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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작가: 십일
마침 그때, 출구 쪽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출구에서 질서 있게 대기하신 후 나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이 생기자, 현장의 혼란도 금방 진정되었다.

소정은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도겸도 팔을 빼내고 정은을 따라갔다.

그 모습에 연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도겸 오빠, 저도 같이 가요.”

검표소에서 조수민은 이미 밖에 나와 있었다. 내부에서 경로 문제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뻔했다는 말을 듣고, 정은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어 하마터면 뛰어 들어갈 뻔했다.

다행히도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은은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수민은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

“다치지 않았지? 방금 경보 소리를 듣고 너무 놀랐어.”

“나 여기 멀쩡히 있으니까, 이제 가자, 집에 가자.”

하루 종일 놀다 보니 정말 피곤했다.

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어? 저거 도겸 아니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겸이 연희와 함께 뒤따라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놀러 나와서 이런 재수 없는 걸 마주치다니.”

그러자 정은은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화내지 마. 그냥 우연히 만난 거니까, 가자.”

돌아가는 길에, 수민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는지 핸들을 돌려버렸다. 그 모습에 정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집에 안 가?”

“결정했어, 지금은 안 갈래. 남자가 뭐 별거야? 80억의 절반이 남자고 널린게 남자야. 오늘 내가 널 새로운 세상에 데려다줄게.”

정은은 의문스러웠다.

...

밤 8시, 밤생활이 이제 막 시작할 때였다. 정은은 마치 인형처럼 수민에게 이끌려 시끄러운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독한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섞인 공기, 불빛은 빨갛고 초록색으로 번갈아 가며 반짝이고, 주변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캐주얼한 옷차림의 정은은 이곳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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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겸은 서연희와 함께 양식당에서 촛불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도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연희는 도겸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도겸은 속으로 화를 억누르며 대답하지 않았다. 도겸은 그저 핸드폰으로 빠르게 타자하며 답장을 보냈다. [나랑 무슨 상관이야.] 현빈은 채팅창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다소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번엔 진짜로 정은 씨랑 끝난 거네?] 도겸은 어이없다는 듯 이를 악물었지만, 현빈은 그저 무심하게 보낸 문자에 불과했다.[응, 왜? 불만 있어?] 현빈은 웃으며 항복을 의미하는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며 말했다. [아니, 내가 뭐라고 불만을 가지겠어?]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럼 다른 사람이 정은에게 관심을 가져도 신경 안 쓰는 거지?]이때, 고동건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뭐야, 너 혹시 정은 씨 좋아해?]현빈은 조금 진지하게 응답하면서 이모티콘을 보냈다. [응, 응. (이모티콘)] 그러자 전선우가 웃으며 반응했다. [하하하!]동건도 덧붙였다. [너 진짜 대단하네.] 그러나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겸도 이모티콘에 신경 쓰지 않고 타자하며 대답했다. [좋아, 그러면 한번 해봐.] 목적을 달성한 현빈은 핸드폰을 치웠다. 그러나 도겸이 나중에 후회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다....“자기야, 오늘 생일을 이렇게 즐겁게 보내줘서 고마워요.” 저녁 9시, 도겸은 연희를 기숙사 앞에 데려다주었다. 연희는 도겸의 손을 잡고 아쉬운 듯이 말했다. “오빠랑 곧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운해요.” 연희는 웃으며 작게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도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와 입을 삐죽거렸다. “오빠는 왜 이렇게 평온해요? 하나도 아쉽지 않아요?” 연희는 맑고 깨끗한 눈으로 달콤하게 웃으며, 더욱 애교스럽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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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26화

