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여행하는 거 현수 씨 아이디어 아니죠?”신석훈은 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맞아요. 강서연 아이디어예요.”구현수는 낮게 말했다.“서연이가 석훈 씨와 우정 씨가 잘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같이 여행 가자고 제안했죠. 둘이 얘기를 많이 나눴으면 해서.”“서연 씨가 애썼네요.”신석훈은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이곳 정말 좋네요. 그런데 좀 이상해요.”“왜요?”“내가 찾아봤는데 민박집이 엄청 유명하던데. 오기 전에 사람들로 붐빌 거로 생각했는데 우리밖에 없네요? 주말 아니라도 너무 조용하지 않아요?”구현수는 가볍게 기침을 두 번 했다. 오기 전에 그는 이곳을 비워두게 했고 당연히 사람이 보일 리가 없었다.“하하, 보아하니 여기 경영 제대로 못 해서 망하는 거 아닐까 싶네요.”말문이 막힌 구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뒤집었다.“사람이 많은 게 좋아요?”신석훈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사람은 그래도 떠들썩한 데가 좋은가 봐요. 하하. 밥 먹으러 가도 가게가 사람이 적으면 나는 절대로 안 들어가요, 핫한 데 가서 줄을 설지라도.”구현수는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칠성급 호텔도 사람이 적은데, 아무나 먹을 수가 없잖아요?”“허허, 이 사람이 ...”신석훈은 말문이 막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앞전에 밤낮없이 보살펴 목숨을 구해줬었건만 사람 민망하게 말이다.“둘이 뒤에서 뭐 하기에 그렇게 천천히 와요?”앞에서 강서연의 달달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구현수가 바라보니 강서연이 그를 향해 힘차게 손 흔들고 있었다. 강서연과 임우정이 서 있는데 뭔가 다른 사람이 더 있는 것 같았다.구현수는 눈빛이 바로 변하더니 경각을 높였다.‘이미 이곳을 통으로 빌려서 사람이 들어왔을 리가 없는데 이게 웬일이지?’“현수 씨, 빨리 와요!”강서연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여기 할머니가 손금을 봐준대요!”구현수는 흠칫했다.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절이 있기는 했다. 일부 스님이나 도사들이 여기를 지나다니는 것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말에 강서연의 머리가 하얘졌다.당혹스러워하던 그녀가 할머니한테 물으려다 곁의 구현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 있고 눈빛은 더없이 매서워서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았다.강서연은 그와 깍지 끼면서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할머니도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인지 못 하시는 나이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예상 밖으로 할머니의 귀가 밝아 듣고는 헤벌쭉 웃었다.“아가씨가 마음씨가 참 좋아,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이 따를 거야.”“할머니 고마워요.”강서연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저희 남편이 좀 과묵한 데다 부리부리한 외모 때문에 오해를 자주 받지만 그래도 더없이 자상해요.”“허, 아가씨 궁합을 보고 싶은 게지?”강서연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할머니는 손금을 힐끗 보고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빨간 끈 두 줄을 꺼냈다.능수능란한 손재간으로 벼 이삭 같은 매듭에 빚는 동심결마다 정갈한 방울까지 더해 맑고 쟁쟁한 소리가 났다.“이 팔찌를 손목에 착용하거라.”할머니는 한자 한자 타이르듯 말했다.“방울이 울리면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미간을 찌푸린 신석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런 용한 물건이면 휴대 전화도 필요 없겠네요!”어리둥절해 있던 강서연은 돌아서 환한 얼굴로 할머니를 향했다.“할머니, 남편이랑 저는 오래오래 같이 있을 거라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너희 언젠가는 떨어질 거야.”순간 하얗게 질려버린 강서연은 구현수의 손을 꼭 잡았다.“하지만...”할머니는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언젠가는 둘이 꼭 행복한 날이 올 거야.”강서연은 그제야 미간이 풀렸고 작은 보조개가 얼굴에 달려있었다.구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실눈을 떠서 쳐다보고는 그녀를 끌어당겨 자리를 떴다.“허! 이 할머니가 정말!”신석훈이 끼어들어 말했다.“나이 들어서 어떻게 되신 거 아니야? 그래도 마지막 말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녀가 팔지를 치우려고 하자 구현수가 뺏어서 주머니에 넣었다.“당신...”“너랑 나 하나씩 갖고 있어야지. 