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는 말문이 막혔다.정은은 과자를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어때요? 맛있어요?”정은을 바라보는 민지의 눈빛은 기대를 머금었고, 마치 칭찬을 원하는 아이 같았다.“응, 질리지 않고 맛있어.”“그렇죠? 제가 많은 브랜드를 먹어봤는데, 이 브랜드의 초콜릿 과자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생각하다 민지는 또 서준을 바라보았다.“너도 조금 먹을래?”“아니, 고마워. 열량이 너무 많아서 먹으면 살찌기 쉬워.”그는 다른 뜻이 없었다. 다만 최근 운동을 하고 있었기에 음식을 통제해야 했다.그러나 키 1미터60센티미터에 몸무게가 70KG 넘는 민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이 친구 무슨 뜻이지? 지금 날 비웃는 거야?!’정은은 얼른 입을 열었다.“민지야, 하나 더 주면 안 돼?”민지는 바로 정은의 곁에 앉았는데, 마치 억울함을 당한 작은, 아니 큰 강아지와 같았다.“정은 언니밖에 없어요.”서준은 영문을 몰랐다.과자는 어느새 바닥이 났다. 정은은 세 조각을 먹었고 나머지는 모두 민지 혼자 해치웠다.민지의 몸이 튼튼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잘 먹고 잘 웃으니 통통하면서도 귀여웠다.이때 오미선도 돌아왔다. 그녀는 세 사람의 학교카드와 학생증을 가져왔다.“5시 30분이네. 우리 같이 식당에 가서 저녁 먹을까?”세 사람은 당연히 이의가 없었다....사람이 많아서 일행은 닭볶음탕 먹기로 결정했다.식당 5층에는 큰 룸이 있었는데, 동그란 식탁에 10명 정도 앉을 수 있었다.민지는 Y시에서 왔기에, 정은은 음식을 주문할 때 특별히 달콤한 음식을 하나 시켰다.민지는 또다시 정은에게 반했다.서준은 말이 많지 않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은도 그를 챙기기 귀찮아졌다.오미선의 입맛을 고려하여 정은은 또 그녀가 좋아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 두 개를 주문했다.매운 음식, 단 음식이 다 있었기에, 네 사람은 모두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다 먹은 다음, 오미선은 자신의 카드를 꺼내 계산했다.“이건
“서지예라는 사람, 만만하지 않은 것 같아요.”“이유는?”“대학원 입학 통지가 내려오자마자 제가 신입생 단톡방에 들어갔거든요. 그 안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심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서지예라고요...”지예는 서비대학교의 우수학생으로서, 비록 성적이 대학원 입시를 면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6편의 SCI를 발표한 적이 있기에 학교에서 그녀를 특별히 입학시켰다.‘천재 소녀’, ‘학술계의 샛별’이란 별명이 있기도 했다.“이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오미선 교수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5명 중 한 남자아이가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는데, 말투는 그렇게 다정하지 않았다.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신진호는 단톡방의 방장이에요. 하루 22시간 동안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는 거 있죠? 입이 엄청 세요.”진호가 입을 열자, 송지혜는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다.“다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얼른 오 교수님께 인사하지 않고.”지예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명성이 자자한 그녀는 성격이 무척 오만했다.경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웃으면 매우 부드러웠고, 목소리도 달콤하면서 듣기 좋았다.“교수님 안녕하세요.”서정은 많이 뻘쭘했다.전에 그녀는 오미선을 여러 번 찾아갔었다. 병문안도 하고 선물까지 줬는데, 오미선을 아예 자신의 조상으로 삼은 것만 같았다.그러나 지금, 서정은 오히려 송지혜의 학생으로 되었다.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이 대학원생 자리를 얻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오미선도 서정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송지혜에게 뇌물을 줬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서정은 더욱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오미선과 눈빛조차 마주치지 못했다.탁재민이라는 남학생만이 흥분을 하며 앞으로 달려가서 오미선의 손을 꼭 잡았다.“오미선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 저, 저는 탁재민이라고 합니다! 전에 교수님의 논문을 읽은 적이 있고, 강의하시는 영상까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인을 만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
