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민은 이렇게 여자가 애써 참는 모습을 즐긴다.그는 그녀의 뒤에서 정말 음흉하게 웃었다.다행히도 고윤희는 굉장히 완곡하고 지적인 여자여서 그녀는 계속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신세희를 바라보았다.저 끝에서 신세희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부소경의 품에 숨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칭얼거렸다.“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나 정말 창피해서 죽고 싶어요. 내... 내가 한 발도 못 맞추다니…”지금까지 정말 누구 앞에서도 이렇게 큰 소리친 적이 없었다.신세희는 원래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이라 자신에 관해서 많이 얘기한 적이 없다.그녀는 오늘 사실 정말 기뻤다.부소경이 그녀를 정말 아꼈기 때문에, 이렇게 그녀와 유리의 훗날을 위해 회사의 모든 고위층을 여기로 데려와 그녀를 소개한 것이었다.비록 부소경이 걱정되어 울었지만, 사실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다.그녀는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곧 득의양양해졌다.이렇게 큰 소리 치자 마자 바로 대망신을 당할 줄은 몰랐다.정말 창피해 죽을 지경이다.그냥 이렇게 그의 품에 숨어서 평생 임원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이렇게 큰소리로 자랑하더니 하나도 맞추지 못한 모습에 그곳에 있던 모든 임원들이 다 즐거워했다.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즐거움이었다.회장님이 도대체 왜 지난 반년 동안 이렇게 미소를 머금고, 평온해 보였는지, 그 살기 마저도 점점 사라졌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집에 이렇게 귀엽고 한 송이 불꽃 같은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임원들은 어느새 서서히 물러갔다.엄선우마저 물러났다.무려 1만 평이나 되는 커다란 사격장에는 양쪽에 남녀 한 쌍만 남아 있었다.“자, 사람들은 모두 떠났어.” 부소경은 낮은 목소리로 아내에게 말했다.“정말이에요?” 신세희는 부소경의 품에서 서서히 고개를 내밀어 보았는데, 정말 사격장에는 네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그리고 그 두 사람은 서쪽 끝에 있어 이들로 부터 무려 100여 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었다.“이제는, 배울 마음이 생겼어?” 남자
구경민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아직 네 몸이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너에게 이런 몹쓸 생각을 하다니! 죽어도 마땅해!”고윤희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괜찮아, 경민이야, 벌써 20일은 지났는 걸, 그렇게 심각한 일 아니야. 게다가 요즘 계속 산삼, 녹용주스, 꽃 차에만 매달렸잖아. 내 몸은 진작 많이 좋아졌어.”구경민은 눈을 반만 가늘게 뜨고는 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아까 나한테 딱 붙는 운동복 입으면 불편하다고 한 거야?”딱 붙는 운동복 얘기가 나오자 고윤희는 참지 못하고 신세희와 부소경 쪽으로 눈길이 돌아갔다.신세희가 입고 있는 헐렁한 운동복은 정말 예뻐 보인다.아무런 장식도 없지만 신세희가 자연스럽고 투명한 멋을 내게 했다.고윤희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말했다. “경민아, 나는… 나는 단지 세희씨의 모습이 부러울 뿐이었어, 사실 세희씨는 내면이 매우 단단한 여자야, 예전에 부소경과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겉보기에는 부소경한테 굴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생사를 오가고 있었지, 그녀는 단지 말로 뱉지 않았을 뿐이야.그녀의 영혼은 그 어떤 것보다도 대단해.그녀야말로 차분해야 할 때는 차분하게, 소탈해야 할 때는 시원시원할 수 있는 성격을 가졌어그녀가 입고 있는 헐렁한 운동복은 그녀가 있고 있어서 아름다운 거지, 사실 옷 자체가 아름다운 건 아니야.신세희 자신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이지.하지만 난 신세희랑 달라.”여기까지 말하고 고윤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는데, 웃음 속에는 깊은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계속해서 부드럽고 완곡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신세희보다 나이도 많고 모든 면에서 신세희보다 성숙 하잖아. 내가 그런 헐렁한 옷을 입으면 오히려 억지스럽고 느끼해 보일 수 있어. 난 차라리 이렇게 좀 더 섹시한 옷을 입는 게 잘 어울리지. 30대 여자는 딱 섹시할 나이인데 그렇게 청순하게 스타일링 하면 얼마나 안 어울리겠어, 맞지, 자기야?”그녀가 그렇게 당당히 자신이 잘 빠진 여
