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필요한 물품을 사 들고 바로 돌아왔다. 육경섭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임우정을 보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강서연은 임우정에게 몇 마디 당부를 전하고는 최연준을 데리고 병실을 나갔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그녀는 집으로 가는 내내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비록 임우정과 신석훈이 인연이 닿기를 바랐던 그녀지만 임우정이 어떤 선택을 하든 무조건 응원할 것이다!“현수 씨.”강서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경섭 씨와 자주 마주칠 것 같은데 지나간 일은 덮어두고 잘 지내기를 바라요!”“그래.”사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 최연준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발걸음을 멈췄다.지금의 그녀는 기분이 몹시 좋아 보여서 그가 어떤 얘기를 털어놓든 다 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까?최연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그녀의 맑은 눈을 바라보았다. “현수 씨, 왜 그래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어.”강서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마침 저도 할 얘기가 있던 참이었는데!”“응? 뭔데?”그의 눈빛이 흔들렸다.“제가 신 의사님한테 가서 검사했는데...”최연준은 깜짝 놀랐다.“왜? 어디 불편해?”강서연은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저... 이번 달 안 왔어요.”최연준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저 입술만 머뭇거릴 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뭐? 뭐라고?”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신 말은... 임신이라는 거야?!”“확실한 건 아니에요.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요!”강서연은 미소를 짓고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최연준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져 자신이 할 얘기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파도와 같은 기쁨이 몰려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현수 씨, 이제 내려줘요!”강서연도 너무나 기뻤으나 사람이 오가는 길거리라 민망했다. 최연준은 바보
강서연은 병원에 혼자 있는 임우정이 마음에 걸려 문병 갔더니 마침 육경섭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임우정을 보았다.매사에 덤벙대던 임우정인데, 국물 한 숟가락 떠먹여 주는데도 육경섭이 데일까 여러 번 불어서 식혀서 주었다.하지만 병실 침대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남자가 두 날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재활치료를 받았다고 누가 믿겠는가?강서연은 갑자기 그 사람이 떠올라 웃었다.모르는 사람한테는 어두운 안색으로 ‘오지 마!’ 하는 표정을 하던 사람이었다.하지만 만났다 하면 그녀한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왔어요?”이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서연이 뒤돌아보자, 신석훈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석훈이 병실 쪽을 보고 정색하다 금세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했다.“경섭 씨가 회복이 빠르네요. 조만간 완쾌하시겠어요.”“신 의사님, 고맙습니다.”강서연이 어색해하며 말했다.처음에는 임우정과 엮어주려 했건만...“고마워 할 필요 없어요. 아픈 사람 치료해 주는 게 의사의 천직인데요.”신석훈은 웃으며 답했다.“석훈 씨는 참 좋은 의사예요.”그녀가 보기에도 이 말은 빈말 같았다.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손수 라이벌을 치료한 것도 모자라 좋아하는 사람한테 보냈었다. 그는 골치 아플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 항상 남을 치료만 했지, 정작 자신의 상처는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사실... 나도 우정 씨가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는 걸 원해요.”그가 웃으며 병실을 쳐다보았지만, 눈에는 미련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우정 씨가 경섭 씨 곁에 있을 때만 더없이 환하게 웃는 것 같아요.”신석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석훈 씨...”강서연의 마음은 복잡미묘했다.“석훈 씨가 좋은 사람인데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허, 나한테는 원래 좋은 일만 있었어요!”신석훈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저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제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어요. 집이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이 컸고 덕분에 의
강서연은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혼인 증명서로 뭐하게요?”최연준은 순간 입술이 마르고 목이 메어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강서연이 집에 없는 틈을 타 혼인 증명서를 찾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위의 이름은 구현수였다... 강서연이 강유빈 대신 시집을 갈 때, 강씨 집안에서는 인맥을 이용해서 구현수의 민증을 사용했었다.애초에 강서연한테 이렇게 빠질 줄 알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직접 혼인신고 하러 갔을 최연준이었다. 이름 고치려면 좀 힘들겠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유찬혁이 그에게 알려줬었다.하지만 최연준이 혼인 증명서를 챙겨 가려 할 때 마침 강서연한테 들켜 버렸다.“현수 씨, 왜 그래요?”그가 넋을 놓고 있자 내심 걱정되었다.“현수 씨... 혼인 증명서 찾자고 집을 이렇게 어지럽혔다고요? 뭐하게요?”최연준은 억지로 입을 삐죽거리며 한참 동안 뜸 들이다 입을 열었다.“그냥... 찾아보느라.”“뭐 볼 거 있다고요?”눈이 휘둥그레진 강서연은 어떠한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그러고는 그의 손에서 혼인 증명서를 가져와 서랍에 넣었다.최연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 멍하니 그녀 앞에 서 있는 최연준이다.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 앞에서 그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아낄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강서연은 어이없는 듯 웃어 보이며 작은 두 손으로 그의 볼을 감싸고는 맑은 눈으로 그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현수 씨, 오늘 좀 이상한데. 요즘 힘든 일 있었어요?”