이 말은 진호뿐만 아니라 송지혜와 다른 학생들까지 함께 욕했다.“네가 바로 그 나이 많은 대학원생이지?” 송지혜는 그제야 정은을 바라보더니 경멸에 찬 말투로 말했다.“입은 대단하지만, 실력이 어떤지 모르겠네.”진호가 맞장구를 쳤다.“그러게요! 어느 정상적인 학생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대학원 시험에 붙었겠어요?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재능이 없는 거겠죠. 지금 대학원생으로 될 수 있는 문턱이 이렇게 낮은 거예요?”정은은 이 말을 듣고,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넌 내 머리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필요가 없지만, 넌 정말 병이 있는 것 같아.”줄곧 소리를 내지 않던 서준이 갑자기 말을 이어받았다.“그것도 미친 개한테 물린 광견병에 걸린 거죠. 사람만 보면 물려고 하니까.”말을 마치자, 서준은 또 송지혜를 바라보았다.“제가 만약 주인이라면, 이런 말을 듣지 않는 개가 자신을 물지 않도록 일찌감치 죽였을 텐데.”송지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진호는 제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지금 누가 개라고?! 너희들이 개지! 너희들 전부 미친 사람들이라고!”정은이 말했다.“누가 짖어대면 그 사람이 개겠지. 교수님, 얼른 갑시다. 이런 길을 막는 개들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요. 재수가 없으니까요.”오미선은 원래 화가 나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바로 가셨다.“그래.”일행 네 사람은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이때, 송지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학교에서 연구비용을 정식으로 비준했어요. 오 교수는 이미 몇 년째 변변한 논문을 내놓지 못했잖아요.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스스로 이 자리를 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양보했을 거예요.”오미선은 갑자기 멈칫했다.“자원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지, 나이 먹어서 매일 돈이나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보다 낫죠. 안 그래요, 오 교수님?”정은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그건 교수님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죠. 학술 성과는 누가 진정으로 자원의 주인이 되어
개학식이 끝나자, 정은의 대학원 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수업은 아주 많았는데, 아침 9시부터 점심 12시까지 거의 수업으로 꽉 찼다.민지는 첫날 수업에 지각할 뻔했다. 그래서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왔다.정은은 멈칫하더니 주의를 주었다.“민지야, 너 신발 잘못 신은 거 아니야?”“네?” 민지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슬리퍼를 바라보았다.“아니요, 잘못 신지 않았는데, 왜 그래요?”“너... 슬리퍼 신고 수업 들으러 온 거야?”“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우리 집은 여름에 다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거든요. 저도 정숙해 보이기 위해 특별히 크록스 슬리퍼를 샀어요.”서준은 민지를 힐끗 훑어보았다.“이게 정숙하다고?”“그런 게 아니면?!”“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어.”민지는 입을 삐죽거리며 한마디 남겼다.“넌 패션을 몰라.”서준은 확실히 잘 몰랐다.수업이 끝난 후, 세 사람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이야기를 나누던 중, 정은은 민지와 서준도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서준은 직접 자신의 집에서 지냈고, 민지는 학교 근처에서 아파트 하나를 구했다. 심지어 정은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민지는 정은을 아주 좋아했다. 그녀는 뚱뚱해서 늘 남들의 비웃음을 당했는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먼저 다가와서 민지와 놀아주는 여자아이가 아주 적었다.그러나 정은은 예외였다.그녀는 거리감 있을 정도로 예뻤지만, 접촉해 보면 사실 정은은 성격이 까칠하지 않았고,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지 않았다.“정은 언니, 우리 학교 근처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다고 들었어요. 맛도 최고급인데,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와서 사진까지 찍었다는 거예요. 인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엄청 싸다잖아요. 우리 오늘 가서...”민지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장미꽃 한 송이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정확히 말하면 정은의 눈앞에 나타났는데, 민지는 단지 그녀와 거리가 가까웠을 뿐이었다.강도겸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옷깃이 살
