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원태웅이 왜 여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고 더군다나 고현성과 그들이 어떻게 바다에 빠졌는지도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마치 누군가 고의로 그 형제를 노린 것 같았다.십여 분 뒤 우리는 GPS가 가리키는 섬에 도착했다. 우리는 요트를 해변에 정박한 뒤 차가운 바닷물을 밟으며 상륙해 섬을 한 바퀴 돌며 수색한 끝에 마침내 그들 셋을 발견했다.담현아는 아무 걱정도 없는 표정으로 해변에 누워 있었고 고현성과 고정재는 해변에 앉아 서로 아무 말 없이 마주 보고 있었다.나는 그들 쪽으로 다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셋 모두 옷이 젖어 있었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그리고 담현아는 고정재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담현아는 우리를 보자 재빨리 재킷을 벗어 던지고서는 담현우에게 달려가 안겼다.담현우는 담현아를 꼭 안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추워?”담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많이 추워.”담현우는 슈트 재킷을 담현아에게 벗어주려 했지만 아까 윤다은에게 벗어줬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어쩔 수 없이 셔츠를 벗어 담현아에게 감싸 준 뒤 품에 꼭 껴안았다.윤다은도 빠르게 달려가 고정재를 껴안았다. 고정재는 무표정한 얼굴로 윤다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난 괜찮아.”“오빠, 정말 걱정했잖아.”윤다은은 방금까지도 혼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지만 고정재의 품에서 조용히 느끼며 안정을 찾는 듯했다.나는 윤다은이 왜 그렇게 걱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몇십 년 동안 고정재를 사랑해 왔기 때문이다.고정재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은아, 나 괜찮아.”이 모습을 지켜보던 고현성은 비웃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윤다은, 네가 고정재를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할 줄은 말랐네. 네 눈에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 거니?”고현성의 말에 고정재는 윤다은을 살짝 밀어내며 담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담현아는 여전히 담현우의 품에 안겨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윤다은은 고정재가 밀어내
내 마음속에 원태웅이 왜 파티에 나타났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담현우에게 원태웅을 초대했는지 아니면 원태웅이 직접 온 것인지 물었다. 원태웅은 나를 보고도 인사조차 없이 조용히 바닷가를 떠났다. 이런 은밀한 행동은 원태웅의 평소 태도와 너무 달랐다.심지어 내가 원태웅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단호하게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석씨 가문에서 중요한 직책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GPS 글로벌 위치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정도의 권한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부탁을 거절했다.심지어 나에게 직접 석지훈에게 전화하라고 했다.전화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원태웅은 나의 마음을 찌르는 질문까지 던졌다.그 순간 나는 고현성과 고정재가 이곳에 있게 된 것이 바로 원태웅의 계획이었고 원태웅이 석지훈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 모든 정황을 봤을 때 나는 석지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태웅과 고현성 형제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기에 원태웅이 그들에게 이런 짓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석지훈 역시 고현성 형제와 원한이 없었다.만약 석지훈과 원태웅이 나를 위해 복수해주려는 것이었다면 나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고현성과 고정재를 바다에 빠뜨리는 건 너무 과했다.만약 두 사람이 수영을 못 했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나는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웠다. 고정재는 멀리 있는 윤다은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나를 불렀다.“꼬마 아가씨.”나는 대답했다.“네.”고정재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내가 해외 순회공연을 할 때 담현아를 만난 적이 있어.”고정재의 표정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솔직히 말했다.“알고 있어요. 현아가 정재 씨를 만났다고 말했거든요. 그리고 정재 씨를 잘생겼다며 칭찬하기도 했어요.”고정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물었다.“담현아는 담씨 가문의 막내딸이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담현우가 현아의 오빠예요.”“꼬마 아가씨, 담현아는
