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들은 신세희는 깜짝 놀랐다.그녀는 그가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줄곧 마음에 두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임씨 가족에 대한 신세희의 원한을 부소경은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누가 그한테 냉혈 하다고 했는가?이 남자는 가족을 가장 생각하는 남자이다.이때 부소경을 보는 신세희의 눈빛이 한껏 더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뭔가에 홀린 듯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그의 옆에 앉았다."듣자 하니 서 어르신이 임씨 가족을 직접 가성섬으로 보냈다면서?" 정문재가 재차 확인하는 듯 부소경에게 물었다."맞아." 부소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정문재는 다시 구경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무슨 일이야! 우리 모두가 알듯이 서 어르신의 세력 범위는 서울이잖아. 서 어르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하가 바로 그 네 당숙, 그 구자현과 구선예의 아빠잖아. 그 이름이 뭐더라, 구성훈...?""뭐 하러 그 사람을 무서워해?" 구경민이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하나도 안 무서워!" 정문재가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우리를 방해할까 봐 걱정하는 거지! 지금 서 어르신이 자기 손녀의 가족 전체를 다 가성섬으로 보냈는데, 소경이 가성섬을 점령하려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까 봐? 분명 어떻게든 막으려 할 거야."구경민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럼 그 구 씨랑 이 구 씨랑 누가 더 위인지 잘 봐야지!"구경민은 또 부소경을 바라보며 "소경,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어? 내가 저번에 그 구서준 그 자식한테 시켜 너한테 전해줬던 기밀 문서, 그 안에 있던 무기 중에 아무거나 골라. 구성훈인지 뭔지는 신경 쓸 것도 없어."부소경은 손을 들어 구경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워, 경민아. 하지만 도와줄 것 없어. 구성훈 그 사람이랑 맞설 필요도 없어, 가성섬은 내가 알아서 감당할 수 있어."섬 전체를 혼자 감당한다고?구경민, 정문재, 장진혁 모두 놀라서 멍해졌다.하지만 세 사람이 부소경을 잘 알고 있으니 자신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이상 분명 문제 없을 거라
고윤희는 웃을 때 눈썹이 내려가서 예쁘다. 그녀도 굉장히 예쁘게 생겼다. 온실 속 잘 키워진 꽃 송이와 같이 잘 가꿔졌고, 옷도 잘 차려 입어 신세희에게 밀리진 않는다. 신세희는 한눈에 고윤희는 남자들에게 항상 사랑과 보호를 받지만 그렇다고 잘난 체하진 않는 그런 사람인 것을 알았다.그녀는 매우 얌전하고 세상 물정을 잘 알며 나약하지도 않고, 오히려 따뜻하고 당당했다.반면 신세희는 그녀와는 달랐다. 그녀는 각이 져 있어 말을 하지 않아도 딱딱하고 서늘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서늘함이 많이 사라지고, 그 대신 일 방면의 자신감이 채워졌다.고윤희는 이러한 신세희를 부러워했고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끌렸다.고윤희에 대한 신세희의 호감도 만만치 않았다.처음부터 구경민이 신세희에게 잘 대해 줬기 때문일 수도 있다.당시 신세희가 일자리가 없을 때도 구경민은 신세희를 격려해 주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구경민에게 굉장히 고마웠다.그래서 그의 옆에 있는 여자에게도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두 사람은 처음 봤을 때부터 마치 오래 본 친구 같았고 곧 연락처를 교환했다."나중에 같이 쇼핑해요." 고윤희가 말했다."좋아요." 신세희가 흔쾌히 대답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세희씨께 배우고 싶어요." 고윤희가 말했다."응?" 옆자리에 앉아 있던 구경민이 고윤희를 쳐다보았다. "너는 건축 설계를 배워 본 적도 없으면서 신세희씨한테 어떤 걸 배우겠다는 거야?"고윤희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이건 여자들의 일이야, 너한텐 안 알려 줄거야!""…"잠시 후에 그는 고래를 돌려 부소경에게 물어보았다. "소경아, 세희씨는 네 아내잖아. 네 아내가 뭘 가르쳐 준다는 거야?""…"사실 그도 알고 싶었다.예전에, 신세희를 찾기 전까지는 그는 여자에게는 관심을 줘 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그런데 지금 그는 자기 아내가 형제의 아내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 것 까지 궁금해졌다.부소경은 신세희를 바라보았다.신세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그녀도