키도 크고 잘생긴 남자가 노란 장미를 들고 정은의 앞에 서 있었는데, 그녀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지예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예쁘게 생긴 여자는 참 복도 많아. 개학한 지 며칠 됐다고 벌써 남자들이 매달리기 시작한 거야? 그나저나, 경혜야 너도 예쁘게 생겼는데, 왜 아무도 너에게 꽃을 보내지 않은 거지?”경혜는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의 말에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이게 뭐라고 비교를 하는 건데?”“흥! 태연한 척하긴. 이런 장면을 보고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난 안 믿어!”경혜는 여전히 담담하게 웃었다.지예는 말 한마디를 남기며 성큼성큼 떠났다.“연기가 지나치면 너무 가식적이잖아.” 경혜는 제자리에 서서 미소를 조금씩 거두었다.멀지 않은 곳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진일이 말했다.“내가 한 말들 다 기억했어?”재민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감탄을 했다.진일은 그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마침 도겸이 꽃을 선물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학술 성과를 따내고 싶으면, 연애와 같은 일들로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시키지 마.”“어, 알겠습니다, 선배!”재민은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그 여자아이는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인 것 같아요.”그는 잠시 후 한마디 덧붙였다.“엄청 대단해요.”‘진호도 말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송 교수님을 비꼬았잖아. 너무 멋진데!’그러나 진일은 이런 일에 흥미가 없었다. 그는 시선을 거둔 다음, 더 이상 저쪽을 보지 않았다.“가자, 너도 근처의 마트에 가서 생활용품 좀 사야지.”재민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저 혼자 챙겨왔어요.”진일은 어이가 없었다.“털이 다 날아간 칫솔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구멍이 난 수건을 말하는 거야?”재민은 부끄러워서 까무잡잡한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아, 아직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새것으로 바꾸지 않았어요.”새것을 사려면 돈이 들었다.진일은 마치 예전의 자신을 본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그
정은은 두 사람과 합류한 뒤, 함께 그 유명한 식당에 찾아갔다.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심이라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민지는 오는 길 내내 참았기에, 더 이상 호기심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음식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입을 열어 물었다.“정은 언니, 방금 그 꽃을 선물한 잘생긴 남자를 아시는 거예요? 그렇게 큰 노란 장미가 참 예쁜데. 취향이 괜찮네요.”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는 사이지. 내 전 남자친구야.”“네?”민지는 이런 답을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서준은 담담하게 정은을 바라보았다.밥을 다 먹은 후, 세 사람은 오미선의 사무실로 찾아갔다.오후에 수업이 없어서 오미선은 그들을 데리고 실험실로 들어가려 했다.민지는 감탄을 했다.“이렇게 빨리요?!”그녀는 적어도 1년 정도 배워야 실험 과제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학하자마자 바로 들어갈 수 있다니.서준은 그렇게 놀라지 않았지만 여전히 의외라 생각했다.그러나 오직 정은만이 잘 알고 있었다.‘교수님의 과제가 오랫동안 지체되었으니 지금 절박하게 성과를 바라고 계시겠지.’그렇게 실험실에서 나올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정은이 집에 도착할 때, 시간은 이미 9시가 되었다. 그녀는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바빴기에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정은은 소파에 누워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이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정은은 억지로 정신을 차리며 문을 열었다.“선배님?”“학교에서 나왔을 때, 성 교수님한테서 들었어. 오 교수님이 너희들 데리고 실험실에 들어갔다며?”“네.”“금방 돌아왔어?”“맞아요.”“저녁 아직 안 먹었지?”“물론이죠!”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좀 기다려.”말을 마치고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올 때, 손에 도시락통을 하나 들고 있었다.“아직 따끈하니까 얼른 먹어.”재석은 웃으면서 도시락을 건네주었다.정은