나는 어렵게 물었다.“어떻게 해야 날 놔줄 건데요?”“네가 석지훈를 떠날 때까지.”“난 그럴 수 없어요.”고현성은 몸을 돌려 내 말을 끊더니 차가운 눈빛을 번쩍였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넌 예전에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었지. 수아야, 우리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너와 석지훈도 그럴 거야. 나는 이미 너와 일생을 함께할 준비를 했어. 그런데 어떻게 네가 제멋대로 떠나는 걸 보고만 있겠어?”고현성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젖어 있었고 이마 위로 헝클어진 채 늘어져 있었다.내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고현성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너를 망가뜨리지 않는 이상 내가 이번 생에 너를 쉽게 놓아줄 리는 없어.”이 말을 듣자 나의 마음은 쿵 하고 내려앉으며 고현성과의 과거가 떠올랐다.우리는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고현성이 나를 진심으로 대했던 적도 있었다.그 당시 나는 자신을 잃을 정도로 고현성을 사랑했다. 그때는 고현성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우리는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내가 고현성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양심적으로 말해서 나는 고현성을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늘 고현성이 나에게 상처를 줬었다. 지금 와서 이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문제는 고현성이 나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고현성이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결국 석지훈까지 다치게 될 것이다.“고현성 씨, 제발 나를 놔줘요.”내 목소리는 너무 간절하고 나약했다.고현성은 그런 나를 비웃듯 아무 말 없이 웃었다.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현성 씨를 한 번도 해치지 않았어요. 인정할게요. 나는 석지훈과 4개월 동안 함께 했어요. 우리가 한때 사랑했던 추억들을 값싸 보이게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석지훈은 내가 암에 걸렸을 때 나를 치료해 줬어요.”“석지훈이 내 삶에 나타난 건 4개월 전부터였고 그때 우
나는 엉망이 된 모습으로 고개를 들어 다가온 사람을 보며 말했다.“오빠예요?”“넌 석지훈을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해?”그는 다시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나는 속으로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며 설명했다.“내가 석지훈에게 설명할 거니까. 오빠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나도 신경 쓰고 싶진 않아. 하지만 너와 고현성이 이렇게 얽히고설킨 걸 석지훈이 모를 거라 생각해?”원태웅은 석지훈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말했다.그가 석지훈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다소 의외였다.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침묵했고 원태웅은 내 앞에 함께 쪼그려 앉아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런 일을 두고 지훈이 형이 너를 너그럽게 봐줄 리 없어.”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내가 알아서 지훈 오빠에게 다 설명할 거예요.”하지만 내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가슴 한가운데에 거대한 돌덩이가 얹힌 듯 답답했다.원태웅은 인내심을 갖고 내게 당부했다.“앞으로 외출할 때 혼자 다니지 마. 항상 고현성을 경계해. 안 그러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오늘 해변에서 봤던 원태웅과 고정재가 들었던 원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떠올라 나는 놀란 마음으로 물었다.“오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원태웅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오빠가 두 사람을 같은 장소에 일부러 불러 모은 거죠? 크루즈에 나를 초대한 것도 반경우를 통해 오빠가 꾸민 일이죠?”“오빠는 내가 보는 앞에서 두 사람에게 망신을 줘서 경고하려던 거겠죠. 앞으로 두 사람과 엮이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중간에 자리를 뜨자 오빠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을 직접 바다에 밀어 넣으라고 지시한 거죠? 그런데 왜 담현아까지 바다에 뛰어들게 된 거예요?”나의 말이 거의 다 맞자 원태웅은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그래, 네 말대로야. 너에게 경고하려 했지. 원래 네 앞에서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든 다음에 네게 충고하려 했어. 그런데 네가 중간에 떠났으니 차라리 두 사람을
