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희는 불룩 나온 배를 손으로 감싸고는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죽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상대가 말이 없자 신세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배가 궁금해? 맞아. 여기 부소경 애가 들어 있어. 지금 날 죽이면 넌 둘을 죽이는 거야. 그러니 빨리 해. 일타쌍피잖아?”“이리 와! 그 칼로 내 배를 찔러! 나도 사는 게 지긋지긋하던 참이었어.”신세희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았다.지영명까지 배에 올랐으니 결국 어떤 식으로든 죽을 것이다.그러니 더 많은 수모를 당하기 전에 빨리 죽고 싶었다.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지영명을 빤히 바라보았다.지영명은 흠칫하다가 총구를 신세희에게 겨누며 말했다.“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내가 임산부라도 괜찮다고 하면 내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어?”“지영명 이 개자식아!”반호영은 몸을 벌떡 일으키고 지영명을 항해 발을 날렸다.만약 1대1로 붙는다면 지영명은 반호영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반호영 역시 그 참혹한 역사를 겪으며 끝끝내 살아남은 자였다.가만히 있을 때는 그냥 미소년 같은 이미지지만 그가 화나면 누구 하나는 죽어 나간다.아쉽게도 반호영에게는 총이 없었다.그의 발길이 지영명에게 닿기도 전에 지영명의 총탄이 그의 다리에 박혔다.“윽….”반호영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뒹굴었다.그는 지영명 가까이에 굴러가서 두 손으로 지영명의 다리를 꽉 잡고 신세희에게 소리쳤다.“신세희, 도망가! 빨리 도망가! 바다로 뛰어! 뛰면 어떻게든 살 수도 있어. 그러니 빨리 도망가!”탕!총탄이 그의 손목을 명중했다.그리고 또 한 발, 멀쩡한 손목까지 관통했다.“반호영….”신세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바라보았다.아무리 미워도 그는 부소경의 동생이자 그녀에게 정을 주었던 하숙민의 아들이었다.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엄마가 죽을 때까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비운의 남자.많은 잘못을 했지만 그래도 신유리와 그녀에게 자상하게 대해줬던 사람이었다.신유리
지영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만삭인 임산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만약에 내가 임신한 자기 처랑 잠자리한 게 부소경 귀에 들어가면 아마 분해서 피를 토하지 않을까?”“어이, 임산부. 어떻게 생각해? 아까 내 질문에 대답도 안 했잖아. 내 파트너가 되는 거 어떻게 생각해?”지영명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신세희를 바라보며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쫓겨서 아프리카로 망명을 간 뒤로 한 번도 고국의 땅을 밟지 못했고 부소경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부소경에 대해 알아본 게 있었다.그는 소문을 통해 부소경에게 기개가 남다른 아내가 있다고 들었다.그리고 부소경이 그 아내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부소경과 반호영이 동시에 사랑한 여자라면 뭔가 특별한 점이 있을 것이다.솔직히 지영명은 임산부에게 매너를 지키는 인간이 아니었다.반호영은 배에 의사와 의료설비 모든 걸 갖추었다고 말했다.지금 당장 저 배를 가르고 아이를 바다에 던져버릴 수도 있었다.그리고 산후조리를 하게 한 뒤, 노예로 굴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만약 태도가 좋으면 정말 애인처럼 예뻐해 줄 수도 있었다.지영명은 신세희가 자신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그래야 스릴 있었다.그런데 만삭이 된 신세희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뭐… 당신 같은 남자가 날 여자로 본다니 내가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나?”이어진 신세희의 말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지영명이라고 했었나? 사실 나 다른 건 몰라도 남자를 유혹하는 방면에서는 아주 뛰어나거든. 지금은 임신해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다른 여자들보다는 내가 낫다고 자부할 수 있어. 어때? 지금 해볼래?”지영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소문에 들은 신세희는 도도하고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고 들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부소경의 눈에 들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이 여자도 다른 여자들과 같이 헤프고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였단 말인가?그가 넋을
