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깨어난 그녀가 흑화했다

다시 깨어난 그녀가 흑화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By:   죽이야  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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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사랑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 결국 그 사랑에 배신당하고 만다. 나밖에 없다던 예비 남편 임동준은 내가 후원하던 가난한 여학생 문혜미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아픈 문혜미에게 신장까지 기증하라고 하는 임동준. 문혜미를 살리려고 이미 심장이 뛰는 내 배 속의 아이까지 지우게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나의 전 재산을 가져갔고 그 바람에 나는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어머니와 나는 결국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죽기 전 눈앞에 보이던 피와 가슴을 파고들던 그 고통이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혔다. 그런데 다시 눈을 떴을 때 뜻밖에도 문혜미를 후원하기 10분 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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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눈앞의 문혜미는 여전히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 도도했다.오래 입은 옷이라 하도 씻어서 색이 다 바래긴 했지만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고집스러운 표정은 한 송이의 외로운 매화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그 모습에 소개인은 긴장한 얼굴로 땀을 닦더니 문혜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눈치를 줬다. 문혜미는 그제야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정색했다.“날 후원해 준다고 해서 내가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릴 의무는 없어.”어찌나 정색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하는지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소개인은 단지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라는 뜻이었는데.고작 이 정도가 그녀에게는 굴욕인 걸까?그럼 내가 지난 생에 겪은 그 모든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나는 문혜미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말했다.“재간이 있으면 내 후원을 받지 말았어야지.”그 순간 문혜미는 두 눈을 부릅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보은아, 아무리 화나도 그런 말 하면 안 되지.”나는 다급하게 달려오는 임동준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마음속에 꾹 눌렀던 원한과 분노가 한꺼번에 용솟음쳤다.임동준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학생이 있어서 눈치를 살폈다.나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자 잘 보이려고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보은아, 화내지 마. 혜미는 성격이 원래부터 저랬어. 그리고 전에 나랑 약속했었잖아.”나는 역겨운 나머지 임동준을 밀어내고는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뺨을 맞고 고개를 돌린 그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두 눈에 살벌함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진정했다.“보은아, 설마 또 질투하는 거야? 오해하지 마. 혜미는 그냥 내 친구야.”예전에 임동준이 대충 한두 마디만 설명해도 나는 철석같이 믿었고 그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스타일인 걸 어쩌겠는가.‘근데 아직도 내가 호구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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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눈앞의 문혜미는 여전히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 도도했다.오래 입은 옷이라 하도 씻어서 색이 다 바래긴 했지만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고집스러운 표정은 한 송이의 외로운 매화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그 모습에 소개인은 긴장한 얼굴로 땀을 닦더니 문혜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눈치를 줬다. 문혜미는 그제야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정색했다.“날 후원해 준다고 해서 내가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릴 의무는 없어.”어찌나 정색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하는지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소개인은 단지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라는 뜻이었는데.고작 이 정도가 그녀에게는 굴욕인 걸까?그럼 내가 지난 생에 겪은 그 모든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나는 문혜미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말했다.“재간이 있으면 내 후원을 받지 말았어야지.”그 순간 문혜미는 두 눈을 부릅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보은아, 아무리 화나도 그런 말 하면 안 되지.”나는 다급하게 달려오는 임동준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마음속에 꾹 눌렀던 원한과 분노가 한꺼번에 용솟음쳤다.임동준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학생이 있어서 눈치를 살폈다.