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은 이 모든 말을 대충 뱉어냈다.하지만 진문옥은 마치 큰일이라도 닥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가 줄곧 가지고 있던 부잣집 사모님의 오만방자함과, 존귀함, 응당함과 고고함은 다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그녀는 갑자기 마치 생사를 넘나드는 노인이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연약하게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투는 더 연약했다. “소경… 소… 소경아… 아니 아니… 도… 도련님… 내 모습을 좀 봐… 내가 얼마나 늙었는데…”그녀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녀의 말투는 무척이나 불쌍했다. “나도 이제 일흔이야.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이제 얼마 못 살아. 내가 네 아버지 정실부인인 걸 봐서, 제… 제발 나 좀 봐주면 안 될까? 나… 네가 하라는 건 뭐든지 다 할게. 너네 집에서 가사도우미라도 하라고 하면 그거도 할게. 앞으로 이 저택 안에서 네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 지금 당장 네 아버지랑 이혼하라고 하면, 바로 이혼 수속 밟으러 갈게. 나… 죽어서도 네 아버지랑 같은 곳에 묻히지 않을게. 부 씨 집안의 묘지에도 들어가지 않을게. 응? 그래도 안 될까?”이 말을 뱉어내고 있을 때, 진문옥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지금 무척이나 굴욕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일생을 부 씨 집안을 위해 쏟아부었다. 마지막에는 친아들까지 전부 죽어버렸고, 평생을 함께한 늙은 동반자와 이혼까지 해야 한다. 게다가 부 씨 집안의 묘지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니. 이 얼마나 굴욕스럽고 억울한 일인가?”하지만 아무리 굴욕스럽고 억울해도, 지금은 목숨을 부지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그녀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였다.진문옥은 무척이나 건강했고, 90까지는 거뜬히 살 수 있는 몸이었다.지금부터 30년은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죽고 싶지 않았다.아니!그녀는 정신병원에 들어가 환자들한테 둘러싸이고 싶지 않았다. 정신병원 의사들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건 정말 죽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진
“내가 진짜 양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진짜 악랄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그렇게 잘 해줬겠어?”진문옥의 말에 부소경은 연신 냉소를 내뿜었다. 냉소를 내뿜던 그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다. “양심 얘기를 꺼내시니까, 당신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래요! 우리 사이의 원한이 저번 세대부터 이어오던 것이라고 쳐요! 그럼 제 딸은요! 유리 이제 고작 6살이에요! 유리랑 당신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는데요! 나 부소경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날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진문옥씨! 제 딸 죽이는 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요? 진문옥 씨! 당신이 옛날에 우리 어머니한테 무슨 짓을 했든 간에, 그 일에 대해서는 추궁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쨌든 당신 아들들이 다 황천길을 건넜으니까요. 저도 제 아버지 옆에 동반자가 있길 바랐어요. 그래서 F 그룹을 이어받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당신을 건드리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자꾸 일을 만들잖아요. 당신은 제 쌍둥이 동생만 해친 게 아니라, 제 6살 딸아이도 가만두지 않았어요. 제가 당신을 살려줄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해요?”그의 말을 들은 진문옥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부소경은 다 알고 있었다.모든 걸 알고 있었다.사실 진문옥이 뒤에서 몰래 저지른 계략을 부소경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매일 기쁨에 빠져있었다니… 정말이지 광대가 따로 없다.지금 이런 상황이 되자, 진문옥은 자신의 처지를 불쌍해하지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도 못했다. 더 이상 모른 척 연기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흐린 눈동자로 자신의 남편을 쳐다보았다.하지만 부성웅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부부는 같은 숲에 사는 새지만, 고난에 부딪히면 각자 날아간다는 말이 있다.그 말이 맞다.진문옥은 처량한 미소를 짓더니, 울다 웃으며 미친년처럼 행동했다.정신병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그녀는 엄선우가 데리고 온 보디가드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갔고, 제대
