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가 1년 전으로 바뀌어있었다.“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요?”강서연이 다정하게 말했다.“작년 이날에 우리가 결혼했어요.”그날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이었다. 강서연이 폭풍우를 뚫고 흙투성이인 흰색 드레스를 입은 채 마을의 작은 집으로 들어왔다.마을의 어르신들은 이런 날씨에 결혼하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최연준은 천천히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흐릿한 달빛이 이불 밖에 내민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환하게 비췄다.최연준이 손을 잡자 강서연이 손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 없어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냥 잡게 내버려 두었다. 그의 손바닥이 어찌나 따뜻하고 두꺼운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왔다.“1년 전으로 돌아갔으니 다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좋겠어. 난 최연준이라고 해. 집에 돈이 많긴 하지만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 난 그저 내 와이프가 주는 용돈을 받아 쓰면서 와이프 옆에 평생 있고 싶어.”“여보.”최연준이 사랑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난 나가서 일하고 싶지 않아. 오성에 오면 당신이 날 먹여 살리면 안 돼?”강서연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그래요, 내가 평생 먹여 살릴게요. 당신이 돈을 벌지 못해도 내가 벌게요.’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수도 없이 이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강서연을 배웅하러 나온 임우정은 아쉬움에 강서연의 손을 놓지 못했다.두 사람은 학교 때부터 함께한 사이라 친자매보다도 더 가까웠다. 강서연이 떠난다고 하니 임우정은 가슴이 먹먹했고 공항에 도착해서도 눈시울이 여전히 붉었다.“거기 가서도 몸 잘 챙겨!”임우정이 그녀의 손을 잡고 귓가에 속삭였다.“도움이 필요하면 연준 씨한테 얘기해. 어쨌거나 1년이나 함께 산 부부잖아. 그리고 연준 씨도 널 엄청나게
강서연은 오성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회사에서 면접 연락을 받았다.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녀는 새 회사에 출근하게 되었다. 퇴근 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챙겼고 주말에는 윤찬을 보러 학교에 가면서 필요한 생필품도 가져다주곤 했다.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다시 단순하고 조용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최연준은 묵묵히 그녀 옆을 지키기만 할 뿐 그녀의 생활은 방해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 집에 자주 가서 집안일을 도와주곤 했다.솔직히 말해서 도와줬다고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한 집안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강서연이 다시 한번 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녀가 기분이 좋으면 뭐라 하지 않았지만,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야근하거나 혹은 생리할 때면... 아무리 다정하던 그녀도 까칠해졌다.강서연이 그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때마다 윤문희가 나서서 말렸다.“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우리 최 서방한테 말을 좀 예쁘게 하면 안 돼?”“소리 지를 시간에 네가 직접 하면 되잖아. 왜 우리 최 서방한테 그리 무섭게 굴어?”혹은 또 이런 말로 그의 편을 들었다.“우리 최 서방이 아무리 널 좋아한다고 해도 함부로 해서는 안 돼! 계속 이렇게 최 서방한테 소리를 지르면 엄마 화낸다?”강서연은 이런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대체 엄마는 누구 친엄마야?’그리고 최연준이 장모님이라고 어찌나 친근하게 부르는지, 두 모녀보다도 더 가까워 보였다.강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그녀가 출근하는 회사는 한 신문사였다. 출근 첫날 상사가 그녀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젊은 사람은 자신을 많이 단련해야 해요. 힘든 일을 잘 참고 견디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정신이 있어야 해요.”다들 사실 상사의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지만 강서연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그 결과 동료들이 그녀를 만만하게 여기면서 일이 점점 쌓여만 갔다. 기사 원고를 써야 할 뿐만 아니라 편집, 그리고 사무실의 잡다한 일까지 전부 그녀의
순간 멈칫한 강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두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빵 부스러기를 비둘기에게 먹이고는 그녀 옆에 앉은 최연준은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강서연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어떻게 알았지?’“아직 당신한테 내 어릴 적 얘기 안 했네.”최연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이혼했어. 아빠랑 함께 살긴 했지만, 엄마 보러 영국에 자주 가. 우리 엄마 성격이 강해서 내가 나약해지는 걸 용납 못 하셔. 최씨 가문 쪽에서 할아버지는 날 후계자로 키우셨어.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일, 심지어 밥 먹고 물 마시고 걷는 걸음걸이까지 모두 엄격하게 가르쳤어... 그뿐만 아니라 가족 내부의 경쟁도 시도 때도 없이 마주쳐야 했어. 할아버지가 누굴 중히 여기면 그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경쟁 타겟이 되거든.”씁쓸하게 웃는 최연준을 보고 있자니 강서연은 마음이 아팠다.‘그때... 연준 씨는 고작 예닐곱 살 정도 되는 아이였을 텐데...’“겨울방학 대부분은 맨체스터에서 보냈어. 거기 아주 유명한 알버트 광장이 있는데 기분이 우울할 때면 거기 가서 비둘기 먹이를 주곤 했어.”강서연은 그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의 차가운 얼굴에 옅은 서글픔이 드리워졌다.다들 최연준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세상의 고통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은 저마다 같은 불행이 있었다.강서연은 묵묵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그림자가 바닥에 나란히 비쳤다. 벤치에 딱 붙어 앉은 건 아니지만 그림자는 그야말로 빈틈없이 붙어있었다.“서연아.”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업무상에 문제가 있으면 내가...”“괜찮아요.”그녀가 단칼에 거절하자 최연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강서연은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두 눈으로 그에게 다정하게 말했다.“연준 씨가 좋은 뜻으로 그러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오성에 온 것 자체가 나한테는
