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우람한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차가워 보였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임나연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 차가운 눈빛 속에 비웃음이 담겨있었다.“결혼? 나연 씨, 우리가 언제 혼약을 맺은 적이 있던가요?”최연준이 갑자기 그녀를 멀리하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임나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내가 알고 있는 혼약은 두 사람이 서로 원해야만 맺는 거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그 조건에 부합되지 않아요!”“최연준 너...”“앞으로는 연준 씨라고 불러요. 그리고 존댓말도 하고요.”최연준이 싸늘하게 말했다.“나연 씨, 우리가 아직 친구처럼 이름을 막 부를 정도로 친하진 않은 것 같은데!”최연준은 자기 할 말만 하고 홱 돌아섰다. 홀로 남겨진 임나연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뒷모습이 그녀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졌다.임나연이 이를 깨물면서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마음속에 마치 돌덩이가 앉은 듯 답답하기만 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힌 후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최재원의 표정도 말이 아니게 어두웠다.서재로 들어간 임나연은 깨져 난장판이 된 찻그릇과 바닥에 놓인 드래곤 지팡이를 본 순간 방금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임나연도 이런 상황에 끼어들 수 없어 인사치레로 몇 마디 위로를 건넨 뒤 떠나려는데 티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휴대 전화가 갑자기 진동했다.“할아버지, 이건...”최재원이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연준이가 까먹고 놓고 갔나 봐. 나연아, 네가 가져다줘.”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임나연은 바로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연준이 만나면 설득 좀 해줘.”최재원이 덤덤하게 말했다.“나연아, 난 네가 마음이 넓은 애라는 거 알아. 이 일 때문에 연준이를 탓하진 않을 거지?”임나연이 화들짝 놀랐다. 아까 문 앞에서 내연녀고 어쩌고 어렴풋이 듣긴 들었다.‘나중에 내가 연준이랑 결혼하게 되면 연준이가 밖
휴대 전화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강서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나도 사랑해요.”강서연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고 두 볼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린 그녀는 휴대 전화를 한참 동안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결혼한 지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강서연은 여유롭게 기지개를 켰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기뻤고 오늘 밤에 또 최연준의 꿈을 꿀 것만 같았다.전화를 끊은 최연준이 방한서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전화하려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강서연 씨야?”그는 움찔한 마음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아직도 여기 있었어요?”“연준아...”임나연이 멈칫하다가 말을 바꾸었다.“도련님, 강서연 씨랑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나요?”최연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우리 두 사람 일은 당신이랑 상관없어요!”“하지만 최씨 가문 전체와 연관되잖아요.”“당신은 최씨 가문 사람도 아닌데 그걸 신경 써서 뭐 해요?”임나연은 화가 나서 몸이 다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질투의 불꽃이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면서 그녀의 이성을 점점 삼켜버렸다.조금 전 최연준과 최재원이 서재에서 싸울 때 그녀도 대충 들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최연준의 다정함에 늘 차갑기만 하던 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최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혼약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었다. 하여 그녀도 자신이 장차 최씨 가문의 손주며느리가 될 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왜 갑자기 강서연이라는 여자가 나타난 걸까!임나연이 숨을 깊게 들이쉬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려고 애를 썼다.“도련님, 난 최씨 가문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강서연 씨가 아직 도련님의 정체를 모른다면서요? 하지만 나중에 언젠가는 밝혀질 텐데 강서연 씨가