전화기 너머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안… 안녕하세요. 부 씨 집안 도련님 부소경 씨 전화 맞나요?”부소경은 단번에 전화 친 사람이 누군지 알아챘다.김은국이었다.김은국은 여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부성웅보다 10살이나 더 많았다.김은국은 이미 20년 동안 집 밖을 나서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그는 남쪽에는 부 씨 집안이 있고, 북쪽에는 구 씨 집안이 있고, 밖에는 정 씨 집안과 장 씨 집안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는 김 씨 집안이 평생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부귀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김 씨 집안 어르신은 평생 동안 이룬 게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도 겁쟁이였던 그는 그 어떤 일에도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평생 먹고 살 수 있고, 김 씨 가문의 체면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래서 20년 전, 그가 나이가 고작 50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이미 집을 나서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다만, 설사 그가 집을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계집질을 하는 것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비록 김 씨 집안이 지금 권력도 세력도 없긴 하지만, 가문의 기세는 여전했다.김은국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여자는 강을 건너는 물고기만큼 많고도 많았다.그리고 김미정의 모친은 그 물고기 중 한 마리였다.김미정의 모친은 김은국보다 12살이나 어렸다. 올해 고작 50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김미정은 김은국의 어린 연인이 낳은 막내딸이었다. 그래서 김은국은 이 딸은 유난히 더 아꼈다.20년 동안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 직접 나서서 자신의 딸을 살리려고 하다니.고고하게 잘난척하던 사람도 딸 하나 구하겠다고 이렇게 직접 나서서 부소경한테 직접 전화하며 사정을 봐달라고 해야 했다.그뿐만이 아니라, 김은국은 부소경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줄지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도… 도련님… 집에만 박혀있는 이 늙은이가 이렇게 나서는 걸 봐서, 제
지금 부소경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했다.그가 어떤 심정으로 자기를 살려준 건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김미정의 다정함과 우아함을 느껴서일까, 그녀의 단순함과 선량함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귀티와 아름다움 때문일까?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겠지?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그에게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그녀는 먼저 숨어야 했다.최대한 그에게서 멀리 숨어야 했다. 그가 마음속에 담겨있는 화를 다 뿜어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김미정은 마치 죽다 살아난 죄수처럼 기고 구르며 부 씨 저택을 빠져나갔다. 막 저택을 벗어난 그때, 차 한 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아가씨, 타세요.” 기사는 문 앞에 서서 공손하게 말했다.“당신은…” 김미정이 대답했다.“엄 비서님이 부탁하셨어요. 공항까지 데려다주시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기사가 말했다.엄 비서?그 말에 김미정은 바로 엄선우를 떠올렸다.엄선우는 부소경의 비서였다. 엄선우가 기사한테 그녀를 공항까지 데려다주라고 했다니. 그건 엄선우의 명령이 부소경의 허락을 거쳤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부소경이 자기를 공항까지 데려다주라고 사람까지 동원했다는 말에 김미정의 마음속에는 이상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하지만 김미정이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그녀가 부 씨 저택을 벗어나고 있을 때, 부소경은 서울 김은국의 전화를 또 한 번 받게 되었다.김은국의 말투는 여전히 비굴했다. “도련님,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체력이 안 좋아서… 딸 데리고 오기 좀 불편한 상황인데…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부소경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요?”“우리 김 씨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 몇 가지 있어요. 