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탄탄한 팔뚝으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의 그윽한 두 눈과 마주친 순간 다 먹고 해야 할 일을 하자던 그의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강서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푹 파묻혔다.“여보.”그녀가 우물쭈물 말했다.“우리... 우리 이따가 해요.”최연준은 어리둥절했다.“뭘 이따가 해?”“아까 해야 할 일... 그냥 이따가 해요. 지금은 너무 배불러요!”최연준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나랑 어디 다녀오자.”강서연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여보!”최연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평소 그가 이상야릇한 뉘앙스를 어찌나 많이 풍겼으면, 그녀가 조건 반사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얘기에 바로 야한 생각부터 들었을까?‘이게 다 나의 언행과 노력에 세뇌된 것 아니겠어!'최연준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지어졌다. 강서연은 주먹을 꽉 쥐고 그의 가슴팍을 냅다 두드렸다.“구현수!”“됐어, 그만해.”최연준은 그녀의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내가 말한 그 할 일은 너랑 같이 어디 가자는 거였어.”“어디 가는데요?”그가 가볍게 웃었다.“배부르게 먹었다며? 소화하러 가야지!”...강서연은 옷을 갈아입고 그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탔다가 또 한참 걸어서 남쪽 구역 바닷가 옆의 상가 거리에 도착했다.시 중심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나름 이곳만의 분위기가 넘쳤고 옆에 이국적인 상가 거리가 더해져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수많은 젊은이가 모임을 즐기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강서연은 현지인이었지만 이런 곳에 별로 다니지 않았다.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오동나무로 그늘진 자갈길을 걷다가 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강서연은 뭔가가 가슴에 쿵 하고 부딪친 것처럼 울컥하여 저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떴다.“여보, 여긴...”이
최연준은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강서연은 그런 그의 그윽한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을 캐치했다. 그녀는 가슴이 쿵쾅거리다 못해 손바닥에도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최연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나 이 가게 엄청나게 오래 찾았어. 집주인하고도 여러 번 얘기한 끝에 겨우 세를 맡고 인테리어 한 거야.”강서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당신이 커피숍 차리고 싶다고 했었잖아.”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두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그 말 계속 기억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여러 가게를 찾아서 비교해 보다가 결국 이 가게로 정한 거야. 이곳이 그래도 당신 요구랑 가장 가까운 것 같더라고.”그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여보, 남편이 다른 재간은 없어도 갖고 싶다는 건 무슨 대가를 치르든 최선을 다해서 갖게 해줄 거야.”가슴이 울컥한 강서연은 그의 손을 힘껏 잡았다.“여기 엄청 비싸죠?”“응, 조금 나가.”싸다고 해 봤자 믿지 않을 게 뻔하기에 차라리 진지하게 얘기하는 게 나았다.“저번 두 경기에서 받은 상금이랑 한동안 일한 월급, 그리고 보너스까지 합하니까 딱 되더라고.”강서연은 마음 한구석으로는 살짝 아깝기도 했다.경기 한번 하면 꽤 많은 돈을 받는 건 알지만 그건 몸으로 직접 싸우면서 힘들게 번 돈이다. 그가 피와 땀으로 번 돈을 마구 써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그의 월급을 달라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쓰는 돈은 아끼지 않길 바랐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고민 없이 사길 바랐지, 아껴 쓰는 걸 원하지 않았다.그런데 그가 돈을 쓴 건 맞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아니라 그녀에게 쓴 것이었다.“당신 돈은 당신한테 쓰라고 했잖아요.”강서연이 그를 꾸짖었다.“너한테 쓰려고 내가 돈을 버는 거지.”그가 피식 웃었다.“네 소원을 이룰 수 있어서 하나도 아깝지 않아.”“나 소원이 엄청 많아요.”그녀가 입을