부소경이 정신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했지만 신세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고개를 들어 보니 신세희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안 알려줄 거야?" 남자는 냉소하며 말했다. "말 안 하면, 오늘 벌을 줄 거야."신세희는 "벌주려면 주던가요. 여보한테 받는 벌은 나한텐 일종의 즐거움이에요. 난 여보한테 벌받는 게 좋아요."남자는 다시 으름장을 놨다."그건 내가 매번 봐줘서 그런 거야, 내가 진심으로 벌주면, 너 일주일동안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할 거야, 그럼 그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네가 계속 할…""그만!" 신세희는 손을 들어 남자의 입술을 막았다. "말할게요, 말하면 되잖아요?"이 남자는 서두르지 않고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 말해.""윤희씨가 저한테, 침… 침대에서 내가 무슨 기술이 있어서 여보가 나한테 꼼짝 못하는거 아니냐고, 어떻게 여보를 그렇게 부리냐고 물었어요." 신세희의 얼굴이 다시 시뻘게졌다."…."날 부린다고?꼼짝 못 한다고?하지만 그녀의 발그레진 얼굴을 보자마자 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오늘 내가 부리는 게 뭔지 알려주지…""아니... 벌주지 않기로 했잖아요.” 신세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술에 말이 막혔다.오늘 밤, 신세희는 호되게 벌받을 것이다.아주 달콤한 벌을.다음날 아침, 그녀는 그가 말한 것처럼 침대에서 못 내려오거나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오히려 얼굴이 더 좋아 보이고, 광이 나는 게 더 생기발랄해 보였다.이렇게 좋은 상태면 회사에 가서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오전 내내 정신없이 일 하다가 점심을 먹을 때가 돼서야 조금 한가해졌다. 그제서야 그녀는 위층에 두 친구가 생각이 났고, 신세희는 하던 일을 내려 놓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같이 밥 먹자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엄선희와 민정아 둘 다 회사를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 모두 출근하지 않았다니 뭔가 이상했다.신세희는 휴대전화를 꺼내 엄선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의찬과 서준명의 그사이 친해진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서준명이 조의찬에게 친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일까?아마도 조의찬이 가면 갈수록 책임감이 생긴 것이거나, 서준명이 조의찬과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하지만, 오늘 조의찬이 회사에 온 이유는 합작 프로젝트 일 때문은 아니다.조의찬은 신세희에게 할 말이 있어서, 회사로 온 것이었다.조의찬은 신세희를 보자 마자 그녀의 팔을 덥석 잡고 말했다. ”세희씨, 당신은 임 씨네 세 식구가 가성섬으로 도망갔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네?”조의찬은 조급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알고 있었나요?”신세희는 옆에 있던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서준명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저희 할아버지께서 임 씨네 가족이 도망치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세희 씨, 죄송해요. 저는… 저는 저희 할아버지를 막을 수 없었어요. 아니, 저희 할아버지는 이 일에 대해 전혀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만약에 제가 알았다면, 막았을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신세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이번 일은 준명 씨와는 전혀 관련없는 일이예요.”“하지만, 당신이랑은 관련이 있잖아요!” 조의찬이 소리쳤다.“…” 신세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원래 이 일에 대해 자신의 남편과 수만가지 대책을 세웠었다. 그리고 그녀는 줄곧 자신의 남편이 그 섬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이건 남편의 비밀이기 때문이다.신세희가 말했다. “의찬 씨, 저를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려요.”조의찬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당신이 그 3명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에게는 그들에게 복수할 여러가지 방법이 있어요.”신세희는 더 이상 조의찬에게 사적인 감정이 없었다.하지만, 조의찬은 달랐다. 그는 6년 간 신세희를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그가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신세희가 될 것이다.