“네 발로 윤 비서에게 가서 벌을 받아.”나는 석지훈이 왜 원태웅를 벌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원태웅은 석지훈을 대신해 분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나는 다급히 석지훈을 말리며 말했다.“지훈 오빠, 사실 태웅 오빠는 나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하지만 나도 마음속에서 원태웅을 원망하고 있었기에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원태웅을 벌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그런데 석지훈이 원태웅에게 벌을 받으러 가라고 한 걸 보면 분명 우리가 나눈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이었다.그 순간 나의 마음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나는 석지훈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랐고 너무나 난처했다. 무엇보다 석지훈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석지훈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고 원태웅은 더 머무를 엄두도 못 내고 다급히 두 손을 저으며 웃었다.“내가 윤 비서를 찾아가서 바로 벌받을게.”원태웅은 빠르게 주차장을 떠났다.석지훈은 허리를 굽혀 나를 일으켜 세웠다.오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 제대로 설 수 없어 손바닥으로 석지훈의 팔을 힘껏 붙잡았다.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요?”“원태웅이 네가 바다에서 밤새 사람을 찾느라 잠을 못 잤다고 전화해서 네가 걱정돼서 동성으로 일찍 돌아왔어.”석지훈은 갑자기 나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나는 석지훈의 목을 감싸며 뺨을 그의 가슴에 파묻었다.석지훈은 안정적인 걸음으로 나를 안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엘리베이터 안은 좁고 답답했다.내 마음은 더욱 복잡했다. 나는 석지훈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방금 일은 내 의지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석지훈에게 잘못한 것은 사실이었다.게다가 전에 내가 GPS 글로벌 위치추적 시스템을 활성화해달라고 요청했던 것도 있었다.만약 석지훈이 자신의 자원을 이용해 옛 연인을 구하려 했다면 나도 분명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자기가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이 모든 건 원태웅이 꾸민 일이야. 원태웅은 네가 제일 나약한 순간에 고현성과 나 중에서 누굴 고르는지 보고 싶었던 거야. 알아, 너한테도 너만의 과거가 있다는 거. 고현성, 고정재와 함께했었던 그때가 좋았다면 계속 기억하고 있어도 돼.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도 억지로 잊지 않아도 돼. 그냥 네가 더 이상 간직하고 싶지 않아졌을 때 나한테 얘기해줘. 걱정하지 마. 네가 바보같이 한 사람만 사랑했다고 비웃지 않을 거니까. 그것 또한 너의 과거니까 난 존중해.”나는 고개를 들어 석지훈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석지훈은 고개를 떨구고 날 보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차분하기만 했던 두 눈이 오늘따라 유독 더 뜨거워 보여서 그 눈빛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석지훈은 지금처럼 언제나 나를 존중해주었다.마음대로 나를 오해하고 나와 감정싸움을 하던 사람들과 달리 언제나 내 입장에 서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석지훈은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도 느끼게 했다.하지만 그럴수록 석지훈이 너무 좋아서 나는 점점 더 내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아지는 것 같았다.선양 그룹 대표의 신분으로 권력 같은 건 다 무시하고 고 씨 집안에 시집갔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초라함이었다.석지훈 앞에 서 있을 때는 자신이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 나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바다에 잠겨 점점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석지훈은 나를 안고 나가며 다정하게 달래듯 말했다.“원태웅이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하고 더는 얘기하지 말자. 하지만 다음에는 꼭 나한테 말해줘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나한테 자세히 설명해 줘. 혼자 속앓이하지 말고.”오늘에는 어쩐지 말이 많아진 석지훈이 눈물을 닦아내는 나를 보더니 또다시 입을 열었다.“인간의 생은 너무 짧아, 그리고 너와 함께 걸어가는 인생이라면 더 짧게 느껴질 거야. 지난 30년 동안 내 인생에 너란 존재는 없었어. 그러니까 윤아야, 오해나 거짓말 같은