“아가씨, 왜 그래요?”임씨 가문의 도우미가 황급히 달려왔다. 임나연의 표정이 말이 아니게 어두운 걸 보고 도우미도 어느 정도 눈치챘다. 도우미는 외투를 그녀에게 걸쳐주며 위로를 건넸다.“아가씨, 걱정하지 말아요. 최씨 가문 회장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는 한 연준 도련님은 절대 그 여자를 데려오지 못해요...”“그럼 난 뭔데!”“그 여자는 아무런 배경도 없을 것 같은데 사람을 시켜서 몰래 알아볼까요?”조금 전 최연준의 성난 모습이 떠오른 임나연은 저도 모르게 머뭇거렸다.“아가씨, 도련님께서 찾아가지 말라고 했지, 조사하지 말라고는 안 하셨잖아요.”임나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하긴, 그 여자의 약점을 알아내야만 방법을 찾아낼 수가 있지!’...강주.어머니를 집으로 모셔간 강서연은 주방에서 바삐 움직였다.윤찬은 빠른 손놀림으로 물건들을 척척 정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지낼 안방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런데 구석에 놓인 상자를 본 순간 그의 호기심이 또 발동하고 말았다.어릴 적부터 이 상자는 거의 금지구역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의 병이 가장 심각할 때도 상자를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안에 든 게 대체 뭘까?’윤찬이 한창 넋을 놓고 있던 그때 강서연이 들어와 웃으며 물었다.“다 정리했어?”“응, 다했어!”“밥도 다 됐어. 얼른 나와서 먹어!”윤찬이 대답하고는 윤문희를 부축하여 주방으로 걸어갔다. 윤문희는 낯선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엄마, 우리 이사한 거 몰랐죠?”윤찬이 신난 얼굴로 말했다.“전에 강유빈이 찾아와서 난리를 피우면서 우리를 내쫓겠다고 했을 때 형부가 우릴 도와줬어요.”“형부?”윤문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얼떨떨한 얼굴로 강서연을 쳐다보았다.“너... 결혼했어?”강서연은 씩 웃으며 밥그릇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네, 엄마. 형부 사람이 엄청 좋아요. 뭐든 다 누나 말대로 하고 저한테도 잘해줘요.”윤문희의 창백한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딸이 결혼했는데도 그녀는 혼수도
강서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그녀의 말대로 문을 닫았다. 의자에 앉아 창가 쪽 어딘가를 초점 잃은 두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이 침울하고 근심이 어려있었다.“엄마...”강서연이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서연아.”윤문희는 한참이 지나서야 구석 쪽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가서 저것 좀 가져와.”강서연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불안한 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래도 윤문희의 말대로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가 무겁지 않아 한 손으로도 쉽게 들 수 있었다. 상자 위에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아주 특별해 보였다.강서연도 어렸을 땐 이 상자가 무척 궁금했었다. 하지만 윤문희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 바람에 호기심을 참고 견뎠다. 오늘 이 정도로 상자와 가까이한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상자는 구리 자물쇠로 잠가져 있었다. 지금은 이런 자물쇠를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할 하도 오래된 자물쇠였다.“서연아.”윤문희의 표정이 서글퍼 보였다.“난 정말 좋은 엄마가 아니야. 너한테 줄곧 짐만 되고... 네가 결혼하는 것도 보지 못했어. 이 상자는 네가 가져가. 엄마가 주는 혼수야.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열어보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어?”강서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대체 이 상자 안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구리 자물쇠도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고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윤문희는 키에 관한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상자를 주면서 키도 주지 않았고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얘기하지 않았다...대체 무슨 뜻일까?강서연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윤문희는 피곤한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그만 나가봐.”그녀가 강서연을 등지고 말했다.“엄마는 좀 더 쉴게.”강서연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의사가 어머니의 병은 충격을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상자 안의 물건이 그녀를 자극할만한 물건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여 그녀는 지금, 이 순간 궁금증을 애써 누르며 안방을 나섰다.
