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멍한 상태였던 소한은 순식간에 칼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그 산적을 베어 죽였다.뒤를 돌았을 때, 정암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지만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소한이 놀란 눈으로 정암을 바라보았다. 정암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소한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입을 열자 결국 피를 토해냈다. “정암!” 소한은 놀라 소리치며 정암에게 달려갔다.하지만 정암은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고, 뒤로 쓰러졌다.다행히 소한이 정암이 땅에 부딪히기 전에 잡아냈다.하지만…정암의 가슴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소한은 당황하여 칼을 떨어뜨리고 정암의 상처를 양손으로 막았다. “괜찮다, 곧 너를 데리고 하산할 것이다! 여봐라! 아무나 와보거라!”산길이 험했기에 그는 혼자서 정암을 데리고 내려갈 수 없었다.하지만 산적들이 아직 저항하고 있었기에, 소한의 부하들은 그를 도울 수 없었다.피가 손가락 사이로 계속 흘러나왔다.소한은 평소에 칼을 자주 쥐고 있었기에 일반 남성보다 손바닥이 넓고 단단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소한은 자신의 손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너무 작은 나머지 이렇게 작은 상처조차 막을 수 없었다!정암은 소한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한의 손을 잡은 채 피를 머금은 입을 열고 힘겹게 말했다.“장, 장군님...”소한의 얼굴은 창백해졌다.평소 차갑고 냉정했던 그의 눈빛은 지금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정암은 소한이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괜, 괜찮습니다...”소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다. 괜찮다…하지만 피는 계속 멈추지 않았다!소한의 두 눈은 끝없는 핏 빛에 찔리는 듯 아파왔다.그런데 정암은 천천히 손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가져가더니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향낭 하나를 꺼냈다.소한은 한눈에 그 향낭이 김단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하지만 지금의 향낭은 피로 얼룩져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정암은 당황하며 피투성이의 입으
산에서 내려올 때쯤, 해가 벌써 떠올랐다.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었다.소한은 무의식적으로 햇빛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고개를 돌렸다.미간은 찌푸려져 있었고, 그의 차가운 분위기는 더욱 어둡게 변했다.부하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조용히 숲에 숨겨둔 말과 갑옷을 소한에게 가져다주었다.소한은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서쪽에 있는 성으로 향했다.말이 천천히 걸어갔고, 소한은 위에 올라 자신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이렇게 심하게 그의 그림자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이전에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 그의 그림자는 줄곧 꼿꼿하고 올곧았다.반면에 왕여는 항상 말 위에서 가만 있지 못하고 노상과 장난을 치곤 했고, 그들의 그림자도 항상 뒤엉켜 있었다.때로는 장난을 조절하지 못하고 소한의 말에 부딪히기도 했기에, 세 사람의 그림자가 뒤엉키곤 했다.그에 비해 정암은 세 사람 중 가장 침착하고 믿음직했다. 정암은 가장 오래 군에 있었고 나이도 가장 많았다.그의 그림자는 항상 곧고 당당했다.한번은 소한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정암과 나란히 걸으며 그림자를 비교해 보았고, 자신이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했다.하지만 오늘은 땅 위에는 얽히고설킨 그림자도, 곧고 당당한 그림자도 없었다.오직 고독한 그림자 하나만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것처럼 처량했다.하지만 이번에도 승리를 거둔 것이 분명했다.산적 두목은 이미 죽었고, 부두목은 생포되었다. 돌아가면 심문을 통해 산적들과 결탁한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나머지 산적들은 죽거나 도망쳐 더 이상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마을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산적 문제가 마침내 해결되었다. 그러니, 승리한 셈이다.하…승리라고?그의 형제 두 명이 저 산에서 죽었고, 그중 한 명은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이것이 승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소한의 눈은 붉은 빛을 띄웠다. 그 빛에 앞에 있던 그림자가 마치
