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고고하기 짝이 없었다.그에 비하면 임서아는 그야말로 사교계의 꽃 같은 존재였다.부소경의 머릿속에 두 사람의 모습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비록 신세희는 여러 남자와 얽혀있었고 자신도 동기가 불순했노라 인정한 적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시종일관 담담하고 고고한 이미지의 신세희였다. 특히 곽세건을 불구로 만들었을 때라든지, 팔로 조의찬 대신 칼을 막아주었을 때라든지... 이 모든 장면은 늘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임서아는 어떠한가.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아이도 임신한 상태였다. 아무리 그녀가 싫더라도 자신은 반드시 책임져야 했다.이날 오후, 부소경은 어머니 하숙민의 무덤 앞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머물다가 밤이 되어서야 다시 돌아갔다.다음날,회사의 일을 처리하던 부소경에게 임서아가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치가 떨리는 애교 가득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오빠, 나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싶은데... 혹시 오빠는 시간이 안 되는 거예요?"목소리에는 애교뿐만 아니라 원망도 깃들어 있었다.오늘 아침,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임서아는 웨딩드레스숍에 전화를 걸어 신상 드레스가 있는지 문의했었다. 신상이 나오면 그녀에게 보여달라고 할 심산이었는데 글쎄 직원의 말로는 때마침 어제 오후에 신상이 도착해서 부소경에게 연락했더니 숍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이 말을 들은 임서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직원에게 노발대발했다"가게 문 닫고 싶나 봐? 어떻게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일을 내 약혼자에게 문의할 수가 있죠? 여자가 어떤 웨딩드레스를 좋아하는지 대체 남자가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 당연히 내게 먼저 연락했어야죠!""고객님,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직원은 부소경의 약혼녀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웠다."잘 들어요. 어제 도착한 신상들, 모두 내 앞에 가져와요. 이미 팔린 것, 예약된 것, 전부 다! 다른 여자들은 내가 선택한 나머지 중에서 골라야 할 거예요."임서아는 바락바락 악을 썼다."......"정말 무리한 요
묵직한 봉투를 건네받았지만 신세희의 마음은 절대 홀가분하지 않았다.만약 다른 방도가 있었더라면 신세희는 이 돈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2천만 원은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존엄을 짓밟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생존 앞에서 그깟 존엄이 다 무슨 소용일까? 입술을 꽉 깨문 신세희는 봉투를 들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한 부소경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원래는 10억 원을 주려 했다고.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그쪽이야.'그의 표정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신세희는 기분이 복잡미묘했다.이혼하고 법원을 나서는 순간 신세희는 앞으로 부소경과는 더 이상 접점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결혼생활이었지만 셀 수 없는 일들과 갈등이 존재했다.그렇지만 신세희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때, 아랫배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치 딸꾹질을 하는 것 같은 작은 움직임이었다.아직 3개월밖에 안 되는 아이가 딸꾹질할 리는 없었다.이건 심장 소리일 가능성이 컸다. 산부인과에서 검진했을 때 의사가 그녀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3개월이 지나면 서서히 태아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 처음이 언제일지, 잘 느껴보세요."계속 신경을 썼으나 알아채지 못한 그녀가 의사에게 다시 물어보니 의사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지금 이 순간, 배 속의 아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게 한 것이다. 마치 배 속의 작은 아이도 부소경을 아쉬워하는 것만 같았다.대체 뭐가 아쉬운 걸까?그는 하루 이틀에 불과한 짧은 온기와 옷, 그리고 비싼 노트북을 주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그녀를 차갑게 경계하고 경멸했다. 그런데 대체 왜 미련이 남았단 말인가?'신세희, 당장 떠나란 말이야! 부소경은 임서아의 남자라고.'여기까지 생각하던 신세희는 돈봉투를 안은 채 떠나려 했다."거기 서!"부소경이 그녀를 불러세웠다.그녀는 걸음을 멈추었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부소경