    공부하는 일상은 지루하고 단조로웠지만, 소정은은 의외로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오늘도 하루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정은은 어깨를 주무르며 일찍 쉬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 오미선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오미선 교수는 먼저 정은에게 공부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보자 정은은 간단히 진도를 보고드렸다. 오미선 교수는 더 이상 세부적으로 묻지 않았는데 정은을 무척이나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은은 미소를 띤 채, 오미선 교수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집에 한 번 들러.]그러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늦으면 정은이 거절할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말이다.다음 날, 정은은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데 30분을 보냈다. 물론, 옆집의 조재석을 위해 한 끼 더 준비했다. 어젯밤 잠들 때까지도 옆집에서 문 여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재석은 아마 실험실에서 밤을 새웠을 것이다.이윽고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방금 막 돌아온 사람 같아 보였다. 비 내리던 밤 이후로 벌써 2주가 지났지만, 아마 실험실에서 돌아온 직후였기 때문인지, 항상 깔끔했던 재석의 소매는 구겨져 있었고, 미간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은은 지난번에 들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재석이 실험실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정은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보온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젯밤부터 약한 불에 천천히 끓여서 아침까지 준비했어요. 밤새신 분들은 속이 좋지 않을 테니, 따뜻한 죽을 먹으면 속이 좀 나아질 거예요.” 재석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었지만, 이번 며칠간은 불규칙한 식사 때문인지 속이 약간 아팠다. 그래서 정은이 가져온 죽이 지금 재석의 상황에 딱 맞는 음식이었다. “고마워.” “그날 밤 집에 데려다주신 건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할 일이죠.” 정은은 미소 지었다. 그러자 재석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말했다. “우린 이웃사촌이잖아. 그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27화

    “네가 기억력이 좋잖아.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시리즈 중에 유전자 테스트에 대해 다루는 책이 있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네.” 정은은 무언가를 한 번 보면 절대 잊지 않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에 대한 인상은 깊게 남아 있었다. 게다가 오미선 교수가 말한 그 책은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막 뒤적여 본 책이었다. 그래서 정은은 곧장 책장 쪽으로 시선을 돌려 훑어보다가, 이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교수님, 혹시 찾으시는 게 이 책인가요?” 오미선 교수는 표지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맞아, 바로 이 책이야! 넌 시력도 좋구나. 한참을 뒤졌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 걸 못 봤네.”“성준아, 이 책에다가 이 논문 자료들까지 참고하면 충분할 거야. 일단 가져가고, 나중에 내가 다른 것도 찾아볼게.” “감사합니다, 교수님.” 성준은 손을 뻗어 책을 받았다. 요즘 대학원 졸업 논문을 준비하던 중,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였는데 오미선 교수에게 원본 자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었다. 이윽고 오미선 교수는 그제야 두 사람을 소개할 생각이 나셨다. “정은이도 내가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이야. 그리고 곧 다시 내 제자가 될 예정이지.” 성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오미선 교수에게 물었다.“교수님의 대학원생으로 지원하는 겁니까?”그러자 오미선 교수가 곧바로 웃으며 정은에게 말했다. “얘는 하성준이라고 해. 올해 석사 2년 차고,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야. 마침 너도 요즘 복습 중이니, 둘이 함께 공부해도 좋겠네.” 그 말을 들은 정은이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소정은이라고 합니다.” 정은도 오미선 교수의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성준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정은과 카톡 아이디를 교환했다. “아, 정말 좋네. 도서관도 같이 갈 수 있고, 전문적인 문제도 서로 논의할 수 있겠어.” 두어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성준은 수업이 있어서 먼저 떠났다. 정은은 테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28화

    비록 아침 7시에 맞춰 알람을 설정해 두었지만, 연희가 계속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늦을까 봐 허둥지둥 뛰어왔다. “몇 층 가?” 정은은 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2층이요.” 침착한 정은과 달리, 헐레벌떡 뛰느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연희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윽고 연희와 정은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 순간, 연희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정은의 손에 들린 대학원 시험 준비 자료를 보고는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정은 언니, 혹시 도서관에 복습하러 온 거예요? 설마 대학원 시험 준비하려는 건 아니죠?” 정은은 말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그러자 연희가 계속 중얼거리며 말했다.“대학생들도 대학원 입학에 떨어지는 사람이 많은데, 졸업한 지 몇 년 된 언니가 정말 합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자 정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혹시 그 떨어지는 사람중에 너도 포함인건 아니지?” 연희는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화를 참지 못할 뻔했다. 연희는 올해 3학년이다. 취업 생각은 없었기에 막 대학원 입학 준비를 시작한 상태였다. 또한, 어차피 1년 더 남았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같은 기숙사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계획을 세웠지만, 연희는 대학 몇 년 동안 공부를 대충 해왔고, 시험에 합격하면 좋고, 안 되면 강도겸이 뒷받침해 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니 정은의 말은 연희를 찔리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나 다 언니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나한텐 시험에 합격하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도겸 오빠가 말했거든요.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내 앞에 가져다줄 거라고요.” 그러자 정은은 더 이상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자신감 있길 바랄게.” 말을 마친 정은은 이미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린 하성준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한편, 연희의 룸메이트는 정은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29화

