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신세희는 그런 부소경에게 대답했다.부소경은 다시 진상희를 쳐다보았다. “그럼 그 하인들은!”“어… 어느 하인 말하는 거예요?” 진상희가 말했다.해정이와 연주는 진상희가 제일 아끼는 하인이었다. 이들이 부씨 저택에 있으며 진상희에게 이런 저런 소식을 알려준 덕분에 그녀가 이 저택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이었다.그녀는 그들 덕분에 고모 진문옥과 고모부 부성웅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그들은 그녀를 친조카 대하듯 해주었다.“엄선우!” 부소경이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엄선우가 바로 대답했다. “네, 도련님!”“해정이랑 연주 손목이랑 발목 다 부러뜨려! 그리고 컨테이너에 넣어서 아프리카로 보내버려. 아무리 손발 없는 병신이라도 여자는 여자잖아! 낭비해서는 안 되지!” 부소경의 말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부소경의 일 처리 습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그는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무조건 해내는 염라대왕 같은 사람이었다.해정이와 연주는 도련님의 성격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련님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련님이 머나먼 지방 곡현에서 데리고 온 신세희를 쉽게 용서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감히 그녀에게 온갖 모욕을 퍼부었던 것이었다.그녀들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련님이 신세희를 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세희를 아내로 삼았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두 하인들은 일제히 바닥에 꿇어 부소경에게 사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었다. “도련님, 제발 저희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저희 앞으로 다시는 사모님 모욕하지 않을게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도련님, 저희 손목 발목 부러뜨리지 않으시고, 저희를 아프리카로 보내지만 않아 주신다면 도련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요. 제발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부소경은 코를 매만지더니 가벼운 말투로 엄선우에게 말했다. “엄비서, 아침부터 너무 시끄러워서 머리가 다
자신을 소개하는 부소경의 말을 듣자 신세희는 순식간에 고개를 들어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부소경의 표정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아무렇지 않은 그의 표정에 그녀는 아무런 짐작도 할 수가 없었고 단지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차릴 수 있을 뿐이었다.그녀는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그의 시선을 따라 거실 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부씨 저택의 거실은 6년 전 그때와 똑같았다. 똑같이 고풍스럽고 사치스러웠다. 하지만 오늘은 6년 전처럼 거실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는 않았다. 신세희의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더 자세히 주위를 살펴봤을 때 그녀는 그제야 정 중앙에 앉아있는 이 집안의 어르신 부태성과 할머님을 보게 되었다. 유리는 부태성의 다리에 엎드려 있었다. 딱딱한 호두를 할아버지에게 건네주려고 한 것 같았다. 신세희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호두를 잡고 있던 유리의 팔이 허공에 멈춰버렸다.유리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유리의 작은 눈동자에는 승리감과 교활함이 가득했다. 신세희는 자신의 딸이 그 순간 또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부성웅와 그의 정실부인 진문옥이었다.오늘이 신세희가 진문옥을 세 번째로 만나는 날이었다.앞선 두 번의 만남은 모두 매우 불쾌했는데…부성웅과 진문옥 부부는 마치 누구에게 협박이라고 당하고 있는 듯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신세희를 쳐다보고 있었다.신세희는 이 상황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들 뒤에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진상희가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진상희는 지금 감히 화는 내지 못하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신세희를 노려보고 있었다.부태성 부부 옆에는 조의찬의 부모님이 앉아있었다.신세희의 모습을 보자 두 사람은 그만 충격에 빠져 버렸다. 충격 속에는 두려움