“현수 씨, 여기는 저번에 저를 구해줬던 최연희 양.”“연희 양, 이분은...”“저 알아요!”한 손으로 강서연의 목을 감싸 안은 채 최연희는 최연준을 보며 웃었다.“남편분이시죠? 구현수 씨!”“형부, 안녕하세요!”최연준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현수 씨?”강서연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연희 양이 인사하잖아요!”“음.”최연준은 최연희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큰둥하게 한마디를 한 후 뒤돌아 주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강서연은 혹여 최연희가 난처해할까 걱정되었다.“연희 양, 죄송해요.”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저의 남편이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살갑지 않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정말 좋은 사람인 걸 알 수 있어요.” 최진혁은 최연준을 어릴 적부터 ‘얌생이’ 라고 불렀고 최상 가에서는 ‘냉혈한’, ‘고집불통’ 이라고 했다.그런 사람이 어쩌다 강서연한테는 이토록 다정할 수 있는가?아무래도 오빠가 여심을 잡는 기술이 남다른 게 분명했다!강서연은 최연희에게 버블티 한잔을 내려주었고, 남편에게 오븐 시간 체크를 부탁한 뒤 마당을 청소하러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는 버터 향이 풍겼다. 최연희는 살금살금 주방으로 가서 그를 깜짝 놀래켜 주려 했다. 그러나 최연준이 먼저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렸다.깜짝 놀란 최연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하... 오빠.”최연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말했다.“오빠라니, 형부라고 불러야지.”최연희는 혀를 내두르며 헛웃음을 지었고 그는 정색해 물었다.“여긴 무슨 일로 왔어?”“그게...”최연희는 당황스러웠다.“난 단지 진심으로 축하해주러 왔을 뿐이야! 더욱이 서연 언니의 초대로 온 거고!”“얌전히 밥만 먹고 가!”최연준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강서연 앞에서는 말조심하고! 알겠지?”“당연하지!”최연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내가 오빠 동생인데 설마 일을 그르치겠어? 오빠는 구현수고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거야! 맞지? 그보다... 베리 쿠키는 다 됐어
최연준도 입 모양으로 대꾸했다.“너 혼날래?”최연희는 웃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먹고 있던 베리 쿠키 부스러기가 사방에 떨어졌다.강서연은 꽃에 물을 주러 마당으로 나갔고 최연준은 정색한 채 동생 옆으로 와서 말했다.“다 먹고 청소하도록!”최연희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그녀는 허겁지겁 입안의 과자를 삼키고는 달갑지 않았지만 결국엔 그의 기에 눌려 순순히 빗자루를 들었다.“오빠, 참 대단한 거 같아.”그녀는 청소하면서도 잊지 않고 놀려댔다.“이러다 국민남편 타이틀까지 다 차지하겠어?”최연준은 힐끗 째려보았다.최연희는 히죽 웃었고 청소를 마치고 나서는 나머지 쿠키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최연준은 무심하게 물었다.“누구 주려고?”그녀는 마음속으로 움찔한 나머지 쿠키봉지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오빠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다. 숨기려 해도 끝내 들켜버렸다.“그게...”최연희는 머리를 쥐어 짜내어 변명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다시 한 번 최연준에게 덜미를 잡혔다.“혼자 먹을 건 아닐 테고!”한참이나 그 자리에 얼어 붙어있던 그녀는 더는 숨길 수 없을 것 같아 이실직고하였다.“인지석한테 맛 좀 보게 가져다주려고.”‘인지석? 또 그 자인가?’최연준의 눈은 한껏 매서워졌고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얼마 전 동생이 병원에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인지석과 함께 강주로 왔다고 했다.그때는 인지석이 누구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시간 지나 보니 인지석의 할아버지 때부터 최씨 가문의 집사였다. 그들은 주로 청소 같은 잡일을 도맡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찌 동생의 마음에 들었을까?최연준은 담담하게 물었다.“그 사람 아직도 안 갔어?”“당연하지! 나 혼자 강주에 있는데 걱정돼서 어떻게 가!”“그 사람이, 걱정한다고?”“음... 그래!”최연희는 당황한 기색이 묻어났다.“원래 나 지키려고 온 거야.”“먼 길 떠나는데 많은 경호원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잔디 깎는 사람을 데려와?”