나는 여전히 그의 품에 꼭 안긴 채로 말했다.“비밀번호 9977이에요.”석지훈은 한 손으론 나를 안은 채 다른 손으로 비밀번호를 치고 집 안으로 들어섰고 그대로 내 방으로 향했다.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에 들떠있었는데 나를 내려놓고 전에 두고 갔던 셔츠를 챙겨 욕실로 들어가 버리는 석지훈에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마침 담현아에게서 문자가 왔다.[저 방금 집에 도착했어요 언니, 오늘 저 구해주신 거 언니라고 들었어요. 언니는 저 담현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될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17살 난 아이의 말투답지 않은 문자에 미소 짓던 나는 담현아에게 미안한 게 있다던 고정재의 말이 떠올라 서둘러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너 전에 고정재 씨 만난 적 있어? 고정재 씨가 너한테 미안한 일이 있다고 하던데.]그러자 담현아는 빠르게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별일도 아니었어요, 일본에서 작은 오해가 있었는데 이미 다 해결돼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셔도 되는 일이에요.”나긋나긋한 음성은 그 나이 또래의 생기를 담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한 말투는 또 두려움이 없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그녀의 말에 어떤 답장을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담현아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어두운 밤, 희미한 불빛을 빌어 절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다들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사진 속에는 담현아와 고정재의 모습도 보였는데 담현아는 검은색 바탕에 수많은 분홍색 꽃들이 수놓아진 기모노를 입은 채로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늘어뜨리고 티 없이 맑은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래도 어리지만 이런 복장에 저런 미소를 짓고 있으니 한결 더 앳돼 보였다.하지만 경찰서에서의 그 당돌한 모습을 봐버린 나는 그녀가 이를 드러낼 시기를 노리는 검은 옷을 두른 악동 같아 보였다.고정재는 검은 참대가 그려진 베이지색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진중한 그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옷 같았다.그림같이 짙은 눈썹과 별을 박아 넣은 듯 빛나는 눈동
온몸으로 날 유혹하고 있는 석지훈과 한 달 만에 그를 봐서 아까 문 앞에서부터 달아오른 내 몸 때문에 나는 바로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내 행동에 잠시 당황하던 석지훈은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날 밝겠어, 얼른 자. 나 좀 있다 운성에 가봐야 해.”“이렇게 빨리요?”석지훈을 알게 된 뒤로 그는 늘 집에 가지 않고 내 옆에 머물렀었다.그래서 내가 어느 도시에 있든 내가 필요할 때마다 그가 빠르게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일이 좀 생겼어.”내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나를 달래듯 말하는 석지훈에 나는 실망한 채로 욕실로 들어갔고 내가 씻고 나오자 석지훈은 이미 정장을 차려입고 진지하고도 틀에 박힌 원래의 그로 돌아가 있었다.그가 떠나는 게 아쉬웠던 나는 팔짱을 낀 채 욕실 문에 기대어 물었다.“언제 가는데요?”“좀 있다.”마음속으로는 당연히 그가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그의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볼멘소리로 알겠다고 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조심히 다녀와요.”석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그대로 침대에 가 벽을 바라보며 누웠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 의해 방문이 열리더니 내 곁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그게 석지훈임을 알았기에 나는 가까워져 오는 그의 숨결에 숨을 참다가 그가 내 볼에 입을 맞추고 떨어지자마자 석지훈의 옷소매를 잡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석지훈은 그런 내 코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몇 번 쓸어주며 물었다.“잠 안 와서 그래?”“오빠가 보고 싶어서 그래요.”보고 싶다는 내 말에 석지훈은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웃으며 다정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이런 말에는 반응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또다시 질문을 해왔다.“어떻게 보고 싶은데.”그의 말에 내가 대답으로 그의 옷소매를 더 세게 잡아당기자 석지훈은 못 이기는 척 내 옆에 누워 손으로 매끄러운 내 볼을 쓰다듬었다.여자가 관리를 했는지 안