부소경이 아무리 악랄하더라도 어르신들을 전부 없애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그들의 기세를 누를 필요는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네 노인은 이내 기운을 누그러뜨렸다."유리의 어미이니 들어오라고 하거라."부태성이 제일 먼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진문옥이 뭐라고 입을 열려다가 부성웅에게 가로막혔다. 부소경이 지독한 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그중 부성웅은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자기 아들이 신세희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데 기어코 반대하는 자는 살기 싫은 거라 봐도 무방했다.그들은 신세희를 끌어안은 부소경이 거만하게 들어오는 것을 두 눈을 뜨고 지켜봐야 했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신세희는 죄수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에서 가장 권력 있는 남자의 아내로, 작은 사모님으로 거듭났다.노인들도, 부소경의 품에 안겨 있는 신세희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나 뭐라고 말해야 해요?" 신세희가 부소경에게 조용히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부소경이 반문했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입을 열고 싶지도 않았다.부태성은 여러 차례 그녀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짓밟으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지금은 그가 아무리 아이를 아낀다 해도 신세희는 차마 부태성에게 웃어 보일 수 없었다.또한 진문옥과 부성웅의 눈빛만 봐도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그래서 신세희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굳이 말 안 해도 돼."부소경이 말했다."……" 신세희는 고개를 들고 부소경을 힐끔 바라보았다. 정말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된다는 뜻인가?"당신은 말수도 적고 고지식해서 유리의 절반만큼도 순발력이 없잖아.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부소경이 냉소했다.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얼굴을 붉혔다. 면박을 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딸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데려와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거라고.실제로 그녀는 부성웅과 진문옥의 맞은편에 앉아 입을 꾹 다문 채 자기
신세희는 과묵하고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호의를 받으면 아이처럼 좋아하는 유형이었다. 다만 그런 호의를 얼마 받아보지 못했을 따름이었다."세희야, 이리 와보거라."상석에 앉은 노부인이 신세희를 향해 손짓하며 옆에 놓여있는 마호가니 상자를 열었다.정말로 신세희에게 선물을 주려는 것 같았다.신세희는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았다.비록 노부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함부로 탐내면 안 되는 물건을 가지겠다는 욕심은 전혀 없었다.그러나 옆에 있던 부소경이 신세희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할머니가 오라 하시잖아. 예의 갖춰.""......"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했으면서. 앞뒤가 다른 사람 같으니라고."얼른!"부소경이 냉담하게 말했다.신세희는 약간 토라진 상태로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뗐다.그녀는 이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노부인이 정말 선물을 건넨다면 넙죽 받을 생각이었다.'내 개인 재산이라고 치지, 뭐.'신세희는 얼굴을 붉히며 노부인의 곁에 다가가 다시 한번 공손한 목소리로 불렀다."할머니.""아이고, 죽은 어미를 쏙 빼닮은 것 좀 봐. 네 어미는 강한 사람이었어. 비록 내 아들의 명실상부한 아내는 아니었지만 독립적이고 재주도 많은 아이였지. 나와 알고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효심이 지극했단다."노부인이 입에 담은 '어미'는 하숙민 아주머니를 일컫는 것이었다. 그녀는 기품있고 재능도 넘쳤으며 인품도 좋았다. 지금은 깊이 잠들어 있는 하숙민 아주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신세희는 늘 괴로웠다. 신세희가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할머니…""오냐."노부인은 온화하게 웃으며 신세희의 손을 잡았다."더 가까이 오렴. 네게 이걸 주마."마호가니 상자 속 비단을 벗겨내자 한 쌍의 노란색 팔찌가 모습을 드러냈다."부씨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옥석이란다. 네 어미한테 주려고 했지만 그걸 못 기다리고 먼저 갔으니... 네게 물려주마. 앞으로 이 팔찌가 평생 너를 지켜줄
