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그림자가 그 마그마를 뚫고 나타났다.윤도훈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고 얼굴에는 엄숙한 기색이 역력했다.순간 화산구 아래 거대한 맹수가 살아있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도마뱀처럼 생긴 맹수의 몸통은 온통 두껍고 붉은색의 인갑으로 돼 있었다.하여 우린 이 맹수를 일단 ‘화마뱀’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붉은 두 눈으로 윤도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탐욕스러우면서도 피에 굶주린 듯한 빛을 반짝이고 있다.“제길! 그 미친 노인네 때문에!”“날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윤도훈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퍼부었다.화마뱀과 필사적으로 싸울 준비까지 단단히 하면서.그러나 바로 이때 화마뱀 몸에서 강대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만단의 준비를 마치고 결투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화마뱀한테서 ‘흑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러더니 화마뱀은 순순한 앞잡이처럼 바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미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윤도훈은 당황해하더니 표정마저 이상야릇해졌다.“뭐지?”“흑... 흑흑...”화마뱀은 아마 자기만의 영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윤도훈의 말을 듣고서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따라서 소리를 냈다.“나랑 싸워야 하는 거 아니야?”윤도훈은 눈썹을 들썩이며 도발하듯 물었다.“흑흑...”화마뱀은 또다시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며 비할 데 없이 굵은 꼬리를 살짝 흔들기도 했다.몸집은 여전히 바닥에 납짝 엎드려 있었는데, 강아지가 주인에게 아첨을 떠는 자태였다.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윤도훈은 눈동자를 굴리더니 문뜩 또 다른 추측이 떠오르기도 했다.‘설마 용형 옥패 중의 전승을 이어받아 나한테 감히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 아니야?’‘조용의 잔혼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걸까? 그래서 맹수가 이렇게 흐느끼는 걸까?’“그만하고 인제 그만 일어나거라!”“신약을 찾으러 왔는데, 어디 있는지 아느냐?”윤도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소리를 한껏 깔고 물었다.화마뱀은 바로 윤도훈의 뜻을 알아들었고 그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거대한 몸집을 돌려 윤도훈을 등진
고향기의 말을 들은 전진은 바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다른 이들의 비웃는 소리도 잇따라 고막을 자극해 왔다.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백아름은 ‘대환단’을 복용하여 체내 부상을 재빠르게 회복했다.그녀 역시 고향기를 바라보며 이를 악문 채 조롱했다.“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온 거예요? 그 미친놈이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떨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설마 그 맹수가 그 미친놈 손에 죽었겠어요? 아니면 그 맹수와 오붓하게 지내고 있을까요?”고향기는 입술을 사리물고서 모든 이들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게 뭐든 가능할 수도 있죠.”윤도훈이 화산구로 떨어진 뒤로 사방이 적이고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고향기이다.전진과 같은 남자들의 시선을 느끼며 고향기는 내심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여자임을 들킨 후폭풍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고향기는 이미 내심 결정을 내렸다.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다면 짐승 같은 놈들에게 당할지언정 화산구로 뛰어들고 말겠다고.고향기의 말을 듣고서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가능할 수도 있다고?”“고수, 내 여자가 되겠다고 이 자리에서 선언하면 내가 널 지켜줄 수도 있어. 어떻게 첩으로 들어올래?”이때 하씨 가문의 하장풍이 고향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임수학은 콧방귀를 뀌며 옆에서 비아냥거렸는데.“그 몸으로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 고수, 그냥 나한테 와. 내가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지 제대로 몸소 느끼게 해줄게. 내 여자가 되면 앞으로 너희 고씨 가문도 우리 금도문이 나서서 커버해 줄 게요. 나 말고 감히 널 건드릴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거야.”