내가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데 누군가 말했다.“고현성은 이제 끝났어. 잘나가던 인생이 재앙 덩어리를 아내로 맞는 바람에 망한 거잖아!”재앙 덩어리...나는 눈을 감고 화를 가라앉혔다. 그때 고현성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수아는 재앙 덩어리가 아니야!”그는 모든 것을 잊었지만 수아는 기억하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그는 오직 그의 수아만을 옹호하고 있었다.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저도 모르게 침묵하는 석지훈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오히려 담유미가 물었다.“그럼 넌 바보야?”바보에게 바보냐고 묻다니.나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입 다물어요!”“왜? 부끄러워서 화내는 거야?”한성범은 이때다 싶어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그럼 고현성이 바보가 아니라는 거야? 연수아, 난 널 초대 안 했으니 나가. 곧 ‘바보극' 공연이 있거든!”한성범은 석지훈의 앞에서도 거침이 없었다.내가 정말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나는 눈앞의 술잔을 집어 그에게 던졌다. 하지만 석지훈은 그를 위해 막아냈다. 마음속에서 갑자기 분노가 치솟았다.그때 고현성이 황급히 일어나 나를 진정시켰다.“저 사람들 때문에 화내지 마. 수아는 재앙 덩어리가 아니야. 수아는 그냥 내 아내일 뿐이야!”나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차가운 눈빛으로 석지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저 사람을 감쌀 건가요?”석지훈은 차가운 침묵으로 나에게 답했다.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 위의 술잔을 다시 한성범에게 던졌다. 하지만 남자는 가볍게 받아 바닥에 던져버렸다.유리 조각들이 순식간에 바닥에 흩어졌다.그때 담유미가 차갑게 말했다“연수아 씨, 너무 건방지네요.”그러자 담현아가 차갑게 꾸짖었다.“입 닥쳐!”담유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원태웅은 황급히 나를 껴안으며 말했다.“윤아야, 화내지 마. 우리 여기서 나가자!”나는 눈
석지훈은 당연히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래에서 위로 그를 올려다보며 비판했다.“오후에 그 일은 당신이 잘못했어요!”그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음?”“나는 그 사람들과 친분이 있어요. 친구처럼. 그들이 나를 유람선에 초대한 건 내가 그들과 어울릴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석지훈 씨라고 했죠? 설마 내가 당신을 좋아해서 당신 주변에 자주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근데 내가 당신의 무엇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당신이 우리 석씨 가문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내 말은 다소 따끔했고 석지훈의 얼굴은 차가워졌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웃었다.“어떤 사람들은 가끔 자기 생각에 빠져 착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혹시 당신 마음속으로는 나를 좋아하는데 인정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를 피하고 당신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설마 마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운 건가요?”석지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나는 눈치껏 말을 돌렸다.“물론.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당신 속마음을 알 수는 없죠. 됐어요, 당신이랑 말싸움하기 귀찮아요!”그는 차갑게 말했다.“허튼소리.”나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평소에 나한테 신경 끄세요!”석지훈은 돌아서서 가버렸다. 나는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못 참네. 그 성격에 어떻게 여자 없이 지금까지 버텼을까? 아마도 내가 운이 좋은가 봐. 안 그러면 당신을 어떻게 얻었겠어!”‘지훈 씨,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신앙처럼. 당신 말대로 이 길을 따라갈게! 당신이 나에게 아무리 차갑게 굴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다 기억해둘 테니까! 나중에 똑같이 갚아줄 거야!’담현아는 몇 분 동안 통화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놀리듯 물었다.“부부끼리 무슨 달콤한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네. 이제 푹 빠진 거야?”담현아는 웃으며 물었다.“푹 빠졌다는 게 사랑한다는 뜻이에요?”내가 되물었다.“그럼 아니야?