할머니의 안목은 정말 훌륭했다.부소경은 저도 모르게 신세희의 부드러운 손목을 움켜쥐었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진상희는 그걸 발견하고는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상석에 앉아있던 부태성이 재차 입을 열었다. "부씨 집안의 며느리라면 잘 알아둬야 할 관계가 있어. 우리 부씨 집안과 서씨 집안은 2, 3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가문이다. 처음에 두 집안은 모두 상업에 종사했었지. 그 후 몇 십 년 동안 서씨 집안은 정치와 학문에 종사했고. 그러나 두 집안은 오늘날까지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 소경이 너를 부른 건 유리가 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서씨 집안 어르신의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설마 너 여태 몰랐던 게냐?"‘서씨 집안 어르신이 편찮으시다니? 면접보던 날 회사에서 서준명 씨를 우연히 만난 뒤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어르신이 편찮았던 거였구나.'"알고 있습니다."부소경이 말했다."알고 있었다면서 어찌 한 번도 문병하지 않았느냐?"부태성이 물었다."......"서씨 집안 어르신이 서울 고위급 간부 병동에 입원한 지 보름이 넘었다. 이미 알고 있던 부소경은 구경민을 시켜 노인에게 귀한 약재를 보내게 했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가지는 않았다.그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사실 지난번 신유리 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던 게 병환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서씨 집안 어르신은 부소경이 임서아와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르신이 정정했을 때라면 부소경이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었지만, 만약 이렇게 위중할 때 행여 문병하러 갔다가 또 임서아와의 결혼 문제가 언급된다면 부소경도 단칼에 거절하기 어려웠다. 아마 그랬다면 그 노인네는 그 자리에서 졸도했을 것이다. 아무리 악명 높은 부소경이라지만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게 전부였다."말해 보거라!"부태성이 힐난했다."가기 싫었습니다." 부소경은 신세희보다도 짧게 대답했다."너…" 부태성이 손가락질했다."그분은 네 어미의 목숨을 구해주지
신세희의 생각에도 이게 맞았다.그녀를 인정한 건 노부인 한 사람뿐이었다. 노부인은 그녀에게 귀한 팔찌도 주었다지만, 연세가 있으신 노부인의 기억이 온전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아마 부씨 집안 사람들은 이 보물을 그녀에게 내어줄 마음이 없을 것이다. 팔찌는커녕 의자도 내어주기 싫어했으니까.눈치 빠른 그녀가 부소경에게 말했다."아침을 많이 먹어서 지금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네요. 배도 아픈 것 같고. 차에 누워있을래요."부소경에게 생리가 왔다고 거짓말한 것을 떠올린 그녀는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부소경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배 아파? 문질러줘? 내가 불 속성이라 금방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데.""…"신세희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달아올랐다.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때 부소경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이닝룸으로 들어섰다.신세희는 속으로 냉소했다. 결국 난감한 상황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무표정하고 침울한 신세희의 모습을 보며 진상희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식사 전 진상희는 진문옥에게 눈물 콧물을 잔뜩 쏟으며 하소연했다."이모, 이 집에서 살지 마. 이 집안에 더는 이모 자리가 없는 것 같아. 나랑 함께 돌아가자. 내가 이모 노후를 책임져 줄게. 평생 고생이라곤 한 번도 안 해본 우리 이모... 이딴 데서 처량하게 지내는 걸 내가 어떻게 두고 보겠어. 할머닌 노망이 난 게 틀림없어. 누가 누구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잖아! 어떻게 가문의 귀중한 보물을 신세희에게 주실 수 있지? 신세희가 그걸 받을 자격이 있나? 걔가 어떻게 이 집에 왔는지 할머닌 모르시는 거야? 걔는 넷째 도련님이 자기 딸에게 온전한 가정을 꾸려주기 위해 억지로 결혼한 사람일 뿐이잖아! 이모, 그 계집애는 날강도야. 이젠 이모의 자리까지 위협할 거라고. 우린 떳떳해, 이모!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내가 충분히 이모 먹여 살릴 수 있어."진문옥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편 더없이 분노했다. 그녀가 책상을 내려치며 씨근거렸다.