차를 멈추고 운전사는 문을 열고는 조용히 떠났다. 이렇게 큰 별장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구경민은 먼저 차에서 내려서 트렌치코트를 활짝 열어젖힌 다음, 허리를 굽혀 벌거벗은 채 웅크린 여인을 품에 안았다.그리고 코트를 덮고는 바로 실내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품에 안긴 여인은 숨도 제대로 크게 못 쉬었다.그녀는 타조처럼 남자의 양복 속에 머리를 깊이 파묻고는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사실 별장에는 정말 아무도 없다.그들이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두 명의 하녀는 멀리 몸을 피했다.남자는 다시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너 이것 좀 봐! 이렇게 놀랄 거면서, 이렇게 무서워하면서 차 안에선 왜 그렇게 대담한 거야?"여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심지어 고개도 들지 않고는 작은 주먹만 들어 그의 가슴을 마구 두들겨 댔다. "흥! 미워!"그녀의 투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그녀를 커다란 침대로 내동댕이쳤다.실내에 도착하자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실내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실외는 더할 나위 없이 고요했다.두 시간 남짓 후 남자는 침대에 반쯤 누워 시가를 피웠고, 여자는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하고는, 다시 물대야와 데운 수건을 들고는 침대 옆에 반쯤 무릎을 꿇고 구경민을 깨끗이 닦아줬다."자기야, 내 다리를 배면 좀 편할 거야."구경민은 눈썹을 고르며 말했다. "응, 고마워." 고윤희는 다시 구경민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다리를 들고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마사지를 했다. 그녀의 기술은 매우 뛰어나서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싹 풀렸다.구경민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경민아?" 고윤희가 구경민을 불렀다."응?" 남자가 느긋하게 대답했다."좀 편해졌어?"그녀가 조용히 물었다.남자는 갑자기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그윽했다."왜 그래, 경민아?" 그가 말을 하지 않자 그녀는 사랑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랑한단 말 듣고
"네가 자초한 일이야!" 남자는 냉소하며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그날 밤, 고윤희는 허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휘청거렸다.한밤중이 되자 그녀는 일어나 세면대로 갔고, 남자도 일어나 그녀의 뒤로 와서 그녀를 덥석 껴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착하지, 어떻게 깨끗이 처리할지 생각해 봐, 나는 네가 병원에 가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그건 네 몸에 좋지 않아."고윤희는 그의 가슴에 기대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어."그런 다음 그녀는 돌아서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경민아, 걱정 마, 난 말 잘 들을 거야."그녀는 두 팔로 그의 목덜미를 잡고는 좁은 세면실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백 여번은 뛴 듯했다.얼마나 뛰었는지 그녀의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었다.남자는 만족한 듯 여자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잘했어, 이제 그만 뛰어도 돼.""응." 여자는 남자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경민아, 먼저 자, 나는 씻고 내 방에서 잘게.""그래."고윤희가 씻고 나왔을 때 남자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연거푸 서너 번을 달려들었더니 그도 확실히 피곤했다.남자가 잠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칼과 도끼로 깎은 듯한 또렷한 이목구비, 그 몇 세대에게 물려받은 고귀하고 사치스러운 기운, 그리고 수많은 군마를 통솔하는 패기의 기운이 남자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윤희는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그제야 조용히 그의 방문을 닫고 객실로 돌아갔다.구경민과 만나는 5, 6년 동안 그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잔 적이 없었다.구경민은 굉장히 깔끔 떠는 성격이다.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그녀가 이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 이 남자는 절대 자신의 셔츠를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5, 6년이 지난 지금 그가 그의 셔츠를 입게 내버려 두어서, 고윤희는 이미 너무 행복했다.그녀의 구경민.그녀의 사랑하는 사람.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를 평생 사랑할 것이다.자신의 침대에 누운 고윤희는 누렇게 바랜
