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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적매화
그 목소리에 김단은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전 무감각해진 줄 알았던 그녀의 심장은 익숙한 목소리에 활력을 얻은 듯 천천히 뛰었다.

그녀는 천천히 마차 안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린 나이에 호국 장군이 된 그녀의 옛 정혼자, 소한이다.

그녀는 얼른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장군님이시군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소한의 시선이 다시 그녀의 발목을 향했다.

“낭자, 진산군댁에 가는 길이었소?”

고개를 숙인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소한은 그녀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알고 있던 그녀는 항상 곁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여인이었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집안에서 정해준 혼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견뎠었다. 가끔은 지치지 않고 떠드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떡을 집어넣기도 했지만, 그 순간조차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었던 그녀였다. 떡으로 입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반 시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활달했던 여인이었다.

못 본 사이, 김단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고 전처럼 떠들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소한은 그녀를 부축하는 대신 냉랭하게 말했다.

“마침, 궐에 들던 길이었소. 이 마차를 타고 돌아가시오.”

그녀가 거절하기도 전에 그가 한마디 더 했다.

“다쳤으면 무리하지 마시오. 본인은 몰라도, 그 댁 큰 마님께서 속상해할 것이오.”

그의 목소리에는 반박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다.

조모님은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무수리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조모님께서 중전마마께 간청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돌아온 그녀를 보게 되면, 조모님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라 여긴 김단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쇤네, 장군님께 감읍할 따름입니다.”

말을 마친 김단은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

가까이선 본 소한은 3년 전과 달리 키가 훌쩍 커져 있었고 체격도 다부져졌다.

최근 전쟁에서 승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직도 전장의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를 스쳐 지나는 순간, 김단은 자기도 모르고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내였다. 비록 그녀에게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 사내가 좋았다. 모두에게 얼음처럼 차가운 사내이니, 자기만 노력하면 언젠간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임원을 바라보는 그의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에,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는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런 노력 없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임원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에게 차가운 경고의 눈빛을 쏘아붙이던 소한을 바라보며 김단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삼켰다.

부모님과 오라버니 그리고 정혼자까지 모두 임원의 편에 섰다.

‘그러고 보면 오라버니의 말씀이 일리가 있구나. 임원 대신 15년간 복에 겨워 살았으니, 이 3년으로 그 빚을 갚은 셈이구나.’

납득을 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억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던 사람들이 아무 잘못도 없는 자기의 등에 칼을 꽂았는데 어찌 분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차 안은 밖보다 훨씬 따듯했는데, 안에서 소한이 자주 사용하던 향로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옆에는 손난로와 수정과 한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임원이 좋아하는 방앗간의 것이었다.

친딸이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임씨 부인은 그녀에게 소 장군과의 혼례를 자신의 친딸에게 양보하라는 눈치를 은근히 줬다.

임씨 가문의 적녀와 소씨 가문의 적자가 가문 대 가문으로 맺는 혼례였으니 이치대로라면 임원이 혼례를 올리는 게 옳았으나, 김단은 이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확고한 부인의 태도에 김단은 어쩔 수 없이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3년이나 지난 지금 두 사람이 혼례를 올렸는지, 안 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

소한만 마주하면 저릿하게 아팠고, 이 감정이 투기인지, 억울함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봤자 상관없는 일이다.”

얼마 안 가, 마차는 진산군 관저 앞에 멈추었다.

마부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리는 그녀가 몸을 가누기도 전에 누군가 부드럽게 외쳤다.

“단아!”

임씨 부인, 그녀의 모친이었다.

임학과 임원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온 부인은 두 팔을 벌리며 그녀를 품에 안으려 했다.

마음이 무거워진 그녀는 부인이 자기를 끌어안기 전에 얼른 인사를 올렸다.

“마님, 문안 올립니다.”

그녀의 말에 부인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들은 아마도 김단이 세답방에 온 지 사흘이 되던 날, 나인을 통해 진산군이 전하를 알현하여 그녀가 자기 친딸이 아님을 알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진산군은 그날, 그녀의 성이 임씨가 아니라 김씨라 아뢰었고, 그날부터 임단은 김단으로 개명하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부인은 잠시 당황하더니 눈물을 훔쳤다. 비통함의 눈물인지, 속죄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임씨 부인은 김단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도 타고 너무 말랐구나.”

