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그녀의 말대로 문을 닫았다. 의자에 앉아 창가 쪽 어딘가를 초점 잃은 두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이 침울하고 근심이 어려있었다.“엄마...”강서연이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서연아.”윤문희는 한참이 지나서야 구석 쪽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가서 저것 좀 가져와.”강서연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불안한 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래도 윤문희의 말대로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가 무겁지 않아 한 손으로도 쉽게 들 수 있었다. 상자 위에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아주 특별해 보였다.강서연도 어렸을 땐 이 상자가 무척 궁금했었다. 하지만 윤문희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 바람에 호기심을 참고 견뎠다. 오늘 이 정도로 상자와 가까이한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상자는 구리 자물쇠로 잠가져 있었다. 지금은 이런 자물쇠를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할 하도 오래된 자물쇠였다.“서연아.”윤문희의 표정이 서글퍼 보였다.“난 정말 좋은 엄마가 아니야. 너한테 줄곧 짐만 되고... 네가 결혼하는 것도 보지 못했어. 이 상자는 네가 가져가. 엄마가 주는 혼수야.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열어보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어?”강서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대체 이 상자 안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구리 자물쇠도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고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윤문희는 키에 관한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상자를 주면서 키도 주지 않았고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얘기하지 않았다...대체 무슨 뜻일까?강서연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윤문희는 피곤한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그만 나가봐.”그녀가 강서연을 등지고 말했다.“엄마는 좀 더 쉴게.”강서연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의사가 어머니의 병은 충격을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상자 안의 물건이 그녀를 자극할만한 물건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여 그녀는 지금, 이 순간 궁금증을 애써 누르며 안방을 나섰다.
그렇다면 안방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말인데...그는 살금살금 걸어가 안방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우정과 강서연이 안에서 자고 있었다.최연준은 실소를 터뜨렸다.‘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우정 씨를 불렀나 보네. 경섭 씨는 당연히 우정 씨가 걱정돼서 뻔뻔함을 무릅쓰고 따라왔을 테고.’그는 짐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강서연에게로 다가갔다.강서연은 임우정을 등진 채 자고 있었다. 침대가 커서 두 사람 사이에 꽤 큰 공간이 남았다. 강서연이 베개 하나를 안고 있었는데 최연준이 평소에 쓰던 베개였다.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그때 옆에 누워있던 임우정이 뒤척이면서 눈을 비볐다. 희미한 빛 사이로 강서연의 옆에 누군가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으악!”임우정은 집이 떠나갈세라 비명을 질렀고 순식간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녀는 강서연을 깨우고는 최연준을 향해 달려갔다.“도둑이야, 도둑! 경섭아, 얼른 와!”최연준이 반응하기도 전에 임우정은 베개를 그에게 던지고는 강서연을 뒤로 잡아당겼다.그때 육경섭이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침대 머리맡 쪽에 있는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최연준이 앓는 소리를 냈다. 육경섭의 킥은 마침 그의 허리춤을 가격했다.“육경섭 씨, 저예요!”“네?”육경섭이 두 번째 킥을 날리려는데 그의 한마디에 그대로 굳어버렸다.두 여자는 넋이 나간 얼굴로 눈앞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강서연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여보?”그녀는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려 등을 켰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허리가 욱신거린 최연준은 육경섭을 매섭게 째려보았다.“제 허리를 걷어찼죠?”최연준이 이를 앙다물었다.“다쳤으면 어쩔 뻔했어요!”육경섭이 배꼽 빠지라 웃었다.“하하, 현수 씨였군요!”긴장했던 임우정도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그건 우리 섭이 탓이 아니에요. 누가, 이 어두운 밤에 거기 서서 꿈쩍도 하지 말래요?”육경섭은 임우정의