나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자 잘 보이려고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보은아, 화내지 마. 혜미는 성격이 원래부터 저랬어. 그리고 전에 나랑 약속했었잖아.”나는 역겨운 나머지 임동준을 밀어내고는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뺨을 맞고 고개를 돌린 그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두 눈에 살벌함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진정했다.“보은아, 설마 또 질투하는 거야? 오해하지 마. 혜미는 그냥 내 친구야.”예전에 임동준이 대충 한두 마디만 설명해도 나는 철석같이 믿었고 그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스타일인 걸 어쩌겠는가.‘근데 아직도 내가 호구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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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옆에 있던 고성규를 끌고 와서 두 연놈이 보는 앞에서 계약서에 사인한 다음 연락처도 주고받았다.그러고는 이를 바득바득 가는 문혜미를 가볍게 무시하고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임동준이 나를 잡았다.임동준이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보은아, 너한테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 그래도 괜찮아. 난 항상 이 자리에서 널 계속 사랑할 테니까. 네가 다시 돌아서면...”나는 귀한 손가락을 뻗어 임동준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아, 맞다. 아까 문혜미만 욕하느라 널 깜빡했네? 정이 깊은 남자인 척 가식 좀 떨지 마. 넌 나한테 준 몇천 원짜리 쓰레기처럼 저질스러워. 난 태어날 때부터 가장 좋은 것만 먹고 가장 좋은 것만 쓰면서 자랐어. 그래서 가끔 새로운 걸 느껴보려고 저질스러운 걸 만났겠지. 계속 잘난 척하고 다니니까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나는 나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뒷걸음질 치는 임동준을 보며 그의 얼굴을 툭툭 쳤다.“그냥 여기서 끝내자. 나한테 빌린 4억 한 달 내로 갚는 거 잊지 말고. 안 그러면 경고장 받을 준비나 해.”그러고는 넋이 나간 사람들을 뒤로한 채 스포츠카를 몰고 떠나버렸다.집으로 돌아온 나는 요가를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왈칵 쏟으면서 달려가 안았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나는 어머니에게 딱히 뭐라 하지 않고 그저 대진 그룹을 물려받겠다고 했다.다시 환생한 이번 생에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꼭 지킬 것이고 절대 그들이 빼앗아갈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나는 텅 빈 집을 둘러보면서 아버지 정명수가 어디 갔냐고 물었다.출장 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지난 생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증거가 많이 부족하여 지금 당장 정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휴대전화 알림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췄다. 고성규가 보낸 것이었다.고성규는 내 명의로 된 아파트에 머물게 되었고 학교와 매우 가까웠다.그는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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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보은 씨, 이 스카프 어때? 방금 동준 오빠가 사준 거야.”문혜미는 쇼핑백을 열어 나에게 자랑했다. 어찌나 가까이 대고 자랑하는지 얼굴에 다 닿을 것 같았다.나는 그녀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응. 여우 같은 너랑 참 잘 어울려. 그나저나 왜 그 스카프를 고른 거야? 아, 넌 내가 버린 것만 좋아하지. 집에 똑같은 스카프가 있었는데 그거 청소하는 아줌마한테 줬어.”문혜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옆에서 줄곧 말이 없던 임동준이 나서서 문혜미의 편을 들었다.“네가 뭐 진짜 공주라도 되는 줄 알아? 사람들이 다 네 시중을 들게? 우린 너한테 빚진 것도 없는데 왜 계속 잘난 척하면서 사람을 무시하는 건데?”임동준이 편을 들자 문혜미는 다시 배짱이 두둑해졌다.“이 스카프는 동준 오빠가 첫 월급으로 사준 거란 말이야.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하니까 질투 나서 저래. 그리고 강씨 가문에 요즘 적자가 많이 생겼다던데 이럴 시간에 집안이나 좀 신경 써.”나는 눈살을 찌푸렸다.‘강씨 가문 내부의 일을 문혜미가 어떻게 알고 있지?’나는 행복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문혜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웃을 듯 말 듯 하는 얼굴로 다른 휴대전화를 꺼내 거래 기록을 문혜미에게 보여주었다.“너한테 첫 월급이라고 했어? 내 카드 긁었는데? 요즘 임동준이 먹고 입는 건 다 내 카드로 해결하고 있어. 이런데도 빚진 게 없다고?”조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문혜미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그러다가 제 발 저린 임동준의 표정을 본 순간 모든 걸 깨달았다.문혜미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쇼핑백을 임동준의 얼굴에 확 던진 다음 씩씩거리며 가버렸다.임동준은 초라한 꼴로 스카프를 챙긴 후 나를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가 문혜미를 쫓아가려던 그때 내가 그를 불렀다.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하고 있는데 임동준이 먼저 침묵을 깼다.어두운 삶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 말고는 자신감이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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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대진 그룹 내부에 확실히 많은 문제가 생겼다.새 프로젝트의 기밀문서가 언제 유출됐는지 라이벌 회사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회사 전체가 손해를 최대한 줄이려고 최선을 다해 만회하고 있었다.