큰아들은 가업을 이어받았고, 둘째 아들은 스타 변호사이며, 막내아들은 학술 연구에 전념했다.“당신 오늘 오후에 재석이 보러 갔을 때 무슨 일 있었어?”강서원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주 수상해요.”“뭐가 수상한데?”“내가 오늘 재석을 찾아갔을 때, 뜻밖에도 도시락 2인분을 달라고 말한 거 있죠! 하나가 아닌 두 개라니?!”소기봉은 영문을 몰랐다.“2인분이 뭐가 어때서?”“내 생각에, 재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아요.’그렇지 않고서야 도시락 2인분을 달라고 말할 리가 없었다.소기봉은 또 무슨 폭발적인 뉴스라도 있는 줄 알았다.“도시락 하나 더 달라고 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만약 두 끼 먹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아니면 친구에게 가져다줄 수도 있지 뭐. 당신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말하면서 소기봉은 차 한 잔을 따랐다. 냄새를 맡고 음미하는 여유로운 모습은 초조한 강서원과 정 반대였다.“재석이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매일 실험만 아니면 데이터를 연구했으니 평소에 돌아와서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야. 그런데 연애할 시간이 어딨겠어?”“게다가, 재석도 이제 나이가 됐으니, 정말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닌가? 당신은 전에 매일 재석이에게 어느 집안 딸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마침내 당신의 뜻대로 되었으니, 또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아이도 다 컸으니 언젠간 알아서 연애를 하겠지. 설마 평생 재석이를 간섭할 건가? 게다가 간섭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잖아.’강서원도 그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아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마음이 복잡했다.“먼저 자러 갈게요!”“어? 계속 빙빙 돌아다니지 않을 거야?”“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죠.”‘내일 재석이 세낸 집에 찾아가 봐야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똑똑히 확인할 거라고!’...9월의 날은 아주 일찍 밝았다.정은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커튼을
강서원은 이 말을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투덜댔다.“이 건물은 어쩜 이렇게도 더러운 거니? 도처에 쓰레기가 널려 있고, 냄새도 나고. 이것의 사람들은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청소하는 사람도 없는 거야? 그리고 이 벽은 새까맣게 변했잖아. 이 난간도 전부 먼지고. 아마 닦은 적이 없을 거야...”정은은 시간을 보았는데, 더 이상 꾸물대면 늦을 것이다. 강서원이 멀쩡한 것을 보자, 그녀가 계속 투덜대는 것을 듣기 귀찮아서 정은은 그냥 가버렸다.강서원은 정은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그런 무시당하는 느낌이 더욱 강렬해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는데, 아직 몇 층이나 남았다. 게다가 모두 이런 계단이었다.강서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를 악물었고, 하이힐을 신은 채 계속 올라갔다.다만 입으로 계속 투덜댔다.“멀쩡한 별장을 놔두고 굳이 이런 낡아빠진 아파트에서 지내려 하다니... 고집이 어쩜 이렇게도 센 건지.”간신히 7층에 도착한 강서원은 비상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재석은 집에 없었다.‘이 시간이라면 아마도 실험실에 있겠지.’한 바퀴 둘러본 다음, 강서원은 거실이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여자의 생활용품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심지어 바닥까지 검사했지만 긴 머리카락 하나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강서원은 사색에 잠겼다.‘내가 너무 예민했나?’그날 가져온 도시락통을 가져가려고 강서원은 주방을 향했다.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멈칫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식탁 위에는 도시락통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하나밖에 없어! 다른 하나는 어디에 있지? 다른 사람한테 준 게 분명해. 정말 수상하네!’강서원도 오래 있지 않았다. 실마리를 발견한 다음, 그녀는 곧장 본가로 돌아갔다.“거 봐요! 역시 내 말이 맞았다니깐요!”소기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당신한테 잡힌 거야?”“잡히긴 뭘 잡혀요? 재석이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그게 아닌데 왜 그렇게 투덜대는 거야?”강서원은 자신의 생각에 잠겨 그의
송지혜가 말했다. “가서 말해 봐. 내가 처분을 받으면, 너도 졸업할 수가 없을 거야!”“누가 못 갈 줄 알아요?”“강서정, 너 뭔가 잊은 것 같은데. 그때 넌 어떻게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더라?”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송지혜는 가볍게 웃었다.“너 원래 시험에서 떨어졌잖아. 만약 내가 널 봐주지 않았다면, 넌 네가 오늘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그래, 가서 고발해. 나도 널 막지 않을게. 죽으면 같이 죽자고. 내가 학교에서 해임을 당하면, 부정한 수단과 뇌물을 주고 들어온 학생들도 같이 쫓겨나겠지.”서정은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다.“정말 악독한 분이시군요!”“악독해?” 송지혜는 피식 웃었다. “너도 마찬가지야.”과제 가산점이 없으니 서정의 기말 성적은 정말 비참했다.