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80화

작가: 십일
강서원은 이 말을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투덜댔다.

“이 건물은 어쩜 이렇게도 더러운 거니? 도처에 쓰레기가 널려 있고, 냄새도 나고. 이것의 사람들은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청소하는 사람도 없는 거야? 그리고 이 벽은 새까맣게 변했잖아. 이 난간도 전부 먼지고. 아마 닦은 적이 없을 거야...”

정은은 시간을 보았는데, 더 이상 꾸물대면 늦을 것이다. 강서원이 멀쩡한 것을 보자, 그녀가 계속 투덜대는 것을 듣기 귀찮아서 정은은 그냥 가버렸다.

강서원은 정은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 무시당하는 느낌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는데, 아직 몇 층이나 남았다. 게다가 모두 이런 계단이었다.

강서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를 악물었고, 하이힐을 신은 채 계속 올라갔다.

다만 입으로 계속 투덜댔다.

“멀쩡한 별장을 놔두고 굳이 이런 낡아빠진 아파트에서 지내려 하다니... 고집이 어쩜 이렇게도 센 건지.”

간신히 7층에 도착한 강서원은 비상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재석은 집에 없었다.

‘이 시간이라면 아마도 실험실에 있겠지.’

한 바퀴 둘러본 다음, 강서원은 거실이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여자의 생활용품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심지어 바닥까지 검사했지만 긴 머리카락 하나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강서원은 사색에 잠겼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그날 가져온 도시락통을 가져가려고 강서원은 주방을 향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멈칫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식탁 위에는 도시락통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밖에 없어! 다른 하나는 어디에 있지? 다른 사람한테 준 게 분명해. 정말 수상하네!’

강서원도 오래 있지 않았다. 실마리를 발견한 다음, 그녀는 곧장 본가로 돌아갔다.

“거 봐요! 역시 내 말이 맞았다니깐요!”

소기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당신한테 잡힌 거야?”

“잡히긴 뭘 잡혀요? 재석이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게 아닌데 왜 그렇게 투덜대는 거야?”

강서원은 자신의 생각에 잠겨 그의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1화

    “선배님.”“이제야 돌아오는 거야?”정은이 대답했다.“도서관에서 잠깐 자료 좀 찾았어요.”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7층까지 올라갔다.“참, 도시락통은 이미 깨끗이 씻었는데, 잠깐만 기다려요...”정은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다음 얼른 도시락통을 들고 나왔다.재석은 받으면서 갑자기 입을 열어 물었다.“요즘 오미선 교수님과 함께 과제를 하고 있는 거야?”“네. 하지만 진도가...”“전에 교수님과 이 일로 토론한 적이 있어. 사실 이 과제의 접점부터 문제가 있거든. 그러나 너도 교수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거야.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교수님은 절대로 뒤돌아보시지 않을 거야.”정은도 이를 발견했고, 오미선에게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미선은 지금 충분한 데이터가 없으니 이대로 연구 방향을 바꾸면 지난 2년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어? 같이 밥 먹으면서 상의하는 건 어때? 교수님을 어떻게 말려야 할지.”“토요일이요?” 정은은 입술을 깨물었다.“미안해요, 이미 약속이 있어서요.”재석은 멈칫했지만 이내 대답했다.“괜찮아, 그럼 시간 나면 다시 나에게 연락해.”“좋아요.”...토요일, 정은과 민지는 서준의 집에 찾아갔다.[미리 경비 아저씨에게 말했으니까 들어올 때 직접 방 번호를 말하면 돼요.]서준이 톡을 보냈다.정은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빌딩을 바라보았다.민지는 혀를 차며 말했다.“와, 서준이는 정말 돈이 많네요.”이 집은 세낸 것이 아니라 직접 산 것인데, 심지어 서준의 명의로 된 것이었다.방금 경비실에 찾아갔을 때, 두 사람 모두 이를 보았다.“들어와요. 일회용 슬리퍼로 갈아신으면 돼요.”서준의 집은 12층에 있었다. 민지와 정은이 문에 들어서자 감응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는 문을 열며 담담하게 말했다.“뭐 마실래?”민지는 바로 눈을 깜박였다.“콜라 있어?”“응. 칼로리 있는 거 없는 거?”“당연히 칼로리가 있는 거 마셔야지. 제로 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2화