얼마 전 고성규는 어머니의 눈에 들었다. 하여 지금 회사의 일원으로서 나와 함께 야근했다.그렇게 일주일 정도 버틴 끝에 드디어 위기에서 벗어났다.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정신없이 잠만 잤다. 하지만 하늘은 내가 편하게 지내는 걸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고성규가 나를 깨웠을 때 나는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그의 얼굴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숙함이 드리워졌고 눈빛도 매우 어두웠다.나의 시선이 그가 건네는 휴대전화 화면에 머물렀다. 잠기운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학교 게시판의 맨 위에 인기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이러했다.[학교 폭력 가해자인 강씨 가문 아가씨와 유부남과 불륜을 저질러 지금의 자리에 오른 어머니.]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면서 게시글을 꼼꼼하게 읽었다. 글쓴이는 단지 불공평을 참을 수 없어서 나섰을 뿐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게시글에 내가 문혜미에게 했다는 모든 악행들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문혜미를 따돌린 것, 돈으로 모욕한 것,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한 것, 남자 친구를 빼앗은 것 등등 자세하게 적혀있었다.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던 첫사랑이 있었는데 나중에 어머니 강정화가 갖은 수단으로 아버지에게 꼬리를 쳤다는 내용도 암시하고 있었다.마지막에는 문혜미가 됨됨이가 바른 착한 사람이라고 무척이나 강조했다. 친구에게도 잘하고 유기 동물도 사랑하는 마음이 여린 여신이라고 했다.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사진도 일일이 확인했다.사진 대부분이 그날 레스토랑에서 몰래 찍힌 사진이었고 나머지 사진들은 배경을 보나 주변 사람을 보나 전부 이상하리만큼 낯설었다.아무래도 문혜미가 여지를 남겨둔 모양이다.고성규는 나의 표정을 계속 살피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내가 해결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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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요 며칠 누군가 일부러 화제를 모은 덕에 연관된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조회 수가 끊임없이 올라갔고 댓글과 좋아요 개수도 급속도로 상승했다.그때 휴대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익숙하기 그지없는 그 번호였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녹음 버튼을 눌렀다.임동준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보은 너 미쳤어? 혜미 인생을 망칠 생각이야?”“문혜미가 게시글을 올려서 내가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는데 해명도 못 해?”“혜미는 그냥 게시글만 올렸을 뿐이야. 너한테도 아무 일이 없었잖아. 지금 당장 게시글 삭제해.”“게시글 올린 사람이 문혜미가 맞긴 맞구나.”나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녹음과 전에 알아낸 IP 주소를 덧붙여서 게시판에 올렸다. 댓글 창이 다시 떠들썩해졌다.[문혜미 완전 웃기는데?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인 척하면서 글을 올리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게다가 강보은은 문혜미한테 어쩌지도 않았는데 혼자 자존심 때문에 지지 않으려 했어. 강보은이 후원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되레 강보은을 비난했고.][맞아. 그리고 강보은이 자기 남자 친구를 빼앗았다고 했어. 근데 아는 사람은 다 알잖아. 강보은이랑 임동준이 원래 커플이었다는 거.][임동준은 여자한테나 빌붙는 기생오라비야.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 또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여자 친구 돈으로 내연녀한테 선물 사주고. 정말 웃겨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야.]고성규가 나의 손등을 툭툭 치고 나서야 나는 생각을 멈췄다.“세 번째 자료도 지금 올릴까?”나는 눈빛을 거두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했다.10분 후, 임동준이 댓글 창에 나타났다.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부정하고 변명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문혜미를 감싸는 내용이 담긴 글을 올렸다.전체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전에 일은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문혜미는 다 착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한 번만 욕하고 두 번은 욕하지 마세요.]그런데 놀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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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문혜미는 돈을 흥청망청 쓰는 스타일이다. 평소 임동준이 보태준다고 해도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살았다.하지만 잘난 척하고 우쭐거리는 성격 때문에 아르바이트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하여 장학금은 그녀가 받는 유일한 생활비나 다름없었다.나는 이 기회를 빌려 여자에게 빌붙는 임동준의 정체를 낱낱이 까발렸다.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그에게는 죽이는 것보다도 더 괴로울 것이다.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임동준은 여전히 빚을 갚지 않았다. 대진 그룹의 변호사팀을 동원하려던 전날, 카드에 돈이 입금되었는데 뜻밖에도 임동준이 빚을 갚았다.나는 조금 아쉬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수상했다.임동준은 매달 내가 주는 용돈으로 살았다. 여기저기 빌린다고 해도 이 짧은 시간 안에 그 많은 금액의 돈을 마련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누가 뒤에서 도와주는 거지?’