세 과목이 F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타 전공 과목도 대부분 C를 받았다.이 성적은 남의 웃음거리로 될 게 뻔했다.‘신진호 저 앞잡이조차도 나보다 시험을 잘 봤잖아!’매번 서영숙이 기말 성적을 물어볼 때마다 서정은 우물쭈물 했고, 정말 숨길 수 없게 되자 사실대로 말했다.서영숙은 학력뿐만 아니라 성적까지 무척 중시했다.그녀의 딸은 이미 서비대학교에 합격했으니 이미 매우 우수했다. 그러니 시험 따위도 다 잘 볼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날 죽일 작정인 거야?!”서정은 매우 당황하여 아무 핑계를 댔다.“이번 기말 시험 정말 어려웠단 말이에요! 시험을 잘 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낮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니라고요.”“소정은은?”서정은 말문이 막혔다.“말해!”“전부 A 받았어요.”서영숙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지예도 요즘 일이 잘 안 풀렸다.송지혜가 너무 까다로웠던 것이다.그녀 앞에서 이미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그래도 욕을 먹어야 했다.욕을 먹어도 울지 못했다.친이모였지만 지예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다.게다가 학술 성적까지 없어졌다.실험실이 정돈되었기에 지예도 진일의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하지
게다가 송지혜 명의로 된 실험실은 소방 점검 불합격으로 인해 시정서까지 받았다.물론 지금까지 아직 시정을 통과하지 못했다.그러니 그동안 그 어떤 학술적 산출도 없었다.이 때문에 정례 회의에서, 송지혜 팀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진호는 예전에 남을 비웃으며 언제든지 일어서서 사람을 물어뜯을 수 있는 들개와 같았지만, 지금은 여느 때보다 더 조용했다.서정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실험실이 정돈되었기에 그녀가 전에 힘들게 송지혜에게서 쟁취한 과제도 물거품이 되었다.송지혜에게 다른 과제를 안배해달라고 했지만 오히려 엄청난 욕을 먹었다.“과제! 그놈의 과제! 나도 과제를 원한다고! 지금 실험실은 시정서를 받았으니 아무런 과제도 진행할 수 없잖아.”“그러니 내가 어떻게 과제를 얻어오겠어?! 게다가, 설령 나한테 과제가 있다 하더라도, 넌 그 진도를 따라갈 수 있다고 확신하니?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냐고?”“그럴 능력이 없으면 과제를 넘볼 생각하지 마. 사람은 자기 주제를 잘 알아야 해! 모든 대학원생이 학술을 하기에 적합한 것도 아니고.”“모든 사람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정말 자신이 학술 천재라고 생각하는 거야? 넌 네가 소정은보다 더 잘난 거야?!”끊임없이 쏟아지는 욕설, 송지혜는 서정의 얼굴에 침까지 튀겼다.다행히 서정은 빨리 피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교수님, 애초에 저에게 사비로 기계를 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 이것만 똑똑히 아셨으면 좋겠어요. 과제팀에 들어가는 이 일, 저는 교수님에게 부탁하는 것도, 상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건 완전한 거래라고요.”“저는 돈을 내고, 교수님은 그 보답으로 저에게 과제를 주시는 거죠. 이건 우리 서로가 윈윈하는 거래잖아요. 지금 저는 돈을 냈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약속을 어기셨죠. 장사를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서정은 더 이상 송지혜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다.그녀는 권세나 재물에 눈이 멀고 돈이나 탐내며 속이 좁은 학술 깡패로서, 학생들이 존경할
정은은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있어! 당연히 있지! 네가 대신 전해 줄래?”“좋아요!”정은은 또 몇 캔을 꺼내 민지의 차에 놓았다.“헤헤, 정은 언니 짱!”“너와 서준이도 짱인 것 같아.”말을 마치고 정은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끌고 아파트를 향해 걸어갔다.민지는 정은의 말을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고, 기뻐하며 핸드폰을 꺼냈다.“어! 쮼! 너 지금 아파트에 있어? 내가 육포와 소고기 소스 보내줄게! 그래... 정은 언니가 준 거야.”맞은편의 서준이 대답했다. “그래, 이리 와.”[오케이! 20분 후에 도착할 거야.]“응.”전화를 끊고 서준은 가장 빠른 속도로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가더니 외투를 입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할머니, 오늘 점심은 나가서 먹을게요. 저녁... 저녁에도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어디 가는 거야?”“아파트예요!”“어? 오늘은 여기 남아서 밥 먹기로 했잖아?”서준은 이미 문을 밀고 나갔는데, 이 말을 듣고 목청을 돋우며 대답했다.“다음에 먹을게요!”“얘도 참... 무슨 일인데 그리 성급한 거야...”...정은은 아래층에 멈춰 서서 잠시 쉬려고 했다.그리고 묵묵히 손에 든 상자를 보더니, 또 고개를 들어 7층을 바라보았다. ‘이따 한 번 더 내려올까?’이렇게 궁리하고 있을 때, 옆에는 이미 누군가가 정은의 크렁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어?”정은은 멍해졌다.재석은 뒤에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안 올라오고 뭐해?”정은은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쫓아갔다.“가요.”남자는 그렇게 큰 트렁크를 들고도 쉽게 7층까지 올라갔는데, 숨조차 헐떡이지 않았다.이런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정은을 정말 부러웠다.“고마워요, 선배님.”재석은 트렁크를 내려놓고 정은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안으로 들어가자. 이거 무거워서 너 못들어.”정은은 빨리 열쇠를 꺼냈다.문이 열리자 그녀는 재석을 안으로 초대했다.남자는 익숙하게 슬리퍼를 갈아 신고 트렁크를 거실에