    연희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연희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도겸의 뒤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 별장이 매우 크고, 넓고, 밝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연희가 이렇게 직접 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미국식 인테리어 스타일로, 회색과 갈색, 흑백이 주요 색상으로 사용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절제된 느낌이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고급스러움이 있었다. 또한, 대학교 2학년 때 예술 감상을 선택 과목으로 들었던 연희는 벽에 걸린 그림이 치바이석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주변에 놓인 물건들은 하나같이 값비싼 것들이었고, 심지어 눈에 띄지 않는 쓰레기통에도 명품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거실을 지나면 정성스럽게 가꾼 실내 정원이 나타났고, 그 옆에는 별도로 마련된 미디어룸과 헬스장이 있었으며, 구석에는 골프채 세트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별장 단지에는 골프장도 함께 있다고 들었다. 연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도겸을 만나기 전까지 연희가 본 것 중 가장 사치스러운 물건은 동급생이 메고 다니던 에르메스 버킨백 켈리백 악어가죽 25였다. 그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한정판으로, 중고 시장에서도 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5억 원이면 연희의 고향에서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이 별장 안에는 고급스러운 H 로고가 도처에 있었다. 열쇠고리, 카드게임, 라이터까지. 만약 연희가 도겸의 곁에 계속 머물고, 도겸과 결혼해 도겸의 아이를 낳는다면, 자신이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큰 별장, 명품 가방, 운전사가 따라붙고, 집안일은 집사들이 해주는 그런 삶.그러나 도겸은 연희의 생각이 다른 데 가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죽은 매우 걸쭉하게 끓여졌지만, 도겸은 한 입만 먹고는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도겸의 모습에 연희는 눈을 깜빡이며 의아해했다. “왜 안 먹어요? 맛없어요?”그러자 도겸이 대답했다. “방금 퇴근하면서 이미 먹었어. 지금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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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강도겸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오빠, 제 지문을 여기 잠금장치에 등록해 줄 수 있어요?” 서연희는 대문에 있는 잠금장치를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리고는 마치 비 쫄딱 맞은 강아지처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 여기서 몇 번이나 오빠를 기다렸잖아요. 보세요, 손이며 다리에 이렇게 모기한테 물린 자국이 몇 개나 돼요.”“오빠, 다음에도 이렇게 물린 채로 기다리게 할 거예요?” 그러자 도겸이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지.” “야호!” 연희는 기뻐하며 뛰어올랐다. “사실, 일부러 그런 거예요. 제 지문을 등록해서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오빠를 찾아오고 싶었어요.” 그러자 도겸이 웃으며 말했다. “어쩜, 아직도 어린아이 같네.” 이윽고 도겸은 연희의 지문을 잠금장치에 등록해 주었다. 오늘 연희가 특별히 준비해 온 죽과 연희의 손과 다리에 난 모기 자국을 생각하며, 도겸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내 가족카드야. 월 한도는 2000만 원이니까, 좋아하는 거 사.” 연희는 당황해하며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아니에요, 저, 제가 어떻게 오빠 돈을 써요?” “여자가 남자 돈을 쓰는 건 당연한 거야.” “정말요?” “받아, 부담 가질 필요 없어.” “그럼, 알겠어요.” 연희는 환하게 웃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그럼 내일 다시 죽 가져올게요!” 도겸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연희가 끓인 죽은 도겸이 원하는 맛이 아니었기 때문에, 몇 번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한편, 하루 종일 공부를 한 소정은은 도서관 밖에서 하성준과 헤어졌다. 성준은 대학원 입시 때 1차, 2차 모두 1등을 차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대학원 입시에 대한 노하우가 많았고, 중요한 부분을 정은에게 표시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정은은 원래 성준에게 저녁을 사주고 싶었지만, 성준이 갑작스러운 룸메이트의 전화로 다음 날 계속 공부하기로 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1화

