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예라는 사람, 만만하지 않은 것 같아요.”“이유는?”“대학원 입학 통지가 내려오자마자 제가 신입생 단톡방에 들어갔거든요. 그 안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심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서지예라고요...”지예는 서비대학교의 우수학생으로서, 비록 성적이 대학원 입시를 면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6편의 SCI를 발표한 적이 있기에 학교에서 그녀를 특별히 입학시켰다.‘천재 소녀’, ‘학술계의 샛별’이란 별명이 있기도 했다.“이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오미선 교수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5명 중 한 남자아이가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는데, 말투는 그렇게 다정하지 않았다.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신진호는 단톡방의 방장이에요. 하루 22시간 동안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는 거 있죠? 입이 엄청 세요.”진호가 입을 열자, 송지혜는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다.“다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얼른 오 교수님께 인사하지 않고.”지예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명성이 자자한 그녀는 성격이 무척 오만했다.경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웃으면 매우 부드러웠고, 목소리도 달콤하면서 듣기 좋았다.“교수님 안녕하세요.”서정은 많이 뻘쭘했다.전에 그녀는 오미선을 여러 번 찾아갔었다. 병문안도 하고 선물까지 줬는데, 오미선을 아예 자신의 조상으로 삼은 것만 같았다.그러나 지금, 서정은 오히려 송지혜의 학생으로 되었다.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이 대학원생 자리를 얻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오미선도 서정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송지혜에게 뇌물을 줬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서정은 더욱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오미선과 눈빛조차 마주치지 못했다.탁재민이라는 남학생만이 흥분을 하며 앞으로 달려가서 오미선의 손을 꼭 잡았다.“오미선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 저, 저는 탁재민이라고 합니다! 전에 교수님의 논문을 읽은 적이 있고, 강의하시는 영상까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인을 만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
이 말은 진호뿐만 아니라 송지혜와 다른 학생들까지 함께 욕했다.“네가 바로 그 나이 많은 대학원생이지?” 송지혜는 그제야 정은을 바라보더니 경멸에 찬 말투로 말했다.“입은 대단하지만, 실력이 어떤지 모르겠네.”진호가 맞장구를 쳤다.“그러게요! 어느 정상적인 학생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대학원 시험에 붙었겠어요?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재능이 없는 거겠죠. 지금 대학원생으로 될 수 있는 문턱이 이렇게 낮은 거예요?”정은은 이 말을 듣고,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넌 내 머리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필요가 없지만, 넌 정말 병이 있는 것 같아.”줄곧 소리를 내지 않던 서준이 갑자기 말을 이어받았다.“그것도 미친 개한테 물린 광견병에 걸린 거죠. 사람만 보면 물려고 하니까.”말을 마치자, 서준은 또 송지혜를 바라보았다.“제가 만약 주인이라면, 이런 말을 듣지 않는 개가 자신을 물지 않도록 일찌감치 죽였을 텐데.”송지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진호는 제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지금 누가 개라고?! 너희들이 개지! 너희들 전부 미친 사람들이라고!”정은이 말했다.“누가 짖어대면 그 사람이 개겠지. 교수님, 얼른 갑시다. 이런 길을 막는 개들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요. 재수가 없으니까요.”오미선은 원래 화가 나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바로 가셨다.“그래.”일행 네 사람은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이때, 송지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학교에서 연구비용을 정식으로 비준했어요. 오 교수는 이미 몇 년째 변변한 논문을 내놓지 못했잖아요.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스스로 이 자리를 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양보했을 거예요.”오미선은 갑자기 멈칫했다.“자원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지, 나이 먹어서 매일 돈이나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보다 낫죠. 안 그래요, 오 교수님?”정은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그건 교수님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죠. 학술 성과는 누가 진정으로 자원의 주인이 되어