어찌 되었든 먹는 것과 입는 것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매번 네 쌍의 쌍둥이를 우리 보배라고 부르며 애지중지했다.하지만 고윤희는 남 대하듯이 대하면서 칭찬이란 건 해준 적이 없었다.고윤희는 가끔 아빠가 자기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볼에 뽀뽀도 해주었으면 싶어 아빠의 다리를 안고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하지만 매번 고윤희의 아버지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저쪽 가서 놀아!”고윤희는 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짝꿍이 있고 다들 똑같은 옷을 예쁘게 입고서 즐겁게 놀이도 하고 부모님에게 마음껏 애교도 부렸다. 고윤희는 그저 부러웠다.매일 밤, 그녀는 이불속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고윤희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노력했다.학교에서는 모범생이었고 집에서는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도 도맡아 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혼자 사과 한 박스를 나를 수 있었다.부모님이 힘들 때면 걸상을 놓고 쪼그리고 앉아 두 사람에게 마사지도 해주었다.그녀는 단지 사랑을 받고 싶었다.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의 안중에 그녀는 없었다. 늘 그랬듯이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매번 고씨 집안에 결혼식과 같은 경사가 있으면 고윤희 부모님은 네 쌍의 쌍둥이만 예쁘게 단장시켜 데리고 갔다.고윤희는 늘 혼자 집에 남겨졌다.그러다 보니 부모님뿐만 아니라 네 쌍의 쌍둥이들까지 고윤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고씨 집안은 비록 중산층에 속하지만, 아홉 아이를 키우는 건 실로 막대한 지출이었다. 게다가 잘 되고 있던 과일 장사도 인터넷 구매나 체인점 등에 대체 되다 보니 장사도 되지 않았다.오히려 연속 몇 년 동안 적자였다.집 두 채와 예금 14억 정도가 있다 하지만 아홉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그래서 맏이는 16살이고 막내는 8살이지만 과일과 간식을 살 때도 사람 수에 따라서 샀다.하지만 매번 고윤희의 몫은 언니 오빠들에게 빼앗기거나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그러다 보니 다섯째인 고윤희의 키와 몸무게는 막
그 말을 들은 고윤희는 깜짝 놀랐다.“엄마,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고윤희의 어머니는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고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윤희 이젠 다 컸네. 이 머릿결 좀 봐. 풍만한 가슴도 그렇고 키도 훌쩍 자랐네. 얼굴이 좀 마르고 작긴 하다만... 마침 잘됐네. 윤희야, 너도 컸으니 결혼해야지. 엄마가 좋은 집안 알아봤어. 이름 좀 있는 재벌 집이야. 너 그 집에 시집가면 복 터진 거야.”고윤희는 머리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엄마, 나 결혼 안 해요. 나 검정고시 봐야 해요. 곧 대학교도 갈 거라고요. 나 엄마한테 학비 달라고 안 할게요. 내가 벌어서 학비 낼게요. 엄마, 나 결혼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나 싫어요. 언니 오빠들도 아직 결혼 안 했는데 왜 내가 먼저 결혼해요?”“네가 안 하면! 네 동생이 할까? 네 동생 이제 15살이야. 너 그러고 싶어?”고윤희 엄마는 순식간에 얼굴을 바꿨다.고윤희는 의아했다.“그거랑 무슨 상관이에요?”“상대가 네 동생을 선택했어! 결혼만 하면 5억을 준대! 5억이면 급한 불을 끌 수도 있어! 네 언니 오빠 학비와 생활비만 매년 2,000만 원도 훨씬 더 돼! 그리고 네 할아버지 할머니도 돌봐드려야지, 네 아빠 담뱃값에 네 동생들 학비에! 네가 좀 집안을 위해 희생하면 안 돼?”고윤희의 엄마는 증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고윤희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울기 시작했다.“왜 하필 저예요? 난 친딸 아니에요? 친자 검사도 했잖아요. 나 딸 맞잖아요. 근데 왜 저예요? 제가 그렇게 싫으시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을 끊어요!”말을 끝낸 고윤희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다.그런데 이내 아버지에게 잡혀 몸이 묶였다.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집에 사흘 동안 묶어두었다.고윤희는 사흘 동안 눈물로 지샜다.마지막에는 온몸에 힘이 빠져 울 힘도 없어 문에 기대있었다. 문밖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말해왔다.“윤희야. 너 아빠 딸 맞아. 근데 엄마 아빠한테는 아이가 많잖아. 그때는 다