    성준을 본보기로 삼은 정은은 효율이 많이 제고되었다. 오전에 시험지를 두 세트를 풀었다.성준은 채점할 때, 놀랍게도 모두의 정확률이 95%에 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정은은 졸업한 지 3년이나 지났고, 최근에야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강할 줄이야! 오미선 교수님이 정은을 그렇게 중시하신 것도 다 이유가 있구나.’정은은 성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몰랐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다른 한쪽에 있던 연희도 얼른 따라갔다.“잠깐만요.”정은은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나타난 연희 때문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무슨 일 있어?”“어젯밤에 제가 별장에 가서 도겸 오빠에게 죽을 가져다줬어요. 오빠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릇을 싹 비웠거든요.”연희는 미소를 지으며 작은 보조개 두 개를 드러냈다.“뿐만 아니라, 도겸 오빠가 별장에서 밤을 보내라고 했어요. 저도 처음으로 알았어요. 도겸 오빠에게 거칠면서도 섹시한 면이 있다는 거. 밤새 잠을 잘 못 잤다니까요.”그녀는 일부러 그럴듯하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고, 속눈썹까지 가볍게 떨며 첫날밤을 보낸 새색시처럼 수줍어했다.정은은 가슴이 따끔해지더니 숨이 막혀왔다.“부럽죠?” 연희는 정은의 귓가에 다가가서 말했다.“후회하죠? 아쉽게도 언니는 이제 기회가 없어요.”이때, 정은은 미소를 지으며 연희에게 또박또박 말했다.“강도겸이 너에게만 그럴 것 같아?”연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정은은 계속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넌 그 많은 여자들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러니 너도 강도겸의 마지막 여자가 아니겠지.”말을 마친 다음, 연희의 표정이 어떻든 정은은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마지막 문제를 채점한 후에야 성준은 옆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려 했지만, 마침 정은이 돌아왔다.성준은 고개를 살짝 돌리자, 정은의 약간 창백한 얼굴을 보았고, 걱정을 금치 못했다.“괜찮아? 어디 불편한 거야?”정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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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빠의 명의로 된 부동산이 엄청 많은데, 여태껏 남을 내쫓은 적이 있어도 남에게 쫓아낸 적이 없단 말이에요!”“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저희에게 낡은 방 하나 빌려주면서, CPRT도 없고 소방기자재도 없지만, 저희가 죽어라 낸 연구 성과는 결국 학교의 명의로 되어야 하잖아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딨어요? 정말 재수가 없어요...”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란 민지는 여태껏 이런 억울함을 당한 적이 없었다.“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낡은 방 한 칸일 뿐, 기기조차 저희가 스스로 산 거잖아요!”이 불 같은 성질은 정말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그녀가 한바탕 욕설을 퍼붓자, 서준과 정은은 아연실색했다.“어... 많이 놀랐어요?” 민지의 둥근 얼굴에 어색함이 드러났고, 그녀는 얼른 설명했다.“저 평소에 이렇진 않지만, 가끔 성질이 나면 멈출 수가 없네요... 에헴!”서준은 침을 삼켰다.정은은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민지가 말한 것도 마침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거야! 우리가 계속 학교에서 실험실을 빌린다면, 영원히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학교에서 회수하고 싶으면 회수하고, 트집을 잡고 싶으면 트집을 잡고, 다른 팀에 주고 싶으면 줄 수 있으니까.그들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도살’당할 수밖에 없었다.“그럼... 더 이상 학교에서 실험실을 빌리지 말까요?” 민지가 떠보았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이 물었다.“그럼 어디에서 빌려야 하는 거죠?”“왜 빌려? 민지가 그날 말한 것처럼, 우리 혼자 실험실 하나를 지으면 되잖아?”‘실험실을 짓는다고?’이 말이 나오자, 서준은 멍해졌다.민지는 멈칫하다가 곧바로 흥분해지더니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래요! 저희가 실험실을 지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얼마나 편리해요!”그들만의 실험실이라면 남에게 빼앗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남의 괴롭힘을 당할 일도 없었다.정은이 말했다.“내가 자료를 찾아보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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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은 재석이 어이없어 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얼른 들어요, 재석 삼촌. 우리 아빠가 만든 장조림 정말 맛있단 말이에요. 사람들은 돈을 줘도 못 먹어요.”“날 뭐라고 불렀지?” 재석은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응?”정은은 물러설 수 없어 고개를 들어 애꿎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나도 단지 우리 아빠가 하신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내가 말한 것도 아니잖아요.”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선배님, 복도가 좁으니 뒤로 좀 물러서면 안 될까요?”재석은 자신이 감기에 걸렸다 것을 떠올리며, 정은에게 옮길까 봐 가볍게 한숨을 쉬고 옆으로 물러났다.정은은 속으로 감탄했다.‘선배님은 정말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인 것 같아. 매너도 있고.’재석이 장조림을 받자, 정은은 남은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 뒤 사진을 찍어 소진헌에게 보냈다.저쪽은 곧 답장을 보냈다.[조 교수에게 가져다주었어?][그럼요! 아빠, 선배님에게 너무 잘해주시는 거 아니에요?]‘나한테 많이 먹으라는 말씀조차 안 하셨잖아.’소진헌은 귀찮아서 직접 음성문자를 보냈다.[그럼! 친구를 대할 때는 대범해야지.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는 게 마땅해!]정은은 속으로 생각했다.‘선배님에게 이 말을 들려주어야 하는데. 아까 내가 함부로 말한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화가 나서 날 벽으로 몰아붙이다니?’그리고 정은은 방금 남자가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것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몸을 기울인 순간, 재석의 냄새와 숨결이 정은을 단단히 에워쌌다.정은은 한심하게도 얼굴을 붉히며 심장이 두근거렸다.고등학교 때, 반의 남학생들도 이렇게 일부러 정은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정은도 매번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도겸을 만나기 전, 정은은 이성의 접근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심지어 답답함과 괴로움을 느꼈다.그동안 연애와 이별을 통해 이 버릇을 고칠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예전으로 다시 돌아갔다니.정은은 자신의 이런 반응을 ‘고질병’으로 생각하며 다른 생각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5화