    “드디어 끝났네요!” 민지는 노트북을 덮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녀의 곁에는 빈 깡통 한 무더기가 있었다.서준이 입을 열었다.“가요, 내가 밥 살게요.”정은과 민지는 거절하지 않았다.세 사람은 앞으로 같이 일해야 했기에 서로에게 밥을 사주는 기회가 많았다.레스토랑 안,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우아한 피아노 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세 분 예약하셨나요?”“어제 예약했어요.”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예약한 정보를 보여주었다.곧 종업원은 세 사람을 데리고 자리로 갔다.정은이 전에 온 적이 있었기에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 레스토랑은 같은 레벨의 레스토랑에서 평가가 가장 좋지만 그 가격도 무척 비쌌다.민지는 자리에 앉은 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이야, 다르긴 정말 다르구나...”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주위를 찰칵찰칵 찍기도 했다.두 사람의 눈빛에 민지는 어색하게 웃었다.“우리 아빠한테 보여주려고요. 아직 이렇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을 본 적이 없으시거든요...”말을 마치고 또 사진에 전념했다.민지를 바라보는 서준의 눈빛은 저도 모르게 동정이 묻어났고 이내 부드러워졌다.‘민지의 집안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다니...’그러나 서준은 또 자신이 오해할까 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네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시지?”민지는 멈칫했다.이 표정을 본 서준과 정은은 그녀가 말하기 뻘쭘한 줄 알았다.“만약 불편하다면 말하지 않아도 돼.”“어... 우리 엄마는 가정주부야. 우리 아빠도 그냥 평소에 건물 출입자를 관리하는 경비원이시고. 내 고향은 시골인 데다가 바다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두 분은 한가하실 때 함께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으시곤 했어. 기회가 되면 방금 건져낸 새우와 물고기를 먹으러 우리 집에 와! 아주 싱싱하고 맛있어!”시골에 살고, 부모님은 직장이 없으며, 아빠는 가끔 대문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두 사람 가끔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는 민지의 말을 듣고 정은과 서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3화

    다 많은 다음, 서준은 일어나서 계산하러 갔다.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세 사람은 뜻밖에도 신진호, 서지예, 심경혜, 탁재민 일행과 부딪쳤다.유독 강서정만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그녀가 오지 않은 것도 정상이었다.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어떻게 이런 등급의 레스토랑에 나타나겠는가.“우쭈쭈, 이거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들 아니야?!”진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조롱하는 말투와 눈빛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정은 그들은 진호를 상대하지 않았다.진호는 웃음이 굳어졌지만 계속 입을 열었다.“공교롭게도 여기서 만났네. 그런데 왜 오미선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거지? 이렇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고 싶지 않으신가 봐? 우리는 송지혜 교수님이 모든 비용을 결산해주시는데 말이야. 학교의 중시를 받으니 다르긴 다르구나. 올해 대부분의 연구비용도 우리 과제팀에게 주었잖아. 아이고, 나도 정말 걱정이야. 너희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대학원에 합격했는데, 발언권도 없는 교수님을 따라다니면 무슨 성과를 거둘 수 있겠어? 정말 아쉽군!”진호는 쉴 새 없이 나불댔고, 지예와 경혜는 옆에 서서 방관했다. 오직 재민만이 어수룩하게 그를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진호에게 밀려났다.“이 촌놈아, 나한테 달라붙지 마! 저리 좀 꺼져!”재민은 멈칫하더니 자존심이 상한 동시에 열등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말렸다.“다들 동창이니까 이렇게 소란을 피울 필요가 없잖아...”“넌 입 좀 다물어! 여기서 말할 자격이 있긴 한 거야?”“난 왜 말을 할 수 없는 건데? 나한테도 입이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재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는 다툼을 진짜 잘 하지 못했다.진호가 말했다.“어쭈! 촌놈 주제에 성깔이 있어가지고. 내가 만만해 보여!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거야?”재민은 고개를 숙이며 남진일의 말을 떠올렸다.“우리처럼 가난한 집구석에서 자란 아이는 원래 불공평한 대우를 받게 돼. 될수록 참아. 네가 강대해지면 공평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4화