특히 봉수진은 요 며칠 별장에 있으면서, 눈도 좋아졌고 허리도 아프지 않았다.하루 종일 웃으며 뭘 먹어도 맛있었다.이춘재는 더욱 집안의 홈닥터와 운전기사, 경호원을 모두 불렀는데, 오래 지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이미숙은 소진헌이 익숙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그러나.“그럴 리가! 어머님은 나와 함께 꽃을 가꾸시며 채소까지 심으시고, 아버님은 나와 함께 바둑까지 두실 수 있잖아.”겨울방학이라 그는 할 일이 없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이미숙은 대부분 서재에서 키보드를 두드렸으니, 이번에는 채소를 같이 심을 친구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바둑 친구까지 찾았다.‘내가 괜한 생각을 했군.’“헤헤.”정은은 이틀 동안 지내다 사흘 만에 J시로 돌아왔다.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실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논문은 반드시 설 전에 완성해야 했다.소진헌은 온 천하의 부모님처럼, 딸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정은의 트렁크에 맛있는 것을 엄청 많이 챙겨줬는데, 모두 그가 직접 만든 소고기 소스와 육포였다.그리하여 정은은 홀가분하게 돌아왔지만, 떠날 때 짐이 많아졌다.민지는 이 소식을 듣고, 진작에 자신이 새로 산 BMW를 몰고 열차역에 와서 정은을 마중했다.그렇다, 민지도 차를 샀던 것이다.하정남은 원래 그녀에게 페라리를 사주려고 했는데, 차종까지 모두 결정했다.그는 차를 모르지만, 돈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비싸면 좋은 차였으니까.하지만 민지는 완곡하게 거절했다.“학생은 학생다워야죠,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면 안 돼요!”결국 민지는 혼자 매장으로 달려가 BMW를 뽑았고, 심지어 성가비를 가지고 있는 차종이었다.당시 서준이 그녀와 함께 가서 골랐다.카드를 긁고 민지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쮼, 나 살림 정말 잘 하지?”서준이 말을 하려고 할 때, 민지는 계속해서 말했다.“너도 좀 배워.”그래서 이 말이 중점이었다.서준은 침묵했다.“참, 너도 한 대 사지 그래? 아파트에서 실험실로 가려면 아주 멀잖아
‘뺏으라고?’현빈은 웃음이 나왔다.“그래도 뺏을 수가 있어야죠.”“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빼앗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거야?”“왜요? 이모를 뺏으려고요? 쳇. 우선 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나서서 막으실 거예요.”심정훈은 이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예리한 눈빛으로 현빈을 바라보았다.“도대체 어떤 여자가 널 차버렸는데? 말해 봐?”현빈은 말을 하지 않았다.“아까 말 잘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침묵하는 거야?”“말해도 모르시잖아요.”심정훈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잔을 들었다.“자, 우리 부자끼리 모처럼 모였으니 한 잔 하자.”짠.잔이 맞부딪치자, 두 사람은 각자의 걱정거리를 삼켰다.달은 중천에 떠 있었고, 밤은 점점 깊어졌다.현빈은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오히려 심정훈은 술을 많이 마셨지만, 취기가 전혀 없었고 술을 따를 때도 손이 떨리지 않았다.외모가 우월하고 기질이 출중한 두 남자가 함께 모여 울적하게 비싼 술을 마시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이쪽을 훑어보았다.현빈은 갑자기 술잔을 내려놓았다.“아버지, 어떤 방법으로 한 여자가 주동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요?”심정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현빈은 또 손을 흔들었다.“됐어요, 아버지한테 물어봐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네요. 아버지 자신도 해결하지 못했으니까.”‘역시 내 아들답네, 정곡만 골라서 찌르다니.’새벽 1시가 되어서야 부자는 술집을 떠났다.현빈은 이미 취했고, 심정훈은 나름 괜찮은 편이기 때문에 그를 호텔로 데려다줘야 했다.“딸꾹! 아버지, 왜 여기에 계세요?” 방에 들어서자마자 현빈은 잠에서 깨어나더니 갑자기 똑바로 섰다.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심정훈은 어이가 없었다.‘이 자식이 1분이라도 일찍 깨어났다면 혼자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일부러 날 부려먹은 거야?’현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아, 저를 데리고 호텔로 오신 거예요?”“하지만 저는 이제 여자 데리고 놀지 않으니