하얗게 질려버린 강서연은 그의 티셔츠를 얼른 들어 올려 상처를 확인했고 예상대로 허리부위에 상처가 선명하게 보였다.“상처가 빨개졌어요!”그녀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임우정을 돌아보았다.“우정 언니, 이것 좀 봐요! 경섭 씨가 현수 씨를 발로 차서 이렇게 빨개졌어요!”방금까지 다정다감했던 임우정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육경섭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그러게,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육경섭은 억울한 표정이었다. “우정아, 네가 나한테...”“너한테 뭐?”임우정은 강서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우리 서연이가 기분이 안 좋다는데! 얼른 가서 현수 씨 줄 약이나 사 와!”육경섭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임우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방금까지 우리 섭이라더니, 지금은 우리 서연이? 그 말은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한동안 넋 놓고 서 있던 육경섭이 머리를 쳐들자 우쭐해하는 최연준과 눈이 마주쳤다.“그럼 수고스러운 대로 경섭 씨가 약 좀 사다 주겠어요?”...아침 6시, 육경섭이 약을 사 오면서 아침밥도 함께 챙겨왔다.그는 능숙하게 수저를 놓고는 베란다 문을 열어 최연준의 손에 약을 쥐여주며 쓴웃음을 지었다.“하, 살짝 찬 거로 엄살은! 일부러 그랬죠?”“과찬이에요, 그저 배운 대로 써먹어 봤어요.”최연준이 웃으며 말하자, 육경섭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연준은 이 정도 작은 상처에는 약이 필요하지 않아 연고를 한쪽에 놓아두었다.강서연과 임우정은 사 온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베란다에 기대있는 두 남자를 보고는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하, 진지한 얘기 좀 해보죠.”육경섭이 엄숙한 표정을 짓자, 멍해 있던 최연준이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그보다 먼저 담배 한 대만.”육경섭이 빨리 달라고 손짓했다.최연준은 피식 웃고는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얼마 남지 않아 아껴뒀던 담배 반 갑을 꺼냈다.그가 육경섭에게 한 대를 뽑아 주자, 두 여자가 보이지 않는 베란다 구석에 숨어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강명원은 지분반환 서류에 사인하지 않은 채 한쪽에 놓았다. 그러고는 아주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강서연은 그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긴 침묵이 흘렀다. 그제야 강명원이 머리를 들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이렇게 당장 연을 끊어야겠어?”강서연은 입술만 실쭉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머니는 퇴원했어? 이것들을 어머니가 알려준 거야?”강명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아니요,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연히 발견한 거였어요. 그래서 오늘 이걸 돌려드리려는 거고요...”손에 땀을 쥐고 있던 그녀는 강명원의 눈치를 살폈다.강명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이러는 이유가 뭐야?”“제가 강씨 집안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물건도 제 것이 아니에요.”“서연아, 오랜 세월 너한테 아버지로 살아온 나로서는 진작에 너를 친딸로 생각했어.”‘하, 정말?’강서연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그녀가 강유빈한테 괴롭힘당했을 때도, 양연한테 구박을 받았을 때도,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녀만 애처롭게도...‘아버지가 필요할 때마다 어디에 있었죠?’강서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내 것이 아닌 건 욕심 내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회사 지분이 수많은 이익과 연관이 있을 텐데, 강진에 폐 끼칠 생각은 없어요.”“이 지분은 내가 주는 거야.”강명원이 이어서 말했다.“서연아, 이 회사의 주인은 나야, 회사 지분을 누구한테 줄지는 내가 결정해!”“누구를 주든 상관없어요, 저는 안 받아요.”“서연아!”강명원의 목소리가 엄숙해졌다.