담현아는 의리가 있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홀을 나와 뒤뜰을 찾아갔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갑자기 고현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담현아가 먼저 그를 언급했던 것이다.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나 아저씨한테 고현성의 현재 상황을 들었어요. 그의 지금 상황이... 아저씨는 아주 괴로워하더라고요. 결국 하나뿐인 동생이니까. 수아 언니는 어때요?”담현아는 내 마음이 아픈지 묻고 싶어 했다내 마음이 안 아플 리가 있겠는가?그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내 전남편인데.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게다가 지금의 고현성은 변하고 있었다.그는 예전의 그 남자와는 완전히 달랐다.그는 심지어 아이를 나의 생일선물로 돌려주기까지 했었다.나는 담현아 앞에서 고현성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기분이 다운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얘기를 꺼냈다.“아무렇지도 않아. 근데 희연이가 요즘 연락 오던?”“네. 흉터 제거 수술을 받아서 아이스랜드에서 한동안 머물러야 한대요. 왕자현 씨가 옆에서 계속 돌봐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담현아가 왕자현을 언급하자 나는 흥미가 생겨 말했다.“왕자현 씨 집안이 엄청 부자라며?”담현아는 뭔가 아는 듯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왕씨 가문은 세력은 없어도 돈은 엄청 많죠.”돈이면 다 되지. 돈이 곧 힘인데.담현아가 뭔가 더 말하려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급히 일어서며 고정재의 전화라고 했다.담현아가 남편 전화를 받으러 뒤뜰을 나가자 앉아서 할 일이 없던 나는 일어나려고 했다. 바로 그때 나는 2층 발코니에서 고독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미소를 짓고 떠나려 했다.그런데 그가 뜻밖에도 나를 불러 세웠다.“연수아 씨.”나는 걸음을 멈췄다. 석지훈이 나를 부른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웠다.오후에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그가 그렇게 차가우니 나도 굳이 아부할 필요는 없었다.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우리가 그렇게 친했나요?”그는 내 질문
담현아는 옷을 갈아입고 싶어 했다. 내 차에도 여벌 옷은 있었지만 우린 키 차이가 있었고 예지한도 여기 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를 근처 쇼핑몰에 데려갔다.담현아는 쇼핑이 빨랐다. 핑크색 롱드레스를 입으니 정말 예쁘고 귀여웠다. 그녀는 또 반지 몇 개를 손가락에 끼고는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어때요? 예뻐요?”담현아는 워낙 예뻤기에 뭘 입어도 예뻤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말했다.“아주 예뻐.”담현아는 바보같이 웃으며 말했다.“저는 꾸미는 걸 잘 안 해서...”그녀는 쇼핑몰 화장대에서 가볍게 화장을 하고 나서야 나와 함께 한씨 가문으로 갔다. 그리고 경호원을 많이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오늘 한씨 가문에는 일부러 트집 잡으러 가는 거라 나도 준비를 해뒀다. 휴가가 방금 끝난 비서에게 문자를 해두었던 것이다.한씨 가문에 도착하니 비서는 이미 와 있었다. 내 옆에 있는 23명 외에도 비서는 꽤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다.비서는 우리 뒤를 따라 들어가고 나머지는 입구를 지켰다. 담현아는 초대장을 내고 들어가자마자 담유미를 발견했다.흰색 이브닝드레스에 진한 화장을 한 담유미는 큰 키 덕분에 드레스가 참 잘 어울렸다. 담현아는 그녀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담유미, 너 엄마 아빠 앞에서 무슨 말을 했어?”담유미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너 지금 언니한테 따지는 거야?”“미안하지만, 난 오빠밖에 없어.”담현아의 말은 너무 매몰찼다.담유미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곧 설명했다.“난 네 일에 관심 없어. 부모님은 오빠한테 네 남자친구 얘기 들으신 거야.”담현아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너랑 상관없는 일이네!”담현아의 말투는 꽤나 퉁명스러웠지만 담유미는 별말 없이 얼굴만 굳힌 채 가버렸다.그녀가 가고 나서야 담현아가 말했다.“우리 집의 골칫거리는 바로 저 여자인데 집안 사업까지 쥐고 흔들고 있죠. 하지만 뭐, 나쁘진 않아요. 어차피 나랑 오빠는 담씨 가문의 사업에는 관심 없으니까!”담유미에게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다니.
