은 재빨리 마음을 다잡았다.“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식사해. 어휴,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꾸 옛날 생각을 한다니까...”“할아버지.”강서연이 가볍게 웃었다.“혹시 내일 연준 씨와 함께 할머니 뵈러 가도 될까요?”최연준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를 쳐다보는 최재원의 눈빛에도
최연준은 대충 알아차렸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다.“내가 있으니까 괜찮아.”그는 위로를 건넨 후 강서연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그날 저녁 에덴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강서연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강유빈의 처참한 비명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여보, 걱정하지 마.”최연준은 박경실이 미리 끓인 국을 한 그릇 떠서 그녀에게 건넸다.“사실 난 차라리 더 잘 된 거라고 생각해.”“네?”“강유빈의 지금 상태를 보면 약을 한 게 틀림없어.”최연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참에 실마리를 좇아 추적하면 최지한이 뒤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강서연은 순간 멈칫했다.‘하긴. 강유빈은 지금 완전히 최지한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어. 정말로 약을 한 거라면 그 약도 최지한이 준 거겠지.’예전에 최지한이 강서연을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강유빈이 초대장을 빼앗았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고 생각할수록 무서웠다.어찌 보면 강유빈이 그녀를 도와준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유빈 같은 사람은 결국 자업자득이니 동정할 필요가 없다.강서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국의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긴장한 마음을 녹여주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배를 좀 채운 다음 서재로 가서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최연준은 웃으며 서재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박경실에게 가끔 옷도 가져다주고 디저트도 가져다주라고 분부했다.“도련님, 어디 가시게요?”“네, 일이 좀 있어서요.”최연준이 나지막이 말했다.“너무 늦진 않을 거예요. 서연이가 장부를 다 정리하기 전에 돌아올 겁니다.”그러고는 겉옷을 챙겨 나갔다. 나가기 전 방한서에게 에덴의 경계를 더 강화하라고 분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배경원과 자주 모이는 술집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수다나 떨려고 모인 게 아니라 중요한 소식을 얻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그 소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최연준은 따
배경원이 진지하게 말했다.“결혼해도 우리 수정 씨는 나에게 저러지 않을 거야.”그러더니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냈는데 스위스 모 은행이라고 적혀있었다. 유찬혁은 수많은 세계적 부자들이 돈을 이 은행에 넣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성에는 이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이건 수정 씨가 준 거야.”배경원은 입이 귀에 걸렸다.“이 안에 우리 둘의 적금이 들어있어. 매달 이 카드 안에 돈을 저축하는데 나더러 보관하라고 했어. 나중에...”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경섭이 고함을 질렀다.“연준 씨, 경원 씨에게 돈이 있어요!”배경원은 화들짝 놀란 나머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손목을 푸는 육경섭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빼앗을 기세였다.최연준은 지금 자신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가장 질투했다. 설령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형제라도 말이다. 하여 육경섭을 더욱 부추겼다.“돈이 있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거예요? 조직 보스였던 그 위엄이 다 어딜 갔죠?”그러자 육경섭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요?”“갑시다!”“으악!”룸 전체에 순식간에 배경원의 처참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유찬혁은 그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 이마를 짚었다...나약한 배경원은 그렇게 두 맹수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찬혁아, 너 변호사잖아. 두 사람이 지금 대놓고 빼앗는데도 가만히 있을 거야?”“그게...”유찬혁은 그저 웃기만 했다.“누가 너더러 돈 자랑을 하랬어?”배경원은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런데 그때 유찬혁의 휴대 전화가 진동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룸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최연준은 배경원을 옆으로 밀어내고 유찬혁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유찬혁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도련님... 제대로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어떻게 됐어?”최연준
