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영은 호준성의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너... 너 정말 죽을 놈 같으니라고!” 호준성은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빨리 구급차를 불러! 나를 병원에 데려가!”하수영은 멍하니 서 있었다.호준성이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려 할 때 하수영은 갑자기 달려가서 문을 막았다!“너 뭐하려는 거야?!”“호준성...” 하수영은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해!”호준성은 어안이 벙벙했다.머리에서 나오는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이러다가는 오늘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이 여자는 정말 이상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경찰을 부르지 말라고?“알겠어, 알겠어. 경찰을 부르지 않을게!” 호준성은 화가 나서 말했다. “빨리 병원으로 가자! 젠장...”*응급실에 도착하자 계속 욕설을 퍼붓던 호준성은 마침내 조용해졌다.욕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머리가 마치 만두처럼 감겨 있어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그는 간호사가 일부러 그런 건지 몰랐다.어쨌든, 간호사가 약품을 들고 나가는 순간에 보인 그 혐오 가득한 얼굴을 확실히 보았다.하수영은 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기다렸다.그제야 그녀는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먹을 입에 대고 깨물었다.정말 아슬아슬했다. 오늘 거의 사람을 죽일 뻔했다......이제 그녀는 직장을 잃었고 호준성도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써 쫓아다닌 문성원도 비록 사람을 손에 넣었지만 마음은 그녀에게 없는 것 같았다.온갖 방법을 썼는데도 결국 이런 상황에 빠지다니!그녀는 머리가 욱신거리며 아팠고 마음이 뒤숭숭했다.그녀는 생각에 잠겨 병원 복도를 걸었고 고개를 들어보니 병실까지 온 것을 알게 되였다. 그녀가 떠나려는데 문득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오늘 또 한 번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하수영은 멍해져서 소리를 따라갔고 그 목소리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간호사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이 환자에게 딸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요. 그분도 자녀가 없다고 하셨어요!”“저...”“여기서 우리 일을 방해하지 마세요.” 간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다른 환자에게 약을 주러 가야 해요.”하수영은 간호사실 앞에 서서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꼈다.그녀는 아무도 없을 때 간호사실의 병력을 몰래 뒤졌지만 “유방암”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간호사의 발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재빨리 다른 쪽으로 도망쳤다.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병원 입구에 서서 운전사를 기다리고 있는 임우정을 보았다.하수영은 다가가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육 사모님, 안녕하세요.”임우정은 잠시 놀라며 이 여자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저는 하수영입니다.”“아.” 임우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그 ‘우수한’ 인턴이군요!”“사모님,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하수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제 육자 그룹의 사람이 아니에요.”임우정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냉담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찾은 이유가 뭐죠?”“방금 방문하신 분이... 소 아주머니 맞죠?”“그건 당신과 상관없는 일입니다.”“아, 그래요?” 하수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비록 당신이 소아의 친어머니이지만 지난 20년 동안 강소아는 소 아주머니께서 키우셨어요. 이제 소 아주머니가 병에 걸리셨고 그것도 암이라니...”임우정은 약간 화를 내며 말했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죠?”“육 사모님, 당신은 너무 착하세요.” 하수영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사실 저는 강소아와 친구였어요. 그녀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어요. 그녀는 강씨 집안의 아이가 아니에요. 만약 강소아가 그녀의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소 아주머니 곁으로 돌아갈 거예요! 사모