최연준은 그녀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한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그녀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열여덟 살이 어때서... 열여덟 살에 연애하지 말란 법이 어딨어? 오빠 열여덟 살에는 임나연이 얼마나 따라 다녔는데!”“그 입 다물어!”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최연준의 기세에 실내에는 정적이 흘렀다.주위가 어찌나 조용했던지 최연희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그녀는 불안함에 머리를 푹 숙이고 입술만 깨물며 한마디도 못 하고 서 있었다.이때 강서연이 임우정과 신석훈을 데리고 왔다. 그 뒤에는 유찬혁도 있었다.그들은 모두 개업식을 축하하러 왔다.최연희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그는 가게 사장님답게 예의 있는 인사말을 그들과 주고받았다.강서연은 작은 새처럼 최연준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임우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문뜩 정신을 차린 강서연은 삐죽대고는 곧장 카운터로 달려갔다.“매일 보는데도 모자라?”임우정이 따라와 말했다.“현수 씨가 이번 일은 잘한 결정인 것 같아, 다시 보게 됐다니까! 아무튼, 밖에서 여기저기서 사고 치지 않고 너에게만 신경 쓴다면, 난 제부로 인정해!”“됐네요!”강서연은 웃으며 메뉴판을 건넸다.“뭐 마실래요?”“난 괜찮아! 다들 모였어?”“찬이가 오늘 학원에 가는 날이라 끝나고 올 거예요. 다른 분들은... 아마 이미 도착했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유찬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때마침 울린 핸드폰 벨 소리에 그는 밝게 웃으며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향했다.상대는 배경원이었다.“찬혁아, 연준이 형 너무한 거 아니야?”전화를 받자마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배경원이다.“내가 못 갈 곳도 아니고! 개업식같은 큰 행사에 나더러 오지 말라니...”유찬혁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다독여 주었다.“네가 이해해, 그러게 누가 서연 씨한테 변태 취급 받으래? 교통사고도 그렇고! 서연 씨가 너를 보자마자 놀라 도망가면 어쩌려고!”시무룩한 표정을
배경원은 힘껏 눈을 비비며 머리를 흔들었다.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저 부랑자가...잠깐 그의 앞을 지나갔지만, 눈매며 이목구비며 분명히 최연준과 똑같이 닮아있었다.“경원아! 배경원!”유찬혁이 전화기 너머로 부르고 있었다.“너 물에 빠진 건 아니지?”배경원은 인기척도 없었고 전화도 끄지 않은 채로 멍하게 그를 따라갔다. 그 사람은 누군가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근처의 길이 익숙한 듯 얼마 가지 않아 도망치고 없었다.배경원은 선 자리에서 온몸이 굳고 손발이 차가워 났다. 온천 리조트와 명황산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 가운데는 공공구역이라 최씨 가문의 세력범위 밖이었다. 하지만 방금은 배경원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경호원도 데려오지 않았던 터라 그를 따라 잡기도 어려웠다.쓰레기를 뒤지던 부랑자는 온데간데없었다.“여보세요!”유찬혁은 전화를 잡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경원아, 무슨 일이야?”“아, 아무것도 아니야.”배경원은 숨을 들이쉬며 진정했다.“급한 일 있어서, 이제 다시 얘기할게!”유찬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 사람이 이성 아니면 무슨 급한 일이 있단 말인가? 상당한 미인을 마주친 게 틀림없어 보였다.배경원은 리조트에 돌아오자마자 부하들을 불렀다.“여기 치안이 너무 안 좋아.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 못 봤어?”몇몇 부하들은 서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그 중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도련님, 양쪽의 최씨 가문의 구역을 제외하면 가운데 바닷가는 공공구역인데 그 구역 말씀입니까?”배경원이 다리를 ‘탁’ 치며 말했다.“그쪽은 저희가 확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빨리 말해!”부하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소문에 의하면 석방한 지 얼마 안 된 범인이 이 근처 일대를 돌고 있다고 합니다. 직업이 없어 쓰레기를 주워서 살고 있고 몇몇 유람객들이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실눈을 한 그의 눈에는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감시 카메라 돌려. 모든 사각지대 하나 빠짐없이