애지중지 키웠던 여식이 3년 만에 흉한 몰골로 돌아오자 부인은 안쓰러웠다.

“어머님, 속상해하지 마셔요. 이리 돌아온 거로 충분합니다.”

임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임원은 3년 전에 비해 피부가 훨씬 백옥 같아지고 윤기가 흘렀다.

김단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3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고 김단은 그녀를 못 본 체하며 시선을 깔았다.

“그래, 돌아왔으니 되었다. 이리 돌아온 거로 충분하다.”

임씨 부인은 그녀가 타고 온 소씨 가문의 마차를 힐끗 쳐다보았다.

잔뜩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온 아들을 발견한 부인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아들을 흘겨보더니 김단의 손을 잡아 어루만졌다.

“네 오라비가… 네 마음도 모르고 매정하게 굴었구나. 어미가 제대로 혼냈으니 마음에 두지 말거라. 이제부터 아무도 네게 큰소리치지 못하게 이 어미가 지켜주마!”

눈물이 맺힌 얼굴로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부인에게서 김단은 손을 거칠게 빼냈다.

이 행동은 임학의 심기를 또 한 번 거슬리게 했다.

“어찌 이리도 속이 좁은 것이냐!”

고함을 지르는 임학을 힐끗 쳐다본 김단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부인이 목소리를 낮춰 그를 꾸짖었다.

“누이가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성질부터 내는 것이오!”

“어머님!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김단에게 쏘아붙였다.

“돌아오기 싫으면 다시 세답방으로 가라고 그리 일렀거늘! 우리가 네게 무슨 빚이라도 졌느냐? 오히려 15년간 호사를 누리게 해줬거늘, 내게 얼굴을 붉히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부모님께 그리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고생하는 네 생각을 하며 하루가 멀다고 눈물을 흘리신 어머님께 이 무슨 불손한 태도더냐!’

‘불손한 태도?’

‘더는 사대문의 아씨도 아닌 내가 감히 지체 높으신 가문에 어찌 불손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굳게 입을 다문 그녀의 모습에, 부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임학을 나무랐다.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여 그런 것이오. 더는 탓하지 마시게!”

부인은 손을 들어 몸종을 불러왔다.