파렴치한 그의 말을 듣고서 고향기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떨어져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할 거야.”백아름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엉큼한 생각뿐인 남자들을 바라보며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단전 속의 액체가 온정한 고체로 응결되면서 그 속에 들어있던 진기마저 순도가 한껏 높아진 것 같았다.아메리카노에서 에스프레소가 된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체내에서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진기는 윤도훈의 육신, 경맥, 오장육부, 근골을 모조리 침식해 버렸다.가만히 앉아 있는 윤도훈의 표정은 다소 일그러졌고 살짝 고통스러워 보였다.온몸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환골탈태라도 하는 변화가 지금 그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다.피부에 광택이 살짝 나더니 근육이 이리저리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고 뼈에서는 콩이 터지는 듯한 소리까지 났다.그와 동시에 모공에서 검은색의 연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사람은 살아가려면 각종 양식을 섭취해야만 하는데, 다년간 체내에 축적되면 많은 찌꺼기가 남게 되어 있다.윤도훈은 지금 결단 경지를 돌파하고 있는 중이고 환골탈태를 진행하고 있으므로 20여 년간의 찌꺼기 또한 모조리 씻어내고 있다.그 모든 찌꺼기는 모공으로 흘러나와 검은 연기가 되어 여러 독소와 비린내로 함께 화산구 위로 거침없이 피어오르고 있다.코를 찌르는 듯한 비린내를 맡은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하며 의문을 드러내었다.“무슨 냄새지?”백아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만 참지 못하고 코끝까지 꽉 움켜쥐었다.비린내에 이성이라도 상실해 버린 듯한 임수학은 화까지 벌컥 냈는데.“갑자기 왜 비린내가 진동하고 난리야! 누가 방귀라도 뀌었어?”“저기 화산구 아래에서 나는 냄새 같은데...”임시원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맞아요. 저기 밑에서 나는 냄새 같아요. 설마...”하장풍 역시 화산구 쪽으로 다가가 코를 찡끗거리며 말했다.“설마... 신약에서 나는 냄새 아닐까요?”전진이 먼저 자기 추측을 내뱉었다.순간 모든 이들의 눈빛이 확 달라졌고 흥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임시원은 이미 화산구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자기 공법을 돌리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다른 이들도 정신을 차리며 따라서 자리 잡고 앉았는데, 연신 크게 호흡하며 급히 수련에
실력 강화뿐만 아니라 대지 맥동 신통까지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된 것만 같았다.아니, 한 층이 아니라 한 10배 정도.그 말인즉슨, 윤도훈이 신통 능력을 펼칠 때, 상대에게 본래 중력의 10배 이상이나 되는 효과를 불러일으켜 10배 이상이나 되는 상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남에게는 듣는 것만으로도 무서울 능력일 수 있지만 윤도훈은 떨떠름했다.‘겨우 10배?’자기 실력으로 10배나 되는 체중을 감당하는 건 식은 죽 먹기와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니 무서운 능력일 수도 있겠다며 생각이 바뀌었다.수련자에게 자기 몸무게의 10배 되는 중력을 감당하라고 하는 건 별문제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만약 오장육부마저 10배가 되는 중력을 감당해야 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하는 것이다.원영 경지에 이르기 전에 수련자의 오장육부는 피부, 근육과 같은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다시 말해서 대지 맥동이 일단 어느 한 사람 몸에서 그 역할을 펼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오장육부는 10배나 되는 중력을 감당해야 하므로 그로써 받는 상처까지 10배가 되는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일단 서로 맞서게 되면 상대의 속도는 무척 느려질 수도 있다.대결 속에서 틈을 살짝이라도 보이게 한다면 그로써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일이다.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니 윤도훈의 얼굴에는 어느새 만족하기라도 한 웃음이 피어있었다.완벽한 능력에 빈틈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대지 맥동을 펼치게 되면 온몸에 함유되어 있던 진기를 모조리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다.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능력이 아닐 수 없다.“도마뱀, 기회가 되면 또 보자.”윤도훈은 화마뱀을 향해 웃으며 헤어질 준비를 했다.