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연은 제자리에 굳은 채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강서연은 웃으며 우아하게 대기실을 걸어 나갔다.사실 그녀는 딱히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상대가 기어코 싸움을 걸어온다면 굳이 양보할 필요 없이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조금 전 자신을 최씨 가문의 안주인이라고 큰소리쳤으니, 안주인의 카리스마를 뽐내야 했다.그녀는 연회장으로 걸어가 최연준의 옆에 서더니 덤덤하고 여유롭게 그의 팔짱을 꼈다.“음, 드레스 잘 골랐네.”최연준이 가볍게 웃었다.“사람들이 다 당신을 쳐다보고 있어.”“당신이 골라준 건데 안 어울릴 리가 있겠어요?”그녀는 사랑스럽게 그에게 기댔다.그때 방한서가 몇몇 프랑스 바이어와 함께 걸어왔다. 최연준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고 강서연을 그들에게 소개하려던 그때 임나연이 갑자기 나타났다.“연준 씨!”그녀가 나타난 순간 많은 이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최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연준이 임나연과 무조건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최연준은 강주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외부에는 강서연에 관한 여러 추측만 떠돌았고 오늘에서야 강서연의 실물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임나연이 나타났다...사람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임나연은 최연준 앞으로 요염하게 걸어오고는 일부러 옆에 있는 강서연을 힐끔거렸다.“연준 씨, 프랑스 바이어 분들은 내가 초대한 거예요. 그리고 통역사도 데려왔어요.”“그래요.”최연준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임나연이 돌아서서 통역사에게 눈짓하자 통역사는 바로 알아듣고 불어로 프랑스인들에게 말했다.“계약 행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최 대표님이랑 임나연 씨께서...”“최 대표님이랑 임나연 씨요?”그중 한 프랑스인이 통역사의 말을 가로채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강서연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런 어색함이 바로 임나연이 원하던 것이었다.임나연은 아주 의기양양했다.
‘그럴 리가... 강서연이 어떻게 불어를 할 줄 알지!’임나연은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지난번 최지한 쪽에서 강유빈을 마주쳤을 때부터 그 여자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나중에 강유빈이 꼬시기 쉬운 호구였던 것을 알고는 어떻게든 그녀를 매수했다.강유빈이 작업실을 차리고 싶으면 차려줬다. 그녀의 입속에서 강서연을 상대할 수 있는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그런데 강유빈이 임나연에게 준 것이 생각지 못한 가짜 정보였다니!그날 그녀는 분명히 임나연에게 장담했다. “나연 씨, 걱정하지 마세요! 서연이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별로 다니지 않았어요. 학교에 가도 공부를 못해서 별로 배운 것이 없어요! 걔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돈을 주고 학적을 산 것이에요!”임나연은 너무 화가 나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강유빈이 강서연을 질투해서 지어낸 허튼소리일 수도 있는데, 그녀는 그 말을 어리석게도 믿었다!“아가씨.”갑자기 뒤에서 방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나연은 그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정말 도련님께서 불어를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유럽에서 자라왔고 매년 몇 번이나 파리에 갑니다. 불어를 말하는 것은 도련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방한서는 비꼬며 말했다.“하지만...”그러나 예전에 최연준은 상업 담판에 참여하든 연회에 참석하든 외빈이 있는 자리가 있으면 통역을 데리고 다녔다.‘못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속이고 다닌 거야!’임나연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방한서를 한번 노려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연회에서 떠났다.연회가 끝나고 나서야 강서연은 최연준의 손을 잡고 마당에서 산책했다.밤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조금 전에 임나연을 만났던 불쾌함을 전부 날려버릴 정도였다.두 사람은 한가롭게 거닐었다. 달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바닥에 깔았는데 마침 강서연의 머리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둘 다 모처럼의 고요한 순간을 즐기는 중이다.“무슨
“왜 저를 노려보는 거예요?”강서연은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서연이, 너...”그는 말하다가 말았다. 어떻게 계속 말해야 할지 몰랐다. ‘부드럽게 말할까, 세게 말할까, 태도는 강력하게 나가야 할까, 아니면 서연이랑 상의할까? 또 어떻게 완곡하게, 말을 가려서 해야 할까...’최연준은 입을 삐죽 내밀었고 가뜩이나 차가운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요.”강서연은 웃으며 작은 손을 뻗어 그와 깍지 손을 끼고 억울한 눈으로 바라봤다.“이건 당신 어머니의 뜻이에요. 무슨 수를 쓰든 나석진을 우리 회사로 계약하게 만들어야 해요. 조건이 아무리 까다로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왜 그래야 하는 건데?”최연준은 목소리를 높였다.강서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최연준은 기침을 두 번 하고 말했다.“내 말은... 연예계에 연기대상 받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꼭 그 사람이어야 해?”