그 할머니가 그러셨잖아. 혹시라도 서로 헤어지면 안 되니까...”“퉤퉤퉤. 헤어지는 일은 없어요!”강서연은 두려웠다. 할머니가 얘기하실 때 신경도 안 썼는데 구현수의 입에서 ‘헤어진다’ 라는 말을 들으니 특별히 예민해진 그녀였다.“바보.”낮고 허스키한 구현수의 목소리 속에는 다정함이 있었다.“헤어진다고 한들 내가 놔주지 않을 거야!”“그럼요!”강서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신석훈과 임우정은 동시에 웃음이 났다.그렇게 돌아다니던 네 사람은 민박집을 찾았고 가게 점장이 직접 마중 나와 민박의 가장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안내했다.식당에 발을 들이자 신석훈과 임우정은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가 정녕 말로만 듣던 반년 월급을 팔아서야 겨우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의화루인가? 강서연이 여기를 어떻게 예약한 거지!“점장님. 잘못 찾아온 거 아니죠?”강서연도 의아해하며 물었다.“인터넷으로 예약할 때는 기본 세트라고...”“맞아요. 여깁니다.”점장이 공손하게 손뼉을 치자 훈련받은 웨이터들이 저마다 산해진미를 그들 앞에 대령했다.눈이 휘둥그레진 강서연은 숨죽이고 있었다.사진으로만 봐왔던 의화루의 메인 요리들이 한 상을 가득 채웠다. 이 한상차림만 해도 그녀가 충분히 빈털터리가 되고도 남을만한 가격이었다!“점장님!”그녀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말했다.“강서연 씨. 예약하신 게 기본 세트가 맞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 저희 가게에서 민박에 주숙하신 손님 중 행운고객을 선정하여 초호화 세트로 업그레이드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첨된 번호가 바로 강서연 씨의 예약 번호입니다!”“정말요?”실제로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는 일이 있단 말인가!신석훈과 임우정은 그 자리에서 넋이 나갔다. 두 사람은 꿈을 꾸는 것 같아 마주 보았다.“진짜로? 운이 너무 따라주잖아요!”임우정은 흥분된 목소리로 주위를 뱅
둥근 식탁에 모두가 모여앉았다.차려진 음식들은 맛과 향 그리고 색감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져 정교한 사기그릇에 담겨있어 저마다 최상의 화려함을 자랑했다.풍성함에 눈이 휘둥그레진 신석훈은 약을 탔는지 의심도 없이 다급하게 먹으려고 들었다.임우정은 웃으며 말했다.“이러다 은행카드 비밀번호도 순순히 불러드리겠어요?”“마음대로 하라고 그래요! 어차피 은행카드에 얼마 없기도 하고 이 한상차림 살 돈도 없어 다 먹으면 그만이니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에요!”신석훈은 중얼거렸다.“역시 신 의사님이 계산이 빨라요.”“저 못지 않으면서요!”신석훈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나보다 많이 먹잖아요!”말하면서 젓가락으로 신석훈의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강서연과 구현수는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서로를 바라보았고 눈에는 사랑스러움이 묻어있었다.“여러분. 모든 요리가 다 나왔습니다.”점장은 직원들을 불러 생선탕을 대령했다.“이건 쏘가리탕입니다. 명황산 아래 시냇물에서만 자라는 물고기는 신선하고 육질이 부드러우며 느끼하지도 않아 탕으로 드시기 제일 적합합니다.”그들은 앞에 있는 수프 그릇을 쳐다봤다.역시나 싱그럽고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쏘가리는 진하게 고아져 간이 잘되었고 복숭아 꽃잎으로 장식을 해서 로맨틱함을 한층 더했다.강서연은 습관적으로 물고기 눈알을 구현수에게 집어줬다.어릴 적 어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늘 그녀와 윤찬에게 생선요리를 해줬는데 요리가 다 되면 어머니는 항상 생선 눈알을 하나씩 나눠주곤 했다.생선 눈알은 눈을 맑게 해줘서 생선 중 가장 귀한 부위라고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다.강서연은 웃으며 구현수를 바라보았다.한쪽에서 지켜보던 임우정은 질투가 났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휴. 다른 집 남편은 사모님이 생선 눈알도 집어주면서 끔찍이 여긴다는데. 정말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 부럽다 부러워!”“질투하세요?”신석훈이 놀려댔다.“여기 생선 많잖아요! 드시고 싶으면 집어 드시면 되죠!”볼 빨개진 강서연은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구