정승리와 주미려는 고윤희가 자기의 아들을 잡아먹었다며 그녀를 원망했다.시간이 흐르고 언제부터인가 고윤희를 바라보는 정강민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그러더니 정승리와 주미려에게 얘기해 고윤희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정승리와 주미려는 당연히 찬성했다.어차피 돈을 주고 사 왔으니 낭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정강민은 비록 폐인과도 같았지만, 독한 사람이다.매번 정강민은 고윤희의 목을 죽기 직전까지 졸랐다.하지만 고윤희는 정씨 집안의 지하실에 갇혀있는 4,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미 습관이 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성격이 점점 과묵해지니 그제야 그녀를 풀어주고 나중에는 정강민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정강민은 밤낮없이 그녀에게 폭행을 저질렀다.매번 죽기 직전까지 그녀를 폭행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살려달라고 애원한 적이 없었으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다.그녀는 그저 모든 걸 내려놓고 죽고 싶었다.이런 생활은 그녀가 29살 되던 해에까지 계속되었다.그러다 정강민 집안의 호이스트에 문제가 생기면서 몇억의 배상금을 내다보니 집안은 망하고 말았다. 정강민은 하는 수 없이 고윤희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고윤희는 매일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월급도 적은 데다가 월급날이면 정강민한테 그대로 바쳐야 했다.만약 바치지 않으면 정강민은 또 고윤희를 죽기 직전까지 폭행한다.게다가 고윤희가 다른 남자와 말이라도 섞거나 미소라도 짓는 날에는 고윤희를 밤새도록 폭행하곤 했다.고윤희는 이런 폭력 가정에서 점점 우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 현장의 오야지가 그녀의 예쁜 얼굴과 우울한 분위기에 반해 흑심을 품고 정강민에게 고윤희를 두고 거래를 제안했다. 3년 동안 그녀를 자기에게 넘겨주면 정강민에게 1억을 주겠다고 했다.정강민은 당연히 찬성했다.고윤희는 죽기보다도 싫었다.그녀는 처음으로 정강민과 싸웠다.“못난 자식, 넌 남자도 아니야! 자기 마누라를 팔아넘겨? 넌 천벌을 받을 거야!”정강민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못난 사람이라고, 남자도 아
정강민한테 폭행 당하고 눈앞이 흐릿해지던 고윤희는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 구경민의 다리에 매달려 애원했다.“사... 살려주세요. 제발 나 좀 살려줘요. 나 좀 데려가 줘요. 시키는 건 다 할 테니까요. 나 좀 데려가 줘요. 네?”구경민의 녹색 제복과 롱코트, 그리고 강렬하고 정직한 인상은 그녀에게 말 못 할 안정감을 주었다.정강민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구경민이 자기를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저 바닥에 앉아 뒤로 슬금슬금 후퇴했다.고윤희 앞에 몸을 낮춘 구경민의 롱코트는 바닥에 닿아 먼지투성이 되었지만, 구경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입가에 피를 흘리며 벌벌 떠는 두 팔로 자기의 다리에 매달린 그녀를 바라보았다.“살려주세요... 저 힘든 일도 할 수 있어요. 먹여주기만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제발요, 나 좀 살려주세요.”고윤희는 구경민을 애타게 바라보았다.구경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요즘, 구경민은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5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갑자기 구경민을 버리고 남아메리카주에 있는 찾기도 힘든 나라로 가버렸다.떠나기 전에 최여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구경민에게 말했다.“오빠, 나갈게. 오빠한테 기다려 달라 말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난 지금 오빠랑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나 이제 스물셋이야. 오빠를 떠나서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여진아, 장난치지 마.”최여진이 말했다.“장난 아니야. 이제 오빠와는 질려. 나 혼자 정리하고 싶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부모님을 떠나서, 오빠를 떠나서 멀리 가고 싶어. 그곳에서 전원 생활을 하면서 야채도 심어보고 싶고 꽃도 키우고 싶어. 나 찾아올 생각은 하지 마. 나 숨는 거 엄청 잘하잖아. 그러다가 내가 지겨워지면 돌아올 수도 있어. 그때까지도 오빠 옆에 다른 여자가 없으면 나와 결혼해서 애도 낳자. 어때, 오빠?”구경민은 최여진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그 해, 최여진은 스물셋, 구경민은 스물여덟이었다.최여진이 열여섯 살 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