“네 조모님께서 손녀가 오늘 돌아온다는 것을 아시고 줄곧 기다리셨다. 먼저 별당에 들어 몸단장을 한 뒤 문안 올리러 가거라. 여전히 네가 큰아씨이니 시름 놓거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김단은 예를 갖춰 인사를 한 뒤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언정, 다시는 예전처럼 이 집에 머물 순 없겠지요.’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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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질문에 임원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임원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아니오. 그런 적 없소. 그때 공주자가의 유리잔을 깨트린 게 나인 것은 맞지만, 낭자를 모함한 것은 내 몸종이오…”그녀는 억울한 듯 말했다.문에 비스듬히 기댄 임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한데 3년 전에는 왜 진실을 고하지 않은 것이오?”말문이 막힌 임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단이 조롱어린 어투로 말했다.“낭자가 유리잔을 깨트렸다고 중전마마와 공주자가께 고하면 됐을 터인데, 왜 하지 않았소?”당황한 임원은 자리에서 휘청거렸다.“무, 무서웠소. 처음 궐에 들어 중전마마와 공주자가를 뵙는 자리에서 내 죄를 고하는 것이 두려웠소. 하여…”“이제 와서 왜 이런 말을 하오?”김단은 임원의 말을 중도에서 가로챘다.어떤 말로든 3년 전의 일을 무마시킬 순 없었다.임원은 흐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낭자가 날 용서만 해준다면 원하는 건 전부 돌려줄 수 있소. 아버님과 오라버니에게도 말씀해 낭자의 오해를 풀겠소. 매화당도 돌려주겠소. 그리고, 그리고 장군님도 돌려주겠소.”김단은 그제야 임원이 여기까지 찾아온 까닭을 눈치챌 수 있었다.김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 분명히 말했소. 낭자의 부모님이고 낭자의 오라버니요.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분이오. 매화당은 내 비록 좋아하긴 하나, 대감의 심혈이 깃든 곳이니 낭자의 것이어야 하오. 만일 이곳이 탐난다면 알려주게. 낭자 말 한마디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소.”임원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오. 낭자와 거처를 다투려고 온 것이 아니오.”“알고 있소.”김단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장군님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소.”잘못을 빌러 왔다고는 했지만 결국은 남자 때문이었다.임원의 속내를 알아차린 김단의 말에, 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3년 전, 세답방에 가기 전부터 낭자의 혼처였네. 내 비록 지금 여기에 묶고 있긴 하나 그것 또한 조모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이오. 하물며 난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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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단은 방금 벗어 놓았던 옷을 걸칠 새도 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무슨 일이냐? 누가 이리 소리치는 것이냐?”숙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쇤네도 모르겠습니다. 아씨 옷을 걸치십시오. 밖이 많이 찹니다!”하지만 김단은 자신의 옷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임원이 물에 빠졌다면 아마도 자기 별당에 있는 연못일 것이기에.그 옛날 유리잔 깨뜨린 죄로 세답방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었다. 만일 임원이 이번 사고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임학이 당장 그녀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김단이 도착했을 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임원이 보였다.얼어붙은 물속에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돌다리 위에 몰려든 하인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성큼성큼 다가간 김단이 그들에게 외쳤다.“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구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몇 명의 몸종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쇤네 때문에 아씨께서 정절을 잃으시면 어찌합니까?”“정절을 지키는 것이 생명보다 중하더냐?”김단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몸종을 노려보더니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연못은 깊지 않았으나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얼음장 같았다.연못 바닥은 진흙투성이라 발을 딛기가 어려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가라앉을 수 있다.힘겹게 임원을 구해낸 김단이 밖으로 나오자, 숙희는 얼른 두터운 옷으로 두 사람을 단단히 감쌌다.“뭣들 하는 거야? 어서 의관을 불러와! 내가 두 분을 모시고 방으로 갈 테니 뜨거운 불을 지피고 따뜻한 생강차를 내오거라!”숙희의 화난 목소리에 구경하고 있던 다른 몸종들이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임원의 몸종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몸종의 뒤에는 임학도 있었다.얼음물에 빠져 얼굴이 창백해진 자기 주인을 발견한 명희는 황급히 임원을 감싸안았다.“아씨 괜찮으시옵니까? 어찌 물에 빠지신 겁니까?”명희는 곧장 김단을 노려보며 따졌다.“아씨께서 우리 아가씨를 밀치신 거지요?”억울한 사람을 몰아가는 것은 3년 전 그대로였다.그녀가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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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7화

    김단이 눈살을 찌푸렸다.소정원이 그녀를 오해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정원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의 말을 믿어줄 리가 없다.하지만 소하의 눈빛도 같이 어두워졌다.소정원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분노가 들어있었다.“진상을 밝히기 전까지, 말을 아끼는 것이 좋을 것이야.”하지만 소정원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말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진상이 어찌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당시에 저는 모친과 있었사옵니다, 자칫하면 그 사람들한테 죽을 뻔했습니다! 만일 작은 형수님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르옵니다!”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소정원의 눈가가 붉어졌다.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그리고 억울한 말투로 다시 말을 이었다.“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찾으려고 했는데, 먼저 도망갔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그녀의 말에 소 씨 부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정원과 함께 김단을 찾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다.허나 김단이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서운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잠시 감정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그만하거라. 네 형수도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소정원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몸을 돌려 김단을 보지도 않았다.김단은 귀찮은 마음에 자리를 떴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이 돌아오셨습니까?”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임원이었다.김단이 눈살을 찌푸렸다.임원은 몸종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누이, 어찌 이리 되셨습니까. 홀로 숲으로 도망쳤을 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흑흑흑..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옵니다..”임원은 엉엉 울었다.진심 어린 행동을 하며, ‘누이’ 라며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에 김단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옆에 있던 소정원은 화를 내며 다가왔다.“형수님, 저런 사람을 어찌 걱정하시옵니까?”임원은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정원,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누이는 어쩔 수 없이 그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6화

