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심설의 마음은 점점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심설은 몇 년 동안 새 신발이라는 걸 신어본 적이 없었다. 방금까지 신고 있던 신발도 오빠가 한참 동안 주시하며, 남이 쓰레기통에 버리기만 기다리며, 그나마 상태가 좋은 신발로 골라 주워 온 것이었다.그렇게 주워 온 신발을 심설은 2년이나 신었다.아빠가 매달마다 생활비를 20만 원씩 보내주긴 했다. 하지만 20만 원으로 한 가족, 세 사람이 먹고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와중에 오빠는 학교도 다녀야 했고, 또 엄마는 돈을 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새 신발 살 돈 같은 건 남아있지도 않았다.어쩌다 겨우, 아빠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새 신발과 새 옷을 사준다고 했는데…하지만 결국 새 신발은 동생 때문에 더러워졌다.심설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심지산도 심신해에게 호통을 쳤다. “신해야! 이건 네가 너무 했어!”심신해는 화난 얼굴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흥! 난 아빠 싫어! 왜 다른 사람 편을 들어! 내가 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왜 얘 편들어!”심신해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홍원은 심지산을 한번 째려보고는 이내 심신해를 따라갔다. “신해야! 신해야!”심지산은 직원을 한번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심설을 쳐다보았다. 그는 손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그냥 지금 입고 있는 것만 결제해 주세요. 다른 건 됐어요. 오늘은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말을 끝낸 후, 심지산은 결제를 했다. 그는 심설을 데리고 백화점을 빠져나갔다.그는 심설에게 옷 두 벌과 신발 하나를 사주었다.심설이 입고 왔던 옷은 이미 버려졌다.심설은 그 옷을 다시 챙겨가고 싶었다. 집에 가서 세탁한 후 갈아입을 옷으로 입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무서운 속도로 심설을 끌고 나갔다. 이렇게 빨리 걸었는데도 두 사람은 홍원과 심신해를 따라잡지 못했다.모녀는 벌써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버렸다.심지산과 심설은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심설의 말에 심지산은 갑자기 웃었다. “설이는 아빠의 착한 딸이야. 네가 철이 들어서 너무 다행이야. 아빠랑 홍원 아줌마가 결혼했을 때, 네 동생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어. 신해는 아무 잘못이 없어. 신해 머릿속에 아빠는 자기랑 엄마밖에 모르는 사람이거든. 아마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 그래서 아빠가 네 존재를 숨긴 거야.”“그러니까… 신해는 네가 아빠 딸인 걸 몰라. 만약 알게 된다면 분명 엄청 속상해할 거야.”“신해는 설이랑 달라. 넌 태어났을 때부터 신해의 존재를 알고 있었잖아.”“하지만 신해는 나중에 태어난 아이라 너의 존재를 몰라. 신해는… 아무 잘못이 없어. 아빠 말 이해하겠어?”심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요.”“그래, 우리 착한 딸.”“아빠.” 심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응, 왜? 뭐 더 부탁할 거 있어? 아빠한테 다 말해. 아빠가 최대한 다 들어줄게.” 심지산은 심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심설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빠는 절 딸이라고 생각하세요?”그 말에 심지산은 단번에 심설을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바보! 널 딸이라고 생각 안 하면 아빠가 왜 매달 생활비를 20만 원이나 보내주겠어! 왜 너한테 옷을 사주겠어! 넌 아빠 딸이야.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 정말 바보네!”그 말을 듣자 심설은 환하게 웃었다.너무 따뜻했다.아빠가 이렇게까지 잘해준 적은 없었다.아빠는 새 옷도 사줬고, 새 신발도 사줬다. 아빠는 날 품속으로 끌어안았다.“아빠, 혹시… 20만 원만 더 줄 수 있어요?” 심설은 또 물었다.“당연이 줄 수 있지!” 심지산은 죄책감 때문인지, 바로 20만 원을 꺼내주었다. 그는 돈을 차곡차곡 접어 심설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평소 심지산은 심설의 생활비를 각박하게 통제하고 있었다.심설이 유은설과 지영명이랑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산은 딸을 키울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전처와 전처가 밖에서 낳아 온 자식까지 부양할 의무는 없었다.심지산은 돈이 차고 넘쳤