”아니, 이 남자가 그렇게 대단해? 술집에 와서 술 마시는데 경호원까지 데려오다니?”“누가 알겠어.”...현빈은 일부러 경호원에게 가까이 서서 지키라고 했고, 주위는 마침내 조용해졌다.그는 또 술 한 잔 가득 채웠다.그러나 어젯밤처럼 들이키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며 담담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이때, 현빈은 멈칫하더니 눈빛은 멀지 않은 부스 위에 떨어졌다.‘쯧쯧!’심정훈은 누군가의 눈빛을 알아차리고 그곳을 바라보았는데, 뜻밖에도 아들과 눈을 마주칠 줄이야.분위기는 어색해졌다.부자는 동시에 눈을 뗐다.현빈은 생각을 하더니 술병을 들고 심정훈의 옆에 가서 털썩 앉았다.“아, 술 마시러 오셨어요?”심정훈은 담담하게 현빈을 보았다.“무슨 쓸데없는 말을 묻는 거야. 술집에 와서 술 안 마시면? 영화라도 보라고?”“그런데 넌 또 무슨 상황이야?”심정훈은 현빈을 살펴보더니, 내색하지 않고 그의 손에 있는 절반 비어 있는 술병을 보았다.“담배와 술을 끊었다고 하지 않았니?”반년 전, 현빈은 갑자기 술과 담배를 끊겠다고 했는데, 심정훈은 당시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뒤에 그가 정말 그렇게 한 것을 보고, 심정훈은 깜짝 놀랐다.‘그런데 얼마 만에 본색이 드러났지?’현빈은 씁쓸하게 웃었다.“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끊을 필요가 있을까요?”심정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의 말을 알아차렸다.“여자에게 차였어?”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현빈은 말이 없었다.“허, 진짜 차였어? 재밌네.”“저만 그래요? 아버지도 마찬가지시잖아요.” 현빈은 피식 웃었다. ‘누가 빈정거리래?’심정훈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하룻밤 사이에 S시에서 달려오셨다니, 액셀에서 연기라도 나지 않았어요? 신호등은 몇 번이나 위반하셨죠? 운전면허증은 아직도 갖고 계신 거예요?”심정훈은 말문이 막혔다.“아버지도 참...”현빈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렇게 필사적으로 무슨 일을 하실 줄
지금의 심정훈과 이미숙은 이미 과거의 죽마고우가 아니었다.그들은 각자 결혼을 하여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어렸을 때 우리 커서 뭘 해야 할지 소원을 빌었던 거 기억나?” 심정훈이 먼저 침묵을 깼다.이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하죠. 형부는 천문을 좋아했으니, 졸업 후에 나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잖아요.”남자는 웃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을 띠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자신이 정말 어리석고 멍청한 것 같아. 꿈은 꿈이 아니라 손에 닿을 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난 결국 심씨 가문을 물려받았고, 부모님이 원하는 후계자가 되었어.”이미숙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난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심씨 가문은 지금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이미 20년 전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났잖아요. 형부는 아주 큰 성공을 거뒀어요.”‘하지만 난 널 잃었어...’심정훈은 입을 벌렸으나 결국 그 말을 삼켰다.곧이어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발생한 일을 돌이켜 말했다.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약간 넋이 나갔고, 자신이 결국 이미윤과 결혼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말할 때 은근히 망설였다.고개를 돌려 이미숙의 잔잔한 눈빛을 보자, 심정훈은 갑자기 물었다.“넌?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지? 그때 나와 아버님, 어머님은 모두 네가 외국에 버려졌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가장 외진 N국까지 찾아갔어. 그러나 전혀 네 소식이 없었고. 그런데 네가 뜻밖에도 L시에 있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이미숙은 심정훈을 오빠처럼 여겼기에, 그의 질문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그녀가 하룻밤 내내 강에서 떠다니다가 구조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미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심정훈은 여전히 마음이 조여들었다.이미숙은 그런 심정훈을 보며 웃었다.“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고요.”심정훈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겉으로 보기엔 심정훈은 가정이 원만하고, 우수하고 뛰어난 아들이 있고