"사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요?"신세희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요? 내가 곽세건의 아이를 뱄다고 해도 그건 당신과 결혼하기 전이었어요. 정말로 곽세건과 특별한 관계라고 해도, 지금의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우린 이미 이혼했으니까! 당신은 나와 곽씨 집안 사이의 일에 참견할 자격이 없어요!""그럼 당장 꺼져!"부소경이 화를 냈다."당신이 나를 불러 세웠잖아요!"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부소경 씨, 우리 앞으로 영원히 보지 말아요!"말을 마친 신세희는 몸을 홱 돌리며 자리를 떠났다.사실 그녀는 부소경에게 나중에 아주머니의 무덤에 가봐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질문마저도 잊었다.한 발 내디딘 그녀의 팔을 엄선우가 홱 낚아챘다.부소경의 비서이자 경호원이기도 한 엄선우는 항상 차분하고 과묵했다. 그러나 이혼하고도 이렇게 싸우는 두 사람을 보니 도저히 참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부소경은 늘 일 처리가 대담했는데 그건 부씨 집안의 핏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내심이 없는 그는 신세희와 곽세건의 사이를 알아보려고 직접 임씨 집안에 찾아가 캐묻기도 했다.그러나 그 집안에서도 딱히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부소경은 단지 그녀의 입에서 직접 진실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경위를 알아야 그녀를 도와 곽세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엄 비서님, 이거 놓으세요!"신세희는 화난 표정으로 엄선우를 바라봤다."세희 씨, 도련님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엄선우가 타이르듯 말했다."당장 꺼지라고 해!"부소경이 엄선우에게 호통쳤다.엄선우는 처음으로 부소경의 명령을 어겼다. 여전히 신세희의 팔뚝을 잡은 채로 엄선우가 입을 열었다."세희 씨, 대표님은 당신이 걱정돼서 그런 겁니다. 정말 의찬 도련님의 허세 한방으로 곽세건을 억누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설령 의찬 도련님이 정말로 곽세건을 제압했다고 해도 그건 대표님의 위세를 빌린 것에 불과합니다. 세희 씨도 보시
손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더없이 차분하고 냉정했다. 부소경의 품에 안긴 신세희는 혼비백산하며 눈물을 흘렸다."소경 씨, 당신... 손에서 피가 나고 있다고요. 흑..."예전에도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앞에서 "소경 씨"라고 다정하게 불렀던 적이 있었다.그는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은 채 낮게 야단쳤다."울긴 왜 울어."그와 동시에 신세희를 찌르려고 시도했던 여인도 엄선우의 발길질 한 번에 멀리 날아갔다.걷어차인 여인이 입에서 피를 왈칵 토했다.부소경이 칼을 던지자 신세희는 즉시 피가 흥건한 그의 손을 꽉 감쌌다. 점점 많아지는 피의 양에 놀란 그녀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오히려 부소경이 차갑게 냉소했다."곽세건을 찔렀을 때도 온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지 않았던가?"신세희가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땐 날 보호하기 위해서 찔렀던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두려움도 잊어버린 채 당장 그 자식을 죽여버리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지금은..."그녀는 피가 콸콸 흘러나오는 손과 찢어진 상처를 보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이 정도의 상처로는 죽지 않아. 그쪽 목도리를 풀어서 지혈이나 해."부소경이 명령했다."아."신세희는 허둥지둥 목도리를 풀어 부소경의 팔을 묶어 지혈했다.여자를 발밑에 제압한 엄선우가 고개를 숙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부소경에게 알렸다."도련님,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누군데?""곽세건이 바깥에 두고 있는 대여섯 번째 정부입니다. 아니, 여덟 번째인가? 올해 삼십 대 초반인데 몇 년 전에 곽세건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도련님이 곽세건의 부동산 대부분을 차지해버린 바람에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은 모두 그의 아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이 나눠 가졌어요. 여덟 번째 정부를 위해 남겨둔 게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 분노를 세희 씨에게 쏟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여자는 엄선우의 발밑에 밟히고도 여전히 욕설을 퍼부었다."창녀! 내 남편 눈에 들었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은혜도 모르고 감히 찔