하수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임우정을 향해 겁에 질린 채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이때 육씨 가문의 운전사가 그녀들에게 다가와 차를 세웠다.임우정은 하수영을 보며 입가에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으으...으!” 갑자기 그녀들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임우정이 고개를 돌리자 머리를 단단히 감싼 남자가 뚱뚱한 몸을 흔들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임우정은 잠시 멈칫했고 하수영의 표정이 어색해지는 것을 알아챘다.그 남자는 입가의 붕대를 간신히 떼어내고는 잘 보이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 저는 호준성입니다. 오늘 사모님을 여기서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병원에서 나를 만나는 게 뭐가 영광이죠?”“그게...”호준성은 잠시 멈췄다.운전사가 임우정의 귀에 속삭였다. “그는 영화 프로젝트의 담당자이자 주요 책임자입니다.”“아.” 임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준성 씨군요.”“네, 맞습니다... 바로 접니다!”“왜 이렇게 됐죠?”호준성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하수영을 한 번 쏘아보았다.말하지 않아도 임우정은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하수영의 표정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호준성 씨, 다친 몸으로 여기 서 있지 말고 어서 병실로 돌아가 쉬세요.”호준성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굳이 임우정을 차에 태우려 했다.하수영은 한쪽에서 말없이 서 있었고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임우정은 차갑게 웃음을 지으며 차에 타기 전 하수영을 바라보았다. “하수영 씨,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신이 문성원의 여자친구라고 들었는데 맞나요?”깜짝 놀라 고개를 든 하수영은 호준성의 표정이 더더욱 차가워진 걸 보았다.“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친구라면 염치란 단어는 알겠죠? 내가 가르쳐줄 필요는 없겠네요?” 임우정은 입가에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학생이라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겠죠.”입술을 깨문 하수영은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이 떨렸다.임우정의 차가 멀어지자 호준성은 그녀를 향해
하수영은 그가 연애 경험이 없는 멍청이일 줄 알았지만 변호사의 영리함은 전부 그녀에게만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문성원과 사귀면서 집 한 채는커녕 초콜릿 한 조각도 얻지 못했다.그래서 그녀는 호준성에게 기대게 되었다.그런데...하수영은 깊이 숨을 내쉬며 결국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하지만 왜 강소아의 남자는 믿을 만할까?심지어 그렇게 형편없는 출신인 육연우도 사랑받고 있는데!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눈 속에서 악독한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이미 밤 10시가 넘었지만 강소아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설계도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건너편의 육연우가 미소를 지으며 눈짓하는 것을 보았다.그제야 최군형이 모르는 사이에 들어왔다는 것을 눈치 챘다.강소아는 깜짝 놀라며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쳤다. “당신 왜 걸어 들어올 때 소리가 안 나요!”“문을 두드렸어요.” 최군형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일에 너무 집중해서 듣지 못한 거예요. 자, 내가 야식을 가져왔어요.”강소아는 그가 손에 정교한 도시락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일을 내려놓고 제대로 즐기기로 했다.육연우는 알아서 컴퓨터를 끄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당신들 방해하지 않게 나 먼저 갈게요!”“아니, 연우야 너도 좀 먹어......”“군성이가 아래층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어.” 최군형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굶지 않을 거야!”그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야식을 가져오면서 일찍 잠든 최군성을 다시 불러냈다.강소아는 그를 보며 미소 지었고 먹을 준비를 하던 차에 그가 불쑥 다가와 허리에 손을 올렸다.그녀는 그를 밀었지만 그는 더욱 꼭 껴안으며 결국 그녀의 작은 머리를 자기 가슴에 대고 놓아주지 않았다.“최군형......”“며칠 동안 너를 보지 못했어.” 최군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아?”“지금은 일에 집중해야 해요. 남자는 당분간 생각