그중, 조천후를 드릴게요. 제 딸을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걸 조건으로 걸고요. 안 될까요? 도련님?”“…”조천후는 김 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진 보물이었다.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김은국의 마음속에서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부소경의 말을 듣자, 부성웅의 마음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너, 네 동생이…”“죽었죠.” 부소경의 말은 무척이나 깔끔했다.그는 아직도 반호영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죽었다. 그는 반호영과 함께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먹지 못했고, 얘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고, 그에게 어머니의 생전 사진도 보여주지 못했다.이렇게 반호영은 죽었다.지영명의 총에 맞아 죽어버렸다.그는 무척이나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반호영의 가슴에는 구멍이 났다.그의 시체는 보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세희가 출산한 다음 날, 부소경은 반호영의 시체를 화장해 버렸고 그날 바로 그를 어머니의 무덤 옆에 묻었다.이것이 반호영의 유언이었다.그는 한편으로 엄마를 무척이나 미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의 품을 무척이나 갈망하고 있었다.그는 자기가 엄마의 품속에서 오랫동안 잠들 수 있기만을 바랐다.이런 아픔은 부소경처럼 살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 없는 사람까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전 먼저 진문옥을 처리해야만 했어요. 그래야만 어머니와 동생을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할 수 있거든요.” 말을 끝낸 후, 부소경은 발걸음을 돌렸다.그는 부성웅과 함께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부성웅의 늙은 몸이 자꾸 그의 뒤를 쫓았고, 늙고 느린 발걸음 때문에 부소경을 따라잡지 못하자, 부성웅은 뜀박질까지 했다.열심히 뛰는 부성웅의 모습은 먼 곳에 서 있는 엄선우의 마음마저 아프게 했다.부소경은 차 안에 앉아 엄선우를 불렀다. “왜 아직까지 차도 안 몰고 그러고 있어?”엄선우는 그의 말에 대답했다. “도련님, 아버님이…”그의 말에 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쳐다보았다.부성웅은 이미 차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소경아, 나도 네 엄마랑 호영이… 보러 가고 싶은데…”부소경은 아버지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타세요.”차는 도로를 질주했다.한 시간 반 뒤. 그
갑자기 신세희 생각이 났나 보지?부소경은 처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낳았어요. 아들로요.”“지… 진짜야?”“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이 아이는 부 씨 성을 따라야 해요!” 부소경은 차갑게 냉소했다. 무척이나 풍자적이었다.그는 웃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저, 그 아이 성 부 씨라고 안 지으면 안 될까요? 네?”부소경도 부 씨 성으로 평생을 살았다.그가 지금 맡고 있는 회사도 F 그룹이었다.그가 지금 아버지라고 부르는 남자, 그가 평생 증오하던 남자도 성이 부 씨였다.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아니, 아니, 아니, 소경아, 안된다! 네 아이고, 우리 부 씨 집안의 아이야. 부 씨 성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의 성을 따른다는 말이냐? 꼭 부 씨 성을 따라야 한다.”지금 이 순간, 부성웅은 당장이라도 일면식도 없는 자신의 손주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하지만 부소경은 눈을 부라리며 아버지를 쳐다보더니 냉소를 뿜어냈다. “신 씨, 하 씨, 정 안되면 서 씨도 상관은 없죠. 꼭 부 씨 성을 따라야 하나요?”부성웅은 이제야 알았다. 자신을 향한 아들의 증오가 얼마나 깊고 진한지.그는 메인 목을 가다듬더니 조금은 급박한 표정을 지었다. “나 데리고, 나 좀… 우리 손주한테 데려다주면 안 될까? 성이 뭐든 간에 부성웅의 친손자는 맞을 거잖아.”부성웅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들을 쳐다보았다.그는 방금 아내를 잃었고, 며칠 전에는 막내아들까지 잃었다.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의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고 아직도 발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요즘 부성웅의 가정의 조금씩 쓰러져 가고 있었다.보름 사이에, 커다란 저택에는 부성웅과 연로한 그의 어머니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처량함과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지금, 부 씨 집안에 드디어 어린 손주가 생겼다. 부성웅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부성웅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는 무척이나 기대감이 섞인 표정으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나 좀