신세희는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지영명을 바라보며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이거 미친놈 아니야? 너 돌았어? 나 임신한 여자야. 나랑 결혼하겠다고? 너도 반호영처럼 남의 것을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 종이었어? 자기 애보다 남의 애가 더 좋다는 거야?”신세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지영명과 같이 죽자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던 그녀였다. 어차피 죽을 바에 남편의 적을 제거하고 가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그런데 이 더러운 조폭 새끼가 반호영처럼 변태일 줄은 몰랐다.이게 운명인 걸까?왜 내 인생에는 변태만 꼬이는 거지?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지영명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신세희, 난 미치지 않았어. 진심이야.”“넌 내가 널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처음 본 사람한테 결혼하자고 해서 미친놈이라고 생각한 거지?”“그게 아니야.”지영명은 쓴 미소를 지었다.신세희는 저 뻔뻔한 면상에 육두문자를 날려주고 싶었다.그녀는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지영명을 바라보았다.지영명이 말했다.“네 남편은 내 평생 원수야. 그 놈을 제거하려고 돈을 주고 정보를 샀어. 난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적은 없지만 네 남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잘 알아. 그리고 너.”지영명은 자신의 가슴에 박힌 칼을 쓰다듬었다.칼날이 박힌 부위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지만 그는 인상을 쓰지도, 칼을 뽑지도 않았다.그는 손으로 칼을 쓰다듬으며 신세희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신세희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비열한 조폭 주제에 끈기는 있어 보였다.지영명은 계속해서 말했다.“너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봤어. 예전에 조의찬을 구한다고 싸움에 뛰어든 적 있다면서? 그때도 넌 임신한 상태였어. 그런데 그 팔로 서시언을 위해 칼을 막아주었지. 너 때문에 서시언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어.”“하지만 임신한 너는 마취제도 맞을 수 없어서 멀쩡한 정신으로 봉합수술을 받아야 했지.”“임산부가 아니라 멀쩡한 남자라도 그렇게까지는 못해.”지영명은 얕은 한숨을 토하며
그녀는 뒤돌아서 신세희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우리 오빠 네가 찔렀어? 너 죽고 싶구나?”여자는 주먹을 들어 살벌한 기세로 신세희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세희야, 조심해! 쟤는 악마야!”고통스럽게 바닥을 나뒹굴던 반호영이 소리쳤다.하지만 그녀의 주먹이 신세희에게 닿기 전에 지영명이 동생의 손목을 가로챘다.“지영주! 네 새언니가 될 사람이야! 예의를 갖춰!”새언니?지영주라는 여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신세희를 빤히 보았다.신세희가 이를 갈며 말했다.“지영명! 차라리 날 죽여! 이 악마 같은 놈아!”그녀는 발을 들어 지영명을 걷어찼다.지영명은 그녀의 팔을 잡으며 간곡하게 말했다.“신세희, 너도 그만해. 이러다가 아기까지 다쳐.”“어차피 부소경과 접촉도 안 해본 아이니까 이제부터 이 아이는 내거야! 사내아이든 계집애든 난 내 자식으로 기를 거야!”“꺼져, 이 자식아!”“난 아빠가 없어. 엄마가 나를 홀로 키웠어. 부잣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면서 힘들게 키웠어. 그러다가 엄마도 돌아가셨어.”지영명은 처연하게 말했다.“오빠, 그만 얘기해!”지영주가 지영명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서 치료부터 받자.”지영명은 옆에 있는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사모님 잘 모시고 있어.”그의 부하들은 곧장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네, 형님!”지영명은 바닥을 뒹구는 반호영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저것도 데려가서 상처 잘 꿰매고 치료받게 해. 난 반호영이 보는 앞에서 신세희랑 결혼식을 올릴 거야!”“네, 형님!”신세희는 멍하니 반호영이 들것에 실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지영명도 안으로 들어가고 그녀는 홀로 갑판에 남았다.그녀의 좌우로 지영명의 부하들이 그녀를 에워쌌다.임산부가 아니라 홀몸이었어도 여기서 도망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절망감이 한순간에 몰려왔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까?이때, 신세희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지영명과 대치 중일 때부터 깜빡이고 있었지만 무음으로 설정했기