세 사람은 단란하게 모여있었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저 사람들이 진정한 가족이다.심설은 그냥 동냥하는 거지였다.심설은 발걸음을 돌리더니 조용히 자리를 떠나버렸다.심지산이 혼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심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8살짜리 애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심설은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마침내 공중전화를 찾았고 간곡한 부탁 끝에 겨우 전화 한 통을 걸 수 있었다. 심설은 감히 주머니에 20만 원이 있다는 사실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뺏어갈까 두려웠다.20만 원은 온 가족의 목숨이었다.심설은 집 아래 슈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빠르게 걸렸다. “아저씨, 죄송한데 우리 오빠 좀 불러주세요.”곧이어 지영명이 전화를 받았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겠다는 심설의 전화에 오빠는 바로 버스를 타고 심설을 데리러 왔다.심설은 오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아빠가 아내와 딸이랑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본인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심설은 아빠에게 받은 20만 원을 오빠에게 건네줄 뿐이었다.이 20만 원 덕분에 이번 달 온 가족은 아주 행복할 것이다.지영명은 돈 관리의 달인이었다. 그는 20만 원을 받은 뒤, 그중에서 4만 원을 꺼내 엄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엄마의 정신 상태는 아주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집에서 약 챙겨 먹으며 관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4만 원을 더 꺼내 엄마가 먹을 약을 샀다.12만 원은 그들이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유은설의 몸 상태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집 아래 수선집에서 또다시 사람들의 옷을 수선해 주며 집안의 보탬이 되고 있었다. 소매를 달아준다든가, 단추를 달아준다든가 하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그렇게 집에는 매일 몇만 원씩 고정된 수입이 생겼다. 거기다 엄마의 정신상태가 호전이 된 덕분에 아이들은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유은설은 가끔씩 설이를 데리고 목욕탕도 가고 미용실에도 갔다.
“안… 안녕하세요. 저는… 저는 그냥 오빠 도시락 배달하러 온 건데… 제가 방해가 됐나… 요?” 여자아이는 깜짝 놀랐는지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심설은 이렇게 고급진 장소에 온 적이 없었다.심설은 지금 불안에 떨고 있었다.피아니스트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그 곡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그 말에 심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어떤 느낌이 들었어?” 피아니스트는 또 한 번 물었다.다정한 모습에 심설은 피아니스트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피아니스트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심설은 고개를 들더니 용감하게 자기의 생각을 표달했다. “음, 시냇물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어요. 엄청… 엄청 편안했어요.”8살짜리 애는 그리 많은 단어를 알고 있지 않았다.하지만 심설의 비유는 무척이나 정확했다.피아니스트가 방금 연주한 곡은 Bandari의 ‘Snow Dream’이었다.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위로 해주는 곡이긴 했다.마치 몸 위에서 시냇물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다.피아니스트 서서히 몸을 숙였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아이의 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린 친구, 손이 엄청 길고 곧구나. 너처럼 이렇게 가는 손가락은 흔치 않은데.”자신의 손을 칭찬하자, 심설은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제 친구들도 부러워해요. 다들 제 손이 엄청 이쁘다고 하더라고요.”“맞아.” 피아니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손에는 어떤 일이 어울리는지 알아?”심설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피아노, 음,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대답했다.그 말을 듣자, 심설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피아노라면… 저희 집은 안 돼요. 배울 형편이 되지 못해요.”심설은 줄곧 새로운 취미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학원비는 항상 비쌌고,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심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피아니스트를 쳐다보았다. “아저씨! 제 손으로 피아노 말고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는데요?”피아니스트