김단은 사실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부대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며칠 동안 말을 타고 쉬지 않고 달려왔다. 소한이 어젯밤 정암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온 것이다!하지만… 부대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녀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가까이 다가가면 자신이 수없이 부정했지만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진실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부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그녀는 정암이 자신을 알아보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부대도 멈춰 섰다.김단은 놀라 부대의 가장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그림자가 햇빛을 등지고 서 있어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붉게 보였다.저건…소한?김단은 믿을 수가 없었다.김단의 기억 속 소한은 항상 활기차고 당당했는데, 지금은 매우 지쳐 보였다.설마, 진 것인가?소한조차 그 산적들을 이기지 못했단 말인가?그렇다면, 정암은? 김단은 소한 뒤에 있는 부대를 바라보았다.부대원들 모두 소한처럼 온몸에 피가 묻어 있었다.정암도 다쳤을까?다른 사람들처럼 정암도 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김단은 정확히 볼 수 없었고, 부대가 계속 멈춰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던 병사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정암은 없었다.김단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소한의 곁을 지나갈 때 익숙한 향기가 맡아졌지만, 김단은 애써 무시했다.그녀는 소한을 쳐다보지 않고 계속해서 부대 안으로 걸어갔다.소한은 순간 고삐를 꽉 쥐었다.가슴이 답답하고 아팠지만, 소한은 고개를 숙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소한은 김단이 자신을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을 보지 못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김단의 마음에는 오직 정암만 있었다.김단은 부대의 가장 앞쪽까지 가 말에서 내려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정암이 없었다.두 번째 줄에도 없
“정암...”김단은 작은 소리로 불렀다. 목소리는 가볍고 가늘어서 혹여나 정암을 깨울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그를 깨우고 싶었다!그래서 그녀는 다시 좀 큰 소리로 불렀다.“정암, 저에요, 내가 왔어요.”말 등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그녀는 더 큰 소리로 불렀고, 심지어 정암을 흔들기 시작했다.“정암, 날 놀라게 하지 말고 일어나 봐요!”그러나 정암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영원히 일어날 수 없다.김단이 정암을 너무 흔들어 말에서 떨어지려 하자, 누군가 김단 뒤에 나타나, 그녀를 안았다.“정암은 죽었어!”김단은 믿지 않고 발버둥 치며 정암을 깨우려 했다.하지만, 김단 뒤에 있는 사람은 그녀를 계속 뒤로 끌고 갔다.“정암은 죽었어! 죽었다고!”죽었다...김단은 온몸이 굳었다. 그녀는 정암이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을 때, 한 병사가 급히 다가가 그녀를 안전하게 옮긴 장면을 봤다. 말 등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생기도 없었다.죽었다고?조모처럼 자기를 버린 건가?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김단은 정암의 꼭 감은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그가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기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그녀는 드디어 정암이 정말로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이때, 뒤에서 익숙한 향기가 다시 전해오자, 김단은 멍하더니 뒤를 돌아봤다. 소한이다.아니야!김단은 소한 몸을 수색하면서 말했다.“돌려주세요! 돌려줘!”그녀가 정암에게 준 향낭의 향기다. 그녀가 직접 고른 향료여서 그녀가 제일 익숙하다. 향낭이 왜 소한에게 있는 거지? 소한은 그 향낭을 가질 자격이 없다! 향낭은 정암의 것이다. 그녀가 정암에게 선물한 것이다!그녀는 소한의 옷을 마구 잡아당기면서도 그의 몸에도 상처투성인 것을 보지 못한 듯싶다.그 산적들은 극악무도한 놈들이고 심지어 소한을 몇 차례 동안 공격했는데, 그는 무사할 수가 없다.하지만, 김단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에는 소한이 없다.그녀는 소한의 상처를
관아의 시체 안치실에는 열 몇구의 시신이 놓여 있다.소한이 도착했을 때, 김단은 정암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고 있었다.보고하는 사람은 그녀가 난리 치고 있다고 했는데, 그녀는 난리 치기는커녕 매우 조용했다.그녀는 물 한 대야를 옆에 놓고 손수건을 적시고 정암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조금씩 닦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암의 얼굴이 깨끗해졌다.김단은 손수건을 씻고 다시 정암의 손을 닦았다.“정암 부모님께 정암의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지만, 소한은 그녀가 자기에게 한 말인지 알아들었다.그는 눈썹이 내려앉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암을 데리고 한양에 간다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오!”