    과거의 기억이 다시 몰아치자, 김단은 그만 묻혀 버리고 말았다.그 순간 만큼은 저항할 생각도 없었다.마치 상황에 홀린 것 같았다.어찌 자신의 말을 믿을 것이라 생각했을까,그가 한 번도 자신의 말을 믿은 적이 있었는 가.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기운이 퍼졌다.김단의 자신의 두 팔로 자신을 끌어안았다.작은 따뜻함이라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차가운 기운은 사방곳곳에서 퍼졌다.김단은 자신을 더욱 감싸안았다.그녀의 몸은 벌벌 떨기 바빴다.옆에 있던 소한은 김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어쩌면 오늘 일에 화가 나서, 순간 차가워졌다고 생각했다.그는 손에 쥐고 있는 겉옷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마부에게 앞으로 가라는 지시만 내릴 뿐이다.진상은 자신이 돌아가서 직접 조사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해시가 되기 전에 마차가 관저 앞에 멈췄다.김단이 가림천을 들췄다.소한이 밖에 서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그녀의 발목이 다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성을 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김단은 그를 무시했다.아픔을 꾹 참고 마차에서 내렸다.소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어찌 된 일 인지 알 수 없었다.숲에서는 자신의 등에 기대어 있었지 않았는 가.그때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는 가.“아씨!”큰 목소리가 들려왔다.숙희가 서둘러 관저에서 뛰쳐나왔다.그녀는 김단을 보자 눈물을 쏟아냈다.“흑흑, 아씨, 다쳤사옵니까? 흑흑흑..”숙희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김단도 자신의 모습이 꼴사나울 것이라 생각했다.머리가 풀려 있고 치마도 찢어졌으며, 팔목에는 여러 상처가 그어져 있었다.숲에 가시나무가 많았던 탓이다.그저 도망치기 바빠서 상처는 볼 시간도 없었다.숙희가 알려주고 나서야,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김단은 숙희에게 몸을 반쯤 기대었다.농을 하며 웃었다.“울지만 말고, 네 아씨를 데려가야 하지 않겠느냐.”숙희는 그제야 눈물을 닦고, 김단을 부축하여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곧이어 소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5화

    주변이 어두운 탓에 소한은 김단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하지만 쫓아오는 길 내내,나뭇가지에 걸린 천, 나뭇가지에 묻은 피, 심지어 나뭇가지에 걸린 머리카락을 보면서 그녀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몸 어느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을 것이다.김단은 아프다고 하지만 어디가 아픈 지는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 소한도 마음이 아팠다.그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마치 십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올라타시오.”그리 익숙한 넓은 등을 보자, 김단은 여러 생각에 잠겼다.하지만 곧바로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그리고 익숙하게 그의 등에 몸을 기대었다.소한은 그녀를 업었다.한 손으로는 그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춤에 있는 긴 검을 뽑아냈다.검을 휘두르며 가시나무 길을 향해 걸어갔다.달빛이 여전히 얼룩덜룩했다. 동시에 밤의 바람도 유난히 추웠다.하지만 지금 만큼은 달랐다.김단은 열여덟의 소한에게 업혀 있는 것 같았다.이로 말할 수 없게 안심이 되었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숲을 빠져나왔다.그리고 산 동굴 앞에서는 불을 피우고 있었다.몇 명의 아전들이 시체를 밖으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바람에 의해 천이 들춰지더니 시체의 얼굴이 드러났다.그 사람은 구서였다.김단이 깜짝 놀랐다.“저, 저 자가 어찌..”혹여 자신이 구서를 돌로 죽인 것일까.그리 세게 힘을 주었나.소한은 김단을 멀지 않은 마차까지 업어다 주었다.그리고 천천히 마차 위에 올려놓고 대답했다.“구서가 원이를 범하려고 하였소, 그래서 원이가 죽였소.”임원이 죽인 것이다.김단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임원은 어디 있습니까?”“걱정하지 마시오, 원이는 무사하오. 어머니와 정원이를 데리고 돌아갔소.”소한의 말투는 다정했다.임원을 입에 올려도 며칠 전처럼 차갑게 굴지 않았다.김단의 마음이 내려앉았다.“임원이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소한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김단의 몸에 덮어 주었다.“아무 말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4화