지영명은 바로 심설에게 되물었다. “나이도 어리면서 어디 가서 돈을 번다고 그래?”“오빠, 난 손가락이 길어.” 심설은 밑도 끝도 없이 지영명에게 이런 말을 했다.동생의 길고 예쁜 손가락을 보자 지영명은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빠가 돈 많이 벌어서 꼭 너 피아노 학원에 보내줄게. 저 피아노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거 맞지?”지영명은 멀지 않은 곳에 놓여 있는 피아노를 가리켰다.그의 말에 심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심설은 고개를 들어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 나 아빠한테 돈 달라고 말하려고.”심설은 원래 자기의 긴 손가락으로 아빠의 돈을 훔쳐 오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비록 긴 손가락이 왜 소매치기에 제격인지 알지 못했지만, 심설은 고상하게 피아노를 치는 아저씨의 말이 무척이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아저씨는 아는 게 많아 보였다.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으니, 난 분명 돈을 훔칠 수 있을 거야.심설은 지영명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심설은 자기의 긴 손가락을 이용해 아빠의 돈을 훔칠 생각이었다.하지만 심설은 조금 무서웠다. 지영명이 자기를 때릴 것만 같았다. 오빠는 분명 도둑질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게 친아빠의 돈을 훔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심설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내더니 이내 말을 바꾸었다.그 말에 지영명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그는 동생에게 정말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지영명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바보야, 너네 아빠는 널 책임질 의무가 있는 거지, 나랑 우리 엄마까지 책임질 의무가 있는 건 아니야. 네가 돈 문제로 찾아가면 아마 너네 아빠는 또 나랑 우리 엄마가 널 거기로 등 떠밀었다고 말할 거야. 그러다가 매달 20만 원도 안 주면 어떡해? 괜찮아. 아빠한테 돈 달라고 하지 않아도 돼.”심설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빠.”어린 심설은 지영명이 싹 비운 도시락통을 챙겨 레스토랑을 떠났다.심설은 집
심설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이후, 심설은 다른 사람들이 간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단지 군침만 흘릴 뿐, 다른 사람들의 물건을 뺏은 적은 없었다.도둑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지영명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만약 도둑질을 했다면, 지영명은 아마 심설의 다리를 부러뜨렸을 것이다.심설은 가는 길 내내, 이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이런 생각과 함께 심설은 집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침대맡에 웅크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엄마, 엄마 왜 그래?” 심설은 엄마에게 달려가 물었다.“설아, 엄마 이제 돈 못 벌어. 엄마 가게가 없어졌어. 이제 설이한테 패딩도 못 사줘. 겨울에 엄청 추울 텐데.”유은설은 신경질적으로 심설을 끌어안았다. 그것도 엄청 세게.가해지는 힘에 심설의 몸에는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하지만 심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반항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심설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자기를 걱정해 주고 있다는 것을. 병이 다 나아가던 사람이 가게가 없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다시 정신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것을.게다가 약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심설은 유은설이 정신병원에 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심설은 아빠만 잃은 게 아니라 엄마도 잃어버리게 된다.심설은 그렇게 한참을 유은설의 품에 안겨있었다.유은설이 피곤함에 잠이 든 후에야 심설은 엄마의 품에서 벗어났다.심설은 아무 말 없이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혼자서 조용히 집을 벗어났다.심설은 일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의 별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심설은 심지산의 별장에 몇 번 와 봤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이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두 사람은 항상 멀리서 바라만 봤다. “여기에 아빠를 홀려간 불여시가 살고 있어.”엄마는 항상 별장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욕설을 퍼부었다.그리고 나중에는 오빠가 심설을 이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두 사람은 보통 뒤에서 몰래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그래서 수없이 이곳으