최연준은 허탈했지만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연신 그녀를 뒤돌아보며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강서연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그를 거절할 수 없게 만들었다.큰 결심을 한 그는 결국 최연희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뗐다.다들 한창 떠들썩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고는 흠칫했다.“현... 현수 씨.”임우정은 주변 분위기를 훑어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최연준의 표정은 너무도 엄숙했다. 몸도 뻣뻣하게 굳은 채로 그 자리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그러다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커피숍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강서연이 급히 와 보니 모두가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심지어 최연희와 유찬혁은 의자에서 굴러내릴 뻔했다.강서연이 구현수를 쳐다보자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왔고 안색은 조금 전보다 더욱 어두워졌다.워낙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사람한테 웃으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손님 접대는 불가능해 보여 강서연은 난감했다.“그만들 웃어요!”그가 혹여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을까, 강서연은 팔을 끌어안으며 체면을 세워주려 노력했다. “현수 씨가 무뚝뚝해 보여서 그렇지, 뭐든 처음이 있는데 이만하면 잘하고 있잖아요!”“현수 씨, 방금 아주 잘 웃었어요! 계속 화이팅!”넋 놓고 있던 최연준이 그녀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임우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강서연의 어깨에 살포시 얹으며 말했다.“그럼, 너의 슈퍼맨 남편은 못하는 게 없는 이 가게 명물이라니까!”“당연하죠!”강서연이 그를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현수 씨만 있으면 가게가 나날이 좋아질 거라고요!”“그럼!”신석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우리의 앞날도 꽃길만 걸을 거라고요!”“맞아요!”임우정이 웃으며 말했다.“꽃길을 걸으려면 새 식구가 필요하지 않겠어?”“우정 언니...”강서연의 얼굴이 붉어졌다.“뭐 부끄러운 일이라고! 중요한 일이지, 그래서 언제인데?
최연준은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차갑게 노려봤다.육경섭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비웃듯이 말했다.“현수야, 여기 전세금이랑 인테리어가 꽤 비싸 보이네? 이 큰돈이 어디서 났을까?”“신경 끄세요.”최연준은 차갑게 대꾸했다.“내가 그래도 감방에서 동생처럼 잘 챙겨 줬잖아!”육경섭은 잘난 체하며 말했다.“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얘기해, 형으로서 동생 힘든 꼴을 지켜볼 수 없지!”“괜찮아요, 사양할게요.”“출세했네? 현수야, 소문이 사실은 아니지? 네가 와이프 덕에 먹고산다며?”육경섭은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뒤에 서 있는 강서연에게 가 있었다.주먹을 불끈 쥔 최연준의 팔에는 선명한 핏줄이 보였다.“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세요.”이때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한 쌍의 똘똘한 눈망울을 가진 강서연이 최연준 앞으로 다가섰다.어떤 일에서든 앞장서지 않던 그녀지만 누군가 남편을 저격한다면 그녀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경섭 씨, 이 가게는 남편이 저한테 선물로 준 것이고 저희는 돈도 부족하지 않아요! 저희 남편 너무나 착실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벌어오는 수입은 다 저한테 맡기고요. 제 눈에는 현수 씨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편이거든요! 그러니 앞으로 말조심하세요, 사람 보는 안목이 참 없네요!”육경섭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그러고는 눈앞의 여인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한참을 지나 육경섭은 어색한 기침 소리를 내며 또박또박 말했다.“아가씨, 내가 안목이 없는 게 아니고 당신 남편이 정말 별로라서 그래! 허, 당신 남편이 무엇 때문에 감방에 가게 되었는지 알고 있나?”“육경섭!”임우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육경섭을 노려보며 말했다.“여긴 당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야! 당장 나가!”움찔한 육경섭은 천천히 뒤돌아서며 선글라스를 벗었다.8년 동안 알고 지냈던 그녀지만 지금은 그가 아는 그녀가 아니었고 두 사람의 눈에서는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육경섭은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억지로 웃었다.“우정아, 여전하네?”임우정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