강서연의 몸이 움찔함과 동시에 의구심도 더해갔다.‘억지로 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유일하게 말이 되는 해석은 그녀가 이 지분보다 더 큰 무언가를 강명원에게 가져다준다는 것이다!강서연은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강명원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뒤에서 쿵 하는 문소리가 강서연의 신경을 강타했다. 훅 고개를 들던 차, 강명원의 음산한 눈빛을 보았고 그에 더해 입가에 웃는 듯 아닌 듯한 미소를 훔친 모습을 보게 되었다.강서연은 사무실 밖으로 나왔고 로비를 나서기도 전에, 강유빈한테 뒤에서 목덜미를 잡혔다.“거기 서!”강서연이 뒤돌아서던 차에 강유빈의 손바닥이 그녀의 정면으로 날아왔다!강유빈에 대한 경계심을 놓지 않고 있던 강서연은 민첩하게 강유빈의 따귀를 피했고, 한번 허탕을 친 강유빈은 바로 반대쪽 손으로 다시 따귀를 후려치려고 시도했다. 강서연은 그녀의 손목을 힘껏 잡아 쥐었다!강유빈은 매서운 눈빛으로 강서연을 째려보았고, 강서연도 양보 없이 그녀를 밀쳐냈다. 그 바람에 주식 반환 서류가 바닥에 떨어지며 흩뿌려졌고 그중 강명원의 사인이 없는 빈자리가 너무 눈에 띄었다. 유난히 강유빈을 비꼬는 듯한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그 순간 강서연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같은 상황에서, 그녀와 윤찬이가 이복형제였다면, 어릴 때부터 윤찬이가 눈엣가시여서, 여태 놀리고 애먹이고 다 했는데, 결국 윤찬이가 남매도 아닌 남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거기다 엄마가 재산을 윤찬이한테 억지로 넘겨준다고 했으면... 그녀 역시도 아마 강유빈처럼 화가 치밀었을 것 같았다. 지금은 강진 사람이 아닌 그녀가 강유빈이 가질 재산을 빼앗은 꼴이니 정말 황당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강서연은 심호흡하고 강유빈한테 회사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말리려고 그녀에게 한발 다가섰다. 강유빈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프런트 데스크에 놓인 선인장 화분을 들더니 바로 강서연 쪽으로 내던졌다.“아!”강서연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머리부터 감싸 안았고, 바로 그때 큰 덩치의 그림자가 달려와서 그녀를 와락 품에 안고 옆으로 몸을 돌려 선인장을 피했다. 선인장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그 큰 로비에는 한순간 쥐 죽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 광경
“됐어요, 그만 장난쳐요.”강서연은 가볍게 거절하며 손으로 그를 껴안았다. 최연준은 웃으며 그녀의 목에 입맞춤하면서 몸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가라앉혔다.그는 그녀가 보수적인 여자여서 안방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잠자리하는 걸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보아하니 앞으로 많이 가르쳐야겠다...’“현수 씨, 무슨 생각 해요?”최연준은 잠깐 사색에 잠겼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혀끝으로 마른 입술을 적시며 그녀를 향해 가볍게 웃었다.“지금 마음이 좀 편해졌어?”“네!”최연준은 가볍게 말을 꺼냈다.“여보. 주식 문제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강서연은 입술을 깨물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했고 최연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깟 주식 얼마 되지 않아. 가져도 좋고 그게 싫으면 안 가져도 좋아. 너무 부담 갖지 마.”“그깟 주식?”강서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그 말, 당신 돈이 엄청 많은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그깟 주식’ 도 눈에 차지 않으니!”최연준은 웃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강서연은 그의 품에 기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나도 주식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주식을 돌려준다는 명의로 강 회장님 시험해 보려 했던 거예요.”“시험?”“아버지 태도가 이상하지 않아요?”그녀는 20년 동안 아버지라고 불러서 그런지 갑자기 호칭을 고치기가 힘들었다.“분명히 내가 자기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한테 기어코 주식을 주려고 하는 건, 왜일까요? 그리고 되돌아보면 우리 남매한테 애정을 주지는 않았지만, 공부하고 생활에 쓰는 비용은 그렇게 아끼지 않았어요.”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현수 씨. 남자 입장에서 보면, 자기랑 혈연도 없는 자식한테 그렇게 대해줄 것 같아요?”최연준은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바로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내가 그 아이 엄마를 너무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흠.”강서연은 코웃음을 쳤다.“그 사람이 우리 엄마한테 감정이 있다고요? 그건 절대 아닌 것