심설은 고개를 들어 심지산을 쳐다보았다. “…”심지산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그는 심설을 딸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었다.아무리 심설이 안타까워도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심설과의 부녀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3일 전, 심신해의 학교에서 학부모 회의가 열렸었는데 그 사이에 아이들이 ‘나의 아빠’를 제목으로 글쓰기를 하나 했었다.심신해는 심지산을 엄청나게 칭찬을 했다. 심지산을 엄청 대단하고 엄청 자상한 사람이라고 글을 썼다.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심신해는 글 속에서 몇 번이나 자신이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자기가 외동딸이라고, 엄마 아빠가 공주처럼 떠받드는 보물이라고. 게다가 마지막에는 많은 이혼 가정과 재혼 가정의 아이들을 만났었는데 다 불행하게 살고 있었다고 하기까지 했다.심신해는 온전하고 건강한 원래 가정이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엄마, 친아빠가 이혼한 적 없는 가정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심신해는 교실에서 대놓고 절대로 쉽게 이혼하지 말라면서 다른 학부모들에게 말하기까지 했다.심지산은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자기의 엄마 아빠가 재혼이라는 걸 알게 되면 신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절대로 신해가 이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된다.신해는 공부도 잘하고, 사랑도 넘치고, 각 방면에 재능을 보이는 우수한 아이였다. 당당한 공주였다.심지산이 재혼을 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공주님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심지산은 어쩔 수 없이 심설을 불쌍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아무래도 심설이 심신해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았으니까.“거지야.” 심지산이 입을 열었다.그 말에 심설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설의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눈물은 마치 밤하늘에 별들처럼 심설의 눈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심설의 시야는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심설의 마음은 점점 더 아려오기 시작했다.하지만 심설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아냈다.어린 심설의 마음은 점점 더 견고해졌다. 심설은 꼭 아빠한테서 돈을
심신해도 차갑게 웃었다. “난 너 같은 도우미 필요 없어! 우리 집에 도우미 엄청 많거든! 너 엄청 짜증 나는 거 알아? 당장 꺼져! 난 너 싫어!”“…” 심지산은 아무 말도 없었다.심지산은 마음이 조금 아팠다.둘 다 그의 친 자식이었다. 둘 다 그의 피가 흐르는 핏줄이다.작은 딸은 공주처럼 살고 있었다.그에 비해 큰딸은 도우미를 한다면서 부탁을 하고 있다.심지산의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큰 딸을 볼 때마다 혐오감이 차올랐다. 심설의 몸에서는 유은설의 모습이 보였다. 시골에 살고, 공짜 좋아하고, 아는 거 없이 무식하고, 보는 눈도 없고, 주눅 든 모습이 유은설과 똑같았다. 게다가 심설의 몸에는 오빠의 그림자도 조금 섞여 있었다.친부인 자신에게 조금은 적대적인 눈빛이었다.갑자기 그해, 심지산이 유은설과 결혼하던 때가 떠올랐다. 5, 6살 남짓한 아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심지산을 노려보고 적대감을 보였다. 한번은 그가 유은설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삽을 들고 지켜보기까지 했다.그때 심지산은 깜짝 놀랐었다.이러한 이유들로 심지산은 지영명이 싫었다.그렇게 점점 유은설도 싫어졌다.심지어 그의 친딸인 심설도 싫었다.특히 큰 딸이 주눅 든 모습으로 쭈굴대고 있을 때, 심지어 염치도 없이 도우미를 시켜달라며 부탁할 때, 그는 정말 이런 말을 퍼붓고 싶었다. “너나, 네 엄마나, 너네 오빠나 다 똑같아! 똑같이 재수 없어!”“재수 없어!”하지만 지금 이 순간, 심지산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심신해가 심설이 자신의 친 언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됐다. 그는 작은 딸의 마음에 그림자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아이의 어린 시절에는 행복만 가득해야 한다.사람들은 말한다. 행복한 어린 시절이 평생을 치유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은 평생을 쏟아가며 치유해야 한다고.심지산과 홍원은 지식인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이 도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심신해의 자유와 행복을 줄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