이번 개인 랭킹 시련에 참여한 목적은 온전히 신약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자원 역시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화산구 위에서.다리 접고 앉은 이들은 끊임없이 검은 연기를 들이마시며 수련에 전념하고 있었다.“뭐야? 이게 끝이야?”“벌써 없어진 거야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 그들을 보고 윤도훈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다 토했지?”“그럼, 본론으로 들어간다.”시작을 알리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윤도훈은 포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운을 떼기 시작했다. “자, 다들 가지고 있던 주머니 제출하도록 한다. 내가 이번 개인 시련 순위를 전해줄 것인데, 이의있는 사람?”그 말을 듣고서 모든 이들의 안색이 어두워졌으며 두 눈에는 달갑지 않은 감정이 가득했다.하지만 윤도훈의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 그 누구도 감히 노여움을 드러낼 수 없었고 설령 드러낸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흑월교의 성자 임시원은 그나마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두 눈을 빤짝이더니 가장 먼저 선뜻 나선 사람이 바로 임시원이었다.그는 바로 자기 주머니를 윤도훈 앞으로 던지며 말했다.“고도훈 씨, 이건 제 주머니예요. 안에 56가지 약초가 들어있는데,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가져다 쓰세요. 이로써 우리의 인연을 이어갔으면 하는데 어때요? 고씨 가문과 흑월교 사이에 그 어떠한 원한도 존재하지 않고 우리 흑월교는 NC 조직까지 돌봐주고 있어요. NC 조직 세력은 SJ 지역 전체를 뒤덮고 있는데 고씨 가문이 있는 도운시도 그 지역에 속하잖아요. 앞으로 어쩌면 서로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고씨 가문에서 직접 나서기 힘든 일이 있으시면 NC 조직에 맡겨도 되고요.”윤도훈은 눈썹을 들썩이며 가타부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임수학, 하장풍, 전진 세 사람도 자기 주머니를 건네주었다.고향기 역시 가지고 있던 모든 약초를 꺼내 들었다.백아름만 남은 상황인데.“백 소주, 이리 주시죠.”윤도훈은 그리 선하지 않은 눈빛으로 백아름을 바라보며 소리를 높였다.지금은 기분이 그나마 좋은 상황이라 백아름에 대한 살의가 그리 깊지 않은데, 만약 순순히 협조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백아름은 이를 악물고 뼈를 파고드는 듯한 굴욕을 참으며 자기 주머니를 윤도훈 앞으로 던져버렸다.윤도훈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눈치는 빠
신약산 신비경의 경지가 이제 곧 닫히게 된다.그 말인즉슨, 윤도훈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곧 이곳에서 ‘쫓겨’난다는 뜻이다.한 시간 뒤.하란파 무술 시합 무대에서.이번 개인 시련 순위에 따라 백장미 장로는 그에 마땅한 상품인 자원을 분배해 주었다.하지만 하란파 장로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다른 가문네 사람들도 수군거리며 의아한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다.결단 중기 실력인 백아름이 겨우 2등을 했기 때문이다.미처 생각지도 못한 고씨 가문의 고도훈과 고수가 다크호스처럼 1등과 3등을 차지한 것이 놀라웠다.게다가 호씨 가문의 도령 호정우는 나오지조차 못했으니 말이다.다들 속으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었다.이번 시련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하여.그날 밤, 하란파 어느 방안에서.“아름아,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신약을 네가 직접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빼앗아 와도 되지 않느냐?”“빙혼신검은 너만을 위해 준비한 것인데, 어찌 고도훈 그자에게 넘어가도록 보고만 있었느냐?”“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나.”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던 백장미 장로가 죄인처럼 서 있는 백아름을 향해 연신 질문을 날렸다.백아름이 너무 자만하여 남의 약초를 거들떠보지 않아 1등을 놓친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절대 2등을 할 실력이 아니기 때문이다.“장로, 죄송합니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그거 아십니까? 고도훈 초급 경지 중기 실력이 아니라 초급 경지 후기 절정이었습니다.”백아름은 입술을 깨물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 역시나 실력을 감췄구나.”“근데 초급 경지 후기 절정이면 뭐 어때? 넌 결단 중기 실력이잖아.”백장미 장로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백아름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진짜 이유를 뱉어냈다.“하지만 고도훈은 완벽한 초급입니다.”그 말을 듣고서 조금 전까지 대수롭지않게 여기던 백장미 장로의 표정이 얼어붙고 만다.“뭐라고? 완벽한 초급이라고? 그 고도훈이 완벽한 초급이란 말이냐?”백아름은 고개를