부성웅은 깜빡 잊고 있었다. 이 재난의 시작이 신유리를 향한 자신의 거짓말 때문이라는 것을.그는 깜빡 잊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도 이 사실을 잊고 있을 줄 알았다.지금 이 순간, 부성웅은 무척이나 껄끄러웠다.그는 단번에 유리를 잡아당기더니, 잘 보이려는 듯한 모습으로 유리를 쳐다보았다. “유리야, 할아버지야. 할아버지잖아. 유리 친할아버지야. 할아버지가 잘못했어. 할아버지가 이렇게 보러 왔잖아. 이렇게 유리랑 유리 동생 보러 왔잖아. 유리랑 유리 동생, 둘 다 부 씨 집안에 둘도 없는 손자들이야. 할아버지는 이제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너랑 네 동생밖에 없어.”부성웅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의 말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그는 무척이나 진지했다.그는 자신의 모든 진심을 담아 말을 뱉어냈다.하지만 유리는 그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유리는 발버둥을 치며 뒷걸음을 쳤다. “아니요, 이런 식으로 유리 속일 생각하지 마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냥 알려주면 안 될까요? 우리 엄마 지금 몸이 많이 약해졌어요. 우리 동생은 태어난 지 3일밖에 안 됐고, 아빠도 요 며칠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아빠 항상 호영 삼촌 사진 보며 울고 있어요. 무슨 일 있으면 그냥 나한테 말해요. 날 해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우리 엄마랑 내 동생을 절대로 건드리지 마요. 그리고 아빠도. 다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지금 이 집의 가장은 저예요.”6살짜리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아이가 벌써부터 엄마와 아빠와 갓 태어난 동생을 지킬 줄 알다니.부성웅은 유리가 훌쩍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이 상황에서는 유리가 이 집의 가장이었다.그 말들은 부성웅의 귓가에 맴돌았고,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가 네 할아버지인데…” 부성웅의 얼굴에는 눈물이 흥건했다.“세상 그 어떤 할아버지도 손자들을 엄청 아껴요. 하지만 당신은 아니에요. 저번에도 나한테 당신이 유리 친할아버지라고 말했잖아요. 우리 아빠의 아빠라면서. 난 당신
“할아버지도 이제 잘못을 알았을 거야. 할아버지는 그냥 동생이 보고 싶을 뿐이야. 이 일은 유리가 결정하는 게 어때? 만약 유리가 할아버지가 동생을 보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빠가 당장 할아버지 보고 여길 떠나라고 할게.”부소경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이것이 아이를 대하는 성의고 태도라고 생각했다.비록 아이가 어리긴 하지만, 그들에게도 존중과 평등이 필요했다.그 말에 유리는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아빠, 이 못된 할아버지가 아빠의 아빠야?”부소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이나 유감스러운 말투였다. “아빠 맞아.”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빠, 아빠는 왜 이렇게 불쌍해?”말을 이어가던 유리는 그만 눈시울이 빨개지고 말았다. “아빠, 난 아빠가 너무 불쌍해. 아빠는 나랑 달라. 나는 좋은 엄마 아빠가 있는데, 아빠는 좋은 아빠가 없어.”“…”유리의 등 뒤, 서진희는 이미 거실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사실 그들은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을 열러 간 유리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서진희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는지 상황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유리가 문을 막으며 부성웅의 침입을 막는 모습에 서진희는 단번에 사건의 발단을 알아챘다.그녀의 말투는 무척이나 무례했다. “선생님! 손녀가 못 들어오게 막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선생님 손녀랑 며느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런 일은, 설사 손녀가 아니라 다른 어른들에게 닥친다고 해도 달라진 건 없을 거예요! 이렇게 자기 가족을 해치는데, 어른이라고 해도 당신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하물며 아이는요! 유리는 어리고 여려요. 하지만 자기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죠. 유리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어요. 자기 동생이 당신한테 다시 한번 속게 될까 봐. 당신이 자기 동생을 훔쳐 갈까 봐!”그 말에 부성웅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진희 씨. 진희 씨 말이 다 맞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