최군형은 미간을 찌푸렸다.“당신 몸의 모반이요? 반달 모양이요?”“네.”강소아는 멋쩍게 웃었다.“전에 말하지 못했는데 걱정되었어요...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성형하는 것 좋아하지 않잖아요.”“그럴 리가요.”최군형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포용력이 높아져요.”“그런데 왜 모반을 지운 거예요?”강소아는 눈빛이 반짝거리며 낮게 말했다.“수영이가 데리고 갔어요. 걔가 내 허리의 모반이 예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옷을 입어서 가리면 더 안 이쁘다고 했어요.”“그때 내가 좀 멍청했어요.”“허리와 배를 노출하는 옷을 몇 번이나 입는다고. 예쁘고 안 예쁘고 어디 있어요. 하지만 귀신에 홀리는 듯 수영의 말을 따라서 모반을 지웠어요.”최군형은 눈빛이 어두워졌다.하수영은 원래부터 육명진과 왕래가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강소아가 육씨 가문에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갑자기 왜 멍을 때리는 거예요?”강소아는 자신의 작은 손을 그의 눈앞에서 흔들거리며 달콤하게 웃었다.“배고프지 않아요? 같이 밥 먹으로 가요.”“괜찮아요. 배고프지 않아요.”최군형은 눈앞의 순수한 영혼이 조금 안쓰러워 그녀를 천천히 안았다.그때 아래에서 경호원이 전화를 걸어 최씨 가문이 약을 주러 왔다고 했다.강소아는 올라오라고 했다.하지만 눈앞에 쏟아지는 여러 가지 약 봉투를 보며 그녀는 깜짝 놀랐다.“그...”“이건 모두 둘째 도련님이 부탁하신 겁니다.”집사가 낮게 웃었다.최군형은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그가 급한 나머지 음성 메세지를 모든 이들이 함께 있는 채팅방에 보낸 것이다...“큰 도련님, 부족한 약이 있습니까?”“음... 충분한 것 같네요.”최군형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해마다 남양에서 새로운 약들을 보내왔고 고모와 고모부까지 계셨기에...최씨 가문은 시종일관 약이 부족하지 않았다.집사는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후 나갔다.최군형은 테이블 위에서 한 병을 집어 들
[고마워.]최군성이 답장을 했다.[하하, 가족끼리 왜 이래! 좋은 밤 보내!]사무실이 아니었다면 최군형은 아마 최군성을 끌고 나와 본때를 보여줬을 것이다!*이틀이 지난 후 강소아가 아래층에서 커피를 사러 갔을 때 눈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일렁거렸다.“소아야, 오랜만이야.”강소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하수영은 얼굴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예전만큼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고 많이 초췌해 보였다.하지만 그녀의 눈빛에 담긴 음산함은 결코 변함이 없었다.강소아는 낮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지. 네가 회사에서 잘린 지 일주일 밖에 안되었잖아.”“이 일주일 동안 나는 너무 힘들게 보냈어.”하수영은 눈꺼풀을 내리깔며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제법 불쌍한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모습에도 강소아는 결코 꿈쩍하지도 않았다.“소아야, 나 하마터면... 육자 그룹 인턴 증명을 가질 수 있었어. 너에게도 얘기한 적 있잖아. 인턴 증명만 가지면 나는 즉시 유학을 신청할 수 있어. 네 앞에도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야!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하수영, 내가 너를 못살게 구는 게 아니야.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야...”강소아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어. ”하수영은 억지를 부렸다.“난 그냥 나를 우선 생각했을 뿐이야... 그게 잘못된 거야?”“너를 우선 생각하는 건 문제 없어. 그런데 남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되잖아!”“흥, 나는 너랑 달라.”하소영은 차갑게 웃었다.“너는 육자 가문 공주님이지. 20년의 평범한 일상을 보냈지만 강씨 집안 사람들이 너를 금이야 옥이야 키웠잖아.”“그럼 나는? 나는 아무것도 없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 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어.”강소아는 그녀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손을 저었다.“한 사람의 선택과 환경은 백 프로 일치하는 게 아니야. 너의 마음에 달린 거지. 연우는 너보다 환경이 더욱 악렬한데 너랑은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고 있
“소아야...”하수영은 강소아의 분노를 보고 힐끗 입꼬리를 올렸다.그녀는 이 분노가 임우정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소아야, 나는 네가 힘든 걸 알아. 하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니 육씨 사모님에게 정확하게 물어보고.”“소아야, 이 모든 건 육씨 사모님의 계략이란 생각 안 들어? 너한테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거야. 아주머니를 피 말려 죽이면 육씨 사모님이 너의 유일한 엄마가 되잖아...”“그만해, 제발!”강소아는 소리를 질렀다.그녀가 산 커피는 바닥에 쏟아져 뜨거운 액체가 하수영의 발등을 덮었다.하수영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강소아, 너...”“내가 아까 분명 말했지.”강소아가 하수영의 멱살을 놓아주자 그녀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네 더러운 입을 닫지 못하겠으면 내가 꿰매주지!”하수영은 그녀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랐다.그녀는 자신이 한 모든 말들이 강소아의 심장을 찌를 수 있을 줄 알았다.강소아와 소정애 사이의 감정이 이해가 갔고 그녀가 육씨 가문에서의 많은 어려움도 알고 있었다.그리고 육경섭과 임우정 사이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이를 계기로 강소아를 통제하고 싶었다.통제하지 못하더라도 강소아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을 줄 알았다.사람이 감정에 좌지우지되면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강소아의 아무런 감정 변화도 없었다.