진문옥이 식사 담당 고용인에게 명령했다."신세희의 자리는 마련하지 말아요. 우리 부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를 어머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잖아. 우리를 인정하지도 않는데 밥 얻어먹을 자격이 어디 있어. 누가 감히 내게 토를 다는지 두고 보자고."진문옥은 나이와 지위를 내세우며 거만하게 굴었다.고용인은 감히 그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아이의 몫까지 합하면 식사 인원은 총 10명이었다. 그런데 신세희의 자리를 빼버린 것이다.의도대로 잘 놓인 의자를 보며 진상희는 기분이 좋아졌다.그녀는 신세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볼 계획이었다. 먼저 다이닝룸에 들어간 그녀는 항상 앉던 위치에 자리를 잡고 부씨 집안 식구들에게 인사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이모부, 고모, 고모부. 오셨어요?"그녀가 말하는 고모와 고모부는 바로 조의찬의 부모였다.진상희는 조의찬 부모도 신세희를 매우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그들 부부가 친절하게 진상희의 인사를 받아주었다."상희야, 어서 앉거라."의자와 수저가 모자란 걸 눈치챘으나 아무도 언급하는 이가 없었다.신유리가 도도도 달려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보니 의자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어? 의자가 하나 남았네.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디에 앉지?"신유리가 말했다.상석에 앉은 노부인이 그제야 눈치 채고는 얼른 입을 열었다."며늘아가, 오늘은 의자 하나를 더 마련했어야지. 왜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게야."진문옥이 차가운 낯빛으로 대답했다."어머나, 내 정신 좀 봐요. 저도 이젠 늙었네요. 이렇게 우리 집안을 위해 몇십 년을 고생했건만 어머님이라 불러주는 사람 하나 없다니... 이젠 노망까지 나서 쓸모도 없겠어요. 어떻게 고용인들에게 의자 하나를 더 준비하라고 말한다는 걸 깜빡했지?"그러자 노부인이 말했다."이 일은 네 탓이 아니다. 매일 식사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으니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 내가 오늘 세희에게 팔찌를 준 것 때문에 그 아이를 편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풋."잔뜩 기고만장해진 진상희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조롱 섞인 표정으로 신세희를 바라보았다. 부소경의 아내가 되었다고 당장 부씨 집안의 다이닝룸에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비꼬는 것이었다.정말 자기가 부소경의 아내라고 생각하는 건가?노부인의 팔찌를 받은 건 부씨 집안 모든 사람의 미움을 사는 행동이었다. 그 팔찌는 이모가 물려받고 나중에는 그녀의 손에 들어와야 마땅했다.'자식 하나를 낳은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감히 부씨 집안의 보물을 가지려 해? 쫓겨나는 건 모두 네년 자업자득이야.'속으로 아무리 빈정거려도 어쩐지 만족스럽지 못했던 진상희는 부소경의 기세를 빌려 신세희에게 욕을 했다."신세희 씨. 여긴 당신이 발 들일 데가 아니에요. 넷째 도련님이 꺼지라고 말한 것도 당신을 많이 봐준 거라고... 악!"진상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신유리가 그녀의 눈과 입에 칠리소스를 뿌렸다.음식에 곁들일 소스가 진상희의 얼굴에 가득 묻었다. 신유리는 여전히 진상희를 노려보았다."악! 따가워! 이모…. 흑흑."울부짖으며 냅킨으로 입과 눈을 닦은 진상희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그녀는 감히 신유리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대신 신세희에게 소리쳤다."대체 애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꺼져."부소경의 눈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아... 넷째 도련님… 혹시 저한테 한 말이었어요?""귀가 먹진 않았네."부소경이 건조한 목소리 말했다.진상희는 납득할 수 없었다."넷째 도련님… 전… 부씨 저택에서 이미….""다시 한번 말하는데, 꺼지라고. 내가 널 걷어차 버려야겠어?"부소경이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가 발길질하지 않은 건 이 자리에 있는 아내와 딸이 놀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세희에게 친절했던 노부인도 이젠 90대라 이런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부소경의 말을 들은 진상희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진문옥을 향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조금 나아지나 싶었던 진문옥의 안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