그렇다면 안방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말인데...그는 살금살금 걸어가 안방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우정과 강서연이 안에서 자고 있었다.최연준은 실소를 터뜨렸다.‘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우정 씨를 불렀나 보네. 경섭 씨는 당연히 우정 씨가 걱정돼서 뻔뻔함을 무릅쓰고 따라왔을 테고.’그는 짐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강서연에게로 다가갔다.강서연은 임우정을 등진 채 자고 있었다. 침대가 커서 두 사람 사이에 꽤 큰 공간이 남았다. 강서연이 베개 하나를 안고 있었는데 최연준이 평소에 쓰던 베개였다.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그때 옆에 누워있던 임우정이 뒤척이면서 눈을 비볐다. 희미한 빛 사이로 강서연의 옆에 누군가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으악!”임우정은 집이 떠나갈세라 비명을 질렀고 순식간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녀는 강서연을 깨우고는 최연준을 향해 달려갔다.“도둑이야, 도둑! 경섭아, 얼른 와!”최연준이 반응하기도 전에 임우정은 베개를 그에게 던지고는 강서연을 뒤로 잡아당겼다.그때 육경섭이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침대 머리맡 쪽에 있는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최연준이 앓는 소리를 냈다. 육경섭의 킥은 마침 그의 허리춤을 가격했다.“육경섭 씨, 저예요!”“네?”육경섭이 두 번째 킥을 날리려는데 그의 한마디에 그대로 굳어버렸다.두 여자는 넋이 나간 얼굴로 눈앞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강서연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여보?”그녀는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려 등을 켰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허리가 욱신거린 최연준은 육경섭을 매섭게 째려보았다.“제 허리를 걷어찼죠?”최연준이 이를 앙다물었다.“다쳤으면 어쩔 뻔했어요!”육경섭이 배꼽 빠지라 웃었다.“하하, 현수 씨였군요!”긴장했던 임우정도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그건 우리 섭이 탓이 아니에요. 누가, 이 어두운 밤에 거기 서서 꿈쩍도 하지 말래요?”육경섭은 임우정의
하얗게 질려버린 강서연은 그의 티셔츠를 얼른 들어 올려 상처를 확인했고 예상대로 허리부위에 상처가 선명하게 보였다.“상처가 빨개졌어요!”그녀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임우정을 돌아보았다.“우정 언니, 이것 좀 봐요! 경섭 씨가 현수 씨를 발로 차서 이렇게 빨개졌어요!”방금까지 다정다감했던 임우정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육경섭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그러게,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육경섭은 억울한 표정이었다. “우정아, 네가 나한테...”“너한테 뭐?”임우정은 강서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우리 서연이가 기분이 안 좋다는데! 얼른 가서 현수 씨 줄 약이나 사 와!”육경섭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임우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방금까지 우리 섭이라더니, 지금은 우리 서연이? 그 말은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한동안 넋 놓고 서 있던 육경섭이 머리를 쳐들자 우쭐해하는 최연준과 눈이 마주쳤다.“그럼 수고스러운 대로 경섭 씨가 약 좀 사다 주겠어요?”...아침 6시, 육경섭이 약을 사 오면서 아침밥도 함께 챙겨왔다.그는 능숙하게 수저를 놓고는 베란다 문을 열어 최연준의 손에 약을 쥐여주며 쓴웃음을 지었다.“하, 살짝 찬 거로 엄살은! 일부러 그랬죠?”“과찬이에요, 그저 배운 대로 써먹어 봤어요.”최연준이 웃으며 말하자, 육경섭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연준은 이 정도 작은 상처에는 약이 필요하지 않아 연고를 한쪽에 놓아두었다.강서연과 임우정은 사 온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베란다에 기대있는 두 남자를 보고는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하, 진지한 얘기 좀 해보죠.”육경섭이 엄숙한 표정을 짓자, 멍해 있던 최연준이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그보다 먼저 담배 한 대만.”육경섭이 빨리 달라고 손짓했다.최연준은 피식 웃고는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얼마 남지 않아 아껴뒀던 담배 반 갑을 꺼냈다.