“혹시 모르잖아요! 진짜 아기가 생긴다면 아이를 위해서도 생각해 봐야죠. 그렇지만 이 보험은 내가 현수 씨한테 들어주고 싶은 거예요.”그녀는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그를 향해 따뜻하게 웃어 보였고 그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움이 섞인 확고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세상은 온통 눈앞의 남자였다. “현수 씨... 나, 임신은 처음이라 긴장이 되긴 해서 며칠 맘카페 같은 데서 정보를 많이 찾아봤어요. 진짜 게시글처럼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최연준은 안색이 어두워서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서연아,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그럴 일 없을 거야!”강서연은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그게 아니라, 내 말은 만약에, 만약에 급한 상황이 생기면 이 돈을 꺼내라는 거죠.”“만약은 없어! 그럴 일도 없을 거고!”최연준은 중저음으로 그녀를 혼내듯 말했고, 그의 화난 표정에 강서연도 꽤 놀란 눈치였다. 그녀는 멍하니 그를 보았고 심장이 쿵쾅 뛰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깔끔하게 보험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순간 공기는 싸해졌다. 최연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서운 분위기에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현수 씨...”최연준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본인이 놀라게 했다는 생각에 그녀를 품에 와락 안고는 미안해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한테 화를 낸 게 아니야. 단지 그럴 일 없을 것이라는 걸 말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당신한테 일이 생겨도 난... 아이보단 당신이 먼저야.”최연준은 강단 있는 눈빛을 하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토해냈다. 강서연은 마음 한편이 뭉클했고 코끝이 시큰거렸다.“현수 씨 바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아요! 우리 둘의 결실인데, 어찌 그래요.”“아니!”최연준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고 강서연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녀는 얇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큰 눈망울은 별빛처럼 빛이 뿜어졌다. 그의 표정과 모습은 꽤 엄숙하고 진지해서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겁을 먹었을 건데, 강서연은 그가 긴장
“서연 씨, 워낙 몸이 약하고 해서 보기 드문 케이스긴 한데, 상상임신이에요. 하지만큰 문제는 없어요. 몸조리 잘하고 준비하면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어요.”“그리고 내가 확인한 또 다른 사실이...”신석훈은 또 다른 검사 결과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 위에는 강명원이란 이름이 적혀있었다.“이 일은 내가 서연 씨한테 사과부터 할게요. 강명원 회장도 여기서 건강검진을 받았었어요. 저의 병원 인턴들이 실습 과정에서 일부 혈액 샘플을 갖고 본인들 실험 과제로 빼돌려서 감정을 했더라고요. 그중에 서연 씨 그리고 강 회장님 혈액 샘플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사실 이건 병원 규정을 위반한 행동이라 관련 인턴들도 병원 처벌을 받았고요.”“그런데 오늘 내가 그 감정 보고를 보게 되었고, 혈액결과상... 두 분이 혈연관계가 전혀 아님을 확인했어요!”충격적인 소식에 강서연은 머리가 텅 빈 것 같았고 귀가 멍해졌다....최연준은 병원에서 오가는 사람 중에 그녀의 모습을 애타게 찾으며 병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러다 눈을 돌려보니 신석훈이 사무실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서연이는요?”