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으면 시신이 어디에 묻는지는 개의치 말아야 하듯이 이 갑옷을 입는 순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야 한다.정암은 그들이 그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하물며, 지금 막 봄이어서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질주해서 달려와도 꼬박 5일이나 걸렸는데, 이렇게 시신을 싣고 간다면 밤낮 가리지 않고 계속 달려도 10일 정도는 걸려야 한양에 도착할 것이다. 10일이면 정암의 시신은 썩었을 것이다.정암의 부모님께 아들의 시신이 썩고 구더기가 난 모습을 보게 할 바에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김단은 세심하게 정암 손가락 세에 있는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는 무슨 대수롭지 않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저는 소 장군이 뭘 걱정하시는지 알아요. 이미 오작에게 물었습니다. 육계, 서미초 등을 갈아서 시신에 바르면 단기간에는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소한은 눈썹이 찌그러지더니 오작을 쳐다봤다.오작은 고개를 끄덕였다.“거기다 관 내에 석회를 한층 더 깔면 시신은 반달 정도 썩지 않을 것입니다.”반달이면 그녀가 한양에 도착하기에 충분하다.소한은 김단의 성격을 너무 잘 안다. 그녀가 하겠다는 일은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그래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조선의 어느 음력 12월 28일.차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오전에 시작했던 빨래를 간신히 마친 김단은, 얼어붙어 감각을 잃은 파랗게 질린 손을 닦을 틈도 없이 세답방의 나인에게 불려갔다.“어서 가보게. 진산군댁에서 자네를 데리러 왔네.”나인의 말에 김단은 자리에 얼어붙었다.진산군댁, 그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였다.한때 그녀도 그 댁의 귀한 여식으로 15년을 자랐었다. 3년 전, 자기가 진짜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정2품 진산군댁의 안주인인 정부인 임씨와 같은 해에 출산했던 유모는 임종 직전, 죄책감이라도 들었는지 자기가 두 아이를 바꿨다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김단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부부가 자신의 친딸, 임원을 상봉한 것에 감격스러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녀와 부녀의 모습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5년간,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을 한 번도 친부모가 아니라고 의심한 적 없었다.진산군은 안색이 어두워진 김단에게 앞으로도 이 집안의 여식으로 남아 임원의 언니로서 살아가도 좋다고 했다. 임씨도 그녀를 친딸처럼 대하겠다고 약조했다.하나, 궁궐에 들어 공주자가의 유리그릇을 깨트린 임원을 발견한 부부는, 임원의 몸종이 김단을 모함할 때조차 임씨 부부는 망설임 없이 수양딸이었던 김단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웠다. 공주는 분에 겨워 그녀를 세답방의 무수리로 쫓아냈으나, 한때 부모님이었던 그들은 임원의 옆에 서서 멀뚱히 지켜보기만 했다.그날, 김단은 그들이 자신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멍하니 서서 뭐 하시오? 그 댁 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오.”나인의 독촉 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세답방의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한 사내가 서 있었다.희미한 햇살이 비친 문 쪽에서 홀로 고고히 서 있는 사내의 얼굴을 마주한 김단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랫동안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던 가슴이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은
그 목소리에 김단은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전 무감각해진 줄 알았던 그녀의 심장은 익숙한 목소리에 활력을 얻은 듯 천천히 뛰었다.그녀는 천천히 마차 안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린 나이에 호국 장군이 된 그녀의 옛 정혼자, 소한이다. 그녀는 얼른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장군님이시군요.”미간을 살짝 찌푸린 소한의 시선이 다시 그녀의 발목을 향했다. “낭자, 진산군댁에 가는 길이었소?”고개를 숙인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한동안 침묵이 흘렀다.소한은 그녀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알고 있던 그녀는 항상 곁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여인이었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집안에서 정해준 혼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견뎠었다. 가끔은 지치지 않고 떠드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떡을 집어넣기도 했지만, 그 순간조차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었던 그녀였다. 