    진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뭐, 뭐 하려는 거야?! 이거 초상권 침해야! 고소할 거라고?!”민지가 말했다.“공공장소에서 합리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거니까 어디 한번 고소해 봐. 나는 단지 정의의 화신일 뿐이야.”“너, 너희들...”진호는 화가 나서 말까지 더듬었다.지예는 민지가 정말 찍고 있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신진호, 너 뭐 잘못 먹었어?”진호는 영문을 몰랐다.“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 각자 계산하기로 해서 이 레스토랑에 온 거잖아. 누가 결산한다는 거야! 야, 들어가는 사람 막지 말고 빨리 네 밥이나 먹어. 다 먹고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까!”진호는 달갑지 않아서 정은 일행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그제야 자리를 비켰다.재민은 움직이지 않았다.‘각자의 비용을 내야 하구나...’“미안, 나, 나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먼저 돌아갈게. 너희들 천천히 먹어!”말을 마치자 재빨리 밖을 나갔다.진호는 얄밉게 말했다.“촌놈! 돈이 없어서 저러는 게 분명해!”지예가 대답했다.“신경 쓰지 마.”정은 일행이 레스토랑을 나서자, 마침 앞에 택시가 멈춰 섰다.민지와 서준이 먼저 올라탔다.정은은 조수석에 앉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녀는 생각하다가 여전히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탁재민... 맞지?”모퉁이에서 한 훤칠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맞, 맞아요.”“학교로 돌아가려고? 마침 우리도 차를 불렀으니 같이 갈 수 있는데.“네? 정말 괜찮은 거예요?” 재민은 깜짝 놀란 듯 안절부절못했다.이곳은 학교와 너무 멀어서 방금 왔을 때 진호가 택시를 잡았고, 비용이 만 원이었다.재민은 원래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이 시간에 그 버스는 이미 운행이 중단되었다.그는 카풀앱에서 차를 불렀는데, 학교에 가면 단지 2천 원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줄곧 승객이 없어서 재민은 주문을 취소하려 했고, 고민하고 있을 때 정은이 나타났다.“응. 어차피 우리도 돌아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5화

    차가 골목 어귀에 멈추자, 정은이 차에서 내렸다.서준과 민지는 이미 앞의 골목에서 내렸다.정은은 아파트를 향해 걸어갔다.잔잔한 달빛이 떨어지며 밤하늘에 별이 몇 개 걸려 있었다.한여름의 무더위를 띤 바람은 결코 시원하지 않았다.이때 정은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아파트 아래층에서 한 남자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그녀를 본 순간, 남자는 바로 똑바로 섰다.곧이어 그는 미소를 지었다.“왜? 내가 여기에 나타나서 많이 놀랐어?”심현빈이 정은의 앞으로 다가왔다.정은은 잠시 멈칫했다.“조금요.”“학교 생활은 적응이 잘 되고?”“네.”“수업은 많지 않아?”이 말은 정은의 정곡을 정확하게 찔렀다.‘수업은 정말 꽉 찼지!’현빈은 어깨를 들썩였다.“네 표정을 보니 이미 답을 알겠네.”“그렇게 티가 나나요?” 정은은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아니.”“그럼 어떻게 안 거예요?”“내가 눈치가 빨라서.”정은은 어이가 없었다.“밖이 너무 덥네. 하지만 넌 분명히 날 집으로 초대하지 않을 거야. 그럼 우리 시원한 곳에 가서 좀 앉을까?”현빈은 그래도 정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넌 지금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아, 이 남자는 정말 눈치가 빠르고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어.”정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음, 내가 또 맞혔구나, 맞지?”...두 사람은 전에 갔던 밀크티 가게에 도착했다.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데다가 에어컨이 있어서 무척 시원했다.다만 현빈은 양복을 입고 있었기에 아무리 봐도 밀크티 가게와 어울리지 않았다.그래서 자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정은이 물었다.“뭐 마실래요? 내가 살게요.”“오레오 밀크티, 노 얼음 그리고 설탕 좀 많이 추가해줘.”“네?”“왜 그렇게 쳐다봐?” 현빈은 자신의 턱을 만졌다.정은은 잠시 침묵하더니 카운터에 가서 주문했다.“오레오 밀크티, 얼음 빼주시고요 설탕 많이 넣어주세요. 아, 똑같은 걸로 두 잔이요.”말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6화