그 여자는 원래 시골에서 살던 사람이라 글자도 잘 몰랐다. 그저 아름다운 외모로 이십 대 초반에 예순이 되어가는 곽세건을 따른 것뿐이었다. 십 년 가까이 그의 곁에서 지내며 한 번도 바깥세상을 겪은 적이 없었다.그래서 허영과 임서아의 수작에 너무 쉽게 넘어간 여자는 즉시 그들의 살인 도구로 둔갑했다.임서아는 이번에 반드시 성공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신세희에게 온갖 불행을 잔뜩 안겨줄 생각이었다.하지만 가장 위험한 순간 부소경이 나서서 신세희를 구해주었다.임서아는 질투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허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넋 나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임서아에게 얼른 다가갔다."서아야, 어떻게 됐어? 그 여자가 신세희를 죽였니?""엄마, 흑흑..."임서아가 더 서럽게 울었다."대체 언제쯤 신세희를 죽일 수 있을까? 걔 목숨줄은 왜 그렇게 질긴 거야?"허영도 신세희가 증오스럽긴 마찬가지였다.신세희가 죽지 않으면 그녀와 딸아이는 매일매일 불안 속에서 보내야 한다.달리 방도가 없었다, 신세희를 죽이는 수밖에.허영은 딸아이의 얼굴을 감싸며 위로했다."서아야, 엄마 말 좀 들어 봐. 한 번 실패하면 두 번 하면 되지. 두 번, 세 번, 열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어. 그러면 신세희를 죽이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넷째 도련님의 눈 밖에 날 건 분명해. 도련님이 그년을 혐오하기만 하면 우리 집안은 무사할 거야. 그럼 너도 도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고. 알겠니?"임서아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허영이 냉소했다."이렇게 신세희와 도련님을 같이 둘 순 없지. 당장 전화를 걸어서 뭐 하고 있냐고 안부를 물어."임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내 부소경에게 전화했다.한편, 병원에서 이미 손을 깨끗이 치료한 부소경은 수액을 맞고 있었다.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 봉합하지 않았다. 의사는 부소경의 요구대로 치료할 때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았다.마취제 없이 치료하는 부소경을 본 신세희는 불현듯 그와 자신이 매우 닮았다는 착각이 들었다.며칠 전 그
"당신 누구야? 왜 남의 남편 전화를 대신 받는 건데?"수화기 너머에서 임서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저..."그녀는 난처한 눈빛으로 부소경을 바라봤다.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임서아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의 휴대폰에 임서아의 번호가 저장되지 않은 탓이었다. 임서아의 거만하고 날카로운 힐난을 들은 신세희는 자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조용히 핸드폰을 부소경의 귓가에 가져갔다."네."부소경은 아주 불쾌해 보였다."여보... 소경 오빠... 흑흑. 왜 오빠 곁에 다른 여자가 있는 거예요? 어째서 감히 대신 전화를 받는 거냐고요. 대체 누구예요? 흑흑."임서아는 잔뜩 울먹이며 연약한 척 부소경에게 애원했다.사실 그녀는 목소리를 듣고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단 한마디의 말로 임서아는 방금 부소경을 대신해 전화를 받은 이가 신세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부소경이 신세희를 대신해 칼을 막아주고, 신세희가 그런 부소경을 지혈해준 뒤 함께 구급차에 오른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신세희가 분명했다.그러나 전화기 너머의 부소경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간호사야.""......"부소경이 대충 넘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 화가 치밀었지만 임서아는 차마 따질 수 없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척 부소경의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인데요? 간호사라니, 혹시 어디 아픈 거예요? 무슨 일인데요?""별거 아니야! 네 시끄러운 목소리를 들으니 더 짜증이 날 것 같군."부소경이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흑... 전 그냥 오빠가 걱정되어서 그런 건데. 피팅을 마치고 드레스숍에서 나와서 차를 탔는데 어쩐지 아랫배가 무거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있어요. 의사를 불러서 진찰했는데......""무슨 일이야!"부소경이 즉시 언성을 높였다.임서아는 다소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의사 선생님은 별일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떠나기 전에 특별히 엄마