고개를 돌리자, 뒤에 서 씨 어르신이 서 있었다.“할아버지!” 서준명은 자신의 친 할아버지를 살짝 노려보았다.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서 씨 어르신은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의 손자를 노려보았다. “이 자식! 내가 못 올 데라도 왔어? 이미 집에도 일주일 넘게 안 들어오고, 네 부모 전화는 또 왜 안 받아? 내가 내 손자를 보러 회사에 왔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서준명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임 씨 가족의 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을 안 후, 줄곧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호텔에서 지냈다.“그런데 갑자기 왜 세희 씨한테 뭐라하시는 거예요?” 서준명이 말했다.서 씨 어르신은 소리쳤다. “뭐라하다니! 난 그저 충고했을 뿐이야! 어디 여자가 남자들 사이에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단 말이냐? 창피한 줄 알아야지!”신세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서 씨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저보다 할아버지의 외손녀분이 더 창피해야 되지 않을까요? 두 달 전에 사람들 앞에서 진상희라는 여자와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있더군요.”그녀는 당당하게 말하였다.“그리고, 내 남편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 당신이 어떻게 지금 나한테 창피함을 논할 수 있죠?”서 씨 어르신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너…”신세희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외손녀를 무사히 가성섬에 보냈으니, 두려울 게 없으시죠?”서 씨 어르신이 말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참지 않으마. 신세희, 난 절대 내 손녀가 너한테 당하고만 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절대 네 남편이 그 섬을 점령하지 못하게 할 거라는 소리다!”신세희가 대답하였다. “그건 저한테 말하실 필요는 없죠. 그런 일은 제 남편하고 상의하세요.”“너! 이 자식!!!” 서 씨 어르신은 매우 화가 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이때, 서준명이 나서서 급히 상황을 정리하려고 하였다. “할아버지, 우선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흥!” 서 씨 어르신은 신세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난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
오랜 시간 서준명은 신세희가 서씨 집안의 외손녀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정작 서씨 집안 어르신은 신세희를 괴롭혀왔다. 신세희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반감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신세희는 빌붙는 성격이 아니라 서준명은 신세희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미안해요.”신세희는 쿨하게 대답했다.“서준명 씨 잘못이 아니에요. 좋은 마음으로 그랬다는 거 알고 있으니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내요. 선희 씨와는 어때요?”엄선희의 얘기가 나오니 서준명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밝고 귀엽더라고요.”“그럼 잘해주세요. 선희 씨 사촌오빠가 소경 씨의 경호원이자 비서니까 선희 씨한테 잘 못하기만 해봐요. 선희 씨 오빠가 가만히 두지 않을걸요.”서준명은 웃으며 말했다.“명심하죠, 늘 세희 씨 말을 기억하면서 선희 씨를 공주님처럼 모실게요.”신세희가 말했다.“당연히 그래야죠!”그녀는 멈칫하고는 조의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의찬 씨, 돌아가세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제 남편이 알아서 할 테니 개입할 필요 없어요. 의찬 씨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길 바랄게요.”조의찬은 다소 쓸쓸한 말투로 말했다.“행복해 보여요.”“그럼요.”신세희는 쿨하게 인정했다.“세희 씨 어머니...”조의찬은 말을 꺼내다 말았다. 최근 들어 조의찬과 서준명은 친하게 지냈다. 게다가 서준명은 엄선희와 열애 중이니 자연스레 신세희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엄마 얘기가 나오자 신세희는 힘없이 입을 벌렸다.“엄마는... 행방불명 상태에요.”“듣기로는 임씨 집안에서 감금당했다고요?”조의찬이 비통한 말투로 물었다.신세희의 눈빛에 갑자기 독이 올랐다.“그 집안사람들은 다 사이코에요!”조의찬은 확고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집안사람은 꼭 천벌을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빨리 출근하세요.”신세희는 조의찬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물으려 했지만, 조의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준명, 여기서 세희 씨를 만났으니 나는 같
