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어요. 쉬고 있으세요.”윤정재는 좋은 태도를 보이지 않고 곧장 일어서서 작별 인사를 했다.그러나 방에서 나오기도 전에 최재원에게 붙잡혔다.“윤 회장님, 잠시만요!”윤정재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또 무슨 일이 있어요?”최재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짓만 하며 그를 불렀다. 윤정재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또 아버지뻘 되는 노인과 따지는 것은 차마 하지 못했다.그는 굳은 얼굴로 최재원의 침대 옆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최재원은 그를 보며 입가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소를 지었다.“무슨 일이 있어요?”윤정재는 시계를 보니 곧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그는 서둘러서 어진 엔터테인먼트 빌딩 아래로 가서 소중한 딸을 봐야 한다.“윤 회장님.”최재원이 웃음을 거두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뭔가 알아내셨습니까?”윤정재는 안색이 굳어지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최재원은 이 표정을 보자마자 이해했다.“괜찮아요, 말해주세요.”최재원은 웃으며 말했다.“내가 칠팔십 년을 살았는데 무슨 큰 풍파를 못 봤겠어요? 이런 사소한 일로 저를 놀라게 할 수는 없어요.”윤정재는 생각에 잠겼고 영감님이 놀라지 않게 말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그가 다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습관인데, 사실을 말하되 너무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윤정재가 고민할 때 최재원이 직접 물었다.“제가 마시던 그 약 속에 이상한 것이 있어요?”윤정재는 몸을 곧추세우고 최재원의 눈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약 찌꺼기를 검사했는데 다 좋은 재료이긴 하지만 문제는 배합이 잘못되었어요. 그런 비율은 입맛을 돋우는데 특히 기름과 소금이 많은 음식을 좋아할 거예요. 영감님 연세에 기름지고 소금기 많은 음식을 드시는 것은 건강에 백해무익합니다.”최재원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그리고...”윤정재가 계속해서 말했다.“이 약에 중독성이 있는 성분이 섞여 있는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남양 쪽 식물의 일종이라고 봅니다.”“양귀비요?”“그렇지 않아요.”윤정재
최재원은 의아한 얼굴로 윤정재를 쳐다보았고 윤정재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최재원을 노려보았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윤정재가 먼저 고요함을 깨뜨렸다.“영감님, 영감님의 손주에게 이미 약혼녀가 있다고 들었는데요?”“약혼녀요?”최재원은 순간 멈칫했다.‘강서연은 여자친구 아니었어? 언제 약혼녀가 됐지? 그리고 프러포즈도 이틀 전에 했잖아. 아프니까 밖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어.’최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윤정재는 최재원의 생각이 바뀐 줄 모르고 여전히 강서연을 탐탁지 않아 한다고 생각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최재원이 손을 내저었다.“약혼녀는 무슨. 우리 연준이 혼사는 이틀 전에 정해졌어요. 그 여자애가 괜찮긴 하더라고요. 어휴, 이게 다 제 탓이에요.”최재원이 한숨을 내쉬었다.“경수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사람 볼 줄 모른대요. 허... 진짜 그런가 봐요. 좋은 손주며느리를 앞에 두고 놓칠 뻔했으니... 그 여자애가 우리 집에 시집오려 하겠는지도 모르겠어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단 예물을 거하게 줘야죠. 필요하다면 그 여자애의 집에 직접 가서 혼담을 꺼낼 생각이에요...”아픔은 늘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다준다. 자부심이 강하여 지려고 하지 않던 최재원은 아픈 동안에 많은 생각을 했다.사실 최연준이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하게 내버려두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임씨 가문과 사돈을 맺으려 했을까?최씨 가문은 이미 4대 가문의 톱이기에 굳이 다른 가문과 혼약을 맺는 것으로 손을 잡지 않아도 충분히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아끼는 손자를 이런 식으로 억압할 필요가 있을까?사실... 강서연도 훌륭했다. 몇 번 만나본 결과 그가 바라던 손주며느리의 이미지에 완전히 부합되었다.최재원이 덤덤하게 웃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 속에 보기 드문 부드러움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윤정재를 쳐다보았다. 윤정재가 그와 함께 이 기쁨을 누릴 줄 알았지만 윤정재의 표정을 본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윤정재의 표정이 말이 아
윤정재는 씩씩거리며 차에 올라탔다. 진용수는 백미러로 그를 힐끔거렸는데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회장님,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나셨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빌어먹을 자식...”윤정재가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최연준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대.”“뭐라고요?”진용수도 화들짝 놀랐다.“회장님께서 잘못 들으신 건 아닌가요?”“최재원 그 영감이 직접 얘기했어.”“이게 대체...”진용수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우리 서연 씨는 어떡해요?”“허.”윤정재가 싸늘하게 웃었다.“말끝마다 내 딸을 사랑한다고 하고선 할아버지가 압력을 가하니까 바로 겁먹었어. 이런 남자에게 평생 서연이를 맡길 수 없어. 차라리 잘 헤어졌어.”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윤정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헤어지더라도 강서연이 먼저 이별 통보를 해야지, 최연준에게 차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윤정재는 한참 생각하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우리 딸에게 힘 있는 배경이 없어서 그러는 거잖아. 