“간호사한테 부탁해서 휴게실로 보냈어요.”“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최연준은 마음이 조급했고 급히 달려왔던 터라 코끝까지 땀이 찼다. 신석훈은 전후 앞뒤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고 최연준도 듣고 너무 놀라 한참 정신을 못 차렸다..“잘못된 것 아니고요?”“저도 처음엔 샘플도 많고 해서 인턴들이 진행할 때 잘못해서 샘플이 섞이거나 했을 수 있어서 일부러 제가 다시 감정을 했어요. 직접 했고요. 같은 결과예요.”신석훈은 침착하게 답을 했다.최연준의 미간이 심히 찌푸려졌다.“혈액 샘플의 라벨이 잘못...”“혈액 샘플은 피를 뽑고 바로 라벨이 붙여지고, 또 전담자가 책임지고 보관해요.”그렇다는 의미는 혈액 샘플이 잘못될 경우는 없다는 것이고, 또 감정을 신석훈이 직접했으니, 결과 역시 오류일 수 없었다.“그래서... 서연이가 강명원의 친딸 아닌 거예요?”신석훈은 고
‘이런 사실을 강 회장이 정말로 모를까? 예전에 양연 아줌마가 주워온 자식이라고 욕하고 모질게 굴었던 게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말 안 가리고 한 게 아니라, 근거가 있고 뭐를 알고 얘기했다는 건가? 그러면 윤찬이랑 나의 아버지는 누구라는 건가?’강서연은 수많은 생각에 머릿속이 어지럽고 가슴은 뭐가 막힌 것 마냥 답답하고 숨쉬기조차 가빴다. 최연준은 그녀 앞에 꿇어앉아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그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이제 집에 가자.”“난...”“다 이해해. 당신 지금 기분이 이상한 것도 심경이 복잡한 것도 알지만, 이런 일은 시간이 필요해. 우리 같이 천천히 알아보자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응?”강서연은 최연준의 눈을 바라보았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줬고 그녀는 뭔가 든든했다. 집에 돌아온 강서연의 시야에 든 건 식탁 위에 널려 있는 육아 잡지와 맘 카페 글이 켜져 있는 컴퓨터였다.모두 최연준이 최근 밤새 익히던 육아 정보였다.그는 보기만 한 게 아니라 임산부 주의 사항까지 꼼꼼하게 메모했다. 거기에는 초보 아빠가 뭘 해야 하는지, 산후 우울증을 어떻게 해소하고 도울 건지 등등도 같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작은 침실에는 아이 용품과 임산부 용품이 쌓여 있었다.강서연은 코끝이 시큰거렸고 눈가가 저절로 촉촉해져서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최연준은 그녀를 가볍게 껴안고 묵묵히 감정에 휩싸인 그녀를 토닥였다.한참 있다가 강서연이 겨우 한마디를 뱉어냈다.“현수 씨, 이럴 줄 알았으면 너무 일찍 기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확하게 확인하고나서 현수 씨한테 알려줘야 했는데. 미안해요, 헛물켜게해서...”최연준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 괜찮아, 이 물건들은 놔두면 나중에 다 쓸 거야.”“신 의사님이 내가 워낙 몸이 약해서 임신 할 수는 있지만 확율이 보통보다 낮다고 그랬어요.”최연준은 진지하게
강서연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최연희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언니, 오랜만이에요. 저 안 보고 싶었어요?”강서연이 웃으며 그녀의 코끝을 톡 쳤다.“당연히 보고 싶었죠. 옆에서 재잘거리는 연희 양의 없으니까 얼마나 지루한지 몰라요.”최연희가 눈웃음을 지었다.강서연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녀 뒤에 서 있는 중년 여인에게로 향했다. 관리를 잘한 듯해 보였으나 웨이브 단발머리에 명품으로 도배된 옷차림과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을 들고 있어 그런지... 왠지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했다.“콜록콜록!”중년 여인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자 최연희는 재빨리 그녀를 강서연에게 소개했다.“언니, 이분은 저희 엄마예요. 절 보러 특별히 강주로 오셨어요!”강서연이 화들짝 놀랐다.‘이분이 바로 최씨 가문 사모님이시구나. 