    김단이 다시 한번 더 은침을 꺼내 구서의 다리를 향해 찔렀다.매일 소하에게 침을 놓기 때문에, 수법이 손에 익숙했다.구서의 허벅지를 찌른 이유는 제일 아픈 부위이기 때문이다.그는 고통스러움에 바닥을 굴렀다.“아!”비명소리가 동굴 안에 가득 퍼졌다.김단은 무리들에게 들킬까 봐, 구서의 몸에 올라타 그의 입을 막았다.구서는 힘껏 저항했다.그의 힘은 김단보다 훨씬 강했다.김단이 그의 몸 위에 올라탔어도, 온 몸의 힘을 써서 두 손을 눌렀다고 해도 곧 한계였다.이때, 그녀의 눈에 돌이 들어왔다.서둘러 떨어진 돌을 주워 구서의 머리를 향해 공격했다.그러자 살이 벗겨진 탓에 머리에서는 피가 났다.그 탓에 김단의 눈에 피가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곧이어 그녀의 뇌리에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이전에 숲에서 산적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던 일이 있었다.순간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은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내던졌다.다행인 것은 구서가 기절했다는 것이다.김단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밖에 나갔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김단은 구서가 그들을 어디에 가두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구서의 하인들에게 잡혀서는 안되었다.잡히면 그의 말대로 끔찍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해가 빠르게 지고, 하늘이 어두워졌다.숲의 길도 점점 걷기 어려웠다.차가운 바람과 달의 빛이 숲을 비추자 더욱 음산해보였다.허나, 김단은 멈출 수 없었다.분명 구서의 하인들이 자신을 쫓고 있을 것이 아닌가.임원과 오랫동안 계획하였기에 절대로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멈추면 아니된다…멈추면 아니된다…김단은 이 한 마디만 계속 읊을 뿐이다.도망치는 길에서 얼마나 넘어졌는지 알 수도 없었다.왼쪽 발목의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 같았다.고통스러움에 발을 절뚝절뚝 걸어야만 했다.얼마 가지 않아, 뒤쪽에서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김단은 구서의 사람들이 쫓아왔을 거라 생각했다.그녀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왼쪽 발목의 고통이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3화

    김단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산 동굴 속 안에 쓰러져 있었다.주위는 깜깜했다.머리도 어지러웠다.이때, 옆에 누워있는 사람이 소정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쓰러지기 전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납치를 당했다는 사실에 김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리고 소정원을 세게 흔들었다.“정원, 일어나 보시오!”혹여 들킬까 봐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하지만 너무 많은 가루를 들이마신 탓에 요지부동이었다.김단은 순간 자신의 머리가 풀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머리를 조금 움직이자 머리카락이 밑으로 흘러내렸다.누군가가 비녀를 가져간 것이었다.심지어 소정원의 비녀도 사라지고 없었다.어찌 그녀들의 비녀를 가져간 것일까.혹여 비녀로 그들을 공격할 것을 알아챈 것일까.김단은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그리고 그들을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맞히었다.구서!이전에 김단이 비녀로 그의 눈을 찔러 실명하게 했다.이리저리 생각하고 있을 때,동굴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아직도 안 깬 것이야?”구서의 목소리였다.곧이어 한 사람이 그에게 답했다.“작은 도련님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약에 취해서 정신도 못 차립니다!”구서는 코웃음을 쳤다.“저 계집들이 얼마나 거센 줄 알아? 쓰러진 척하면서 내 눈을 찌른 거라고!”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구서는 깊은 분노가 밀려왔다.또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그래서 노비가 계집들의 비녀까지 다 빼냈사옵니다.”그의 말에 구서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하하, 역시 네가 일을 제일 잘 하는구나! 저 ‘김’ 씨 계집, 내가 오늘 결판을 내겠어!”그리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구서는 먼저 바닥에 누워있는 김단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옆에 있는 소정원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죽고 싶어? 이 계집을 왜 데리고 온 거야?”상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아니, 둘째 도련님은 여러 명이랑 하시는 걸 즐겨..”“짝!”구서가 상대를 향해 뺨을 내리쳤다.“나는 복수를 하려 했단 말이다! 소정원을 데리고 오면 소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2화