강소아의 눈빛은 여전히 비웃음과 차가움을 담고 있었다.하수영은 조금 두려워졌다.하지만 강소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기를 쓰고 그녀의 눈을 쏘아보았다.“소아야,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네 엄마는 암에 걸렸고 내가 직접 봤어.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어. 너한테만 감춘 거야.”“그래서 너는 지금 내 앞에서 시시비비를 따져 가며 이간질하는 거야?”강소아는 차갑게 웃었다.“수영아, 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하수영은 긴장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멍해졌다.“두 엄마가 어떤 분인지 내가 제일 잘
하지만 그때, 강소아는 수화기 너머에서 선명한 소리를 들었다.“35번, 소정애 씨, 약 먹어야 할 시간이에요.”강우재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강소아는 핸드폰을 쥔 채로 꺼진 전화를 바라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그리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유환은 촬영장에서 발목을 다쳤지만 촬영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아픔을 참았다.감독이 컷을 할 때 그녀의 발은 이미 부을 대로 부어 한 발작도 움직일 수 없었다.그 모습을 본 재크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촬영팀이 그녀를 잘 보살펴주지 않았다며 언쟁을 펼쳤다.유환은 그런 그를 끌어당겼다.“지금 발은 안 아파요. 내 머리를 아프게 할 셈이에요?”재크는 급히 그녀에게 달려가 부축하며 힘겹게 촬영장을 떠났다.차량은 아쉽게도 정비하러 갔다.유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재크는 평시에 똑똑하게 일 처리를 했었다.그런데 오늘 같은 날에 차량을 정비하러 보내다니. 다른 차를 준비하지도 않고 말이다.“걱정하지 마, 네가 길거리를 떠돌게 하지 않을 거야.” 유환은 그를 째려보았다.“내가 만약 길거리를 떠돌게 되면 나를 업고 가요.”“너를 업고 가는 건 불가능해.”재크는 신비롭게 웃었다.“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유환은 그의 눈빛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앞의 검은 색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차량 옆에는 문성원이 서서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재크는 마치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는 듯한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그녀를 ‘자기야’라고 부르며 다친 발을 고려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이끌고 문성원 앞으로 걸어갔다.이렇게 끌려가자 유환은 자신의 발목에서 큰 아픔이 밀려 들어왔다...그녀가 통증에 얼굴 표정이 구겨졌을 때 문성원이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안녕!”유환은 활짝 웃으며 부자연스럽게 소리 질렀다.“Hi!” 순간 둘의 심박수는 갑자기 빨라졌다.“당신...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너... 다리 다친 거야?”둘은 동시에 말
송윤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결혼?생각해 보니, 송윤지와 배현진은 처음 만날 때부터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던 것 같다.임우정이 소개한 관계이기도 했고 송윤지 자신도 조건이 나쁘지 않았으니 배씨 가문에서도 만족스러워하며 미래의 배씨 가문 며느리로 받아들였다.배현진 역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배현진은 연애 경험이 없었고 송윤지는 기억을 잃은 후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잃어버린 기억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송윤지는 과거에 대해 알 방법이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된 것이다.배현진은 결혼 상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능력도 뛰어난 데다가 배씨 가문의 배경까지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그런데도 송윤지는 늘 그와의 관계에서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윤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윤지야! 대답 좀 해! 무슨 일이야?”“아, 아무것도 아니야.”송윤지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언니,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전화기 너머에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한참 지나서야 송윤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난 네가 빨리 배씨 가문에 시집가서 배씨 가문의 보호를 받았으면 좋겠어.”송윤지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언니, 설마 형부가 언니를 찾아왔어?”“더 이상 묻지 마...”“솔직히 말해봐!”결국 송윤희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그가 60억이 필요하대... 도박하다 고금리 대출까지 써서 총 60억이야! 저 천벌 받을 놈이!”송윤지의 가슴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언니, 60억이라고? 그 큰돈을 어떻게...”“그래, 도박하다가 돈을 잃고 고금리 대출까지 썼대.”“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침착해.”송윤지는 언니를 안심시키려 애쓰며 말했다.“내가 현진 씨