서진희가 훌쩍이며 말했다.“세희야, 엄마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야.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일단은 살아. 살아야 해, 알겠지?”엄마!나 사는 게 너무 힘들어!신세희는 울며 말을 잇지 못했다.“엄마… 나는….”“살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 유리한테는 엄마가 필요해! 나를 딸을 먼저 보낸 엄마로 만들지 마! 엄마한테는 너뿐이잖아.”“엄마….”“엄마랑 약속해. 넌 살아남을 수 있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 남아. 알겠지?”서진희는 간곡하게 부탁했다.신세희는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이런 상황에 죽는 것보다 살아남는 게 더 힘들었다.지금은 기회가 없어도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죽음으로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어떻게 될까?평생 방랑자로 세상을 떠돌며 살던 그녀의 엄마.이 나이에 딸을 또 잃게 되면 아마 평생 죄책감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유리도 마찬가지였다.신세희는 울어서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엄마. 꼭 살아남을게.’서진희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그래. 이래야 우리 딸이지. 유리 걱정은 하지 마. 엄마가 유리 옆에서 잘 돌볼게.”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엄마. 소경 씨 좀 봐꿔줘.”이때, 옆에 있던 부소경이 전화를 받았다.“신세희, 장모님이 하신 말씀 잘 이해했지? 무조건 살아남아.”“소경 씨… 지영명은 최후의 복수 상대로 당신을 지목할 거예요. 꼭 조심해요.”“내 말 들어. 무조건 살아남아. 내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당신 구하러 갈 거야. 어떤 모습이든, 거기서 무슨 일을 당했든 당신은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아내야.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당신은 혼자만 생각해. 알겠지?”“여보….”감동이 몰려왔다.잠시 후,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소경 씨, 나도 여기서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울게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상처를 다 처치한 지영명이 갑판으로 올라왔다.“이만 끊을게요.”그녀가 전화를 끊자마자 지영명은 다가와서 핸드폰
순간 반호영은 울음을 터뜨렸다.“하하!”지영명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부소경! 네 동생은 네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르더라? 하지만 나는 알지!”“넌 일면식도 없는 구경민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어.”“사실 넌 무자비한 인간이 아니야. 자기 사람한테는 말이지. 난 누구보다 널 잘 알아. 네가 그런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네 동생, 네 아내가 내 손에 잡혀 있는 지금도 이쪽으로 대포 한발 못 쏘잖아?”부소경은 솔직하게 답했다.“그렇지.”“하하! 정말 기분 좋네!”지영명은 광기 가득한 웃음을 터뜨리며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부소경, 오늘은 이만하지. 한달 뒤에 다시 연락할게. 나한테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아내와 동생을 살리고 싶으면 얌전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부소경이 물었다.“뭘 원하지? F그룹? 남성? 뭘 원하든 다 들어줄게.”지영명이 답했다.“한달 사이에 리스트 작성해서 보낼게.”신세희는 죽을 각오를 하고 핸드폰을 향해 소리쳤다.“소경 씨, 이놈은 복수하려는 거예요. 당신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요!”전화가 탁 하고 끊겼다.신세희는 무감각한 눈으로 지영명을 쏘아보았다.지영명이 천천히 손을 올렸다.그러더니 한참이 지나서 그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널 죽이지는 않을 거야. 때리지도 않을 거고.”“너 같은 여자는 소중하게 대해줘야지. 모든 게 끝난 뒤에 너에게 청혼할 거야.”“왜 그런 줄 알아? 네가 내 손에 있는 이상, 나는 이길 자신이 있거든. 너만 있으면 부소경은 얌전히 내 말에 따를 거야.”신세희는 깊은 분노와 절망감이 동시에 몰려왔다.하지만 동시에 오기도 생겼다.그녀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기다리고 있을게!”지영명은 그녀의 대답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그는 고개를 돌려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출발해! 섬으로 간다!”배가 다시 출발했다.남성에서 출발한 배는 먼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신세희의 마음도 점점 차분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부소경은 부성웅을 노려보며 주먹을 들었다. 서진희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자네,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를 때리면 안 돼! 아들로서 못할 짓이야!”부소경의 두 눈은 분노로 시뻘겋게 물들었다.