떡으로 입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반 시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활달했던 여인이었다. 못 본 사이, 김단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고 전처럼 떠들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소한은 그녀를 부축하는 대신 냉랭하게 말했다. “마침, 궐에 들던 길이었소. 이 마차를 타고 돌아가시오.”그녀가 거절하기도 전에 그가 한마디 더 했다. “다쳤으면 무리하지 마시오. 본인은 몰라도, 그 댁 큰 마님께서 속상해할 것이오.”그의 목소리에는 반박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다. 조모님은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무수리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조모님께서 중전마마께 간청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돌아온 그녀를 보게 되면, 조모님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라 여긴 김단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쇤네, 장군님께 감읍할 따름입니다.”말을 마친 김단은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가까이선 본 소한은 3년 전과 달리 키가 훌쩍 커져 있었고 체격도 다부져졌다.최근 전쟁에서 승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직도 전
김단이 전에 묵었던 별당은 매화당이었다.정원에 무수한 매화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꽃샘추위가 찾아올 즈음 핀 매화꽃들은 초봄까지 지지 않았다. 그녀가 어릴 적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매화라는 소리에 진산군은 조선 팔도로 사람을 보내 매화나무를 구해왔고 그 종류는 다양했다. 그 후로 매년 수백 냥의 은자를 들여가며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매화나무를 극진히 돌봤다. 하지만 매화당에 핀 매화꽃이 아름답다는 임원의 말 한마디에 매화당은 곧 임원의 별당이 되었다.그 순간에는 자기 별당을 빼앗긴 것 같아 분하기도 했으나, 지금 돌이켜보니 이 집안의 친딸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었다. 이 집안의 물건과 사람들은 전부 임원의 것이었다.김단, 그녀야말로 남의 자리를 꿰찬 외부인이었다. 길을 안내하던 몸종이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아씨를 모셨던 몸종이 혼인하여 출가하는 바람에 마님께서 쇤네를 아씨께 보내셨습니다. 쇤네는 숙희라 하옵고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시거든 쇤네를 불러 말씀하시면 됩니다.”숙희는 통통한 볼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단은 그녀가 눈에 익었다.“혹 전에 오라버니를 모시지 않았더냐?”숙희가 놀란 듯 답했다.“쇤네를 알아보시겠습니까?”김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예전에 임학의 외별당에 드나들면서 몇 번 마주쳤던 기억이 있었다. 그녀는 임학의 몸종을 자기에게 붙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분명 3년 전만 해도 임학은 그녀가 임원을 해치려 한다고 오해하며 그녀에게 적대심을 품었다.그런 사람의 몸종을 붙인 거로 보아, 감시하려는 게 틀림없었다.새로 안내받은 별당은 그리 넓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이면 연꽃이 활짝 피어 꽤 아름다웠을 테지만, 지금은 연꽃이 다 지고 시든 가지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다행히 실내에 불을 지핀 덕에 따뜻했다.미리 따뜻한 물을 준비해 둔 숙희는 김단의 목욕을 돕기 위해 나섰으나, 김단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혼자 하면
관아의 시체 안치실에는 열 몇구의 시신이 놓여 있다.소한이 도착했을 때, 김단은 정암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고 있었다.보고하는 사람은 그녀가 난리 치고 있다고 했는데, 그녀는 난리 치기는커녕 매우 조용했다.그녀는 물 한 대야를 옆에 놓고 손수건을 적시고 정암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조금씩 닦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암의 얼굴이 깨끗해졌다.김단은 손수건을 씻고 다시 정암의 손을 닦았다.“정암 부모님께 정암의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지만, 소한은 그녀가 자기에게 한 말인지 알아들었다.그는 눈썹이 내려앉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암을 데리고 한양에 간다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오!”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으면 시신이 어디에 묻는지는 개의치 말아야 하듯이 이 갑옷을 입는 순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야 한다.정암은 그들이 그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하물며, 지금 막 봄이어서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질주해서 달려와도 꼬박 5일이나 걸렸는데, 이렇게 시신을 싣고 간다면 밤낮 가리지 않고 계속 달려도 10일 정도는 걸려야 한양에 도착할 것이다. 10일이면 정암의 시신은 썩었을 것이다.