임지강은 매일 같은 시간에 유치원 정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론 최가원을 데리러 온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단지 송윤지를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임지강은 송윤지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지어 보이는 맑고 순수한 웃음을 좋아했다.그 모습은 마치 송윤지가 과거 임지강과 함께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임지강은 종종 상상했다. 만약 두 사람의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쯤 이 유치원에서 뛰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자신이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둘은 더 나은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의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갈 용기도 없었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할아버지! 할아버지!”맑고 명랑한 목소리가 임지강의 생각을 현실로 끌어냈다.그는 자신이 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가원은 반짝이는 눈으로 임지강을 올려다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할아버지, 우리 여기 오래 서 있었잖아요!”“아... 그렇구나.”임지강은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최가원의 손을 잡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할아버지, 매일 이렇게 오는 거 힘들지 않아요?”“뭐?”최가원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혹시 송 선생님 좋아해요?”임지강은 그 말에 순간 멈칫하며 당황했다. 얼굴은 살짝 굳었고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커졌다.“무슨 소리야! 이 꼬맹아,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흥!”최가원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어리다고 눈이 멀진 않았거든요! 할아버지, 송 선생님 볼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거 알아요? 할아버지만 몰라요!”“너...”임지강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내 눈 멀쩡하니까 신경 꺼!”최가원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할아버지! 할아버지!”“왜 또!”임지강은 짜증을 내듯 말했다.하지만 작은 손이 그의 손을 잡는 순간, 마음은 또 한없이 부드러워졌다.“할아버지.”최가원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이스크림 사주시
“송윤지, 듣고 있어?”송윤지는 정신을 차렸다. 막 대답하려던 순간, 전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진 씨, 아직도 여기서 커피 마시고 있어요?”“리사, 무슨 일이야?”“서류에 서명할 게 있어요!”배현진은 웃으며 대답했고 그 즉시 전화를 끊어버렸다.송윤지는 허탈한 마음에 가슴 한쪽이 텅 빈 듯했으며 심장은 빠르게 뛰고 답답함이 온몸을 휘감았다.송윤지는 본능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저 여자는 누구일까? 왜 배현진은 저 여자의 말을 그렇게 잘 들을까? 어떻게 그 여자가 일하라고 부르자마자 바로 가버린 걸까?그들은 매일 같이 지내며 서로 다른 감정을 키워가고 있는 걸까?방금 배현진은 송윤지에게 인사 한마디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감정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송윤지는 침대 가장자리에 기대어 앉아 생각이 엉키기 시작했다. 그때 눈앞에 작은 딸기 곰 인형이 눈에 띄었다.참 아이러니했다. 약혼자인 배현진과 보낸 시간보다 이 작은 곰 인형과 함께한 시간이 더 길었다.송윤지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인형을 집어 들었다. 인형을 꼭 안고 침대에 누워 천천히 눈을 감았다....송윤희가 오성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그동안 남편인 오강호는 송윤희를 찾지 않았고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송윤희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적어도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 지금이 비교적 편안한 나날이었다.이날 아침, 송윤지는 출근했고 송윤희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코너에서 갑자기 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송윤희는 반응할 새도 없이 누군가에게 입과 코가 막힌 채 인적 없는 구석으로 끌려갔다.송윤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고 가까스로 벗어나 마주한 것은 그녀가 평생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악마의 눈이었다.“오강호? 너...”“흥! 여보, 잘 지냈어?”오강호는 뻔뻔하게 웃으며 눈빛과 표정에 계산된 악의가 가득했다.오강호는 몰락한 모습 그대로였다. 더럽고 낡은 옷에 온몸에서는 악취가 났고 머리는 기름져 보였다.송윤희는 두려움에