최연준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강서연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리깔자 기다란 속눈썹도 따라서 파르르 떨렸다.“나중에 알게 되었죠.”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신분과 이름은 그저 기호일 뿐이라는 걸 말이죠. 당신이 돈이 많든 돈이 없든, 최연준이든 구현수든 다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은 변한적 없이 그대로였고... 나도 마찬가지예요.”최연준은 그녀를 보며 손을 살며시 잡았다. 강서연은 씩하고 웃더니 그와 깍지를 끼었다.“서연아, 그럼 나 용서하는 거야?”“난 당신을 탓한 적이 없어요. 그냥 당신의 정체를 갑자기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에요.”그녀가 입술을 삐죽거렸다.“하지만 나 시간이 더 필요한데... 기다려줄 수 있어요?”“그럼! 당연하지!”그는 평생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기다릴 수 있었다. 최연준은 지금 이 상황이 혹시라도 꿈일까 봐 두려워 그녀를 꽉 껴안았다.“서연아, 이젠 날 떠나지 않을 거지?”그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강서연이 히죽 웃었다.“네. 안 떠나요.”“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평생 안 떠날 거지?”강서연이 화들짝 놀랐다.‘왜 또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거지? 지난번 성당에서도 이렇게 물었었는데!’“연준 씨, 그때 다 녹화했잖아요. 증거가 연준 씨 손에 있는데 또 물어요?”최연준은 휴대 전화를 꺼내고는 환하게 웃었다.그런데 그때 주변의 비둘기들이 뭔가에 놀랐는지 푸드덕 날아갔고 풀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쿵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누군가가 풀숲에서 튀어나오면서 발을 헛디딘 바람에 마침 두 사람의 앞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최연준은 본능적으로 화들짝 놀란 강서연의 앞에 서며 그녀를 지켜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두 사람 모두 경악했다.“배경원?”배경원이 무릎을 어루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머리에 나뭇잎이 묻은 채로 두 사람을 향해 어색하지만,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연준 형... 형수님, 비둘기 먹이를 주고 있었나 봐요?
“다시 알게 되었으니 제대로 소개할게.”최연준이 가볍게 웃었다.“유찬혁 변호사는 오성에서든 강주에서든 아주 유명한 변호사야. 자문 비용도 아주 초 단위로 계산해서 받는다니까. 그리고 배경원은...”그의 시선이 강서연에게 머물렀다.“그때 당신이 쟤에 관한 자료를 달달 외우고 교통사고까지 났으니 더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배경원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왜요!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는 다 잘못된 거예요! 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형수님,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아셔야 해요! 제가 보기에는 바람둥이 같지만 사실 누구보다 일편단심이에요. 그리고 얼굴이 잘생기다 보니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다고나 할까요. 연준 형도 포함... 아이고!”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찬혁이 그의 머리를 툭 쳤다. 고개를 든 배경원은 최연준의 싸늘한 눈빛과 딱 마주쳤다. 배경원은 억울하다는 생각밖에 없었다.‘어휴, 잘생긴 게 죄지.’...해원 별장에 온 임나연은 경호원이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쳐들어갔다.거실에 들어와 보니 옷들이 바닥에 잔뜩 널브러져 있었는데 빨간 옷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은 채 대리석 바닥을 또각또각 걸었다. 그런데 커다란 소파 위에서 최지한이 한 여자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순간 구역질이 난 임나연은 등을 돌리고 기침을 두어 번 했다. 인기척이 들리자 최지한이 고개를 들고 실눈을 뜬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도련님...”여자가 손을 내밀어 그를 잡았다. 최지한은 웃을 주워 그녀에게 던지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임나연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됐어요?”임나연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마침 옷을 다 입은 강유빈은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최지한이랑 뜨거운 시간을 보내자 했더니 이 년 때문에 다 망쳤잖아! 대체 누구이기에 최지한의 집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거지?’강유빈이 입술을 깨