정암의 부모님께 아들의 시신이 썩고 구더기가 난 모습을 보게 할 바에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김단은 세심하게 정암 손가락 세에 있는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는 무슨 대수롭지 않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저는 소 장군이 뭘 걱정하시는지 알아요. 이미 오작에게 물었습니다. 육계, 서미초 등을 갈아서 시신에 바르면 단기간에는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소한은 눈썹이 찌그러지더니 오작을 쳐다봤다.오작은 고개를 끄덕였다.“거기다 관 내에 석회를 한층 더 깔면 시신은 반달 정도 썩지 않을 것입니다.”반달이면 그녀가 한양에 도착하기에 충분하다.소한은 김단의 성격을 너무 잘 안다. 그녀가 하겠다는 일은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그래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정암...”김단은 작은 소리로 불렀다. 목소리는 가볍고 가늘어서 혹여나 정암을 깨울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그를 깨우고 싶었다!그래서 그녀는 다시 좀 큰 소리로 불렀다.“정암, 저에요, 내가 왔어요.”말 등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그녀는 더 큰 소리로 불렀고, 심지어 정암을 흔들기 시작했다.“정암, 날 놀라게 하지 말고 일어나 봐요!”그러나 정암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영원히 일어날 수 없다.김단이 정암을 너무 흔들어 말에서 떨어지려 하자, 누군가 김단 뒤에 나타나, 그녀를 안았다.“정암은 죽었어!”김단은 믿지 않고 발버둥 치며 정암을 깨우려 했다.하지만, 김단 뒤에 있는 사람은 그녀를 계속 뒤로 끌고 갔다.“정암은 죽었어! 죽었다고!”죽었다...김단은 온몸이 굳었다. 그녀는 정암이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을 때, 한 병사가 급히 다가가 그녀를 안전하게 옮긴 장면을 봤다. 말 등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생기도 없었다.죽었다고?조모처럼 자기를 버린 건가?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김단은 정암의 꼭 감은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그가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기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그녀는 드디어 정암이 정말로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이때, 뒤에서 익숙한 향기가 다시 전해오자, 김단은 멍하더니 뒤를 돌아봤다. 소한이다.아니야!김단은 소한 몸을 수색하면서 말했다.“돌려주세요! 돌려줘!”그녀가 정암에게 준 향낭의 향기다. 그녀가 직접 고른 향료여서 그녀가 제일 익숙하다. 향낭이 왜 소한에게 있는 거지? 소한은 그 향낭을 가질 자격이 없다! 향낭은 정암의 것이다. 그녀가 정암에게 선물한 것이다!그녀는 소한의 옷을 마구 잡아당기면서도 그의 몸에도 상처투성인 것을 보지 못한 듯싶다.그 산적들은 극악무도한 놈들이고 심지어 소한을 몇 차례 동안 공격했는데, 그는 무사할 수가 없다.하지만, 김단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에는 소한이 없다.그녀는 소한의 상처를
김단은 사실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부대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며칠 동안 말을 타고 쉬지 않고 달려왔다. 소한이 어젯밤 정암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온 것이다!하지만… 부대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녀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가까이 다가가면 자신이 수없이 부정했지만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진실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부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그녀는 정암이 자신을 알아보고 자신에게 달려올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부대도 멈춰 섰다.김단은 놀라 부대의 가장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그림자가 햇빛을 등지고 서 있어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붉게 보였다.저건…소한?김단은 믿을 수가 없었다.김단의 기억 속 소한은 항상 활기차고 당당했는데, 지금은 매우 지쳐 보였다.설마, 진 것인가?소한조차 그 산적들을 이기지 못했단 말인가?그렇다면, 정암은? 김단은 소한 뒤에 있는 부대를 바라보았다.부대원들 모두 소한처럼 온몸에 피가 묻어 있었다.정암도 다쳤을까?다른 사람들처럼 정암도 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김단은 정확히 볼 수 없었고, 부대가 계속 멈춰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던 병사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정암은 없었다.김단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소한의 곁을 지나갈 때 익숙한 향기가 맡아졌지만, 김단은 애써 무시했다.그녀는 소한을 쳐다보지 않고 계속해서 부대 안으로 걸어갔다.소한은 순간 고삐를 꽉 쥐었다.가슴이 답답하고 아팠지만, 소한은 고개를 숙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소한은 김단이 자신을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을 보지 못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김단의 마음에는 오직 정암만 있었다.김단은 부대의 가장 앞쪽까지 가 말에서 내려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정암이 없었다.두 번째 줄에도 없