"아, 부소경 씨는 치료를 이미 다 마쳤고 상처가 크지 않아서요, 그래서 나왔어요. 저를 대신해서 부소경 씨한테 감사 인사를 전해주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거라고요. 아 참, 그리고 엄선우 씨, 나중이 시간이 있을 때 소경 씨한테 제가 나중에 하 씨 아주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거에 동의를 하시는 지도 좀 여쭤봐주세요.” 엄선우는 대답이 없었다. “하 씨 아주머니는 영원히 제 가족이에요, 이것도 제가 계약서에 거액의 돈을 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제 가족의 정을 팔지 않아요.”신세희가 말했다. "제가 꼭 물어봐 드리겠습니다.”엄선우가 대답했다.“신세희 아가씨, 소경 도련님께서는 상처를 다 치료하셨는데 혹시 안에서 좀 더 도련님을 돌봐주실 수는 없겠습니까?”그러자 신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부소경 씨가 방금 전화를 받았어요, 그 사람의……약혼녀 임서아의 전화예요.” "도련님은 임서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엄선우가 매섭게 말했다.“……”신세희는 말이 없었다. "신세희 아가씨, 저는 도련님께서 누구를 위해 직접 칼을 막아주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엄선우가 신세희를 보며 말했고, 그녀는 또다시 웃으며 대답했다.“그게 뭐가요? 부소경 씨가 자신의 혈육을 원하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그 사람과 하 씨 아주머니는 일찍이 이런 고통을 겪었으니, 그는 반드시 다시는 그의 아이가 그의 인생과 같은 길을 걷게 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저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인데 부소경 씨가 약혼녀가 없다고 해도 저를 원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절대 그럴 일은 없어요! 그리고 저는 비록 매우 가난하고 초라하지만 저는 아내와 아들을 버리는 그런 남자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엄선우 씨,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신세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결연히 떠났다. 엄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신세희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똑같이 아이를 임신했는데 임서
"시……신세희 씨.” 조의찬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수줍은 표정까지 지었다.지금 신세희 앞에 선 조의찬은 수염이 나 있고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어 마치 생사의 시련을 겪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세희의 표정은 오히려 홀가분해 보였다. "조의찬 씨,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말씀하세요.""신세희 씨, 죄송해요.”조의찬은 난처한 듯 말했다."일주일 전에 이미 나한테 말했잖아요, 괜찮아요."신세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미 용서했는걸요.”"아직도……날 사랑하나요?”조의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신세희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는 조의찬 씨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 “……”조의찬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저는 정말로 의찬 씨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신세희는 석연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나는 12살부터 남의 집에 얹혀살았고, 일찍부터 눈치 보는 법을 배웠어요. 임 씨네 집에 맡겨진 8년 동안 나는 거의 배불리 먹은 적도 없고, 좋은 음식을 먹은 적도 없어요. 임 씨 집안의 가정부가 저에게 그 집 아가씨가 먹고 남은 케이크를 조금 준 그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해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의찬 씨, 당신이 처음 내 앞에 나타나서 껄렁껄렁한 말투로 나한테 말을 걸고, 나와 부소경의 결혼 현장에 자진해서 데려다주었을 때, 나는 당신이 그저 부잣집 도련님이 사냥감을 찾는 그런 단순한 놀이인 걸 알았어요.”“……”조의찬은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무관심하고 쓸쓸한 건 저항할 능력이 없어서 냉담하게 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저에게 틱틱대고 놀리기도 했지만, 저한테 잘해주기도 했죠. 당신이 호의를 품지 않은 것이라도, 또 그런 도움이 당신에게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그리고 어쩌면 난 당신의 심심풀이일 수도 있지만, 당신이 나에게 해준 것은 이