심정훈은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내가 하면 돼요...”“뭘 사양하시고 그래요? 다 가족이잖아요.”심정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진헌은 이미 그의 그릇에 밥 두 숟가락 떠주었다.“여보, 제부 얼마나 세심한지 좀 봐요? 어쩐지 우리 미숙이 마음에 들었더라니.” 이미윤은 미소를 지었지만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했다.심정훈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으면서 전혀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이미윤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지만, 또 내색할 순 없어 끊임없이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며 억지로 참았다....점심을 먹고 소진헌은 그릇과 젓가락을 치웠고 정은이 도왔다.이미숙도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부녀가 설거지를 하자 자신은 식탁을 닦으며 과일을 깎았다.두 노인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현빈은 다 먹고 나서 볼일이 있다며 떠났기 때문에 지금은 심정훈과 이미윤 부부밖에 없었다.봉수진은 그제야 입을 열어 물었다.“정훈아, 네가 미숙이 집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당연히 제가 알려줬죠.” 이미윤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봉수진은 의아하게 그녀를 보았다.“어머니, 그게 무슨 눈빛이세요? 미숙이를 찾았으니, 정훈 씨는 형부로서 당연히 이 사실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물며 그동안 미숙이를 찾기 위해 정훈 씨도 엄청 힘을 썼잖아요!”“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그렇지 않으면 제가 또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두 사람 예전의 관계? 지금 다시 만난 이상, 다시 옛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해야 하나요?”이춘재와 봉수진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심정훈의 눈빛은 순식간에 극도로 차가워졌다.“이미윤, 말 똑바로 해! 주의 좀 하라고!”“난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았는데, 말을 똑바로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정훈 오빠~ 이렇게 불려야 마음에 드는 거예요?”“정말 억지를 부리는군!”이미윤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이미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두 노인을
기억은 마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소년과 소녀는 20대였고, 눈에는 서로밖에 없어, 누군가 먼저 고백을 하면 인연이 정해질 수 있었다.심정훈은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미숙이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내 정신 좀 봐... 이제 형부라고 불러야겠죠? 소개할게요. 내 남편 소진헌이에요.”‘형부’, ‘남편’이란 말에 심정훈은 숨이 멎었다.그러자 이미숙 옆에 있던 남자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소진헌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열정적으로 심정훈을 자리에 앉혔는데, 또 그를 위해 깨끗한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왔다.심정훈은 입가를 실룩거렸지만 결국 고맙다는 인사밖에 하지 못했다.소진헌의 요리 솜씨는 원래 괜찮았는데, 오늘 더욱 신경을 썼다.그러니 맛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두 노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식사하는 도중, 소진헌은 이미숙과 정은을 돌보았는데, 세심하게 아내를 도와 새우를 까주었고, 정은에게 집어준 음식도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요리였다.정은은 작은 산처럼 쌓인 그릇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빠, 저 아직 다 못 먹었어요.”“나한테도 집어주지 마요. 남으면 당신이 다 먹을 거예요?”“그럼.”소진헌은 웃으며 대답했다.평소에 이미숙이 음식을 남기면 전부 소진헌이 해치웠다.소진헌은 오히려 습관이 되어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들은 그렇지 않았다.심정훈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이미윤은 비아냥거리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지금 사랑을 과시하고 있는 거야?’현빈은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는데, 너무 진지해서 주위의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오히려 이춘재와 봉수진은 참지 못하고 눈을 마주쳤다.전에는 소진헌이 이미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바보 사위가 ‘괴롭힘’을 당하면서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소진헌이 이미숙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소진헌은 여전히 허허 웃으며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정말 단순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