    김단은 소 씨 부인이 그녀를 거절할까 봐 갑자기 찾아왔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소정원도 오늘 오전에서야 들은 것이었다.그녀가 고개를 저었다.“몰랐습니다! 본래 송백선이랑 호숫가에 놀러 가려 했단 말입니다.”소정원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스님이 경을 읽어준다는 것도 어디서 들은 건지 전혀 모르겠나이다. 하는 말이 집안의 여인이 다 같이 가야 기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김단은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생겨났다.그녀는 허리춤에 있는 돌과 은침을 무심코 만지작거렸다.그리고 머리에 꽂은 비녀를 만지며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법화사에는 유명한 스님이 경을 읽고 있었다.그곳에는 소 씨 집안뿐만이 아니었다.김단은 소 씨 부인의 뒤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공간에 꽉 찬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경을 다 듣고, 소 씨 부인은 몇 명을 데리고 스님을 찾아가 절을 했다.그리고 평안부를 받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다른 집안 몇몇은 이미 자리를 떴다.또 다른 집안은 법화사에 남아 스님의 기도를 받기를 기다렸다.법화사 밖에는 소 씨 집안의 마차 두 대만 남았다.한편, 소정원은 차에 기대 잠을 자고 있었다.김단도 피곤하기 마찬가지였다.잠시 눈을 붙이려 쉬려했지만 차가 갑자기 흔들렸다.그 바람에 소정원도 벌떡 일어났다.마차 밖에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뭐하는 놈들이냐!”그 바람에 소정원과 김단도 깜짝 놀랐다.그들이 서둘러 마차의 천을 걷어치우자, 검은색 옷을 입은 열몇 명의 무리가 앞길을 막고 있었다.무리는 관저의 시위병의 질문에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긴 검을 꺼내 들고는 시위병들을 향해 공격했다.시위병들도 검을 꺼내 공격에 맞섰다.허나, 검은 옷의 무리들은 마차 안을 노렸다.시위병들의 저지 아래, 무리들 중 몇 명이 마차를 향해 공격했다.소정원은 깜짝 놀라며 소리 질렀다.“형수님, 조심하십시오!”말을 끝나기가 무섭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1화

    소한과 임원의 등장은 그저 작은 일에 불과했다.김단과 소하의 일상은 아무 이상 없이 흘러갔다.숙희가 의원에게서 두 권 의서를 가져왔다.한 권은 소하의 다리 관리에 대한 내용이었다.나머지 한 권은 두꺼웠다. 내용은 의원이 오랜 세월 정성스럽게 쓴 기록이었다.숙희가 김단에게 알려주기를, 의원은 김단에게 재능이 있다고 믿기에 많이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전했다고 했다.하지만 김단은 자신을 어릴 때부터 보았기에, 편애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자신의 신분을 들킬 수도 있는 의서를 감히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 까.그녀는 의원의 호의를 저버리지 않고,시간이 날 때면 의서를 꺼내보고는 했다.마치 소한과 임원을 깨끗하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어느 날, 소 씨 부인이 집으로 찾아왔다.법화사에 절을 하러 김단을 데려가려고 하던 참이다.“절이요?”소하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그리고 김단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질문을 던졌다.“오늘이 부처님 온 날도 아니지 않사옵니까, 어찌 절을 하러 가시옵니까?”소 씨 부인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니다. 허나, 오늘 법화사에 스님들께서 경을 읽어주신다고 한다, 듣자하니 도를 이룬 스님이라 한 번 가보려고 한 것이다. 너와 한이의 평안을 부탁할 생각이지.”혹여 김단이 가기 싫어 할까봐 다시 말을 이었다.“원이도 같이 가기로 했지.”그 말에 소하가 김단을 바라보았다.임원이 법화사에 간다면 김단은 가지 않을 것이다.“단이는 제 다리의 치료를 위해 남아야 하옵니다.”그는 질병에 관한 변명을 대면 자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소 씨 부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치료가 아니라 네가 단이를 보내기 싫은 것이 아니더냐.”그리고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소하에게 고개를 돌렸다.“다리를 보살 피는 것은 큰 일이지. 허나, 절을 하는 것도 작은 일은 아니지 않느냐. 하물며 단이는 아직 싫다고도 하지 않았다, 어찌 단이를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40화