결국 강유빈은 임나연의 상대가 아니었다. 강유빈의 얼굴에 임나연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나타났다.그때 최지한이 눈짓을 보내자 경호원들은 재빨리 나서서 두 사람을 말리고는 강유빈을 데리고 나갔다.강유빈은 발버둥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도련님, 왜 절 안 도와주세요! 도련님...”그녀의 목소리가 해원 별장에서 빠르게 사라졌다.임나연은 강유빈의 뒷모습을 보며 침을 퉤 하고 뱉었다. 그러고는 도우미의 손에서 깨끗한 수건을 건네받고 소파에 앉아있는 최지한을 흘겨보았다.“당신 눈멀었어요?”임나연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저년이 날 때리는 데 왜 가만히 있어요?”“나연 씨.”최지한이 잇몸을 드러내고 웃었다.“나연 씨 신분에 왜 저런 애랑 싸우고 그래요.”“최지한 씨!”“됐어요, 그만 화 풀어요.”최지한이 도우미에게 차를 내오라고 했다.“차 좀 마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요.”임나연은 그를 째려보았다. 오늘 그를 찾아온 건 그가 대체 어쩌려는 생각인지 정확히 들어보기 위해서였다.최지한은 줄곧 그녀에게 강서연을 없애고 최연준을 되찾게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났지만, 강서연을 없애기는커녕 오성에 왔는데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러니 임나연이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그녀는 최지한을 매섭게 째려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도련님, 우리 임씨 가문이 그동안 당신네 부자한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데 이러기예요? 돈만 챙기고 입 싹 닫겠다는 건 아니죠?”“나연 씨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해요?”최지한은 기지개를 켜고는 소파에 기댔다.“그런데 지난번에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해직한 후로 우리가 이사회에서 별 힘이 없어요.”“그럼 내 일을 도와줄 수 없다는 거예요?”최지한이 차갑게 웃었다.“지금 연준이가 강서연 옆에 딱 붙어있어서 강서연을 없애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 같아요.”임나연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최지한이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강서연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최연준이 한창 어머니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카드놀이 방법이 아주 신기하고 룰도 복잡했는데 사람의 논리성과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놀이였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그녀에게 가르쳤었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그녀가 터득하지 못한 바람에 나중에는 더는 그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저렇게 재미나게 놀 줄은 생각지 못했다.거실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좋은 최연준은 매번 티 나지 않게 그녀에게 져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윤문희는 최 서방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한 게임이 끝난 후 최연준이 카드를 섞으려다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강서연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왔어?”“오늘 일찍 퇴근했네?”윤문희가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최 서방이 온 오후 나랑 카드놀이를 했어. 피곤해 보이니까 얼른 가서 맛있는 것 좀 해줘.”강서연은 어이가 없었다.“엄마.”그녀는 피식 웃으며 일부러 떠보듯이 말했다.“저도 종일 출근하느라 힘들어요.”“최 서방보다 힘들었겠어?”윤문희가 목소리를 높였다.“이게 얼마나 머리를 써야 하는 건데. 네가 어렸을 적에 수백 번이나 가르쳤는데도 넌 터득하지 못했어. 그런데 최 서방한테 딱 한 번 가르치니까 바로 알더라!”최연준은 아무 말 없는 강서연을 뒤로 한 채 으쓱거렸다. 그러고는 강서연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쪼르르 안방으로 따라갔다.강서연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연준은 그녀 뒤로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평소에는 힘 있고 딱딱하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자마자 바로 부드러워졌다.강서연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딱 적당한 힘에 그녀도 시원한지 두 눈을 감고 마사지를 즐겼다.“좀 쉬고 있어. 밥하지 않아도 돼.”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호텔에 연락해서 저녁밥 가져오라고 할게.”“그럼 연준 씨는요?”“이따가 나가봐야 해.”화들짝 놀란 강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어딘가 이
최연준이 순간 멈칫했다.“뭐라고?”“날 도와줄 거예요?”‘당연하지!’최연준은 속으로는 미친 듯이 외쳤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척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왜 갑자기 도와달라는 거야?”“그거야...”강서연이 말을 얼버무렸다.“뭔가를 성공하려면 자신의 노력 말고도 옆에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해야죠. 안 그래요?”최연준은 살짝 의외라는 눈치였다.예전에 경영 대학원을 다닐 때 첫 수업에서 교수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성공하려면 시기상의 적절함과 지리상의 이로움, 그리고 사람들의 화합 이 세 가지를 다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강서연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히죽 웃었다.“내가 인터뷰해야 하는 상대는 나석진이에요. 지금 이 실력으로 나석진 씨의 매니저도 날 무시할걸요? 이건 내 힘으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임무예요. 다들 지금 내가 우스갯거리가 되길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내 옆에는 못 하는 게 없는 슈퍼맨이 있죠...”그녀는 최연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귀엽게 웃었다.“만약 슈퍼맨이 나한테 초능력을 빌려줘서 이 임무를 완성하게 도와준다면 아주 고마워할 거예요!”“어떻게 고마워할 건데?”“구두가 필요하다면서요?”그녀가 두 눈을 깜빡였다.“제일 좋은 구두 하나 사줄게요!”“그것뿐이야?”“그리고...”그녀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뜨리며 씩 웃었다.“평생 당신을 먹여 살릴게요.”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 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알았어.”그러더니 대뜸 휴대 전화를 꺼내려 했다. 강서연은 그를 말리며 피식 웃었다.“지금 당장 연락하라는 게 아니에요. 일단 내가 스스로 해본 다음에 그래도 안 되면 그때 연준 씨한테 도움을 청할게요.”최연준은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점쟁이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점쟁이 할머니는 강서연에게 조선 시대였더라면 중전마마가 됐을 팔자라고 했고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했다.사실 그녀의 총명한 지혜로 누구와 결혼하든 다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