개학식이 끝나자, 정은의 대학원 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수업은 아주 많았는데, 아침 9시부터 점심 12시까지 거의 수업으로 꽉 찼다.민지는 첫날 수업에 지각할 뻔했다. 그래서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왔다.정은은 멈칫하더니 주의를 주었다.“민지야, 너 신발 잘못 신은 거 아니야?”“네?” 민지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슬리퍼를 바라보았다.“아니요, 잘못 신지 않았는데, 왜 그래요?”“너... 슬리퍼 신고 수업 들으러 온 거야?”“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우리 집은 여름에 다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거든요. 저도 정숙해 보이기 위해 특별히 크록스 슬리퍼를 샀어요.”서준은 민지를 힐끗 훑어보았다.“이게 정숙하다고?”“그런 게 아니면?!”“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어.”민지는 입을 삐죽거리며 한마디 남겼다.“넌 패션을 몰라.”서준은 확실히 잘 몰랐다.수업이 끝난 후, 세 사람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이야기를 나누던 중, 정은은 민지와 서준도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서준은 직접 자신의 집에서 지냈고, 민지는 학교 근처에서 아파트 하나를 구했다. 심지어 정은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민지는 정은을 아주 좋아했다. 그녀는 뚱뚱해서 늘 남들의 비웃음을 당했는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먼저 다가와서 민지와 놀아주는 여자아이가 아주 적었다.그러나 정은은 예외였다.그녀는 거리감 있을 정도로 예뻤지만, 접촉해 보면 사실 정은은 성격이 까칠하지 않았고,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지 않았다.“정은 언니, 우리 학교 근처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다고 들었어요. 맛도 최고급인데,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와서 사진까지 찍었다는 거예요. 인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엄청 싸다잖아요. 우리 오늘 가서...”민지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장미꽃 한 송이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정확히 말하면 정은의 눈앞에 나타났는데, 민지는 단지 그녀와 거리가 가까웠을 뿐이었다.강도겸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옷깃이 살
키도 크고 잘생긴 남자가 노란 장미를 들고 정은의 앞에 서 있었는데, 그녀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지예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예쁘게 생긴 여자는 참 복도 많아. 개학한 지 며칠 됐다고 벌써 남자들이 매달리기 시작한 거야? 그나저나, 경혜야 너도 예쁘게 생겼는데, 왜 아무도 너에게 꽃을 보내지 않은 거지?”경혜는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의 말에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이게 뭐라고 비교를 하는 건데?”“흥! 태연한 척하긴. 이런 장면을 보고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난 안 믿어!”경혜는 여전히 담담하게 웃었다.지예는 말 한마디를 남기며 성큼성큼 떠났다.“연기가 지나치면 너무 가식적이잖아.” 경혜는 제자리에 서서 미소를 조금씩 거두었다.멀지 않은 곳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진일이 말했다.“내가 한 말들 다 기억했어?”재민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감탄을 했다.진일은 그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마침 도겸이 꽃을 선물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학술 성과를 따내고 싶으면, 연애와 같은 일들로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시키지 마.”“어, 알겠습니다, 선배!”재민은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그 여자아이는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인 것 같아요.”그는 잠시 후 한마디 덧붙였다.“엄청 대단해요.”‘진호도 말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송 교수님을 비꼬았잖아. 너무 멋진데!’그러나 진일은 이런 일에 흥미가 없었다. 그는 시선을 거둔 다음, 더 이상 저쪽을 보지 않았다.“가자, 너도 근처의 마트에 가서 생활용품 좀 사야지.”재민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저 혼자 챙겨왔어요.”진일은 어이가 없었다.“털이 다 날아간 칫솔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구멍이 난 수건을 말하는 거야?”재민은 부끄러워서 까무잡잡한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아, 아직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새것으로 바꾸지 않았어요.”새것을 사려면 돈이 들었다.진일은 마치 예전의 자신을 본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그