가능하다면, 최연준은 나석진을 연예계에서 퇴출해 내고 싶어 한다!“그렇죠, 연기대상 받은 사람이 많긴 하지만, 연기력이 있고 화제성이 있고 팬층이 두꺼운 건 그 사람뿐이잖아요!”최연준은 정말 어이없어했다.“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업계에서 그렇게 인정받지는 못했잖아요. 비록 최상 그룹이 있었지만 그래도 잘 경영하지는 못했어요. 지금의 어진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의 몇몇 연예기획사들 앞에서는 경쟁력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의 회사는 중량급 인물이 시급해요!”최연준은 침묵했다.강서연은 지금 그가 화를 내고 있지만 참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연준 씨.”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저는 그냥 일을 하러 가는 것이에요. 당신 그렇게 옹졸한 사람 아니잖아요...”말이 나오자마자 강서연은 약간 후회했다.‘옹졸하다고?’생각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최연준이 지금 그녀에게 내일 임나연과 만나서 밥을 먹고 일 얘기를 하겠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더 옹졸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질투심이 폭발해서 최
강유빈은 한번 멈칫하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했다.그동안 구현수는 계속 강씨 주택에 있었다. 더군다나 구현수는 게으르고 온몸이 악습으로 가득 베어져 있어 강명원은 이미 그 사람이 집에 남아있는 것을 싫어했다.다만 최지한이 시킨 일이어서 그를 쫓아내기는 쉽지 않았다.심지어 구현수가 평소에 행패를 부린 것도 다 눈감아 주었다.‘지금 임나연 뜻을 들어 보면 다시 구현수를 풀어주고 싶다는 건데... 그땐 구현수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강서연까지 곤란하게 해 줄 수 있겠어!’강유빈은 웃으며 더욱 정성스럽게 임나연의 다리를 토닥였다.“아가씨,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그 일도 다시 한번 고려해 보세요!”“어떤 거?”임나연은 탄산수를 들면서 무심코 그녀를 쳐다보았다.“그게... 구현수랑 서연이가 결혼했다는 것을 까발리는 거요!”임나연은 눈을 살짝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저번에 최지한을 만났을 때 두세 마디 꺼냈던 거 같은데 다 말하지는 않았다.주요하게는 구현수가 나서서 소란을 피우게 하는 것이다. 자기가 강서연의 남편이라고 밝히고 최연준은 그냥 그를 대신해서 결혼한 것이라고... 어차피 혼인신고서의 가짜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네티즌들은 재미로 보는 것이지, 실제로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잣집의 스캔들만 보기 좋아할 뿐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셋째 도련님께서 어떻게 유부녀와 엮였는지...일이 커지면 강서연의 명예는 벼락까지 떨어질 것이고 평생 숨어다녀야 한다.그리고 최연준도 영향을 받아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그때 되면 임나연이 나서서 최연준을 구원할 것이다.최연준은 임나연의 헌신에 감동하여 점점 강서연을 잊어 간다...임나연의 얼굴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번졌고, 강유빈을 시켜 와인 한 잔을 가져오라고 하고 원샸했다.“구현수는 지금 뭐 하고 있어?”“며칠 전부터 아프다고 들었어요.”강유빈은 공손하게 대답했다.“그저 보통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것뿐이에요. 아빠가 의사를 찾아 주었으니 금방 나을 거예요!”“응.”임나연은 고개를
“뭐라고?”임나연은 당황했다.“걔가 사람도 때린다고?”“맞아요! 이 계집애가 사람들 앞에서만 불쌍한 척하고 뒤에서는 완전 딴사람이에요! 그 여자 리더를 아주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CCTV가 없는 곳에서 매섭게 뺨을 몇 대 때렸대요! 그래서... 아가씨, 우리는 생일 파티에서 미리 준비할 수 있어요!”“어떻게 하는데?”“서연이를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서... 아가씨께서 참아줘야 해요. 혼자서 자기 뺨을 몇 대 때리고 제가 사람들을 거기로 유인해 갈게요. 다들 서연이가 때렸다고 믿을 거예요!”“이건...”임나연은 들을수록 이상하게 느껴졌다.‘왜 내 손으로 내 뺨을 때려야 하는 거지? 고육책?’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임나연은 자신이 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게다가, 강유빈의 계략에 대해서는, 그녀는 이미 백 퍼센트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계책은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만일 성공한다면?’“아가씨, 그때 가서 꼭 연약한 척을 해야 해요!”강유빈은 말만 번지르르했다.“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서연이가 악녀라는 것을 각인시켜 줘야 해요! 그러면 사람들도 아가씨 편이 될 거예요.”임나연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이 방법이 좋기는 한데... 강유빈.”임나연은 자세를 바로잡았다.“우리의 최종 목적은 강서연을 생일파티에서 망신시키는 거잖아. 강서연의 본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까발리는 거야, 맞지?”강유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 목적만 달성되면 중간 과정이 어떻든 상관이 없겠네.”“아가씨, 그 말씀은...”“자기 뺨 때리는 임무는 네가 맡아!”강유빈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사실 방금 임나연한테 이 방법을 알려 주었을 때도 약간의 복수심이 들어가 있었다. ‘감히 들어오자마자 내 뺨을 때려? 아직도 얼굴 반쪽이 얼얼한데!’임나연이 이렇게까지 똑똑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뺨 때리는 것을 거절하다니!’“아가씨!”강유빈은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다.