산에서 내려올 때쯤, 해가 벌써 떠올랐다.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었다.소한은 무의식적으로 햇빛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고개를 돌렸다.미간은 찌푸려져 있었고, 그의 차가운 분위기는 더욱 어둡게 변했다.부하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조용히 숲에 숨겨둔 말과 갑옷을 소한에게 가져다주었다.소한은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서쪽에 있는 성으로 향했다.말이 천천히 걸어갔고, 소한은 위에 올라 자신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이렇게 심하게 그의 그림자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이전에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 그의 그림자는 줄곧 꼿꼿하고 올곧았다.반면에 왕여는 항상 말 위에서 가만 있지 못하고 노상과 장난을 치곤 했고, 그들의 그림자도 항상 뒤엉켜 있었다.때로는 장난을 조절하지 못하고 소한의 말에 부딪히기도 했기에, 세 사람의 그림자가 뒤엉키곤 했다.그에 비해 정암은 세 사람 중 가장 침착하고 믿음직했다. 정암은 가장 오래 군에 있었고 나이도 가장 많았다.그의 그림자는 항상 곧고 당당했다.한번은 소한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정암과 나란히 걸으며 그림자를 비교해 보았고, 자신이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했다.하지만 오늘은 땅 위에는 얽히고설킨 그림자도, 곧고 당당한 그림자도 없었다.오직 고독한 그림자 하나만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것처럼 처량했다.하지만 이번에도 승리를 거둔 것이 분명했다.산적 두목은 이미 죽었고, 부두목은 생포되었다. 돌아가면 심문을 통해 산적들과 결탁한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나머지 산적들은 죽거나 도망쳐 더 이상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마을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산적 문제가 마침내 해결되었다. 그러니, 승리한 셈이다.하…승리라고?그의 형제 두 명이 저 산에서 죽었고, 그중 한 명은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이것이 승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소한의 눈은 붉은 빛을 띄웠다. 그 빛에 앞에 있던 그림자가 마치
순간 멍한 상태였던 소한은 순식간에 칼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그 산적을 베어 죽였다.뒤를 돌았을 때, 정암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지만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소한이 놀란 눈으로 정암을 바라보았다. 정암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소한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입을 열자 결국 피를 토해냈다. “정암!” 소한은 놀라 소리치며 정암에게 달려갔다.하지만 정암은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고, 뒤로 쓰러졌다.다행히 소한이 정암이 땅에 부딪히기 전에 잡아냈다.하지만…정암의 가슴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소한은 당황하여 칼을 떨어뜨리고 정암의 상처를 양손으로 막았다. “괜찮다, 곧 너를 데리고 하산할 것이다! 여봐라! 아무나 와보거라!”산길이 험했기에 그는 혼자서 정암을 데리고 내려갈 수 없었다.하지만 산적들이 아직 저항하고 있었기에, 소한의 부하들은 그를 도울 수 없었다.피가 손가락 사이로 계속 흘러나왔다.소한은 평소에 칼을 자주 쥐고 있었기에 일반 남성보다 손바닥이 넓고 단단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소한은 자신의 손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너무 작은 나머지 이렇게 작은 상처조차 막을 수 없었다!정암은 소한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한의 손을 잡은 채 피를 머금은 입을 열고 힘겹게 말했다.“장, 장군님...”소한의 얼굴은 창백해졌다.평소 차갑고 냉정했던 그의 눈빛은 지금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정암은 소한이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괜, 괜찮습니다...”소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다. 괜찮다…하지만 피는 계속 멈추지 않았다!소한의 두 눈은 끝없는 핏 빛에 찔리는 듯 아파왔다.그런데 정암은 천천히 손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가져가더니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향낭 하나를 꺼냈다.소한은 한눈에 그 향낭이 김단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하지만 지금의 향낭은 피로 얼룩져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정암은 당황하며 피투성이의 입으