배경원은 눈살을 찌푸리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최지한이 그 정도로 널 믿는다고? 왜? 네가 연준 형 옆에 오래 있은 것도 분명 알 텐데...”“최지한은 자기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 있어요.”육경섭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나도 예전에 최지한을 만난 적이 있잖아요. 그 사람은 안하무인이라서 세상 사람들은 전부 바보고 자기만 똑똑한 줄 알아요. 지금 성설연을 이용하여 유찬혁을 협박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주 좋아 죽을걸요? 이런 사람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죠.”최연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걔가 작은삼촌의 절반만이라도 눈치가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텐데.”“연준 형.”유찬혁이 눈살을 찌푸렸다.“강명원이 그 레시피를 훔치러 온 거라면 미리 가짜 레시피로 바꿔놓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럴 필요 없어.”최연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넌 강명원과 계속 내통해. 그때가 되면 강명원을 상대할 사람이 나타날 거야.”...그날 강서연은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전날 밤에 늦게까지 장부를 본 바람에 허리도 아프고 삭신이 쑤셨다. 최연준이 억지로 끌고 가서 재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밤을 꼬박 새웠을 것이다.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최연준은 없었고 그가 남긴 쪽지가 있었다.「나 먼저 회사 나가. 어진 엔터테인먼트에는 내가 당신 대신 휴가 냈어. 오늘 하루 집에서 푹 쉬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강서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카디건을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박경실이 이미 아침을 차려놓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쪽지를 남기셨어요.”“네, 봤어요.”“아 참, 도련님이 나가시기 전에 오늘 본가에 들리겠다고 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갔다가 금방 온다고 했어요.”강서연은 순간 멈칫했다. 본가 얘기만 꺼내면 그곳에 갇혀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강유빈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강서연, 아빠가 오면 넌 전부 다 잃게 될 거야.”‘전부 다
그녀는 사진을 한장 한장 찍고 상자를 다시 잠근 후 오성대로 부리나케 달려갔다.강서연이 오성대에 도착했을 때 마침 수업 시간이었다. 교내에서 지나가는 학생 몇 명에게 물어 겨우 의학원을 찾았다. 학생은 윤찬이 수업이 없을 때면 보통 실험실에 있으니 실험실로 한번 가보라고 알려주었다.그녀는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곧장 실험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찬은 실험실에 있었다. 그녀가 윤찬을 부르려던 그때 누군가의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바로 윤정재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강서연은 화들짝 놀랐다.두 사람은 벽에 걸린 커다란 경맥도 앞에 서 있었고 윤정재가 한창 윤찬에게 설명하고 있었다.한 사람은 열심히 강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둘의 표정이 어찌나 비슷한지 멀리서 보면 그야말로 판박이였다.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숨도 쉴 수가 없었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런데 그때 윤찬이 그녀를 발견했다.“누나? 누나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강서연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 윤정재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누나.”윤찬은 폴짝폴짝 뛰며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정말 미안해요. 누나가 혼인 신고한 날에 엄청 중요한 실험이 있어서 교수님이 놓아주질 않았어요. 그래서...”“괜찮아. 나 다 이해해.”강서연은 그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당연히 학업이 더 중요하지.”“내가 보낸 선물은 받았어요?”“응.”윤찬은 연구 성과를 얻은 후 특허를 신청하여 꽤 많은 특허 비용을 벌었다. 적어도 의학원에서 돈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다.결혼 선물로 돈을 주긴 했지만 그의 마음을 가득 담아 봉투에 두둑하게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그 돈은 매형에게 주는 것이라고 특별히 강조하기도 했다.하지만 매형이 그 돈을 써보기도 전에 강서연에게 전부 상납했다는 사실을 윤찬은 모르고 있었다.강서연은 동
강서연은 멈칫하다가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에요.”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윤정재는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감히 물어볼 수 없어 그저 딸의 눈치만 자꾸 살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진짜 아무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윤정재는 입술을 적시고 가볍게 웃었다.“그럼 다행이고요... 점심도 거의 되는데 밥 먹으러 갈까요? 내가 사줄게요. 찬이와도 얘기 좀 더 나눴으면 좋겠고. 하하... 뭐 먹고 싶어요?”그는 강서연을 보며 물었다.“서연 씨가 메뉴 정해요.”“괜찮아요.”강서연은 고개를 들고 그를 보며 말했다.“전 연준 씨에게 가보려고요. 연준 씨가 아침부터 집에 없어서 지금까지 얼굴도 못 봐서요.”“뭐라고요?”윤정재의 낯빛이 급변했다.“설마 외박한 건 아니죠?”“아니에요.”강서연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침 일찍 나갔어요.”“그렇군요. 외박은 절대 안 돼요.”윤정재가 카리스마 있게 말했다.“서연 씨, 만약 앞으로 최연준이 외박한다면 나에게 말해요. 내가...”“윤 회장님.”강서연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녀의 한마디는 마치 차가운 돌덩이처럼 윤정재의 가슴팍을 짓눌렀다.“너무 간섭하시는 거 아닌가요?”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윤정재는 그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그래. 