정은은 두 사람과 합류한 뒤, 함께 그 유명한 식당에 찾아갔다.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심이라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민지는 오는 길 내내 참았기에, 더 이상 호기심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음식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입을 열어 물었다.“정은 언니, 방금 그 꽃을 선물한 잘생긴 남자를 아시는 거예요? 그렇게 큰 노란 장미가 참 예쁜데. 취향이 괜찮네요.”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는 사이지. 내 전 남자친구야.”“네?”민지는 이런 답을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서준은 담담하게 정은을 바라보았다.밥을 다 먹은 후, 세 사람은 오미선의 사무실로 찾아갔다.오후에 수업이 없어서 오미선은 그들을 데리고 실험실로 들어가려 했다.민지는 감탄을 했다.“이렇게 빨리요?!”그녀는 적어도 1년 정도 배워야 실험 과제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학하자마자 바로 들어갈 수 있다니.서준은 그렇게 놀라지 않았지만 여전히 의외라 생각했다.그러나 오직 정은만이 잘 알고 있었다.‘교수님의 과제가 오랫동안 지체되었으니 지금 절박하게 성과를 바라고 계시겠지.’그렇게 실험실에서 나올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정은이 집에 도착할 때, 시간은 이미 9시가 되었다. 그녀는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바빴기에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정은은 소파에 누워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이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정은은 억지로 정신을 차리며 문을 열었다.“선배님?”“학교에서 나왔을 때, 성 교수님한테서 들었어. 오 교수님이 너희들 데리고 실험실에 들어갔다며?”“네.”“금방 돌아왔어?”“맞아요.”“저녁 아직 안 먹었지?”“물론이죠!”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좀 기다려.”말을 마치고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올 때, 손에 도시락통을 하나 들고 있었다.“아직 따끈하니까 얼른 먹어.”재석은 웃으면서 도시락을 건네주었다.정은
큰아들은 가업을 이어받았고, 둘째 아들은 스타 변호사이며, 막내아들은 학술 연구에 전념했다.“당신 오늘 오후에 재석이 보러 갔을 때 무슨 일 있었어?”강서원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주 수상해요.”“뭐가 수상한데?”“내가 오늘 재석을 찾아갔을 때, 뜻밖에도 도시락 2인분을 달라고 말한 거 있죠! 하나가 아닌 두 개라니?!”소기봉은 영문을 몰랐다.“2인분이 뭐가 어때서?”“내 생각에, 재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아요.’그렇지 않고서야 도시락 2인분을 달라고 말할 리가 없었다.소기봉은 또 무슨 폭발적인 뉴스라도 있는 줄 알았다.“도시락 하나 더 달라고 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만약 두 끼 먹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아니면 친구에게 가져다줄 수도 있지 뭐. 당신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말하면서 소기봉은 차 한 잔을 따랐다. 냄새를 맡고 음미하는 여유로운 모습은 초조한 강서원과 정 반대였다.“재석이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매일 실험만 아니면 데이터를 연구했으니 평소에 돌아와서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야. 그런데 연애할 시간이 어딨겠어?”“게다가, 재석도 이제 나이가 됐으니, 정말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닌가? 당신은 전에 매일 재석이에게 어느 집안 딸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마침내 당신의 뜻대로 되었으니, 또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아이도 다 컸으니 언젠간 알아서 연애를 하겠지. 설마 평생 재석이를 간섭할 건가? 게다가 간섭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잖아.’강서원도 그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아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마음이 복잡했다.“먼저 자러 갈게요!”“어? 계속 빙빙 돌아다니지 않을 거야?”“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죠.”‘내일 재석이 세낸 집에 찾아가 봐야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똑똑히 확인할 거라고!’...9월의 날은 아주 일찍 밝았다.정은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커튼을