    말을 꺼내자마자 정은은 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현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너.”‘난 너에게 관심이 있지.’정은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남자는 입가를 실룩거렸다.“못 들은 척하지 마.”“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하나도 안 들리네, 에헴! 이제 그만해요.”현빈은 딴청 피우는 정은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그래,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언젠간...”“어머.” 정은은 그의 말을 끊었다.“휴지를 안 챙겨왔네요. 휴지 있어요?”“응.”“한 장 줘요, 고마워요.”현빈은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이제 내 말 들리는 거야?”정은은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그녀의 추측도 맞았는데, 현빈은 확실히 일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었다.다만 밀크티를 다 마신 후에야 그는 본론으로 들어갔다.“성 교수님 쪽에 진행 중인 과제가 있어. 현재 난관에 부딪혀서 이미 두 달 넘게 진도를 나가지 못했거든. 그래서 교수님은 지금 네 생각을 묻고 싶으셔. 이것은 모든 자료야.”말하면서 USB를 하나 건네주었다.정은은 손을 뻗었는데, 현빈은 이대로 손을 놓지 않았기에 두 사람의 손가락이 닿았다.남자의 체온은 그녀보다 훨씬 높았다.정은은 USB를 받은 다음 즉시 손을 거두었다.현빈은 표정이 바뀌지 않았지만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이 남자 대체 뭐 하자는 거야!’정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때 현빈은 주동적으로 휴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좀 닦아, 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 말고.”정은은 비록 화가 났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다.현빈이 이렇게 말한 이상, 만약 정은이 계속 따진다면 오히려 속이 좁아 보일 것이다.‘길을 가다가 부주의로 남을 부딪치는 것도 흔한 일이잖아. 굳이 심현빈 씨 때문에 이럴 필요가 있을까? 그럼 오히려 내가 심현빈 씨를 특별 취급하고 있다는 게 아니겠어? 진짜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일을 해도 함정인 것 같아!’밀크티 가게를 떠나자, 현빈은 정은을 집으로 바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7화

    [뭐야?]성달수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네가 줬다고? 언제? 나한테 말한 적 있어?]“저 오늘 마침 학교에 왔거든요. 오후에 지나가다 그 USB를 정은이에 가져다줘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고요.”[그렇구나. 그런데 왜 나한테 말 한마디도 안 한 거야? 오후 내내 찾았잖아...]현빈은 속으로 생각했다.‘미리 설명하면 교수님이 이것저것 물어보실 게 분명해.’“저도 갑자기 시간이 생겨서 가져간 거라 교수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을 깜박했네요.”[그래, 정은이에게 줬으면 됐어.]“네.”통화가 끝나자, 현빈은 핸들을 잡고 즐겁게 휘파람을 불었다....서재에서, 재석은 한창 실험 데이터를 통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집중이 안됐다.지금 재석의 머릿속은 두 시간 전에 베란다에서 본 장면으로 가득했다.현빈이 정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골목 어귀에 나타난 것이었다.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정은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먼저 눈살을 찌푸렸는데, 어이가 없었는지 눈을 부라리며 도망쳤다.현빈은 제자리에 서서 그렇게 정은을 바라보았다. 마치 장난이 심한 아이를 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동시에 또 애정이 넘쳐났다.가로등 아래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졌다.심지어 두 손이 겹쳐 마치 다정한 커플과 같았다.‘그래서... 정은이와 약속한 사람이 심현빈이었구나?’재석은 문득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들어 컴퓨터를 바라보았다.‘내가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어느 열부터 시작했더라? 어느 줄까지 체크했지?’그렇게 그는 처음부터 다시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새벽 3시, 서재의 불은 줄곧 꺼지지 않았다.재석은 의기소침하게 노트북을 덮었다. 결국 그는 똑똑히 정리하지 못했다.‘됐어, 내일 다시 하자.’간단히 씻은 재석은 침대에 누웠지만, 몸을 뒤척여도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힘들게 잠들었지만 여전히 편하게 자지 못했다. 왜냐하면 복잡하고 황당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재석은 꿈속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몰랐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8화