주먹을 쥔 손에서 으드득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하지만 서진희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차마 때릴 수는 없었다.다행히 이때, 구경민도 안으로 들어왔다.사실 구경민과 부성웅은 같이 차로 움직였는데 부성웅이 발 빠르게 먼저 올라온 것이었다.부성웅은 손녀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구경민에게 집으로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구경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기에 그 부탁을 수락했다.그는 부성웅이 어떻게 반호영을 포섭했는지 알아내야 했다.그래야 신세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그래서 그는 부성웅과 함께 부소경의 집으로 왔다.구경민은 미안한 얼굴로 부소경에게 말했다.“소경아, 아저씨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네 아버지잖아. 여기서 아저씨를 때려서 분풀이를 한다고 해도 세희 씨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어떻게 세희 씨를 구출해야 하는지 방법을 생각하는 거야.”말을 마친 구경민은 억지로 부소경의 팔을 아래로 내렸다.부성웅은 부소경의 등 뒤에 선 작은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신유리는 상처받은 눈을 하고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다.이틀 전에 겨우 마음속으로 할아버지를 받아들이기로 했던 아이였다.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서 아이는 기쁘고 행복했다.아이는 틈만 나면 친구들에게 할아버지가 생겼다고, 나이는 많지만 정말 잘생긴 할아버지라고 자랑했었다.그리고 언제 기회가 되면 할아버지랑 애들을 집에 초대하겠다고 약속도 했었다.아이의 친구들도 신유리가 입 마르게 칭찬하는 할아버지를 궁금해했다.그런데….신유리는 눈시울을 붉혔다.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 나이에 있을 수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내 할아버지가 아니야.”부성웅은 죄책감에 가슴이 무너졌다.하나밖에 없는 손녀
아이는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꺼져!”이때, 밖에서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서준명이었다.그는 신유리의 비명을 듣자마자 안으로 달려들어와서 울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유리야, 유리야….”서준명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그의 뒤에는 이제는 걸음걸이도 힘들어 보이는 서씨 어르신이 따라오고 있었다.안 본 사이에 그는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그는 최근 줄곧 병을 달고 살았다.서진희와의 사이는 조금씩 완화되고 있었지만 그냥 내쫓지만 않을 정도였고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았다.서씨 어르신을 본 서진희가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오셨어요?”“나는….”서씨 어르신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유리 돌아왔다고 해서 궁금해서 와봤어. 애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신유리는 여전히 앙칼진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꺼져! 당신들 다 나쁜 사람이야! 다 나가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서씨 어르신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당신들 다 우리 엄마를 괴롭혔잖아! 우리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기회만 생기면 괴롭혔어?”신유리는 미친듯이 욕설을 퍼부었다.서씨 어르신이든, 부성웅이든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6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이 상황이 너무 버거웠다.이런 유리의 모습에 서진희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달랬다.“아가, 울지 마. 외할머니가 여기 있잖아.”이때, 민정아와 엄선희도 달려왔다.두 여자는 신유리와 서진희를 감싸안았다.신유리는 그제야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선희 이모, 정아 이모….”“유리 울지 마. 울지 마, 뚝.”민정아는 팔짱을 끼고 건들건들 두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누가 우리 유리 울리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면상을 날려버릴 거예요!”“유리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두 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요!”“어차피 저는 돈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요! 그래서 당신들이 두렵지 않다고요!”그 말을 들은 부성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