이날은 강서연이 쉬는 날이다.쉬는 날에도 그녀는 쉴 새 없이 바빴다. 보고서와 계획안들이 눈송이처럼 끊임없이 메일로 날아 들어왔고, 이른 아침부터 그녀의 핸드폰과 컴퓨터는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박경실은 강서연에게 세 번째 아침밥을 데워 주었다.“서연 씨, 아침 드세요!”박경실은 마음이 조급했다.“지금 벌써 9시예요. 더 끌다가는 점심시간이에요!”강서연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받아넘겼다.“네... 알고 있어요. 일단 여기 두세요. 계약서에 아직 수정해야 할 게 몇 개 남았어요...”“조금 전에 올라 올 때도 똑같이 말했어요!”박경실은 입을 삐죽삐죽하고 그녀 앞에 다가서서 죽을 들어 건네주었다.“이번에는 도련님께서 직접 요구하셨어요. 다 먹을 때까지 지켜야 한다고 말했어요!”“네?”강서연은 잠시 반응하다가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뗐다.“연준 씨는... 집에 없어요?”“없어요!”박경실이 웃으면서 말했다.“도련님께서 떠날 때 말했잖아요. 오늘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처리해야 한다고!”“이런, 깜빡했네요...”“잊은 게 아니라 너무 바빠서 못 들은 거예요!”강서연은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가끔가다가 너무 바빠지면 귀도 닫은 상태가 되는 게 사실이다.그녀는 박경실 손에서 죽을 받아왔다. 온도도 적당하고 단맛도 적당하며 대추와 곡물의 향까지 들어있다.그녀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박경실이 또 계란말이를 건네주었는데 그것도 몇 입 만에 깨끗이 해치웠다.박경실은 계속 옆에서 보고 웃고 있었다.“이렇게 잘 먹는데... 설마 좋은 소식이 있는 건 아니겠죠?”강서연은 이 말에 목이 메어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아주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생리가 막 끝났는데 무슨 좋은 소식이 있겠어요!”“그래요...”박경실은 조금 실망했다.그녀는 두 사람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아들 낳는 부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휴, 나의 도행이 아직 부족한 모양이구나. 이 아들 낳는 부적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아직도 소
강서연은 순간 당황했다.그녀는 인지석이 이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강서연은 쉽게 대답 못 했다. 지금 최연희한테는 이 남자가 세상 전부였다.그래서 최연희를 무안하게 할 수 없었다.“지석 씨.”강서연은 웃으며 말했다.“어떤 그림을 좋아하세요? 제가 선물로 드릴게요. 가져가서 천천히 감상하시면 남의 집 여기저기서 사진 안 찍으셔도 되겠죠?”인지석의 눈동자에 먹구름이 스쳤다.그는 약간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강서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조금 전 그녀가 한 말은 얼핏 들었을 때 우호적인 것 같은데 ‘남의 집’ 에 강조했다. 조금만 돌려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다.인지석은 고개를 들어 강서연과 눈이 마주쳤다.‘이 여자는 생각했던 것만큼 연약하지 않네. 까만 눈동자에는 결연함과 위엄이 깃들어 있고 최연준한테서 느낄 수 있는 기세까지 갖췄구나.’인지석은 잠시 생각하고 핸드폰을 거두었다.“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이 그림들은 모두 도련님께서 좋아하는 것일 텐데, 저 같은 하인이 어떻게 주인집 물건을 가져갈 자격이 있겠어요.”“지석 씨...”최연희는 그의 곁으로 걸어가서 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그녀가 지금 인지석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강서연은 알고 있다.강서연은 근심이 가득했다.사랑에 빠진 여자를 속이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지석 씨, 말이 심하시네요.”강서연이 말을 했다.“사실 연준 씨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게다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최씨 가문과 당신은 그저 고용 관계일 뿐이에요. 월급 받고 일을 하는 건데 하인 주인이라고 오해하면 안 돼요!”“그래도 우리 집안의 팔자가 좋아서 최씨 가문과 같은 고용주를 만날 수 있는 것이에요!”인지석은 웃으면서 최연희를 바라보고 부드럽게 그녀의 이마 앞에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해 줬다.소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부끄러움이 보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으면서 행복해 보였다.그러나 강서연의 마음에는 시종일관 응어리가