“괜찮아.”훌쩍이던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어깨의 손을 토닥거렸다.“우정 언니.”강서연은 무언가를 말하려 머뭇거리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얼른 쉬어요. 무슨 일 있으면 혼자 담아두지 말고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나한테 얘기하고요. 얘기하고 나면 훨씬 나아져요. 딱히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나도 더 안 물을게요.”“서연아. 나...”임우정은 말하려다 다시 삼켰다.한참 후에야 다시 천천히 말을 꺼냈다.“나 석훈 씨한테 비하면 많이 부족한 거 같아.”“네?”“내가 부족한 것 같다고.”임우정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나... 전에 그 사람이랑...”더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강서연은 무슨 일인지 눈치로 알 수가 있었다.임우정은 늘 활발하고 털털한 성격이지만 남녀 사이 문제에서는 진지한 모습에 강서연도 조금 놀랐다.하지만 얼마나 사랑했기에 여자가 자신을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강서연은 흠칫 놀라 그녀의 손을 잡아 꾹꾹 눌렀다.“우정 언니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동안의 일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 사람과 정말로 사랑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 일만 없었더라면 아직까지도 같이 있었을 거잖아요. 맞죠?”임우정은 조용히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없었다.“우정 언니. 왜서 신 의사님을 안 받아줬는지 이해가 돼요.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고 언니 마음속에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거죠.”“서연아...”임우정은 울먹이며 말했다.강서연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아기 안아주듯 흐느끼고 있는 그녀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솔직히 난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때가 언제인데 이 정도 과거야 누구나 있는 거고 이젠 이런 건 일도 아니라고요. 신석훈 씨는 신경도 안쓸걸요?”“정말?”임우정은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서연이 이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물론이죠.”강서연은 이어 말했다.“현수 씨가 그러는데 여자가 순결을 지켜
그녀는 문뜩 모래밭을 걸어보고 싶었다.강서연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슬리퍼를 신고 바닷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환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구현수는 온밤 잠을 설쳤다.이제는 강서연이 곁에 없으면 잠에 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강서연과 임우정이 절친 사이라 두 사람의 수다에 끼어들어 방해하면 속 좁은 사람으로 몰릴까 봐 말도 못 꺼냈었다.그래서 어젯밤에는 침대서 여기저기 뒹굴며 화풀이를 했었다. 눈은 방울보다 더 커져서는 속으로 수백 번이고 신석훈을 욕했었다.이번 여행은 누구를 위한 여행이란 말인가?!하지만 신석훈은 임우정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이토록 손쉽게 저버렸으니 말이다. 신석훈의 코를 고는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옆방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구현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이 슬슬 밝아지자 잠깐 눈붙여 안정을 취하려 했다.그 순간 방의 전화가 울렸다.“셋째 도련님. 서연 씨가 혼자 밖으로 나갔습니다.”“뭐?”그는 깜짝 놀랐다.“어디로 갔는데?”“아침 일찍 바닷가로 향해 저희 쪽에서 따라붙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가 저희 개인 바닷가가 아닌 공공구역이라 아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만 발견될까 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구현수는 실눈을 떴다.‘바닷가?’거기 경치가 좋지만 최씨 가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현재 그곳은 여행객들도 거의 없는 데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난다면...구현수는 경계태세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바짝 따라붙어.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책임을 단단히 묻겠어!”전화기 너머로 전전긍긍하다 다급하게 수긍했다.바닷가에 온 강서연은 슬리퍼를 한 쪽에 벗어두고 맨발로 부드러운 모래밭을 걷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바닷냄새를 몰고 머리카락을 스쳤다. 멀리에서는 바닷새가 날아다녔고 수평선에서 해가 서서히 떠올라 수면을 벌겋게 물들였다.강서연이 도시에서는 감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휴대 전화를 잊고 못 챙겨온 걸 한없이 후회했다. 이