    정은은 살짝 멍해졌다.“그럼 선배님은...”재석이 대답했다.“난 안 추워.”“고마워요.”골목에 도착하자, 재석은 정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다음, 몸을 돌려 한쪽의 편의점에 들어갔다.1분도 안 되는 시간에 그는 마실 것 두 잔을 들고 나왔다.“자.”정은은 받으며 호기심에 냄새를 맡았다.“이게 뭐예요?”“홍차.”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이 편의점에서 이걸 판다고요?”‘왜 난 전혀 기억이 없지?’“시즌 스페셜이라 최근에 금방 팔기 시작했어.”“선배님도 홍차예요?”재석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난 메밀차야.”종이컵을 들고 있으니 정은은 손바닥이 따뜻했다. 외투까지 걸치고 있어 춥지 않았고 볼도 약간 붉어졌다.계단을 오를 때, 정은은 외투를 벗고 재석에게 돌려주었다.“고마워요, 선배님. 잘 자요.”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잘 자.”두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정은은 샤워를 마치고 앉아서 논문을 보기 시작했다. 니트 외투를 입고 있으니 온몸이 따뜻해졌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는데, 소진헌의 전화였다.“네, 아빠.”[자다 일어난 거야?]“아니요, 논문 보고 있었어요.”[날씨가 많이 추워졌으니 너무 늦게 자지 말고, 옷 많이 챙겨입어.]“알았어요. 여긴 난방이 있어서 실내가 그렇게 춥진 않아요. 엄마는요?”[글 쓰고 있어. 참, 장조림 좀 보냈는데, 5kg 좀 넘어. 내일이면 도착할 거야.]“이렇게 많이요? 제가 그걸 어떻게 다 먹어요?”[너한테만 주는 게 아니야. 조 교수에게 절반 나눠줘. 너희들 이웃이니 직접 가져다줄 수 있잖아.]다른 한편, 재석은 집에 들어간 후, 평소처럼 외투를 옷걸이에 걸었다.그러나 이때 그는 멈칫하더니 다시 옷을 가져왔다.위에는 아직도 여인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재석은 저도 모르게 다가가서 냄새를 맡았다.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응할 때, 재석은 흠칫 놀라더니 감전된 듯 외투를 소파에 버린 다음 욕실로 달려갔다.곧 물소리가 전해왔다.그러나 안에는 열기가 전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4화