석지훈을 이렇게 놀리는 건 한민수밖에 없을 것이다.석지훈은 침묵으로 한민수에게 답했다.한민수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수아 씨는 동성에서 잘나가는 집 딸이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지 알아? 게다가 예쁘기도 하지!”크루즈선 위라서 석지훈은 평소처럼 정장을 입지 않고 얇은 흰색 셔츠와 검은색 실크 바지만 입고 있었다. 평소 차가운 이미지에 뭔가 좀 자유로운 느낌이 더해져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한민수가 계속 석지훈의 앞에서 나를 칭찬하자 옆에 있던 원태웅도 참지 못하고 말했다.“윤아는 확실히 예쁘지.”석지훈은 원태웅을 홱 쳐다보며 물었다.“너 뭐라고 불렀어?”“윤아. 애칭이야!”석지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너희 둘, 앞으로 얘 내 앞에 데려오지 마.”그는 한민수와 원태웅의 속셈을 눈치챘던 것이다.그는 분명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다른 평범한 아가씨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래서 그들 두 사람에게 나를 자기 앞에 데려오지 못하게 한 것이 분명했다.이런 그를...지금 이 순간 나는 석지훈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나는 착하게만 굴면 석지훈의 눈에 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내가 가죠. 뭐.”나는 한민수의 손을 뿌리치고 크루즈선에서 내려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차에 타니 원태웅의 문자가 왔다.[형님이 마누라 잡다가 나중에 엄청 후회할 것 같은데!]나는 입술을 깨물고 답장했다.[다 적어둘 거예요.]나는 휴대폰 메모장을 켜서 몇 년 몇 월 며칟날에 석지훈이 나에게 한 일을 적었다. 나중에 그의 병이 나으면 모조리 계산할 생각이었다.나는 쪼잔하게 하나하나 다 적어둘 것이다.나는 차를 몰고 카페로 돌아왔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니 피곤해져서 나는 카운터에 엎드려 7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담현아를 깨우러 안으로 들어갔다.담현아는 이미 깨어 있었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가서 그녀의 뺨
담현아는 지난번 일 때문에 계속 앙금을 품고 있었는데 이제 주민솔이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하니 순순히 넘어갈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녀는 나에게 카페에서 30분 동안 기다리라고 했다.30분은 금방 지나갔다. 검은 라이더 재킷을 걸친 담현아가 까만 머리를 땋은 채 캐리어를 끌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겨우 끝났어요!”나는 웃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힘들어?”“일찍 들어오려고 며칠 밤샜어요. 일단 카페에서 좀 자고 있을게요. 이따가 7시에 깨워줘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2층에 방 있어.”고양이 카페 2층은 며칠 전 내가 임대해 놓은 것이었다.담현아는 짐을 1층에 두고 2층으로 올라가 잠을 잤고 나는 그녀의 여행 가방을 끌고 그녀를 따라 올라가 방에 짐을 놓아주었다.내려와 보니 예지한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사장님 가게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자주 와요?”이상한 사람?어디가?그냥 다 그녀가 아는 사람일 뿐이지.나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며 말했다.“들켰네요!”그것도 내가 실수로 들키게 한 것이었다.이 말에 예지한은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내 정체를 알았어요?”“네. 방금.”내가 대답했다.“아, 여기 좀 더 있으려고 했는데.”예지한은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내가 물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에요?”“한 달 더 있을 거예요.”그녀가 말을 이었다.“여기 떠나기 아쉬워요.”예지한은 여기서 2년을 살면서 모든 것에 정이 들었고 또 여기는 한가로워서 떠나기 아쉬울 만도 했다.하지만 한민수의 말이 맞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책임이 있었다. 예지한이 아직도 저렇게 놀 수 있는 건 할아버지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었다.그리고 한민수, 예유진 그리고 진유겸, 심지어 나까지도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진 것을 굳건히 지켜야 했다.예지한도 마찬가지였다.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예 씨 가문이 있었다.예지한은 좀 시무룩해 하면서 다시 일하러 갔다. 나는 카운터를 보고
어젯밤 길바닥에서 자고 두 시간이나 걸었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감기 기운이 있었다.내가 막 나가려는데 원태웅의 문자가 왔다. [형이 방금 운성에 도착했어. 이틀 정도 여기에 머물 거야.]그는 바쁜 남자였다.항상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기에 이틀이나 머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석지훈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니 항상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길었다. 며칠 함께 있으면 또 헤어져야 했고 헤어지면 한두 달, 길면 반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나는 운성으로 돌아온 후 진유겸의 결혼식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나는 그가 왜 결혼식을 연기했는지 잘 몰랐지만 최희연이 국내에 없으니 그녀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운성에 도착한 후, 나는 고양이 카페에 가서 최희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 답장이 왔다.[나도 방금 알았어. 원래 일찍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미룰 수밖에 없네! 수아야, 나 방금 수술을 마쳤고 얼굴의 흉터가 아직 회복 중이라 아이스랜드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할 것 같아. 