임지강은 송윤지를 태운 채 차를 돌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갔다.차 안은 충분히 따뜻했지만, 송윤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고 몸도 떨고 있었다.임지강은 대화를 시도하며 송윤지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아, 집이 이 근처인가요?”“여기서 조금 더 가야 해요.”송윤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평소엔 이 길로 안 다녀요. 오늘은 퇴근이 좀 늦어서 여기로 가면 더 가까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따라올 줄은 몰랐어요...”“이런 어둡고 조용한 골목은 조심해야 해요.”“네...”송윤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고개를 들어 임지강을 바라보았다.“근데... 임 대표님,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임지강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임지강은 자신이 송윤지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사실 임지강은 최근 송윤지를 계속 몰래 따라다녔다. 혹시 집으로 가는 길에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돼서였다. 송윤지의 집은 중간 정도의 가격대인 아파트 단지에 있었고 시내 중심가라 주변은 늘 붐볐기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임지강은 입술이 바짝 말랐고 대충 둘러댔다.“제 친구가 근처에서 작은 바를 운영해요. 제가 가서 좀 도와줬거든요.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바람 쐬러 골목에 나갔는데... 우연히 송윤지 씨를 만난 거죠.”“술을 마셨어요?”송윤지는 눈을 크게 뜨고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차 안에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송윤지는 여전히 걱정하며 말했다.“술 마셨으면 운전하면 안 되죠!”“아, 뭐...”임지강은 자신이 벌인 거짓말이 허술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태연하게 계속 이어갔다.“아니에요. 제가 마신 게 아니라 친구가 마신 거예요. 그래서 친구랑 같이 바람 쐬러 간 거죠.”“그럼, 그 친구분은요?”“그게...”“친구를 골목에 혼자 두고 온 거예요?”“그러니까...”임지강은 더 이상 거짓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자신이 왜 이렇게 허둥대는지 이해
송윤지는 언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쪽에서 다가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지강이었다.하지만 송윤지는 왜 언니 송윤희가 임지강을 보고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송윤희는 본능적으로 송윤지를 뒤로 물리며 자신이 앞에 섰다.“언니, 왜 그래요?”송윤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임지강도 송윤희를 보고 시선이 약간 흔들렸다. 하지만 이전의 냉랭함과는 달랐다. 오히려 임지강의 눈빛에는 어딘가 간절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송윤희는 당황스러웠다.강렬하고 단호한 인상만 풍기던 임지강에게서 이런 간절한 눈빛을 본 건 처음이었다.“언니.”송윤지가 조용히 말했다.“이쪽은 임 대표님, 임지강 씨야. 우리 반 아이의 가족분이셔.”“아... 그래?”송윤희의 목소리가 떨렸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임 선생님은 아이가 있으신가 봐요? 그럼... 결혼하셨겠네요?”“그런 거 아니야.”송윤지가 설명했다.“이분은 아이의 외종할아버지셔.”“네, 맞습니다.”임지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임지강은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말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송윤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송윤지는 임지강의 말에서 어떤 의미도 읽지 못했지만, 송윤희는 송윤지를 옆으로 끌고 가서 망설이며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윤지야, 너... 조심해.”송윤지는 송윤희가 남편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송윤지는 언니를 안심시키려 말했다.“걱정하지 마. 여긴 국제 유치원이야. 보안이 철저해서 형부가 여길 찾아와도 나를 어쩌지 못할 거야.”“내가 말하는 건 네 형부뿐만이 아니야. 그리고...”송윤희는 말끝을 흐렸다.송윤희는 몰래 고개를 돌려 멀리 서 있는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송윤지의 손을 꼭 쥐었다.2년 전, 송윤지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송윤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비록 나약한 성격이지만 모든 걸 걸고 동생을 지키고 싶었다.동생이 간신히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시작한 지금, 임지강이라는 남