공격!순간, 어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칼날을 번쩍이며 산적들을 향해 공격했다.산적들은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하지만 오랜 시간 싸움을 해온 산적들은 두목의 명령에 따라 곧장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꺼내 들고 맞섰다.전투는 순식간에 격렬해졌다.소한은 재빨리 갇혀 있는 정암에게 다가가 칼로 쇠사슬을 끊어버렸다.그때 산적 두목이 이 상황을 눈치채었고, 옆에 있던 칼을 들고 소한을 향해 공격해 왔다.소한은 뒤에서 다가오는 살기를 느끼고 몸을 피하며 장칼을 휘둘러 산적 두목을 공격했다.그런데 놀랍게도, 산적 두목의 무술 실력은 소한과 비슷하였다.두 사람은 팽팽하게 맞서 싸우며 쉽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소한은 순간 정암이 우리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산적이 정암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다행히도, 정암에게는 칼이 있었고, 공격을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하지만 정암은 7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며 심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몸이 매우 약해져있었다. 그는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고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정암에게 다시 위협이 가해지자, 소한은 얼굴을 찌푸리고 산적 두목을 발로 차 버리고 정암에게 달려갔다.소한은 칼로 산적 두목의 가슴을 찔렀고, 눈빛에 힘이 없는 정암을 보고 말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라!”소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산적 두목이 다시 공격해 왔다.소한은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맞서 싸웠다.주변에는 불길이 치솟았다.산적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지만, 몇몇 강한 산적들은 소한의 부하들을 죽인 뒤 소한을 향해 공격해 왔다.잠시 뒤, 소한은 네 명의 산적들에게 포위되었다.산적 두목은 소한을 쏘아보며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 네놈이 그 영웅이라고? 이런 수준을 가지고?”그들은 진정한 영웅은 과거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소한은 왜 이들이 자신에게 분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세 명의 부하 장군이 이곳에서 죽은 것을 떠올리면 자신의 분노가
육맥산은 당우리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겹겹이 쌓인 봉우리가 마치 여섯 개의 봉우리처럼 보여 육맥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세가 험준하여 방어하기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데다, 산맥이 연결되어 있어 산적들이 다른 산으로 쉽게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산적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다. 물론 이에는 관아와 산적간의 결탁이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깊은 밤.산채 안은 유난히 시끌벅적했다.산적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때 한 산적이 물었다. “두목, 여만안이 약속한 만 냥을 정말 가져올까요?”산적 두목은 한 손에 양다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술병을 든 채 흐릿한 눈빛으로 감옥에 갇힌 남자를 바라보며 비웃었다.“여만안이 말하길, 이번에 온 놈들은 모두 소한의 부하들이라고 했다. 특히 심장에 화살을 맞은 놈, 팔이 잘린 놈, 그리고 감옥에 있는 놈, 이 셋 모두 소한의 부하 장수들이라고 했어.”이 말에 다른 산적이 놀라며 물었다. “소한? 돌궐족의 진형을 깨고 우두머리를 죽였다는 그 젊은 장군 말이십니까?”산적 두목의 표정이 굳어졌다.다른 산적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너무 미화시키는 거 아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그 사람 부하가 우리에게 잡혔겠어?”이 말을 들은 산적 두목은 다시 기분이 풀렸다.그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소 씨 놈 부하 장수 셋 모두 우리에게 당했다. 우리가 이 세 명 중 한 명을 인질로 잡고 있는데, 네가 보기에 소한이 돈을 안 가져올 것 같으냐?”산적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한이 똑똑한 사람이라면 돈을 주고 사람을 데려가겠죠! 하지만 후환이 두렵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을 데리고 복수하러 오면 어떡합니까?!”“겁낼 것 없어. 그 놈이 온다면 여만안이 우리에게 알려줄 테니까. 그때 가서 똑같이 놈을 붙잡아 오면 돼!”“맞아! 그때가 되면 놈을 산채로 잡아 왕에게서 돈을 뜯어 내는 거야!”“하하, 그 말이 맞네! 왕에게서 돈을 받아내자! 원래 우리 몫이