괜찮아, 지금 당장 서연이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면 돼. 서연이 뒤에 우리 윤씨 가문이 있다는 걸 최씨 가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어.”그의 말에 진용수의 표정이 확 변했다.그동안 진용수와 윤정재는 사실을 밝힐 계획을 세웠다. 디테일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 쓰면서 시뮬레이션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짠 계획을 하나도 쓰질 못한 판이다.“회장님, 진정하세요.”진용수가 그를 달랬다.“이 일 천천히 하시겠다면서요? 이렇게 갑자기 서연 씨를 찾아간다면 서연 씨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어요.”“그럼 문희를 만나러 갈 거야.”화들짝 놀란 진용수는 급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윤정재의 안색이 굳어졌고 눈빛도 확고했다.“어찌 됐든 우리는 서연이의 아빠 엄마야... 지금 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부모인 우리가 나서서 화풀이라도 해야지 않겠어?”진용수는 할 말을 잃었다.윤정재가 강서연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는 것도 충분히 급작스러운데 그보다 더 급작스러운 게 있을 줄은
김자옥은 입술을 적시더니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커피잔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그녀의 어색한 연기를 감출 수 있었다.그때 샴고양이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와 야옹 하며 윤문희의 다리에 비벼댔다.윤문희는 깜짝 놀랐다가 웃으며 샴고양이를 안더니 자리에 올려놓고 살살 쓰다듬었다.김자옥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틀 전에 윤정재가 부리나케 달려와 윤문희와 만나야 한다면서 그녀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그때 갑작스러운 상황에 넋이 나간 김자옥은 윤정재가 침을 잘못 맞은 건지, 아니면 약을 잘못 먹은 건지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윤정재가 나에게 부탁을?’평생 오만방자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김자옥은 윤정재가 아직 윤문희를 잊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한참 동안 싸늘하게 쳐다보다가 말했다.“그래도 양심은 있네.”“그렇다면 날 돕겠다는 말이지?”“그래.”김자옥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모레 오후에 문희와 커피 한잔하기로 했어. 가게 위치 보내줄 테니까 당신도 시간 맞춰서 와.”“알았어.”윤정재가 고개를 끄덕였다.김자옥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에 관한 생각이 바뀌던 찰나 윤정재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한마디를 했다.“일단 두 모녀에게 사실을 밝히고 내 딸부터 지킨 다음에 그 자식에게 따져 물을 거야.”“당신...”김자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분이 언짢아지니 도와주려는 마음도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하여 윤정재의 부탁을 모른 척하려 했지만 마치 운명의 장난인 듯 바로 그날에 윤문희에게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윤문희가 혼자 집에서 전구를 갈다가 실수로 그만 넘어졌는데 의자에서 떨어지면서 발목을 삐끗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그 일로 인하여 김자옥은 누군가 옆에서 윤문희를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두 사람은 이젠 나이가 있어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젊은이들보다는 한참 뒤떨어졌다.윤문희가 다친 그 날 다행히 혼자 기어서
그 시각 같은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커피숍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쩌다가 완전체로 모인 자리라 그들도 커피숍을 전체 대관했다.배경원은 임수정과 함께 창가 자리에 앉아 서로 머리를 맞댔다. 임수정은 괴테의 시집을 아주 열중하여 읽고 있었고 배경원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헤벌쭉 웃었다.육경섭은 또 몰래 나가 담배를 피우려다가 임우정에게 딱 걸려 귀를 잡힌 채 끌려들어 왔다.최연희는 카드를 꺼내 신석훈과 함께 놀자고 했다. 그런데 신석훈이 씩 웃더니 수능 문제집을 꺼냈다... 그녀는 순간 넋을 잃었고 절망에 빠진 듯했다. 신석훈은 진지하고 의미심장하게 최연희를 타일렀다.“너 휴학한 지 오래됐잖아. 올해 수능은 이미 지났으니 내년에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 해. 자, 먼저 이 문제집부터 풀어봐.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줄게.”최연준과 강서연은 마주 향해 웃고는 최연희에게 화이팅 제스처를 보냈다.최연준은 강서연을 안고 창가 쪽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지경이었다.유찬혁과 곽보미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거리를 두고 앉았다.방한서는 시무룩한 얼굴로 문 앞을 지켰고 커피숍에 가득한 여러 쌍의 커플들을 보고 있자니 솔로의 외로움이 더욱 짙어졌다.겨울 햇볕이 창문으로 비춰 들어와 커피숍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었고 고요함이 흘렀다.오늘 그들은 최연준과 강서연의 결혼에 관해 의논하려고 한 자리에 모였다.“서연 씨, 혼인 신고한 다음에 결혼식을 올려요?”“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혼인 신고한 다음에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거죠. 오성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요.”“오빠, 두 사람이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에 아이가 생기는 거 아니야?”“넌 문제나 풀어.”“하하...”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의논하던 그때 배경원이 갑자기 한마디 툭 던졌다.“연준 형, 이 일은 경실 아주머니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그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전부 배경원에게 쏠렸다.“왜?”“경실 아주머니가 점 볼 줄 아시잖아요.”