내가 무슨 자격으로, 또 무슨 신분으로 간섭해?’지금 강서연 앞에 서 있는 그는 그저 남양에서 온 의학협회 회장이자 연합 병원 프로젝트의 파트너일 뿐이다. 그리고 더 가까이하면 어머니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남자이다. 정말 단지 그저 눈에 거슬리지 않고 괜찮은 아저씨일 뿐이다.윤정재의 낯빛이 어두워졌고 마음이 아팠지만 강서연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윤찬은 강서연을 잡아당기며 눈치를 주었다.“누나, 왜 그래요? 왜 아저씨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해요?”“만약 회장님이 우리 아빠라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연히 얘기해서 복수라도 해달라고 투정을 부렸겠지만...”강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이 우리 아빠
최연준은 최재원이 직접 배양한 후계자라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판에 박은 듯 아주 비슷했다.몇몇 늙은 여우들은 이미 자신의 앞날을 예견한 듯 갑자기 충심을 표하며 가지고 있던 권력을 내려놓으면서 여생을 보낼 준비를 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방한서가 휴대 전화를 들고 최연준 옆으로 황급히 다가왔다.최연준의 낯빛이 급변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뛰쳐나갔다....방한서는 액셀을 힘껏 밟으면서 가끔 백미러로 최연준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최연준의 표정이 무뚝뚝했지만 그윽한 두 눈에 어두운 그늘이 스쳐 지나갔고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방금 걸려 온 전화는 윤문희의 전화였다.“서연이가... 방금 여기 와서 윤정재에 관해 물었어.”“혹시 다 알았나요?”윤문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최연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숨소리마저 무거워졌다.“최 서방, 나 예전에 있었던 일을 서연이에게 전부 얘기했어... 사실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더라고. 걔가 그 나무상자를 이미 열어봐서... 나도 더는 숨길 수가 없었어. 그런데 내 얘기를 다 듣고는 다짜고짜 뛰쳐나갔어. 최 서방이 우리 서연이 좀 찾아줘...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도련님?”방한서의 목소리에 최연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우리 애들이 지금 움직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윤 사모님 쪽에 사람을 계속 붙여놓고 있어서 애들이 사모님의 뒤를 따르며 안전하게 책임질 겁니다.”“지금 상황이 어때?”방한서는 고개를 숙여 휴대 전화를 확인하고는 최연준에게 건넸다. 화면에 강서연의 뒤를 쫓고 있는 경호원의 위치가 나타났다.“사모님이 너무 외진 곳에는 가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그래.”최연준은 강서연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힘들게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조용하게 있고 싶을 뿐이었다.최연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이에게 들키지 않게 좀 멀리서 따라가라고
최연준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다들 알고 있었네요.”강서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나만 혼자 모르고 있었던 거네요?”“여보...”최연준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두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절대 서로에게 숨기지 않고 함께 헤쳐 나가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는 똑같은 잘못을 두 번이나 저질렀다.“서연아, 내 말 좀 들어봐.”최연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얼마 전에야 이 사실을 알았어... 복잡하기도 하고. 하지만 절대 일부러 숨긴 건 아니라는 것만 믿어줘. 이런 일은 내가 함부로 말해선 안 돼. 들어도 친부모에게서 들어야지... 내 마음 이해해 줄 수 있어?”강서연은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그래. 이게 어떻게 연준 씨 잘못이겠어? 연준 씨도 힘들었을 텐데. 만약 나였어도 숨겼을 거야. 이십여 년 동안 부성애를 느껴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친아버지가 나타났는데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는 다들 당연히 비밀로 하겠지. 이런 일은 남이 아니라 당연히 당사자에게서 들어야 하지만...’강서연의 눈물 한 방울이 최연준의 손등에 뚝 떨어졌다. 그때 최연준이 그녀에게 신분을 속였을 때처럼 도리는 다 알지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여보...”최연준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차가운 바람이 눈물로 젖은 그녀의 두 볼을 스치자 마치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 그는 그녀의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주었다.“여보, 나랑 집에 가자, 응?”강서연이 아무 대답 없자 최연준은 겉옷 지퍼를 풀어 그녀를 감싸 안았다.“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옆에 있을게. 서연아, 그만 집에 가자.”강서연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옆에 최연준이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추운 겨울에도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이 생겼고 마음의 안식처가 생겼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최연준은 그녀의 신발을 벗겨준 후 슬리퍼까지 챙겨주고는 먼저 따뜻한 물로 샤워하라고 했다.강서연은 그의 말대로 따랐고 샤워하고 나오니 좋은 향기가 그의 코끝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