윤도훈, 고향기 그리고 고연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니, 윤도훈을 보고서 백아름은 표정이 한껏 차가워졌다.백장미 장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말하면서 윤도훈이 손에 들고 있는 보검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이윽고 윤도훈이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와 빙혼신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백장미 장로는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고도훈 씨, 지금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그러자 윤도훈이 웃으며 말했다.“이 검은 백아름 소주의 것이 아닙니까?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닙니까?”그 말을 듣고서 백장미 장로는 헛기침을 하며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개인 랭킹 시련에서 1등을 차지한 자에게 주는 상품입니다. 1등을 한 사람은 백아름 소주가 아니라 고도훈 씨이니 당연히 고도훈 씨가 갖고 있는 게 맞습니다.”“제 것이라고 하셨으니 제가 마음대로 처리해도 되는 거죠? 백아름 소주의 상품과 바꾸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빙혼신검이 아니라 빙하용최검을 원합니다.”순간 윤도훈을 바라보는 백아름 장로의 눈빛은 한껏 부드러워졌다.“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하시려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윤도훈은 고개를 돌려 고향기와 고연을 한 번 보고는 덤덤하게 대답햇다.“시련 과정에서 백 소주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경쟁은 오로지 경쟁인만큼 저도 저희 고씨 가문도 하란파와 적이 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말이 떨어지자 고연과 고향기도 고개를 끄덕였고 고연이 덧붙였다.“그렇습니다. 시련 중에 서로 경쟁하는 사이니 할 수 없었지만, 시련이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고씨 가문과 하란파 사이에는 그 어떠한 원한도 없습니다.” 고연과 고향기는 다소 걱정이 앞섰다. 필경 윤도훈이 하란파에게 미움을 쌌으니.신약산 산골짜기로 들어가기 전부터 고향기가 백아름을 죽이려는 윤도훈을 막은 이유로 바로 이것이다.백장
“아빠, 율이 너무 아파요! 율이 죽을 것 같아요...”“율이 나을 수 없는 거예요?”“율이는 이렇게 아픈 거 싫어요. 아빠 율이 때문에 돈 더 쓰지 마요.”“율이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율이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중환자실에는 작은 아이가 누워있었다. 아이의 예쁘장하고 귀여운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코와 입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며 온몸이 출혈점으로 뒤덮여 있었다.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은 아이는 작은 손으로 윤도훈의 손을 꽉 잡았다. 큰 눈망울에는 괴로움과 아빠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다.윤도훈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팠고 왼쪽 신장을 도려냈을 때보다 만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율이 착하지, 아빠가 율이 꼭 낫게 해줄게. 율이 다 나으면 아빠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아빠가 율이 위해서 닭강정 해줄게, 어때?”윤도훈은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아빠 거짓말하지 마세요. 율이 낫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돈 아껴 써요. 율이 죽으면 아빠 계속 살아야 하잖아요. 아빠, 율이한테 더 돈 쓰지 말아요...”아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이 하고 있던 용이 조각된 옥 목걸이를 뺐다.“이 목걸이는 율이가 하고 있어도 소용없어요. 아빠가 하고 있으세요. 목걸이가 아빠를 지켜줄 거예요!”옥으로 만들어진 그 목걸이는 윤도훈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었다. 윤씨 일가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그것은 병마를 물리치고 화를 피하게 해준다고 했다.율이가 앓게 되면서 윤도훈은 부디 목걸이가 아이를 지켜주길 바라며 그것을 아이에게 건넸다.하지만 지금 보니 병마를 물리치고 화를 피하게 한다는 건 그저 염원인 뿐이었다율이의 말을 들은 윤도훈은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는 율이의 체온이 남아있는 목걸이를 손에 꽉 쥔 채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율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그리고 아이가 철이 들수록 윤도훈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무거운 무언가가 심장을 꽉 짓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