    재석은 오늘 수업이 있었다.쉬는 시간에 그는 두 학생이 생명과학대학의 실험실에 시정지시서가 내려왔다며 의논하는 것을 들었다.재석은 원래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소정은'을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자세히 물어본 후에야 그것이 정은의 실험실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는 바로 이쪽으로 달려왔고, 마침 세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교수님.” 정은은 그에게 인사를 했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서 들어와요.”민지와 서준도 분분히 재석에게 인사를 했다.“나도 다 전해들었어. 소방대에서 시정 절차를 엄격하게 진행한다면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거야. 먼저 내 실험실로 가. 이 기구들도 다 옮겨갈 수 있어.”이것도 좋은 방법이었다.민지와 서준은 먼저 대답하지 않고 정은을 바라보았다.정은은 어느새 그들의 리더로 되었다.문제에 부딪치거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정은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았다.더군다나 두 사람은 재석이 자신들을 돕고 싶어서 이런 제안을 한 거라고 생각할 만큼 뻔뻔하지 않았다.정은은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완곡하게 거절했다....날씨가 추워지면서 날씨는 일찍 어두워졌다.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작은 식당에서.“왜 거절한 거야?” 재석은 눈앞의 정은을 보면서 줄곧 참았던 의문을 물었다.실험실을 떠난 후, 두 사람은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정은은 점심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는데, 오늘 이런 일이 발생했기에 돌아가서 밥을 할 기분도 없었다.그래서 두 사람은 근처에서 인기가 많은 한 식당을 찾아갔다.재석이 말했다.“내가 살게.”정은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럼 잘 먹을게요.”남자는 미소를 지었다.식당의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 두 사람은 10여 분 동안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앉자마자 재석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정은은 놀라지 않고 가볍게 숨을 쉬었다.“선배님은 이미 나를 여러 번 도와주었잖아요. 그러나 이런 일은 그래도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지, 평생 선배님의 도움에 기대할 순 없잖아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3화

    “누가 들어오라고 했지? 우리 실험실은 짐승을 환영하지 않으니까 눈치 있으면 빨리 꺼져. 너희들은 우리랑 싸워도 못 이겨.”“너 지금 누굴 욕하고 있는 거야?!” 진호는 화가 나서 얼굴을 붉혔다.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누가 대답하면 누굴 욕하는 거겠지. 지금 네가 스스로 자신이 짐승이라고 인정하고 있잖아?”“너...”지예는 냉소를 지었다.“뭘 그렇게 우쭐대고 있는 거야? 전교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딱 너희 실험실만 시정을 해야 하다니. 정말 창피해서 말이 다 안 나오네. 그런데도 이렇게 나대고 있어?”“시정을 하면 적어도 몇 달은 걸려야 한다고 들었는데, 쯧쯧... 정말 아쉽다. 그동안 너희들은 실험실을 사용할 수 없잖아. 에 논문을 올리면 또 뭐가 어때서? 학교의 중시를 받지 못하잖아. 그런데도 잘났어?”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원래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네 자존심에 영향을 줄까 봐 말이야.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짐승에게 인자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니 부담이 순식간에 사라지네.“그래, 난 는 내 논문을 올렸어. 하지만 넌 거기에 논문을 보낸 적조차 없잖아? 속으로 엄청 질투를 하겠지? 하지만 실력은 질투한다고 해서 느는 것이 아니라 안 되면 안 되는 거잖아. 말을 아무리 잘 해도 소용없어, 안 그래?”“야...”정은은 위아래로 지예를 훑어보았다.“사실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너처럼 온종일 빈둥거리며 구경이나 하는 사람이 언제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쓸 시간이 있는 거지?”“조금의 성과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밤낮없이 실험실에 틀어박혀야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넌 그중에서 가장 한가하잖아. 의심이 좀 가는데?”여기까지 말하자 정은은 잠시 멈추더니 지예의 표정을 눈여겨보았다.“그 논문들 정말 너 혼자 쓴 거 맞아?”“그, 그게 무슨 헛소리야?! 네가 뭔데?! 내가 한가하다고? 그럼 내가 실험실에서 실험을 진행할 때...”“실험을 한 거야, 아니면 핸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2화