이날은 송윤지가 처음으로 지각한 날이었다.송윤지는 허둥지둥 유치원 정문을 향해 달렸다. 평소 같았으면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건넸겠지만, 오늘은 그럴 틈조차 없었다.전력으로 달려 출근 체크를 위해 지문을 찍었지만 이미 출근 시간이 1분 지나 있었다.송윤지는 몹시 아쉬웠다.단 1분의 지각으로 이번 달 개근 보너스를 놓치고 말았다.사무실로 돌아온 송윤지는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 중이라 자리에 없음을 확인했다.오늘 오전에 마침 수업이 없었던 송윤지는 깊게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어젯밤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송윤지는 자신의 부주의함을 자책했다. 임지강의 차에서 잠들었던 것도 모자라 그렇게 오래 자다니...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이 밝아져 있었다.송윤지는 임지강의 외투에 싸여 있었고 차의 좌석은 어느새 평평하게 눕혀져 있었다. 임지강은 차 밖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새벽의 여명은 그의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한층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송윤지는 황급히 차에서 내려섰다. 전날의 드레스를 갈아입지도 못한 상태였다. 임지강은 송윤지를 근처에 있는 우성 호텔로 데려갔고 운전 중에 이미 송윤지가 갈아입을 방을 예약해 두었다.방 안에 들어가 보니 백화점 매니저가 여러 브랜드의 옷을 들고 송윤지를 기다리고 있었다.지금 송윤지가 입고 있는 옷은 바로 임지강이 골라준 크림색 투피스였다.세련된 샤넬풍의 디자인으로 단정하면서도 발랄했고 색상은 송윤지의 피부 톤과도 잘 어울렸다.그 옷은 마치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맞춘 듯 완벽하게 잘 맞았다.송윤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모습과 미소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송 선생님, 오셨군요?”원장이 문을 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왔다.송윤지는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출퇴근 기록을 확인해 보니 오늘 1분 지각하셨더군요.”원장은 부드럽게 말했다.“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평소에 성실히 일하시고 헌신적으로 일해 주시는 분이니
“괜찮아요?”임지강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송윤지를 바라보았다.송윤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송윤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분위기는 다시 어색해졌다.임지강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렸다.“저... 제가 농담 하나 해 드릴까요?”“토마토가 끓는 국물에 뛰어들었어요. 그래서 토마토수프가 됐죠. 그런데 그 친구 계란이 구하려고 같이 뛰어들었는데, 그 결과는... 토마토 계란 수프! 하하하...”송윤지는 멍하니 임지강을 바라보았다.임지강은 두 번 웃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송윤지를 바라보았다.송윤지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고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이 가득했다.“어... 재미없었어요?”송윤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농담은 별로 재미없었지만, 임지강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차는 도로 옆에 멈춰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엔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송윤지는 의자의 머리받침에 몸을 기댔고 피로가 몰려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하루 종일 피곤했던 송윤지는 따뜻한 차 안에서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임지강은 시동을 끄지 않은 채 히터의 온도를 적당히 조절했다.임지강은 송윤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송윤지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었고 이마와 입술에 키스하고 싶었다.그러나 임지강의 손은 송윤지의 얼굴 가까이 가기도 전에 다시 멈춰졌다. 몇 번이나 손을 멈췄던 임지강은 결국 그 욕망을 억누르기로 결심했다.송윤지를 깨울까 봐 두려웠다.만약 송윤지가 깨어난다면 이 순간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게 될 테니까.송윤지가 잠든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사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는 어떤 접점도 생기지 말아야 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은 임지강의 삶에 어렵게 찾아온 선물 같았다.송윤지가 몸을 조금 뒤척이자, 임지강은 숨을 죽였다. 임지강은 조심스럽게 외투를 덮어주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송윤지는 거절하려 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남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송윤지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임지강의 말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았다.