머릿속에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임동준과 문혜미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문혜미와 임동준이 휴학했다고 했다. 하도 급하게 휴학한 바람에 기숙사의 물건도 챙기지 못했다.듣건대 임동준은 월급이 수억 원이 되는 일자리를 구했다면서 곧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동네방네 떠들어댔다고 했다.덤덤하게 전화를 끊은 나는 바로 사설 탐정에게 연락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내려면 시간이 꽤 많이 필요했다.그사이 나는 기다리면서 지난 생애 사람들의 관계를 계속 정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 가지 추리를 해봐도 한 곳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사설 탐정이 바로 알아낸 덕에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사설 탐정이 전화 왔을 때 나는 전리품을 들고 유유자적하게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오늘따라 하이힐과 타일이 부딪치는 소리가 이상하리만큼 맑고 또렷했다.한창 사설 탐정의 보고를 주의 깊게 듣고 있는데 눈앞에 검은 모습이 스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피했다. 그런데 그 하이힐이 내 앞에 멈춰 섰다.고개를 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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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나는 몇 개를 고른 다음 점원에게 말했다.“방금 고른 몇 개만 제외하고 나머지를 전부 포장해 주세요.”그러고는 문혜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돈이 많으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문혜미는 내가 이 정도로 뻔뻔할 줄은 생각지 못한 듯 잿빛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애써 분노를 억누르면서 카운터에 가서 결제했다.그녀는 한참 동안 마음을 진정하다가 드디어 비번을 눌렀다. 그런데 곧이어 점원의 예의 바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합니다, 손님. 정지된 카드인 것 같습니다.”문혜미는 경악했다가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한 번 더 긁어봐요.”다시 한번 긁어도 결과는 똑같았다. 점원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경멸 섞인 눈빛은 마치 따귀처럼 문혜미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휴대전화가 울린 그 순간 문혜미는 마치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실수로 스피커폰으로 받은 바람에 임동준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정확히 들릴 만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혜미야, 우리 자금이 다 끊겼어. 전에 샀던 명품을 다 팔아서 나 좀 도와줘. 급히 쓸 데가 있어. 지금 백화점이지? 나 근처에 있으니까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문혜미는 소리를 지르더니 난감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그게 아니라...”점원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지만 예의상 여전히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그럼 이것들은 구매하실 건가요?”나는 아쉬워하며 어깨를 들먹였다. 그러고는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몇 개를 골라 여유롭게 말했다.“돈이 없으면 잘난 척하지 마. 방금 고른 몇 개 포장해 주세요. 이 카드 긁으시고요.”점원은 환하게 웃으면서 쇼핑백을 나에게 건넸고 나는 문혜미보다 빠르게 매장을 나왔다.그 후 유기견처럼 매정하게 쫓겨난 문혜미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매장에서 걸어 나왔다.문혜미를 한동안 몰래 따라다닌 그때 다급하게 달려오는 임동준을 발견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이었지만 임동준은 땀에 흠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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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나는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면서 계속 자료를 훑어보았다.이 회사 책임자가 고성규라는 것을 본 순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면서 냉기가 온몸에 퍼졌다.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따뜻한 물 한잔을 따랐다. 자료를 계속 보려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구멍으로 확인해 보니 다름 아닌 고성규였다.고성규는 들어오자마자 들고 있던 짐들을 풀어헤치고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나는 문에 기대어 분주히 움직이는 그를 가만히 지켜봤다.단지 몇 개월만 지났을 뿐인데 고성규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 시절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성숙한 남자의 매력이 물씬 풍겼다.게다가 맞춤 정장을 입어 더욱 훤칠해 보였고 귀티가 흘러넘쳤다.‘정말 성규 씨일까?’나는 식탁 쪽으로 걸어가면서 가능성을 생각했다.사실 나의 머릿속에는 진작 답이 있었다. 고성규가 절대 나를 배신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건 확고하면서도 묘한 직감이었다.식사를 마친 후 고성규는 나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아무래도 지금 이게 필요할 것 같아.”덤덤한 말투였지만 칭찬을 바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나는 서류를 꼼꼼하게 살폈다. 겉으로는 차분함을 유지했지만 사실 속은 이미 파도가 일렁거리고 있었다.임동준이 얘기했던 한 달에 수억 원 번다는 일이 바로 대진 그룹의 상업 기밀을 라이벌 회사에 파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기가 막힌 건 그동안 나의 아버지 정명수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이었다.