    익숙하지만 낯선 그림자였다.김단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거리가 가까워질까 봐 김단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그저 앞에 있는 책장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내 대신 몇 마디 하려 오셨습니까?”소한은 그녀의 뒤에 서있다.쪽진 머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억누르는 듯한 말투도 답했다.“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모르옵니다.”김단이 차갑게 대답했다.“소 장군의 작은 일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단아..”소한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생각이 트인 듯 목소리가 한층 가벼워졌다.“괜찮소. 천천히 들려주겠소.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다음에 모두 들려주겠소.”하지만 그의 대답에 김단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다.다음?“저와 소 장군 사이에 다음은 없습니다.”김단은 그녀가 말한 대로 더 이상 소한을 신경쓰지 않았다.분노를 참고 있던 소한에게 불이 붙은 것 같았다.“누구와 다음이 있고 싶은 것이오?”질투 섞인 질문에 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소한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김단도 버텨 보았지만 힘이 상대가 되지 않았다.결국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그의 눈가가 붉었다.“누구, 누구와 다음이 있고 싶소?”소한이 다시 물었다.평소의 눈빛과는 다르게 다급함과 애원함이 들어있다.“내 아우와 계속 지낼 생각이오? 낭자,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오!”김단은 소한의 눈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심지어 그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침착한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마치 이전에 김단이 소한을 찾으러 갔을 때와 같았다.자신이 혼인을 바꾸지 말라고 부탁했을 때, 그의 반응과 같았다.“제가 누구와 함께 하든지, 소 장군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소 장군의 이러한 행동이 저에게 얼마나 해로운 지 아십니까.”소하의 집에 하인이 없기에 망정이다.만약 그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439화

    임원이 소리를 한 바탕 질렀다.하지만 방 안의 두 사내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방법이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전에는 자신이 눈물 한 방울만 흘려도, 진산군 관저의 사람들이 다가와 위로해주기 바빴다.소한도 마찬가지였다.허나 오늘의 소한은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임원은 이미 소한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허나...작은 측은지심도 없는 것인가.김단은 임원의 시선을 따라 방 안을 바라보았다.소한의 준수한 얼굴에는 냉기가 가득했다.김단도 마음 한편이 좋지 않았다.허나, 소한은 항상 이러지 않았는 가.그녀를 지켜줄 때에는 한양 전체를 둘러보며 복수를 해주곤 했다.하지만 더 이상 지켜 주지 않을 때는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김단이 고개를 돌려 임원을 바라 보았다.“기억하시오. 이 세상에서 잘난 척 할 자격도 없는 자가 자네라는 것을. 나는 자네와 싸우지 않을 것이오,ㅜ자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싫소. 작은 며늘 아씨의 본분을 지키시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네도 편히 지내지는 못할 것이오.”김단을 말을 끝내고 자리를 떴다.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임원의 몸이 떨기 시작했다.분노였다.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도 섞여있다.임원은 김단이 무섭다.삼년 전에 김단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서웠다.임원의 모든 것은 김단으로부터 훔쳐 온 것이 아닌가.허나..지금은 두려워 할 때가 아니다.본분을 지키라니,소한이 방금 자신에게 한 경고가 아닌가.어찌 본분을 지킬 수 있을까.하늘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면 각자의 본분을 지킬 수 있을 터,김단이 죽으면 자신의 본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분노로 가득 찬 두 눈은 김단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이때,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시선에 나타났다.소한이었다.소한이 방 안에서 나와 김단을 쫓아갔다.임원은 더 크게 분노했다.하지만 입가에는 냉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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