여만안은 소한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침대에는 단 한 사람, 노상이 누워 있었다. 노상은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고, 소한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흐릿했던 그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며 소한 앞으로 갔다. “소인 장군님을 뵙습니다!”목소리가 떨렸고, 슬픔이 묻어났다.소한은 노상의 왼쪽 팔을 바라봤다.노상이 격하게 움직이자 옷소매가 흔들렸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의 왼팔은 어깨뼈 부근에서 잘려 나가 있었다. 소한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했고,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소한은 노상을 일으켜 세우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설명해.”노상은 오랫동안 소한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소한의 말 뜻을 알고 있었다. “저희는 10일 전에 당우리에 도착하여 육맥산 지형을 파악한 후 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적들이 마치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형을 이용해 저희를 기습했습니다. 왕여 종사관은 현장에서 전사했고, 정암 종사관이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저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소한의 차가웠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옆에 있던 여만안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지만, 소한에게 아부를 떨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산적들이 이틀 전에 편지를 보내와서 정 종사관님을 살려주는 대신 금 1만 냥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군님, 걱정 마십시오. 저희 분당현이 돈이 부족하긴 하지만, 백성들에게 돈을 모으라고 하여 정 종사관님을 구해낼 것입니다!”말이 떨어지자 마자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소한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여만안의 어깨를 찔렀다. “여 현령, 잘도 백성들의 돈을 빼앗는구려.”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왕여는 전사했고, 노상은 팔을 잃었으며, 정암은 생사가 불확실하다.여만안은 이런 일을 조정에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산적들에게 돈을 대주려 하고 있다!여만안은 고통스러워하며 얼굴을 찌푸리고는 변명
김단과 정유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무슨 헛소리야!” 정유이는 화가 나서 서화청을 다시 발로 차고 싶었지만, 이성을 유지하고 참았다.서화청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김단도 미간을 찌푸리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힌 채 나즈막하게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우리 아버지가 얘기해 주신 것이오!” 두 여인이 모두 당황하자 서화청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보였다. “주상 전하께서 어제 소식을 받기를, 정암이 사람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크게 패하고 전멸했다지 않소!"서화청은 마지막에 '전멸'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두 글자는 김단의 가슴에 큰 돌덩이가 되어 떨어진 듯,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김단은 그 말에 너무 놀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정유이는 참다못해 서화청에게 달려들었다. “헛소리하지 마! 감히 우리 오라버니를 저주하다니!”정유이의 작은 주먹은 매우 강력했고, 서화청은 두 차례 맞고 어지러워하더니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정유이가 다시 서화청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김단은 숙희를 불러 정유이를 말리라고 했다. “숙희야, 정씨 낭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거라!”그리고 그녀는 정유이에게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마시오. 내가 군대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겠소.”숙희가 정유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고, 김단도 곧바로 뒤따라 나갔다.김단은 말을 빌려 서둘러 군영으로 향했다.비록 그녀는 소한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소한에게서만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당우리의 산적들이 포악하긴 하다만, 전멸했다는 것은…믿기 어렵지 않은가?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김단의 머릿속에는 정암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떠올랐고, 마음이 불안해졌다.간신히 군영 앞에 도착했다.문을 지키는 병사는 김단을 알아보고 인사하며 말했다. “김씨 아가씨, 장군님은 어젯밤에 떠나셨습니다.”“떠나셨다고요?” 김단은 당황한 나머지 대답을 알면서도 되물었다. “어디로 가셨죠?”“당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