사진 속 장소 중에 중복되는 장소가 하나도 없다는 건 다른 사람들을 피해서 몰래 만난다는 뜻이었다. 사진 속의 시간을 확인해 보니 바로 아버지가 출장 간다고 했던 그 시기였다.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했고 넋이 나간 얼굴로 고성규를 쳐다보았다.그렇다면 고성규는 언제부터 이 사실을 알아채고 직무를 이용하여 임동준을 조사한 것일까?고성규가 떠난 후 나는 인물 관계도를 정리했다.아버지와 문혜미를 연결하던 그때 황당무계한 가능성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나는 다급하게 가방을 챙기고 본가로 향했다. 그런데 차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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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옆에 있던 문혜미는 함께 나온 임동준을 보더니 바로 소리를 질렀다.“동준 오빠, 나 좀 살려줘.”그러고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입고 있던 외투가 벗겨지면서 널찍한 환자복이 드러났고 하얀 피부가 남자들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나는 문혜미를 잡고 있던 노랑머리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킨 다음 손을 그녀의 옷 속에 넣는 걸 정확히 보았다.문혜미는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그 모습을 본 임동준은 그들의 보스에게 무릎을 꿇었다.“영준 형님, 제발 제 여자 친구는 풀어주세요. 옆에 있는 저 여자 대진 그룹의 딸이에요. 그 돈을 갚을 능력이 충분히 있을 겁니다. 정 안 되면 저 여자로 강정화를 협박해서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하세요. 그때 가서 형님이 원하시는 대로 달라고 하면 돼요.”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임동준이 사채를 빌려 썼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뻔뻔한 놈, 갚을 능력이 안 되니까 나까지 끌어들이려고?’진영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노랑머리 남자에게 손을 흔들면서 문혜미를 풀어주라고 했다. 문혜미는 바로 임동준의 품에 와락 안겼다.나는 몰래 손을 주머니에 넣었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손도 뒤에 선 사람에게 잡히고 말았다.“찾아도 소용없어. 네 휴대전화 우리가 진작 버렸거든. 몰래 신고라도 하려고? 겁이 없구나, 아주.”나의 손을 꽉 잡은 바람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손가락 끝으로 나의 등을 만진 순간 혐오스러운 나머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증거물이 될만한 거로 채취해서 강정화한테 보내. 어딜 채취하면 좋을까?”진영준은 군용 나이프를 들고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날카로운 칼날이 빛을 받아 무섭게 반짝였다.그때 문혜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영준 오빠, 급할 거 없어요. 쟤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는데 마음에 들면 일단 가지고 놀면서 욕구라도 푸는 게 어때요?”그녀의 말에 나는 문혜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마음 같아서는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진영준은 잠깐 흠칫하다가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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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문혜미의 원한 가득한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나의 기쁨은 극에 달했다.고성규는 옆에서 조용히 내 몸의 상처를 살폈다. 나는 손가락으로 고성규의 입가를 톡톡 건드렸다.“왜 그래? 많이 놀랐어?”하지만 고성규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어찌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나를 거의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목덜미에 뜨겁고 축축한 느낌이 전해진 그때 나는 그 자리에서 잠깐 흠칫했다가 이내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의 등을 토닥였다.“다음부터는 절대 혼자서 이런 위험한 짓 하지 마. 아까 보은 씨가 저 남자 손에 잡혀있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고성규는 무척이나 속상한 듯했다.“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여지를 남겨뒀지, 내가.”나는 개조한 후의 목걸이를 고성규에게 흔들어 보였다.목걸이 안에 소형 GPS가 장착되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더라도 고성규는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고성규는 목걸이를 천천히 자기 옷 주머니에 넣고는 살짝 삐진 듯한 말투로 말했다.“다음부터는 목걸이 말고 날 데리고 가.”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가 고성규의 엄숙한 얼굴을 보고는 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마친 후 나는 아파트로 돌아왔다.고성규는 절대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심지어 샤워할 때마저도 욕실 앞에서 지키곤 했다.정리를 마친 나는 고성규에게 미리 준비하라고 한 자료를 챙기고 강씨 본가로 향했다.본가에서 어머니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는데 옆에 있던 도우미가 어머니가 조금 전에 외출했다고 했다.나는 하는 수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서재를 지나가던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도우미는 자기 머리를 툭 치면서 다급하게 말했다.“아가씨, 회장님께서 진작 들어오시긴 했는데 지금 손님과 얘기 중이십니다. 이따가 얘기가 끝난 다음에 들어가세요.”도우미가 나의 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본 나는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하여 망설임 없이 서재 문을 벌컥 열고는 고성규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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