    송지혜는 가슴을 안으며 싸늘하게 대답했다.“무슨 제보를 말씀하시는 거예요?”“시치미 떼지 마! 소방점검에서 왜 다른 실험실은 괜찮은데 유독 정은이 그들만 시정지시서를 받은 거야? 정말 송 교수와 관계가 없는 거야? 맹세할 수 있어?”송지혜는 웃으며 대답했다.“저 바쁜 사람이에요. 매일 보고서를 내고 논문을 써야 하는데, 굳이 학생들과 따질 필요가 있겠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걸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나한테 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가끔 소정은 그들이 꼴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정상이잖아?’“넌 지금 갈수록 겁이 없어진 것 같아.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 날 안중에 두지도 않은 모양이지?!”송지혜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일 때문에 절 부르신 거예요? 왜요? 오미선 교수를 대신해서 불평이라도 늘어놓으시게요? 허, 이건 부총장님 답지가 않은데.”백두강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짓을 한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멍청하기! 이번 소방점검은 학교 측이 시 소방대와 연합하여 전개한 거야.”“평소에 그들을 어떻게 배척하든 상관없어. 어차피 그건 너희들 자신의 일이니 소문이 퍼질 리가 없으니까.”“그러나 이번에 시 소방대과 관련된 일에 제보 전화 한 통으로 학교를 연루시켰다니!”한 실험실이 시정지시서를 받으면 학교도 불찰이라는 연대책임을 져야 했다.특히 소방기자재는 일반적으로 미리 실험실에 배치된 것이었기에, 학생들에게 빌려주기 전, 학교는 검사를 진행할 의무가 있으며 착오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빌려줄 수 있었다.지금 시정지시서를 받았으니, 이것은 학교 측이 일을 소홀히 하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한다.“아직도 네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나?” 백두강은 코웃음을 쳤다.“다른 부총장에게 알려지면...”송지혜의 안색이 변했다.“이번에는 내가 널 대신해서 처리해주지. 하지만 앞으로 이런 말썽 좀 일으키지 마!”송지혜는 더 이상 거들먹거리지 않았고 잠시 머뭇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1화

    민지가 말했다.“당시 우리는 모두 있었어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기도 잠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꺼졌단 말이에요. 이따가 또 써야 하는데, 누가 전원을 끊어버리겠어요?”정은은 이미 대충 그 이유를 추측해냈지만 지금은 증거가 없었다.“가자, 맞은편 실험실로.”민지는 영문을 몰랐다.“거긴 왜요? 그것은 다른 전문적인 실험실인 것 같은데. 저희와는 상관이 없어요...”서준도 수상함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얼른 따라갔다.“가라면 그냥 가, 넌 왜 문제가 그렇게 많아?”‘이 자식이, 이젠 간이 부었구나!’세 사람이 맞은편 실험실에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벽 모퉁이에 이미 소방 기자재가 갖추어져 있었다.“아니...” 민지는 놀라서 아연실색했다.“지난달까지만 해도 없었는데!”세 사람은 또 다른 몇 개의 실험실을 확인했다. 모두 예외 없이 부족했던 기자재는 이미 보충되었고, 전에 없었던 것도 지금은 전부 갖추게 되었다.민지는 오싹하기만 했다.“이, 이건 우리를 겨냥한 것 같은데?”전 실험실은 모두 소방설비를 갖추었지만 오직 그들의 실험실만 배제되었다. 그전에 민지는 줄곧 우연이라고 여겼다.우연히 그들이 당첨되었고, 또 우연히 붙잡혔다고. 누군가가 일부러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정은은 냉소를 지으며 직접 두 사람을 데리고 부총장 사무실로 갔다.백두강은 한눈에 그들이 오미선이 올해 새로 모집한 대학원생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특히 정은은 올해 신입생 중 처음으로 학술지 에 논문을 발표한 천재로서, 그날 정기회의에서 만장이 들끓는 장면은 지금도 눈앞에 선했다.“정은 학생,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지?”얼마 전 현빈과 재석의 연이은 타격을 떠올리며 그는 바로 웃음을 지었다.“부학장님, 저희 실험실이 강제로 시정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백두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지?”“문제라면 정말 많죠. 우선 왜 다른 실험실의 소방 기자재가 완전한데, 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10화