강서원은 이 말을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투덜댔다.“이 건물은 어쩜 이렇게도 더러운 거니? 도처에 쓰레기가 널려 있고, 냄새도 나고. 이것의 사람들은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청소하는 사람도 없는 거야? 그리고 이 벽은 새까맣게 변했잖아. 이 난간도 전부 먼지고. 아마 닦은 적이 없을 거야...”정은은 시간을 보았는데, 더 이상 꾸물대면 늦을 것이다. 강서원이 멀쩡한 것을 보자, 그녀가 계속 투덜대는 것을 듣기 귀찮아서 정은은 그냥 가버렸다.강서원은 정은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그런 무시당하는 느낌이 더욱 강렬해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는데, 아직 몇 층이나 남았다. 게다가 모두 이런 계단이었다.강서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를 악물었고, 하이힐을 신은 채 계속 올라갔다.다만 입으로 계속 투덜댔다.“멀쩡한 별장을 놔두고 굳이 이런 낡아빠진 아파트에서 지내려 하다니... 고집이 어쩜 이렇게도 센 건지.”간신히 7층에 도착한 강서원은 비상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재석은 집에 없었다.‘이 시간이라면 아마도 실험실에 있겠지.’한 바퀴 둘러본 다음, 강서원은 거실이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여자의 생활용품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심지어 바닥까지 검사했지만 긴 머리카락 하나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강서원은 사색에 잠겼다.‘내가 너무 예민했나?’그날 가져온 도시락통을 가져가려고 강서원은 주방을 향했다.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멈칫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식탁 위에는 도시락통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하나밖에 없어! 다른 하나는 어디에 있지? 다른 사람한테 준 게 분명해. 정말 수상하네!’강서원도 오래 있지 않았다. 실마리를 발견한 다음, 그녀는 곧장 본가로 돌아갔다.“거 봐요! 역시 내 말이 맞았다니깐요!”소기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당신한테 잡힌 거야?”“잡히긴 뭘 잡혀요? 재석이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그게 아닌데 왜 그렇게 투덜대는 거야?”강서원은 자신의 생각에 잠겨 그의
“선배님.”“이제야 돌아오는 거야?”정은이 대답했다.“도서관에서 잠깐 자료 좀 찾았어요.”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7층까지 올라갔다.“참, 도시락통은 이미 깨끗이 씻었는데, 잠깐만 기다려요...”정은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다음 얼른 도시락통을 들고 나왔다.재석은 받으면서 갑자기 입을 열어 물었다.“요즘 오미선 교수님과 함께 과제를 하고 있는 거야?”“네. 하지만 진도가...”“전에 교수님과 이 일로 토론한 적이 있어. 사실 이 과제의 접점부터 문제가 있거든. 그러나 너도 교수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거야.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교수님은 절대로 뒤돌아보시지 않을 거야.”정은도 이를 발견했고, 오미선에게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미선은 지금 충분한 데이터가 없으니 이대로 연구 방향을 바꾸면 지난 2년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어? 같이 밥 먹으면서 상의하는 건 어때? 교수님을 어떻게 말려야 할지.”“토요일이요?” 정은은 입술을 깨물었다.“미안해요, 이미 약속이 있어서요.”재석은 멈칫했지만 이내 대답했다.“괜찮아, 그럼 시간 나면 다시 나에게 연락해.”“좋아요.”...토요일, 정은과 민지는 서준의 집에 찾아갔다.[미리 경비 아저씨에게 말했으니까 들어올 때 직접 방 번호를 말하면 돼요.]서준이 톡을 보냈다.정은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빌딩을 바라보았다.민지는 혀를 차며 말했다.“와, 서준이는 정말 돈이 많네요.”이 집은 세낸 것이 아니라 직접 산 것인데, 심지어 서준의 명의로 된 것이었다.방금 경비실에 찾아갔을 때, 두 사람 모두 이를 보았다.“들어와요. 일회용 슬리퍼로 갈아신으면 돼요.”서준의 집은 12층에 있었다. 민지와 정은이 문에 들어서자 감응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는 문을 열며 담담하게 말했다.“뭐 마실래?”민지는 바로 눈을 깜박였다.“콜라 있어?”“응. 칼로리 있는 거 없는 거?”“당연히 칼로리가 있는 거 마셔야지. 제로 칼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
“능청스럽게 굴지 마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어때요? 나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어요. 당신이 본 『7일담』이 바로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에요. 그러니 나는 당신과 재계약을 할 수 없어요. 지난 10년간의 감정을 봐서, 우리는 좋게 갈라지죠.”“좋게 갈라져?” 유보영은 냉소를 지으며 드디어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누가 나의 손실을 배상하는 건데?”“당신이 무슨 손실을 입었다는 거죠?” 이미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너와 계약을 했어. 10년, 꼬박 10년, 당신은 좋은 책 한 권도 쓰지 못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아가 계약을 하더니 바로 인기 소설을 출시해? 이미숙, 너 지금 날 갖고 장난하는 거지?”“내가 쓰기 싫어서 그래요? 당신이 줄곧 나의 구상을 부정하고, 나에게 출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가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의 대강을 주었는지 계산해 본 적 있어요? 마지막에는 예외가 하나도 없이 전부 거절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인기를 끄는 작품을 출판하라는 거예요?”“너...”