    두 사람은 안쪽의 작업실로 들어갔다.정은은 에두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교수님, 지금 교수님의 연구 방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오미선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정은은 서류 하나를 건네주며 계속 말했다.“주말에 저희 세 사람은 현재 과제의 진도를 정리했어요. 이 외에도 연구 배경, 실험 방법, 구체적인 데이터, 그리고 이전의 결론에 대해 토론을 했고요.”정은은 고개를 들어 오미선을 직시했다.“제3기 실험에 아무런 진도가 없었던 것은 실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전 과제가 처음부터 빗나갔기 때문이에요.”문제는 세 사람이 발견했지만, 민지와 서준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 정은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오미선이 침묵에 빠진 것을 보고도 정은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저도 교수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요. 일을 시작하면 꼭 끝을 봐야 하잖아요. 마지막에 틀렸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꼭 충분한 데이터를 통해 이 점을 증명해야죠. 학자로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사람으로서의 시간과 정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잘못을 일찍 바로잡고, 제때에 손실을 막을 수 있는데, 왜 오히려 많은 시간을 들여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죠? 이건 의미가 없지 않나요? 마치 교통사고처럼, 기사는 이미 차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이때 브레이크만 밟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지만, 굳이 사람을 치어서 그 결과를 검증해 볼 필요가 있겠어요?”오미선은 길게 탄식했다.“전에 난 너희들이 언제 이 안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 한 학기? 1년? 아니면 2년? 그런데 난 너희들이 이렇게 빨리 발견할 줄은 몰랐구나.”오미선은 감개무량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놀라움 그리고 자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문제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증거까지 정리해냈다니.’그녀는 정은이 건네준 서류를 받았다. 비록 펼치지 않았지만 그 속의 데이터와 결론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오미선은 반박할 방법이 없

최신 챕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53화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52화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51화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50화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9화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8화

    “능청스럽게 굴지 마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어때요? 나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어요. 당신이 본 『7일담』이 바로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에요. 그러니 나는 당신과 재계약을 할 수 없어요. 지난 10년간의 감정을 봐서, 우리는 좋게 갈라지죠.”“좋게 갈라져?” 유보영은 냉소를 지으며 드디어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누가 나의 손실을 배상하는 건데?”“당신이 무슨 손실을 입었다는 거죠?” 이미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너와 계약을 했어. 10년, 꼬박 10년, 당신은 좋은 책 한 권도 쓰지 못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아가 계약을 하더니 바로 인기 소설을 출시해? 이미숙, 너 지금 날 갖고 장난하는 거지?”“내가 쓰기 싫어서 그래요? 당신이 줄곧 나의 구상을 부정하고, 나에게 출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가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의 대강을 주었는지 계산해 본 적 있어요? 마지막에는 예외가 하나도 없이 전부 거절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인기를 끄는 작품을 출판하라는 거예요?”“너...”“당초의 계약비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래요, 당신은 확실히 많은 돈을 주었지만, 당신도 날 10년 동안 ‘감금’했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 예전에 쓴 책의 판권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겠죠.”유보영은 시선을 피하더니 다소 마음이 찔렸다.‘이미숙이 어떻게 그 판권에 대해 알았지?’“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죠? 나는 이미 변호사를 청해 계약서를 확인해 보았는데, 당신은 몰래 내 판권을 대리 운영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했죠. 사인할 때 나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쓰라고 했고요.”“허... 그래서? 이제 돈 계산을 하자는 거야? 변호사까지 불렀다고? 진작부터 날 방비했나 보네.”“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요. 전의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날 방해하지 마요.”이미숙은 일어나더니 손님을 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7화