    “왜 그래?” 정은이 입을 열었다.두 사람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마치 억울함을 당한 아이가 마침내 부모님을 만난 것 같았다.민지는 바로 달려왔고, 말을 하기도 전에 눈시울이 빨개졌다.서준은 그녀의 뒤를 따랐는데, 팽팽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쥐고 있었다.정은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그러나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무슨 일이야? 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앉아 있어?”“정은 언니...”민지는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눈물이 이미 눈가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흘러내리지 못하게 했다.“이제 실험실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못 들어간다니?” 정은은 깜짝 놀랐다.“어제 학교의 검사팀과 소방대가 갑자기 실험실에 찾아와서 검사하겠다고 했는데...”소방점검을 정상적인 검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고 문을 열고 협조했다.그러나 이 사람들은 들어온 후에 이리저리 만져보고 몇 바퀴 돌아보더니 그들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을 알려주었다.“소방 점검이 불합격이니 일주일 내로 실험실에서 나가세요!”말을 마치자, 그들은 두 사람에게 설명과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직접 문에 붉은 딱지를 붙였다.민지는 계속 말했다.“그때 저와 서준이는 모두 어리둥절해졌어요. 지난주에 맞은편 실험실에서도 소방점검을 받았지만, 그 사람들은 들어와서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바로 떠났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검사를 받을 때 불합격이라니? 심지어 실험실에서 나가야 한다잖아요!”방금 정리된 실험실에 새로 산 CPRT, 그들은 실험실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나가라니?정은은 여전히 냉정을 유지했다.“그럼 너희들 왜 문 앞에 앉아 있는 거야? 일주일안으로 나가면 되는 거잖아? 그럼 얼른 들어가지 않고 뭐 하고 있어?”서준이 대답했다.“이번에는 시 소방대에서 점검을 진행했는데, 백 부총장님은 학교에서도 검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실험실 열쇠를 가져가셨어요.”그러나 정은에게 다른 열쇠가 하나 있었다.그녀는 문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서 다시 이야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09화

    “아니... 어머니, 저는 어머니 아들이잖아요! 조수민은 남이고요. 그런데 제가 욕을 좀 했다고 제 다리를 부러뜨리시겠다뇨?!”“수민이는 내가 인정한 며느리이니까 그 누구도 우리 수민이를 괴롭힐 수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동건은 코가 찡해졌다.‘며느리...’그는 등을 돌리고 팔짱을 안으며 가볍게 중얼거렸다.“그 여자는 안목이 높아서 이런 건 눈에도 안 찰 거예요...”‘어머니 아들도 마음에 안 들고요!’“하긴.” 송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수민이는 안목이 확실히 높지. 하지만 그 아이는 더 좋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어! 넌 누구나 다 너 같은 줄 알아? 하루 종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매일 술집에 다니기나 하고...”동건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화가 나서 와와 소리를 질렀다.“저는 어머니의 아들이라고요! 친아들!”“알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내 정곡을 찌를 필요는 없어.”“네?”“이건 너한테 맡길게. 시간 나면 수민이에게 가져다줘. 가능한 한 빨리, 들었어?”동건은 못 들은 척했다.송보미는 직접 그의 귀를 잡으며 말했다.“들었냐고?”“아파요, 아프다고요! 알았어요!”“참, 그리고, 다음 주말에 내가 티파티에 참가할 예정이니까, 수민이 데리고 와. 마침 나도 수민이를 내 그 친구들에게 소개해줘야지!”“그,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동건은 시선을 돌렸다. ‘이미 협력을 중지한 데다가 연락처까지 삭제했으니 어떻게 데려가겠어? 차라리 날 죽여!’송보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왜 필요가 없어? 넌 그냥 내가 시킨대로 해. 무슨 쓸데없는 말이 그렇게 많아? 됐어, 나 친구랑 쇼핑해야 하니까 먼저 갈게. 넌 이따가 수민이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네!”송보미는 그제야 흐뭇하게 웃으며 떠났다.이쪽의 동건은 골치가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수민은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며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예전과 다름없이 가끔 술집에 가거나, 테니스를 쳤다.그러나 그녀도 나름 고민이 있었다.[수민아, 너도 동건이랑 사귄 지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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