최씨 가문이 재벌이긴 하지만 명품으로 도배할 만큼 허세를 부리길 좋아하는 가문 같지는 않던데...’강서연은 혹시라도 예의 없어 보일까 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엄마.”최연희가 혀를 날름 내밀었다.“여긴 강서연 언니예요. 강주에서 저랑 가장 친한 친구예요!”은미연이 선글라스를 벗고 그녀를 아래위로 자세히 살폈다.‘얘가 바로 강서연이구나. 연준이 혼을 쏙 빼놓고 강주에서 신분을 숨긴 채 좋은 남편으로 살게 만든 그 강서연.’은미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피부가 하얗고 여리여리한 게 나름 순진해 보여. 이목구비도 이 정도면 꽤 괜찮고. 그런데 예전에 연준이 옆에 있던 여자들이랑은 완전히 다르네. 연준이가 이런 애한테 빠질 줄은 몰랐어!’“엄마!”최연희가 팔로 그녀를 툭툭 치며 눈치를 줬다.“사람을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말아요.”“아... 알았어!”은미연도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정말 예쁘네요, 서연 씨. 이 가게도 너무 아기자기하게 잘 꾸몄어요. 딱 봐도 서연 씨는 참 능력 있는 여자 같아요!”강서연은 민망한 듯 웃어 보이고는 은미연에게 자리를 안내했다.그들은 마
“그래, 알았어.”최연준이 무덤덤하게 대답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최연희는 은미연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강서연에게 말했다.“언니,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강서연이 멈칫한 사이 은미연은 그녀를 잡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커피도 만들 수 없게 되었으니 그녀도 차라리 마당에 앉아 은미연과 함께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다.최연희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쩍 벌어진 어깨로 카운터 뒤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최연준을 발견했다. 그녀가 살며시 다가가자 최연준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가슴이 움찔한 최연희는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말했다.“오빠...”“은 대표님을 모셔온 목적이 뭐야?”최연준의 낯빛이 말이 아니게 어두웠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최연희가 손사래 쳤다.“목적이라니, 아무 이유 없어. 오빠는 오히려 우리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해. 엄마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오늘 여기 온 사람은 임나연이었을 거야.”“뭐?”눈썹을 치켜올린 최연준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나연 씨도 다 알아?”“오빠가 여기 있는 건 모를 거야. 그런데 내가 계속 강주에 있으니까 자꾸 오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오라고 했어.”최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찌푸려졌던 미간도 그제야 살짝 풀렸다.“걱정하지 마, 오빠. 엄마가 평소에는 입이 가볍지만 어떤 얘기는 하면 안 된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최연희가 가슴팍을 툭툭 치며 장담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최연준도 딱히 걱정되진 않았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은미연은 그에게 잘해줬으니까. 하지만 강주에 온 사람이 너무 많아 그게 늘 불안했다.“할 게 없으면 빨리 돌아가.”그의 표정이 그나마 누그러졌다.“작은삼촌은 내가 계속 맨체스터에 있는 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이 자꾸 강주로 오면 의심할 거란 말이야.”“작은삼촌은 아직도 오빠가 맨체스터에 있는 줄 알아.”최연희가 피식 웃었다.“우리 엄마가 컴퓨터 고수인 거 잊었어? 작은삼촌이 갖고 있는 동영상들 있잖아,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