“당... 당신.”한순간 한 줄기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졌다!무언가를 눈치챈 듯한 부랑자는 그녀를 힐긋 쳐다보고는 머리를 흔들며 입으로 중얼대더니 쓰레기 꾸러미를 들고 냅다 도망갔다.강서연은 뒤따라 쫓아갔지만 몇 걸음 못 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거친 숨을 내쉬었다.그 얼굴...너무나도 구현수와 닮아 있었다.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강서연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손발이 차갑게 저렸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채로 그녀는 이미 민박집 앞에 와 있었다. 앞에는 구현수가 나와 있었고 어깨에 손을 얹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멍하니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구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상냥하게 물었다.그제야 정신이 든 강서연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그녀의 눈앞에 또렷한 턱선과 깔끔한 이목구비가 나타났고, 농염한 남성미가 내뿜어져 왔다. 이런 현수 씨를 어찌 부랑자와 비교하겠는가!방금은 실성을 했는지 헛것을 본 게 분명했다. 강서연은 자책하면서 저절로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도대체 왜 그래?”구현수는 방금보다 더 상냥하게 물었다.강서연은 그와 깍지를 낀 채로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다.그녀의 손은 놀랍도록 차가워 구현수는 되레 걱정되었다.“아침부터 어디로 간 거야? 사면이 바다인 데다 바람도 세고 오성은 점심에는 덥지만. 아침저녁에는 기온이 떨어져. 이렇게 얇게 입고 나가더니 감기 걸린 거 아니야?”커다란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자 강서연은 애교 섞인 말투로 잡아 내렸다.“나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구현수는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유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서연은 갑자기 방금의 웃음거리가 생각나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피식 웃었다.이 웃음이 구현수의 눈에는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여보.”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는 매력적인 저음으로 말했다.“명색이 신혼여행인데 어제는 왜 날 독수공방하게 만들었을까.”“그래서. 기분 나빴어요?”그녀는 작은 여우처럼 올려다보았다.“그럴 리가.”그는 실눈을 뜨며
“정말이에요?”강서연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이벤트를 한 건 그 사람들인데 우리만 운이 좋았네요!”“그러니까 말이야.”구현수가 덤덤하게 웃었다.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흐뭇했다.“현수 씨랑 결혼한 후로 내 운이 수직 상승한 것 같아요. 모든 일이 다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순조롭게 잘 풀린다니까요.”그녀는 발뒤꿈치를 들고 그의 볼을 두 손으로 잡더니 쪽하고 입맞춤했다.“현수 씨는 정말 복덩어리예요!”구현수는 잠깐 멈칫하다가 그녀의 코끝을 톡 치며 가볍게 웃었다.“먼저 가서 먹어.”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화장실 갔다가 바로 갈게.”“알았어요.”강서연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그럼 나 먼저 우정 언니랑 심 의사님 찾으러 갈게요. 얼른 와야 해요.”“알았어.”강서연이 폴짝폴짝 뛰며 방을 나간 순간 구현수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는 테이블 위의 전화기로 번호를 꾹꾹 눌러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아침 서연이한테 무슨 일 있었어?”“서연 씨는 계속 바닷가에서 놀았고 저희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길거리 쓰레기통 그쪽에서...”부하가 말을 얼버무렸고 구현수가 버럭 화를 냈다.“말해!”“거기서 노숙자랑 부딪혔어요.”‘노숙자? 무슨 일은 없었겠지?’구현수는 마음이 움찔했다.“다행히 노숙자는 서연 씨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노숙자가 떠난 후에 서연 씨가 계속 노숙자가 간 방향을 쳐다보는 거예요. 아마 십여 분 정도 움직이지도 않고 지켜봤을 거예요.”‘놀라서 그랬나?’구현수의 뇌리를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서연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몇몇 건달들이 문 앞에서 그녀를 희롱했을 땐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달려들기도 했었다.그리고 지난번 식사 자리가 끝난 후 배경원이 그녀에게 딴마음을 품고 있다고 오해했을 때도 운전기사의 목을 조르고 차에서 뛰어내린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이토록 용감하고 강한 여자가 고작 노숙자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