“국물 끓이는 솜씨도 일품이에요.”강서연은 허풍을 떨었다.“서연 씨가 좋게 봐줘서 그런 거예요!”박경실은 인지석과 가까운 자리에 국솥을 올려놓았다.그를 힐끗 쳐다보고 박경실이 말했다.“음식이 다 나왔어요! 아참, 요즘 젊은 사람들끼리 식사하기 전에 인증샷 찍는 것이 유행이라고 들었는데요? 다들 같이 찍을래요?”“맞아요!”최연희는 즉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주머니가 해준 밥이 이렇게 먹음직스러운데 당연히 찍어야죠!”“지석아, 아가씨가 직접 찍게 하지 말고 네가 찍어드려라!”인지석은 얼굴빛이 변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박경실은 그의 악랄한 눈빛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그러나 그 악랄함은 잠깐도 지속되지 않았다.박경실이 다시 정신을 차리자, 인지석은 또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소년으로 돌아왔다.“미안해요, 제 핸드폰이 자주 먹통 돼서요...”“그래요?” 강서연은 웃으며 말했다.“아까 사진 찍을 때는 괜찮은 것 같던데요.”인지석은 잠시 말이 없다가 천천히 핸드폰을 꺼냈다.그러나 바로 이때 그는 최연희를 한번 봤다. 최연희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둘러댔다.“됐어요. 먼저 밥 먹어요!”“왜요!”박경실은 앞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다들 드세요. 제가 찍어줄게요! 제가 나이는 좀 많지만 그래도 유행을 잘 타는 사람이에요!”그녀는 인지석의 핸드폰을 가지려고 했지만, 인지석이 안 놓아주는 느낌을 분명히 느꼈다.인지석이 힘을 꽉 써서 핸드폰을 쥐고 있어 손등에 핏줄까지 튀어나왔다.박경실은 속으로 냉소했다. 두 사람이 서로 안간힘을 쓸 때, 박경실은 갑자기 손을 놓았다!그는 그녀가 이런 수단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핸드폰은 순간 펄펄 끓는 국물에 떨어졌다. 국물은 튀어나와 식탁보를 더럽혔고 인지석의 마음도 같이 뒤흔들었다.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더니 집안은 조용해졌다.강서연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었고 박경실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는 인지석이 화가 났지만 애써 화를 억누르며 제법 자연스러운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
소피아는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낚시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소피아는 조용히 걸어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허운주 선생님이신가요?”허운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소피아는 직원에게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주문하고 허운주 앞에 놓인 진한 커피를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이 나이에 이렇게 진한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을 꼭 챙기셔야죠.”“고맙습니다...”허운주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절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허운주는 천천히 눈을 들어 소피아를 바라봤다.소문에 따르면, 소피아는 현재 배현진의 연인이며 이혼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배현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허운주는 소피아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고 소피아가 도움을 준다면 송윤지 같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제가...”허운주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렸다.“어떻게 말씀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소피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 선생님은 현진 씨의 선생님이시잖아요. 그 특별한 인연은 현진 씨도 평생 기억할 거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저는 국제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어요.”허운주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소피아는 놀란 듯했지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우수 교사 선발에서 허운주가 송윤지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소피아에게도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허운주로서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소피라는 눈을 굴리며 허운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하고 있었다.“허 선생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소피아는 부드럽게 허운주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털어놓으세요. 제가 도울 수 있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