그가 육경섭에게 한 대를 뽑아 주자, 두 여자가 보이지 않는 베란다 구석에 숨어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강명원은 지분반환 서류에 사인하지 않은 채 한쪽에 놓았다. 그러고는 아주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강서연은 그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긴 침묵이 흘렀다. 그제야 강명원이 머리를 들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이렇게 당장 연을 끊어야겠어?”강서연은 입술만 실쭉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머니는 퇴원했어? 이것들을 어머니가 알려준 거야?”강명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아니요,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연히 발견한 거였어요. 그래서 오늘 이걸 돌려드리려는 거고요...”손에 땀을 쥐고 있던 그녀는 강명원의 눈치를 살폈다.강명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이러는 이유가 뭐야?”“제가 강씨 집안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물건도 제 것이 아니에요.”“서연아, 오랜 세월 너한테 아버지로 살아온 나로서는 진작에 너를 친딸로 생각했어.”‘하, 정말?’강서연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그녀가 강유빈한테 괴롭힘당했을 때도, 양연한테 구박을 받았을 때도,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녀만 애처롭게도...‘아버지가 필요할 때마다 어디에 있었죠?’강서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내 것이 아닌 건 욕심 내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회사 지분이 수많은 이익과 연관이 있을 텐데, 강진에 폐 끼칠 생각은 없어요.”“이 지분은 내가 주는 거야.”강명원이 이어서 말했다.“서연아, 이 회사의 주인은 나야, 회사 지분을 누구한테 줄지는 내가 결정해!”“누구를 주든 상관없어요, 저는 안 받아요.”“서연아!”강명원의 목소리가 엄숙해졌다.강서연의 몸이 움찔함과 동시에 의구심도 더해갔다.‘억지로 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유일하게 말이 되는 해석은 그녀가 이 지분보다 더 큰 무언가를 강명원에게 가져다준다는 것이다!강서연은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강명원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뒤에서 쿵 하는 문소리가 강서연의 신경을 강타했다. 훅 고개를 들던 차, 강명원의 음산한 눈빛을 보았고 그에 더해 입가에 웃는 듯 아닌 듯한 미소를 훔친 모습을 보게 되었다.강서연은 사무실 밖으로 나왔고 로비를 나서기도 전에, 강유빈한테 뒤에서 목덜미를 잡혔다.“거기 서!”강서연이 뒤돌아서던 차에 강유빈의 손바닥이 그녀의 정면으로 날아왔다!강유빈에 대한 경계심을 놓지 않고 있던 강서연은 민첩하게 강유빈의 따귀를 피했고, 한번 허탕을 친 강유빈은 바로 반대쪽 손으로 다시 따귀를 후려치려고 시도했다. 강서연은 그녀의 손목을 힘껏 잡아 쥐었다!강유빈은 매서운 눈빛으로 강서연을 째려보았고, 강서연도 양보 없이 그녀를 밀쳐냈다. 그 바람에 주식 반환 서류가 바닥에 떨어지며 흩뿌려졌고 그중 강명원의 사인이 없는 빈자리가 너무 눈에 띄었다. 유난히 강유빈을 비꼬는 듯한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그 순간 강서연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같은 상황에서, 그녀와 윤찬이가 이복형제였다면, 어릴 때부터 윤찬이가 눈엣가시여서, 여태 놀리고 애먹이고 다 했는데, 결국 윤찬이가 남매도 아닌 남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거기다 엄마가 재산을 윤찬이한테 억지로 넘겨준다고 했으면... 그녀 역시도 아마 강유빈처럼 화가 치밀었을 것 같았다. 지금은 강진 사람이 아닌 그녀가 강유빈이 가질 재산을 빼앗은 꼴이니 정말 황당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강서연은 심호흡하고 강유빈한테 회사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말리려고 그녀에게 한발 다가섰다. 강유빈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프런트 데스크에 놓인 선인장 화분을 들더니 바로 강서연 쪽으로 내던졌다.“아!”강서연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머리부터 감싸 안았고, 바로 그때 큰 덩치의 그림자가 달려와서 그녀를 와락 품에 안고 옆으로 몸을 돌려 선인장을 피했다. 선인장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그 큰 로비에는 한순간 쥐 죽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