“당초의 계약비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래요, 당신은 확실히 많은 돈을 주었지만, 당신도 날 10년 동안 ‘감금’했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 예전에 쓴 책의 판권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겠죠.”유보영은 시선을 피하더니 다소 마음이 찔렸다.‘이미숙이 어떻게 그 판권에 대해 알았지?’“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죠? 나는 이미 변호사를 청해 계약서를 확인해 보았는데, 당신은 몰래 내 판권을 대리 운영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했죠. 사인할 때 나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쓰라고 했고요.”“허... 그래서? 이제 돈 계산을 하자는 거야? 변호사까지 불렀다고? 진작부터 날 방비했나 보네.”“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요. 전의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날 방해하지 마요.”이미숙은 일어나더니 손님을 내
이 시각, 소진헌은 학교에 수업하러 갔는데, 집에는 이미숙 혼자밖에 없었다.J시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새 책의 대강을 구상했고, 학교 괴담을 주제로 한 공포 소설을 창작할 계획이었다.그사이 정은이 전화를 걸어 실험실 완공식에 초청했지만, 부부는 아쉬움을 느끼며 거절했다.소진헌은 수업을 해야 했기에 떠날 수 없었고, 이미숙은 창작을 해야 해서 방해를 받으면 안 됐다.이야기가 이미 태반이 완성되고, 곧 마지막 장을 끝내려 해서 이미숙은 요즘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유보영이 문을 두드릴 때도 이미숙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문을 열러 가는 길에 머릿속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유보영은 미소 지었다.“오랜만이에요, 이 작가.”이미숙은 이마를 찌푸렸다.“당신이었어요?”“그래요, 그래도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유보영은 내색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인테리어가 이렇게 호화로운 걸 보니 정말 부자가 된 모양이야.’이미숙이 거절을 하기 전에 유보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이미숙은 비록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유보영이 떠들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웃고 있었기에, 예의상 이미숙은 그녀를 내쫓지 못했다.더군다나 이미숙도 유보영이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앉아요.” 이미숙은 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유보영은 앉은 후,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별장 곳곳을 살펴보았다.“이 작가님, 이사를 해도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예전에 이 작가님이 살던 곳에 달려가서 얼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전화해도 항상 전원이 꺼져 있어서 나도 이곳을 찾느라 애를 엄청 썼어요.”이미숙은 대답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게요, 우리 계약도 곧 만기 되어 가잖아요. 그동안 우리는 아주 잘 협력했고, 재계약도 형식일 뿐이에요. 하지만 형식이라도 같이 사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 좀 봐요...”말하면
그리고 유보영의 밑에 이런 작가가 무려 수십 명이나 있었다.“어머!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작가들은 바보 아니에요? 판권 같은 것을 팔려면 작가 본인의 동의를 거치고 사인까지 해야 되잖아요?”장민영은 가볍게 흥얼거렸다.“넌 매일 그렇게 많은 계약을 복사하는데, 위의 상세한 조항을 보지 않았니?”“어?”“유 사장님은 계약을 할 때 이미 작가의 명의로 된 기타 서적의 판권 대리권을 손에 넣었다고. 그럼 작가에게 통지할 필요도 없고, 사인할 필요도 없어. 유 사장님이 가서 잘 이야기한 다음, 작업실 쪽에 공인만 하나 더 찍으면 끝.”“만약 정말 사인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나 찾아서 사인하면 되지 않겠어? 그 사람들 정말 작가 본인을 찾아 가서 대조할 수도 없잖아.”“어머, 그럼 유 사장님은 작가에게 주는 배당금까지 절약한 셈이네? 어차피 작가도 모르니, 돈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겠지.”장민영은 커피 한 모금 마셨다.“그래, 넌 사장님이 좋은 차에 비싼 집을 산 돈이 어디서 났다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명품인데, 내가 듣기로는 그 가방 하나만 해도 수천만 원이라잖아? 정말이야?”“정말이야, 그것도 에르메스.”“쯧쯧...”장민영은 감탄하면서 부러워했다.“가장 비참하게 당한 작가는 추리 소설을 썼다고 들었어. 일찍 엄청난 인기를 끈 두 권의 소설 판권은 유 사장님이 모두 팔았고. 최근 몇년간 또 기타 판권을 연장했는데, 그 작가 혼자만 해도 매달 최소 우리에게 수백만 원의 이익을 가져다줄수 있어.”“추리 소설 작가? 누구지? 요즘 한 추리 소설 작가가 대박 났는데. 이란 책을 써서 지금 아주 난리도 아니야. 작가 이름이... 이미숙이라 한 것 같아!”“이, 이미숙?!” 장민영은 깜짝 놀랐다.“그 제대로 당한 작가도 무슨 미숙이라고 한 것 같은데.”“같은 사람 아니겠지?”“아닐 거야. 유 사장님이 어떻게 새 책을 내줄 수 있겠어?” 장민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긴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