곽보미는 피식 웃으며 다시 남자처럼 털털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여성스러운 체크 원피스를 입었다.“너와 나 사이에 무슨 못 할 말이 있다고 그래?”곽보미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이렇게 난감해하는 모습은 정말 드문데 말이야.”유찬혁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한참 후에 나지막이 말했다.“보미야, 넌 줄곧 날 친구로 생각한 거 맞지?”곽보미는 잠깐 멈칫하다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우린... 형제 같은 친구야?”“허허...”곽보미는 어색하게 웃다가 결국 인정했다.“그럼, 당연하지. 줄곧 형제 같은 친구였어.”“그럼 친구로서 너에게 부탁 하나 하자.”곽보미는 그를 쳐다보며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여 들었다.“말해 봐.”“지금 새 영화 준비 중이지?”“응.”“혹시...”유찬혁이 입술을 적시며 망설였다.“네 영화에서 작은 배역이라도 좋으니까 성설연에게 연기할 기회를 줄 수 있을까?”곽보미의 얼굴에 나타났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천천히 놓았다.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그녀는 유찬혁에게 거절이란 걸 한 적이 없었다.곽보미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지었다.“보미야.”유찬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힘들면 부탁 들어주지 않아도 돼. 내가 다른 방법 생각해 볼게.”“나...”“괜찮아.”유찬혁도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무리한 부탁이라는 거 알아. 사실 아까 얘기하기 전부터 그리 기대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이런 거액을 투자한 영화에서 어떤 배우를 쓰든 너 혼자 결정할 수 없고 투자자의 의견도 물어봐야 한다는 것도 알아.”곽보미는 뭐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널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유찬혁이 나지막이 말했다.“다른 방법 더 생각해 볼게. 그나저나 여기서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그러고는 그
최연준은 강서연의 손을 잡고 안심시킨 후 침착하게 길거리로 나섰다.구급차는 그들과 두 길목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최연준과 강서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보니 커피숍 주변에 이미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진지한 얼굴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들것 주변에서 당황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자옥이었다.“엄마?”최연준이 그녀를 불렀다. 고개를 든 김자옥은 인파 속에서 두 사람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강서연은 조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물었다.“아주머니, 혹시 우리 엄마가...”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문희가 커피숍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강서연은 재빨리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고 꼼꼼하게 살폈다. 다행히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걸 보니 예전의 병이 재발한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안색이 백지장처럼 새하얬다.“엄마, 왜 그래요?”강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날... 놀라게 하지 말아요.”“난 괜찮아.”윤문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멀지 않은 곳의 김자옥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김자옥은 그녀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 윤문희는 아직 강서연에게 자신의 출신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김자옥은 강서연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웃었다.“서연아, 우리 둘 다 아무 일 없어... 저 사람은 윤 회장님이야.”“네?”강서연의 두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그냥... 우연히 만났어.”김자옥은 머리를 굴려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나와 네 엄마가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윤 회장님을 우연히 만났어. 그런데 윤 회장님의 심장병이 발병한 거야.”윤문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야말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아저씨에게 심장병이 있었어요? 왜 저는 몰랐죠?”“나이가 들면 다 그래. 큰 문제 아니야.”김자옥은 재빨리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됐어, 그만들 돌아가. 서연아, 나와 네 엄마는 윤 회장님을 병원에 데려갈 테니까 이따가 먹을 것 좀 가져다줘.”...병원 안, 윤문희는 어두
“아, 아무것도 아니야.”윤문희가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어. 사람은 나이가 들면 진짜 건강 관리 잘해야 해.”“엄마...”강서연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말할까 말까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물어보기로 했다.“혹시 아저씨랑 이미 만났어요?”윤문희는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이런 우연이!”강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보며 웃었다.“제가 엄마에게 소개하려고 했던 분이 바로 이 아저씨예요. 아저씨도 샴고양이를 키워요. 지난번에 뚱냥이도 데리고 두 사람을 만나게 하려 했었어요.”김자옥이 마른기침을 했고 윤문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최연준은 강서연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눈치 빠른 강서연은 그들의 안색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어디가 이상한지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세심하고 꼼꼼한 김자옥은 강서연이 머리가 똑똑하여 집으로 돌아가 조금만 생각하면 뭔가 알아차리리라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윤문희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게 된다.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지금 화제를 돌려야 했다. 김자옥은 웃으며 강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서연아, 며칠 전에 네 엄마가 혼자 집에서 넘어졌잖아. 너와 찬이도 평소 집에 없어서 혼자 외로울까 봐...”“그러니까 아주머니도 엄마와 아저씨가 어울린다는 말씀이죠?”강서연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응?”김자옥이 두 눈을 깜빡였다.‘난 집에서도 누군가 문희를 챙길 수 있게 도우미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는데.’하지만 강서연의 순진하고 기대 가득한 웃음에 김자옥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병실에 누워있던 윤정재가 드디어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나름 준수했던 얼굴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었고 두 눈도 실눈이 되고 말았다. 너무 부은 탓에 말을 하려고 애를 써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고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강서연은 그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의 모습이 웃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