    이 시각, 소진헌은 학교에 수업하러 갔는데, 집에는 이미숙 혼자밖에 없었다.J시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새 책의 대강을 구상했고, 학교 괴담을 주제로 한 공포 소설을 창작할 계획이었다.그사이 정은이 전화를 걸어 실험실 완공식에 초청했지만, 부부는 아쉬움을 느끼며 거절했다.소진헌은 수업을 해야 했기에 떠날 수 없었고, 이미숙은 창작을 해야 해서 방해를 받으면 안 됐다.이야기가 이미 태반이 완성되고, 곧 마지막 장을 끝내려 해서 이미숙은 요즘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유보영이 문을 두드릴 때도 이미숙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문을 열러 가는 길에 머릿속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유보영은 미소 지었다.“오랜만이에요, 이 작가.”이미숙은 이마를 찌푸렸다.“당신이었어요?”“그래요, 그래도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유보영은 내색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인테리어가 이렇게 호화로운 걸 보니 정말 부자가 된 모양이야.’이미숙이 거절을 하기 전에 유보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이미숙은 비록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유보영이 떠들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웃고 있었기에, 예의상 이미숙은 그녀를 내쫓지 못했다.더군다나 이미숙도 유보영이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앉아요.” 이미숙은 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유보영은 앉은 후,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별장 곳곳을 살펴보았다.“이 작가님, 이사를 해도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예전에 이 작가님이 살던 곳에 달려가서 얼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전화해도 항상 전원이 꺼져 있어서 나도 이곳을 찾느라 애를 엄청 썼어요.”이미숙은 대답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게요, 우리 계약도 곧 만기 되어 가잖아요. 그동안 우리는 아주 잘 협력했고, 재계약도 형식일 뿐이에요. 하지만 형식이라도 같이 사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 좀 봐요...”말하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6화

    그리고 유보영의 밑에 이런 작가가 무려 수십 명이나 있었다.“어머!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작가들은 바보 아니에요? 판권 같은 것을 팔려면 작가 본인의 동의를 거치고 사인까지 해야 되잖아요?”장민영은 가볍게 흥얼거렸다.“넌 매일 그렇게 많은 계약을 복사하는데, 위의 상세한 조항을 보지 않았니?”“어?”“유 사장님은 계약을 할 때 이미 작가의 명의로 된 기타 서적의 판권 대리권을 손에 넣었다고. 그럼 작가에게 통지할 필요도 없고, 사인할 필요도 없어. 유 사장님이 가서 잘 이야기한 다음, 작업실 쪽에 공인만 하나 더 찍으면 끝.”“만약 정말 사인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나 찾아서 사인하면 되지 않겠어? 그 사람들 정말 작가 본인을 찾아 가서 대조할 수도 없잖아.”“어머, 그럼 유 사장님은 작가에게 주는 배당금까지 절약한 셈이네? 어차피 작가도 모르니, 돈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겠지.”장민영은 커피 한 모금 마셨다.“그래, 넌 사장님이 좋은 차에 비싼 집을 산 돈이 어디서 났다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명품인데, 내가 듣기로는 그 가방 하나만 해도 수천만 원이라잖아? 정말이야?”“정말이야, 그것도 에르메스.”“쯧쯧...”장민영은 감탄하면서 부러워했다.“가장 비참하게 당한 작가는 추리 소설을 썼다고 들었어. 일찍 엄청난 인기를 끈 두 권의 소설 판권은 유 사장님이 모두 팔았고. 최근 몇년간 또 기타 판권을 연장했는데, 그 작가 혼자만 해도 매달 최소 우리에게 수백만 원의 이익을 가져다줄수 있어.”“추리 소설 작가? 누구지? 요즘 한 추리 소설 작가가 대박 났는데. 이란 책을 써서 지금 아주 난리도 아니야. 작가 이름이... 이미숙이라 한 것 같아!”“이, 이미숙?!” 장민영은 깜짝 놀랐다.“그 제대로 당한 작가도 무슨 미숙이라고 한 것 같은데.”“같은 사람 아니겠지?”“아닐 거야. 유 사장님이 어떻게 새 책을 내줄 수 있겠어?” 장민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5화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