송윤지에게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을 거고 나쁜 사람이 절대 아닐 거라는 믿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왔다.이상하게도 송윤지는 임지강에게 본능적인 신뢰를 느꼈다....임지강은 운전해서 송윤지를 놀이공원으로 데려갔다.오늘은 휴업일이라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송윤지가 놀이공원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마치 마법이 펼쳐진 듯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송윤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불빛이 반짝였고 곧 주변의 조명들이 송윤지의 발걸음을 따라 하나씩 켜지며 동화 속 세계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커다란 눈을 뜨고 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멀리 하늘 높이 솟아오른 대관람차는 형형색색의 네온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가까이에서는 회전목마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그 옆에는 솜사탕 모양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송윤지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고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여기 마음에 드나요?” 임지강이 부드럽게 물었다.“네!”송윤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눈앞의 남자가 바로 이 꿈같은 놀이공원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여기서 좀 놀지 않을래요?” 임지강은 송윤지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이 순간부터 모든 놀이기구는 송윤지 씨만을 위해 운행할 거예요.”“아니에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송윤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그냥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그럼... 제가 사진 몇 장 찍어드릴까요?”송윤지는 잠시 멍하니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의 깊은 눈빛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번져 나오는 듯했다.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이 감정에 송윤지는 살짝 당황했다.송윤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이걸 설렘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배현진과 함께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
환호와 축복 속에서 배윤아는 감동과 약간의 수줍음을 담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최군성은 그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배윤아를 공주님처럼 안아 올렸다. 그 순간 밤하늘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며 파티장은 꿈같은 황홀함으로 물들었다.연회는 떠들썩하게 흘러갔다. 모두가 최군성이 평소처럼 활발하고 외향적인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온전히 곁에 있는 배윤아에게만 집중했다. 어색한 미소를 짓거나 배윤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평소 친구들과의 유쾌한 소란도 없었다. 최군성은 조용하고도 차분한 매력을 발산하며 온전히 배윤아에게만 시선을 맞췄다.하객들을 응대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최군형과 강소아의 몫이 되었다.두 사람은 부부답게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절도 있고 품격 있게 하객들을 맞았다.한편, 임지강은 구석에 서서 연회의 활기와 웃음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듯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임지강은 와인을 천천히 삼키며 입안에 퍼지는 씁쓸한 맛에 잠시 눈을 감았다.이번 연회를 위해 배현진 역시 귀국했다. 배현진은 송윤지의 곁에 서 있었다. 배현진은 송윤지에게 어깨를 감싸는 숄을 걸쳐주며 송윤지 손에 있는 와인을 포도 주스로 바꿔주었다.송윤지는 배현진을 향해 미소 지으며, 그 눈빛엔 반짝이는 빛과 함께 어딘지 모를 온기가 스며 있었다.임지강의 가슴이 조여 오는 듯했다. 예전에 이런 눈빛은 오직 임지강을 향해 있었었다.연회는 젊은이들의 무대였고 어른들은 각자 목적에 따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최연준과 강서연 부부는 배경원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고 최씨 가문과 배씨 가문에 어떻게든 엮이려는 사람들이 아첨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육경섭은 술기운이 오르자,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구들과 작은 방에서 카드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임우정은 육경섭을 대신해 사람들을 응대하며 상황을 정리한 뒤, 구석에 서 있는 임지강을 발견했다.“오늘 정계 인사들도 꽤 많이 왔어.”임우정은 임지강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