신유리의 말을 들은 신세희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고는 머리를 돌려 신유리에게 물었다.“어딨어?”“차창 밖에.”신유리는 차창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세희는 신유리가 가리키는 곳을 보며 또다시 물었다.“어디? 엄마 안 보여.”“엄마 시력 안 좋아서 그래. 횡단보도 건너 나무 뒤에 있어. 저것 봐, 눈동자가 있잖아.”신유리는 먼 곳을 보며 말했다. 신유리는 한치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따뜻했으니 말이다. 신유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뚫어지게 보던 신세희는 겨우 그 눈동자를 찾았다. 신세희는 깜짝 놀라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눈동자가 신세희와 신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세희는 그 눈동자와 한참 눈을 마주치다가 다급히 차에서 내려 신유리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뛰어갔다.“유리야, 빨리 뛰어. 엄마랑 저기 가보자.”하지만 길 건너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동자는 어느새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신세희는 실망한 듯 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엄마...”신유리가 말했다.“엄마한테는 내가 있잖아.”신세희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몸을 낮추어 신유리를 품에 안았다.“응, 엄마한테는 유리가 있어.”신유리는 신세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엄마, 속상해하지 마.”신유리의 입맞춤에 신세희는 위로를 얻었다.‘속상해하지 않을게! 유리를 위해서 씩씩하게 살아갈 거야.’집에 돌아왔을 때, 부소경은 아직 퇴근 전이었다. 이씨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를 마친 뒤, 신세희는 부소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은 시각 부소경은 긴급회의 중이었다. 부소경은 이미 신세희 고향의 일을 처리하고 가성섬의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오늘의 긴급회의도 가성섬의 배치에 관한 내용이었다. 신세희가 연락해 오자 부소경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자리에 있던 수십 명의 직원들은 이내 신세희의 전화인 것을 눈치챘다. 예상대로 부소경은 말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집에 들어갔어?”전화기 저편에서 신세희도 다정하게 말해왔다
그녀는 부소경과 신유리가 있다면서 애써 자기를 위로했다. 세 사람은 행복한 한 가족이다. 신세희는 부소경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아 아픈 곳을 치료하고 싶었다. 신세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소경은 웃음이 나왔지만 입도 뻥끗 못 하고 애써 웃음을 참았다.‘참기 힘드네!’다행히 신세희가 깐족거림을 그만두고 말했다.“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 얼른 집에 와요. 나 당신 없이 잠 못 잘 거 같아요. 끊을게요, 여보.”그녀의 달콤한 말에 부소경은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부소경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도 제일 쓰고 진한 것만 마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부소경은 커피에 시럽을 넣기 시작했다. 그는 쓴 커피에 달콤함이 섞인 청신한 맛이 기분 좋았다.이날 밤, 부소경은 한밤중에야 집에 돌아왔다. 그는 신세희가 잠에 들었을까 봐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왔는데 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작업 중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이내 부정했다. 신세희는 안방이 어질러져 부소경의 수면에 영향을 끼칠까 봐 종래로 안방에서 작업하지 않았다.‘작업 중이 아니면 뭐 하고 있지?’살며시 안방문을 열고 들어선 부소경은 눈앞의 광경에 멍해졌다. 부소경의 안방은 보통 가정집 만한 면적으로 아주 넓었다. 안방 중앙에 다리미판이 놓여 있었는데 신세희는 앞치마를 두르고 숙련된 포즈로 부소경의 옷을 다림질하고 있었다. 다리미판 옆의 스탠드 옷걸이에는 신세희가 다려놓은 부소경의 슈트 몇 벌이 새 옷처럼 걸려 있었다. 부소경은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 그녀가 앞치마를 두른 뒷모습은 너무 여성스럽고 인간미가 넘쳤다. 부소경의 집은 항상 한기가 돌았다. 한색 계열의 벽지와 옷장과 카펫, 심지어 침대 시트도 그레이다. 부소경은 원래 차가운 성격이라 평생 난색 계열과는 거리가 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신세희의 뒷모습과 그 노란색 앞치마, 그리고 숙련된 솜씨는 부소경을 취하게 했다.“일로 와서 도와줘요. 당신 옷 다리고 있는데 문 앞에 서서 보고만 있을 거예요?”신세희는 뒤통수에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