“그전의 적금과 재테크의 수익까지 더하면...”그녀의 눈가에서 흥분한 기색이 흘러나왔다.“현수 씨, 우리가 얼마 모았는지 맞혀봐요.”최연준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강서연은 작은 목소리로 금액을 말한 후 흘러나오는 웃음 때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현수 씨, 저 드디어 자동차를 선물해 줄 수 있게 됐어요.”“뭐?”최연준은 수저를 내려놓고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차를 사는 거예요!”강서연은 다시 말했다.“내가 전에 평소 타고 다닐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했잖아요, 다만 그때는 돈이 부족했었어요.”최연준은 마음이 따뜻해 났다.보아하니 그녀가 전에 회사에 있을 때 영업팀 매니저로 승진하면서 월급도 배로 받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대출을 내서 큰 집도 사고 그가 밖에 다니기 편하게 차도 사주겠다고 했었다.그녀는 그한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최연준은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지그시 바라보았다.“나에게 사줄 필요 없어, 그 돈은 어머님과 윤찬에게 써.”“두 사람 생활비는 따로 있어요.”강서연은 웃으며 말했다.“비록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수 씨도 챙겨야죠. 차를 사주겠다고 말했는데 약속은 꼭 지켜야죠.”“그럼...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를 평생 먹여 살릴 거야?”최연준의 목소리는 조금 흔들렸다.강서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었다.평생이라고 말했기에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라도 적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현수 씨, 그럼 이렇게 결정하기로 해요.”그녀는 고기를 집어 주며 말을 이었다.“주말에 우리 차 보러 가요. 아, 맞다. 우정 언니도 함께 가요. 언니가 자동차 세일 아르바이트를 해봐서 차에 대해 잘 알아요.”최연준은 그녀가 고집해 주말에 함께 차를 보러 가기로 했다.임우정이 육경섭과 함께 올 줄은 몰랐다.자동차 서비스 센터의 매니저가 육경섭을 보자 놀라서 경직되었다. 방금까지 기고만장한 모습에서 바로 알랑거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형님! 허...
아주 평범한 소형 승용차였다. 배기량이 작은 덕분에 휘발유도 절약할 수 있고 크기도 적당하여 가격은 2천만 원 정도다.최상 가문 집사들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평범한 차였지만 최연준은 매우 좋아했다.차를 본 순간 두 눈이 반짝이는 강서연의 모습에 그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현수 씨, 어떻게 생각해요?”강서연은 다정하게 그의 팔짱을 꼈고 최연준은 웃으며 답했다.“당신이 좋아하면 됐어.”“난 엄청 괜찮은데 이건 선물이니까 현수 씨가 마음에 들어야죠!”강서연은 남자들이 차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조건 마음에 드는 거로 선물하고 싶었다.“우정 언니랑 다른 것도 많이 봤는데 이 차가 여러모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현수 씨, 한번 시승해 볼래요?”“괜찮아.”최연준은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도 마음에 들어. 이걸로 하자.”그의 반응에 강서연은 빙그레 웃더니 곧이어 어떤 색의 차를 선택할지 고민했다.솔직히 검은색이 멋졌지만, 평소에도 과묵한 사람이 검은색의 차를 운전하는 건 어딘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흰색을 원했다.말을 이어가던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고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묵묵히 바라보던 최연준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미간을 찌푸렸고, 그윽한 눈빛은 한시도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이때 육경섭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수억에 달하는 차들이 차고에 가득할 텐데 고작 저런 2천만 원짜리가 눈에 들어와요?”최연준은 침묵을 지켰다.“신분 때문에 놀랄까 봐 이런 행동하는 거면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육경섭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서연 씨는 용감하고 시야가 넓은 여장부 같은 스타일의 사람이라 고작 이런 일로 놀라지는 않을 거예요.”그는 육경섭을 힐끗 쳐다봤다.“알아요.”놀라는 건 딱히 걱정되지 않았지만, 강서연처럼 독립심이 강한 사람은 서로의 차이가 큰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