하나한테서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가 시간이 된다면 카페를 좀 돌봐줘!]나는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후 다시 물었다.[흉터는 어때?]최희연이 답장했다.[아직 회복 중이지만 왕자현 씨가 흉터가 남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어. 나는 그를 믿어. 다 나으면 귀국할게!][그래. 그때의 너는 분명 아름다울 거야.]최희연은 바로 답장하지 않고 30분 뒤, 갑자기 슬픈 어조로 말했다.[왕자현 씨가 내가 그림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싶어 해. 그는 그 분야에 조예가 깊거든. 근데 내 손목이... 수아야, 나는 붓을 잡을 수는 있는데 손이 떨려서 도저히 붓을 댈 수가 없어!]최희연은 그림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정성을 쏟았다. 그 노력으로 힘들게 성과를 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주민솔 그 여자는 정말 죽어 마땅했다.며칠 전에 진유겸은 그녀를 경찰서에서 꺼내주었다.나는 최희연에게 조심스럽게
석지훈은 내가 생떼를 부린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멈춰 섰고 그는 내가 따라오지 않자 몸을 돌려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아주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생떼 부리지 마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석지훈: “...”이번에 석지훈은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그는 별장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돌려 별장 밖으로 나가 길가에서 도라지꽃 몇 송이를 꺾었다.나는 꽃을 옆에 두고 길가에 옆으로 누워 눈을 떴다. 늘씬한 몸매, 아름다운 드레스, 그리고 꽃 한 송이. 2층에서 보면 아름다운 그림 같을 것이다.내 행동은 아주 이상했다.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지금 술에 취한 상태였다. 비록 대부분은 연기였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석지훈은 분명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 누워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석지훈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참을성이 있었다. 나는 그가 2층 방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도 몸을 돌려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나는 별장 입구에 밤새도록 누워 있었고 그러다가 먼저 잠들어 버렸다. 깨어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술에 취한 척할 수 없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서 의식이 흐릿했다고 해도 하룻밤이 지나면 알코올은 이미 다 날아가 버렸을 테니 말이다.나는 재채기를 하고 일어났다. 원래는 함승윤에게 전화해서 나를 데리러 오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때야 내 가방이 석지훈의 차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초인종을 눌렀다.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내가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 정장 차림의 석지훈이 나왔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런 석지훈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그리움이 더 컸다.예전처럼 차갑
이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설명해 주는 목소리가 들렸다.“형, 이분은 석씨 가문 가주, 형의 석씨 가문을 빼앗은 여자야! 방금 보니까 술에 취했더라고. 곁에 비서도 없이 말이야. 전에 날 도와준 적이 있는데 차마 그녀를 혼자 둘 수 있어야지. 그래서 집에 데려다주려고.”남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했지?”원태웅: “...”석지훈이 지시했다.“이 여자를 네 차에 태워.”“형, 내 차 고장 났어. 우리 두 사람 좀 집까지 데려다줘! 얘는 술 취하면 얌전해. 절대 방해 안 할게.”석지훈: “...”석지훈은 결국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원태웅은 전화를 받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야 했다. 정말 일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석지훈의 운전기사가 그를 길가에 내려주자 차에는 나와 석지훈 두 사람만 남았다.나는 일부러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는 신사답게 나를 밀어내지 않고 창문을 열었다. 나는 그의 팔을 껴안고 웅얼거리며 말했다.“정우 씨.”“허, 정우까지 네 손에 넘어간 거야.”남자가 갑자기 뜬금없이 말하자 나는 당황한 척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운전기사가 물었다.“아가씨, 어디 사세요?”나는 계속 당황한 척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무관심하고 간결하게 말했다.“주소.”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무슨 주소요?”그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네 집 주소.”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정말 오랫동안, 거의 돌처럼 굳어 버릴 때까지 생각하다가 석지훈의 품에 쓰러졌다.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운전 기사에게 지시했다.“동성으로 돌아가.”2년 전 석지훈은 동성에 살았었다.동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보니 창밖에는 온통 도라지꽃이 피어 있었다. 여기는 석 씨 저택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석지훈은 몰래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나는 깨어난 후 계속 멍하니 차 안에 앉아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다행히 술에 취해서 그런지 그는 나를 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